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산 디젤차와 경유품질

[필소굿]

젤차가 저희 브랜드의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흐리지는 않을까요?” 지난해 한 수입차 임포터의 CEO가 진지하게 조언을 구해왔다. 지금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미소 짓고 있지 않을까? 소비자의 저항이 만만치 않을 거란 걱정은 기우였다. 수입 디젤차 시장은 하루가 다르게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가는 중이다.

우선 모델 가짓수가 늘었다. 2005년 총 8개 브랜드 19개 모델에서 지난해엔 10개 브랜드 총 35개 모델로 확대됐다. 지난해 수입 디젤차 판매대수는 4천338대. 시장 규모는 전년 대비 244.3% 늘었다. 올 초부터 메르세데스-벤츠 E 220 CDI와 ML 280 CDI, 푸조 307 HDi 등이 선보였고, 레인지로버 스포츠 디젤, BMW X5 디젤 등이 데뷔를 기다리고 있다.

올해부터 초저황 경유만 팔아
수입 디젤차 시장이 커지면서, 경유의 품질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도 늘고 있다. 본지는 국내의 대표적인 정유사 네 곳에 국내에서 판매 중인 경유의 종류 및 품질, 저속 주유기 보급 현황에 대한 자료를 요청했다. 아울러 디젤차를 판매 중인 각 수입차 브랜드에겐 고급 경유나 바이오 디젤이 함유된 경유를 주유했을 때 성능 및 연비의 차이는 어떤지 물었다.
우선 경유란 무엇인지부터 짚어보자. 경유는 석유정제 공정에서 생산되는 중간 제품과 최종 제품 중 끓는점 범위가 등유보다 높고 중유보다 낮은 유분을 말한다. 경유는 다시 중질 경유와 경질 경유로 나뉘는데, 디젤 엔진의 연료로 쓰는 경유는 경질 경유에서 탈황 과정을 거친 것. 디젤 경유라고도 불린다.
디젤 경유가 갖춰야 하는 품질로는 ‘세탄가’(cetane number)로 표시되는 착화성(着火性)과 저온에서의 시동 성능을 좌우하는 유동점, 엔진 부식 및 유해가스 배출에 영향을 끼치는 황 함량 등이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경유와 관련해 낯선 용어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초저황 경유와 바이오 디젤(Bio diesel). 아마 언론 보도를 통해 접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초저황 경유란 말 그대로 황 함량이 적은 경유다. 당시 팔리던 일반 경유의 황 함량은 430ppm 이하. 그러나 초저황 경유의 황 함량은 14분의 1에 지나지 않는 30ppm 이하. 앞서 설명했듯, 황 함량이 적을수록 유해가스 배출이 적다. 초저황 경유를 일반인이 쓰기 시작한 건 지난 2004년 10월부터다. 하지만 시범 운영이어서 수도권 지역에 한정됐다.
올해 1월 1일부터 초저황 경유 판매가 전국으로 확대됐다. 대기환경보전법이 시행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경유는 모두 초저황 경유다. 초저황 경유는 OECD 국가 중 독일, 영국, 스웨덴 등 14개국에서만 공급되고 있다. 자료에 따르면 아황산가스는 90% 이상, 미세먼지와 일산화탄소는 10~20%, 탄화수소는 5~10%가량 적게 배출된다. 각 정유사에 확인해본 결과 현재 초저황 경유는 전국 주유소에 100% 보급이 완료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각 정유사 제품별 황 함량이 같은 건 아니다. 기준을 30ppm 이하라고만 못박았기 때문이다. 본지의 요청에 GS칼텍스는 프리미엄 경유가 10ppm 이하, 에쓰오일은 초저황 경유가 15ppm 이하라고 밝혔다. SK(주)와 현대오일뱅크는 답변하지 않았다.

바이오 디젤 일괄적으로 섞고 있어
그렇다면 바이오 디젤은 무얼까? 콩, 야자, 쌀겨, 심지어 폐식용유에서도 추출할 수 있는 식물성 기름을 뜻한다. 바이오 디젤은 제조가 어렵지 않고, 식물을 이용하므로 원료가 무한정한 셈이며, 세탄값이 높아 오염물질 배출이 적다. 다임러크라이슬러와 폭스바겐은 ‘선 디젤’(Sun diesel)이라는 이름으로 바이오 디젤 공장도 만들었다. 유로Ⅲ 기준의 디젤차에 ‘선 디젤’을 쓰면 기계적인 변화 없이 유로Ⅳ 수준을 만족시킬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오 디젤은 대개 경유와 섞어 쓴다. 바이오 디젤의 이니셜을 딴 BD에 경유에 섞인 바이오 디젤의 비율을 붙여 표시한다. 경유 80%에 바이오 디젤 20%를 섞으면 BD50이라고 부르는 식이다. 이렇게 경유와 섞어 연료로 쓰는 바이오 디젤을 바이오 디젤연료유라고 부른다. 물론 100% 바이오 디젤, 이른바 BD100도 연료로 쓸 수 있다.
산업자원부가 지난해 10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에선 BD20을 관공서 차나 대형 트럭, 공공버스의 연료로 쓴다. 프랑스에서는 BD30을 도심 버스, 관공서 차, 일반 경유 차에 넣을 수 있다. 독일의 경우 대도시 버스는 BD100, 일반 경유차는 BD5를 쓰고 있다. 이탈리아에선 BD100을 대도시의 난방용 연료로, BD30을 대도시의 버스 연료로 사용한다.
국내에서는 2002년 수도권과 전라도 지역의 주유소 334곳에서 시범 판매를 거쳐 지난해 7월부터 공식 판매되기 시작했다. BD20은 자가 정비시설 및 자가 주유시설을 갖춘 버스·트럭 회사, BD5는 일반 경유 차에 제공하고 있다. 바이오 디젤 원액.

은 국내 중소기업 6곳에서 공급한다. 2005년 BD100 판매량은 1만5천22㎘. 전체 경유 판매량의 0.07%를 차지했다. 취재 과정에서 각 정유사는 바이오 디젤 이야기만 꺼내면 거부 반응을 보였다. 어디에서 어떻게 살 수 있는지 궁금했지만, 정부 부처에 물어보라고 할 뿐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그러던 중 한 정유사 관계자의 귀띔으로 어떤 속사정이 있는지 알게 됐다. “현재 전국 주유소에서 판매 중인 경유 가운데 바이오 디젤 섞이지 않은 게 없어요.” 원인은 산업자원부가 정유사와 앞으로 2년간 9만㎘의 바이오 디젤을 소모하기로 약정한 데 있었다. 이에 따라 각 정유사는 사용량 집계의 편의성 등을 이유로 경유에 1~2%의 바이오 디젤을 섞어 공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소비자에겐 선택할 기회조차 없는 셈이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정리하면, 현재 판매 중인 경유는 바이오 디젤이 1~2% 섞인 초저황 경유다. 기준이 모호한 고급 경유 이제 살펴볼 경유가 하나 더 남았다. 지난해부터 일부 정유사가 선보이기 시작한 고급 경유가 그 주인공. 조사 결과 SK(주), GS칼텍스가 자체 브랜드를 붙인 고급 경유를 제품을 판매 중이고, 에쓰오일은 일반 경유 한

가지만 팔고 있었다. 현대오일뱅크는 마감 시한까지 답변을 보내지 않아 기사에서 제외했다.
고급 경유의 정의는 각 정유사별로 차이를 보이지만, 일반적으로 착화성을 좌우하는 세탄값을 높인 경유를 말한다. 여기에 각종 첨가제를 넣어 브랜드별 특성을 살렸다. 하지만 고급 경유는 고급 휘발유와 달리 품질 기준이 아직 없는 형편이다. 석유사업법은 옥탄가로 휘발유를 고급과 보통으로 나누고 있다. 고급은 94 이상, 보통은 91 이상 94 미만이다.
SK(주)는 지난해 1월 우선적으로 서울 및 수도권 내 11개 주유소에서 고급 경유, ‘솔룩스 디젤’ 판매에 들어갔다. 값은 일반 경유보다 1ℓ에 50원 가량 비싸지만, 세탄가가 일반 경유의 52보다 10% 정도 높은 58인데다 청정제를 700% 추가로 주입해 소음·진동이 감소하며 연비 및 출력 향상 효과가 뛰어나다고 홍보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150개 주유소에서 판매 중이며, 2010년까지 전국 800여 개 주유소로 판매망을 넓힐 계획이다. SK(주)는 2001년 말 68만 대에 지나지 않던 승용 경유차가 2005년 말엔 194만 대로 2.8배 늘어났고, 2010년 330만 대로 늘어나 고급 경유 시장이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GS칼텍스는 지난해 5월 고급 경유, ‘프라임 경유’를 출시했다. 수도권 12개 주유소를 시작으로 판매망을 넓혀가는 중이다. ‘프라임 경유’는 세탄가 58 이상에, 조연제를 첨가해 출력, 연비를 높이고, 분진이나 그을음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황 함량은 10ppm 이하. 초저황 경유의 3분의 1수준인 셈이다.
취재 과정에서 일부 정유사는 고급 경유에 대한 자료 요청에 굉장히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이유는 세금 때문이었다. 현재 고급 휘발유엔 판매 부과금이 매겨진다. 정유사는 아직 걸음마조차 떼지 못한 고급 경유가 지나치게 이슈화되어 세금의 표적이 되는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지난해와 달리 올해엔 고급 경유의 홍보 활동이 뜸한 편이다.

수입 디젤차와의 궁합은?
지금까지 국내에서 판매 중인 경유를 알아봤다. 이제 수입 디젤차와 궁합이 얼마나 맞는지에 관심이 모아진다. 올해부터 경유의 황 함량이 이전의 14분의 1로 뚝 떨어진 건 두 팔 벌려 환영할 일. 하지만 바이오 디젤이 섞였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왠지 개운치 않다. 디젤차를 판매 중인 수입차 임포터의 이야기를 들어볼 차례다.
국내에서 판매 중인 경유를 넣었을 때 문제가 생길 소지는 없는지 물었다. BMW코리아와 한불모터스(푸조),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 폭스바겐코리아, 볼보자동차코리아는 ‘전혀 문제없다’고 전해왔다. 올해부터 전국에서 초저황 경유를 팔기 때문에 지역에 따른 경유 품질 차이는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는 반응이었다. 다만 각 주유소의 관리 상태에 따른 품질 문제는 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각 메이커는 유럽의 경유 품질 기준인 EN 590에 맞는 연료를 권고하고 있었다. 세부 내용엔 브랜드별로 약간씩 차이를 보였다. BMW코리아는 X3 3.0d의 경우 바이오 디젤(BD100을 말하는 듯하다)을 주유하면 엔진이 손상될 수 있다고 전해왔다.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의 설명은 조금 더 친절했다. 바이오 디젤이 5% 미만으로 섞인 건 괜찮다고 했다.
한불자동차(푸조)는 “유럽의 품질 기준이 한국의 기준과 같진 않지만, 거의 비슷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바이오 디젤은 각 생산자마다 화학 성분이 다르기 때문에 경유와 섞었을 때 품질 기준을 따로 권고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볼보자동차코리아는 국내 경유 품질이 메이커의 권고치를 만족하며, 바이오 디젤은 BD5까진 성능에 차이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제 경유 품질에 대한 의구심을 풀렸지만, 수입 디젤차 오너가 감내해야할 것이 하나 남았다. 저속 주유기다. 국산 디젤차의 주유구는 상용·승용할 것 없이 고속 주유기에 맞춰져 있다. 하지만 수입 디젤차의 주유구는 좁다. 저속 주유기에 맞춰 설계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속 주유기로 넣을 땐 완전히 꼽지 못할뿐더러, 강약을 조절해가며 넣는 불편함이 따른다.
저속 주유기의 보급 현황을 묻자 정유사는 답변을 하지 않거나, 다소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수입차 메이커가 수출 시장에 맞춰야한다”는 주장이었다. 현재 저속 주유기는 각 주유소가 필요에 따라 개별적으로 설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확대·보급엔 적잖은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결국 소프트웨어는 합격인데, 하드웨어가 문제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