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이들이 너무 귀여워서 갑자기 쓴 글
우리 백현이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날에 바로 옆집에서 여주가 태어났어요. 제 혼현인 하얀 늑대와 그이의 혼현인 허스키가 적절히 섞인 백현이는 울프독이랍니다. 어찌나 쑥쑥 자라는지 어느순간 그이의 몸집보다 더 커져 있더라구요.
우리 백현이가 제 하울링을 처음 듣고 우왕왕- 어색하게 소리를 내기 시작할 때쯤 태어난 여주는 눈도 못 뜬 갓난 고양이었답니다. 바로 옆집인데 둘은 어찌나 반대인지. 또 우리 아이는 호기심이 많았어요. 예쁜 것도 좋아했지요. 아마 그래서 더 여주를 졸졸 쫓아다녔는지도 몰라요.
접힌 귀가 다 펴지지도 않은 채 팔랑이며 뛰어다니던 백현이는 그날 처음 여주의 목소리를 들었어요. 옆집에서 희미하게 왜옹왜옹- 서럽게 우는 여주의 가냘픈 울음소릴요. 뽁뽁거리는 장난감을 벌써 두 개째 터트리던 백현이는 그 소리를 듣고 현관문을 그렇게 뚫어져라 바라보더라구요.
호기심이 가장 최고로 많던 시기의 천방지축 아이에게 아직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갓난 고양이를 보여줄 수가 없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여주는 어릴 때 참 많이 울었던 것 같아요. 하루에도 몇 번씩 냐아옹, 냐아옹 울음소리가 들렸거든요.
아 참, 여주의 아버지는 제 고등학교 동창인데 그는 그 유명한 멸종위기 야수인 스라소니였어요. 그래서 더욱 유난히 작게 태어난 여주를 많이 보호하셨죠. 때문에 저는 더 백현이에게 각인시켰어요. 만약 여주를 처음 보게 되는 날이 오면 절대 섣불리 행동하지 마라, 라고 말이죠.
저는 아직도 우리 백현이와 여주가 처음 만났던 날을 잊지 못합니다. 둘은 성격도 정반대였어요. 여주는 낯설음도 많이 타고 경계도 많이 하거든요. 처음 백현이를 데리고 옆집으로 건너갔을 때 여주는 제 엄마 품에 안겨서 내려오질 않았어요. 내려줄라 하면 그렇게 필사적으로 싫다고 붙들었었죠.
그녀의 아버지와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던 여주는 유일하게 딱 하나, 그 푸른 눈동자만 물려받은 것 같았어요. 우리 백현이가 제게 했던 말이 아직도 생각나네요. 저 아이 눈동자가 엄마 목걸이에 박힌 보석이랑 색이 똑같아, 라고 말이죠.
한동안 우리 아이는 그녀의 눈동자만 뚫어져라 바라봤어요. 여주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난 백현이는 먼저 혼현을 자유자재로 풀 수 있었거든요. 아장아장 걸어 그녀의 앞으로 걸어가 대놓고 구경하던 뒷모습이 어찌나 웃기고 귀엽던지. 결국에 그 경계심 어린 그녀에게 손등을 한번 콱 물렸답니다.
그녀의 부모님은 저와 백현이에게 몇 번이나 사과했지만,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고양이가 얼마나 세게 물 수 있었을까요. 저희 아이 손등에는 아주 작은 송곳니 자국이 딱 두 개 정도만 박혀 있었답니다.
그녀는 제 눈앞에서 사람으로 뿅, 또 강아지로 뿅 변하는 제 아이를 신기한 눈초리로 바라보는 것 같더라구요. 경계심이 너무 강해서 한 이주 정도는 백현이에게 다가가지도 못 하고, 그 앞에서 재롱이나 부리듯 하는 백현이를 구경만 했던 것 같아요.
그녀는 백현이를 처음 보고 삼주 만에 그녀의 어머니 품에서 내려와 저희 아이한테 사뿐사뿐 걸어와 냄새를 킁킁 맡기 시작했어요. 그 과정에서 저희 백현이가 그 작은 고양이를 덥썩 잡아채는 바람에 놀란 여주는 또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구요. 백현아, 엄마가 섣불리 행동하지 말라고 그랬잖니.
"죄송합니다아... 고양이야 미아내..."
잔뜩 풀이 죽은 저희 아이는 여주에게 미안했는지 제 뒤에 꼭 숨어서 왜옹왜옹 우는 여주를 바라보지도 못 했어요. 그녀의 부모님이 그런 백현이에게 괜찮다, 머리까지 쓰다듬어 주셨지만 그는 그러지 못한 모양이예요. 한동안 저를 따라 여주네 집으로 쫓아오던 아이가 발길을 끊었거든요.
그래도 그녀가 많이 보고는 싶었는지, 오랜만에 제 손을 잡고 찾아갔어요. 저와 손가락까지 걸며 이번엔 여주 놀라게 하면 안 된다며 약속도 하구요.
항상 옆집으로 건너가면 그녀의 어머님이 여주를 품에 안아들고 젖병을 물리고 있었는데 오늘은 그녀의 품이 허전하네요. 여주가 어디갔을까, 백현아. 저희 아이는 제 뒤에 꽁꽁 붙어 숨으면서도 고개를 빼고 이리저리 살피며 여주를 찾는 것 같았어요.
아무래도 저희 아이는 처음 제대로 보는 여주를 알아보지 못 하는 것 같았거든요. 거실 창문 앞에서 앉아 혼자 블록놀이를 하는 그녀를 말이죠. 그녀는 저의 손바닥만한 귀여운 원피스를 입고 머리를 예쁘게 땋아 리본모양의 핀을 뒷머리에 꽂고 있었어요. 어머, 여주 공주님이네.
제 말에 저희 아이가 그제서야 그녀가 있는 쪽을 보았답니다. 아마 그때 우리 아이가 그녀에게 반하지 않았을까, 저는 감히 확신해 봅니다. 우리 백현이는 여주 제대로 보는 거 처음이지? 제 뒤에 숨어있는 그의 등을 그녀에게 밀어주었어요. 이렇게 멀리서 보니까 저희 아이가 덩치가 큰 편인 것 같긴 하더라구요. 둘이 머리통 하나 차이 나는 게 왜 그렇게 웃기던지.
여주는 제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뒤를 돌아 저희 백현이를 뚫어져라 바라봤어요. 저희 아이보다 눈치가 빠른 그녀는 이미 백현이를 기억 저편에서 떠올린 것 같아 보이네요. 통통하게 젖살이 오른 그녀의 동그란 얼굴이 참 사랑스럽게 느껴졌어요. 저희 백현이도 그녀의 눈동자를 보고 나서야 홀린 듯 말했죠.
"...너 진짜 예쁘다."
그녀는 저희 아이의 말에도 고개를 갸웃하고는 금방 흥미가 사라진 듯 다시 블록을 쌓기 시작했어요. 그녀의 어머님 말로는 이제야 혼현을 풀 수는 있으나 아직 한글은 못 알아듣는다고 하더군요.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저희 아이는 그녀 앞에 가 질문을 그렇게 던져대요. 너는 왜 눈동자가 파란색이야?
그렇게 평생 친해지지 않을 것 같던 둘은 금방 친해졌어요. 여주가 이제 더 이상 쿵 하고 넘어지지 않을 정도로 두 발로 서서 균형을 잡을 수 있게 되었을 때에. 둘은 어딜 그렇게 맨날 나가 놀다 들어오는 건지. 그녀의 한 손을 꼭 붙잡고 제 아이는 잘도 돌아다녔답니다.
둘은 유치원도 같은 곳으로 갔어요. 아, 물론 어린이집도 같은 곳을 나왔구요. 먼저 말을 뗀 저희 아이가 그녀에게 한글을 가르쳐줬는데. 항상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서 받아오는 받아쓰기 점수는 그녀가 더 월등히 높았답니다. 그 점수에 저희 아이는 아마 여주를 조금씩 괴롭혔는지도 몰라요. 물론 그 나이때에 관심있는 여학생한테 하는 유치한 장난거리들 같은 거 말이죠.
그러다가 한 번은 초등학교에서 그녀가 입고 간 핑크색 치마를 몰래 뒤집은 남학생 때문에 여주가 학교에서 엉엉 울었다 들었어요. 그때 저는 그녀의 부모님과 같이 있었거든요. 학교 선생님께서 그녀의 부모님에게 직접 전화를 거셨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그저 다른 집 자식 걱정뿐이었는데 저에게도 같이 전화가 걸려오는 거예요.
어머니, 백현이가요 같은 반 친구를 때려서요.
왜 그랬니, 백현아. 그녀의 부모님과 함께 부랴부랴 교무실로 달려갔을 땐, 눈물을 매달고 훌쩍이는 여주의 손을 꼭 맞잡은 채 그녀를 제 뒤로 숨기고 주먹을 꽉 쥔 백현이가 맞은편의 동급생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어요. 백현이에게 맞은 그 아이는 어깨와 턱 쪽에 멍을 매달고 있었구요.
아무 말도 안 하던 백현이는 그저 죄송합니다, 반대편 아이의 부모님에게 사과만 전했어요. 나중에 그 아이가 먼저 여주를 괴롭혔다는 사실이 확인되자, 저희 백현이에게 맞은 아이의 부모님은 여주에게 대신 사과를 전하며 다행히 좋게 마무리가 되었죠.
그날 교무실을 나설 때까지도 아무 말도 안 하던 백현이가 집에 와서 저는 다시 물었어요. 말 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아도 돼, 백현아. 하지만 네가 무슨 의도를 가지고 그 아이를 때렸든, 백현이가 친구를 때렸다는 결과는 오해만 부풀리니까 다음부터는 그러지 마. 알겠지 백현아? 제 말에 입을 꾹 닫고 있던 아이가 차분하게 입을 열었어요.
"걔가 먼저 그랬어요. 걔가 먼저 김여주 치마를.... 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계속 했어요. 심지어 무슨 색 속바지를 입었는지 반 아이들한테 크게 떠들었어요. 그래서 김여주가 울었단 말이예요."
저는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가만히 백현이를 바라봤어요. 여주가 우는 게 싫었구나, 백현이가. 여주 많이 좋아하나 보네. 눈을 크게 치켜뜨고 아니라며 손사래를 칠 것 같던 아이는 그저 묵묵히 침묵을 지켰어요. 이제 괴롭히지 않을 거예요. 그리곤 제게 다짐하듯 말하는 백현이가 이제 다 컸구나, 그때 느꼈었죠.
둘은 학창시절 내내 붙어 있었어요. 중학교도, 고등학교도. 처음 여주가 버스를 다섯 정거장 더 가면 있는 여고에 간다고 했을 때 저희 아이는 탐탁치 않아 하는 것 같았어요. 그렇게 여고를 가겠다고 견고하던 그녀의 마음을 어떻게 돌린건지. 결국엔 둘은 같은 학교를 졸업했지만요. 둘은 성인이 되기 직전까지 같은 교복을 나란히 입고 졸업사진을 찍었어요.
초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그녀의 받아쓰기 점수가 저희 아이보다 훨씬 좋았고, 같은 학습지를 해도 그녀의 진도가 훨씬 빨랐어요. 저희 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 수준의 수학을 풀고 있을 때, 그녀는 벌써 중학교 1학년 교육과정을 예습하고 있었으니까요.
제 말로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확실히 그이의 머리를 닮은 백현이는 공부를 꽤 잘했어요. 그간 노력을 안 해서 그렇지. 저희 아이가 서울에 알아주는 대학교를 최종합격하고 합격증명서가 우편으로 날아왔을 때, 저는 아이가 무척이나 자랑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좋지 않았어요.
알고보니 여주는 백현이가 붙은 학교에 아쉽게 떨어진 것 같았어요. 수능이 끝나고 나서도 며칠을 방에 틀어박혀 무언가를 고민하던 백현이는 끝내 자신이 최종합격한 그 학교를 가지 않았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녀와 같은 학교를 정시로 하향지원해서 다시 제가 갈 학교를 바꾼 거였더군요. 물론 그녀와 그가 나온 학교도 알아주는 명문 학교였어요. 백현이가 처음으로 붙은 그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했을 때 제가 다 아쉽긴 했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가 있나요.
백현이는 그녀에게 자신이 1지망 학교에 붙었다는 사실도 말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사실 백현이만 붙었던 그 학교는 그녀가 중학생 때부터 제일 가고 싶어했던 학교였거든요. 평생 가는 비밀이 어딨겠냐만은. 결국 그녀에게 그 사실이 탄로 난 백현이는 그날 밤 집에 와서 처음으로 엉엉 울었어요. 그녀가 제게 헤어지자고 했다고. 저는 너무 놀랐답니다.
그가 이리 서럽게 우는 것을 처음 봐서 그렇기도 했고, 둘이 교제하는 줄도 몰랐습니다. 알고보니 그녀가 했던 이별 통로도 홧김에 한 것이었는데 백현이가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였던 거죠.
둘은 학교를 졸업 후 같은 직장에서 사내커플로 이름 조금 날렸다고 하더군요. 물론 백현이보다 2년 일찍 졸업한 그녀가 그의 직속 상사가 되어 엄청 괴롭힘 받았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걸 차곡차곡 쌓아두던 그가 결국 그녀를 향한 복수심을 터뜨린 거죠.
그게 그들의 연애소식이었고, 그대로 회사에 소문이 크게 나 박수갈채를 받았더랍니다. 그 덕분에 그녀는 한 달 가량을 얼굴도 제대로 못 들고 다녔다고 소식을 전하는데 어찌나 귀엽던지.
저희 아이와 그녀의 어릴 적 사진을 보다보니 이야기가 길어졌네요. 아직도 그의 지갑 속에는 여주의 어릴 적 사진이 코팅되어 들어있거든요. 볼이 통통하게 올라 공주님마냥 머리를 예쁘게 하고 그의 손가락 하나를 작은 손으로 꼭 쥔 채 웃고 있는 그녀의 사진 말이죠. 아마 유치원을 나오면서 찍었던 사진 같은데.
그 옆으로 세워진 작은 액자를 하나 들어 봅니다. 그 안에는 확연히 큰 두 남녀가 입을 맞춘 채 서로를 보고 환하게 웃고 있어요. 그의 지갑 속 어렸던 그녀와, 액자 속 하얀 드레스를 입고 웃고 있는 그녀를 번갈아 봅니다.
"...엄마 뭐해? 울어?"
내일은 그와 그녀의 결혼식이 있는 날입니다.
"아... 엄마 왜 울어. 응?"
그가 꼭 저를 안아 줍니다. 넓은 품이 이제는 아이 아빠보다 훨씬 듬직해져 있더군요. 오랜만에 저도 그 아이 아빠와의 결혼식 전날이 떠오르게 되는 밤입니다. 그때에도 그 품에 안겨 꼭 마치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신부가 된 것 같고, 보호받는 기분이 들었었는데.
이제 그에게 사랑받는 그녀도 같은 마음이 들겠죠. 둘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행복하게 잘 살 겁니다.
"...여주가 너무 예뻐서 운다."
"참나."
헛웃음을 터트린 그가 저를 달래주다가 품에서 떼어놓습니다. 누구 엄마야, 대체. 눈물을 훔친 제가 다시 한번 그를 꼭 껴안습니다.
"여주 외롭게 하지 말고."
"...."
"매일 아침마다 사랑한다고 해줘."
"그건 지금도 해."
"앞으로 같이 살 날이 얼만데, 그 마음이 지금과 평생 같진 않겠지. 그래도 그녀를 혼자 두지 마."
제 말을 진지하게 듣던 그가 작게 고개를 끄덕입니다. 저는 그의 책상 위에 올라간 청첩장을 눈에 다시 담아봅니다.
「 오래 전 시작된 작은 두 인연이 연인이 되었습니다. 저희 연인은 앞으로 서로에게 봄날이 되어주려 합니다.
저희의 새로운 봄날에 마음껏 사랑할 수 있도록 축복해주세요.
Byun baekhyun x Kim yeoju 」
"뭐해?"
냐아아옹-. 그녀가 짧게 운다. 이 정도 짬이면 금방 알아들을 수 있다. 쉬고 있는 중이니까 건들지 말라는 거다.
내가 그녀에게 한눈에 반했던 그 파란색 눈동자가 눈꺼풀이 스르르 닫히며 사라진다. 햇살을 받는 작은 코가 움찔움찔 움직인다. 그녀의 꼬리가 바닥에 축 쳐졌다가 끝을 살짝 들어 살랑살랑 흔들린다. 나는 창문 앞에서 들어오는 햇빛에 일광욕 하는 그녀를 바라보다 무릎걸음으로 다가간다.
나는 그녀의 몸을 베개 삼아 내 머리를 대고 엎드린다. 그녀가 작은 손을 들어 내 정수리를 꾹꾹 누른다. 무거우니까 좀 비켜. 행동에 그런 말이 담겨있다. 나는 못 들은 척 팔을 뻗어 그녀의 몸을 내 쪽으로 주욱 끌어당긴다. 저항없이 그녀의 몸이 주르륵 끌려온다. 급하게 벗어나려는 그녀를 붙잡았다.
부스스한 머리를 아래로 약하게 묶은 그녀의 얼굴이 드러난다. 손바닥으로 내 얼굴을 밀며 표정을 찡그린다. 나는 그런 그녀를 뒤에서 껴안는다. 옷 한쪽이 살짝 내려가 드러난 어깨 위에 나는 얼굴을 올려 기댄다. 그녀의 눈이 느릿하게 뒤에 있는 내게로 고정된다. 묘하게 푸른빛이 도는 눈을 마주한다. 나는 그녀의 입술에 짧게 입을 맞춘다.
"진짜 예쁘다 너."
"새삼."
"뭐야."
"뭐가."
뻔뻔하게 그녀가 고개를 돌린다. 이게 하도 예쁘다, 예쁘다 해주니까. 혼내듯 말하자 그녀의 얼굴이 더 시건방지게 변한다. 그래서 못생겼다는 거야? 누가 그래. 절대 아니지. 내가 말하자 그녀가 어이 없다는 듯 바람 빠지는 소리를 웃음으로 터트린다.
"그럴 거면 예쁘다고 하지나 말던가."
"나 너한테 예쁘다고 한 적 많이 없는데?"
"아닌데."
그녀가 고개를 돌려 다시 나와 마주한다. 그녀의 나른한 목소리가 귓가에 가까이 파고든다. 눈이 스르르 감길 정도로 아늑한 목소리다.
"맨날 나한테 예쁘다고 했는데."
"누가."
"누구일 것 같은데?"
"난 아닌데. 어떤 개잡놈이야."
내가 장난스레 말하자 그녀의 표정이 묘하게 변한다.
"너 이름 개잡놈으로 바꿔야겠다."
"나 그런 적 없는데. 나 딱 두 번 했어."
"너 맨날 나한테 예쁘다고 했어."
"아니 내가 언,"
"맨날 나 예뻐 죽겠다는 눈으로 바라봤잖아. 지금도."
나는 입을 꾹 닫는다. 거울이라도 갖다 줄 기세에 무어라 반박할 말이 없다. 너는 무슨 그런 걸 다 기억하고 그러냐. 그녀가 피식 웃음을 터트린다.
"할 말 없지 너?"
"무슨... 아 웃는 거 봐. 초딩같아."
"아, 초등학생 때 그거 생각난다."
너 친구 패서 교무실 불려간 거. 기억이 나지 않이 미간을 찌푸리며 고민하다 그 날을 떠올린다. 아. 기억이 떠오르자마자 나는 곧 얼굴까지 구겨진다.
"걔가 먼저 네 치마 뒤집, 아. 너 이제 치마 입지도 마."
"아 웃겨."
"뭐가 웃겨. 그때 나는 눈알이 뒤집어지는 줄 알았어."
그녀가 이제는 아예 웃음이 터져 깔깔 웃는다. 그게 얼마나 웃기다고 눈꼬리에 눈물까지 매단 채로. 그녀는 검지 손가락으로 눈물을 슥 훔쳐낸다.
"너 어머니한테 쪼르르 갖다 일러바치냐 그걸 또?"
"엄마가 너한테 말해줘?"
"근데 왜 그건 말 안 해드려?"
"뭐가."
"너 그때 걔가 내 치마 뒤집어서 때린 거 아니잖아."
"더 맞아야 해, 그런 놈은."
"아니, 그래서 말 안 했냐구."
"어, 안 했어."
"너 웃기다. 엄청."
그 어린 새끼의 놈이 그녀의 치마를 뒤집어 엉덩이를 만져댔다고. 그녀는 하지 말라며 손을 몇 번이나 내쳤지만, 그 당시의 어린 새끼 고양이가 힘으로 누군가를 이길 수나 있었겠는가. 결국 그녀는 엉엉 눈물을 터트렸고, 그녀의 엉덩이를.... 씨발. 지금 생각해도 열 받으니까 상상하지 말아야겠다.
아무튼 그 광경을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하고 나는 그대로 눈이 뒤집혔다. 뒤집힌 게 다행이지 돌아가기 까지 했으면 난 아마 그 아이를 때려 눕혀 병원에 입원까지 시켰을 지도 모른다.
나는 그녀의 푸른 눈동자를 가린 눈꺼풀과 이마 위에 차례대로 입을 맞춘다.
"나만 만질 수 있는 건데."
"...."
그녀가 저질이라는 듯 오만상을 찌푸리며 나를 노려본다. 나는 그녀의 엉덩이를 두어번 통통 두드린다. 튀어나온 그녀의 꼬리가 내 손등을 찰싹 내려친다. 하지 마. 그러면서 살랑살랑 흔들린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매만지다가 이마부터 머리를 뒤로 슥슥 쓰다듬는다. 그녀가 두 눈을 꼭 감고 내 손에 얼굴을 맡긴다.
"왜 웃어?"
"귀여워서."
그녀의 작은 얼굴이 내 가슴팍에 기대어 닿는다. 나는 그녀의 몸을 받친 채 그녀를 따라 창밖의 풍경을 내다본다.
"여주야."
"...."
"여주야."
"말해. 듣고 있어."
"...."
"말하라니까 또 안 하네."
얘 또 장난치네. 그런 말과 같은 뉘앙스였다.
"나랑 왜 결혼 한 거야?"
"뭐라는 거야."
"내가 어디가 좋아서 결혼하겠다고 결심한 거야?"
너 원래 비혼주의잖아. 내 말에 그녀는 짧게 대답했다. 그냥. 그 두 글자에 기분이 밍숭맹숭했다. 좋은 거야, 안 좋은 거야.
"그거 말고 다른 이유는 없어?"
"웃기잖아."
"또."
"잘생겼잖아."
"또."
"귀여워."
"또."
"...."
그녀의 미간이 꿈틀거리더니 앞에 놓인 뻥튀기를 집어 내 입안에 욱여넣는다. 이거 먹고 조용히 좀 해. 나는 입 안에 들어온 뻥튀기를 우걱우걱 씹어 넘기고 말했다. 또.
"한 대 맞을래."
"또."
"몇 대 맞을래."
입 집어넣어라. 입을 삐죽 내밀자 그녀가 말한다. 진짜 가끔가다 넌 유치하다니까.
"그래서 싫어?"
"아니 좋아. 아들 키우는 것 같고. 애는 없어도 되겠더라."
"...."
나는 내게서 등을 돌리고 있는 그녀의 몸을 질질 끌어 나를 마주보게 한다. 내 힘에 팔랑팔랑 움직인 그녀가 몸에 힘을 빼고 축 늘어진다.
"애 안 낳을 거야?"
"응."
"진짜 안 낳을 거야?"
"응."
"나랑 애 안 낳을,"
"또 시작했다."
그녀가 손바닥을 들어 내 입술을 탁 친다. 내 입술을 치고 떨어지는 그녀의 손목을 잡아 나는 그녀의 손가락을 입에 넣어 앙 깨문다.
"너 닮은 딸이었으면 좋겠어. 네 파란 눈동자도 그대로 빼다 박은 새끼 고양이였으면 좋겠어."
"누가 낳아준대?"
"리틀 김여주 였으면 좋겠어. 너 진짜 귀엽단 말이야. 네 어머님이 너한테 입혀주신 것처럼 나도 일주일에 한 번씩 공주님 옷 바꿔서 입혀줘야지."
"그래. 많이 해라."
"머리핀은 꼭 리본 모양으로 꽂아줘야지. 아이가 좋아하는 장난감 잔뜩 사줄 거야. 아, 캣타워는 63빌딩 뺨치는 초호화로."
"그래. 너 많이 하라고."
그녀는 관심 없다는 듯 무심하게 대답한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덥썩 잡아챈다. 감겨져 있던 눈꺼풀이 들어올려지자 영롱한 눈동자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진짜 애 안 낳을 거야?"
"...."
"우리 오늘 콘돔 하지 말,"
"너 혼자 실컷 많이 하라고."
그녀가 내 손을 팍 뿌리친다. 내내 얌전히 안겨있던 내 품에서 벗어나 부엌으로 향한다. 냉장고에서 꺼내 직접 우린 시원한 보리차를 컵에 따른다. 나는 그녀의 행동 과정을 얌전히 보고만 있는다. 내 시선을 느낀 그녀가 컵을 탁 소리 나게 내려놓고 입을 연다.
"난 아직 아이 계획 없어."
"...."
"아직 우리 같이 살 날이 얼마나 남았는데. 우리 둘만 함께 해도 난 괜찮을 것 같아."
"...."
"근데 언젠가는 아이가 없어서 외롭기도 하겠지. 그때 차차 고민해봐도 늦지 않을 것 같아."
"...."
나는 그녀를 홀린 듯 바라보다 홀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예쁜 공주님도 좋고, 듬직한 왕자님도 좋아. 난 우리 엄마처럼 머리 예쁘게 땋는 솜씨는 없거든."
"그럼 둘 낳자."
그녀는 나를 흘겨보다 아무 말 없이 방으로 들어간다. 그녀가 들어간 방을 가만히 바라보다 닫힌 문이 다시 열리고 그녀가 고개를 빼꼼 내민다. 안 들어와? 나는 그제야 그녀가 들어간 방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침대에 누워 이불 속으로 야무지게 들어간 그녀가 작은 얼굴만 내밀어 나를 올려다본다.
"재워줘."
나 낮잠시간이야. 새침하게 말하며 그녀가 눈을 감는다. 나는 그녀의 옆에 누워 그녀의 목 밑에 내 팔을 넣어준다. 내 팔을 베고 옆으로 돌아누운 그녀가 내 허리에 팔을 두른다.
"아이 있으면 지금 우리 둘 사이에 꼭 끼어 들텐데."
"아이 없어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아."
그녀가 웃는다. 나는 웃는 그녀를 따라 웃는다. 그녀가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녀의 손길이 너무 좋아 나도 모르게 주체 못하고 튀어나온 귀를 그녀가 툭 건든다. 내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린다. 나는 그녀를 품에 안아 똑같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래 우리 이대로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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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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