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과 치유
꽃다워야 할 중년에 숱한 시련을 겪어내야 했다. 남편이 서울 생활을 접고 고향인 대구로 오면서부터 집에선 잠만 자는 생활을 했다. 술 마시고 밤늦게 들어오면 딸과 아들은 자고있다. 아이들이 자라는 건 순식간일 것이다. 아빠와 함께 나누는 추억이 별로 없으니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남편의 술버릇은 술자리에 있었던 이야기를 몇 시간이든 반복해 말하다가 어느새 코를 골면서 자버린다. 술이 어느 정도는 깬 상태에서 자니까 본인의 건강엔 좋을 것이다. 남편의 코 고는 소리는 이미 잠이 깬 내겐 마치 기차가 기적을 울리며 지나가는 소리처럼 들린다. 괴로워 이리저리 뒤척이며 잠을 설친다. 태생이 잠이 많아 수면 부족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와 안방 문을 열면, 누워있는 엄마 모습을 어김없이 본다. “엄마, 또 아프네.” 아이들의 기운 없는 소리를 들려온다. 잠이 제일 좋아서 눈을 감은 채 힘든 내일이 오지 않으면 좋겠다. 가족끼리 오순도순 살아도 모자랄 시간에 우리 부부는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지 못했다. 생활의 소소한 행복을 느끼지 못한 채 날이 갈수록 정신은 시들해져 간다.
술에 장수가 없다더니, 남편도 예외는 아니다. B형간염 보균자임에도 주의하지 않고 술을 매일같이 마시다 보니, 급성 간염에 걸렸다. 위험한 시기를 겨우 모면하고 나서도 술량만 줄이고 매일 같이 마셔댔다. 가까운 앞산에 올라가 민들레를 따와서 즙을 짜서 먹이고, 뽕잎 차도 끓여 마시게 했다. 시어머닌 “너랑 결혼하면 아프다고 하더니만, 너 때문에 귀한 내 아들이 병에 걸렸다.”라고 했다. 매일같이 억울한 소리를 들었다. ‘어른에게 말대꾸하지 말라’는 교육을 받아서인지 시어머니께 대드는 건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시어머니 억지 말에 일일이 대답한다면, 아마도 우리 부부는 같이 살 수 없었을 것 같다. 말 못 하는 답답함과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이는 방법은 오직 침묵뿐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잘 울고 고집 센 딸은 초등학교를 네 번이나 전학한 것에 불만이 많다. 친구를 좀 사귈만하면 이내 전학해야 하니, 그럴 만도 하다. 사춘기도 3년에 한 번씩은 겪는다. 특히 중학교 땐 아이돌 그룹 ‘신화’를 좋아해 푹 빠져 산다. 신화 콘서트를 보려고 혼자 서울로 가겠단다. 혼자 보내기가 불안해서 따라갔다. 바깥에서 영하의 추위를 견디다가 독감에 걸려 고생도 했다. 그림에 재능이 있어서 미대 입시를 준비하던 중이다. 우리나라 입시 미술이 자신에게 맞지 않으니 일본에 가서 애니메이션을 공부하겠다는 폭탄선언을 한다. 딸은 좋으면 꼭 하고야 마는 성격이다. 딸이 원하는 걸 허리띠를 졸라매며 지원했다. 진득함이 모자라 2학년을 마친 후 고비를 넘지 못하고 휴학한다. 맏이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보니 실망도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집에서 우두커니 지내는 딸을 달랜다. “넌 동물을 무척 좋아하니까 애견을 예쁘게 꾸미는 일을 찾아보면 어떨까?”라고 설득했다. 예상과 같이 딸은 좋아하는 개를 다루며, 미용해주는 일에 식지 않는 흥미와 열정을 가진다. 이 일엔 싫증을 내지 않는다. 자기 가게도 차리고 미용 사업에 전력을 기울인다. 이제는“엄마, 고마워! 애견미용 권해줘서.”라고 한다. 딸과 함께 인내해야 했던 세월에 대한 보상을 받는 것 같아 보람을 느낀다.
아들은 나를 닮아 주의력이 결핍되고 행동이 넘쳐난다. 걷기 시작하면서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잃어버린 적도 한두번이 아니다. 시아버님은 “사내놈이 다 그렇지. 철들면 괜찮아지니 걱정하지 말아라”라며 위로한다. 대안중학교를 보내고 싶지만, 기숙사 생활이 싫다 한다. 우리 집은 상가주택이다. 2층이 남편 사무실이다. 남편은 아들 방과 후에 수학, 과학 학습 지도를 한다. 아들은 학원이나 가정교사의 가르침엔 집중하지 못해 별 성과가 없다. 아빠가 부족한 부분을 되풀이해서 가르쳐주는 건 그래도 따랐다. 친한 친구가 지원하는 공업고등학교를 따라가려 한다. 남편과 난 반대한다. 억지로 인문계고등학교에 가게 된 아들은 불만이 많다. 공부보다는 컴퓨터 게임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우리가 잠들고 난 후에 밤새껏 게임을 한다. 그러니 졸려서 수업에 집중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아까운 3년의 세월을 흘려보낸 뒤, 대학에도 가지 않겠단다. 겨우 설득해 보낸 전문대도 1년을 버티지 못하고 휴학했다. 군대에 다녀온 뒤에도 온종일 방에 틀어박혀 여전히 게임을 한다. 아들의 닫힌 방문만 보아도 한숨부터 난다. ‘아들아! 세월이 언제까지 널 기다려줄 것 같니?’ 안타까움만 가득하다. 21살에 소개로 만난 여자친구를 꾸준히 사귈 수 있던 건 남편의 배려 덕분이다. 일하지 않는 아들에게 주급으로 용돈 5만 원씩을 꼬박꼬박 준다. 난 극심히 반대해 자주 다툰다. 그저 받는 돈에 익숙해지면 더더욱 일하지 않을 테니까. 다행히 아들은 23살부터는 시간을 낭비하는 자신이 한심하다고 느낀다. 하루가 멀게 알바를 바꾸긴 했지만, 자신에게 맞는 아르바이트 일을 찾아보려고 나름대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많은 일을 거친 것도 지금의 직장생활을 꾸준히 하는 데 도움이 된다. 28세에 7년간 사귄 여자친구와 결혼해 예쁜 딸을 낳는다. 철들면 나아질 거라는 시아버님 말씀이 맞다. 아들은 자신의 핸디캡을 딛고 일어나 지금은 시간을 쪼개어 두세 가지 일을 하고 있다. 가장의 책임을 다하려고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있다.
49세 아이들이 다 자라 성년이 되어 홀가분한 나이에 허리 병에 걸리고 만다. 3년 동안은 일상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로 아파, 서지도 앉지도 못한 채 누워지낸다. 허리 수술 후 후유증을 겪는 사례를 많이 들어서, 되도록 수술은 하지 않고 싶다. 허리에 좋다는 갖은 치료를 받아보지만, 상태가 어느 정도 호전은 되어도 완치되기엔 한계가 있다. 남편에게 수술을 반대할 면목이 더는 서지 않는다. 남편의 손에 이끌려 서울로 가 수술을 받는다. 수술하면 극심한 통증은 잡히지만, 생활 자세가 나쁘면, 이내 재발 된다. 동물이 많아 앞으로 숙이는 자세를 자주 해서인지, 나도 재발 된다. 또 긴 시간 누워지낸다. 그즈음 남편의 사업자금이 부족해 살던 집을 전세 놓고, 월셋집으로 이사한다. 온종일 볕이 들지 않는 컴컴한 방에 커튼까지 치고 누워있다. 앞집 2층 음악감상실 베란다엔 흡연하려고 나온 남자가 서 있다. 행여 누워있는 모습을 보이게 될까 봐 커튼을 굳게 친다. 가족을 이런 환경에 처하게 하고서도 습관처럼 술을 마시는 남편에 대한 원망으로 눈물이 흐른다. 남편은 가족을 이렇게 내몬 죄책감에 집이 쳐다보기도 싫었다 한다. ‘일하지 않는 아들의 모습은 그토록 싫어하면서, 왜 나는 일하지 않고 누워만 있는가?’ 나의 존재가치를 알 수 없어 괴로운 나날을 보낸다. 10개월 뒤 집주인이 원룸 건물을 짓는다고 이사해달라는 통보를 해온다. 2년 기한을 채우지 않아도 되어서 내심 기쁘다. 이번엔 무조건 햇볕이 잘 드는 집을 고르고 싶다. 동물이 많아 1층 독채만을 찾던 중, 운이 좋게도 햇볕이 환하게 드는 마음에 드는 집을 구할 수 있다. 이제부턴 뭐라도 할 수 있겠단 생각이 어렴풋이 올라온다. 부실한 내 노동력에 맞는 일이 없을까? 다행히 편의점 알바를 구할 수 있었다. 어리바리해 보이던 난 첫날부터 사기를 당한다. 2만 원을 물어낸다. 비록 하루 일당을 날려도 얻은 점은 있다.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쉰이 넘도록 남편의 울타리 안에서 베짱이처럼 일하지 않고 살아온 내가 부끄럽다. 앞으론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늘려야겠다.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에 1년 동안 지속한다. 조금 더 일의 강도를 높여도 좋을 것 같아, 어린이집과 식당 일에 도전한다. 그곳에선 능숙한 사람을 원하지, 초보자가 익숙해지는 기간 동안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들의 눈에 아직 허리 병이 완치되지 않은 난 느리고, 어설퍼 보일 것이다. 아파 보인다며 스스로 그만둘 것을 권유받기도 하지만, 굴하지 않는다. 분수를 알고 몸에 맞는 일을 찾아 1년 정도 하다 보니, 정신에도 활기가 채워진다. 가족은 여전히 반대하지만 나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이 기쁘기만 하다. 바닥을 치던 자존감도 서서히 올라온다.
잃어버린 책과도 다시 만난다. 딸이 하려다가 시간이 안 맞아 인문학 프로그램을 양도해준다. 과제를 하던 첫날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기뻤다. ‘그래 바로 이거야! 내가 찾던 배움이!’ 책을 읽고 주어진 과제에 글을 쓰고, 걷기를 하면서 생각한다. 매일 만 보 이상 1년을 걸으니, 허리도 점차 아프지 않다. 잊고 있던 책을 되찾은 것도 다행이다.
나 자신을 찾으려는 노력은 혼자 하는 여행으로 이어진다. 남편은 이 경치나 저 경치가 다 같은데 왜 멀리까지 가냐고 한다. 딸이 힘을 보태준다. 무서우면 ‘대구 시티투어’부터 시작하란다. 버스 여행은 내게 잘 맞다. 시티투어의 여러 코스를 매주 다녔다. ‘근교투어’로 확대해 경북의 여러 곳을 다니며 추억을 쌓는다. 버스 안에서 이런저런 책을 읽을 수 있고,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나만의 시간을 누린다. 자연과 함께 하는 여행은 아름다운 추억도 되돌려준다. 어릴 적 식물을 좋아하던 엄마가 가꾸던 정원의 나무들이 떠오른다. 그 속에서 마음의 안정을 누리던 소중한 가족과 함께한 시간들. 자연을 접하며 시들하던 정신에 점차 생기가 돈다.
어느 정도 혼자 여행에 자신감이 더해지던 중, 코로나로 인해 버스 여행을 할 수 없게 된다. 답답해서‘마음이’란 12살 먹은 차를 산다. 주말마다 나만의 여행을 떠난다. 처음엔 겁도 없이 달을 보며 노지에서 차박한다. 겨울이 되고 나서야 창문을 가릴 필요성을 안다. 떠 오르는 동해의 태양을 보면, 막힌 마음이 뚫리고 벅찬 희망이 샘솟는다. 차 안의 물이 어는 영하 8도의 혹한에도 차박을 즐긴다. 겨울이 될수록 차박지를 찾는 게 쉽지 않다. 묵을 곳을 찾느라 무섭고 설렌 여행 속에서 자존감도 높아진다. 결혼 전엔 아버지, 결혼 후엔 남편의 보호 속에서만 살다가, 온실 속에서 노지로 나와 마음껏 자유를 누리는 게 가슴이 벅차도록 행복하다. 매주 스스로 자축한다. 난 ‘길’을 좋아하는 사람이란 것도 알게 된다. 가보지 않은 길을 두근대는 마음을 안고 달린다. 하늘과 맞닿은 높은 곳에서 경치를 만끽한다. 그 외에 하는 건 별로 없다. 경치가 좋으면, 어디든 차를 멈추고 하염없이 바라본다. 끼니는 남편이 싸 준 김밥으로 해결한다. 김밥을 좋아해서 온종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특히 남편표 김밥은 내 입맛엔 최고로 잘 맞는다. 겨울엔 뜨거운 물에 밥을 말아 먹어도 꿀맛이다. 가보지 않은 길을 찾는 모험이 재미있다. 경북지역을 벗어나 경남이나 전라도 쪽으로 가려면 적어도 2박 3일은 해야 한다. 열 마리의 동물을 3일이나 남편에게 맡기긴 미안하다. 리트리버 리치가 선물로 받은 택배 상자를 뜯었다. 강정 한 상자를 거의 다 먹어치우고 온 집안을 끈적거리게 한 날 남편의 호출전화를 받는다.“2박 3일은 너무 길다. 1박만 해!” 아쉽지만 가정의 평화를 위해 어쩔 수 없다.
남편은 퇴직 후 이년을 쉬더니, 무의미하고 지루하다며 한숨을 쉰다. 벼룩시장을 통해 카드배송 일을 찾는다. 우리 동네를 자전거 타고 한 바퀴 돌면서 카드를 돌리는 일이다. 나름대로 의미가 있고 작은 성취감도 준다. 나이 들어 집에만 있으면, 살이 오른다. 이 일이 나이 든 내 노동력에 맞고, 몸을 움직이게 해주니 고맙기 그지없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까지 최선을 다해 일하고 싶다. 젊은 시절 베짱이처럼 살았다면, 눈 감는 날까지 개미가 되어 일할 것이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던 날 아침까지 일하시다가 돌아가셨듯이 나도 그렇게 살다가 생명을 마치고 싶다.
50대, 십 년 세월 동안 아팠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더니,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몸과 마음의 시련을 통해 철부지가 육십을 넘은 노년이 되면서 이제야 인생에 대해 조금은 알고 깨닫게 된다. 하느님은 여러 아픔을 겪게 하면서 비로소 자신을 되찾게 해준다. 아버진 일하지 말고 시집만 잘 가라 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남편도 집에서 아이들이나 잘 키우라 했지만, 내 맘대로 되지 않았다. 스스로 힘으로 가야 할 인생길이란 걸 환갑이 넘어서야 알게 되었다. 그래도 어물쩍하다가 인생의 종점에 다다르지 않아 다행이고 감사하다. 남들이 뭐라 하던 그 시선을 의식하지 않으며, 살아갈 것이다. 일하고 배우며 마음의 자유를 누리고 있으니 지금이 바로 내 인생의 황금기다. 몸의 노쇠함은 어떤 힘으로도 막을 수 없다. 더는 애달파하거나 허무하게 여기지 않으리라. 생기있는 정신을 부여잡고, 끝까지 가련다. 책 한 권 챙겨, 가보지 않은 길을 여행하면서.
글을 쓰면서 고여있던 감정의 어두움이 올라와 힘든 순간도 있었다. 이젠 가라앉아 있던 부유물이 다 올라온 듯 마음이 고요해진다. 사람에 대한 어떤 미움이나 원망도 남아 있지 않다. 마음의 치유를 얻게 된 건 큰 행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