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린>크리스마스 특집> 잘못은 신에게 있다

[아짱]

 [크리스마스 이벤트 참가 소설] 잘못은 신에게 있다.

 “엄마, 산타 할아버지는 언제 오시는 거야?”

 포근해 보이는 분홍빛이 감도는 어둡고 조용한 방에, 은빛 별빛들만이 무수히 쏟아지는 방에

서 아이의 목소리가 나직하게 방을 울리고 있었다. 슬픈 듯한 목소리가 방에 널리 퍼졌다. 아

이는 까맣고 긴 속눈썹을 깜빡이면서 커다란 흑청 빛 눈동자를 굴리며 이불을 덮어주고 있는

엄마를 바라보며 물었다. 산타 할아버지는 언제 오시는 거냐고- 

 그러자 엄마는 아이의 순진함이 귀여운지 볼을 살짝 꼬집으며 다정히 미소지었다. 그리고 아

이의 길고 까만 머리칼을, 구불거리는 머리칼을 매만지면서 입을 열었다.

 “리, 산타 할아버지는 말이야…내일 오시잖아. 왜냐하면 내일은 크리스마스이브이니까…그

런데 리가 어서 자지 않으면 산타 할아버지는 그냥 가실 거야. 선물도 안 주시고 말이지. 그러

니까 리가 어서 자야 착한 어린이란다?”

 엄마는 아이에게 이불을 덮어주며 아이의 보드라운 이마를 부드럽게 쓸었다. 그런데 아이를

향해 미소 짓는 엄마의 얼굴에는 옅은 어둠이 서려 있었다. 커튼이 열려 보이는 훤한 유리창

을 통해 쏟아져 오는 푸른 달빛이 엄마의 얼굴에 스며들어 더 서럽디 서럽게 보였다. 아이의

눈에는 서글프고 어두워 보이는 엄마가 안쓰러웠다. 항상 크리스마스이브, 크리스마스이브가

다가오면 저렇게 변하는 엄마의 얼굴, 항상 기쁘다고 미소 짓지만 그것은 다 거짓이라는 것

을, 아이를 위한 거짓말, 거짓 표정이라는 것을 이미 다 알고 있는 아이였다.

 그러나 아이는 살며시 미소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엄마, 그런데 내일은 크리스마스이브이지만 리의 생일이잖아! 그러니까 선물 꼭 사가지고

올 거지? 응? 엄마.”

 하고 말하는 아이의 목소리가 들떠 보이지만 살며시 떨렸다. 크리스마스이브는 아이의 생일

이었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의 전날에 아이는 태어났다. 결코 축복받지 못하는 탄생을……

 “그래, 엄마가 꼭 선물 사…올게…그러니 어서 자야지? 안 그러면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 안

들고 오신댔잖니.”

 아이의 대답을 들으며 엄마의 목소리가 살며시 떨렸다. 가느다란 실이 덜덜 떨리듯이. 엄마

의 검은 눈동자에 작은 물기가 어렸다.  그러나 엄마는 아이가 걱정할까봐 애써 웃으며 말했

다.

 “있잖아, 엄마. 리는 선물 같은 거 필요 없어.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 같은 거 안 가져 와도 돼.

그냥 한 가지 소원이 있어. 선물 대신에 소원 빌 거야…“

 아이의 목소리가 흔들리는 푸른 달빛처럼 흔들린다. 푸른 달빛은 창을 비집고 들어와 어두운

 바닥을 비춰준다. 달빛이 혼자 너울너울 춤춘다. 곧 아스라이 사라질 듯. 아이의 서러운 마음

을, 그 흑청 빛 눈동자에 새겨진 작지만, 소중한, 크지는 않으나 너무도 소중한 소원을 아는지

 달빛은 계속 너울 너울대며 춤을 추고 있었다.

 “무슨 소원?”

 이미 엄마는 아이가 무슨 소원을 빌지 예상하고 있었다. 매 해마다 아이가 말하던 말. 선물

같은 건 필요 없다는 아이의 말, 그저 소원 하나를 빌 거라고 말하던 아이의 눈동자를, 크리스

마스만 되면 슬피 반짝이던 아이의 눈을. 그녀는 애써 모른 척 물어주었다.

 “……아빠를 만나고 싶어.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까 하늘나라 가서 아빠 얼굴 보고 싶어. 산

타 할아버지는 무엇이든지 다 아시는 분이니까 내가 말 안 해도 들어주실 거야. 그런 것은 식

은 죽 먹기잖아. 그치, 엄마?”

 “…그래, 린. 알았으니까 어서 자야지? 잘 자렴, 린.”

 아빠의 얼굴, 소원은 그것이었다. 그냥 얼굴을 보고 싶다는 말. 그녀는 살짝 웃었다. 슬프게.

항상 소원은 아빠가 생겼으면 하는 거였는데 이번은 얼굴만 보고 싶은 것이 소원. 아이의 작

은 소원에, 그러나 절대 이루어지지 못할 소원을 들으며 그녀는 목구멍으로 쓰디 쓴 눈물을

꾸역 꾸역 삼켰다. 그리고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도. 어두워서 다행이었다. 어두워서 눈물이

보이지 않을 테니까.  마지막으로 그녀는 사랑스러운 딸의 보드라운 이마에 살포시 입맞춤한

뒤 문을 닫고 사라져갔다. 그나마 빛을 보내주던 문이 닫히자 방은 고요한 어둠만이 아스라이

 정적과 함께 남아있었다. 어둠이 홀로 남아 텅 빈 방을 비춰주었다. 어둠은 쓸쓸한 아이의 마

음을 아는 듯 쓸쓸히 방을 뒤덮었다. 아이의 하얀 얼굴을 비춰주던 푸른 별빛들도, 아이를 위

로하듯 흔들리던 푸른 별빛도, 푸른 달빛도 깔려오는 어둠에 묻히어 소리 없이 사라지고 있었

다. 아스라이.

 아무도 없는 텅 빈 방, 어둠만이 존재하는, 달빛조차 스며들지 못하는 방에서 아이의 슬프고

도 나직한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런데…엄마, 아빠는…나 안 예뻐해 줄 것 같아…그럴 것 같아…엄마.”

 슬쩍 돌아눕는 아이의 하얀 얼굴 위로 눈물이 얼굴선을 따라 살며시 흘러내렸다. 코를 지나

얼굴 옆을 곱게 흐르는 눈물은 또 다시 어둠을 비집고 살며시 들어온 푸른 달빛에 비치어 하

얗게 반짝였다.

 어느새 밤하늘은 흑청 빛으로 덮이어 어두웠다. 이미 시각은 자정이 넘은 지 오래였다. 그녀

는 거실에 있는 소파에 앉아 자정이 넘었는데도 자러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소파에 힘없이

앉아 고요한 밤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을 토해내고 있을 뿐.  밤하늘은 이미 흑청 빛으로 바다

로 뒤덮인 지 오래였고, 푸른 별들도 작지만 그 빛을 살며시 내뿜고 있었다. 그리고 달은 푸르

렀다. 달빛은 열려있는 창을 통해 쏟아져 왔고, 그녀의 하얗고 창백한 얼굴을 푸르게 비추었

다. 푸른 달빛이 그녀를 더 서글프게 만들었다. 차갑지만 따스한 달빛, 달빛은 그녀가 아는 사

람과 꼭 닮은 듯 했다. 아니, 닮았다. 그녀가 목숨 보다 사랑한 그를 쏘옥 빼닮았다. 그도 매우

차가웠고 냉랭하고 그리고…한 편으론 그녀에겐 차갑지만 따스하던 사람. 

 그녀는, 아니 카고메는 유리로 되어있는 테이블 위에 놓여진 신문 하나를 들었다. 5년 전의

낡은 신물을 펄럭이며 펼치자 일면을 장식하고 있는 사진과 기사가 보였다. 선명한 칼라로 되

어있는 사진에는 구불거리는 은빛 머리칼을 지닌 남자가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금발의 미인과 팔짱을 끼고 있었다. 그리고 굵은 글자로 되어있는 제목에는 셋쇼마루 , 카구라 양과 약

혼하다-라는 제목이 선명히 박혀져 있었다.

 카고메는 사진 속 웃고 있는 남자의 얼굴을 살며시 쓰다듬었다. 여전히 잘난 남자였다. 자신

을 버리고 떠난 매정한 남자. 얼굴은 여전히 희었다. 그리고 냉혹해 보이는 그레이 눈동자도

여전했다. 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랑. 사랑이라는 것. 그들을 이어주었던 유일한 끈인 사

랑이라는 감정. 7년 전 크리스마스이브, 그가 떠난 후 사랑이라는 유리구슬은 산산조각 나버

렸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그를 사랑하고 있었고, 잊지 못했다. 자신을 7년 전 그렇게 무참히도

버리고 떠나버린 남자를 잊지도 못하고 증오하지도 못하는 바보 같은 여자, 그것이 바로 그녀

였다. 웃고 있는 남자의 얼굴을 쓸며 그녀의 눈에 눈물이 살며시 맺혔다. 사랑해서…사랑해서

이 남자를 지우지 못했고, 너무 사랑해서 목숨보다도 더 사랑해 버려서 그의 분신을 지우지

못했다. 미치도록 사랑해서… 사랑해서…그를 닮은 아이를 지우지 못했다. 혹시라도 유일한

끈이 되어 그를 만날 수 있을까라는 작은 소망을 품으며, 결코 이루어지지 못할 소원을. 어두

운 밤하늘 박혀있는 푸른 별 하나가 살며시 어둠에 묻혔다. 묻혀가는 별빛 따라 그녀의 눈에

서 고운 눈물이 살며시 흘렀다.

 전부다 신의 잘못이었다. 그를 사랑하게 된 것도, 그를 잊지도 못하는 것도, 그를 미워하지도

못하는 것은…그리고 7년이나 지난 지금도 미치도록 그리워하는 것도, 심장이 아리고 아려오

는 것도 다 신의 잘못. 그녀의 잘못이 아니라고 그녀는 눈물을 흘렸다. 그래, 그를 미치도록

사랑하게 만든 건 모두 신에게 있었다. 애초에 잘못은 신에게 있었다. 아니, 잘못은 신에게 있

다.

 “있잖아, 행복해…?

셋쇼마루…나 버리고 행복하니…?…나 묻고 싶은 게 있어.

너, 나 사랑하기나 한 거니…나 버리고 정말 행복한 거야…?“

 그녀는 어두운 밤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 슬픈 목소리가 하늘을 살짝 울렸고, 어둠

에 사라지지 않은 푸른 달빛이 그녀를 위로 하듯 서러운 춤을 너울너울…빛이 지창을 뚫고 어

두운 거실을 비춘다.

 어느새 길고 긴 밤은 가고 투명한 아침이 찾아왔다. 어둠을 쫒아내고 찾아온 아침 햇살은 투

명하고 찬란했다. 그리고 그 날처럼 하늘은 새파랗다. 그를 떠나보낸 이브의 하늘처럼 새파랗

고 티 없이 맑은 하늘. 그래서 더 서러운 마음이 드는 하늘. 그녀는 창으로 하늘을 멍히 바라

보다, 살며시 한숨을 내쉬고 아직도 잊지 못한 자신이 바보 같다고 생각하며 잊어야지 한다.

 그녀는 애써 웃으며 아이의 옷을 매만졌다. 마지막으로 모자도 씌우고…

 “엄마, 저기 오늘 유치원 안 가는데 나 어떻게 해?”

 “유치원을 안 간다고 했니, 리?”

“으응, 오늘 크리스마스이브라고 해서 오늘은 특별 휴일이래. 나 집에 있을까?”

 “혼자 있겠다고? 린?”

 카고메가 되물었다.

 “으응, 엄마. 엄마도 있을 거잖아.”

 “…그건 안돼, 리. 오늘 엄마는 일하러 가야 해.”

 카고메는 들뜬 표정을 지으며 웃는 아이를 향해 말을 내던졌다. 그러자 순식간에 풀이 죽은

아이. 시무룩해진다.

 “…꼭 가야 해? 오늘은 이브잖아. 그리고 리의 생일이기도 한데!!

오늘 하루만 엄마랑 지내면 안 돼?”

 린은 커다란 흑청 빛 눈동자에 물을 달며 되물었다. 엄마가 자신과 크리스마스이브 겸 생일

을 꼭 보내주길 바랐었다. 매 해마다 엄마는 일해야 한다고 크리스마스이브를 유치원이나 키

쿄우 이모 아니면 산고 이모랑 보냈어야 했다. 아이의 입이 툭 튀어나온 것이 삐친 모양이었

다.

 “어쩔 수 없잖니, 리. 오늘만 산고 이모랑 보내렴. 알았지?”

 카고메는 울먹거리는 아이를 애써 달랬다. 어쩔 수 없었다. 일하지 않으면 내일 크리스마스

를 같이 보낼 수 없으니까. 벌어야 살 수 있으니까.

 “그냥, 그냥 오늘 일하러 가지마. 응? 엄마. 오늘 리 생일인데. 응?”

 린은 끝까지 엄마의 팔을 붙잡으며 가지마라고 재촉했다. 그러나 카고메는 달래려는 듯 웃으

며 사랑하는 딸 린의 길고 예쁜 머리칼을 매만졌다.

 “오늘 일하러 가야만 엄마가 내일 리랑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어. 이브도 중요하지만 크리

스마스 아침을 리 혼자 보낼 수는 없잖아? 그래서 어쩔 수 없어. 산고 이모가 엄마 대신이라고

생각해, 응?”

 울먹거리는 아이를 달래고, 카고메는 눈물을 손으로 닦아준 뒤 웃으며 전화를 걸었다. 산고

에게 돌봐줄 수 있냐고- 그러자 선뜻 산고는 돌봐주겠다며 당장 가겠다고 말했다. 그 뒤에서

산고 아줌마는 싫단 말야- 키쿄우이모가 좋아. 하며 린이 울고 있었다. 내심 엄마랑 떨어지는

 게 싫은 모양인지.

 “싫어, 산고 아줌마는 싫다니까? 그냥 키쿄우 이모가 좋아. 못생기고 성질 나쁜 아.줌.마.? 흐

아앙, 싫어!”

 그녀는 울며 떼쓰는 아이를 달래고는 아이의 작은 손을 이끌어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하늘

을 바라본다. 하늘은 여전히 새파랬다. 새파란 하늘 위로 찬란하고 투명한 아침 햇살이 온 대

지를 따스히 비추고 있었다. 그래, 하늘. 그와 헤어지던 날도 이토록 맑고 찬란하던 햇빛, 그

리고 새파란 하늘. 

 그녀가 그와의 추억을 생각하며 슬픔에 젖어 들려 할 때 린이 언제 울었다는 듯 활짝 웃으며

하늘이 파랗다며 노래를 부른다. 엄마! 내일 눈이 올까? 눈이 오면 좋겠다! 라고 말하면서 웃

었다. 그런 아이의 모습을 보고 카고메는 어느새 웃으며 산고와 만나던 곳으로 가라며 아이를

배웅한다. 아이는 빨간 망토를 걸치고, 빨간 모자를 쓰고 엄마에게 인사한다.

 “엄마, Merry Christmas!!"

 아이는 웃으며 손을 흔들면서 사라져갔다. 아이가 사라지자 카고메는 고개를 들어 파란 하늘

을 바라보았다. 눈부시도록 새파랗고 맑은 하늘을. 그와 헤어진 그 날처럼 맑기만 한 하늘을

원망스러운 듯, 그리운 듯이…

 그 날은 오늘처럼 맑은 날이었다. 7년 전 그 날이 지금과 다른 것이 하나 있다면 이미 하얀 눈

이 내려 소복소복 쌓였었다는 것 그것 하나뿐이었다. 그 날은 크리스마스이브였고, 그녀는 사

랑하는 자신의 연인과 팔짱을 끼고 걷고 있었다. 눈이 하얗게 쌓인 거리는 미끄러웠으나 지나

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중 가족도 있지만 연인들이 가장 많았다. 연인들은 다정히 서로 손

을 꼭 붙잡고 사랑을 속삭였다. 크리스마스이브를 즐기면서……

 그 수없이 많은 연인들 중 카고메와 셋쇼마루도 하나였다. 카고메는 웃으면서 셋쇼마루의 얼

굴을 바라다보았다. 셋쇼마루의 얼굴이 살짝 굳어있었지만 항상 그러는 그였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긴 그녀였다. 그녀는 살포시 웃으며 더욱더 그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오른

손은 아랫배를 쓰다듬고 있었다. 무언가 소중한 것이 있는지 소중하고 소중하게 보듬는 것 같

았다. 그녀는 언제 말할까-하고 가슴을 두근거리며 사랑하는 연인의 얼굴을 슬쩍 올려다보았

다. 키가 큰 그는 키가 작은 그녀가 고개를 쭉 내밀어야 겨우 얼굴이 보였다. 그녀가 생각해도

너무 엉큼하며 부끄러운 듯 해 아랫배를 만지다 그의 얼굴을 보기를 반복했다. 역시 똑바로

쳐다보기가 힘들었다. 그가 알면 어떻게 할까? 기뻐할까? 언젠가 우리 아이를 가지고 싶다고

했으니까 어쩌면 기뻐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좋아하며 얼굴이

벌게질 그의 모습을 상상하며 귀엽겠다-라고 생각하는 카고메의 귓가로 차갑지만 부드러운

연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뭐가 좋아서 그렇게 싱글벙글이지? 보기 안 좋다. 그만 웃어.”

 차디 찬 목소리. 소름이 끼칠 정도로 냉랭한 목소리. 평소에도 냉정하고 감정을 잘 안 드러내

는 그였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특히 그녀 앞에서는 차갑지만 속으론 부드러웠는데, 그녀는

이상한 생각을 하며 기분 탓이라고 고개를 내저었다. 결코 상상하는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어느새 시간이 지나 저녁이 되었다. 깜깜한 어둠이 새파란 하늘을 조금씩 엄습해 오며 붉은

노을이 아름답게 지고 있었다. 붉은 노을빛이 그녀의 얼굴에도 비치어 얼굴이 벌겠다. 그녀가

한참 노을 감상에 젖으며 아까 전 파란 하늘을 비교할 때였다. 그의 냉정한 목소리가 귀를 파

고들었다. 아니, 귀를 찢고 들어왔다.

 “……헤어지자.”

 다정히 노을을 감상하고 있던 때, 그가 그녀를 냉정히 외면하면서 아무렇게나 내던진 몇 마

디의 말. 그녀의 귀로는 앞의 말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귓가로 선명하게 들렸던 말은 바로

헤어지자는 그 네 마디. 어째서인 거지? 그의 말이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는데…어째서 그의

헤어지자는 그 말은 들린 걸까. 그녀는 믿을 수 없었다. 어제만 해도 사랑한다며 속삭이던 남

자, 자신을 안으며 사랑해, 사랑해-라고 외치던 남자. 그런 그를 목숨보다도 더 사랑하는 그

녀. 여자의 검은 눈동자가 흔들렸다. 마지막으로 지는 해가 흔들거리듯. 가슴이 불규칙적으로

위로 아래로 오르락내리락했고, 시야가 부옇게 흐려졌다. 눈물인 모양이었다. 앞이 혼미하며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보이는 것은 눈물을 그렁거리며 애처로워 보이는 그녀를 매정

하고 차갑게 바라보고 있는 그의 눈빛뿐이었다. 희미하고 흐리게 보였지만 그의 눈빛…칼끝

보다도 더 날카롭고 시렸다. 차가운 겨울바람보다도 더 시리고 아픈 눈빛. 네가 누군데? 너 누

구야? 하듯 무정히 바라보는, 그녀와 상관없다는 듯이 바라보는 그 눈빛에 그녀의 가슴이 아

렸다. 어느새 그 눈빛은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그녀의 심장에 내리 꽂혔다. 그녀는 심장이 있

는 왼쪽 가슴을 부여잡고, 다시 눈을 들어 믿지 못한다는 표정으로 바라다보았다.

 “뭐라고? 지…지금 뭐라고 했어, 셋쇼마루?”

 그녀는 믿지 못하겠다는 듯 그를 향해 물었다. 그리고 그가 장난이야-놀랐어? 하고 다정히

안아주길 간절히 바랐다. 이루어지지 못할 소원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그래도…

 “헤어지자고 했다. 설마 못 헤어지겠다는 거냐.”

 그의 말, 헤어지자는 말. 역시 거짓말이 아니었다. 만우절도 아닌데-왜 거짓말을 하는 거지라

고 믿고 싶었다.

 “쇼이, 쇼이 오늘 만우절 아니야. 그러니까 장난치지 마. 그러면 나 너무 아픈 걸. 여기가 너

무 아프다구. 응?”

 그녀는 그의 커다란 손을 잡아 자신의 가슴, 심장이 있는 곳에 대었다. 그러나 그는 손을 홱

뿌리치며 하지 마! 하며 거칠게 내뱉었다. 그리고 헤어지자고 말한다.

 “거짓말 따위가 아냐. 헤어지자는 거다. 질렸어. 이제 그만 우리 끝내자.”

 충분히 아픈 데…너무 아픈 데…여기가 쿡쿡 찌르고 너무 아픈 데…그는 비수가 될 말만을,

상처가 될 말만을 골라서 내뱉었다. 어쩌면 저렇게 상처가 되고 아픈 말만을 골라서 하는 것

인지. 아파서 죽을 정도로 아파서 널 미워하라는 뜻? 그런 것일까. 그가 날린 말이 날카로운

비수 되어 심장을 쑤신다. 아프다. 너무 아프다. 시야가 흐릿하다. 눈을 감으면 금방이라도 눈

물이 주륵 하고 흐를 것 같았다. 울면 안 돼- 울면 안돼는 거야…울면 그가 날 무시하겠지…그

리고 그냥 가버리겠지…강하게…굳세게 버텨야 해. 울면 안돼. 나약해지면 안돼는 거야…하고

 그녀는 생각했고, 입술을 질끈 깨물며 끝까지 눈물 같은 건 흘러내리려 하지 않았다. 눈을 감

으면 눈물이 흐를 테니까.

 “…하, 하지만 나…이미 홀…”

 “그래서? 내가 널 안아서 순결을 빼앗아서? 널 책임져야 한다는 말을 하려고? 아니면 네가

내 아이라도 가져서 못 헤어져, 책임이라도 져 달라는 건가? 그런 건가?”

 어쩌면 상처가 될 말만을 해대는 걸까. 어쩌면 저렇게 비수가 될 말만을 골라서 가슴을 쿡쿡

찔러대는 걸까. 너무 매정하고 차디 찬 그의 말에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살며시 흘러내렸다.

결코 울지 않을 거라고 다짐하면서 입술을 깨물며 침착하려던 그녀는 결국 그의 가시 같은 말

한 마디에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그가 그렇게 냉정한 사람일 줄은 몰랐었다. 그녀는 휘청거

리며 털썩 차가운 땅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녀는 차가운 땅바닥에 주저앉으면서도 아랫

배를 쓰다듬었다. 혹시라도 이 아이 잘못 될까봐…눈물지으면서…그는 멍한 표정으로 주저앉

은 그녀를 일으켜 부축할 생각은커녕 차가운 비소를 흘리며 다시는 만나지 않길 바란다며, 사

랑만으로 살기에는 어리석다고 하면서 사라져갔다. 홀로 남은 그녀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눈

물만 흘릴 뿐이었다. 하늘도 그런 마음을 아는 듯, 하늘에서는 하얀 눈이 또 다시 소복소복 내

리기 시작했다. 차가운 눈들이 얼어져 가는 그녀의 외로운 마음속에 쌓여서 젖어들었다. 아픈

그녀의 가슴처럼…마음처럼…

 ‘항상 생각하면 눈물나겠지. 생각하면 가슴이 아려올 텐데. 눈물이 날 텐데…이제 이 아이 밖

에 없는 걸까. 그와 나의 유일한 끈. 이 아이 낳아야 하는 걸까…?’

 이미 짙게 변한 하늘에서 눈이 계속 내려왔다. 그녀의 가슴 속 쌓여가는 슬픔들처럼 눈도 같

이 쌓이고 있었다.

 파란 색들로 가득 찬 방, 한 남자가 헉헉- 대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의 회색 머리칼에

는 축축한 진땀으로 축 젖어있었고, 그의 하얀 얼굴도 땀에 절어있었다. 그의 하얀 얼굴은 더

욱더 해쓱하게 보였다. 안 좋은 꿈을 꾸었는지 그의 얼굴에서 식은 땀 한 방울이 주륵 흘러내

렸다. 그는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며 훅 훅 하고 숨을 쉬어댔다. 그리고 아려오는 가슴을 탁탁

두드렸다. 여전히 아팠다. 항상 그 꿈을 꾸고 나면 아팠다. 가슴을 날카로운 칼끝으로 헤집어

놓는 듯 아팠다. 심장을 칼로 후벼 파는 듯이 아렸다.

 그는 결코 잊을 수 없었다. 아니, 잊혀지지 않았다. 꿈에서 나오던 카고메의 얼굴, 눈물짓던

 그 얼굴. 끝까지 눈물을 참으며 강한 척 하던 그녀에게 빨리 떨어지길 바라며 내뱉은 말. 그

 말에 와르르 무너지던 그녀. 그리고 흘러내리던 눈물. 그 얼굴을 결코, 그는 결코 잊을 수 없

었다. 아니 잊혀지지 않았다. 이미 7년이나 지났는데도 그는 자신이 무참히도 버리고 간 그녀

를 남 몰래 그리웠다. 현실을 생각하면서-성공을 위해 버리고 간 여자. 카고메 .... 7년 전 크

리스마스이브 날 버린 그의 여자였던 여자. 그 눈물짓던 표정, 멍해진 검은 눈빛이 그의 뇌리

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깊게 뿌리박아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선명해지기만 했다.

 또 다시 가슴 한 쪽이 아려왔다.  밝게 웃던 표정, 그리고 자신이 만든 그 슬픈 표정, 처음 보

던 허망하고 멍한 그녀의 표정도 그가 다 만들어낸 것이었다. 그런 표정을 짓게 하고 그 가슴

에 멍들게 한 것도 다 그였다. 버리고 온 주제에 무참히도 버리고, 상처 주고 아프게 하고-그

같은 놈을 사랑하지 못하게-그만 정 떨어지라고 지껄인 말들. 그게 지금 와서 그렇게 후회스

러울 줄 몰랐다. 그렇게 버리고 상처도 주었으면서 이제 와서 다시 사랑해-라고 하는 건…위

선자!!

 “제길!” 그의 눈에서 눈물이 살짝 흘렀다.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 위는 알몸인 채로 거실로 나

와 냉장고를 열었다. 그리고 보드카를 꺼내어 컵에 따르지도 않고 병 채로 벌컥벌컥 매셔댔

다. 쓰디 쓴 보드카가, 목구멍을 타게 하듯이 내려가는데도 쓰지 않았다. 더욱더 정신은 또렷

해지고 눈물짓던 카고메의 얼굴만이 그의 시야에서 어른거릴 뿐이었다.

 “제기랄!! 젠장!!”

 그는 소리를 지르며 들고 있던 보드카 병을 던져버렸다. 던져진 보드카 병이 와장창 깨지며

보드카가 줄줄 거실바닥에 흘러내렸다. 그는 작게 욕설을 내뱉고 달력을 보았다.

 “오늘이…크리스마스이브인가…”

 그의 목소리가 살며시 떨렸다. 제길-하고 내뱉은 후 그의 방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전화 벨소

리가 시끄럽게 그의 귓가를 울렸다. 그러자 그는 신경질을 내면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하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짜증과 피곤함이 잔뜩 어려 있었다.

 “아, 자기야? 쇼이, 나야. 뭐해? 오늘 이브인데 우리 데이트 하자? 응?”

 전화를 건 사람은 바로 그의 약혼녀인 카구라였다. 그가 사랑이 아닌 현실을 바라보며 약혼

한 여자, 돈 때문에 결혼하려는 여자, 카구라. 결코 사랑하지도 좋아하지도 않는 여자. 그는

카구라의 전화에 더욱더 인상을 찡그리며 왜? 하고 퉁명스레 물었다.

 “왜냐고? 쇼이,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브잖아. 그래서 데이트하자는 건데. 으응? 약혼녀 말 좀

들어.”
  안 그래도 아침 그녀의 꿈으로 짜증이 난 셋쇼마루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가슴이 아팠던 거

겠지만 사랑하면서도 만날 수 없음이, 답답함이 짜증나게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미안하지만 오늘 결제할 서류가 산더미야. 미안하지만 데이트는 무리야. 미안하군, 아르고

양.”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브잖아! 바쁘다니? 쇼이? 너무 하잖아!!”

 셋쇼마루가 든 수화기 너머로 너무 하다며 울먹이는 카구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미안하다고 했잖아. 나 바쁘니까 끊는다. 크리스마스 잘 보내라.”

 “아, 내일은? 자기야- 내일은 어때? 응?”

 “내일도 마찬가지야. 혼자 잘 보내라구.”

 그는 자기 할 말만 딱 하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후우-하고 그는 한숨을 폭 쉬었다. 7년 전

괜히 물질만을 보고 그녀를 버렸나 싶어서 괜스레 후회되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결

혼했을까? 아직도 자신을 잊지 않았을까?

 그때 또 전화 벨소리가 요란스레 울렸다. 그는 귀를 틀어막으며 수화기를 팍 들으며 지껄였

다.

 “바쁘다고 했지!! 오늘 처리할 서류가 산더미라고 몇 번을 말해! 네가 어린 애냐? 카구라 아

르고 양! 전화 하지 말라고 몇 번을 말했냐고!!”

 그가 시끄럽게 지껄일 때, 수화기 속 목소리가 침묵하다가 말했다.

 “……이봐, 선배. 나 카구라 아니거든? 앞에 그 여자가 전화했나 본데 상대방 확인이나 하고

소리를 지르든 말든 하시지? 응? 아무튼 쯧쯧쯧…”

 전화를 한 것은 카구라가 아닌 산고였다. 산고, 그녀는 카고메와 셋쇼마루를 알고 있으며, 물

론 그 둘이 예전 연인 사이라는 것은 절대로 모르지만 남자와도 같은 털털함으로 셋쇼마루와

꽤 가까이 지내는 사람 중 하나였다.

 “웬 일이냐.네가 전화를 다 하고 말야.”

 셋쇼마루는 전화한 상대방이 그 귀찮은 카구라가 아닌 아끼는 후배임을 알고 퉁명스럽지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수화기 너머로 산고의 목소리가 울렸다.

 “있잖아. 내가 아는 선배의 사정으로 아이 하나를 돌보고 있는데. 그만 나 급한 일이 생겨버

렸걸랑? 저기…서, 선배. 선배가 아이 싫어하는 거 알지만 부탁할 사람이 선배밖에 없어. 하하

하. 부탁 좀 해.”

 그는 그녀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경악했다. 미쳤냐고!! 날뛰었다.

 “미, 미쳤냐? 너, 너 내가 아이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알면서 나한테 맡아달라고? 안 돼!! 탁아

소 보내던지 하면 되잖아!”

 역시 경악하는 군-하고 수화기 속 그녀가 중얼거렸다. 그녀는 다시 어쩔 수 없다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탁아소라니- 안 돼. 위험하다고. 애 집에 가도 애 엄마가 일하러 가서 혼자라고. 내가 보살

펴 줄려고 해도 일이 생겨서 안 되고. 그리고 다른 선배들에게도 다 연락해봤는데 안된다잖

아.”

 “너 친구는? 얌마, 너 친구 없냐.”

 “친구? 응. 비이랑 테오도라한테도 연락을 했는데 데이트 있어서 안 된 다잖아. 좀 돌봐줘라.

언젠가 선배가 내 소원 하나 꼭 들어준다 하지 않았던가? 사나이의 목숨을 걸고 도와준다고

했잖아. 응? 지켜! 지켜라구!”

 “갑자기 그거랑 이거랑 무슨 상관이지? 미안하지만 나 그런 아이 돌봐줄 수 없어. 그러니까

다른 데 알아보던지 해.”

 그는 그 특유의 냉정함을 담아 내뱉었다. 수화기 너머로 아이의 우는 목소리가 얼핏 들린 것

같기도 하다.

 “미안하지만 이미 선배 집 앞이야. 그리고 안 들어주면 선배 비밀 폭로할지도 난 모른다?”

 “뭐? 벌써 집 앞이라고?”

 “벌써가 아니지. 선배 오피스텔 바로 코앞에서 전화 걸었걸랑. 옆에서 애가 참 쫀쫀한 아저씨

라고 선배 욕한다? 킥킥. 어서 문이나 열어!!”

“……”

 결국 그는 후우-하고 한숨을 쉰 다음, 이마를 손으로 짚으며 문을 열어주었다. 덜컥 문이 열

리자 싱긋 웃고 있는 산고와 작고 귀여운 꼬마 하나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후우-졌다. 졌어…아무튼 네 똥고집에 당할 사람이 없다, 없어.”

 셋쇼마루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푹푹 쉬며 말하자 산고는 얄밉게 웃으며 인생을 다 그런 거

야-하고 등을 토닥거렸다. 그러자 그는 병 주고 약 주는 거냐고 하며 그녀를 못마땅한 눈빛으

로 노려보았다. 그래도 밉지는 않은 모양인지 그만 웃어버렸다. 오랜만에 찾아온 유쾌함, 산

고가 와서 유쾌하고 덕분에 조금은 그녀를 잊을 수, 아니 가슴 한 쪽에 묻어둘 수 있어 기분이

좋다. 산고는 유일하게 그의 본모습을 볼 수 있는, 허물없이 대할 수 있는 상대였다.

 “잘 부탁할게. 아이는 지금이 오전 11시니까 아이 엄마가 저녁 6시 즈음에 데리러 올 거야.

미안하지만 수고 좀 해줘, 선배. 리, 리도 저 아저씨 말씀 잘 듣고 있어야 한다?”

 “걱정 마, 산고 아줌마. 내가 어린 애야?”

 “얘가 아줌마 아니랬지!! 나 아직 결혼도 안한 22살 꽃띠 처녀라고!!”

 “꽃띠 처녀 좋아하시네. 꽃띠 아니라 돼지 띠 아냐? 아줌마 근데 일하러 간다고 하지 않았

어?”

“잘 들어야 한다? 알았지, 리?”

 산고는 어린 린을 두고 가는 것이 슬픈지, 아니면 걱정이 되는지 푸른 눈에 이슬이 살짝 맺혔

다. 아이를 돌보려 했으나 갑자기 걸려온 전화에서 급한 일이 있으니 회사에 나오라는 말. 회

사에 아이를 데리고 갈수도 없는 일이었다. 산고는 린의 검은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잘 지내라

고 말한 후, 셋쇼마루에게  부탁한다고 말한 후에  문을 열어 나가려 했다. 그러다 산고는 고

개를 빼꼼 내밀어 말했다.

 “리! Merry Christmas!! 아, 선배도 뭐 열심히 잘 보내요. 쿡, 선배도 Merry Christmas!! 그

나마 봐준 거라고요!”

 산고는 크게 외친 후 또각 또각 경쾌한 구두 소리를 내며 사라져갔다. 그러자 그 거실에는 셋

쇼마루와 어린 린만이 남았다. 아직도 린은 어색해 하며 현관에 뻘춤이 서 있었고, 셋쇼마루

는 가운 하나만을 걸친 채 거만하고 뚱한 표정으로 아이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귀찮다는 듯

이.

 “들어와, 꼬마. 언제까지 거기 서 있을 참이지?”

 셋쇼마루는 아직도 현관에 서 있는 아이를 향해 말을 내뱉었다. 말은 퉁명스러웠지만 어서

들어오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아이는 위에는 옷도 제대로 입지도 않고,  팔짱을 낀 채 거만하

게 바라보는 셋쇼마루의 모습이 부담스러웠다. 차갑다. 이제 겨우 7살 먹은 꼬마가 느낀 쇼이

의 첫 인상은 쫀쫀해 보인다, 냉정해 보인다- 그것이었다.

 “들어가도 돼요, 아저씨?”

 린이 조심스레 물었다. 추워서 입이 덜덜 떨려 제대로 말이 안 나왔다.

 “싫지만 어쩔 수 없지. 맡겠다고 했으니 어서 들어와. 네가 감기라도 걸리면 난 산고에게 맞

아죽는 다고!”

 “네, 그러면 실례합니다.”

 셋쇼마루는 뭐? 실례한다고? 아이의 말에 기가 차 웃음이 터져 나오는 걸 참지 못하고 쿡쿡

댔다.

 “너 몇 살이냐? 응?”

 “나요? 7살인데요. 아저씨는요?”

 “뭐? 7살? 7살이 왜 그렇게 늙은 거냐.”

 셋쇼마루는 이상함을 느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절대 냉정과 이성을 잃지 않는 그가 한낱

이런 꼬마에게 허점을 드러내 보이고 하하하-웃어대다니 참 기묘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까

만 머리칼에-흑청 빛 눈동자는 꼭 누구를 닮았다. 그가 아는 사람을. 낯설지 않았다. 그 짓궂

은 미소는 그의 희미한 기억 속 한 사람을 연상케 했다.

 아이가 살며시 거실로 들어오자 셋쇼마루는 아이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아이는 길고 구

불구불거리는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검은 색이었다. 그녀처럼. 그러나 머리칼

은 그녀보다 더 구불거렸다. 그녀가 연하게 구불거리던 머리칼이라면 이 아이는 자신과 똑같

은 머릿결이었다. 그리고 얼굴은 맑고 희었고, 길고 까만 속눈썹이 위 아래로 깜빡였다. 그리

고 눈동자는 검은 색도 아닌, 흑청 빛이었다. 밤하늘을 닮은 듯한 오묘하고 기묘한 눈동자. 그

리고 분홍 빛 입술. 닮았다. 아이를 바라본 순간 느낀 것은 7년 동안 잊지 못하는 그녀를 닮았

다는 것, 그것 하나를 알자 심장이 두근거렸다. 전체에 빨간 망토를 걸치고 빨간 스커트, 그리

고 빨간 모자를 쓴 아이. 빨간 색으로 도배를 했다.

 셋쇼마루는 아이를 슬쩍 보더니 입을 삐죽였다.

 “이름이 뭐냐, 너.”

 “제 이름을 묻기 전에 아저씨가 먼저 밝히셔야죠.”

 “…뭐…? 당돌하군.”

“그런 말 자주 들어요. 후후.”

“어이 꼬마, 내 이름은 셋쇼마루 ...다. 그리고 27살이지. 그러니까 아저씨라고 부르지 마.

나 아직 결혼도 안 한 몸이라고!!“

 셋쇼마루가 그답지 않게 씩씩거리며 소리를 질렀다. 어린 아이를 상대로.

 “그러면 오빠라고 부를까요? 너라고 부를까요?”

 하자 그는 미쳤냐! 하고 얼굴이 벌게졌다.

 “봐요. 오빠라고 하기엔 너무 나이 차가 나고, 너라고 하기에도 그렇고.

댁과 나는 나이 차가 20살이나 난다구요. 그러니까 그냥 아저씨라 부를래요. Mr.쇼이라고 부

르는 건 이상해서요.“

 “마음대로 해라. 네 마음대로 해. 아저씨라 부르든 말든. 콩으로 메주를 쑤든 말든.”

 “아저씨 참 유치하다. 어른 맞아요?”

 린은 어린 아이인 자신을 상대로 한없이 망가지고 유치해지는 이 인간이 아까 전 산고 아줌

마 앞에서 카리스마 뿜던 인간이 맞아? 하고 의아해 했다.

 “뭐? 꼬마가 건방지게…후우, 피곤해.”

 건방지고 당돌한 린의 말에 그는 소파에 몸을 던지고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뭔가가 생각난 듯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외쳤다.

 “이봐! 꼬마. 내가 이름을 밝혔으니 너도 이름을 말해야지! 하마터면 깜빡 할 뻔 했잖아.”

 “뭐라구요? 갑자기 한 다는 말이…진짜 어른일까? 뭐, 내 이름은 린이에요.”

 린은 입을 삐죽이며 정말 어른 맞을까라고 생각했다.

 “린? 리가 아니라?”

 셋쇼마루는 아까 전 산고가 리, 린고 하기에 이름이 리인가 했는데 린이라. 그리고 린이라는

 이름, 언젠가 그가 그녀에게 들은 이름이었다. 7년 전 그녀가 웃으면서 언젠가 너의 아이를

가지면 아이 이름을 라일락이라고 짓고 싶다는 말.

 “쇼이, 나 딸 낳으면 라일락꽃으로 지을 거야.”

 “뭐? 라일락이라고 짓게? 그건 좀 그렇지 않아? 하하.”

 “라일락꽃이긴 하지만 프랑스 어로 린이 라일락꽃이래. 그래서 난 린이고 짓고 싶어. 라일락

꽃의 꽃말이 첫 맹세, 첫사랑이라잖아.”

 하고 그녀가 말했더랬다. 그리고 자신이 웃으며 아들이면 어쩌게? 하자 음 어쩌지? 하며 정

말 곤란해 하던 귀엽고 순진한 그녀. 사랑하던 사람. 잊혀지지 않는 그의 연인. 아니, 평생 그

의 머릿속, 가슴 깊은 곳에서 낙인처럼 찍힐 이름 카고메 ..., 사랑하는 연인의 얼굴. 아마도 이

 깊은 상처의 흔적, 상흔은 죽을 때까지, 평생 그를 따라다니며 괴롭힐 상처였다. 꿈속에서도

그리워하던 연인. 그는  갑자기 그 추억을 생각하자 가슴이 찌르르했다. 머리가 깨질 듯 아프

다. 또 눈물이 나려는 듯 눈가가 시려왔다. 익숙해져야 하는데. 벌써 7년이나 지났는데 왜 잊

지 못하는 걸까. 그래, 우리 헤어지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널 닮은 딸을 낳아 린이라고 지었을

지도-라고 그는 생각이 들었다. 린, 우연인 걸까. 이름이 린이라. 이 세상에 카고메처럼 귀엽

고 순진한 여자가 또 있었나.

 “아저씨? 왜 그래요? 명해가지고.”

 린은 멍해 있는 셋쇼마루를 향해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그는 눈을 뜨며 이마를 짚었다.

 “아-리가 이름이 아니었나? 애칭인가 보지?”

 “네, 아저씨. 내 애칭이 리에요. 엄마도, 이모도 산고 아줌마도 리, 리-하고 부르는 걸요.

그런데 아저씨는 오늘 크리스마스이브인데 혼자에요?”

 “그, 그게…”

 그는 갑자기 당황스러웠다. 같이 지낼 사람은 있었지만 자신이 거부한 것이었다. 결코 혼자

긴 하지만 자신의 뜻. 그런데 놀림 받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엄습했다.

“에에? 그렇구나! 설마 했는데 혼자였구나? 아저씨 친구 없어요? 아, 산고 아줌마가 있었죠?

그런데 산고 아줌마는 후배잖아요. 애인도 없어요?”

 “뭔 애가 그렇게 쫑알쫑알대냐? 엉? 애인 있다! 됐냐? 그리고 내가 바빠서 그런 거지. 나는

바빠서 크리스마스이브 같은 날에 놀 여유 같은 건 없다구! 꼬마, 내가 너 같은 유치원생처럼

만날 노는 줄 아냐? 그럼 너는 뭐 때문에 오늘 같은 날 이렇게 청승이냐?”

 셋쇼마루가 소리를 지르자 린의 눈에 눈물이 살짝 고였다. 오늘 같은 날, 왜 그러냐고. 너 왜

이런 데 맡겨져서 이브를 보내는 데? 하고 들렸다. 적어도 린의 귀에는.

 “…엄마가 일하러 가서…그래서…”

 린의 커다란 흑청 빛 눈에 말간 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작은 코를 연신 훌쩍였고, 눈은 어느

새 빨개졌고 말간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아이의 작은 몸은 심하게 떨려왔고, 눈동자가 아린

듯 자꾸 눈을 비벼댄다. 그리고 눈물 하나가 아이의 뺨을 타고 흐르고, 눈물을 훔치자 손등에

하얀 눈물 자욱이 투욱  투욱 묻어난다. 아이의 코끝이 빨개졌고, 그 고운 흑청 빛 눈에서는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흘렀다. 그가 급하게 아이의 볼에 흐르는 눈물을 손가락으로 닦아주었

지만 이미 엎질러진 눈물이었다. 아이의 상처를 건드린 것이었다. 그는 몰랐겠지만 아이는 한

번도 제대로 된 생일을, 크리스마스를 엄마와 보낸 적이 없었다. 적어도 이브 날은 그랬었다.

크리스마스 날은 즐거웠지만, 그보다 더 소중한 생일이자 이브는 엄마와 제대로 보낸 적이 없

었다. 항상 비이 이모나 테오도라 이모, 아니면 산고 아줌마랑 보냈어야 했다. 생일날에, 아이

가 그렇게 좋아하는, 일 년을 꼬박 기다리며 오길 바라는 아이의 생일을 그렇게 아이는 해마

다 쓸쓸하고 외롭게 보냈었으니까. 해맑게 웃으며 짓궂은 미소를 짓는 것도, 장난을 치는 것

도 다 애써 강한 척 하려는 아이의 마음, 울지 않으려는 아이의 고집, 혼자만의 몸부림이었다.

 “꼬마, 뭐 그런 걸로 울고 그러냐? 응? 울지 마. 산고 고 마귀할멈이 알면 나 죽는데도? 아저

씨 죽으면 좋냐?”

 그는 린의 등을 토닥이며 아이를 달래었다. 계속 뚝뚝 흐르는 눈물을 손으로 연신 훔쳐주면

서.
 사실 산고에게 혼난 다는 것이 두려운 게 아니었다. 그 무엇보다 아이의 눈물이 이상하게 저

렸다. 꼭 그의 살덩이들이 떨어지듯, 그가 피를 흘리는 것처럼 아팠다. 아이의 서러운 눈물,

얼굴을 보며 우는 아이보다 그가 더 저리고 아팠다. 가슴이 찌르르하다. 안아주고 싶었다. 그

녀를 꼭 닮은 듯한 아이가 사랑스러워 미치겠고, 우는 게 마음이 아팠다. 그는 아이를 향해 살

며시 안아주었다. 커다란 두 팔을 벌려 아이를 보듬어 주자 울던 아이는 놀라 눈이 동그래졌

고, 잠시 그러다 눈물을 흘리며 그의 품에 포옥 안겼다. 마치 아빠와 딸처럼. 이 순간만큼은

린에게 그가 아빠 같았다. 처음으로 어른 남자의 품에 안겨보는 린은 그때 느꼈다. 만약 아빠

가 살아계신다면, 아니 아빠가 있다면 나를 이렇게 안아주시겠지. 이렇게 소중히 보듬고, 그

리고 따뜻할 거야. 정말 엄마만큼 따뜻할 거야. -그 와중 그런 생각이 들며 린의 눈에 눈물이

멎어갔다.

 그는 아이의 울음이 줄어들자 슬쩍 안도의 웃음을 지었다. 왜 안도를 한 걸까. 이 아이는 자

신과 전혀 상관이 없는데. 그는 아이의 작은 등을 토닥이며 등을 부드럽게 쓸어주었다. 그리

고 퉁명스럽고 차가운 목소리가 아닌 따스히 속삭였다.

 “아저씨가 미안해서 말인데. 아저씨랑 기분 전환이나 할래? 오늘이 크리스마스이브인데-이

렇게 집 안에 틇혀막혀 있는 건 궁상맞아 보지 않냐. 응? 어때, 꼬마?”

 “아저씨! 자꾸 꼬마라 부를 거예요? 이렇게 아리따운 숙녀에게 꼬마라니 정말 그런 말 혼례

라고요!”

 “꼬마, 아니 리. 실례야. 혼례가 아니라. 쿡쿡.”

 “에이씨. 실수할 수도 있지 너무 해~흥흥. 간다는 거 취소할까봐?”

 “취소해? 그래봤자 가고 싶은 건 너 아니야?”

 그는 아이를 번쩍 끌어안으며 얼굴을 맞대며 장난스레 속삭였다. 그러자 아이의 얼굴이 벌게

지며 볼이 부풀었다. 그러면서도 살짝 웃는 걸 보니 그리 싫지 만은 않은 가 보다.

 린의 눈에 아저씨의 얼굴, 셋쇼마루의 얼굴이 잘 보였다. 은사의 실 같은 은빛 머리칼, 구불

거리는 머리칼이 자신과 닮았다고 느꼈다.

 “자, 이만 갈까? 어디로 갈까? 꼬마 아가씨?”

 한 바탕 그의 유쾌한 목소리가, 웃음소리가 널리 퍼지고 있었다.

  “아저씨? 저거 사줘요~”

 어느새 그렇게 놀다 보니 날이 저물어 하늘이 어둑어둑해졌다. 그리고 그는 괜히 아이에게

밖에 나가자-하고 이야기를 꺼냈나 하고 그가 지금에서야 후회하고 있었다. 아이는 방긋방긋

웃으며 선물을 사달라고 했고, 눈에 띄는 예쁜 것만 보면 다 가지려고 졸라댔다. 마치 그는 딸

하나 가진 아빠 같은 기분이 들기 까지 했다. 조금 짜증이 났지만 귀엽고 기분도 괜찮았다.

 아이는 갑자기 그의 손을 잡아 끌더니 아이스크림을 파는 곳에 끌고 갔다. 그러더니 오늘은

크리스마스 특별로 싸게 준데요-하며 비싼 것들만 골라 시키는 것이 아닌가.

 “아저씨-사줘요~”

 그는 지갑이 텅텅 비겠다-라고 생각하며 한숨을 쉰 디, 돈을 지불했다. 그러자 아이는 자기

얼굴 길이만한 아이스크림을 들고서 헤헤헤- 거리며 엄청 좋아했다.

 “어이 꼬마, 그렇게 좋아? 그렇게 맛있어? 아저씨도 한 입 먹어보자.”

 하고 그가 아이스크림을 뺏어 먹으려 하자 린은 싫어-하면서 아이스크림에 자기 침을 막 묻

혔다. 못 먹게 하려고 말이다. 그리고 메롱- 메롱 약 오르지? 하는 뜻으로 혀를 샐쭉 내밀었

다.

 “아이구, 치사해서 안 먹는다. 안 먹어. 그렇게 못되게 굴면 나중에 천국 안 가고 지옥 간다?”

 그는 아이를 놀리려는 뜻으로 눈을 가늘게 뜨며 짓궂게 속삭였다.

 “나는 안 갈 거예요. 아저씨 같은 나쁜 어른이라면 몰라두, 나는 영혼이 아주우 맑은 어린 아

이라서 엄마가 지옥에 못 간다고 했다구요~ 속일 걸 속여야죠. 메에~”

 아이는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베에-하며 혀를 내밀며 그를 놀려댈 뿐이었다. 아까 운 것은 다

잊었나본지.

 아이는 아이스크림을 혀로 하나 ,하나 핱으며 먹고 있었다. 혀끝으로 긴 아이스크림을 먹어

댔다. 그 모습에 그의 눈이, 가슴이 시려왔다. 왜지? 왜- 저 아이는 그녀를 연상시키는 걸까.

잊으려 하는데-지우고 싶은데-왜 지우지 못하는 거지? 그녀도 예전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저

렇게 먹곤 했다. 하도 답답해서 그가 왜 그렇게 먹냐고 하니 “이래야 달콤하게 먹지. 혀끝이

단 걸 느끼잖아-”  하던 그녀. 그의 가슴 속에서 지워지지 않아 또 아프기 시작했다. 가슴 부

근이 찌릿 찌릿 아려왔다. 언젠가 그녀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우리 헤어지면 어쩌지?

정말 가슴 아플 텐데. 무서워…”

 하자 그는 “그런 일 없어. 내가 널 영원히 사랑할 텐데-뭔 걱정.”, 그녀는 또, “그래도 만약이

란 게 있으니까 그래서 그래서, 만약 그런 일이 닥친 다면 난 가슴이 아려올 거야. 항상 생각

하면 눈물나고 가슴 아려오겠지. 있잖아, 나 너 없는 세상은 단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어.”

하자 그는 “그럼, 생각 마. 절대 그런 일 없을 테니까. 카고메.”

 그녀는 이미 예감하고 있어서 그런 말을 무의식 중 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어떻게

지낼까? 그의 가슴에는 눈도 안 내리는 데 눈이 내리고 있었다. 슬픈 마음만큼이나.  

 “아저씨? 아저씨는 한 번도 착한 일 해본 적 없죠? 그러니까 이번에 한 번 해봐요!”

 갑자기 아이스크림을 열심히 먹던 아이가 그의 손을 잡아끌고 착한 일을 하자고 그를 끌고

갔다. 그가 어어? 하며 상심에 잠길 틈도 없이 끌려간 곳은 아이들이 종을 뎅뎅 울리며 불우이

웃을 돕자는 모금함이었다. 그는 얼떨결에 와 린의 재촉에 1달러 하나를 넣어주었다. 그러자

옆의 아이들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Merry Christmas! 하며 그에게 웃어주었다.

 갑자기 린이 입이 불퉁 튀어나오더니 그의 손을 모금함에 또 올렸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아저씨, 오늘은 이브인데 겨우 1달러나 내니-지금 아저씨가 낸 돈에 의해 크리스마스를 잘

보내느냐 마는 애들이 천지라고요~더 내요. 어서요. 그리고 나도 줘요. 나도 낼 거야.”

 아주 당차고 당돌하게 웃으며 작은 손을 내미는 아이였다. 그런 모습에 그는 기가 차 웃다가

 아이의 착함과 깊은 생각에 감탄하며 다시 주머니에 손을 넣어 지폐 몇 장과 잔돈을 다 넣어

주었다. 뎅그랑 하고 동전들이 들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아이의 손에 돈을 쥐어주자 아

이도 돈을 넣으며 “Merry Christmas!"라고 외쳤다.

 "재미있니, 리?“

 그가 물었다.

 “응, 응! 이브의 거리가 이렇게 멋질 줄 몰랐어요. 정말 예뻐요! 우리 엄마만큼 예뻐요!”

 하자 그는 이브의 거리가 처음이라는 아이의 말에 의아해 하며 다시 물었다.

 “처음? 처음이라고? 한 번도 이브 날 놀러 나온 적 없어?”

 “으응…없어요.…항상 엄마가 바빠서…이브 날은 이모랑 놀곤 했는걸. 내 생일인데……”

 또 그가 물어선 안 될 말을 했나 본지 아이의 눈에 물이 또 그렁그렁했다. 게다가 생일이라

니- 아이의 엄마는 바빠서 생일도 같이 못 보내준다-라 그는 갑자기 측은함이 느껴졌고, 애써

명랑한 척, 밝은 척 하던 아이의 얼굴이 슬프게 어른거렸다. 일부러 웃고, 밝은 척 애쓰는 모

습이 지금 그에게 슬픈 모습으로 다가와 어른거리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가 약간 축축해진 것

같았다. 그는 웃으며 아이의 차가워진 빨간 볼에 떨어지는 눈물들을 닦아주었다. 다시 따스히

안아주면서 토닥이면서- 울지 마. 울지 마. 그러고 난 후 뺨에 살며시 키스하는 모습이 마치

아빠와 딸 같았다. 다정한 아빠와 딸 사이…

 “리, 아저씨가 오늘만 엄마 노릇해줄게. 남자니까 아빠인가? 하하- 아무튼 선물도 사주고.”

 “정말요? 그런데 지금도 많이 사주셨잖아요. 미안해요, 아저씨. 괜히 내가…”

 아이의 목소리가 울먹거렸다. 퉁명스런 그의 모습을 보다 따스하게 변하던 그의 모습에 그만

마음이 풀렸는지 눈은 슬프기 그지없었다. 그는 갑자기 아이를 달래주고 싶다고, 둘도 없는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하의 셋쇼마루 가…

 “괜찮아, 말해 보렴.”

“으응, 산타할아버지를 만나고 싶어요. 꼭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거든요.”

 하자 그는 활짝 웃으며 아이의 손을 잡아끌고 어딘가로 달려갔다. 아이는 어디 가요? 하고 물

었지만 그는 웃기만 할 뿐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브라운 거리는 크리스마스이브의 날에 맞게 화려했다. 거리마다 화려한 불빛이 반짝였고, 작

은 전구로 된 Merry Christmas라는 글자가 노란 빛을 뿜으며 어두운 거리를 환히 밝혀주고

있었다. 거리 여기저기에 크리스마스트리들이 세워져 있었고, 트리에 달린 은방울과 금방울

이 반짝였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캐롤 소리가 들려왔고, 뎅뎅뎅 종소리와 함께 불우이웃을 돕

자-라는 구호도 같이 들리고 있었다.

 거리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걸어가고 있었고, 그 중에서는 다정해 보이는 연인들도 있었다.

그들은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매서운 겨울바람에 얼어붙어 빨간 손을 코트에 넣기 보다는 서

로 꼬옥 붙잡고 서로의 체온으로 녹이면서 하하하- 호호호 웃으며 거리를 지나갔다. 그런 정

겨운 모습이 그에게 보였으나 그에게는 저 멀리 떨어진 일이었다. 익숙했으나 지금은 익숙하

지 않은 것이었다. 크리스마스이브 날, 연인과 다정히 거리를 걷는 것은.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기보다 서로 손을 잡고 녹이는 짓 따위는 그에게 있어서 이미 7년 전의 바랜 과거였다. 생각

하기만 하면 아픈 과거, 머리가 터지고 가슴이 터지는 상처. 그리움. 그래서 잊을 수 없어서 7

년 동안이나 크리스마스이브 날, 거리를 잘 나가지 않았다. 생각나니까, 아파서, 지독한 상처

라서. 상처라- 정말 상처가 된 것은 누구일까? 그일까? 그녀일까? 아니다. 그는 버렸으면서

무슨 얼어 죽을 상처, 정말 나쁜 놈, 지독한 놈, 위선자라고 느낀다. 그 자신이 정말 용서받지

못할 자라고…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지금은 뭘 하고 있을까? 결혼은 했을까? 수많은

잡생각들이 그의 머릿속을 헤엄치듯 떠다녔다.

 한편 그의 손을 꼬옥 붙잡고 있는 작은 꼬마가 보였다. 아이는 까맣고 구불거리는 머리칼을

검은 새틴 리본으로 묶은 앙증맞은 모습에 빨간 망토를 걸친 귀여운 모습이었다. 그리고  아

이의 얼굴은 희었으나, 얼어붙을 추위로 인해 양 볼이  새빨간 게 귀여웠다. 아이는 크고 흑청

빛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더니, 아이의 눈에 산타클로스 복장을 입은 할아버지 하나가 눈에

보였다. 할아버지는, 아니 산타는 지나가는 아이들에게 사탕을 던져주면서 “Merry

Christmas!"라고 외치며 하하하- 허허허 웃어주었다. 그리고 가끔 아이들도 안아주고 놀아주

고도 있었다. 그 산타를 보는 아이의 눈에 호기심 어린 빛이 반짝였다. 그리고 그의 커다란 손

을 잡아끌며 저기로 가요- 가요-하며 졸라댔다.

 “아저씨, 아저씨. 저기 가요. 으응? 리는 산타할아버지한테 갈래. 가도 돼?”

 하고 묻자, 그는 정신이 번쩍 들면서 다정히 웃으며 어서 가보렴-하고 아이를 보내주었다. 그

러자 아이는 환하게 웃으며 와아-와아-연신 탄성을 내지르며 빨간 산타 옷을 입은 산타에게

달려갔다. 아이가 달려가자 산타는 허허허-웃으며 아이를 번쩍 안아 들어주었다. 그리고 다

정한 눈으로, 마치 손녀를 바라보듯 바라보며 얘야? 사탕 줄까? 라고 말했다.

 “산타할아버지 맞아요? 진짜 산타죠? 응? 리에게도 선물 줄 거예요?”

 하고 린이 묻자 그는 아이의 순진함에 더 허허허-웃으며 그럼-그럼 했다.

 한편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던 그는 아이의 순수한 눈동자를 바라보며 자기도 그런 적이 있

었지-하고 너털 웃었다. 아무리 조숙하게 굴어도 역시 어린 애는 어린 아이라고 느끼면서-.

순수한 아이의 모습에 그의 얼어붙은 가슴이 차츰 녹아갔다.

 “그럼-애, 꼬마야. 너는 무슨 선물을 가지고 싶으니? 이 할아버지가 주마.”

 하며 산타는 작은 선물 하나를 꺼냈다.

 “산타할아버지, 저는 선물 같은 거 필요 없어요.”

 린이 조금은 슬픈 느낌으로 중얼거렸다.

 “그래? 선물을 안 달라니 정말 착한 어린이구나.”

 놀란 산타클로스가 아이의 보드러운 머리칼을 살며시 쓰다듬었다.

 “대신요, 선물 대신. 산타할아버지는 모든 걸 아시잖아요. 그러니까 아빠…얼굴이 보고 싶어

요. 단 한번만, 얼굴 보고 싶어요. 하늘나라 가서 아빠 얼굴 보고 싶어요. 엄마가 산타 할아버

지는 이런 거 식은 죽 먹기라고 했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나 아빠 얼굴 보여줘요. 네에? 하늘

나라 가서…”

 마지막 아이의 말이 끝을 맺지 못하고 울먹거렸다. 아빠 생각을 하자 또 눈물이 나는 모양인

지 그 큰 눈에 눈물이 조금씩 고여 갔다. 말간 눈물이 가득 고여 아이의 시야를 흐리게 했고,

아이는 흐에엥- 하며 울려고 했다.

 서러웠다. 한 번만 아빠 얼굴을 보고 싶은 게 아이의 소원이었다. 선물 같은 건 필요 없었다.

그냥 아빠가 아이를 목마 태워주는 게 소원인데, 그것만 바랄 뿐인데.

 그를 조용히 지켜보는 셋쇼마루의 눈이 동정과 연민으로 떨렸다. 저 작은 가슴에 저렇게 큰

슬픔을, 아픔을 묻어두고 사는 구나. 저 밝고 해맑은 미소 뒤에 저런 눈물만이 남아있었구나.

가슴이 찌르르…떨려왔다.

 “꼬마야, 나는 그런 소원은 들어줄 수가 없어요. 아직 할아버지도 하늘나라에는 못 가봤거든.

 근데 리가 가려면 하늘나라 가려면 으음, 뭐라 하지? 아아- 이 세상 사람은 갈 수 없는 곳이

란다.”

 할아버지는 아직 어린 린에게는 죽은 사람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아직 ‘죽음’이라는 단어

를 인식하지 못하는, 아니 죽음이라는 것을 잘 모르는 어린 아이에게 차마 직접적으로 이야기

할 수 없었는지 곤란해 하며 이 세상 사람은 갈 수 없다고 이야기해준다. 그러자 아이의 눈에

고여 가던 눈물이 절망감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절망, 나락으로 떨어져 투욱 투욱 차가운 바

닥으로 떨어진다. 아이의 맑은 눈에 있던 말간 눈물이 아이의 마음처럼 투욱 투욱 떨어지기만

 했다. 아이의 빨간 볼로, 차가운 땅으로 추락했다.

 “그, 그러면 할아버지는 살아있는 사람이라서, 죽지 않아서 갈 수 없다는 거예요? 정말요? 리

도 갈 수 없어요? 그러면 리 죽으면 갈 수 있어요? 그러면 아빠를 만날 수 있을까요? 리를 예

뻐해 줄 까요?”

 아이의 눈에서 서러운 눈물이 줄줄 볼을 타고 흘렀다. 아이의 작은 가슴이 찢어질 듯 에여왔

다. 아직 어려서 아픔이 뭔지, 서럽다는 것이 뭔지 잘 모르는 아이였지만 가슴이 아프다는 것

만을 알 뿐이었다. 아빠를 생각하면, 생각하면 이렇게 가슴이 찌르르하고 아픈 것도 다 알고

있었다. 그것이 슬픔이라는 것도. 그리고 항상 엄마가 오늘이면 남 몰래 우는 것도 슬픔이라

는 것도 아이는 자신도 모르게 알고 있었다. 아이의 볼에는 쉴 새 없이 눈물이 줄줄 흘렀다.

절망감으로, 나락으로 떨어지는 눈물이.

 “아가야, 그건 안 될 말이란다. 저기 있는 사람이 아빠가 아닌가 보구나. 하지만 리에겐 엄마

가 있지 않니? 그렇게 쉽게 죽는다는 말은 하면 안돼요. 리, 그래, 아빠는 리를 예뻐해 주실 거

란다. 언젠가는 만날 수 있을 거야. 내가, 내가 말이다. 꿈에 아빠를 만날 수 있게 해줄게. 그러

니 울지 마렴.”

 가짜 산타할아버지는 아이의 볼을 주름 진 손으로 훔쳐 주며 벙긋 웃어주었다. 아이가 눈물

을 뚝뚝 흘리는 게 참 안타깝고 안 되었다. 산타할아버지는 리의 까만 머리칼을 살며시 쓸어

주며 허허-웃어주었다.

 “할아버지, 그러면 정말 아빠가 꿈에 나타나요? 정말 리를 예뻐 해 줄 까요? 목마도 태워주겠

죠?”

 아이는 이제야 울음을 그치려는지 살짝 웃으며 눈물을 손등에 닦아냈다. 애써 웃는 모습이

 셋쇼마루의 가슴에 못이 박혀 왔다.

  “그럼, 그럼. 그렇고 말고.”

 “헤에, 할아버지. 고마워요~ 아저씨 가요.”

 산타할아버지는 벙긋 웃으며 아이를 땅에 내려다주웠고, 아이는 눈물 묻은 채 웃으며 셋쇼마

루에게로 달려갔다. 그리고 싱긋 웃었다.

 “리, 리는 아빠가 없니?”

 셋쇼마루는 상처라는 것을 알고서도 물었다.

 “으응, 아저씨. 없어요. 엄마 말로는 태어나기 전에 하늘나라로 가셨데요.”

 여전히 아이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목마 타는 게 소원이랬지, 리? 엄마 역할이 아니라 내가 오늘 아빠 되서 목마 태워줄게. 어

떠니?”

 하자 아이는 “와아-정말요? 와아 신난다.” 하며 탄성을 지르며 정말 좋아했다. 얼마나 하고

싶었으면 저리 좋아할까-하고 그의 가슴이 또 아파왔다.

 그는 무릎을 꿇고 땅에 살며시 앉고 리를 그 큰 손으로 끌어올려 그의 목에 앉혔다. 그리고

 일어서 무작정 거리를 걸어가기 시작했다.

 한편 그의 목 위에서 시선이 높아진 아이는 와아-하며 고개를 올려 하늘을 바라다보았다. 하

늘은 이미 어둑어둑해진지 오래였고, 이미 하늘은 린의 눈동자 색처럼 까맣고 파랬다. 검은

색과 파란 색을 섞은 듯한 흑청 빛 하늘이었다. 말하자면 짙은 남색과 비슷한. 흑청 빛 어두운

 베일 위에는 은빛 별들도 총총히 박혀 있었다. 그리고 언젠가 엄마가 린의 별이라 말해주었

던 푸르른 별 하나도 저 멀리서 빛을 내뿜으며 자리하고 있었다. 까만 밤하늘 위로 푸른 달이

너울너울 춤을 춘다. 어젯밤처럼 달빛은 춤을 추고 있었다. 푸른 초승달. 예쁘다-하고 아이는

느낀다.

 “아저씨, 밤하늘이 정말 예뻐요. 그죠? 달이 푸른빛이에요. 예쁘죠?”

 “………….”

 “아저씨? 왜 말이 없어요? 너무 예뻐서 말을 못 하는 구나. 그치?”

 그는 밤하늘을 바라다보았다. 그때처럼 새파란 하늘, 다른 게 있다면 조금 어둡다는 것. 그가

쓸쓸한 미소 지으며 린을 내려다 놓았다. 그리고 시계를 바라보니 어느새 5시 반이였다. 아이

의 엄마가 6시 쯤 되서 데리러 온 뎄지. 이제 헤어지겠군. 하고 생각이 들자 왠지 섭섭한 기분

이 들었다. 단 하루 만난 꼬마에게 섭섭함이라니 벌써 정이 들었나 보다. 미운 정이. 고운 정

도 있을까?

 아이가 땅에 내려와 수다를 떨며 다시 한번 목마 타고 싶다고 칭얼댔다.

 “이제 집에 가자, 리. 엄마가 데리러 올 시간이 다 되었어.”

 하고 그가 말하자, 리는 서글픈 표정을 지었다. 자기도 헤어지는 게 섭섭한 모양인지.

 “아저씨, 그러면 이제 아저씨랑 못 만나는 거예요? 정말? 나 아저씨랑 헤어지기 싫은데. 아저

씨가 우리 아빠 되면 좋을 텐데.” 하면서 아이는 섭섭함을 토로했다. 눈물까지 고여 가면서.

아이의 몸이 들썩이며 목에서 무언가가 반짝였다. 그가 잘 보니 금으로 된 줄 목걸이에 걸린

반지의 빛이었다. 그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반지를 자세히 바라보았다. 그 반지는 백금으로

된 거였는데 거기에는 이니셜이 새겨져 있었다. S.K.D.Y & LR 라고 정교히 새겨져 있는 반

지. 그의 눈가가 시려왔다.

  그 반지는 결코 그에게 있어서 낯선 것이 아니었다. 7년도 더 전, 그가 카고메에게 사랑한다

고 영원히 함께 하자는 뜻으로 선물해준 반지였다. 그가 직접 골라 직접 자기 이니셜과 그녀

의 이니셜을 새겨서 주었던 백금 링. 그걸 받고 아이처럼 좋아하던 그녀가 떠올랐다. 해맑게

웃으며 너무 좋아하던 그녀의 얼굴, 그리고 그 미소를 사라지게 한 것도 자신. 그의 가슴이 탈

 듯이 아려오고 아팠다. 그 날 그렇게 그녀를 버리고 오면서도 버릴 수 없었던 커플링. 그것마

저 버리면 그나마 남은 기억마자 재가 되어 사라질 까봐 걱정 되서 차마 버리지 못했던 반지.

그는 계속 반지를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어째서 이 아이가 이 반지를 가지고 있는 걸까- 곰곰

이 생각해보았다. 이걸 줍기라도 한 건가, 아니면 뭐지? 그의 머릿속에 수많은 상념이 헤엄치

듯 떠 돌아다녔다. 왜 이 반지를…이 아이가 가지고 있는 걸까. 갑자기 그 날 속이 좋지 않다며

 잘 먹지도 못하던 카고메가 떠올랐다.

 “아저씨, 반지 예뻐요? 자꾸 만지작하게?”

 “아아-응. 리, 정말 예쁘다. 이거 누구 거야?”

 그는 혹시, 혹시 하는 마음으로 물었다. 설마 이 아이가 그녀의 딸인 걸까.

 “이거? 이건 우리 엄마 거예요. 리가 너무 예뻐서 잠시만 끼려 했는데 리의 손가락에는 크다

고 해서 엄마가 목걸이에 달아줬어요. 아저씨, 예쁘죠?”

 “그래? 리, 리의 풀 네임이 뭐지? 그냥 아저씨가 궁금해서. 아직 리의 성도 모르잖아.”

 그는 혹시나-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또 다시 물어보았다. 이 아이의 성이 만약, 만약 그녀의

것이라면…그렇다면…

 “제 이름요? 린 히구라시예요. 헤헷.”

 아이가 풀 네임을 말하자, 아니 ...라는 성을 듣자 그의 안색이 하얗게 변했다. 그리고 온 몸이

 사시나무 떨 듯 떨었다. 그리고 눈가에는 말간 눈물도 고이고 있었다. 아이는 도대체 뭔 일인

가 싶어 맑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다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데 엄마는 아주, 아주 가끔은요 리를 쇼이, 쇼이라고 불러요.”

 그의 말문이 턱 하고 막혀버렸다. 그리고 눈동자에서는 말간 눈물이 계속 고여 왔다. 그의 커

다란 손이 중풍 걸린 환자처럼 덜덜 떨렸고, 그의 다리도 후들거렸다. 그의 차갑기만 하던 눈

동자가 물결이 흔들리듯 흔들렸다. 그는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 고여 흐릿한 시선으로 아이

를, 사랑스러운 아이를, 자신의 딸아이를 바라보았다.

 “아저씨? 울어요? 응? 왜 울어요? 울지 마요. 리도 울고 싶어지잖아요.”

 아이가 걱정스런 눈길로, 그 커다란 눈에 물을 달고 물었다. 걱정이 되나 본지 또 울먹인다.

 아아, 어째서 깨닫지 못한 걸까. 그의 마음속에서 파도 같은 후회가 일고 있었다. 7년 전 그

날, 헤어지던 날 그녀는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했었다. 얼굴이 알리도록 해쓱해 가지고는 툭

하면 화장실로 달려가 헛구역질을 하고 왔다. 그러고는 속이 안 좋아서 그런 가봐. 하고 말하

던 그녀가 떠올랐다. 하얗게 질린 얼굴, 투명히 맺힌 땀방울들, 눈가에 묻은 눈물들, 잘 먹지

도 못하던 카고메에게 그는 매정한 말만 골라서 했었다. 그러면 집에나 있지, 왜 나와서 사람

고생 시켜? 라는 말이 이제는 날카로운 비수 되어 그의 심장으로 찔러 왔다. 아프다. 그는 가

슴 부근에 살며시 손을 대었다. 심장이 있는 부분이 비릿하고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다. 얼

마나 아팠을까. 그는 아이를 가진 그녀에게, 어쩌면 그의 아이를 가졌을 지도 모르는 여자에

게 헤어지자고, 잔인하게 내리 꽂았다.

 갑자기 그녀가 7년 전에 한 말이 떠올랐다. “나, 이미 홀……” 이라고 말하던 그녀. 아마도 그

말은 나 이미 홀몸이 아니야. 너의 아이를 가졌어- 라는 말이었을 테지. 갑자기 그는 7년 전

자신이 한 말이 기억났다. “그래서? 내가 널 안아서 순결을 빼앗아서? 널 책임져야 한다는 말

을 하려고? 아니면 네가 내 아이라도 가져서 못 헤어져, 책임이라도 져 달라는 건가? 그런 건

가?” 하고 그 어떤 잔인한 말을 가리지 않고 아무렇게나 내뱉었던 그, 그게 어떤 상처가 될지,

얼마나 아프게 될지 알면서 빨리 떨어지길 바라며 한 소리였다. 그런데 그녀가 할 수나 있었

을까? 나, 너 아이 가졌어-라고 말할 수나 있었을까? 그 심약한 여자가, 그가 아이를 지우라

고 할지도 모르는데 할 자신이나 있었을까.

 아니, 그런 말 같은 건 꺼낼 생각도 못했을 테지. 그가 아무렇게나 내뱉어버린 잔인한 말에

상처 받아 멍한 표정으로, 눈물만 짓던 그녀의 얼굴, 아직도 그의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고 뿌

리박듯이 더 선명하고 깊어지기만 했다. 아직도 잊혀지지 않았다. 그 말을 내뱉고 나자, 그녀

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허망한 표정으로, 멍해빠진 표정을 지으며 눈물만 짓던 그 얼굴이

잊혀지지 않았다. 그는 그 아픈 얼굴을 뒤로 하고 힘들게 그곳을 도망치듯 빠져나오고 말았

다. 그녀가 울든 말든, 혹시나 그 표정으로 결심을 망설이기라도 할까봐. 그리고 7년이 지난

지금도 그 눈물짓던 그 얼굴이 잊혀지지 않았고, 그를 내내 따라다니며 영원히 괴롭혔다.

 “아저씨? 울어요? 울지 마요. 응? 내가 못살게 굴어서 그래요? 응? 울지 마요, 아저씨.”

 하면서 그를 달래주려는 아이, 꼬마 천사. 가까이 보니 더욱더 닮았다. 비록 흐릿하지만.

 그의 눈에서 말간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 자신을 용서할 수도 없었다. 아니, 용서

라는 단어는 애초에 필요치 않을지도 모른다. 용서를 받을 수나 있을까. 다시 사랑받을 수 있

을까. 그의 눈에 두 눈을 깜빡이는 아이가 들어왔다. 엄마를 닮아 하얀 얼굴에 검푸른 눈동자

를 깜빡이는 아이, 그를 닮아서인지 유난히도 구불거리는 머리카락, 그는 두 팔을 벌려 아이

를 꼬옥 안아주었다. 그의 눈에서 눈물이 계속 줄줄 흘렀다. 아이는 영문도 모른 채 응? 응?

했지만 그는 눈물을 쏟으면서 아이를 더욱더 부드럽고 소중히 안아주었다.

 “아저씨? 아저씨 또 울어? 응? 왜 울어요?” 하고 아이가 울먹이며 묻자 그는 아이를 안던 손

을 풀고 “그냥.” 하고 속삭였다. 그리고 다시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그런데 아이의 귓가에는

그 “그냥”이라는 소리가 그렇게 슬피 들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이의 흑청 빛 눈망울에도

말간 눈물이 차츰 고여 갔다. 어쩌면 눈물이 많은 것도 꼭 닮았을까-라고 생각하며 그는 아이

의 눈에 묻은 물기를 닦아주었다.  사랑하는 딸, 사랑하는 딸, 소중하고 소중한 그녀를 닮은

그의 딸.

 그런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아직도 그를 사랑할까. 그를 용서하고 받아줄까.

모든 것이 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를 미치도록 사랑하게 한 것도 신, 그 운명을 만들

어 이 아이를 만나게 한 것도, 태어나게 한 것도 신. 모든 잘못은 신에게 있었다. 그러나 그녀

를 사랑하게 해준 그 신이 밉지만은 않았다. 유일한 끈을 만나게 해준 것도 신이니까. 그의 눈

에선 쉴 새 없이 눈물이 줄줄 흘렀고, 그는 살며시 웃으며 아이를 안은 손을 풀어주었다. 그리

고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궁금해 하는 아이에게 살며시 그 작은 손을 붙잡고 차갑게 얼어붙

은 이브의 거리를 걸어가고 있었다. 눈에서는 눈물이 계속 흐르면서-그녀가 기다리고 있을

곳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그때, 아이는 그의 손이 처음으로 참 따스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속으로 정말 이 아저씨가 우리 아빠라면 얼마나 좋을까. 산타할아버지는 아빠 얼굴 소원 들

어주실까-하고서 간절한 소망을 되 뇌였다. 어쩌면 이루어질지도 모르는 소망을, 옆에 진짜

아빠를 놔두고서. 아이의 눈에서는 말간 눈물 하나가 떨어지는 저 별빛 따라 미끄러지고 있었

다.

 그가 그의 소중한 아이의 손을 꼭 붙잡고, 그의 집 앞으로 왔을 때 고개를 숙인 채 기다리고

있는 검은 머리의 여자가 보였다. 여자는 살짝 구불거리는 검은 머리카락을 길게 풀고, 그 실

크 같은 머리칼은 허리까지 늘어뜨려져 있었다. 여자는 갈색 더블 코트를 입고 추운지 손을

비비고 있었다. 계속 시계를 바라보면서 안절부절하는 모습이었다.

 그가 멍한 눈길로 잡고 있는 아이의 손을 스르르 놓아버리고, 자신의 집 앞에 서 있는 여자를

자세히 바라보았다.  여자의 얼굴은 희었고, 눈동자는 검은 빛이었다. 그는 낯설지 않은 여자

의 모습을 바라보며 또 눈가가 뜨끈해지는 것을 느꼈다. 또 눈물이 그득 고여 넘치려 했다.

 “린!”

 아이는 멀뚱히 서 있다가, 여자가 아이를 부르자 환해진 표정으로 엄마아-하고 달려가 여자

의 품에 포옥 안겼다. 아이의 눈에서 그만 또 눈물이 나왔다. 얼마나 엄마가 보고 싶었는지 엄

마, 엄마- 하고 중얼거리며 그 큰 눈망울에 물이 그렁그렁하다.

 “잘 지냈어? 아저씨, 안 귀찮게 하구?”

 여자, 아니 카고메가 린을 향해 다정하고 나긋한 목소리로 물었다.

 “응. 아저씨 안 귀찮게 했어. 리가 얼마나 착한데. 엄마, 내 선물 사왔어? 응?”

 아이는 활기차게 대답하면서 선물을 안 사왔냐고 카고메의 옷자락을 끌었다. 카고메는 그런

 아이의 어리광을 웃어넘기다 비로소야 자신을 멍히 쳐다보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카고

메는 어리광 피우는 아이를 뒤로 하고 인사를 할 생각으로 그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전 이 아이의 엄마인 사람입니다. 아이를 잘 보살펴 주셔서 감사해요. 산고에게

들었답니다.”

 하고 카고메가 고개를 까딱인 후 고개를 들어 남자를 쳐다보았다. 고개를 들어 쳐다본 남자

의 얼굴은 결코 낯선 것이 아니었다. 자신을 멍히 바라보는 남자의 얼굴은 바로 7년 전 그녀를

잔인하게 버리고 간 남자, 성공을 위해 영원히 하자는 약속을 깨고, 그녀를 헌신짝처럼 버리

고 간 사내, 그녀가 7년이 지나도록 잊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아직도 가슴 깊은 곳 희미하게

묻혀져 절대 지워지지 않는 단 한 사람. 너무 사랑해서 미워하지도, 증오하지도 못하는 사람.

자신을 바보로 만든 사람. 그리워 한 연인.

 그녀의 맑은 눈동자에 눈물이 살며시 차올랐다. 남자의 회색 눈동자에도 눈물이 그득 고여

흐를 듯 그렁거렸다. 그리고 얼굴은 아파서 미치겠다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남자의 눈물을,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려 하는 그 눈물을 애써 외면했다. 그

리고 아파보이는 얼굴도, 멍하게 자신만을 쳐다보는 남자의 눈길도 다 무시하고 외면해버렸

다.

 그녀는 의아해 하는 아이의 손을 잡고 “가자.” 하고 차디차게 말하곤 몸을 휙 돌렸다.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았다. 아니, 그에게서 다시는 상처 같은 거 받고 싶지 않았다. 또 다시 그에게

서 잔인한 말 따위, 그 작은 가슴에 피 눈물 나는 것도, 시퍼런 멍이 드는 것도 이제는 싫었다.

그리고 그 냉랭한 시선을 받는 것도 싫다. 그리고 그를 사랑하는 것 따위 이제는 관두고 싶었

다. 미치도록 사랑하는 만큼 그에게 상처받는 것이 싫다. 그리고 아직도 그를 사랑하는 자신

이, 그가 붙잡아 주길 바라는 또 다른 자신이 죽도록 미웠다.

 그녀가 아이의 손을 꽉 잡고 매정히 걸어가고 있을 때, 애절한 남자의 목소리가 그녀의 귓전

을 때렸다.

 “카고메!!”

 그는 목에서 목이 나오지 않았지만, 지금 놓친 다면 영원히 잃어버릴 것 같았다. 정말 애절하

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카고메가 걸음을 멈추고, 그 자리에 그대로 서 버렸다.

 “카고메!! 제발, 제발 가지 마. 제발, 제발!! 얘기 좀 해!! 그 아이. …내 아이인 거니?”

 다시 그는 온 힘을 쥐어짜 소리쳤다. 그 소리가 그렇게 애절하고 절절히 들리지 않을 수 없었

다. 그는 그녀가 아무런 반응이 없자 이를 꽉 물고 또각 또각 구두 소리를 내면서 굳은 듯이

멈춘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의 몸을 휙 돌리고 그의 품에 가두어버렸다. 안아버렸

다.

 “아아, 이, 이거 놔. 놔.”

 아이는 그 소동으로 인해 저 옆에서 멀뚱히 바라보고 있었고, 카고메는 당황한 듯한 목소리

로 놔라고 소리쳤다.

 “제발, 제발. 카고메,”

 “아니야! 네 아이 아니란 말야! 나 이미 결혼도 했어. 남편도 있어! 그러니까 이거 놔.”

 “거짓말. 거짓말인 거 다 알고 있어.”

 “………”

 그녀는 그만 모든 것을 다 아는 듯한 그의 눈빛에 할 말을 잃고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녀의

마음속에서는 어서 말을 해야 해. 아니라고-그러지 않으면…않으면 하고 신호를 해왔지만, 입

은 굳어버린 듯 열리지 않았다. 이대로 인정해 버린다면 큰 일 나는 데. 안되는 데. 또 다시 그

의 앞에서 비참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엄습했고, 또 다시 상처를 받을까봐 두려웠다.

 “다 알고 있어. 아이의  풀 네임까지.”

 이미 다 알고 있다는 그의 말에 그녀는 모든 것을 자포자기 했는지 눈을 살포시 감았다. 눈을

 감자 속눈썹에 매달린 투명한 눈물방울이 주륵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슬비가 내리듯.

 “……그래서? 그래서 뭘 어쩔 거야? 이제 네 아이인거 알았다고 해서 혹시 책임지기라도 할

거야? ……아니잖아!! 이 아이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싶은 게 아냐? 내가 이 아이 지우지 않고

낳은 게 괘씸한 거지? 그런 거지? 응?”

 그녀는 모든 걸 포기했는지 옆에 아이가 듣는 말든 말을 퍼부었다. 눈에서는 쉴 새 없이 눈물

이 흐르기만 했다. 눈물은 계속 흘러 볼을 타고 턱을 타고 흘렀다. 흘러내린 눈물은 절망의 나

락으로, 끔찍한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가 사랑을 배신하고 그녀를 버렸듯이. 그때처럼

 하얀 눈물이 지옥으로 떨어졌다.

 “……정말이구나.…왜…왜…말하지 않은 거지? 어째서 말하지 않은 거야!!”

 그의 눈에 눈물이 반짝이며 툭 그녀의 어깨에 툭 떨어졌다. 그는 괴로운 얼굴로 그녀의 작은

어깨를 마구 흔들었다. 왜 그랬냐고- 왜 아이의 존재를 감춘 거냐고 물었다. 그가 하얗게 된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입에 피가 베어 나올 때까지 깨물고, 또 깨물어도 눈물이 멈추지 않

았다. 그의 눈에선 빗방울이 내리듯 눈물이 비가 되어 흘렀다. 그는 입술을 더 꽉 깨물었다.

이제는 눈물이 아닌 울음이 목구멍을, 아릿하기만 한 가슴을 비집고 나와 터져버릴 것 같았

다. 그는 그녀를 더럭 안아버리면서 끅끅거렸다. 눈을 꽉 감고, 입술을 깨물고, 괴로운 듯 계

속 끅끅거렸다. 목구멍이 터질 것 같았다. 심장이 퍼엉 하고 터질 것 같기도 하고, 숨이 막혀

숨까지 제대로 쉬지 못했다. 심장병에 걸린 것처럼 답답하기도 하고.  그리고 아이에게  그 끅

끅거리는 소리가 너무 아프게 들렸다. 아이의 눈에도 물이 고여 있었고, 아이의 밤하늘은 이

미 다 안다는 듯한 눈초리였다. 셋쇼마루가 누구인지 이제 알아차린 듯 그 커다란 눈이 무언

가로 반짝거렸다. 반짝거리는 그것은 넘쳐흘러서 볼을 타고 서럽게 흘러내렸다.      

 “…바보, 바보 멍청이!! ……바보…너 정말 바보야….” 하고 그가 겨우 목소리를 쥐어짜 괴롭

게 속삭였다.

 그녀의 눈에서도 눈물은 비가 오듯이 줄줄 흘렀다.

 “나 사랑 안 해? 너, 나 미워? 증오해? 싫어? 응? 만약 그렇다고 하면 놓아줄게.” 하자 그녀는

“응”이라고 대답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렇게 나오지 않았다. 그를 사랑해서 미워하는 일 따위

는 할 수 없는 그녀였으니까.

 “……아니.……아니……” 하고 그녀가 결국 울음을 터뜨리면서 힘들게 쥐어짜며 말했다. 그리

고 끅끅거리며 울음이 터져 나온다.

 “……나 없이 살 수 있어? 앞으로도 그럴 수 있냐구!”

 “……아니…절대 그렇게 못 해…못…해.” 하고 이번에도 그렇게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살며시 웃으면서 “나도.” 라고 속삭였다. 그리고 미안해- 하면서 살짝 웃어주었

다. 그런데 그 웃음은 정말 서럽고 슬프게 보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의 가슴이 찌르르했다.

 “……나 후회 많이 했어. 정말, 정말 만날 네 꿈만 꾸면서 잠에서 깬 적도 있었어. 정말, 정말

그때의 네 눈물짓던 그 표정이, 그 표정이 지워지지 않…더라. 라…라.” 하고 그가 고통스러운

듯이 말했다.

 그녀는 그의 표정을 보고서 알았다. 그는 결코 그녀를 사랑하지 않아서 버린 것이 아님을, 이

남자도 많이 아팠구나. 나 버려서 아프고, 아프고 그리워했구나. 아파한 것은 나만이 아니었

구나-하고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우리, 이렇게 많은 길을 돌아가면서 서로를 그리워하며 아

파하면서 살아왔을지도 몰라. 아니 그랬을 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진지해 보이는 그의 눈빛

이, 아파 보이는 그의 아릿한 눈동자가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어쩌면…그도 나

를…이란 생각이 들었다.

 “너, 내가 다른 여자랑 결혼했으면 좋겠어? 응? 난 아니야. 네가 다른 남자랑 결혼이라도 한

다면 그땐 미쳐버릴 거야!”

 그는 그녀가 아무런 대답도 없자 소리를 버럭 질렀다. 애절하다. 아프다. 그렇게 느낀다, 그

녀는.  그녀는 아무런 대답도 없이 내리고 있던 팔을 올려 그를 꼭 안아주었다. 그의 따스한

가슴에 얼굴을 묻으면서 그녀가 눈을 감자 아슬아슬 속눈썹에 매달린 눈물이 볼에 미끄러진

다. 그리고 보았다.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그 반지를. 이번에는 그를 믿어 봐야지-하고 생각한

다. 오늘은 참 운수가 좋은 날이라고 생각한다. 7년 전 그 이브와는 달리.

 둘의 다정한 포옹을 젖은 얼굴로 웃으면서 바라보던 린은 깜깜해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

늘에는 은빛 별들이 총총 했고, 이번엔 어둠에 묻히지 않은 푸른 초승달 하나가 얼굴을 드러

내며 웃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가 허공에 내민 작은 손바닥에 차가운 무언가가 닿았다. 아이

는 앗! 하고 두 눈을 깜빡이다 다시 고개를 올려 하늘을 바라다보았다. 까만 하늘에서 그 하늘

보다 더 반짝이는 것이 무수히 많이 내리고 있었다. 함박눈이었다.

 “와아- 눈이다. 아빠, 엄마. 눈이 와. 함박 눈인가봐.”

 아이는 즐거운 듯 차가운 땅을 찰박거리며 하늘을 웃음기 어린 얼굴로 계속 바라보았다. 아

이의 눈동자를 쏘옥 닮은 검푸른 하늘에서는 그 하늘빛보다 더 하얗게 반짝이는 함박눈이 그

들을 축복이라도 해주는 듯 소복소복 땅에 쌓이고 있었다. 그들의 마음속에도……

 “와아- 내일은 White Christmas겠다. 깜빡하고 이 말을 안 했네. 아빠, 엄마. Merry

Christmas!! 하늘의 별님, 달님도  내 소원 들어준 산타 할아버지도 즐거운 크리스마스 보내

요!”

 아이의 경쾌하고 맑은 목소리가 하늘 전체로 은은히 퍼져나간다. Merry Christmas!라는 소

리가………

엄청 허접한 졸작이지만.....그래도 잘 봐주세요~셋린은 커플이 아닌 여기선 부녀지만

전 셋린 추종자랍니다. 다른 소설 쓴 걸 이름만 바꾸어 올려보았습니다.

셋/린 짱! 오늘 병이 든 자켄에서 린이 소리 꺄아악 지르니 셋쇼마루 사마 바로 달려가시는

모습, 너무 멋지셨습니다+_+

읽었으면 코멘트 달아야지?

밤길을 조심하시오....흐흐흐.

[COKI‥종은．]

언니, 휴~ 읽느라고 눈아파-_ㅜ 그런데, 문장 끝날 때마다 좀 띄워서 써 줘. 언니의 훌륭한 묘사 실력이 돋보이지가 않잖아-_ㅠ 정말 아름다운 소설이었사와요♡ 나도 준비중인데, 난 낭만소설에 아닌 추리소설으로;;; <-뭔 산통깨는 소리래, // 아르언니 화이팅이야^-^

[BizKiT☆]

정말 재미있게 읽었어요... 그런데 셋쇼마루의 성격이 많이 변한듯/;;; 하하

[동경소녀y]

읽는데 조금 힘들었지만(그래도 읽다보면 나아져요);; 재미있어요^^ (아.. 감동이;;)

[☆ㅣ누]

개인적으로 이/카.를 좋아하지만.. 재미있어요!! >ㅁ<)//

[서우曙雨]

멋있어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런데 반지의 이니셜이 좀 맞지 않는 것 같던데..;; 제가 잘 모르는 건지..;;

[전율의귀공자a]

여기서 커플은 꼭 연인과의 사랑만을 말하는 게 아니랍니다. 셋/린은 즉, 부녀, 아빠와 딸 사이의 사랑. 주 주인공이 셋/린이라 그렇게 했습니다. 카고메야 별로 많이 나오지는 않으니; 주제는 가족이랍니다. ^^

[페티 걸]

넘 재밌어요...^^ 셋쇼가 카고메랑 잘 되다니... ㅋㅋ

[Blood]

하루종일 울었다. ㅠㅅㅠ. 정말 잘쓰시네요.

[SPICA:L]

와.....정말 흥미진진하고 슬픈 소설이예요, 괜히 눈물 찔끔 나왔따는....이런 풍의 소설을 좋아한다는 피카.....너무너무 잘 쓰셨어요 ^ㅆ^

[마에]

읽기힘들었지만 재밌게봤어요~ 은근히 셋쇼마루사마 살인계획을 세우고 있었다..(얌마!)

[εΑΜΙΕз]

아르언니[라고 부르는거 허락하시는거죠?], 역시 극강이세요. -_-b 아까 읽었는데 사정이 좀 그래서 지금 코멘달아요. 원래 셋카는 안좋아하는데..(셋린이지만, ..커플이셋카라는말이에요.) 아르언니의 소설은 마법같아요 +_+!!

[에스더]

멋져요...

[深淵★]

아아아아.... good!!!! Greit!! [철자가맞는가-ㅅ-]멋져요!! 너무멋져!!+ㅁ+ 감동감동!!

[™殺生丸☆]

아하하 잘 읽었습니다

[이누군 ㅋ♡///]

정말 조은 소설 잘 읽었어요~~ 글구 넘 슬퍼요... ㅠ.ㅠ

[이누군 ㅋ♡///]

정말 조은 소설 잘 읽었어요~~ 글구 넘 슬퍼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