마돈나나 마이클 잭슨처럼, 이름을 듣는 순간 ‘룩’이 동시에 떠오르는 2NE1과 빅뱅. 이시대 가장 핫한 스타일을 만들며 유행 제조기로 떠오른 2NE1의 스타일리스트 양승호와 이현종, 빅뱅의 스타일리스트 지은을 만났다.
양승호와 이현종이 재치를 더해 연출한 2NE1의 상징적인 옷차림. 두 사람은 일본에서 산 빈티지와 톱숍의 원피스, 루엘라 바틀리의 선글라스, 마르지엘라의 티셔츠 등 다채로운 아이템을 믹스해 박봄, CL, 산다라박, 공민지의 룩을 완성했다.
2NE1_Making New Stream
케이블 프로그램으로서는 기록적인 시청률인 3%를 넘기고 종영한 〈2NE1 TV〉. ‘해적 방송’을 표방한 이 프로그램을 통해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건 2NE1뿐만 아니라 그들의 스타일리스트 양승호와 이현종 역시 마찬가지였다. 〈2NE1 TV〉 최재윤 PD조차 스타일리스트들에 대한 팬들의 반응에 깜짝 놀랐다고 말했을 정도니까. 인형처럼 곱게 차려입은 과거의 여자 가수들과 달리, 각각 분명한 색깔이 묻어나는 옷차림을 한 2NE1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1위 연타를 날린 그들의 노래 ‘Fire’ ‘I don’t care’와 함께 ‘2NE1 스타일’이란 말까지 검색 순위에 올라설 정도. 새로운 패션 감각으로 주목 받던 배우들이 잠시 주춤한 사이, 4명의 걸들이 동시대 젊은 세대들이 반할 만한 스타일로 무대를 장악한 것이다.
런던에서 파인 아트를 공부하다 잠깐 한국에 들어온 양승호와 이현종은 우연히 YG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친구인 빅뱅의 권지용을 통해 YG의 프로듀서인 테디를 알게 되면서, YG에서 준비 중인 4명으로 구성된 여자 그룹의 스타일리스트를 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은 것이다. “스타일리스트 후보 세 팀에게 ‘Fire’ 노래를 들려주고, 사나흘 안에 각 멤버들에게 어울리는 룩을 준비하라는 테스트를 받았죠.” 양승호의 설명이다. “각각의 팀이 완성해온 옷을 입고 촬영한 사진으로 최종적으로 스타일리스트를 결정하는 과정이었어요.” 그렇게 해서 양승호와 이현종은 2NE1 스타일리스트로 확정되었다.
“스타일리스트 일을 꿈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지만 둘이 하면 재밌겠다 싶어 하게 됐어요.” 곧바로 둘에겐 첫 번째 미션이 주어졌다. 2NE1 데뷔 무대이기도 했던 롤리팝 광고 의상. 3일 뒤 미팅을 하고, 또 며칠 후 광고 촬영이 이어지는 숨가쁜 스케줄이었다. “아무래도 신인이니까 의상 예산이 넉넉한 편은 아니었어요. 그래서 레고로 반지를 만들거나 인형을 붙여 팔찌를 만드는 등 손으로 직접 액세서리를 만들게 된 거죠.” 디테일을 중요하게 여기는 두 사람은 화면에서 잘 보이지 않는 작은 부분까지 섬세하게 준비했다.
그 후 모든 과정은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스타일리스트 후보 중 한 팀으로 두 사람이 만들었던 의상 컨셉은 그대로 ‘Fire’ 의상으로 이어졌고, 두 사람은 주로 카세트 플레야, 제레미 스콧 등은 물론, 톱숍의 레깅스와 직접 만든 의상들로 스타일링을 완성해갔다. “요즘도 동대문 원단 시장은 매일 들러요. 오늘도 검정과 흰색 옥스포드 원단을 구입하고, 겨울 수트를 만들기 위한 도톰한 원단을 구입했죠.” 두 사람은 일본에서 산 앞치마를 잘라 크롭트 재킷을 만들기도 하고, 각기 다른 화려한 프린트의 스카프로 세상에 단 하나뿐인 블루종을 완성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디올 옴므 등 남성복 컬렉션에 관심이 많았지만, 여성복 컬렉션을 관심있게 본 적은 한 번도 없었거든요.” 하지만 두 사람은 2NE1 멤버의 특징에 대해 서로 얘기를 나누면서 스타일링 컨셉을 정확히 잡아나갔다. “‘산다라는 프로포션이 좋으니까 현종이가 갖고 있는 꼼 데 가르쏭 바지는 어떨까?’ 얘기하면서 가져와 입혀보는 거예요. 또 레깅스엔 관심도 없다가 공민지에게 우연히 입혀본 후 썩 괜찮은 걸 알게 됐고, 예쁜 레깅스가 눈에 띄면 사두는 식이었죠.” 고등학교 때부터 패션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던 두 사람은 전략적이라기보다 즉흥적으로 서로 얘기를 나누다가 스타일을 완성하는 식. 이를테면 본능적인 감각과 타고난 재능으로 룩을 만들어내는 식이다.
이현종은 패션에 눈 뜨기 시작한 멤버들의 요즘 이야기를 들려줬다. “패션에 대한 관심은 CL이 많은 편이었는데, 요즘엔 공민지도 눈을 뜨기 시작한 것 같아요.” 그의 설명에 양승호가 덧붙였다. “산다라는 좋아하는 패션 아이템에 대해선 애착이 아주 많은 편이에요. 초반에 밑위가 긴 트레이닝 팬츠를 많이 입었는데, 양현석 대표도 ‘예쁜 아이에게 이런 옷이 괜찮을까?’라고 말하기도 했었죠. 하지만 산다라가 무대에서 잘 하겠다면서, 꼭 입고 싶다고 어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죠. 참, 박봄은 다리가 아주 예뻐서 짧은 옷을 많이 입혀요. 초록색 마니아이기도 하고요.” 이렇게 멤버 각각의 특징이 명확해지면서, 2NE1 스타일에 주목하는 사람들도, 그들처럼 입고 싶어 하는 젊은 층들도 많아졌다.
마르탱 마르지엘라, 카스텔바작, 카세트 플레야 등 개성 넘치는 의상을 믹스 앤 매치하는 두 사람은 베르사체와 존 갈리아노 같은 디자이너를 특히 좋아한다고 말한다. “요즘엔 이태리 브랜드들의 매력에 푹 빠졌어요. 특히 베르사체는 정말 멋져요.” 양승호의 말에 이현종이 덧붙였다. “벨트에 메두사 로고 하나만 강하게 들어가도 그 힘이 달라지죠. 파리 옷이 우리 체형에 어울리는 편이긴 하지만, 카발리나 디스퀘어드만한 옷도 없거든요.” 두 사람은 패션지 보다는 컬렉션 사진을 하나하나 넘겨보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편이다. 또 도쿄에 갈 땐 괜찮은 옷가게를 구석구석 다 찾아보고, 런던의 빈티지 숍에서 우연히 건진 아이템들도 유용하게 활용한다. “저희는 동대문 광장 시장부터 한섬의 아울렛 F/X까지 구별없이 드나들어요. 시즌이 지났지만 2NE1 스타일에 딱인 아이템들을 건질 수도 있죠. 운좋게 멋진 옷을 싸게 살 수도 있어요. 물론 저희가 직접 리폼하기도 하고요.”
그들은 정말 우연히 스타일리스트가 되었지만, 런던 스트리트 시크가 가미된 그들의 감각적인 스타일링은 엄청난 파급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물론 다시 학교로 돌아간다면, 패션 디자인이 아닌, 그들의 전공인 파인 아트 공부를 이어갈 생각이지만 말이다. “장 폴 고티에가 맡았던 영화 〈제5원소〉의 의상은 지금도 감동적일 정도예요. 밀라 요보비치의 헤어 컬러부터 조연의 의상까지 정말 훌륭했죠.” 20대 초반인 그들에게 패션은 일상이고 즐거움의 대상일 뿐.
“힙합이라도 ‘글램’ 무드가 더해진 룩을 연출하고 싶어요. 느끼할 정도로 풍성한 모피 스타일링도요. 한마디로 장 폴 고티에나 베르사체에서 느껴지는 글래머러스한 파워가 있는 룩이죠.” 그들의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연말 시상식에서 어떤 여배우의 의상보다 2NE1이 입을 의상이 더 궁금해졌다. “그건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둘이 함께 틈틈이 얘기를 나누면서 새로운 걸 구상 중이에요. 물론 글램과 파워와 스트리트가 믹스된 룩을 기본으로 하고요.”
3년째 빅뱅의 룩을 만들어온 스타일리스트 지은. 지드래곤의 뮤직 비디오 촬영을 위해 인모 가발로 소매를 장식한 검정 재킷, 군용 워커를 하얗게 칠해 완성한 부츠를 비롯해 그동안 빅뱅 멤버가 입었던 옷과 액세서리들이 걸려 있다.
BIG BANG_Style Megahit
빅뱅의 리더 지드래곤의 솔로 앨범 발매를 앞두고, 그의 노래만큼이나 그의 스타일에 대중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빅뱅이 어떤 일을 벌이든 ‘패션’과 ‘스타일’ 역시 주목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으니까.
네티즌들은 방송에서 보여지는 의상뿐 아니라 일상에서 그들이 입는 옷, 평소 좋아하는 패션 브랜드까지도 궁금해 한다. 마르지엘라의 찢어진 디테일의 티셔츠를 입은 지드래곤을 보고 브랜드를 궁금해한 한 팬이 얼핏 보면 비슷한 요지 야마모토의 티셔츠라고 잘못 인터넷에 올려놓는 경우까지 생길 정도. 마르지엘라와 요지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아진 것도, 이렇게 적극적으로 가수들의 의상에 대해 궁금해 하게 된 것도 국내에선 흔치 않은 일이었다.
“일본에서 활동할 때는 일주일에 반반 정도씩 한국과 일본에 머물렀어요.” 일본 활동부터 멤버 개인 활동까지 빅뱅의 모든 의상을 책임지고 있는 스타일리스트 지은은 2000년부터 YG 소속으로 일해왔다. 렉시, 원타임 등의 스타일링을 맡았던 그녀는 지난 3년 동안 빅뱅 멤버들과 대화를 나누며 그들의 스타일을 하나씩 만들어 갔다. 이번 지드래곤의 솔로 앨범의 의상 컨셉 역시 자연스럽게 정해졌다. “컨셉의 기초가 될만한 사진 자료는 평소 꾸준히 찾아두고, 필요한 것들은 사거나 만들어두죠.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머리색이에요. 금발로 해보자는 얘기는 1년 전쯤부터 있었죠. 헤어 스타일만큼 신중하게 결정해야 하는 것도 없거든요.” 재킷 촬영을 며칠 앞두고 단발 정도로 길러온 머리를 자르고, 4차례 탈색을 하고, 염색을 해 원하는 색을 얻게 되었다. 앨범이 발매되기 전엔 모자를 쓰고 다니면서 머리색을 비밀에 부쳤다. 대형 기획사 소속의 해외 뮤지션들처럼 음원 노출을 막는 것과 동시에 스타일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보안을 유지한 것이다.
“유럽의 스케이트 보더들 같은 느낌이 좋겠다 싶었어요. 너무 꽃미남처럼 보이는 건 자제하고요.” 언제나처럼 앨범 재킷 촬영에서도 세 배수 이상의 옷을 준비했다. 일본을 통해 제레미 스콧의 F/W 컬렉션 의상들도 공수해왔고, 파리에서 산 발맹 청바지와 마크 제이콥스도 즐겨 입는 꼼 데 가르쏭의 스커트도 있었다. 그녀에게 이번 앨범 스타일링에 대해 질문하니 대답이 길게 이어진다. “스키니한 핏의 발맹 팬츠를 루즈하게 입으면 예쁘겠더군요. 지드래곤이 28사이즈를 입는데, 파리 매장에서 일부러 33사이즈를 사왔어요. 살짝 걸치는 느낌으로 루즈하게 입으니 새롭게 분위기를 낼 수 있었죠. 앨범 재킷 촬영 때 꼼 데 가르쏭의 스커트도 입었지만,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어 결국 상반신 컷을 골랐어요. 또 지방시의 티셔츠 위에 여성복인 바바라 부이 가죽 볼레로를 걸친 컷이 반응이 좋아서, 비슷한 디자인의 화이트 버전을 제작하기도 했구요.”
어쨌든 빅뱅의 패션 효과를 체감해온 YG에서도 스타일의 중요성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 “재킷 촬영을 할 땐 보통 사진가들의 의견에 따르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제가 스태프들과 함께 스타일 컨셉에 대해 더 명확하게 진행할 수 있게 됐어요.” YG 양현석 대표를 비롯, 스태프들 역시 패션에 일가견이 있다는 점 역시 YG 소속 가수들의 스타일 파워에 큰 힘이 된다고 그녀는 덧붙인다. “양현석 대표는 유니클로 티셔츠를 살 때도 입어보고 살 정도예요. 새로운 패션 브랜드에 대한 관심도 많고요. 얼마전엔 아직 국내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일본 브랜드 사카이(Sacai)의 니트 베스트를 사더군요.” 프로듀서 테디는 외국에 있는 친구들을 통해 YG 뮤지션들에게 필요한 의상들을 공수해주는 노력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빅뱅의 멤버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아이템들을 구체적으로 수집하고 있다. 요즘 수트에 푹 빠진 탑은 갈리아노와 크리스 반 아셰 등의 옷을 좋아하고, 솔로 2집 준비 중인 태양은 전부터 좋아하던 실버 액세서리 브랜드 크롬와츠에 커스텀 의뢰를 해둔 상태다. 승리는 언더커버의 가죽 옷들을, 대성 역시 릭 오웬스의 가죽 점퍼 스타일을 즐긴다. “멤버들은 피에르 하디 신발도 좋아하지만 나이키도 즐겨요. 몇몇은 나이키의 온라인 쇼핑 사이트에 실명으로 회원가입도 했어요.”
스타일리스트 지은은 분더숍 매니저가 전해준 흥미로운 얘기도 들려줬다. “지방시 파리 쇼룸에 바잉하러 갔는데, 컴퓨터 바탕 화면에 지용이가 지방시 티셔츠를 입고 있는 사진이 있더래요. 가수인지 배우인지 모르지만 한국에서 유명한 사람이라 들었다면서 사진이 마음에 들어 저장해뒀다고 하더군요. 그런 얘기를 들을 때 기분이 정말 좋아져요.” 패션 하우스의 예전 홍보 지침에는 가수 의상 협찬은 어렵다는 곳도 많았지만, 이제 다 옛말이 되어버렸다. 드라마 속 연기자만큼이나 가수들이 입는 옷들의 영향력도 점점 더 커지고 있으니까. 빅뱅 멤버들은 샤넬의 여성 컬렉션 의상들도 세련된 스타일로 연출해 뮤직 어워드에 입고 나오기도 하고, 샤넬의 모스크바 공방 컬렉션의 브로치나 보타이 브로치로 포인트를 주기도 한다. 물론 루이 비통과도 특별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멤버들이 스티븐 스프라우스의 그래피티 라인을 너무 좋아해 국내에 들어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다섯 멤버가 다같이 가서 신나게 쇼핑하기도 했어요. 또, 지용이가 카니에 웨스트가 디자인한 루이 비통 스니커즈를 좋아한다는 소식을 들은 루이 비통 측에서 협찬하겠다는 제안을 먼저 해오기도 했고요.”
이들의 스타일링에도 스타일리스트가 직접 만든 의상과 액세서리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무라카미 다카시의 브로치를 일본에서 잔뜩 사와서는 평범한 데님 재킷에 장식한다거나, 뮤직비디오 촬영 의상을 위해 3명의 스타일팀 스태프들이 사흘이나 걸려 거울 조각들을 잔뜩 붙인 베스트를 만들기도 했고(사실 긴팔 블루종을 만들었는데 팔을 움직이기 어려워서 소매를 싹둑 잘라냈단다!), 검정 워커에 스터드를 잔뜩 장식하도록 주문 제작하기도 하고, 동대문에서 산 상장 장식에 라카를 칠해 모던한 브로치를 만들기도 했다. 또 예전에 입었던 옷들을 다른 방식으로 연출하거나 멤버들이 갖고 있는 옷들을 믹스해 새로운 룩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지난번에 지용이와 함께 파리에 갔을 때 저는 빅뱅 멤버들이 무대에서 입을 의상을, 지용인 평소에 입을 옷들을 샀어요. 멤버들이 어떤 옷을 갖고 있는지, 그리고 그들 역시 제가 어떤 옷을 사왔는지 서로가 잘 알죠.”
사실 해외에선 패션하우스가 카니에나 파렐 윌리엄스 같은 뮤지션에게 콜라보레이션 제안을 할 만큼 영향력을 발휘하는 그들이지만, 국내에서 뮤지션들의 패션 파급 효과의 파워가 얼마 되진 않았다. 그리고 그 프런트 라인에 빅뱅이나 2NE1이 서 있다. 패션쇼가 끝나자마자 삼삼오오 모여 컬렉션 사진을 보며 옷을 구상하고, 화보 촬영을 위해 디자이너들의 의상을 공수해오고, 유행의 도시에서 다함께 쇼핑을 즐기는 그들. 그런 그들이 대중들의 스타일링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패션에 있어 음악이 그렇듯, 음악에서도 패션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 필수요소가 되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