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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탁의 문학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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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스크랩 바퀴에 관한 시(비교해 보세요)
현탁 이윤숙 추천 0 조회 4 13.12.11 08:1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1>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 ]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
자전거 유모차 리어카아의 바퀴
마차의 바퀴
굴러가는 바퀴도 굴리고 싶어진다
가쁜 언덕길을 오를 때
자동차 바퀴도 굴리고 싶어 진다
길 속에 모든 것이 안 보이고
보인다, 망가뜨리고 싶은 어린날도 안 보이고
보이고, 서로 다른 새 떼 지저귀던 앞뒷숲이
보이고 안 보인다, 숨찬 공화국이 안 보이고
보인다, 굴리고 싶어진다, 노점에 쌓여 있는 귤,
옹기점에 엎어져 있는 항아리, 둥그렇게 누워 있는 사람들,
모든 것 떨어지기 전에 한 번 날으는 길 위로.

황동규 시집 1978년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

<2>

[슬픈바퀴 --브레히트를 생각함 ]
 
 
한계령 정상, 이젠 내리막이다
기하급수로 따라붙은 가속도를 조절하느라
조심조심 브레이크를 잡으면
단풍 설악은 풍랑 일렁이는 바다가 된다
산동네 식당 앞에 두 바퀴를 세웠을 땐
향로봉에 찔린 하늘 피가 번지고
몇 채 안 보이는 인가엔
저녁 짓는 연기가 환각제 같다
 
산골식당 문을 젖히고 들어서니
어깨 큰 반백 노인네가 돌아앉아 있다
등은 적당히 굽었고
목엔 역마살 깊이 주름진 강
쥐색 베레모를 푹 눌러쓰고
느긋하게 산채비빔밥을 먹고 있는
노인의 코트는 지독하게 바랜 검은 색이다
그의 왼쪽엔 보다 만 듯 접혀진 책 한 권
슬 살
픔 아




 
노란 표지에 회색 제목 외
더 작은 글씨가 줄을 서 있지만
그건 이미 눈물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노인의 식탁 모서리를 잡고 허물어지는 나
 
두 줄기 뜨거운 강이 뺨을 타고 내려와
책표지에서 합류하여 제목 위로 범람한다
살아온 세월만큼 울었다고 느꼈을 때
노인은 숟가락을 놓고 내 어깨를 다독이다
연기처럼 식당을 빠져나간다
황급히 따라가니, 잠겨 가는 노을 속으로
씁쓸한 웃음과 손짓을 남기고
마른 은행잎 부서지듯 점점이 사라진다
허위적거리며 부르지도 못하고
다시 들어와 책을 집으니
"브레톨트 브레히트 시선"
아직 젊은 베베가 베레모를 비껴쓰고
흑백 명함판 사진으로
나를 깊숙하게 바라본다
접혀진 부분을 펼치니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베베처럼 입술 굳게 다물고 창밖을 보면
비룡폭포에 씻은 설악산 별이 뜬다
댓잎같이 푸른 시절 불꽃으로 살아
스스로 먹장하늘길 걸어가 깨끗한 별로 박힌
먼저 태어났으나 나보다 어린 벗들의 영혼이
하나. 둘. 셋. 넷......
낮달 같은 내 부끄럼을 헨다
 
미안해요 밥이 늦어서
깊은 산골을 자전거로 여행하는 내가
장작난로 옆에 고개 떨군 모습이 안스러운 듯
산채비빔밥을 내려놓는 강원도 아줌마 눈길이 따스하다
오늘은 여기에 바퀴를 세우고
어느 집 헛간에라도 등을 대야겠다

박운규 [세계일보 1991년 당선작]


<3>

[자전거에 대하여]
 
 
두 바퀴 위에 한 사내
수평으로 나란히 전진해야 하는 바퀴들
구른다, 그때마다 살끝에서 잘리워지는
햇살들, 같이 아파할 겨를도 없이
회생한 그림자 속에 웃음들이
쏟아진다
 
추억이 현실을 앞서갈 수는 없어
뒷바퀴가 따르는 만큼의 일정한 거리로
앞서가는 또 하나의 둥근 얼굴이 있어
나는 늘 그 사이 수평의 불안감으로
페달을 밟는다
수많은 이름들의 햇살을
만들고 지우며 다시 만들고
바퀴들이 나아가는 만큼
어깨를 뒤로 젖혀 자리를 옮기는
돌멩이들 가끔 그들의 이탈에 도움을
주는 것처럼.......
그럴 때마다 나는
모퉁이에 다가선다
한번쯤 얄팍한 끈으로 브레이크를 잡지만
가는 몸부대끼며 쇳소리 우는 불안을
감당할 수는 없어
아직 숙련된 멈춤을 배우지도 못했는데
 
두 바퀴 위에 한 사내
간혹 세 바퀴, 네 바퀴 위에 아이들
보인다 추억과 현실을 저울질 하듯
위태로운 페달을 밟는다

윤을식[1995년 세계일보 신춘 당선작]


<4>

[폐타이어가 있는 산책길]

종점, 길은 언제나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막막하게
생의 변두리를 도는 자
외곽에서 중심을 구하는 자의 배경에는
벌판과 바람 길은 휘어져
어디에 닿았는지 가늠할 수 없다
삶은 단지 스쳐가거나 봄볕에
살을 말리는 뿌연 것,
어느날 아주 먼 어느날
우리가 인연이라 말하던 순간도 다 쓰고 나면
바람 빠진 폐타이어 닳아진 허울만 남아
한곳에 쌓일 것이다 재생의 날을 기다리며
우연한 봄날의 담에 기대다 보면
지나온 길의 어디쯤 진실도 있었다고, 말해주는 것들
먼지를 풀풀 날리며 덤프트럭이 지나고
갓 스물의 청춘이 노래한다 마른 연기
피어오르는 들판의 한끝 희망은 그런 대로
연명하기에 좋았으나 몸의 바퀴가 닳아 멈추었을 때
내 앞에 놓인 밥그릇 하나,
햇살이 가득 담긴 사발을 놓고 조는 듯 깨이는 듯
등허리며 머리카락 사이로 따뜻한 기운이 흐르고
길은 그때부터 시작인지 모른다

최영숙 시집  1996년[골목길 하나를 사이로](창작과 비평)


<5>

[폐차장 근처]

이곳에 있는 바퀴들은 이미 속도를 잃었다
나는 이곳에서 비로소 자유롭다
나를 속박하던 이름도 광택도
이곳에는 없다
졸리워도 눈감을 수 없는 내 눈꺼풀
지금 내 눈꺼풀은
꿈꾸기 위해 있다
나는 비로소 지상의 화려한 불을 끄고
내 옆의 해바라기는
꿈같은 지하의 불을 길어 올린다
비로소 자유로운 내 오장육부
내 육체 위에 풀들이 자란다
내 육체가 키우는 풀들은
내가 꿈꾸는 공기의 질량만큼 무성하다
풀들은 말이 없다
말 없음의 풀들 위에서
풀벌레들이 운다
풀벌레들은 울면서
내가 떠나온 도시의 소음과 무작정의 질주를
하나씩 지운다
이제 내 속의 공기는 자유롭다
그 공기 속의 내 꿈도 자유롭다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은 저 흙들처럼
죽음은 결국
또 다른 삶을 기약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이곳에서 모처럼 맑은 햇살에게 인사한다
햇살은 나에게 세상의 어떤 무게도 짐지우지 않고
바람은 내 속에
절망하지 않는 새로운 씨앗을 묻는다

박남희[1997년 서울신문 신춘 당선작]


<6>

[바퀴에 대한 추억]

세발자전거 그리 부럽던 마당가에서
봄날 햇빛 녹이며 코스모스 씨를 뿌린다
햇살이 가슴속에 굴리는 바퀴
눈알 만한 푸른 구슬이 구르며
빼곡한 잎줄기 아래
여름이 스며들면
분홍의 바퀴들이 줄기 끝마다 매달린다
세발자전거 수백 대의 하늘거림
순간 봄날의 햇살이 다시 내려와
바퀴를 마당가에서 굴린다
마당 한가운데서 빙빙 돌며
가슴속으로 굴러드는 바퀴의 궤적
그 낄낄대는 하늘이
품어둔 씨앗을 푸르게 내려준다

조현명 1999년 [푸른 시 창간호]


<7>

[無의 페달을 밟으며]
-자전거의 노래를 들어라 1

두 개의 은륜이 굴러간다
엔진도 기름도 없이 오직
두 다리 힘만으로
은륜의 중심은 텅 비어 있다
그 텅 빔이 바퀴살과 페달을 존재하게 하고
비로소 쓸모 있게 한다
텅 빔의 에너지가 자전거를 나아가게 한다
나는 언제나 은륜의 텅 빈 중심을 닮고 싶었다
은빛 바퀴살들이 텅 빈 중심에 모여
자전거를 굴리듯
내 상상력도 그 텅 빈 중심에 바쳐지길
그리하여 세속의 온갖 속도 바깥에서
찬란한 시의 月輪 굴리기를, 꿈꾸어왔다
놀라워라, 바퀴 안의 無가 나로 하여금
끊임없이 희망의 페달을 밟게 한다
바퀴의 내부를 이루는 무가
은륜처럼 둥근, 생의 노래를 부르게 한다
구르는 은륜 안의 무로
현현한 하늘이, 거센 바람이 지나간다
대붕의 날개가 놀다 간다
은륜의 비어 있음을, 무를 쓸모 없다 비웃지 마라
그 텅 빈 중심이 매연도 굉음도 쓰레기도 없이
시인의 상상력을 굴린다
비루한 일상을 날아올라 심오한 정신의 숲과 대지를 굴리고
마침내 우주를 굴린다
길이여, 나를 태운 은륜은 게으르되 게으르지 않다
무의 페달을 밟으며
내 영혼은 녹슬 겨를도 없이 自轉하리라

유하 시집 2000년 [천일馬화](문학과 지성사)



<8>

바퀴
-속도에 대한 명상5

우리는 너 나 없이 세상을 굴러먹고 다닌다
아버님, 오늘은 어디서 굴러먹다 오셨나요
아들아, 너는 어디서 굴러먹다 이리 늦었느냐
여보, 요즘은 굴러먹기도 예전 같지 않아요
이거, 어디서 굴러먹다 온 뼈다귀야

바퀴를 타자 우리 모두 후레자식이 되어 버렸다

반칠환 2001년[시와 정신]  (여름호)


<9>

[복숭아]
 
비닐 봉지가 터졌다
우르르 교문을 빠져나오는 여고생들처럼
여기저기 흩어진 복숭아
사내는 자전거를 세우고
떨어진 것들을 줍는다

길이가 다른 두 다리로
아까부터 사내는
비스듬히 페달을 밟고 있던 중이었다
허리를 굽혀 복숭아를 주울 때마다
울상이던 바지주름이 잠깐 펴지기도 했다
퇴근길에 가게에 들러
털이 보송보송한 것들만 고르느라
봉지가 새는지도 몰랐던 모양이다
 
 
알알이 쏟아져 멍든 복숭아
뱉은 씨처럼 직장에서 팽개쳐질 때
그리하여 몇 달을 거리에서 보낼 때 만난
어딘가에 부딛혀 짓무른 얼굴들
사내는 아스팔트 위에사
그것들을 가지런히 모아두고
한참을 두리번거렸다
얼마만에 사들고 가는 과일인데
 
 
흠집이 있으면 좀 어떤가
식구들은 둥그렇게 모여
뚝뚝 흐르는 단물까지 빨아먹을 것이다
사내는 겨우 복숭아들을 싣고
페달을 힘껏 밟는다
 
 
자전거 바퀴가 탱탱하다


서광일[2001년 중앙 신인문학상 당선작]


<10>

[바퀴는 끝없이 구른다]

드디어 팡파레 소리가 만국기처럼 펄럭인다.
좌석 뒤에 돗자리를 편 가족은
다닥다닥 붙어 앉아 간밤의 꿈을 응원한다
십이월의 바람은 시린 호주머니에 가득하고
배팅 된 전광판의 숫자가 달음질치기 시작한다
박수 소리보다 선수들의 헬맷이 야무지게 빛난다
비탈 진 길에서는 페달을 더욱 세차게 밟아야 한다
함성이 선수들의 붉은 다리만큼 굵어지면
욕설도 응원을 비는 무슨 부적이라고 간간이
카악 칵 가래침까지 뒤통수에 붙여준다
누가 들여왔을까 세 발 자전거, 아이의
작은 발등에 노란 전표가 붙었다 날아간다
경기 막바지에 다다른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빠르다
허기진 오후까지 채워주는 알진 통감자
사람들 입에서 뜨거운 김이 뿜어져 나온다
자리다툼하는 바퀴에 햇살이 사납게 퉁겨진다
조금만 더! 저기가 고지다!
선수들의 각진 턱이 페달과 함께 부러질 것 같다
골인 지점을 막 지나가는 바퀴들을 향해
사람들의 눈에선 정밀한 플래시 불빛이 터진다
우승한 선수의 주변으로 환성이 모였다 흩어지고
풀죽은 어깨들이 전표처럼 구겨진다
우승을 점치던 책자들과 빨갛게 벌렁거리던 밑줄들과
차갑게 식은 한숨들이 텅 빈 관람석에 채워지고
갈기갈기 라인이 그려진 가슴들이
하루를 올라타고 페달을 굴린다 갑자기 컴컴해져 오는 저녁을
응시하는 눈동자들, 두 개의 검은 바퀴가
이탈할 수 없는 어둠 속 트랙을 따라 털털털 굴러가고 있다.

문지원 2002년 [무등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11>

[어린아이의 굴렁쇠]

어린아이는 끝내 어른이 되고
어른은 다시 어린아이가 된다
시작에서 끝으로 가는 등 굽은 수레바퀴
세월의 채찍을 휘둘러라
굴렁쇠 굴리며 뚝길을 달린다
민들레 피어나고, 꽃씨는 날아가고
바보는 침흘리고, 아이들의 꺄르륵한 꽃웃음소리
어른들은 도너츠처럼 동그렇게
담배연기를 만들어 아이들의 웃음꽃을 피워 올린다
해는 환하게 빛나고
호기심이 키우는 어린아이들
연두빛 노래바람 머금고 나날이 자란다

최동호 시집 2002년 [공놀이하는 달마](민음사)


<12>

[버려진 타이어의 노래]

너에게 어둠은 커다란 동공이다
뚫린 네 가슴으로 거대한 도시가 운다
흙위에서 꿈꾸는 원형의
따스한 피의 혈관
무거운 세상 짐 내려 놓고
이제 안식의 거리에 눕혀진 네 육신
따뜻한 눈물 그리워 하지 마
아무 것도 뒤돌아 보지 마
버려진 영혼은 환상의 지축 뚫어대던 드릴처럼
소음 가득찬 거리를 질주했는데
온갖 거짓과 불신으로 삭아져 버려
모든 것 다 잃어버린 삶의 희망
재생의 피로도 수혈이 안되는구나
언제나 절망은 마른 벽처럼 달라붙어 있어
검은 밤의 빗소리로 뚫어가려 하지만
진흙으로 찍혀진 바퀴의 흔적처럼
네 고뇌는 깊고도 깊다.

가영심 시집 2002년 [저녁향기](문학 아카데미)


<13>

[흔적]

두 다리가 없는 사내는
바퀴 달린 판자 위에 엎드려 있다
그가 밀고 가는 삶에서는
찬송가가 흘러나오고
동전들 굴욕의 또 다른 얼굴처럼
바구니에 들어 있다
손이라도 밟힐 때면
올려다보는 그의 아랫 눈동자가 희번덕거린다
무리의 행인이 건널목을 건너자
그는 마스크를 내리고
누런 가래침을 뱉는다
그때마다 핏줄 같은 전선을 따라
고무 속에서 흔적 없는 다리가 꿈틀거린다

지친 배를 시멘트 바닥에 깔고 있는 것은
세상을 품고 산다는 것일까
언젠가는 그의 꿈이 부화되는 것일까
어쩌면 그는 밤마다
고무 속에서 완성 되가는
희고 단단한 다리로 生의 건널목을
건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한낮 노래를 읊조리며
가장 낮은 세상을 굽어보는 건지도 모른다

그가 느릿느릿 자리를 옮길 때
쓸리는 바닥, 닳은 고무 틈새로
햇빛이 꺾여 들어가고 있다.

윤성택 2002년 1월 [현대시학]


<14>

[지하도에서]

지하도 입구 근처. 잘린 다리에 시커먼 고무타이어를 감고 동냥하는 사내들. 세상에 마른버짐처럼 얼룩얼룩 돋아있는 사내들. 사내들의 몸 속에선 팽팽하게 감겨진 테잎처럼 노래가 가득 차 있다. 세상을향해 공명통을 울리며 찌르레기처럼 울어대는 사내들. 삶의 언저리를 지렁이처럼 축축하게 기어다니는 사내들. 히말라야산 이름 없는 수도승들 五體投地하듯 온몸으로 세상과 교접하는 사내. 비오는 날에도 슬로우로 상영되는 세상이란 화면 속의 사내. 타이어 안에 푸르게 부풀어 있을 다리였던 것들의 오래 된 습성들과 추억들이 고무타이어 둥근 힘으로 되살아난다. 고무타이어가 날마다 사내의 몸을 조금씩 삼키고 있다. 오늘도 세상을 굴러다니는 바퀴들. 애써 구르고 싶은 욕망의 바퀴들. 봄 길을 느릿느릿 굴러간다.

스스로 잘라낸 사내...아랫도리를 감싼

서안나 2002년 [다층사람들 9월호]




<15>

[자전거포 노인]

노인의 손이 닿자 어린 자전거가
신음을 베어 문다 굳은 나사를 틀어
바퀴를 빼내는 노인, 타이어 찢긴 틈으로
고샅길들이 비어져 나와 있다 전봇대들이
취한 눈알을 부라린다 덕지덕지
달라붙은 욕설을 닦아낸 후 상처를
찬찬히 싸매 주는 노인,
비틀린 틀을 곧게 펴고 날카롭게 굽은
바퀴살을 하나하나 펴준다
날카로울수록 약한 법이지, 나사를
단단히 조이고 힘있게 펌프질하자 자전거
깡마른 몸에 탄탄한 근육이 부풀어오른다
축 늘어진 체인을 손본 후 페달을 돌리자
자전거가 된 숨을 토해낸다 고개 숙인 핸들을
툭툭 쳐보는 노인, 이런 것은 치욕이란다,
노인의 팔뚝에서 힘줄이 꿈틀하자 자전거
굽은 등뼈가 꼿꼿해지며 숙였던 고개가
세상 한가운데를 향해 슬며시 들린다 그러자
라이트 속에 멈춰져 있던 사람들이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한다 정차해 있던
트럭이 벌컥벌컥 출발하고 수족관의
생선들이 펄떡인다 짐받이에
집 한 채 실은 자전거가 세상 속으로
질주해 간다 도시의 먼 휘어진
길을 돌 때까지 자전거
어깨에 노인의 커다란 손이 얹혀 있다

최을원 2003년 [시현실 가을호]


<16>

[바다를 질주하는 폐타이어]

바다를 와서야 비로소 이제껏 헛돌았다는 것을 안다
튜브 속에 거북한 바람으 품지 않고
고무 타는 냄새 없이도
질주할수 있다니
목선 양 겨드랑이에 줄줄이 매달려 있는 페타이어,
지상에서 밀려난 게 외려 다행스럽다
하지만 여럿을 다치게 했던 기억을 뿌리치지 못하고
파도 속을 자맥질한다
소금기에 절고 삭아서 어느 새 둥그래진 상처,
닳고 닳은 몸이 너덜너덜해지도록
제 몸 깊이 충격을 받아들인다

손택수 시집 2003년 [호랑이 발자국](창작과 비평사)


<17>

[낡은 자전거가 있는 바다] - 손택수

외갓집 소금창고 구석진 자리에 낡은 자전거 한대가 있다. 군데군데 칠이 벗겨지고 녹이슬었지만, 수리하면 쓸 만하겠는걸. 아마도 나는 길 닿는 곳이면 어디든지 쌩쌩 미끄러져 다녔을 은륜의 눈부신 전성기를 생각했는지 모른다. 논둑길 밭둑길로 새참을 나르고 포플러 푸른 방둑길 따라 바다에 이르던 시절, 그는 아마도 내 이모들의 풋풋한 젊은 날을 빠짐없이 지켜보았으리라. 읍내 영화관 앞에서 빵집 앞에서 참을성 있게 주인을 기다리다, 아카시아 향기 어지러운 방둑길로 푸르릉 푸르릉 바큇살마다 파도를 끼고 굴러다니기도 했을, 어쩌면 그는 열아홉 꽃된 처녀아이를 태우고 두근두근 내 아버지가 될 청년을 만나러 가기도 했으리라. 바다가 보이는 풀밭에 누워 클레멘타인 클레멘타인, 썰물져가는 하모니카 소리에 하염없이 젖어들기도 하였으리라. 그때 풀밭과 바다는 잘 구분이 되질 않아, 멀리서 보면 그는 마치 바다에 누워 즐겨 꿈에 젖는 행복한 몽상가로 보이지 않았을까. 첫사랑처럼 한 번 익히고 나면 여간해선 잘 잊혀지질 않는 자전거, 손잡이 위의 거울 먼지를 닦아본다. 거울은 오래 전부터 그렇게 나를 품고 있었다는 눈치다. 턱없이 높은 앉을깨 위에서 페달이 발에 잘 닿지 않는다고 툭하면 투정을 부리던 철부지 아이를, 맥빠진 앞바퀴 뒷바퀴 타이어에 바람 빵빵 밤 늦도록 소금자루 같은 달을 태우고 비틀대던 방둑길을.

손택수 시집 2003년 [호랑이 발자국](창작과 비평사)

<18>

[추억의 삼천리 자전거포]

면 소재지 중학교를 통학하며 바람 빠진 자전거 타이어에 바람을 넣거나 체인에 기름을 얻어 치던 곳, 중학교 못 간 석이는 그곳에서 세수대야에 주부를 담그고 빵꾸를 때웠다, 기계충의 석이 머리 위로 신작로 지나가던 삼륜차가 하얀 먼지를 씌워놓고 사라지던 곳, 석이에게 미안해 금빛으로 빛나는 중학모자를 벗고 까까머리로 지나던 곳, 몇 대의 중고 자전거가 늘어서 있고 기름때 묻은 헝겊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던 곳, 장날 석이와 함께 주먹만 한 찐빵을 몰래 훔쳐 먹던 시장 옆, 이제는 석이가 주인이 되어 지나는 나를 불러 세워 텅 빈 위장에 막걸리 바람을 빵빵하게 넣어주는, 추억의 삼천리 자전거포

주용일 시집 2003년 [문자들의 다비식은 따듯하다](문학과경계사)

<19>

  
갈매기가 저공비행하는 바닷가
모래톱 위에 타이어 하나 인양되어 있다.
어둠과 손 마주잡고 내다버린 어느 주인의 양심을
바다는 끝내 받아주질 않았다.
그 어느 날 밤의 알리바이를 찾아내려고
파도는 긴 해안선 입에 물고 연일 바다 속을 자맥질 치고
바닷가 마을은 며칠동안 수평선에 갸우뚱하게 걸려 있었다.

타이어에 햇빛이 탱탱하게 스며들고 있다.
저 타이어가 바다 속에서 건져낸 것이라고 믿기 어려운지
생각나면 와서 들여다보고 또 생각나면 다시 와서
들여다 보는 파도가 타이어를 다시 동그랗게 속도가
옮겨 붙을 것만 같다.

며칠새 해변에는 어떤 소금기 머금은 소문이 번졌는지
폐타이어 안팎에 다닥다닥 달라붙은 따개비들이
촘촘하게 한 일가를 이루고 있다.
도레미파 일렬로 달라붙어서
입찬 여분의 속도를 힘껏 빨아내고 있다.


김나영 계간 <문예연구>( 2003, 가을호)


<20>

[폐타이어]


아파트 공터 한 귀퉁이
속도를 잊은 폐타이어
땅속에 반쯤 묻힌 깊은 침묵 속
햇빛을 둥글게 가두어 놓고
동그랗게 누워 있다
그가 그냥 바퀴였을 때는 단지
속도를 섬기는 한 마리 검은 노예일 뿐이었다
날마다 속도에 사육되고
길들어 갔다
다른 속도가 그를 앞질러 갈 때
그는 바르르 떨며
가속 결의를 다져야 했다
자주 바뀌는 공중의 표정 앞에서는
잽싸게 꼬리를 사려야 했다
검고 딱딱한 세계 위에서 세월을 소모하며
제한된 영역만 누려야 했다
지금 저 동그라미는 자신의 일생이
얼마나 속도에 짓눌려 왔는지 기억하고 있을까
튕겨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쯤은 했으리라
예약된 모든 속도들 다 빠져나가고
속도는 한 줌 모래처럼 눈부신 한계였을 뿐
얼마나 어지러웠을까
속도에서 벗어나기 위해 속도에 매달린 세월
그가 속도의 덫에서 풀려나던 날
온몸이 닳도록 달려온 일생을 위로하듯
바람은 그의 몸을 부드럽게 핥아주었다
잠시 뒤의 어떤 바람은 풀씨랑 꽃씨를
데리고 와서 놀아주었다
벌레들의 따뜻한 집이 되었다
잃어버린 속도의 기억 한가운데
초록의 꿈들이 자란다
노란 달맞이꽃은 왕관처럼 환히 피어 있다

김종현 2004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21>

[현우익스프레스]

왼쪽 브레이크 손잡이가 끊어진 삼천리표 포인트 자전거 바퀴를 굴리며 한
라아파트 201동 앞을 천천히 지나가고 있을 때, 누군가 또 이사를 떠나고 있
는지 마당에서는 사닥다리를 타고 내려오는 이삿짐들이 현우익스프레스 안
으로 채워지고 있다 - 빠르고 정확하게- 그날의 현우씨처럼 인부들은 말없
이 트럭의 빈 구석을 찾아 짐을 나르고, 박스에 꽁꽁 묶여 순식간에 미끄러져
내려오는 세간들 속에서 곡예사처럼 민첩하게 몸을 날리던 현우씨가 언뜻언
뜻 보인다 이삿짐센터 시작한 지 두 해만에 5층 고가사닥다리에서 가벼운 짐
짝처럼 떨어져 내린 현우씨, 간혹 헐렁한 내 자전거 고무바퀴를 손으로 꾹꾹
누르며 공기압이 더 탱탱해야 빨리 달릴 수 있다고 일러주던 현우씨의 트럭
이 거칠게 아파트 상가 모퉁이를 빠져나가고 있다
새들이 허공을 유유히 헛디디며 하늘로 날아오른다 허리를 굽힌 채- 빠르
고 정확하게- 자전거 페달 돌리며 따라갈수록 점점 높이 날아오르는 새떼들,
어느새 보이지 않는 날갯짓, 사람들은 한없이 먼 곳으로 이사를 떠나기 위해
생의 단 한번 급하게 한 발짝 허공으로라도 내딛는 것인가 생의 심연으로 추
락해버린 현우씨의 꿈들이 먼지 풀풀 날리며 내 자전거를 앞질러 지나간다

박윤일 2004년 [계간 시작 제 3회 신인상 당선작]


<22>

[개미는 시동을 끄지 않는다]


빵부스러기를 끌고 가는 개미
개미 가는 길을 신발로 가로막지 마라
끓어질 듯 가는 허리에 손가락을 얹지 마라
죽을 때까지 시동을 끄지 않는
개미 한 마리가 손등으로 오른다
언젠가 허리띠를 졸라매던 아버지
바짝 마른 허기가 만져질 것이다

아버지가 털털거리는 생선 트럭을 끌고
돌무지 비탈길을 누비고 다녔다
생선 상자 위로 쏟아지는 땡볕
신경질적으로 바퀴를 두드리는 돌덩이들
왕왕거리는 메가폰 소리를 뚫으며
식식거리며 아버지는 나아가고 있었다
거친 시동이 꺼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괜찮아, 내 허리띠를 붙잡아라
그날도 아버지는 덜컹거리며 나아가고 있었다

손등에 오른 개미를 가만히 내려놓는 당신
개미 앞길에 놓인 돌멩이를 치워준다
멀어져 가는 아버지,
당신의 눈 속으로 기어든 개미가
시동을 건다 여섯 개의 다리가 붕붕거린다

정경미 2005년 [무등일보 신춘 문예 당선작]


<23>

[자전거 도둑]

봄밤이 무르익다
누군가의 자전거가 세워져있다
복사꽃과 달빛을 누비며 달리고 싶은 거다
자전거에 냉큼 올라가서는 핸들을 모으고
엉덩이를 높이 쳐들고
은빛 페달을 신나게 밟아보는 거다
꽃나무를 사이사이 빠지며
달 모퉁이에서 핸들을 냅다 꺾기도 하면서
그리고 불현듯 급정거도 해보는 거다
공회전하다
자전거에 올라탄 채 공회전하다
뒷바퀴에 복사꽃잎 하르르 날리며
달빛 자르르 깔려들며
자르르 하르르

신현정 -현대시 (2005년 5월호)


<24>

[자전거, 이 강산 낙화유수]

길가 철책 너머, 오래 방치된 자전거를 안다 잡풀들 사이에서 썩어가는 뼈대들, 접혀진 타이어엔 끊어진 길들의 지문이 찍혀 있고 체인마다 틈입해 화석처럼 굳은 피로들, 한때는 자전거였던 그 자전거


한 사내를 안다 새벽, 비좁고 자주 꺾인 골목을 돌아 돌아서 우유 한 병 조용히 놓고 가던 반백의 왜소한 사내, 수금할 때면, 고맙구먼유, 열 번도 더하던 사내, 유난히 부끄럼 많던 그 사내, 무섭게 질주하는 도시, 어느 초겨울 미명의 새벽 차도를 끝내 다 건너지 못한 그 사내


  그 노래를 안다 빙판 언덕배기 나자빠진 자전거, 깨진 병 쪼가리들 만지작거리며 오랫동안 앉아 있던 그 노래, 이 강산 낙화유수 흐르고 흘러


낙엽 한 잎 강물에 떨어져 멀리도 떠내려 왔는데, 가끔씩 새벽 속에서 흥얼흥얼 노랫가락 들리고 창을 열면 낡은 짐자전거 한 대 저만치 가는, 참 오래된 그 노래를 나는 지금도 안다

최을원-현대시(2005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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