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 글에서 세가지 가정으로 어그로를 끌었더니 몇몇분들이 덥썩물었습니다.
오랜만에 재밌게 이야기를 해보는 계기가 되었네요. 배울게 참 많았습니다.
아무튼 첫 가정은
1. 이 음악은 모든 것을 가락보안에 담아내는 것이 가능하다. 였습니다.
마치 이 음악을 꿰뚫고 있는척, 모든 걸 다 겪은 척 쓰면서 극단적으로 쓰니 재미있는 의견들을 들을 수 있게 됬습니다.
이 가정에 대해 설명을 한번 해볼게요.
일단 문장을 나눠보겠습니다.
1) 이 음악 2) 모든 것 3) 가락보 4) 가능하다
이렇게 네부분으로 쪼개서 의미부여를 하고 쓴 문장이었어요.
1) 이 음악
제가 7년동안 열심히 한 거입니다. 이것도 나눠보면
사자탈춤, 필봉 판장구, 필봉 설장구, 앉은 반 사물놀이, 앉은반 설장구, 선반 사물놀이, 채상 정도입니다.
음악보다는 무용의 비중이 높은 사자탈춤과 채상을 제외하면
필봉과 필봉이 아닌것으로 나눠지겠네요.
필봉인 것에는 필봉 판장구, 필봉 설장구
필봉이 아닌 것에는 앉은 반 사물놀이, 앉은반 설장구, 선반 사물놀이가 있습니다.
이렇게 나눈 이유는 제가 이걸 학습하는 과정에 있었습니다.
필봉인 것들은 풍연에서 선배들한테 혹은 임실가서 전수관에서 배운 것들이죠. 이렇게 배운 것의 특징이 있습니다. ('도제식'이라는 표현을 들어봤던 것 같은데 얼추 사전적의미를 보니 제가 말하려는 바와 정확하게 일치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관장님이 항상 옳다'입니다. 인간문화재로서 필봉을 보존하시는 입장이기 때문에 너무 당연한 이치죠. 이것 때문에 나타나는 몇가지 재미있는 현상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관장님이 ~라 하셨다', '이 가락은 ~ 느낌으로'의 말들입니다.
필봉이 아닌 걸 제가 배웠을 때 특징. 아 일단 이걸 어떻게 배웠냐부터 좀 알려드리자면, 학교 앞 멍군집 옆에 국악의 전당이라고 있었는데, 거기서 길진 않지만 레슨받았습니다.
아무튼 여기서도 큰 특징이 하나 있었습니다. 여기 선생님은 타악기 박사과정을 밟으신 분인데, 이 음악의 이론적인 요소로 알려주십니다. (*마치 제가 필봉과 필봉이 아닌 음악으로 이분법적으로 나눠버리긴 했지만, 이건 이 두 음악의 차이가 아닌, 그냥 제가 배운 방식의 차이입니다. 추후에 제가 계속 쓸 글을 좀 편하게 쓸려고 나눈거에요) 제가 풍카에 적어놓은 가락과 가락보에 대한 이야기와 비슷하죠. '가락을 어떻게 쳐야하냐'보다는 일단 '이 가락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가'에 대한 접근을 먼저하게 되었습니다.
잡소리가 길어지는 것 같으니 구구절절 자세히 이야기는 하지 않고, 제가 겪은 이 두 악에 대한 학습법의 차이는 이렇다 정도로 이해해주시면됩니다. 아무튼 제가 말한 '이 음악'은 두가지를 모두 포괄합니다.
2) 모든 것
이걸 정의하는게 가장 큰 관건인 것 같습니다. 제가 첫번째 가정에서 많은 어그로를 끌었던 이유는 이 단어에 있죠. ㅎㅎ. 우선 음악을 전달하는 강습방식에 대한 설명을 대충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우리의 강습방식은 '보여주고 따라한다'의 강습방식입니다. 말그대로 가르치는 사람이 가르치려는 것을 보여주고, 배우는 사람은 그걸 따라하는 거죠. 풍연에서 애용하는 강습방식 중 하나인데, 강사와 학생이 한배씩 번갈아치는게 하나의 예시가 되겠네요. 전수관에서 또한 이런식의 강습이 이루어집니다. 학생이 몇배 더 많다는 차이가 있지만요. 구조는 같습니다.
이러한 강습을 도식화해보면 다음과 같아요
예를 들어 갠지갱이라는 가락을 강사가 학생에게 알려준다고 합시다.
강사는 본인이 알고 있는 가락을 머리속으로 떠올립니다. 어떻게 쳐야하는지 인식을 하거나, 익숙한 소리를 떠올리거나 말이죠.
이렇게 떠올린 가락을 본인의 손으로 칩니다. 덩 구궁따구궁 구궁따.
그 사이에 경제학과에서 흔히 말하는 noise가 생깁니다. 당연하게도 한국말로 소음이라고 말을 하는데, 이게 청각적 소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어떠한 정보의 전달에 있어서 정보 전달자와 정보습득자 사이에서 생기는 괴리를 말합니다.
아무튼, 본인이 생각한 가락과 본인이 연주한 가락에 noise가 생깁니다. 모든 강사들이 동의할겁니다. 항상 본인이 같은 갠지갱을 치고 있진 않으니까요. 예를 들어 손을 다쳤다거나 뭐 컨디션이 안좋다거나 그런게 있겠네요. 그게 1번에 들어갈 noise입니다.
2번엔 뭐가 들어갈까요? 평소와 같은 컨디션, 로봇처럼 평소와 같은 궤적과 힘을 이용해 쳤더라도 악기가 다르면 다른소리가 납니다. '장구빨'이라는게 꽤나 중요하더라구요. 큰 장구에서는 큰 소리가 나고, 물먹은 장구에서는 낮은 소리가 납니다. 너무 당연한 이치지요.
실내에서 칠 때와 실외에서 칠 때 소리가 엄청 다릅니다. 아마 이 시국이 지나고 야외에서 쳐보면 느낄겁니다. 쇠소리는 잘 안들리게 되고 전체적으로 소리가 건조해집니다. 울림이 적어져요. 이게 3번 noise가 됩니다.
4번은 학생의 지식입니다. 같은 조건에서 같은 소리를 들어도 학생이 얼마나 알고 있느냐에 따라 인지하는 정보가 다른거지요. 드르닥을 모르는 1학년에게 드르닥과 기닥을 이용한 같은 가락을 들려줘도 구분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제 학생의 차례. 5번~8번을 통해 강사에게 자신의 가락을 들려줍니다.
이렇게 강사가 학생에게 알려주고 학생이 알아들었는지 확인하는 과정에서 8번 (혹은 그 이상의) noise가 발생합니다. 여기서 강사의 역할은 이 noise들을 최소화해서 본인이 알려주는 바를 잘 전달하고, noise로 인해 변화하지 못한 학생의 모습을 잘 캐치해서 적절한 feedback을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강사의 핵심역량 중 하나는 '일관성'입니다. 이 일관성은 학생의 입장에서 일관성이죠. 배우는 입장에서 일관성을 인식해야 발화자가 무엇을 말하는 지 파악할 수 있으니까요.
여기서 말하는 '(학생의 입장에서) 일관성을 가지는 요소들'을 저는 '모든 것'이라고 정의 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제가 배우는 입장에서 일관성을 가지는 요소'가 되겠네요. 아직은 저만의 유니버스니까요. :)
그러한 요소들이 무엇이 있을까요? 저한테는 그것이 '태'이고, '가락'이었습니다. 그 요소들이 제가 느끼는 필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걸 머리, 손, 발로 구분했고 머리에서는 시선을, 상체로는 무용을, 손으로는 가락을, 발로는 발걸음을 표현합니다. 이 모든 걸 가락보에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이제 이걸 어떻게 담느냐? 가 다들 궁금하실텐데, 천천히 설명해보겠습니다.
3) 가락보 와 4) 가능하다
(방금 위에서 말한 '손으로는 가락'을, 이라는 말을 설명하는 부분입니다.)
이제는 가락보에 손댈일이 별로 없지만, 한창 쓰던 때 양식은 아직 가지고 있습니다. 이 양식을 만들 때 몇가지를 염두해두고 만들었어요.
첫째. 가락보의 가로축(X축)은 시간이며, 이는 연속적이다. (박자)
이과생들 뒷목잡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네요. ㅎㅎ 당연히 이론적으로 완전히 연속으로 보자는 이야기가 아니고.
이 6가지 갠지갱을 모두 다 다른 갠지갱으로 보자는 겁니다. 이해가 되나요?
1번은 제가 보통 '완전히 펴서' 혹은 '정박에' 라고 표현하는 박자의 갠지갱이구요,
6번으로 갈 수록 '말아서', '밀어서' 치라고 표현하는 박자의 갠지갱입니다.
그러다보니 표 안쪽 공백을 최소화해서 글자가 들어갈 공간을 많이 만들어 놓았어요. 다양한 박을 표현할 수 있게.
둘째. 강약 표현을 안하는 거지 할 수 있다. (강약)
오선지도 악보입니다. 그 악보안에는 음과 박자만 들어있는 것이 아닌 위에 있는 여러 박자 외 기호들이 있죠. 정말 다양한 방법으로 음악을 표현합니다. 물론 전 아는게 별로 없습니다만. 가락보라고 못할 거 있을까요? 약속만 하면 충분히 넣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방금 쓰면서 생각났는데, 가끔 '너무 복잡해서 넣을 수 없다'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더랍니다. 사실 반박 안합니다. 못하는게 맞겠네요. 앞선 게시물에서 말했듯이, 제가 그냥 음악에 대한 이해가 짧기 때문에, 그러한 요소들을 이해하지 못해서 생각을 못했고, 가락보에 안넣어도 되고, 그래서 이 음악은 가락보에 다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르기때문이죠.
다만 저는, 오선지에 있는 기호들처럼 시도나 좀 해봤으면 하는 생각이 들어요. 서양음악이라고 느낌이라는게 없는것도 아니고, 그들도 프로페셔널 시장에서는 일대일로만 가르치고 하지만, 그들도 오선지 보고 초견치더랍니다. '국악은 달라서'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몇가지 제가 모르는 요소는 넣지 못하겠지만, 넣을 수 있는거 넣고 가락보로 만들어낼 수 있다면 악보로서 가치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특히 코로나로 대면 강습도 어려운 시기에 가락보 보고 독학이라도 할 수 있다면 그만한 대안도 없지 않을까 싶어요. 유튜브도 잘되있어서 상호보완도 될거구요. 우리가 보는 대부분의 가락보는 그걸 쓴 사람이 강사를 할 것이기 때문에 넣지 않는 요소가 대부분입니다. 저도 그렇구요. 독학이 아닌 이상 넣어서 읽게 하는 것보다 박자만 넣어놓고 나머진 입으로나 직접 치는걸로 알려주면 훨씬 효율적이잖아요. :)
아무튼, 가락보는 손으로 악기를 연주하는 것을 기록으로 남기는 매개중 하나인데 박자와 강약 정도만 넣어도 우리가 하는 음악의 대부분을 구성하지 않을까. 하는게 제 유니버스입니다 :) 그 외 요소는 저는 '일관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서 강사로서 가르칠 대상도 아니고, 학생으로서 배울 대상인지 확신하지 못하겠네요.
한시간정도 걸려서 쓰긴 했는데 이거 영 확실히 예전보다 글이 더 어렵게 써진 것 같아요. 하지만 지우고 다시 쓸 순없으니 남겨놓겠습니다. 반박 환영합니다. 1학년부터 절 모르시는 선배님들의 댓글과 비판 환영합니다 :) 이해가 안된다면 얘기해주세요. 더 쉬운 글로 수정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댓글 형의 유니버스.. 흥미롭군요 2편3편 연재 요망 ^0^
읽어보니 나중에 강사를 하게된다면 도움이 되겠네여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많이 참조하겠습니다
마블유니버스를 뛰어넘는 그의 유니버스....
세줄 요약 ㄱㄱㄱ
내용도 재밌는데 글도 잘 쓰셔서,, 완전 잘 읽었어요,, 다음편 👐🏻..
저는 아직 수강생이지만,,,,,,,,,,,,,,,,,,,,,,,,,,,,,,,,,,,,,,,,,,,,,,,,,,,,,,,,,,엄청난 유니버스 구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