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마노산잔의 두번째 날 여행이 시작됩니다. ^^
아침 6시에 시작한다는 아침 예불에 참여하러 가는 길입니다.
예전에 왁스걸레로 반짝반짝 윤나도록 박박 문지르던 학교 복도가 생각나네요. ^^
걸을 때마다 자그마하게 삐걱삐걱... ^^
본전 법당입니다. 통역을 맡은 순희 씨께서 먼저 와 계시네요.
사진에 보이는 것보다 실제는 더 어둡습니다. 실제보다 살짝 밝게 찍은 것이지요.
이곳 불교는 진언종이라고 불리는 밀교 계통이기에
주문 외우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우리 같이 목탁을 두드리지 않고 중간중간 큰 사발 같은 종을 울립니다.(이름이... ^^;)
어제 주지스님께 촬영을 허락받아 법당 내부를 정면으로 촬영한 유일한 컷들을 만들 수 있었네요.
주지스님께서 오셔서 본격적인 예불이 시작되었습니다.
앞에서 어른거리는 것은 순희 씨가 향을 사르는 장면이 촬영된 것입니다.
30초 장노출을 주는 와중에 순희 씨가 카메라 앞을 다녀가서 이런 그림이 나왔습니다.
놀라지 마세요. ^^
너무 어두워서 법당 안의 부처님 상을 육안으론 볼 수 없었습니다.
오직 실제보다 강제로 상당히 밝게 찍은 이 사진을 통해서만 볼 수 있었네요.
부처님의 손 모양(수인)으로 짐작해보건데 원래 진언밀교에서 주불로 모시는
대일여래는 아닌 듯 싶기도 합니다만, 오직 수인으로만 그것을 판단할 수는 없기에
이 법당의 주불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할 수 밖에 없겠습니다.
우리나라의 밀교인 진각종도 비로자나불(대일여래)을 주불로 하지만 법당에 불상을 모시지는
않습니다.
즉, 다 같은 밀교라고 해도 각 나라마다 특징이 다 다르다는 것이지요.
밀교가 어떤 종교냐구요?
짧은 지식을 통해 설명드리자면 불교가 처음 탄생한 인도에서 생겨난 불교의 한 갈래입니다.
일반적인 불교를 현교(顯敎)라고 하는 것에 대한 대칭어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비밀불교 혹은 진언밀교라고도 부릅니다.
불교가 발생한 인도에서 7세기 경, 어려운 이론과 귀족 중심으로만 흐르던 불교를 대중들에게
전파하기 위해 세 가지 행위(삼밀행위)만 하면 성불에 다다를 수 있다고 전파하던 종파가
밀교가 되었습니다.
삼밀행위란 주문을 읽는 진언, 손으로 수인을 맺는 결의, 그리고 대일여래(부처)를 믿는 마음을
뜻합니다.
간혹 밀교에 성적인 요소를 포함시키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잡밀이라고도 합니다. 이는 밀교 후기에 나타난 것으로 인도 힌두교의 탄트라 신앙과 결합되어 나타난 현상이므로 일부에 해당된다고 합니다. 티베트 불교에도 이런 부분이 일부 있으나 매우 엄격한 규율을 적용하기에 문란한 일은
없다고 합니다.
다 같은 밀교 종파라고는 해도 인도, 중국, 한국, 일본의 밀교 성향은 각각의 성향이 많이 다르기
때문에 그 뿌리를 제외하면 각자 성격이 다르다고 볼 수 있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육자진언 '옴마니반메훔'은 산스크리트어로 된 가장 중요한 진언입니다.
밀교에서 발전해 나간 티베트 불교도 이 '옴마니반메훔'을 주문으로 외운다고 합니다.
약 40분 동안 진행된 예불.
무릎꿇기 힘든 분을 위해 의자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일본의 카타오카 상이 30분 정도 무릎 꿇고 예불을 보고 있어서
'역시 일본인들은 무릎꿇기에 능하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예불을 마치고 일어서는
카타오카 상의 얼굴이 상당히 힘들어 보이더군요. ^^;
투숙객이 참관하는 예불을 끝내고 그 옆방에서 다시 스님들만이 참여하는 예불을 올립니다.
이곳은 더 짙은 어둠에 실내가 거의 보이질 않습니다.
어제 저녁에 지나갔던 곳입니다.
템플스테이 정진요리의 간소한(?) 아침입니다.
법당 앞마당에 그려진 문양.
무언가 심오한 의미가 있을 것 같지요?
작지만 알차게 꾸며진 정원에 카메라 렌즈가 붙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긴 숙소 앞마당 정원입니다. 왼쪽 유리창 너머가 우리 숙소였지요.
복도 한쪽은 유리창으로 되어 있어 곳곳에 숨겨지듯 가꾸어놓은 정원이 한폭의
액자 속 그림처럼 다가옵니다.
법당 지붕 너머로 아직 넘어가기 싫은 듯 미적거리는 하얀 달.
떠나는 우리 일행을 배웅하기 위해 나오신 주지스님.
료칸은 여주인인 오카미상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드는데 이곳은... ^^;
기념촬영 ^^
이곳은 고야산 순례길의 중간쯤 되는 곳입니다.
어제 보았던 지존인부터 고야산까지 20km나 되기 때문에 설명을 곁들여야 하는
우리 일행은 이곳부터 고야산 성지까지 걸어가기로 했습니다.
노르딕워킹 강사이기도 한 나츠키님을 따라 준비운동 시~작! ^^
입구에 있는 팜플렛에 도장 콩콩 찍고 가뿐하게 출발합니다.
잠깐 마을을 지나면 길은 곧 흙길로 바뀝니다.
여섯 세계를 뜻하는 여섯 작은 불상과 이보다 큰 하나의 지장보살상이 나란합니다.
이 불상들이 109m마다 세워진 쵸이시미치와 함께 한 식구를 이룹니다.
쵸이시미치(町石道)는 원래 나무로 세워졌던 것이나 800년 전에 지금의 돌로 다시 세웠다고 합니다.
당시 이것을 모두 세우는데 20년 정도 걸렸다네요.
대부분 귀족이나 사찰에서 공양을 해서 세웠고, 단지 여섯 개만이 서민들이 푼푼이 돈을 모아
세웠답니다.
쵸이시미치는 지존인 사찰부터 최종 목적지인 오쿠노인 성지까지 180개와 더불어 그 이전 길에 36개 등 총 216개가 있다고 하네요.
이중에 177개는 800년 전에 세운 것이고 나머지는 훼손되거나 사라져서 100년 전에
새로 만든 것이랍니다.
깊은 산중으로 듭니다.
양치식물이 만발한 축축한 곳에서는 걷는 이의 생각도 더 깊게 스밉니다.
천년 옛길에서 왼발과 오른발의 오고감은 고요한 가운데 규칙적입니다.
천년간 조용했던 이 길은 걷기 여행자들이 철학하는데 밑바탕이 되어줍니다.
한숨한숨의 호흡으로 미망의 시간을 뱉어내며 눈 앞에 펼쳐 놓습니다.
여러 시간 중에 유독 아쉽고, 절박했던, 혹은 부당했고, 억울했던 일들이 길 위에 어른거립니다.
필요없는 찌꺼기는 훌훌 털어내고 깨끗해진 그것들을 다시 호흡으로 빨아들입니다.
과거의 기억은 그 누구에게도 전가할 수 없는 것이기에
더러운 것을 잘 닦아내며 평생 가져 가야겠지요.
빽빽한 삼나무 숲이 일행을 기다립니다. 위로 올라갈 수록 수령이 더 오래된 나무들이 기다립니다.
해설사 선생님이 여기서 우리를 잡아 세웁니다.
홍법대사 어머니께서 금녀 구간이었던 고야산으로 무리해서 진입할 때 홍법대사가 바로 이곳에서
자신의 가사를 벗어 땅에 깔고 이곳을 지나려면 나의 가사를 짓밟고 가셔야 할 것이라며
어머니를 극구 막아섰다고 합니다.
결국 어머니는 아들의 옷을 밟고 이곳을 지났고......,
그 후의 이야기는 잠시 후에 계속 이어집니다.
쵸이시미치 각 단마다 세겨진 인도 산스크리트어가 분명하게 보이시지요?
오행을 뜻하는 우주를 새긴 것이라고 하네요.
저 안내판이 홍법대사와 그 어머니의 단호하고 절박했던 이야기를 주절거립니다.
고야산 순례길은 꼭 역사적인 혹은 신앙적인 의미를 찾지 않더라도
숲길 걷기 코스로도 최적의 자연환경과 난이도를 보입니다.
걷기 길로만 보아도 일본에 이만한 길은 흔치 않다고 합니다.
고사리와 나무들의 조화가 걷는 이들에게서 피로를 쭉쭉 빨아들입니다.
좋은 기운이 풍족한 선택받은 길입니다.
바로 이곳이 홍법대사와 그 어머니의 이야기 2탄 장소입니다.
홍법대사의 경고를 무시했다는 아까 그 길을 지나쳐 홍법대사의 어머니가 5분 남짓 걸어 바로
이 장소를 지날 때 하늘에서 천둥 번개가 치며 어마머마하게 큰 바위가 산 위에서 굴러 떨어졌다고
합니다.
바로 그때 홍법대사가 한 손으로 그 바위를 막아서서 어머니를 구해냈다네요.
놀란 어머니는 급히 산을 내려와서 지금의 지존인 사찰이 있던 곳에서 미륵을 모시면서 살다가
돌아가셨지요. 그리고 그 곳에 지존인이라는 지금의 사찰을 홍법대사가 창건합니다.
저 안내판 뒤에 박힌 집채만한 바위가 그때 홍법대사가 한 손으로 막아낸 돌이라고 합니다.
효심과 불심, 그리고 신화가 뒤섞인 드라마이지요.
걷기 코스로만 놓고봐도 꼭 추천하는 길입니다.
이곳에는 쵸이시미치 두 개가 나란합니다. 왼쪽의 오래되어 보이는 것이 수십년 전에
세운 것이고, 오른쪽에 새것 같은 것이 800년 전에 세운 것입니다.
원래 기둥이 산사태 등으로 유실되어 새로 건립하였는데, 다시 되찾아 두 개를
나란히 세워 놓은 것이랍니다.
이러한 사연은 꼼꼼하게 적혀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천편일률적인 인쇄 안내판보다 훨씬 정감있고 좋아 보입니다.
우리나라 길 조성에 벤치마킹 할 수는 없을 지 찾아보아야겠습니다.
삼나무가 뿜어내는 피톤치트에 누구인들 마음이 청결해지지 않겠습니까.
하물며 신앙심으로 몸을 두른 순례자들은 그 심신의 편안함이 오죽할까요.
가끔 수백년된 삼나무 고목이 지나는 나그네들의 시야를 쳐들게 만듭니다.
세월에 덮여진 쵸이시미치는 그대로의 멋으로 우뚝합니다.
쭉쭉 뻗은 삼나무와 참 잘 어울립니다.
일본을 몇차례 다니면서 크다는 삼나무는 많이 보았는데도 볼때마다 경외심이 드네요.
고작 백년 미만을 사는 인간의 시간과 나무의 시간은 아무래도 계통이 다를 것 같습니다.
그저 트레킹을 겸한 여행으로도 만족하는 길이랍니다.
길 그 자체에 그리고 그곳에 천년간 쌓인 사람의 이야기에 마음을 빼앗겨 버렸답니다.
나의 발이 길을 걷는 것인지.
길이 나의 몸을 밀어내는 것인지 도통 모를 황홀지경의 발걸음입니다.
카메라 든 이들은 무언엔가 이끌리듯 종종 주저않아 핀을 맞추지 않으면 안되는...
나츠키님은 특히 이 열매에 관심이 많으셨지요? ^^
시코쿠 길을 거쳐 이곳을 지나던 어느 참배객이 붙여준 붉은 천입니다.
산죽이 삐죽거리는 곳은 멧돼지의 흔적이 적잖습니다.
하지만 걱정없습니다. 사람이 먼저 해코지를 하지 않으면 절대 안전하답니다.
정 걱정되면 작은 방울 하나 배낭에 매달고 가면 되요. ^^
고사리가 뿌리를 내리기 어려운 땅은 어김없이 파란 이끼가 돋아납니다.
무수한 이야기가 나무처럼 돋아난 길.
무언가를 증명하기 보다는 내 안에 든 수많은 업보와 죄를 인식하고 인정하는 길이여야 할 것이다.
그게 바로 자신을 구원하고 참회하고 성찰하는 것 아닌가!
언제나 사람의 생각은 내 안을 향하도록 되어 있다.
이 이끼의 탄생과 성장에도 얼마만한 이야기가 숨어 있을까...
이 난쟁이 쵸이시미치는 하단부가 부엽토에 박혀 있는 것이란다.
세월의 두께만큼 쌓이고 쌓였다.
주변 사물에 집중할 때 나는 희미해지지만
결국 그 생각의 주체는 나 임을 자인할 수 밖에 없다.
신불습합(신도와 불교의 결합) 신앙이 그대로 녹아든 이곳 고야산은
다양한 종교와 가치관을 그대로 인정해주는 포용의 정신이 깃든 곳이다.
시코쿠 길부터 온 참배객이 이제 목적지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힘내라는
응원문을 써붙였다.
이 길을 모두 걸어내면 살아생전 지었던 자신의 죄업이 가벼워진다고 한다.
정말 그럴까?
나를 되돌아 보는 성찰의 시간은 분명 가능하리라 본다.
그런 면에서 묵언 걷기는 어떨런지...
어제 저녁에 지나며 잠시 보았던 다이몬. 즉, 고야산 일주문이다.
이곳에서 어제부터 문화해설을 해주신 선생님이 귀가하시고 바통을 다음분께 넘긴다.
어제부터 수고하셨습니다. ^^
바로 이분이 오늘 나머지 시간을 안내해주실 해설사이시다.
나중에 팜플렛을 보고 알았는데, 이곳에는 mp3방식의 오디오 설명기계를 임대할 수 있었다.
세계 5개국어로 가능한데 한국어도 그 중 하나이다.
고야산을 찾으실 분들은 꼭 이용해보시길 권한다.
다이몬을 지나면 고야산 시내이다.
앞쪽에서 설명했듯 고야산은 실제 山이 아니고 이 종교마을이 세워진
성지 일대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내가 고야산이 정확히 어디를 이르는 말이냐고 질문을 하자
일본 가이드가 살짝 당황했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였다. ^^
다이몬을 지난 직후의 마을은 사하촌처럼 상가가 늘어섰다.
그리고 얼마안가 사찰들이 즐비하게 나온다.
다이몬의 크기를 저기 서 있는 사람들과 비교하면 쉽게 알 수 있겠다.
헉, 글을 쓰다보니 경어가 어느새 반말이 되었다. ^^
지금은 4천명의 인구(그중 1천명은 승려)가 산다는 바로 이 곳에 3천개의 사찰과 1만명의 스님이 살았다고 한다.
그때는 여자는 들어오지 못하는 곳이였겠지. 사진은 사하촌에 해당하는 마을 입구이다.
여러 건물들은 대체로 상가들로 보이고,
중간중간에 사찰들이 들어서 있다. 중반 이후로 사찰들이 나온다.
여러 가게가 오쿠노인 공동묘지의 개인 묘에 바쳐지는 고야마끼라는 편백나무 가지를
정리해서 판매하고 있다.
이곳에도 역시 이 도시 끝에 있는 오쿠노인까지 쵸이시미치가 서 있다.
그곳까지 가야 비로소 순례길이 대미를 장식한다는 뜻이렸다.
우리가 점심을 먹으러 들어간 곳이다.
식당은 2층이고, 1층은 기념품 판매대이다.
우리 일행이 도착한 것을 알고 준비해둔 곳에 따스한 된장국을 따르고 있다.
꽤 쌀쌀한 날씨였기에 보기만해도 마음이 훈훈해진다.
우측 상단의 흰 국물은 콩국물 찌게인데 맛이 그만이다. 그 밖에도 소스로 보이는 것들은
모두 된장이다. 일본 최고의 매실 산지인 와카야마현 답게 매실을 이용한 된장이 여러 종류이다.
이 식당은 280년째 된장을 만들어온 가문을 주인으로 한다.
7대째 식당을 운영한다고 하는데, 이날 함께 간 일행 모두가 감동적인 맛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다시 이곳을 방문하게 되면 다시 찾고픈 맛이다.
된장의 깊은 맛과 감칠맛이 극적으로 어우러지며 지나치지 않은 단맛이 그 위를 덮었다.
4일 내내 먹은 음식 중에 마지막 날 묵은 료칸의 저녁과 더불어 가장 인상 깊었던 요리이다.
육류가 없는 것으로 보아 사찰음식인 쇼진료리의 일종일 것이다.
사장님께서 이 식당의 유래와 음식에 대해 설명해주고 계신다.
감사의 의미로 선물받은 행운의 솔잎이다.
홍법대사가 처음 세운 사찰 내에 있는 행운의 소나무 산코노마쓰는 일반적으로 그 잎이
두 가닥이나 세 가닥인 것이 간혹 있다. 그 세 가닥 솔칠이 행운을 가져다 준다고 하여 따로 모아서
부적처럼 판매를 하는 것이다.
실제 그 나무에 가 보았더니 세가닥 솔잎을 찾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식당 한켠에는 홍법대사를 모시는 작은 제단이 있다.
그림 속에서 손에 든 것은 산코쇼라는 것으로
밀교에서 승려가 부처를 섬길 때 손에 드는 법구이다.
단상가람(壇上伽藍) 이다. 홍법대사가 가장 먼저 창건한 사찰로 왼쪽의 본존불 법당을 곤도, 그 뒤의 거대한 탑을 곤폰다이토라고 한다. 그 이름처럼 스님들의 수행을 위한 장소였다.
최초 창건은 1,200년 전이나 피뢰침 등이 없었던 탓에 잦은 화재로 6번 소실되어
곤도는 1932년, 곤폰다이토는 1937년에 재건 된 것이다.
내부 사진은 두 곳 모두 촬영이 금지되어 아쉽지만 사진에 담을 수 없었다.
곤폰다이토는 높이가 무려 50m에 가깝다. 내부에는 엄청난 크기의 보살 상이 금빛으로
휘황찬란함을 몸소 보여주고 계셨다.
이 나무가 산코노마쓰라는 행운의 소나무이다.
아마 원래 나무는 고사하고 그 자손이 남은 것으로 보인다.
잠시 찾아 보았는데 쉽게 눈에 띄진 않는다.
이 지역 주민들이 부적으로 판매하기 위해 가끔 거두어 간단다.
아까 식당에서 선물받은 행운의 세 가닥 잎이다.
이곳은 진언밀교의 총 본산인 곤고부지(金剛峰寺)이다.
지붕을 편백나무 껍질을 쌓아 만들어서 불에 매우 취약하단다.
그래서 지붕에 빗물을 이용한 소방용 물탱크를 이고 있다.
따로 입장료가 있었으나 미리 이야기가 되었는지 그냥 들어갈 수 있었다.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일식가옥 양식을 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 연못 조성 양식과 일면 비슷한 면을 느낄 수 있다.
우리의 연못은 신선이 산다는 세 개의 섬을 조성하는 것이 기본인데,
여기는 물 대신 작은 돌을 깔아 대신 하는 듯하다.
사진촬영이 금지된 곳이 많아 사진은 그리 많지 않지만 미로처럼 복잡한 복도를 따라 걷는다.
어디선가 본듯한 익숙한 문장이다.
왼쪽은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가문의 문장이다.
이 절은 그 가문과 연관되어 있는 곳으로 여겨진다.
천황이 와서 묶었던 곳도 있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아들이 배를 그어 할복한 방이라는 곳도 있었다.
역사 속 인물들과 함께 호흡하는 듯하여 묘한 긴장감 마저 든다.
어느 분이 정원에 문양을 만들고 있다.
난 스님들이 수행의 과정으로 문양을 만들 줄 알았는데 곤고부지는 그렇지 않아 실망스러웠다.
이곳은 사찰의 주방으로 쓰이던 곳이다.
공고부지를 나와 고야산 순례길의 최종 목적지인 오쿠노인을 향하다.
단조가람 이후로 길은 곳곳에 사찰을 거느리며 순례객을 오쿠노인으로 안내한다.
이때 순례자 복장을 한 이가 빠르게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간다. 마치 축지법이라도 쓰는 듯
순시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 순례자는 긴 지팡이인 콘고츠에(금강장)를 짚었다. 순례자에게 저 지팡이는 매우 소중한 것이어서 순례를 마치고 숙소에 들어갈 때는 지팡이에 묻은 흙을 깨끗이 씻어야 한단다.
또한 다리 밑에는 홍법스님이 자고 있다는 전설이 있기에 다리를 건널 때는 지팡이를 짚지 않는다.
지팡이로 어딘가를 가르키거나 던지거나 바닥에 내려놓거나 화장실에 들고 들어가지 않는다.
물론 뱀을 만나면 무기로, 힘이 들 때는 의지가 되는 도구이기는 만찬가지이다.
그리고 바쿠에 혹은 하쿠이라고 부르는 하얀 옷이다. 사실 이 옷은 죽을 때 입는 수의와 다르지 않다. 옛날에는 순례를 하다 길에서 객사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죽을 각오를 하고 순례길에 오른다는 각오를 수의를 입음으로써 나타낸 것이다.
그리고 스게카사라고 하는 삿갓을 쓴다. 정면에는 홍법대사를 상징하는 범자가 쓰여 있다. 이 글자를 앞으로 오게 써야 악운이나 재액이 끼지 않는다고 한다. 물론 지금은 햇빛을 가리는 용도가 크다.
그리고 목에 거는 약식 가사인 와게사가 있다. 이것 역시 화장실 갈 때와 식사할 때는 벗는 것이 원칙이란다.
그리고 반야심경을 사경한 납경장에 스템프를 받는 게 원칙이다. 하지만 요즘은 반야심경이 인쇄된 납경장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단다.
그밖에도 금기시되는 것과 터부시되는 것, 꼭 해야할 것 등이 순례자들에게 요구된다.
근대화 과정을 거치며 많이 약식화되었지만 쉽지않은 길인 것만은 분명하다.
우리를 스쳐간 저 순례자는 어쩌면 시코쿠의 1,200km를 걷고
다시 이곳을 걸어 이제 곧 만나게 될 오쿠노인에서 순례의 대장정을 마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오쿠노인 입구이다.
이 지도는 고야산 전체지도이다. 왼쪽에 大門이라고 쓰인 곳이 고야산 일주문이고,
맨 오른쪽 상단이 오쿠노인 성지이다.
오쿠노인은 고야산 순례길의 마지막으로 홍법대사가 열반에 드신 동굴 부근에 지어진
사찰과 사당이다. 이 곳에 묘를 쓰면 홍법대사의 가피로 인해 극락왕생을 한다는 전설이 있어
수십만기의 묘가 모셔져 있다.
심지어는 천황의 묘도 있으며, 도요토미 가문과 전국 유력 가문의 묘가 들어서 있다.
현대의 갑부들 중에서도 죽어 이곳에 묻히기를 소망하는 자들이 적지 않아
천학적인 비용을 들여 자리를 구입하고 묘를 쓴다고 한다.
약 2km에 걸쳐 가는 길 양쪽으로 크고 작은 묘비가 빈틈없이 들어차 있다.
이곳은 대동아전쟁 때 숨진 다섯민족의 영령들을 위로하기 위한 곳이다.
우리 조선민족의 영혼을 달래는 묘비도 있다.
제단에 올리는 편백나무의 일종인 고야마끼 가지가 모두 꽂혀 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고야마끼를 한 가지 사오는 것인데... 다음에는 잊지 말고...
고야산에 사는 사람들의 주요 수입 중에 하나는 오쿠노인에 쓴 수십만기의 묘소에 참배하러 오는 이들에게 판매하는 이 고야마끼 나뭇가지를 다듬어서 판매하는 것이다.
묘의 수는 20만기라고도 하고 50만기라고도 하는데 아무도 그 정확한 숫자를 모른단다.
그래도 홍법대사 만은 알고 계시겠지. ^^
일본에서 지장보살 상은 어디를 가도 즐비하다. 특히 이곳 영지는 더욱 그렇다.
경제가 발달할 수록 어린영가들의 사후를 축원하며 세우는 지장보살은 더욱 늘어나고 있단다.
이곳에도 고야마끼 가지 하나가 바쳐졌다.
날이 어두워지고 있다. 오쿠노인의 석등에 불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수많은 죽음이 즐비하게 들어선 오쿠노인.
이 길을 걸으며 어느 누구도 죽음을 비껴설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 인지한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삶이 깨끗하리라는 막연한 생각도 잠시 태어났다 사라진다.
조선의 어느 선비가 말했다고 하지 않았던가!
"사람이 더럽지 않게 살 수 있는 것은 한 번의 죽음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이 작은 이끼에게도 주어진 생명의 한계는 있을 것이나
이끼 역시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통재하진 못하리라.
재력과 권력이 있던 자들에게는 큰 탑이 사후에 주어졌다.
이것 역시 산스크리트어로 우주를 상징할 것이다.
이렇게 큰 탑을 세우면 정말 좋은 곳에서 극락왕생을 하는 것인지...
아마 아니란 것 그들도 잘 알고 있지 않을까.
그저 꺼질 줄 알면서도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이었을 터.
큰 탑이 주는 위로의 힘은 살아가는 자들의 몫이다.
걷기여행자들에게 오쿠노인은 생경하지만 강하게 각인된다.
살아 있으되 죽음이 늘 곁에 있다는 운명을 깨닫는 곳이며,
그로 인해 삶에 대한 강한 열망과 의지, 경건함이 굳건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죽음의 땅은 그 땅 위에 살아 있는 모든 것들로 인해 빛을 발한다.
이 우물에 얼굴을 비쳐 보아 얼굴이 보이지 않으면 곧 저승사자와 만난다고 한다.
나의 얼굴은 정확히 보였다. 다행이다... ^^
카메라 세례를 무척 많이 받은 지장보살상이다.
이 작은 보살께도 고야마끼가 받여졌다. 행복하시길... ^^
일본 유력 회사들의 회사묘도 있다. 실제 묘라기 보다는 순직한 직원들의 영혼을 위한 제단들이다.
도요토미 가문의 묘이다.
임진왜란의 원흉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이곳에 묘를 썼다고 하는데, 정확하지는 않단다.
살아생전 고야산의 절반을 자신의 묘지로 쓰고 싶어했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이 50평 남짓한 공간에 가문 사람들과 함께 누웠다.
죽은 자의 죄를 직접 따져 묻는 것은 산자들의 몫이 아니므로
그의 잘잘못은 사후세계에서 심판 받고 있을 것이다.
오쿠노인의 가장 깊은 곳으로 들어갑니다.
저 앞에 보이는 전각이 도로도입니다. 홍법대사 사당이 저 사찰 바로 뒤에 자리합니다.
원래 사진촬영이 금지된 곳인데 이를 알지 못해 촬영된 사진입니다.
곧바로 제지를 받고 촬영을 멈추었지요.
이 도로도에서 가까운 자리일수록 더 좋은 묘지라고 합니다.
가장 좋은 1등급지인 도로도 바로 앞 왼쪽은 천황의 묘가 자리합니다.
이곳과 가까울 수록 좋은 명당인 이유는 홍법대사의 가피를 가까운 곳에서 받을 수 있다는 것과
56억7천만년 후에 미륵보살이 오셔서 세상의 중생을 제도하려 할 때 미륵보살이 하는 인도말을
이곳의 홍법대사가 일본말로 통역할 것이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저 전각 뒤의 사당 부근에 홍법대사가 열반에 든 동굴이 있답니다.
원래 홍법이라는 이름은 사후에 천황이 내린 법명이고 생전에는 쿠카이(고보대사)스님이라고
불리었다고 합니다.
사후 80년 후에 홍법이란 이름을 천황으로부터 받고 홍법스님이 열반에 든 동굴문을
열었을 때 그의 육신이 살아생전의 체온까지 그대로 유지한 채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지금도 고야산 곳곳에서 홍법대사가 수행중에 있으니 시끄럽게 하지 말라는 안내문을
볼 수 있답니다.
자 이제 오쿠노인을 돌아 나오는 길입니다.
마음에도 등불 하나를 켜 길을 밝힙니다.
나오는 길에 꽤 좋은 자리에 한복을 입은 상이 보였습니다.
강씨 성을 가진 한국인 부부의 묘였습니다.
닛산 자동차 직원들의 명복을 비는 곳이네요.
로켓 모양의 묘비는 무엇을 발원하는 지 궁금합니다. ^^
죽음의 땅에서 마음의 등불을 밝히고 출구를 나섭니다.
한국식 봉분을 한 곳이 있어 보았더니 역시 한국인의 묘였습니다.
이곳에 잠든 모든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비록 우리나라와 악연을 지은 분들도 그중엔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다만 그건 살아생전 인간의 업보일 뿐, 죽어서까지 이승에서 고통받을 일은 아니겠지요.
어둠이 내린 길을 자동차로 달려 도착한 곳은 일본의 삼대 미녀온천 중에 하나라는
류우진(龍神) 온천가의 시모고텐(下御殿) 료칸입니다.
역시 오까미상이 우리를 배웅 나왔습니다.
시모고텐료칸의 오까미상(여주인)입니다.
이곳의 요리는 야쿠젼료리(약선요리)라는 것으로 생약과 한방재료를 넣은 보양식이랍니다.
특이하게도 이곳에선 유카타 위에 붉고 파란 옷을 입고 식사하는 것이 특징이랍니다.
장군과 공주가 된 기분으로 만찬을 들라는 듯이 담겨 있다네요.
이곳 남자주인께서 식사에 대해 료칸에 대해 잠시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무려 27대를 물려받으며 370년간 운영한 료칸이라고 합니다. 와우...
콩물을 끓이며 수면에 덮이는 단백질만을 거두어내어 여러번 겹쳐서 만드는 유바입니다.
뒤에 나오는 차 종류입니다.
이곳 특산물 중에 하나인 은어구이네요.
일본 정식은 제철 재료를 가지고 그때그때 요리를 만들기 때문에
바닷가 근처 료칸에서는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요리입니다.
장어입니다. 밑에 깔린 건 생강입니다.
별 생각없이 한번에 입에 넣었다가.... ^^
국수와 매실로 만든 우매보시입니다.
가장 나중에 밥과 된장국으로 마무리를 합니다.
이곳의 노천탕입니다.
여러 온천을 다녀 보았지만 이곳처럼 물이 매끈 거리는 것은 처음입니다.
조금 과장하자면 샴푸 속에 몸을 담구는 느낌?
뒤로 보이는 계곡과 자연을 배경으로 노천온천을 하게끔 만들어져 있습니다.
아, 그리고 여긴 혼욕탕입니다.
여성 동지들이 안내려 온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
매끈거리는 물이 좋아 다음날 아침에는 서로 못알아볼 정도로 미인 미남이 되었다는... ^^
실내 온천은 당연히 남녀구분이 되어 있습니다. ^^
자, 이제 잠자리에 들어야겠지요? ^^
다음날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류진온천은 중앙에서 살짝 왼쪽에 자리합니다. (지도에는 류우진이라고 표기되어 있네요.)
지도설명)지도에 굵게 표시된 길이 있지요? 그 여러갈래 길들이 구마노고도(熊野古道)입니다.
자세히 보면 여러 곳에서 한곳으로 모이도록 되어 있지요.
구마노산잔(熊野三山)이라고 불리는 세곳의 신사를 참배하는 1천년이 넘은 순례길이기도 합니다.
세 곳의 신사는 혼구타이샤, 하야타마타이샤, 나치타이샤를 말합니다.
이 세 곳과 함께 여러 순례 트레일과 관계된 관광지와 유명 온천지를 소개합니다.
1부터 4까지의 숫자는 4일 여행기간의 주요 루트를 날짜별로 간단히 표기한 것이랍니다.
이 일대 지형을 두고 기이산지(紀伊山地 )라고도 부르며 네이버 백과사진에는
[기이산지의 영지와 참배길]이라고 간략한 설명이 나와 있습니다.
첫댓글 도대체 이 많은 글을 언제 다 읽으라는 거냐고 투정하시는 파란하늘님이 보이는 듯합니다. ^^
담에 뵐 때 시험 볼꺼야요... ^^
우와. 이젠 독심술도 하네..댓글 보고 화들짝 놀랐음다^^
글 올리는데 참 오래 걸렸겠지만 이런 자료 하나하나가 모여 윤문기처장님의 힘이 될거야요.
내가 시험에 강하긴한데...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