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지니어스>를 다시 본다. 내 자신을 채근하기 위함이다. 내 맘 속의 어딘가에 있을 정열을 찾기 위함이다. 머리가 식어간다.
내려와서 7년여 간 맡았던 <구례소식>의 핸들을 놓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열정이 식어가나... 1년여 됐다. 밖의 사람들은 아쉬움을 표하지만 이것이 나만 아는 나만의 이유다. 열정이 식어가서 더 이상 <구례소식>을 맡을 수가 없다. 편집장인 나에게 누가 뭐래서가 아니었다. 수근거리는 이명이 내 귀에 들려오곤 했다.
무언가 계기가 필요했다. ‘가진 것’을 자발적으로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콜린 퍼스는 주드 로와 작품의 단어 하나 문장 한 줄에 대해 끊임없는 언쟁과 논쟁을 해 가며 작품을 만드는데, 나는 말해봤자 소용없을 거라는 자기 재단으로 그냥 흘려버리곤 했던 필자들의 문장이 얼마였나.. 사진이 얼마였나.. 디자인이 얼마였나.
거리에서도, 출퇴근길 열차 안에서도, 저마다 제 할일 하는 식구들의 난장판 집 안에서도, 오로지 현재 잡고 있는 필자의 제 작품에 집중하는 콜린 퍼스. 주드 로 따라 하룻밤 재즈 바로 일탈을 하면서도, 그렇게 버번으로 목욕을 했으면서도 제 작업실로 다시 돌아가 원고를 집어드는 콜린 퍼스. 아아 나는 이 장면에서 맥이 풀려 화면을 세워놓고야 말았다. 난, 나는, 콜린 퍼스가 아니라 재즈 바에 남아 매춘부들과 희롱대는 주드 로였으니까.
스콧 피츠제럴드와 토마스 울프와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발굴한 맥스는 천재 편집자가 아니라 자기 일에 무섭게 집중하는 정열의 편집자였을 뿐이다.
정열. 엊그제 술 마시다가 영삼이가 한 말처럼 열정의 반대말은 정열이었던 것이다. 밥 먹듯 밤새우면서 일을 했던 젊었을 적 열정의 나날들은 누구나 할 수 있던 것들. 힘과 머리가 있었기 때문에 엄청 가능했다. 평생 이렇게 일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이제 늦가을 복숭아나무 이파리처럼 힘과 머리가 한 자락씩 스러지고 있는 오십 대 중반의 내게, 그만큼의 그것은 없는 듯하다.
없다.
그렇다면 이제 나는 어찌할 것인가. 정열로, 담백하고 다듬어진 정열로 주어진 편집자의 길을 가야 하지 않겠나. 필자의 글에 집중하면서, 기획에 집중하면서, 사진과 디자인을 두루 살피면서. 안 돼도 될 때까지 완성해야 하지 않겠나. 천재 편집자가 아니라 정열의 편집자가 되어야 하지 않겠나. 로라 리니와 헤어지는 날이 설령 올지라도.
첫댓글 불광불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