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우 / 상충相衝과 동거同居로서 다시 보는 문학과 미술 / ≪한강문학≫ 31호 권두초대석
장윤우
시인, 성신여대 명예교수, 박물관장, 대학원장, 산업미술연구소장 역임, 서울시
문화상수상(1997) 및 심사위원 2회, 국가훈장 수상(2003), 문체부산하 (재)한국
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이사장
상충相衝과 동거同居로서 다시 보는 문학과 미술
1)
문학의 땅을 밟고 걸어온 지 상당한 시일이 흘렀으나 정작 문학의 얼굴을 그리는 데는 망설임만 더욱 키운다.
때로 말의 허망을 느끼기도 했고 또 언어의 현란한 날갯짓에 가슴을 울렁거리는 때도 있었지만 언제나 돌아오는 무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숙제였다. 이는 문학의 좌표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가의 천착穿鑿과 무한궤도의 삶과의 상관이 다름이 아니었고, 결국은 하나의 줄기에서 비롯 된다는 사실을 터득하기까지는 지나간 햇수로 정리할 수 없는 일이었기때문이다.
문학의 땅은 숲을 헤쳐가야 하는 허방의 깊이에서 허우적임이었다.
詩의 심연에 이르기 위한 발길은 항상 우둔함으로 머리카락을 날리며, 隨筆을 바라보는 눈은 안개의 와중을 떠 돌아야했으며, 小說의 체취에서 지질리는, 이런 노릇이 세월의 흐름을 약속처럼 지켜야 하는 일에 아픔을 느낄지라도, 스스로의 형극荊棘의 길에 자부심의 물을 주고 싶다. 이는 훗날에 실낱같은 이정표의 손짓이라도 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앞세우는 이유기 된다(허정당에서 채수영, 4331년 6월 글 인용).
흔히 “시는 죽었다”라고 말해왔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영국의 어느 고교에 새로 부임한 주인공(로빈 윌리암스) 교사처럼, 침체된 사회에 혁명을 일으키든가, 무절제한 언어의 횡포로 출구가 막힌 현대문명 사회에서, 막힌 벽壁을 뚫을 힘도 의욕도 부족했기에 스스로 내린 주장일지도 모른다.
작가도 독자도 비전이 없다. 그러나 지난 세기말世紀末의 혼돈과 좌절가운데서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 지식인들이 살아나갈 수 있는 “길”은, 즉 인간人間 구원救援은 오로지 문학 특히 시詩 뿐이라고도 말하고 있다.
실상 시문학은 모든 예술 활동의 일환一環이며 그 역사는 매우 오래된다. 예술(Art)은 문학(Literature), 미술(Fine Art), 서예, 건축, 사진, 음악(Music), 무대연극, 현대에 와서는 영화에서 VD. Computer Graphic 등 분류가 더욱 다양화되었고 앞으로는 어떻게 확산되다가 소멸 또는 잠
복할지, 예측이 불허되었다.
예술의 본질本質(Originality)은 원래 하나였다. 즉 문자로 표현하면 문학, 음률(Rythum)로 표현하면 음악(Music), 색채(Color)로 표현하면 회화(Painting), 물질(Mass)에 의탁하면 조형(Sculpture), 몸(Body)을 던지면 연극, 詩劇 등이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좋은 시를 쉽게 쓸 수 있을까? 좋은 시란 어떤 걸까? 마찬가지로 후세에 남는 불세출不世出의 조형, 미술작품들을 만들어 남길 수 있을까.
이 시점에서 저의 문단 등단시기(6.25 전쟁이후의 사회혼란 1960년 전후)에서 70년이나 지나가 격세지감인 오늘의 변모를 주마간산走馬看山격으로나마 살펴볼까한다.
타의에 의한 동족상잔同族相殘의 철저한 파괴와 정신의 황폐荒廢로 방황하던 중고등학생시절의 유일한 ‘꿈’은 장래 훌륭한 문학가가 되는 거였다.
힘들고 여의치 못한 사회에서 살아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허나 막바지에 문학의 길은 포기하게 된다. “춥고 배고픈데 문학이 뭐냐”, 대신에 조금 형편이 날 것이라는 ‘미술’ 그것도 응용미술(Applied Art)의 방향으로 마음을 굳히게 되었다. 진학하기에 앞서 준비도 없이 서둘러서 서울대 응용미술과로 진학(1956.3)하였는데, 언젠가는 기필코 문학과 미술의 상통相通을 이루어내겠다는 결심을 간직하고 있었다.
배를 주리며 문우文友들과 명동거리의 청동, 갈채다방과 은성대포집 등 뒷골목 선술집이 무대였다. 문학잡지도 현대문학, 사상계, 문학예술 일간신문 문화면 등이 고작이었는데, 일본이나 미군부대에서 시중에 흘러나오는 자료, 소재에 의탁할 따름이었다.
2016년대를 넘기는 문학지와 동인활동, 전국시도문예단체, 문화회관 행사 등과는 천양지차天壤之差였다.
2)
“시와 미술은 일체이다. 시의 선線과 미美의 선은 같고, 일체가 되었을 때 힘(생명)을 갖는다”라고 UN총회 건물 등을 설계한 프랑스의 세계적 건축가 르 콜브지에(Le Corusier)가 말했다. 다시 말해서 표현방법과 재료에 따라서 분류되기에 본질(Originality)은 하나인 것이다. 문학이 인접예술(미술)에 미친 영향이라면 문학과 미술의 동반同伴은 오랜 전통과 인연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소동파蘇東坡는 절세絶世의 명시 〈적벽부〉로 널리 알려진 대가이다. 그는 ‘시중화詩中畵 화중시畵中詩’라 하여,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는, 문학과 서예와 미술의 일체를 내세웠다. 그리하여 조선의 과거시험에서 시제詩題로도 자주 등장하였다. 시서화詩書畵 일체사상은 조선시대의 이율곡, 강희안, 김시습, 이항복, 박지원, 허균, 박제가, 남구만, 정약용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시문, 서화객이 많았다.
3)
예술은 그 본질本質(Originality)이 무엇인가.
원래 하나에서 비롯되었는데 표현 양식에 따라서 미술, 문학, 음악, 연예, 영상映像 등 시간예술, 시공간예술, 공간(조형)예술 등으로 갈라지고 있는 것이다.
문학과 미술의 두 길을 함께 걸어간 서양의 작가를 보면, 불후의 명작 〈노트르담의 꼽추〉, 〈레미제라블〉의 작가 빅톨 유고는 프랑스가 자랑하는 대문호이나 소설가라기보다는 오히려 대화가였고, 일국의 재상宰相이었으며 정치가였다. 화가로서 명성을 날리지 못한 것은 그의 문학작품들이 워낙 유명하였기 때문이었다.
상징파 시인 보들레르 또한 그가 대시인이 되기를 원하지 않았던들 유명한 화가가 되었을 것이라는 호평을 받을 만큼 회화에도 출중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파우스트〉의 독일 작가, 정치가 볼프강 괴테도 〈시와 진실〉에서 밝힌 것처럼 회화에 능한 미술 예찬자였다. 유화, 판화, 벽화에서 수채화, 소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작품을 남겼으며, 공연한 잡담과 입담[口舌]을 혐오하여 그런 시간에 차라리 그림을 그리고는 했습니다. 필자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소재한 그의 생가를 찾아 방문하였을 무렵, 기념관이 된 괴테의 집안에는 그가 그려놓은 숱한 작품들이 걸려있음을 확인하였고, 그 솜씨와 재능에 혀를 내둘렀었다. 정치가로서 일가를 이룬 작가였다.
〈전쟁과 평화〉, 〈카츄사〉 등 불후의 명작을 남긴 러시아의 문호 레오 톨스토이도 그림의 대가였고, 죠르쥬 상드, 알프렛 뮤세, 메리메, 헤르만 헷세, 장 콕토, R.L. 스티븐슨, M.G 웰스, A. 푸쉬킨, P. 로티, R. 키플링, A. 랭보, 마크 트웨인, 에드가 알란 포, 고골, 〈차타레이부인의 사랑〉을 쓴 D.H. 로렌스, 〈테스〉의 토마스 하디, V. 마야고프스키, E.T.A. 호프만 외에도 수많은 작가들이 미술과 문학을 넘나들며 여한餘恨없는 인생을 살고 갔다.
그만큼 미술과 문학은 가까웠고 넘나들면서 서로 영향을 미쳐온 것이다. 유명한 소설가 서머셋 모옴의 〈달과 6펜스〉는 타이티에 가서 만년을 보내며 그림을 그린 화가 폴 고갱의 일생을 그려낸 것이며, 영화제 명칭으로 알려진 영국의 극작가 탐미파 시인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1854~1900)는 일찍이 1882년에 기계의 미美를 예찬하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기계는 장식이 없어도 아름답다. 오히려 장식하면 안 된다. 좋은 기계는 모두 아름답고 또 힘의 선線과 미美의 선은 하나이다”, 즉 아름다움의 개념 확대입니다.
19세기말, 2차 세계대전의 여파餘波로 내일을 예측할 수 없던 유럽의 숱한 문인, 화가들이 파리에 모여 어울려 ‘다다이즘’이라는 유파를 형성 하였다. 세계대전의 와중渦中에서 내일이 없는 세기말世紀末적 사상이고 표현이었어도 많은 교훈을 오늘에도 남기고 있다.
예술에 대한 인간의 본능은 인류역사 이전(Pri-historic Age)에서 비롯된다.
도구인(Homo Fabel), 지성인(Homo Sapiens), 종교인(Homo Religious), 시대의 변천과 흐름 속에 언어와 문자가 생겨났으며, 그때까지의 예술은 문자가 배제된 시각 언어이며 조형언어와 시공간 예술행위였을 따름이다. 문자가 없는 나라는 생존할 수가 없는 것이다. 역사 속에서 사라진 나라, 미개발 후진국을 면하지 못하는 국가들을 보고 있다.
비록 유일한 분단의 아픔 속에서 힘겨운 나날을 이어가고 있어도 전 세계가 주목하는 10대 강국 KOREA이다.
국제공통언어, 시각언어, 조형언어인 미술은 경우가 다르다. 어찌 보면 바디 페인팅, 바디 랭귀지(Body Language)가 더 직설적이고 현대인의 피부에 와 닿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한글이나 그림이나 모두 같은 예술정신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비록 ‘문자’라는 매체를 이용하거나 ‘Colour’ 즉 색감色感을 통하여 표현하는 방식만이 다를 뿐이다. 예술(Art)을 종래 시간예술, 시공간예술, 공간예술 나아가 환경예술(Environmental Art), 4D예술, AI 등으로 분류하여 그것이 음률, 언어, 물질(Stuff)등을 원용援用하는 것일 따름이라는 주장도 유념해야겠다.
우리나라에서도 돌아가신 미당 서정주, 유치진, 유치환, 조병화 시인과 시조시인 김상옥, 청록靑鹿파 시인 박두진, 박목월, 조지훈, 그리고 이상범, 서양화가 이종학, 조각가 홍성문, 유종민, 황지우, 동양화가 선학균, 故우희춘, 김병종, 정성태, 평론가 김우종, 도예가 정담순, 소설가 이제하, 시인 성춘복, 故 김영태와, 필자(장윤우)도 문학과 미술의 경계인으로서 두 몫을 거들어 왔으며 요즘 젊은 작가들은 서로 서로 장르를 초월한 공유의 광장에서 교류가 잦다. 굳이 시인, 화가라는 단정적 명칭에 구애拘碍받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2020년부터 유례없는 ‘코로나19’ 유행병으로 전 세계가 무질서 속에서 사상자가 끝도 없고, 항체를 찾아내는 퇴치약도 별로 없는 터다. 얼마 전 서울 인사동 아리수 갤러리에서 갖은 1,2회 시화공모전은 선학균 등이 주도하는 젊은 사단법인체로서 오랫동안 기다렸던 합일행사였다. 융합融合, 이벤트, 설치작가, 일러스레이터라는 명칭도 사용하며, 필자와 미술대 입학동기인 이우환(83, 재일화가)은 원래 “선線으로부터”라는 미술이론가이다. ‘선과 점’에서 시작된 미술이론은 어려웠던 일본 밀항시절을 지나고 현재 자연의 돌에 미학개념을 도입하여 세계적으로 잘 나가고 있는 설치작가로 엄존儼存한다.
2016년도 노벨문학상에 미국의 팝가수 밥 딜런이 선정되어 논란이 뜨거웠지만, 시대가 장르를 초월해간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4)
조선시대 선조들은 ‘숭문천기崇文賤技’라 하여 예술을 사대부士大夫들의 여기餘技 정도로 멸시하였다. 훌륭한 솜씨의 작가를 장인匠人이 아닌 ‘쟁이丈人’로 비천하게 대함으로서 예인藝人을 존중한 일본과 달리 조선조 쇄국鎖國 고집으로 우리문화의 퇴보를 가져 왔던 것이다.
요즘 고미술품 위작과 허위감정 파동, 작고화가는 물론 버젓하게 생존한 미술인들의 모작模作과 싸구려 유통이 인사동, 삼각지일대를 휩쓴다는 것도 모르는 이가 없다.
이중섭, 박수근, 천경자, 김환기, 변시지, 이른바 미의 사제들 작품들이 타켓이 되어 계속 퍼져가고 있다. 무려 2830여점의 이중섭 작품이 위작僞作이라는 검찰의 조사결과도 놀랄 일이 아니다. 도대체 먹을거리가 없고 그릴 용지가 없어서 담뱃갑 은銀박지 껍질까지 사용한 이중섭 화백에 일본인 처와 아들들에 대하여는, 생전에 친교가 깊은 구상 시인이 잘 알고 우리에게 안내하여주었다. 그런데 엄청난 양量의 그림을 언제 그려 놓았단 말인가요? 일본에 두고 온 처자를 그리며 서대문 적십자병원 안에서 굶다시피 불쌍한 인생을 마감한 것을 증언한 산 증인이었는데, 망우동 공원묘지를 문인단체에서 함께 순방하면서 부근에 있는 이중섭, 박인환 묘소 등 가슴이 에여진다.
5)
오늘 어찌 보면 바디 페인팅, 바디 랭귀지(Body Language)가 문자가 필요 없는 직접적이고 피부에 와 닿는 이입移入 행위일지도 모른다.
요즘 인사동 미술계는 매기는 전혀 없는데도 자기들끼리 끼여 주고, 사고팔고 돌리며 고무풍선처럼 값을 올리고 있다. 언론을 타고 있는 옥션이나 화가, 예술인들은 다르다. 미술계가 요지경이니 매스컴이나 호사가好事家들의 관심이 대단하다.
문단에도 표절이 눈에 띈다.
직설적이며 직선의 서양적 직유直喩(Sysiphor)와 동양적 곡선의 은유隱喩(Metaphor)는 지정학적, 사상적으로도 달리 걸어왔다.
글이나 그림이나 모두 같은 예술정신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비록 ‘문자’라는 매체를 이용한 거나 ‘Colour’ 즉 색감色感을 통하여 표현하는 방식만이 다를 뿐이다. 예술(Art)을 시간예술, 시공간예술, 공간예술로 분류하여 그것이 음률, 언어, 물질(Stuff) 등을 원용援用하는 것일 따름이다. 어쩌면 언어라는 거추장스럽고 직설적인 행위 이벤트(Event)가 성행하고 낡고 해묵은 도덕은 거추장스럽다. 젊은 세대들은 그들만의 기호와 기법으로 모든 예술의 장르를 잠식蠶食해 나간다. 자고나면 달라지듯이 변모해가는 세대가 어떻게 달라져 가는지 두 눈을 부릅뜨고 살펴갈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