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리산 화양계곡으로 들어가는 길목. ‘가을농원’ 간판을 따라 펼쳐지는 산비탈 밭은 온통 새빨간 사과가 주렁주렁 달려 있다. 농장주 손홍철(49)·박종임(46) 씨 부부는 일 년 내내,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이곳에서 나무와 함께 보낸다. ‘나무꾼과 선녀’라는 별명을 가진 이들은 따가운 가을 햇볕에 하루하루 붉어가는 사과를 바라보면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단다. 이들이 생산하는 껍질째 먹는 친환경 으름사과는 ‘맛있다’는 입소문에다 오랜 단골 덕분에 일찍 동나는 인기 농산물로 자리 잡고 있기도 하다.
가을은 한들거리는 코스모스와 빨간 고추잠자리, 쩍 벌어진 밤 등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가을농원’의 농장주인 손홍철·박종임 씨 부부는 발그스레 익어가며 달콤한 향을 피우는 사과에서 가을을 온몸으로 느낀다. 손씨 부부가 사는 괴산군 청천면 금평리는 35가구가 사는 산골로 마을에서도 외떨어진 ‘북박골’이란 곳이다. 2만 9700㎡(9000평) 규모의 과수원은 얌전히 걸어 올라가기 어려울 정도로 경사가 심한데 20?30년생의 굵은 ‘후지’ 품종 뒤로 봉지를 씌우지 않고 재배하는 ‘홍로’가 과원을 빨갛게 물들이고 있다. “제가 산도 좋아하고 특히 꽃을 엄청 좋아해요. 서울 살 때는 꽃구경이며 등산을 자주 갔는데, 여기 내려와선 따로 구경 한번 다녀본 적 없어요. 과수원 자체가 산인 데다 봄이면 사과꽃, 복숭아꽃이 얼마나 예쁜지, 또 사과가 익어가는 모습은 단풍 구경에 비할 게 아니거든요.” 가을농원의 안주인 박종임 씨는 요즘 사과와 복숭아를 따고 주문 확인, 선별, 포장 작업으로 바쁘고 피곤하지만 빨갛게 익어가는 사과밭 풍경 자체가 ‘피로 해소제’라고 말한다. 손씨 부부가 이곳으로 귀농한 것은 1997년으로 13년이 흘렀다. ‘사교육 1번지’라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서 20년 넘게 살며 가전제품 수리센터를 운영하다 정리하고 이곳으로 내려왔다. “88올림픽 이후 강남이 번잡해지기 시작하더니 그 한가롭던 동네에 차들이 많아지고 길에 서 있는 시간이 점점 많아지데요. ‘언젠가는 농사를 짓겠다’는 생각으로 90년대 들어서는 농협 안성교육원에서 귀농교육도 받으며 준비해오던 터에 매물로 나온 이 땅을 곧장 계약하고는 아내에게 ‘땅을 장만했으니 정리하고 내려가자’고 했지요.” (손홍철 씨) “IMF가 터질 줄 몰랐죠. 집과 상가를 처분하지 않았으면 지금쯤 부자가 됐을지 모르지만 아름다운 꽃과 수확의 기쁨, 보람, 건강한 먹을거리를 생산한다는 자부심은 몰랐겠지요. 남편은 가끔 서울 가면 익숙해서 좋다는데 저는 다시 서울 가서 살라고 하면 못 살 것 같아요.” (박종임 씨)
‘나무꾼과 선녀’가 키운 사과, 너무 맛있어 품절 손씨 부부가 운영하는 가을농원은 평범해 보이지만 주목받는 과원이다. 화학비료와 농약 대신 퇴비와 미생물 발효 효소를 이용하는 자연농법을 실천하고 있는데 군에서는 처음으로 저농약 인증을, 도에서는 처음으로 무농약 인증을 받으면서 지자체의 친환경 담당 공무원들도 관심을 갖고 자주 찾아본다. “과원을 구입했을 당시엔 폐원 직전의 상태였지요. 수년 동안 퇴비를 주며 땅심을 높이고 둘이서 관리하기에는 벅차 수확기가 고루 분산되도록 구입 당시 심겨 있던 ‘후지’를 ‘홍로’와 ‘양광’ 등 6가지 신품종으로 교체, 갱신하는 작업을 계속해 왔어요.” 복숭아도 일부 재배하고 있는데 8월 하순?9월 초에 수확하는 중생종 ‘유명’ 외에 9월 중하순에 수확하는 만생종 ‘황도’로 나눠 심었다. 과수원은 해발 350?400m의 고지대인 데다 경사지라 퇴비 거름을 내고 수확 운반차를 오르내리기가 위험하기까지 하다. 전정하고 열매 솎기와 봉지 씌우기, 수확 작업도 평지보다 갑절은 힘들다. 그런데 사과·복숭아 나무가 자라는 데는 이상적이다. 햇볕을 충분히 쬘 수 있는 것은 물론 통풍이 잘되고, 일교차가 커 탄저병 등이 없단다. 손씨는 가을마다 뒷산에서 딴 으름을 주원료로 만든 효소액을 영양제로 사과나무에 살포하는데, 껍질이 얇으면서도 아삭거리고 특히 당도가 높은 것이 특징이다. ‘껍질째 먹는 으름 사과’는 특허등록까지 마쳤다. 수확기에 들어간 ‘홍로’를 간이 측정기로 재보니 당도가 18 브릭스가 나왔다. “사과가 너무 달아서 걱정이에요. 단맛이 너무 강하면 두 개 먹을 거 하나만 먹으니 손해잖아요. 하하하.” 손해가 나도 좋다는 표정이다.
나무꾼은 생산부장, 선녀는 영업부장 가을농원은 일찍이 전자상거래를 도입, 직거래로 모두 판매함으로써 판매 방법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다. 자재비와 인건비를 계산해 값을 직접 매기니 시장 가격 등락과 상관없이 계획적인 경영이 가능하다. 2년 전부터는 사과즙 가공시설을 도입, 크기가 너무 작거나 못생긴 비상품 과를 이용한 사과즙을 상품화했는데 원래 사과의 당도가 높다 보니 설탕을 전혀 넣지 않았는데도 인기다. 손씨는 온종일, 사시사철 사과나무만을 바라보며 산다고 해서 나무꾼, 그를 보살피는 박씨는 선녀가 됐는데, 농장 경영에서 이들의 역할은 생산부장과 영업부장이다. 좋은 사과를 생산하는 것이 지상 과제인 생산부장은 수확이 끝나면 퇴비 작업과 전정, 교육 등으로 쉴 틈이 없다. 해가 뜨기 전에 일을 시작하고, 헤드 랜턴을 머리에 꽂고 자정 넘어 수확 작업을 하는 날도 있다. “생산기술도 계속 업그레이드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농업기술센터와 농촌진흥청, 사과연구소, 선진 농가 등을 찾아가 필요한 기술을 배우고 동향을 파악하는 데 신경 쓴다”는 손씨. 그래도 무작정 교육·견학을 가는 것은 시간과 비용 대비 효과가 적기에 꼭 필요한 교육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교육 중에서도 자연농법 교육은 매년 빠짐없이 참가하는데 부부가 서로 교육기간을 달리해 함께 배운다. 재고 없이 사과를 팔 수 있는 비결은 생산부장인 손씨가 “내 사과가 최고라고 홍보하기에 앞서 소비자가 만족할 정도로 사과의 품질을 만들어놓아야 한다”는 신념에 따라 맛있는 사과 생산에 전념하는 데다 영업부장인 박씨가 일찌감치 전자상거래를 통한 판로를 확보, 단골들을 관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씨는 인터넷과 전자상거래가 생소하던 1999년에 농림부의 홈페이지 무료 구축사업에 참여해 컴퓨터 교육을 받고 홈페이지부터 개설했다. 2001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전자상거래를 시작했다. 도중에 서버를 교체하느라 회원은 줄었지만 500여 명의 단골이 건재하다. 카톨릭농민회 친환경매장 납품과 일주일에 한 상자씩 꾸준히 주문하는 사과 마니아 등 단골들의 전화와 인터넷 주문으로 판매 문제는 깨끗이 해결됐다. 물론 처음부터 단골이 수백 명씩 생겨난 것은 아니다. 어느 해인가는 추석이 내일인데 택배 전표를 정리하다가 한 곳이 누락된 것을 발견하고는 사과 한 상자를 싣고 서울에 올라가 직접 배달하고 오느라 12시간이나 귀성길에 갇혀 고생했을 정도로 소비자와의 신뢰를 첫째로 삼고 있다.
자신에게 맞는 작목 선택이 성공 열쇠 맛있는 사과를 만들어내는 비결은 끊임없이 공부하고 노력과 열정을 기울인 결과다. 하지만 손씨는 근본적으로 사과나무와 자신이 잘 맞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귀농한 뒤 처음 몇 년 동안은 사과나무를 가꾸며 소도 키워보고 고추 농사도 지어봤는데 가축이나 밭농사는 영 답답하고 재미가 없었어요.” 손씨는 “특히 전정을 하면서 지겹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고 오히려 나무의 꼴(수형)을 만드는 작업이 자연이라는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는 것과도 비슷해서 일할 때만은 스스로 예술가라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사람마다 살아온 이력과 성격, 성향이 다르듯 각자에게 맞는 작목도 다를 수밖에 없다고 설명하는 그는 “귀농 희망자라면 먼저 자신에게 맞는 작목을 선택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과원 가꾸기를 예술행위로 생각하는 손씨는 귀농 이후 한 번도 해거리(한 해 걸러 열매가 잘 열리지 않는 현상)를 겪지 않을 정도로 성공적이다. 다른 농가들의 부러움을 한껏 받는 이유다. 손씨가 다른 농가들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 “보통 과수 농가를 보면 전정이든 수확이든 전문가나 일꾼을 빌려서 한꺼번에 끝내 버리는데 우리는 사람을 쓰지 않고 직접 하는 게 다르죠.” 전정의 경우 어떤 하나의 수형樹形원칙을 고수하는 게 아니라 그해 수확량과 수세 등을 따져 나무마다 달리 한다. 사과나무 한 그루에서도 익는 정도가 제각각 다르기에 수확 작업도 네다섯 번에 나눠서 하고, 따면서도 색깔이 골고루 나도록 남아 있는 과를 살며시 돌려주는 등 나무마다, 사과마다 맞춤 농사를 짓다 보니 과수원에서 살다시피 해도 일거리는 쌓인단다. 손씨는 오랫동안 가전제품을 고치면서 세심하게 살피고 분석하는 게 몸에 배어있던 터라 나무든 농기계든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문제와 답을 찾아나가는 게 습관이다. 농업도 시대의 흐름과 감각을 배우고 익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손씨 부부는 1년 과정으로 매달 1박2일의 합숙교육이 이뤄지는 한국농촌관광대학에 다니고 있다. 농업의 한 흐름을 배우고 농장에 적용하기 위함이다. 손씨 부부의 희망이자 계획은 도시 소비자들이 와서 쉬고 갈 수 있게 쉼터를 짓는 것이다. 귀농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살림집은 아직까지 컨테이너 몇 개를 이어 만든 것으로 제대로 집을 지으려면 앞으로도 2년이 걸릴 것이란다. 천천히 잘 짓기 위해 간벌한 나무도 옮겨다 놓고 준비 중인데 집보다 앞서 5평짜리 자그마한 사랑방(농막)을 몇 개 지을 생각이다. 단골 소비자들이 하루라도 맑은 바람을 쐬면서 사과가 어떻게 자라는지 관찰해볼 수 있도록 하고 싶다는 바람에서다. 초등학생과 유치원생이던 두 아이가 시골에 내려온 뒤 교육문제 때문에 어려움이 컸지만 이제 고비는 지났다. 큰애는 대학에 진학해 군 복무 중이고, 고등학교에 다니는 둘째를 보러 일주일에 두세 번은 청주에 다녀와야 해 시간상으로 쫓기긴 하지만 그래도 시골에 내려오길 잘했다고 생각한다는 박씨. “가끔 서울에 가면 바삐 움직이고 떠밀려 다니는 사람들, 특히 아이들을 보면 측은하기까지 하지요. 가난할지는 모르지만 농촌은 여유가 있잖아요. 도시에 사는 사람이라면 가끔 자연 속으로, 농촌으로 떠나 마음의 여유를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