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21장 강해(2) 아브라함 자손의 애굽에서 아모리 족속 지경까지 노정
민21:4-9절에는 호르산에서 시내 반도 아래의 홍해 길로 내려가 아카바만의 항구 엘랏과 에시온게벨로 돌아서 아다림 길이라 하는 사막 길로 올라가서 광야 길을 거쳐 가나안 땅을 향하여 진군하는 홍해 길과 아다림 길 노정에서 험한 길을 원망하는 백성들을 불뱀이 물어서 죽이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불뱀에 물려 죽는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 놋뱀을 만들어 장대에 달고 들린 놋뱀을 바라보는 자는 살리셨으니 광야 교회의 길은 끝나지 않을 것 같이 보이는 고난의 연속이지만 믿음으로 인내하며 견디는 신자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께서 죄의 저주를 벗어나도록 구원하신다는 계시입니다.
민21:4-9- 백성이 호르 산에서 출발하여 홍해 길을 따라 에돔 땅을 우회하려 하였다가 길로 말미암아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1)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매 1) 불뱀에게 물려 죽는 원인입니다.
여호와께서 1)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1) 야웨께서 백성 중에 보내신 불뱀들은 사탄의 사자들인 유대교 교리로 선생 노릇하는 유대교 랍비들을 통해서 은밀하게 활동하는데 침례 요한과 예수께서 그들을 독사의 새끼들이라고 단언하셨습니다.
불뱀, 불말, 불수레, 불바람 등등의 불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사물은 불의 뜨거움이나 태운다는 특징을 강조하는 용어이니 당연히 불같이 뜨거운 시련, 감당이 안되는 엄청난 시험이라는 의미를 함유한 말입니다.
성경 독자라면 누구나 다 아는 욥기에 나오는 사탄은 욥의 삶에 개입하여 행복을 누리던 욥의 가정을 완전히 망가뜨리되 자식들이 한자리에 모여 잔치할 때 돌풍으로 몰려와 잔치하는 맏아들의 집을 무너뜨리고 모든 자식이 깔리거나 다쳐서 죽게 했습니다.
연이어 들판의 가축 떼를 지나던 강도들이 앗아갔고 욥의 몸에까지 악창이 발하게 했으며 극한 상황에서 서로를 부둥켜안고 위로하고 격려해야 마땅한 아내마저도 욥의 신앙을 비방하며 당신의 신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비난했으니 이런 사건들은 불뱀이 하는 일이고 하나님은 불뱀을 적절하게 사용하여 만유를 통치하십니다.
독뱀들 중에 밤에 몰래 예수께 와서 영적 대화를 청했고 예수의 장례에 간여한 제자였던 니고데모가 유명한데 물어서 유대교 랍비들의 교훈인 독뱀의 독에 중독되어 죽게 한다는 뜻은 율법 행위로 하나님의 영광에 나아갈 수 있다고 세뇌하여 구원자로 보내신 예수를 배척하고 죽이도록 사주한다는 뜻입니다(마23:33, 요3:1-21절을 보라).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말하되 1)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함으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1) 독뱀에게 물려 죽어가는 백성이 모세에게 살길을 호소한 본문은 행전2:36-41절로 신약에서 성취되는데 전도의 목적은 독뱀에게 물린 자들을 해독시켜 살리는 것입니다.
광야 길의 독사들을 떠나게 하는 것은 구원자께서 사망의 독에서 해독시켜주는 것인데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오신 인자 예수가 독사들에게 물려 죽게 된 자기 백성의 모든 범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형의 심판을 받아 대속물로 드려진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살려주는 영이 임하여 뱀에게 물린 유대교인들의 영을 살려주는 것입니다.
인자 예수는 죄 있는 뱀의 모양으로 자기 땅의 자기 백성에게 오셨으나 죄는 없고 죄를 알지도 못하시는 유일한 의인이었으나 독사의 새끼들이 율법을 크게 오해하여 유대인의 율법으로 변질시킨 자신들만의 법인 신성 모독죄로 정죄하고 이방인의 손에 넘겨서 죽임으로 율법을 이루었습니다(마26:64-66, 요19: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1)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1) 불뱀- 믿는 사람의 인생사에 개입하여 불같은 시험을 경험하게 하는 사탄을 의미하는데 욥기에서 자칭 의인 욥을 시험하여 욥의 인생에서 강한 아집과 기질을 꺾어서 전능하신 야웨께 굴복시키는 역할을 했으니 뱀이 몰고 오는 불이란 강한 기질을 꺾고 전능자의 발 앞에 굴복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이기도 합니다.
인자 예수는 독은 없는 독사(육신)의 모양이었고 십자가에서 구속을 이룬 그리스도는 살려주는 영인 그 영이 되셔서 재림하신 그 영이신 그리스도를 영접한 참 제자들의 육적 자아와 전신에 퍼진 독사의 독으로부터 해독시켜 살려주십니다.
이 말씀은 신자들이 오랜 기간을 믿었으나 광야 같은 인생사가 너무 꼬이고 괴로워 주님을 원망하는 신자들에게 육의 일, 땅의 일을 초월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하신 놋뱀으로 예시된 인자 예수를 바라보고 믿음의 길을 걷는 자만이 약속의 기업을 취할 수 있는 구원의 길이 열린다는 계시입니다.
호르산을 지나 가나안 땅으로 직진하려 했으나 에돔 왕과 그 당시 가나안 땅 네겝 사람 아랏이 대적함으로 가깝고 쉬운 길로 가지 못하고 호르산에서 떠나 홍해 길로 다시 돌아서 아카바만의 엘랏과 에시온게벨을 돌아서 가나안 땅의 동편 아다림 (사막길과 광야길로 이어지는 정탐) 길로 돌아가는 길이 너무 힘에 부치는 고난의 길이었기 때문에 원망했던 것입니다.
민21:4- 호르산에 이르렀더니- 호르산은 에돔 변경에 위치한 산인데(민21:23절, 33:37) 가데스 북동쪽 약 24km지점에 있는 호르산은 가데스에서 모압으로 곧장 갈 수 있는 넓은 도로상에 있는 산입니다(민20:22).
홍해 길로 좇아 에돔 땅을 둘러- 이스라엘은 에돔의 방해로 인해(민20:18-21) 평탄한 왕의 대로가 있는 에돔 동쪽으로 진입하지 못하고 시내 광야의 맨 하단부에 있는 홍해의 길 즉 아카바만으로 향하여 돌아서 사막 길과 광야 길로 올라가기 위해 다시 바란 광야로 들어가야만 했던 것입니다(신2:1, 삿11:18).
이스라엘은 이 광야를 통해 남쪽으로 계속 행군하여, 에돔의 서쪽 국경을 형성하며 남북으로 뻗어있는 세일 산을 지나, 아카바 만의 입구와 인접한 엘랏과 에시온 게벨을 통과하여 다시 동북쪽의 사막길과 광야 길(아다림 길-정탐 길)로 행군해야 했습니다.
이렇게 우회(迂廻)한 이스라엘은 에돔의 동쪽 지역 광야 길을 행군하여 다시 에돔 북쪽의 모압 지역을 향하여 올라갔는데 가깝고 큰길을 두고 홍해 길로 돌아 사막길과 광야 길로 올라갔으니 백성이 홍해 길로 돌아서 가는 험난한 사막길과 광야 길을 원망하는 것은 이해가 됩니다.
길로 인하여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위에 언급한 대로 38년간 광야에서 방황했던 이스라엘이 지름길을 제쳐 놓고 또다시 고통이 반복되는 사막 길과 광야 (아다림-정탐) 길인 홍해 길로 돌아가야 했기에 백성들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원망과 불평이 나온 것입니다.
민21:5-6-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1)이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매-
만민 중에서 택하신 아브라함 자손은 출애굽 이후 광야 노정에서의 원망은 먹고 마시는 문제와 생활고로 인한 극한 고난을 만날 때마다 반복되었는데 그리스도인들의 체험에서도 광야 같은 세상에서 삶의 짐이 무거우나 사실은 생계 문제로 인한 시험이 가장 가벼운 짐입니다(민14:2-3, 20:2-5. 출14:11-12, 16:3, 17:3).
생계 문제로 당하는 세상사의 고생은 소위 평민들의 보편적인 시험이나 부귀영화를 타고난 세상 사람들은 대다수가 도리어 복음의 초대를 받기가 어려우니 하나님은 참으로 공평하신 분임을 장성한 신앙인은 다 아는 바이니 먹고 마시며 입는 문제로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를 알게 됩니다.
애굽으로 상징되는 세상에서 이 세상 신 마귀에게 노예로 살며 세상에서 성공하고 출세하여 육적인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하는 허망한 꿈을 꾸며, 나고 자라고 조성된 옛사람의 자연스런 사고방식은 하늘에 간직한 영원한 기업을 상속받는 하나님의 후사가 되는 새 길을 걷는 인생이 너무 벅찼던 것입니다.
믿은 지가 오래된 신자들임에도 역경이 닥칠 때마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는 세상 사람과 동일한 습관이 나오는 것은 광야 길에서 우선 삶의 짐이 너무 무거웠고 생업의 일들은 실패의 연속이었기 때문입니다.
반복되는 실패의 원인은 자신이 정직하고 근면, 성실하지 못하거나 세상을 너무 쉽게 생각하여 빨리 부를 축적하고 영화를 누리며 세상에서 큰소리치며 살고 싶은 야망이 그의 하는 일들을 실패로 끝나게 하는 원인이었으나 자신에게서 문제를 찾지 못하고 인생을 허술하게 경영했기 때문에 난관은 반복되었던 것입니다.
항상 자기보다 세상사에 대하여 약사 빠른 사람에게 속거나 미혹당하여 일을 그르치는 것이 반복되어 실패가 연속되는 이유는 자신의 어리석음과 교만한 마음을 깨뜨리고 새 사람을 만드시는 전능자의 손길이 그의 인생을 주장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매- 본문에서 하찮은(히//켈로켈)- 무시할 만한, 이라는 뜻으로서 이스라엘의 순종을 가르치려고 하나님께서 친히 주시는 영적 식물인 만나를 멸시하는 신자들의 완악함을 대변한 말인데 육적으로는 쉽고 편하게 양식과 음료를 구하려는 타락한 생각이 그를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싫어하노라(히//카차)- 몹시 지겨워하고 질색하여 끊어버린다, 내뱉는다는 의미이니 이는 하찮은, 이라는 말과 조화를 이루어 백성들은 하나님이 삶의 고난을 통해서 속 생명을 자라게 해주시는 은혜의 선물로 주시는 (하늘 양식-삶의 고난 중에 내려주시는) 말씀을 감사하기는커녕 오히려 원수처럼 싫어하고 배척했음을 보여 줍니다.
민21:6-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광야 길에서 불평하며 원망하는 백성들에게 보내어 물게 하셨다는 뜻은 극한 상황을 만나면 원망과 불평을 부추기는 사탄의 사자들을 통해서 세상의 영을 보내어 모든 백성이 큰 시험을 당하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창세기의 아브라함에 대한 기록보다 앞선 기록인 욥기에서 욥에게 보내진 사탄이 어떻게 욥을 시험했는지 우리의 삶에 적용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데 인생사의 생계 문제로 당하는 보편적인 시험은 영적인 식물과 음료를 구하기 어려운 시험에 대한 비유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인생사에서 욥과 같이 불바람의 대풍을 만나 모든 것이 날아간 체험, 심지어 자식들마저 잃고 재산을 몽땅 강탈당하고 끝내 자신의 몸에는 고칠 수 없는 악창이 나게 하시고 서로 의지하며 힘이 되어야 할 아내는 막말로 비난하는 극한 상황에서 벗어나는 길은 없을까요?
불뱀들(네하쉼 세라핌)- 문자적으로는 불붙은 뱀, 불타는 뱀이란 뜻인데 본문에서 불붙은, 불타는 이라는 형용사는 당시 이스라엘이 행군하던 아다림 길(정탐 길인 사막 길과 광야 길)에 많이 서식하던 독사(毒蛇)의 한 종류로서 등에 붉은 반점이 있는 독뱀의 맹독성을 일컫는 표현입니다.
불뱀이란 단어 앞에 정관사 하(the)가 붙은 것은 그 뱀이 그 당시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불같은 시험을 하는 사탄 곧 미혹의 영을 나타내는 용어이며 또한 특별히 하나님께서 보내신 징계의 도구였음을 강조하는데 욥을 뜨거운 불로 시험한 사탄이 곧 나는 불뱀이요 욥을 정죄하던 말쟁이 친구들은 사탄의 사자들입니다.
나는 불뱀에게 불같은 시험을 경험하여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은 천사와 동등이 될 때 옵1:15-17절에서 불꽃으로 나타나는 샤라프 천사들이 되는데 천사들 중에서 가장 상위 계층 천사들이 세라핌 천사(불꽃 천사-치천사)들입니다(사6:1-6, 옵1:15-17, 마25:31/40, 눅20:35-36, 행2:1-3, 히12:3, 계4:4, 21:7).
민21:7-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말하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함으로 범죄하였사오니- 이때 백성들은 불 뱀들의 습격과 물어 죽이는 원리를 정확히 간파하고 영이 진정 낮아지고 마음은 가루가 되도록 갈아지고 참 하나님의 거룩한 손길에 의한 생명의 체험으로 안수를 받아 하나님의 손에 빠지는 것이 무엇인지를 전인격으로 체험하면 해결책을 알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전능하신 손 아래에서 교만한 인간들은 입을 다물어야 하며 하나님의 징벌을 순히 받아들이고 욥과 같이 회개할 때 욥을 통해서 사탄은 수치를 당하고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십니다.
나는 불뱀에게 물려서 독사의 독에 중독되어 많이 죽은 후에 회개한 이스라엘은 중보자 모세에게 자신들의 잘못을 고백하여 중재를 호소했으며 모세는 나는 불뱀에게 물려 즉 세상 잡귀들의 미혹에 의해 큰 시험을 받은 백성들을 위해 구원해 주시기를 중보했습니다(욥42:7-17).
욥42:5-10-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 말씀을 하신 후에 여호와께서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니라.
그런즉 너희는 수소 일곱과 숫양 일곱을 가지고 내 종 욥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번제를 드리라.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인즉 내가 그를 기쁘게 받으리니 너희가 우매한 만큼 너희에게 갚지 아니하리라.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라.
이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이 가서 여호와께서 자기들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욥을 기쁘게 받으셨더라.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행2:36-41-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욥이 경험해 본 사탄으로 인한 불같은 시험을 당할 때 현란한 말재주로 욥을 강박하며 비방했던 친구들을 위해 중보자가 된 것처럼 본인이 인생의 체험으로 불같은 시험을 경험해 본 사람이나 극한 상황을 만나 불평하고 원망하던 신자들을 위해 주님께 구원의 손길을 불러오는 중보를 할 수 있습니다.
민21:7-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중재자를 통해서 하나님께 간구할 수 있었는데 신약시대에는 온 인류의 중보자이신(롬8:34, 딤전2:5, 히1:3)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요14:13, 16:23-24), 살려주는 영으로 일하시는 주님께 자신이 직접 간구할 수 있습니다.
특히 교회의 장로들은 시험당하는 지체들의 고난에서 풀어주시기를 위해 그 영의 말씀으로 기름을 붓고 위해 간구하여 이제부터는 새 힘을 얻어 힘에 부치는 일이라도 찾아서 정직하고 근면, 성실하게 일하여 얻어지는 수입으로 절약하며 살면서 주신 것에 감사하고 있는 것을 족한 줄 알며 신앙에 정진할 수 있도록 적절한 격려와 위로의 말을 해주어야 합니다.
민21: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1)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요3:12-15).-
1)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세상에 와서 죄가 되어 세상 심판을 대신 받으셨으나 죄는 없고 알지도 못하시는 사람 예수를 빗댄 모형이니 불뱀은 뜨거운 시험을 몸소 당하시는 인자를 상징하며 놋 혹은 구리는 심판에 대한 예표이며 장대는 저주 아래 있는 사람을 심판하는 나무 십자가 형틀을 상징합니다.
광야 같은 세상에서 자만하며 나태하고 함부로 살던 교만한 신자를 꺾어서 하나님의 일로 쓰시려고 만민 중에서 택하여 불러내신 이스라엘이 광야 길에서 불순종하며 하나님의 인도에 대하여 불평하고 원망할 때 나는 불뱀들을 보내어 불같은 시험을 경험시킨 하나님입니다.
야웨 하나님에 대하여 아는 피상적인 지식이 출중하고 강하고 굳은 아집으로 똘똘 뭉쳐진 자인 욥이나 사울(바울)이라도 능히 꺾어서 주님의 발아래에 엎드려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완고함과 교만함과 어리석음을 고백하게 하시는 전능자가 이스라엘의 유일신인 참 하나님입니다.
광야 길의 연단 과정을 불평하고 원망하던 이스라엘은 위로부터 임한 빛을 받았고 살기 위해 인도자인 모세에게 중보를 부탁했는데 하나님은 모세의 중보에 대한 응답으로 불뱀과 동일한 모형 뱀을 놋으로 만들어 깃발을 단 긴 장대 위에 매달게 했습니다.
뱀이 어떻게 영혼들을 파괴하고 죽이는지를 너무도 잘 아시는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들을 지배하는 교만한 영과 높아진 마음을 치료하여 새 생명을 주기 위해 그 속에서 역사하는 죄성을 대신할 생명의 메시지인 구원의 말씀, 믿음의 말씀을 들려주시어 믿어지게 해주실 뿐만 아니라 삶의 극한 고난을 통해서 세상에서 미말에 놓여서 육적 자아가 주와 함께 죽임을 당하는 체험을 경험시킵니다.
교만하고 강하던 옛사람은 시체가 되어 어둠과 죽음 세계의 깊은 곳에 장사되어 음부의 맨 밑에서 주님을 간절하게 찾게 하여 육체라는 무덤 속에서 생명의 빛으로 임하신 주님을 영접하고 위에서 내려주신 생명의 빛줄기를 생명줄로 굳게 잡고 빛의 세계로 올라오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대속으로 이루신 구속은 교리의 문제가 아니고 신자들이라면 누구나 경험하는 영적 생명의 체험이므로 속세에서 생계 문제로 극한 어려움을 당하는 경우에는 자신의 무지와 강한 기질과 굳어진 아집과 터무니도 없는 교만을 먼저 깨달아야 하며 생활의 어려움을 겪는 지체가 곁에 있으면 불쌍히 여기고 위하여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본문은 사단의 사망 권세를 물리치고 이기게 하려고 인류의 범죄들을 대신 짊어지고 하늘과 땅으로부터 버림받아 십자가에 높이 매달린 인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예표하는 모형입니다(요3:14-15, 갈3:13, 골2:15).
본문에서 장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네스는 빛나다, 눈에 띄다, 란 뜻의 나사스에서 유래한 말로서 많은 사람들의 눈에 확연히 띄도록 높이 올려진 깃발, 혹은 돛을 달아맨 돛대를 가리키는 용어입니다(시60:4, 사11:10, 렘51:27).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하나님은 불뱀의 치명적인 독성(毒性)을 제거하는 유일한 치료법으로 원망하고 불평하던 백성을 쓰러뜨린 나는 불뱀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장대에 높이 달린 놋뱀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불같은 시험이 끊이지 않는 광야 인생에서 하는 일마다 실패요 세상에서 구석으로 자꾸 몰리므로 아내와 자식들에게도 무능한 남편, 무능한 아버지로 낙인이 찍히게 하여 욥과 같이 입을 다물게 하십니다.
그 후에 전능자의 발 앞에 엎드려 그 발에 눈물을 떨어뜨리며 자신의 무지와 어리석음과 교만함을 고백하고 이 깊고 깊은 구덩이에서 건져주시기를 기도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손으로 안수를 받아본 사람은 승리의 깃발이 펄럭이는 장대 위에 불뱀을 대체하는 놋뱀을 매달고 바라보게 하여 완고함과 무지의 원인인 교만함을 치료해주십니다.
복음서에는 칠흑 같은 어둠의 밤바다를 일엽편주를 타고 괴로이 노를 저으며 거센 파도를 일으키는 역풍을 뚫고 항구로 가기 위해 괴로이 노를 젓지만 배가 깨질 위경에 처했을 때 뭍에서 그 광경을 바라보시던 주님께서 바람과 파도를 타고 제자들의 배로 오시어 주님이 배에 타니 바람과 파도가 주님의 말씀에 의해 잠잠해진 내용이 나옵니다.
노아의 방주 항해, 요나를 태운 상선, 제자들의 밤바다 항해, 바울을 태운 로마로 가는 상선이 유라굴로 대풍을 만났으나 멜리데 섬에 도착하여 구원을 얻은 내용들은 민수기에서 광야 길을 걷는 이스라엘이 식물과 음료가 없는 길을 원망하고 불평하는 신앙공동체의 광야행군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해줍니다.
민21:9-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모세는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놋쇠로 불 뱀을 만들어 깃발이 펄럭이는 장대에 높이 매달았는데 이는 십자가에서 신자들을 세상으로 미혹하는 세상의 영을 이기신 그리스도의 대속을 믿으면 살아난다는 예표요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골2:14-15-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이 놋뱀은 가나안 정착 이후에도 히스기야 왕 때까지 계속 보존되었으며 심지어 어리석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숭배하는 대상이 되기까지 했으므로(왕하18:4) 히스기야 왕은 종교개혁 때 이 놋뱀을 부수고 그것을 느후스단(놋 조각)이라 했습니다.
현대 교계가 전하는 사람의 교리인 십자가의 도는 생명의 체험이 없고 자신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말장난이고 허상뿐인 십자가를 우상으로 숭배하도록 조장하여 영혼들을 죽이는 악한 교리가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3장에서는 놋뱀을 만들어 그것을 장대 위에 달고 그것을 쳐다본 자가 뱀의 독이 치료되어 살아난 사실을 주님께서 친히 니고데모에게 설명해 주셨는데 요점은 옛 사람인 혈육에 속한 타락한 인간들은 반드시 세상과 죄와 율법의 저주에 대하여 죽고 장사되어 치워져야 한다는 진리를 믿으라는 뜻입니다.
놋 뱀(구리 뱀)의 실제 모양은 불타는 색깔을 내는 구리로 제작한 뱀이로되 간교한 혀로 사람을 미혹하여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신으로 숭배하게 하는 독사의 독(毒)은 없었으니 구원자 예수는 죄인의 모양이나(빌 2:7) 죄는 없으므로 사망의 세력을 이기게 해줍니다(롬8:3, 고후5:21, 히4:15, 벧전2:22-24).
이것은 실제적으로 저주가 임한 땅에 거하는 모든 악(사단)의 세력에 대한 공개처형이며 영적으로는(구속사적으로는) 이제 사단의 권세가 모두 처형되고 치워졌으며 영으로는 다시 살아나서 승천하여 승리하셨음을 보여주는 표적이니 육체로는 죽임을 당했으나 영으로는 다시 살아나서 승천하신 승리의 증표가 바위 무덤의 부활입니다(요3:14, 골2:14-15).
이것은 창세기에서 뱀(사단)의 머리를 깨뜨리고 승리하실 메시야로 계시된 여인의 후손(창3:15, 계12:1-5), 곧 인자(人子)가 되어 자기 땅의 자기 백성에게 임하신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의뢰하고 그분의 말씀을 믿어야만 모든 뱀의 독성으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다는 진리입니다.
쳐다본즉 살더라.- 쳐다보다, 라는 본문 말씀은 간절한 심정으로 바라므로 향하여 대면하다, 소원함으로 집중적으로 주시하다 라는 뜻이므로 광야길에서 평안하고 안일하기를 소원하던 육신의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행하심을 주시한다는 뜻이니 먼저 보던 것에서 돌아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주시하라는 뜻입니다.
모든 율법의 요구를 이루신 주님이 그 영이 되어 재림하시어 사도들, 증인들을 통해서 증거하는 살려주는 영의 말씀을 들려주실 때 그 영이 교회들에게 주시는 말씀을 온전히 신뢰하고 순종하는 자에게만 사망의 독에서 풀려나는 구원의 승리가 전달됩니다.
육신의 생각을 버리고 영의 생각으로 돌이켜서 대속물로 드려진 인자 예수와 함께 죽고 함께 장사되었다가 새 영과 새 마음의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 승천하는 참 제자들은 영생한다는 뜻입니다(요 3:16).
요3:12-15-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랍비들에게 사람의 교리로 미혹당한 유대교인들인) 너희가 (내가 증거하는 영과 마음을 빗댄 하늘과 땅의 일들 곧 예루살렘과 약속의 땅에 관한 진리를)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하늘에서(하나님에게 보내심을 받아 위로부터) 내려온 자 곧 인자 (곧 하늘에 있는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인용한 본문 말씀은 유대인의 율법 선생이며 은밀한 제자였던 니고데모와 유대인들에게 대속을 설명하려고 땅의 일을 예로 들어 설명하신 말씀인데 위로부터 곧 하늘에서 내려와 하늘에 계신 주님과 땅의 예루살렘에서 유대교 랍비로 활동하는 니고데모에게 주신 본문 말씀은 오늘날 큰 예배당에서 랍비 노릇하는 목회자들에게 경고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들이 신자들을 예배당에 모아놓고 십자가의 도를 반복해서 사람의 교리로 전하지만 정작 자신은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려본 적이 없고 자신의 시체인 옛 자아는 반석(바위)에 판 새 무덤에 장사되어 어둠과 죽음의 세력에게 휩싸인 채로 이 어둠과 깊음에서 건져주시기를 간구하여 응답받은 적이 없으니 사람의 교리로 말장난하여 밥벌이 수단으로 목회하는 자들입니다.
본문에서 중요한 말씀은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라고 선언하신 말씀인데 창세 이후로 만물 위에서 와서 만물 위에 계신 자가 없으니 나는 곧 만물 위에 스스로 있는 자라는 선언을 하셨고 이 말씀은 곧 나는 처음부터 스스로 있는 자요 내가 곧 그니라, 라는 뜻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애굽에서 불러낸 하나님의 백성에게 광야 연단을 경험하여 시내산에서 받은 의의 말씀을 믿음의 말씀, 구원의 말씀으로 믿어지게 하시는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경험시킨 것은 나는 불뱀에게 물려서 맹독이 온몸에 퍼져 죽는 중에도 깃발이 펄럭이는 장대 위에 달린 놋뱀을 바라보면 살게 되는 비밀은 교리의 문제가 아니고 실제적인 각자의 영적 체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