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린지 페스티벌 공연 후기'
극단 본향 (Born Fragrance)의 사랑시리즈 제1탄 '사랑...그리고 개와 고양이'
‘연극,극장’이란 단어 Theatre는 그리스어 Theatron(지켜보는 장소)에서 유래한 것이다. 연극적 경험은 무대 위의 살아 있는 인물을 지켜보며 실제 삶이라는 무대 위에서 살아가는 나를 돌아볼 수 있게 해준다는 데 그 묘미가 있다. 극단 본향의 연극 ‘사랑...그리고 개와 고양이’ 은 무대 뒤 배경의 스크린에 비춰진 수많은 연인의 달달한 사랑 표현이 담긴 사진을 지켜보는 데서 시작된다.
사랑의 단꿈을 꾸는 듯한 연인들의 사진에 이어 이번에는 실제로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한 사람들의 인터뷰가 나왔다. ‘연애해서 좋은 점은?’, ‘결혼을 해서 좋은 점은?’ 이라는 질문 자막에 이어 ‘항상 내 편이 생겨서 좋아요’,‘매일 사랑하는 사람을 볼 수 있어서 행복해요’ 등과 같은 인터뷰가 영상으로 이어지자 다양한 연령층으로 객석을 메우고 있던 관객들은 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감상적인 사랑에 대한 판타지에 푹 빠져 넋을 잃고 스크린을 바라보는 별빛 총총 눈빛의 스무 살부터 서로 팔짱을 꼭 끼고 바라보는 젊은 연인들, 그리고 이제는 나와 상관 없는 듯한 일들이라는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말없이 굳어진 채 앉아 있는 중년의 어른들까지 반응은 가지각색이었다. ‘도대체 무슨 공연을 하려는 걸까?’라는 궁금증이 증폭될 무렵, 스크린의 영상은 꺼지고 무대 위에 네 명의 배우가 마치 사회자처럼 등장했다.
그들은 오늘 바로 이 공연에서 프로포즈하기로 한 남자 분이 고백을 받으실 여자 분을 찾고 있다고 말하며 그녀를 객석에서 무대 위로 초청했다. 고개도 잘 못 들고 긴장해서 손끝까지 바르르 떨린 상태로 수줍은 미소를 짓는 한 여자 분이 무대로 등장했을 때까지도 관객들은 이것이 실제 상황인 줄 알고 함께 소리를 지르고 기뻐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어서 무대 뒤 스크린에 한 남자의 프로포즈 영상이 나오고 뒤이어 무대 위로 그가 훈련된 발성과 몸짓으로 등장했을 때 ‘아, 여기서부터가 연극의 시작이구나!’ 라고 알아챌 수 있었다. 그렇게 연극 ‘사랑...그리고 개와 고양이’는 현실과 무대의 경계를 중첩시키며 시작되었다.
신혼부부 황개와 미양은 3년 간의 달콤한 연애 끝에 결혼에 골인한 3개월 차 신혼부부다. 그러나 이들의 현실은 화장실 변기 뚜껑을 올리느냐 내리느냐, 치약은 아래서부터 짜느냐 중간에서 잘라 쓰느냐 등의 사소한 문제들로 자주 다투게 된다.
그러나 연극 ‘사랑...그리고 개와 고양이’는 이것을 단순히 3년간의 로맨스 호르몬의 공급부재라는 문제로 다루기보다 단순한 성격 차이를 뛰어넘어 남녀 간의 기질 및 성향 차이로 인한 갈등으로 본다. TV를 틀고 야구를 보아도 같은 공간에 있으니까 함께 하는 거라고 여기는 남편 황개와는 달리, 내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공감해주며 있어야 함께 하는 거라고 여기는 아내 미양의 반응은 ‘함께 한다’라는 단어에 대한 남녀 간 인식 차이를 반영한다. 자신의 마음을 헤아려주지 않고 자신의 입장에서만 주장하는 황개와 심하게 다툰 어느 날, 미양은 무작정 집을 나온다. 그리고 공원 벤치에 혼자 앉아 손주들에게 읽어줄 그림책을 보고 있는 한 할머니를 만나게 된다. 우연히 남편으로 인한 미양의 슬픈 혼잣말을 듣게 된 할머니는 그녀를 위해 ‘사랑...그리고 개와 고양이’라는 제목의 동화를 읽어준다.
연극의 제목이기도 한 동화 ‘사랑... 그리고 개와 고양이’ 는 기분이 좋으면 고리를 올리는 개와 기분이 나쁘면 꼬리를 올리는 고양이가 같은 감정이라도 표현방법이 달라 앙숙이 된 이야기였다. 나지막하고도 구수한 목소리로 동화를 읽어주는 할머니의 내레이션을 배경으로 실제 남편 황개가 개로, 아내 미양이 고양이로 무대 위에 등장해 연기하였다. 실제 자신의 상황과 닮은 동화를 듣고 스스로를 돌아본 미양은 다시 집으로 향하고 미양이 집을 나간 동안 불안과 걱정 속에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 황개는 돌아온 아내를 사랑으로 맞아준다.
처음 서로 연애를 시작했을 당시의 추억을 떠올리는 가운데 나보다 상대방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고 행동하기로 한 이들의 일상은 변화된다. 연극의 마지막 장면은 첫 장면과 같은 ‘아침의 일상’ 이다. 그러나 이들은 볼 일을 보고 아내를 위해 꼭 변기를 내리는 남편과 그런 남편을 칭찬하고 세워주는 아내의 모습으로 조금씩 성숙하고 변화된 사랑의 모습을 보여준다.
직접 이 극을 쓰기도 한 연출 임영란 씨는 서로의 차이를 모르고 다른 사랑 표현 방법으로 오해와 갈등에 부딪치는 부부들이 상대방의 사랑의 언어를 이해하고 소통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사랑...그리고 개와 고양이’를 만들었다고 한다. 사랑과 삶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엿보이는 연출의 마음은 ‘삶이란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주어진 얼마간의 자유시간입니다’와 같은 첫 스크린 영상의 글귀에 직접적으로 담겨 있었다. 처음에는 스크린에 비춰진 연인들의 사랑에 대한 단꿈을, 이어서 끝없는 다툼 가운데 부딪치는 신혼 부부의 현실을, 그리고 결국 서로의 차이를 인식하고 이해하며 성숙한 사랑의 모습으로 빚어지는 과정을 지켜본 관객들은 극장을 빠져 나가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될 것 같다. 바래져 가는 현실의 사랑 앞에 답답해하다 체념하고 있었는지 아니면 나와 다른 그 사람의 차이를 이해하며 그 사람이 원하는 사랑의 표현으로 다가가기 위해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있었는지 자신의 삶의 무대 Theatre에서 지켜보게 되기를 (Theatron)...
( 사진 )▲ 연극 ‘사랑...그리고 개와 고양이’가 시작되기 전 무대 뒤 배경에 띄워진 연인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