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중요한 것(2024년 4월 5일 금요기도회 설교)
성경 : 마가복음 10:35-45(신약 72)
어떤 할머니가 뒤늦게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매우 열심히 교회를 다녔습니다. 주일예배는 물론 새벽기도까지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은혜로운 부흥집회가 있었던 다음 날부터 할머니가 교회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걱정이 된 목사님이 할머니 댁을 심방했습니다. “할머니, 요즘 왜 교회 안 나오세요? 어디 불편한 데라도 있으세요?” 그러자 할머니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습니다. “아이구, 목사님께서 내 속을 훤히 아시네요. 지난 번 부흥강사님이 다녀간 이후부터 내 속이 편하질 않아요.” “아, 그러세요? 부흥강사님이 어쨌는데요?”
그러자 할머니가 대답했습니다. “그 때 부흥강사님이 열심히 기도하면 하나님이 영감을 두 배나 주신다고 했잖아요. 지금 영감 하나로도 골치가 아픈데, 영감이 둘이 되면 난 힘들어 죽는다구요.”[출처] 할머니가 교회 안 나가는 이유 (재미있는 설교유머) |작성자 준솜승빠
고 한경직 목사님께서 신문기자와 인터뷰를 하셨는데 ‘사람들은 좋은 열매를 맺으려만 하는데 사실은 먼저 좋은 나무가 되려고 하면 열매는 저절로 맺게 되지 않겠는가?’ 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늘 결과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언제나 한 결 같은 원칙은 결과가 좋으려면 과정이 좋아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안 좋은 나무를 심어놓고 좋은 열매를 기다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과정을 성실하게 하지 않고 좋은 결과를 기대하는 것도 어리석은 일입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과정에 충실하지 않고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고 원망을 하고 한탄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잘되고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중요한 것을 소홀히 여기게 되면 결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없고 잘되고 축복받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 결과만 좋게 나오면 된다는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중요한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경우에는 결단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없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을 받기를 원한다면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인지를 분별할 줄 아는 영적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세우실 나라에서 서로 높은 자리를 달라고 요청하는 것에 대해서 답변하신 내용입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세베대의 아들들인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에게 나아와서 35절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가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36절에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37절에 “주의 영광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주옵소서” 라고 대답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는 예수님의 이모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예수님과 이종사촌 관계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주님께서 나라를 세우시면 자신들이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 말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38절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야고보와 요한은 39절 앞부분에 “할 수 있나이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39-40절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내가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준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이 이렇게 예수님에게 특별한 자리를 요구한 것을 안 10명의 제자들은 야고보와 요한에 대해서 화가 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다른 제자들의 마음을 아시고 부르셔서 41-45절까지 보면
10:41 “열 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화를 내거늘”
10:42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10:43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10:44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야고보와 요한으로부터 시작된 자리에 대한 욕심에 대해서 예수님은 크고자 하면 섬기는 자가 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종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씀하시면 예수님은 섬기려고 와서 자신의 목숨을 대속물로 주려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더 중요한 것” 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정말 중요한 것을 알지 못하고 중요 하지 않는 것에 연연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있어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1. 구원의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나는 누구이며 나는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문제입니다. 오늘날은 가치관의 혼돈시대입니다. 무엇이 옳은 것이고 무엇이 바른 것인가에 대한 기준과 가치관이 흔들리고 무엇을 가졌는가를 중요하게 여기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무엇을 가졌는가 보다는 나는 누구이며 나는 어떤 사람인가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서로 높은 자리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높은 자리는 누구를 위해 준비되었든지 그 사람들이 얻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자리를 얻기 위해서 애쓰는 사람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에게 그에 맞는 자리를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을에 밤을 주으러 다녔던 적이 있습니다. 밤을 주으러 다니면서 외형으로 볼 때 저 나무에는 좋은 밤이 많은 것 같다고 생각하고 가보며 콩알 만한 밤이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에 나무도 별로 크지 않고 저 나무에 좋은 밤이 열렸을까? 하고 가보면 의외로 좋은 밤이 많이 떨어져 있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멀리서 보기에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보기 좋아도 원래 좋은 열매를 맺는 나무가 아닌 경우에는 좋은 열매가 맺히질 않습니다. 원래 좋은 나무는 보기에 화려하지 않아도 좋은 열매를 맺게 마련입니다.
우리는 먼저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좋은 열매를 많이 맺을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인가? 아닌가? 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좋은 믿음의 나무가 아니라면 나에게 좋은 열매들이 열릴 수가 없습니다.
야고보와 요한과 같이 하나님 나에게 이러한 자리를 주세요. 라고 간구하기보다는 하나님께서 그런 자리를 주실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가끔 어떤 자리에 앉은 사람이 그 자리에 앉을 만한 인격과 자질이 부족한데 그 자리에 앉아서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국회의원 선거철이 되어서 곳곳에 선거 홍보물이 붙어 있고 선거 홍보 전화와 문자도 옵니다. 자기가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열심히 홍보를 하는데 그건 자기들 생각이고 정말 국회의원으로 합당한지는 잘 모르겠는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하는 것이 많은 국민들의 생각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시고 높여주시기를 원하시지만 우리가 그런 축복을 받을만한 사람이 못되고, 하나님께서 높여주실 만한 사람이 못 되었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시고 높이실 수 없습니다.
불행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잊고 살아갑니다. 지금 당장에 세상의 일은 크게 보이고 하나님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 사실을 잊게 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눈에 보이는 것에만 치중하게 될 때 더 중요한 것을 잃게 됩니다.
우리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구원의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믿음의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의 사람이요 하나님의 구원 받은 성도라는 분명한 확신이 언제나 흔들림이 없어야 합니다.
상황에 따라 때에 따라 흔들리고 의심이 생기고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생긴다면 그것은 구원에 대한 확신이 부족한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의 확신이 분명하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있고,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이 주시는 평안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2. 준비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40절에서 예수님께서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준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준비된 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준비된 사람에게 준비된 자리를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준비된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미국 플로리다에 나울린 목사님이라고 하는 분이 계셨습니다. 그분의 교회에는 아주 신앙이 돈독한 청년이 있었는데 교회학교 총무로 충성스럽게 일하는 청년이었습니다. 목사님은 그 청년의 사업을 위해 축복 기도를 해주었고 청년이 경영하는 사업은 날로 번창하여 많은 액수의 십일조를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너무 바빠서 교회 일을 그만두어야 했고 또 다른 도시에 지점들을 내자 거기서 주말을 보내느라고 교회에 출석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그를 찾아가서 ‘존 나는 자네를 걱정하고 있네 자네는 예배에 계속 참석하지 못하고 있네, 자네는 하나님의 일에 흥미를 잃어가고 있으며 온전한 십일조도 바치지 않고 있네’ 라고 충고를 했습니다.
그러자 그 청년은 ‘목사님 한 주일에 그렇게 많은 액수의 십일조를 드리는데 그만하면 충분하지 않나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존 우리 함께 기도합시다.’ 하고 기도를 하시는데
‘사랑하는 주님, 주께서 이 형제에게 지나친 번영을 주셔서 지나치게 성공했습니다. 사랑하는 주님 이 형제는 당신께 너무 많은 십일조를 드린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 그를 위해서 그의 상점 몇 개를 불태워 주옵시고, 상점 몇 개는 실패하여 문을 닫게 하여 주옵소서, 이 형제로 하여금 그렇게도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을 위해 충성되게 일했던 옛날의 사람으로 돌아오도록 그의 사업의 얼마를 빼앗아 주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그 청년은 떨면서 ‘목사님 이곳에서 저를 데려가 주십시오’ 라고 고백하면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다시 헌신 된 성도가 되었다고 합니다.
요즘은 프로 야구를 거의 안 보는데 젊었을 때는 프로야구를 좋아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야구를 좋아하게 된 이유는 20대 시절에 은행에 가서 손님이 많아서 기다리면서 잡지를 보게 됐는데 거기 이만수 선수에 대한 기사가 있었습니다.
그전까지 야구를 몰랐는데 이만수 선수가 신앙생활하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는데 주일날 경기가 있으면 그 지역에 있는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경기를 한다는 것과 부부가 교회를 섬기는 이야기들이었습니다.
그 기사를 읽고나서 야구에 관심을 갖고 보게 되었고 저는 오직 이만수 선수만 응원을 했습니다. 그 당시에 삼성에서 선수생활을 할 때가 아무 연고도 없는 이만수 선수의 삼성을 응원했습니다. 이만수 씨가 선수로서 밀려나게 되면서부터 야구를 안 보게 됐습니다.
삼성에 새로운 감독이 오면 이만수 선수와 부인이 함께 감독을 찾아가서 전도를 해서 감독 중에서 이만수의 전도를 받고 교회를 다니게 된 분들도 있었고, 선수들 중에도 이만수의 전도를 받고 신앙생활을 하게 된 선수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근래에는 라오스 야구 협회의 부회장 겸 라오 J 브라더스 구단주에 선임되는 등, 현지에서 야구 보급에 힘쓰고 있고 많은 교회들이 라오스를 위해서 기도하면서 후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참고 인내하면서 믿음으로 준비되고 자신의 일을 하고 하나님을 향한 열정을 가진 사람들에게 준비된 자리를 주시고 준비된 축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만수 씨와 비슷한 신앙의 사람이 봉중근 선수였다고 합니다. 주일 날 시합을 해야 하는 야구 선수로 신앙생활을 하고 교회 일에 충성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주님을 섬기려는 그의 열정을 하나님께서 보시고 반드시 복을 주십니다.
오늘 이 밤에 주님께 기도하기 위해서 모인 우리 모두가 준비된 사람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믿음과 헌신과 기도로 준비된 성도가 되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준비하신 것을 누리고 받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3.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자리다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에게 자신들을 높은 자리에 즉 하나는 오른 편에 하는 왼 편에 앉게 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오늘날의 직급으로 말한다면 국무총리와 부총리 자리에 앉혀 달라는 요청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느 자리에 앉을 것인가? 보다는 먼저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칼빈은 ‘왕이라도 섬김이 없이는 참으로 의롭게 다스릴 수 없는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의 의미는
첫째로 하늘의 가치관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권세와 하늘의 권세가 다르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42-43절에
10:42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10:43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여기서 우리가 자세히 살펴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려는 것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야고보와 요한과 열 명의 제자들에게 너희의 자리다툼은 세상의 권세와 하늘의 권세가 다르다는 것을 알지 못한 결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가치관으로 볼 때 중요한 것은 ‘큰 자가 되는 것’이고 ‘으뜸이 되는 것’이고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눈을 가지고 하늘을 이해할 수 없다는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눈이 아닌 영적인 눈을 가져야 합니다. 세상적인 안목을 가지고 하늘의 일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늘을 볼 수 있는 영적인 눈을 가질 때 이 세상의 가치가 아닌 하늘나라의 가치를 발견하게 되고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을 갖고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은 바로 섬김이라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하늘을 볼 수 있는 영적인 눈을 갖게 되고 하늘나라의 가치관을 갖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둘째로 드리는 것(주는) 것입니다. 45절에서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섬김의 본이 되신 예수님 자신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나는 섬기러 왔다고 하시면서 그 섬김을 위해서 내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섬김은 우리를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진정한 섬김은 바로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것도 주지 않고 아무것도 베풀지 않는 것은 진정한 섬김이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을 섬긴다고 하는 것도 주님을 위해서 우리의 몸을 산 제사로 드릴 때 섬김이 가능한 것입니다.
교회를 섬긴다는 것도 교회를 위해서 나의 시간과 물질과 노력을 드릴 때 그것이 섬김이 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도 다른 사람을 위해서 나의 시간과 물질과 노력을 줄 때 그것이 진정한 섬김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섬기고 교회를 섬기고 또한 성도를 섬겨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시간과 물질과 헌신을 드림으로 진정한 섬김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드리지 않고, 아무것도 주지 않고, 아무것도 베풀지 않고는 섬기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우리가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인가를 깨닫고 더 중요한 것을 중요하게 여길 때 우리를 위해서 준비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기도하는 가운데 더 중요한 것을 위해서 기도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을 위해 기도하고 더 중요한 것을 위해 헌신할 때 하나님께서 그런 헌신 된 일꾼들을 위해 준비하신 축복을 선물로 받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