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 인생
허종구
1
요양원에 입원 중이던 지우의 어머니는 운명하기 석달 전부터 기력이 급격히 떨어져 대화하기는 물론 자식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상태이었다. 면회 중에 의자에 머리를 기대고 눈감은 상태에서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소리만 되풀이하였다. 지우는 이를 자식들의 평소 소행에 대한 불만의 표시인가 생각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후 그가 어머니의 임종을 지켜보면서, 이에 대해 달리 생각을 하게 되었다.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오는 것을 서서히 직감하고, 미답의 사후세계를 맞이하는 '초짜'(루키:rookie)'로서 마음의 준비, 어쩌면 사전적응을 하려는 자기암시가 아닐까 짐작했다.
임종 직후 그의 어머니는 더 없이 편안한 표정에다 갓난 아기의 것과 같이 부드러운 피부를 삶의 허물로 남겼다. 간병사의 촌평이 그의 마음에 와 닿았다.
"망인들이 마지막 들숨과 날숨을 쉬면서 죽음을 이기기 위해 심하게 용을 써서 경직된 피부를 남기는데, 이렇게 편하게 가시는 분은 처음이네요."
그의 어머니가 일생 동안 삶의 고비를 맞을 때마다 스스로 초짜 인생이라 자처하고, 끊임없이 학습하고 도전하면서 적응하는 지혜를 터득해온 그대로이었다.
그리고 지우는 사회생활의 첫발을 내디디면서, 각종 경험을 하나씩 쌓아 난관을 헤쳐 나가고 지평을 넓혀온 자신의 루키시절이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떠오른다.
2
지우는 그해 5월 초 전라북도 무진군청에서 보내온 전보를 집에서 받아들었다.
'5월 4일 월요일 10시에 수습행정관으로 근무할 준비를 하여 군청 부군수실로 출근하시기 바랍니다.'
대학 졸업 후 4년, 군 제대 후 1년만에 여러 구비를 돌아 공직에 첫발을 내딛게 된 것이다.
그는 한 타깃을 향해 온힘을 쏟아 붓고 '루비콘강을 건넌' 이래의 작년 180일을 복기해 본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녹색 장막 너머 병영무대에서 3년간 역할연기로 시간을 보내고서 세상의 넓은 싸움터에 내던져진 때이었다.
그는 1, 2차시험을 각 3개월씩 마지막으로 준비한다고 계획하고, 고향 대학도서관의 개관시간 내내 시험공부에 전력투구했다. 시간이 부족해 새 책은 구입할 엄두를 못내고, 재학시절의 수험서로 예전의 실력만 회복하자는 계획으로 공부했다. 운좋게 합격한 그가 그 도서관에 들려 친구를 만나 걸어나오는 때에 공부하던 십수명이 따라 나오며 하던 말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6개월만에 누가...?"
그리고는 4년 전 2차시험을 한 학기 앞둔 대학 4학년 1학기의 그 치기 가득하고 아쉬웠던 시절을 회상해본다. 천금 같은 시간에 근사한 졸업논문 쓰기를 우선으로 하며 보낸 것은, 여름방학에 두 달 집중 공부하면 된다는 만용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런데 시험을 한달 앞두고, 도서관에서 각 과목을 1주일씩 정리해나가던 중에 단권 정리한 수험서들을 도난당했다. 이를 찾아 시내 고서점을 2주 가량 뒤지다가 찾지 못하고 맨붕상태에서 2차시험을 맞았다. 한 과목의 논술식 두 문제 중 한 문제의 답안 작성 포인트를 두고 한참 고심하다가, 시간에 쫓겨 깔끔하게 마무리를 못하고 답안을 제출했다. 결국 그 과목 성적이 1점 차이의 과락점수로 나와 불합격하는 불운을 겪었다.
이어서 졸업후 을지로 고속버스 주차장에서 주요 시험준비서가 든 여행용 가방을 잠시 옆에 두고 버스표를 사고서 돌아보니 없어졌다. 그는 이게 운명인가 하고 순순히 징집영장대로 군 입대했다.
그는 제대후 아침 6시에 기상해 앞산 중턱의 약수터까지 조깅을 다녀와, 아침 8시부터 밤 11시까지 대학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강행군을 이어갔다. 그런데 공부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아린이와의 관계를 확실하게 매듭을 짓는 것이 선결과제였다. 그녀는 깨끗한 하얀 얼굴에 곧잘 수줍음을 타는 순수한 성격으로, 복잡한 세상의 번뇌와는 어울리지 않는 여성이었다. 그는 제대 직후 그녀를 만나 "그동안 고마웠고 앞날의 행운을 기원한다"고 하직인사를 나누었다.
그런데 5월 어느날 점심식사 후 동료들과 도서관 주변 캠퍼스를 산책하는 중에 아린이의 여동생을 우연히 만난 일이 있었다. 얼마 후 그 여동생이 다시 만나고 싶다는 언니의 편지를 가지고 도서관에 찾아와서 답신을 부탁했다. 잠시 망설이다 그 주말에 전에 같이 들리던 다방에서 만나자고 써서 보냈다. 이렇게 시작된 재회가 자주 이어졌다. 그가 시내의 무더운 한증막 날씨를 피해 두 달간 공부하고 있던 교외의 절에 까지 그녀가 찾아와 둘은 은밀하게 뜨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1차시험을 통과하고 2차시험을 목전에 두고서도 그들의 주말 데이트는 이어졌고, 지우는 내심으로 이러다가 또 실패의 경험을 되풀이하는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들었다. 그래서 2차시험을 한달 반 앞두고 그녀와 떨어져서 공부하기 위해 상경해 고시원에 칩거하며 마지막 수험정리를 했다.
마침내 1주일 기간의 2차시험을 치르게 되었다. 그는 지난 경험을 살려 낯선 문제를 맞아서도 당황하지 않고, 출제의도를 먼저 생각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나의 관련 기본지식을 보여주게 거시적으로 답안을 작성해 과락만은 피해보자는 작전으로 임했다. 특히 경제학 시험의 출제문제 '자본주의 경제체제하에서의 시장경제 운용원리'는 많은 수험생이 과락점수를 받았다. 그러나 지우는 이런 방향으로 답안을 작성해 그 과목은 물론 전체적으로 무난한 점수를 받아 합격하였다. 그는 대학졸업 후 3년반만의 시험으로 수험준비시간이 부족하여 재학중 보던 수험서만으로 예전 실력 정도만 복원해 응시했는데, 행운의 신이 미소를 보낸 것이라 여겼다.
지우가 그 군청에 부임해보니, 수습행정관은 부군수 직할인 기획예산, 새마을, 감사 등 부서의 과장 역할을 하면서 수습하는 직위이었다. 지역도 낯선데다가, 아버지 나이 또래 계장들을 거느리고 그 직을 수행하기가 난감하였다. 당시 실과별로 하나의 행정지도 담당 읍.면을 두어 수시로 출장을 나갔다. 처음으로 그의 실원들이 짚차로 담당 면 출장을 나가게 되었다. 그는 상급자이니 보통 선임이 앉는 앞 운전석 옆 좌석에 앉을 것인지, 아니면 수습하는 입장이니 뒷좌석에 앉을지 판단이 잘 서지 않았다. 그는 망서리다가 그래도 앞으로 직원들을 통솔하려면 선임석에 앉아야 한다는 생각에 선임석에 앉았다. 이것이 관례가 되어 그는 계속 선임석에 앉게 되었다.
그리고 매주 간부회의가 있어 소관별 업무보고를 군수에게 실과장이 하게 되었다. 그는 사전에 보고사항에 대해 업무파악을 하여 요점 위주로 보고하고, 군수의 보충질문이 있으면 아는대로 자세히 설명하였다. 이런 회의를 몇회하고 나니, 군수나 직원들 사이에 신임 수습행정관이 촛자 같지않다는 평이 돌아 그의 기분이 상당히 업되었다.
게다가 군수가 자신의 각종 행사의 식사, 연설문 등을 공보실에 맡겨보니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며, 정치학과 출신인 수습행정관이 작성해보라고 하였다. 그는 대통령 연설문 등을 참고하면서 나름대로 지역 특성 등을 반영하여 작성해 보고했다. 군수는 중앙 부처의 연설문으로도 손색이 없다고 하면서 칭찬하였다. 이어서 군수가 관내를 순시할 때는 수시로 그의 관용차에 등승토록 하여 일선 행정지도 현장을 보면서 배우게 하는 특전도 베풀었다.
그후 군수가 다른 군으로 영전하면서 취임사 작성을 지우에게 부탁하였다. 그는 그 군의 업무현황자료를 받아 참고하면서, 자신이 군수 취임하면 어떤 비전을 제시할 것인지 생각하면서 취임사를 작성해 주었다.
나중에 그가 그 군의 수습행정관을 통해 실제의 취임사를 보았다. '마한. 백제 문화의 본거지이던 유서깊은 이 군의 군수로 취임하니 기쁘면서도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운운으로 시작하는 원고 그대로 이어서 마음 뿌듯하였다.
한편, 전라북도에서는 소속 수습사무관 모임을 만들어 매월 도청과 시.군청 순회 설명.토론회도 개최했다. 그런데 지우의 군처럼 수습행정관에게 과장직으로 일하면서 수습을 제대로 하게 하는 시.군은 없는 것으로 보였다. 그가 행정실무에 빨리 적응할 수 있었던 것은 예비군훈련단의 행정병으로 나마 군근무한 경험도 크게 도움이 된 것으로 생각했다.
이어서 그들 수습행정관들은 시.군 수습 중간에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두 달간의 합숙연수를 하여 행정실무와 이론도 익히고, 동기들간의 단합도 도모하였다.
그러고 스피치대회가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자신에게 부여된 주제는 관내 고을과 고을을 잇는 다리준공식에서 군수가 할 즉흥연설을 하는 것이었다. 그는 새 다리가 앙숙관계에 있던 지역민 간에 물리적.시간적 거리의 단축과 더불어 마음의 거리도 줄여 함께 지역발전을 이루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는 내용으로 연설했다. 많은 박수를 받고 1등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실무수습 군청으로 돌아와 여러 새로운 경험과 함께 친교도 맺게 되었다. 그의 하숙 동료 폴(Paul)은 보건소에 파견된 미국 평화봉사단원으로 그의 절친이 되었다. 읍내 다방에서 그와 얘기를 나누고 있으면, 경찰서 정보계장이 관심을 가지고 주변에서 유심히 동태를 실펴보곤 했다. 그리고 폴의 동료 은혜와도 친한 사이가 되어 그의 집에 몇번 식사 초대를 받기도 했는데, 그녀는 때로 그와 썸타는 기분을 내곤 했다. 그리고 그 지역의 개업의 선혜는 그의 동창친구와 대학동기로, 진료받은 인연으로 가끔 만나곤 했는데, 좁은 안면사회라 더 이상 진전은 없었다.
그리고 지우가 나름대로 행정실무를 익혀가고 있다고 본 부군수가 전주 시내의 동창 변호사의 자문을 받아 새로운 과제를 검토하라는 것이었다. 당시 그는 레슬링 선수 출신이라는 출향민 여성이 군 민원실에 들이닥쳐 고함을 지르며 항의하는 것을 보았다.
"읍내 뒷산 기슭의 시아버지 묘 위에 군이 분뇨처리장을 설치해 고인이 악취에 신음하고 있는데, 어떻게 할 것이여?"
이에 대하여 법적인 손해배상대책을 연구해 보고하라는 것이었다.
그 민원인이 지우가 검토한다는 것을 알고 찾아와 억지를 부렸다. 지우는 그동안 군유지 야산내 묘에 벌초도 하지 않아 식별하기 어려웠던 책임을 거론하면서 심한 언쟁이 있었다. 행정 초심자인 그가 감당하기 버겁다고 하며, 법률적 접근 보다는 실무경험 많은 간부가 맡아서 종합적으로 처리하는것이 좋겠다고 건의했다. 결국 재무과장이 그녀를 다둑이면서 적정선의 금전 보상에 합의하여 원만히 해결했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수습기간이 끝나갈 무렵 아린이의 어머니가 지우를 찾아와서 독촉하였다.
"둘이 바로 결혼하도록 하세."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아 내후년에나 하면 좋겠습니다."
"딸이 나이가 차서 결혼해야 할 형편이고, 결혼해 살면서 둘이서 부족한 것을 채워나가도 되네."
결국 연말에 결혼식 부터 치르고 다음 해 5월 정식으로 부처 발령 나면 함께 살기로 하였다.
이듬해 4월 말 수습이 끝나서 지우가 군청의 동료 직원들과 지인들에게 이임인사를 하고 행정 수습지를 떠나려고하니 만감이 교차하였다. 초짜 수습행정관에게 진심을 다해 지도해주고 정을 베푼 동료 공무원들에게 감사의 인사와 함께 아쉬운 석별의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어느 간부가 마지막으로 한 말은 두고 두고 그의 기억의 언저리를 맴돌았다
"우리 전북 출신들이 경상도로 전출 가면 꼭 잘못되어 '한 칼 먹고' 오는데, 그쪽 출신들이 이곳에 전출왔다가 돌아가면 잘 되어서 돌아갑니다. 앞으로 크게 발전하세요."
수습지를 떠나는 버스의 창가에서 읍내 뒤쪽을 돌아보니, 멀리 고원 저 끝에 두 말귀 모양의 산이 잘 가라고 손짓한다. 고려말 이성계 장군이 운봉 황산대첩에서 왜적을 섬멸하고 상경하는 중에 자신을 올려다 보며 조선왕조 창업의 꿈을 이루었다는 산이다. 앞으로 초심을 가다듬고자할 때는 나를 찾아 오라고 하는 듯하다. 그리고 그는 당초 큰 호수이던 이 지역이 7천만년전 대홍수로 엄청난 힘을 받아서 솟아올라 저렇게 뽀쪽한 바위산으로 되었다고 한 얘기가 기억났다. 그동안 그 기운을 받고 지냈으니, 그의 앞날의 기운도 사리로 맺혀 영롱하게 빛나겠지하고 자기최면을 걸어본다.
3
그해 5월 초 지우의 시험동기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중앙공무원교육원 강당에 모였다. 각자 배치될 부처를 통보받는 날이다. 교육원에서 각자의 배치 부처를 적은 쪽지를 배포하였고, 환희와 실망의 표정이 교차하였다. 지우가 받은 쪽지에는 ‘국세청’이라고 적혀 있었다. 특이한 것은 동기생 중 1/3 정도인 37명이 국세청에 배치되었고, 그들의 표정은 사색이 되었다.
당시 실무 세무공무원의 부정이 사회문제가 되자, 국세청에 젊은 엘리트의 피를 수혈해 분위기를 쇄신하자는 의도였다고 하였다. 한 부처에 동기생이 몰려있으면, 앞으로 보직이나 승진에서 치열한 경쟁이 예상되어 국세청 배치 동기들은 난감해했다.
지우는 국세청이 어떤 곳인지 궁금하여 친구의 삼촌이 서울 시내 세무서에서 주사로 근무한다는 얘기를 들은 것을 기억하고, 남산 기슭의 그곳으로 그를 찾아갔다. 자기 소개를 들은 그의 첫 반응이 적이 실망스러웠고, 청사 내 분위기를 살펴보다가 금방 나와버렸다.
“초임 세무서 과장으로 배치받아 가면, 실무를 몰라 사람 대접받기 힘들거야!”
국세청에서 지우의 첫 보직은 부산시내의 세무서 총무과장, 군 입대를 두 달 앞둔 동기생 일수는 그 세무서의 조사과장이었다. 일수가 있을 곳이 마땅치 아니하다고 하여, 그는 그 세무서 인근에 자신의 집에 같이 있자고 덜렁 약속해버렸다. 이것이 아내의 평생 불평거리가 될 줄은 몰랐다.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하는데, 신혼에 일수 씨가 끼어들어 출근 때 뽀뽀도 없이 나가는게 평생 습관이 되었어요!"
세무서에 부임해 보니, 동료 과장들은 내부 승진자의 경우 지우의 아버지 연배의 백전노장, 고시 선배 세 명은 대선배이었다. 게다가 총무과의 경우 계장들 역시 50세가 넘었고, 직원들도 신참 여직원 한 명을 제외하면 모두가 그 보다 연장자이었다. 그는 상급자인 자기가 과원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난감하였고, 고참 직원들이 자신의 책상 앞에 서서 보고하는 것 조차 부담스러웠다.
세무서장은 지우 장인의 초등학교 동창 친구임에도 불구하고, 추상같이 엄하게 대하여 자신이 경험이 적어 못마땅하게 대하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서장이 고참 간부들과 식사할 경우 그를 불러 같이 하도록 배려하곤 하였다. 게다가 그가 사석에서 간부들에게 ‘총무과장이 열심히 배우면서 잘하고 있으니 도와줘라’ 고 했다는 말을 전해 듣고서는, 그가 내심으로는 자신을 챙기고 있는 것을 알았다. 그동안 오해한 것이 미안했다.
그 세무서에는 구내 지하의 탁구장에서 거의 매일 점심시간에 과장들끼리 탁구를 하였다. 기존의 과장 간에는 핸디가 정해져 있었고, 매번 서로 게임을 하고 나면 승패에 따라 한 점씩 이를 조정했다. 탁구 촛자인 지우는 각 과장과 첫 시합을 해서 그 결과로써 핸디를 정했는데, 심지어 선수급인 소득세과장과는 15점 핸디를 받았다. 그 한 달쯤 후 과장 5인끼리 대회를 하여 성적 순위에 따라, 꼴찌는 당일 저녁 식대의 40%, 4위 30%, 3위 20%, 2위 10%를 각각 분담하고 1위는 분담액이 없도록 합의했다. 소득세 과장이 1위, 지우가 꼴찌를 하였다. 그날 저녁 서장을 모시고 요정식의 방석집에서 회식이 있었다. 주인마담이 접대부 두 명과 함께 들어와 술이 거나하게 돌고 밴드에 맞추어 돌아가며 노래 부르며 분위기가 무르익어 갔다. 이때 서장이 한마디 하고 일어서니, 주인 마담이 그의 웃옷을 들고 2층으로 따라 올라간다.
“아, 오늘 왜 이렇게 취하지!”
이때 누군가가 서장이 소싯적에 주인 마담의 머리를 얹어주면서 요정을 차려주고, 지금 두 집 살림을 한다는 공개된 비밀을 털어놓는다. 이튿날 그에게는 그 달 월급의 반이 넘는 분담금의 청구가 있었다.
그해 10.26과 12.12 사건이 일어나고 주말에 서울집에 다녀온 조사과장은 간부회의에서 신이 나서 대통령 사망 후 권력 핵심부 간의 암투에 대한 정보를 무용담처럼 얘기해고 있었다.
그리고 이 즈음 국세청에도 대대적인 숙청 바람이 불 것이라는 소문으로 풍전등화의 분위기이었다. 어느 과장이 직원 모두가 사직원을 낸 여건에서 시내 세무서장 중 누가 타깃이 되고, 누구는 안전하다는 풍문을 전했다. 이때 서장이 물었다.
“나는 어떻다고 하나요?”
누가 바로 말했다.
“서장님은 딱 중간이라고 합디다. 이럴 때에는 중간이 최고입니다.”
서장은 기분이 좋아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서장실에서 모두 나오면서 서로 말한다.
“사표수리 대상 1번이 우리 서장이라고 하던데, 중간이라니 말도 안돼”
“우선 듣기 좋게 애기하고 볼 일이지”
며칠 후 서장실에서 과장 회의를 하는 중에 서장이 지방국세청 총무과장에게 전화를 해서 은밀하게 몇 마디 대화를 나누고서는,
그의 집으로 전화한다.
"여보, 우리 애 하나 더 낳아야 하겠소!" 그리고는 지우에게 지시를 한다.
“총무과장, 지금 전 직원을 강당에 모아요. 이임식하게.”
이임식장에서 서장이 마지막 인사를 했고, 지우는 그의 마지막 말이 한동안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나는 수신제가를 잘못해 이렇게 공직을 끝내는데, 여러분은 그것부터 잘 하세요.”
서장 퇴임으로 직제상 수석과장인 지우가 서장 직무대리 역할을 해야 했다. 지우가 지방청 회의에 나가니, 총무과장이 각 세무서장에게 전 직원이 낸 사직원을 돌려주며, 그것이 없는 직원은 사표수리자이라고 한다. 돌아가서 살펴보니 직원 두 명이 사직처리되었다.
얼마 후 지방청 감사관이 전화해 말했다.
“그 사표수리된 두 명 중 한 명이 소원을 제기했어요. 자기 뒷집 권력기관의 직원과 증축에 따른 일조권 관계로 분쟁이 생겨서 그 사람이 전임 서장에게 압력을 넣어 자기를 음해해서 사표가 수리되었다고 주장해요. 그 사람을 정리대상으로 보고한 이유가 무엇인지 전임 서장에게 알아서 보고하세요.”
지우가 전 서장에게 찾아가서 물어보니, 그가 말했다.
“자기 잘못은 자기가 잘 안다. 물러난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나? ”
결국 그 직원은 이마에 부정공무원 출신이라는 주홍글씨가 쓰여진 채로 사회로 내쳐졌다.
당시 정보기관의 위세는 나는 새도 떨어뜨릴 정도이었다. 어느날 군 기관 요원이 권총을 들고 부가가치세과에 들이닥쳐, 차석 직원의 이름을 대며 납세자에게 공갈을 쳐 뒷돈을 챙긴다고 하면서 나오라고 한다는 보고가 있었다. 지우가 그 과로 가보니, 그 직원은 기겁을 하고 뒷문으로 줄행랑을 친 후이었다. 그 기관원의 친척인 납세자가 이불공장을 영위하다가 부도가 나서 세금체납이 되었는데, 그 직원이 은닉재산을 압류하려고 하자 이렇게 공개적으로 공갈을 친 것이라고 한다. 나중에 체납세 업무 총괄 담당인 지우가 궁금해서 그 사업장에 나가보니, 얼굴이 많이 상한 그 여성 친척이 허망한 표정을 지으며 매장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남녀직원 간의 외도사건으로 당시 골머리를 썩인 일은 지금도 지우의 눈에 선하다. 그날 퇴근을 위해 가방을 정리하고 있는데, 과의 노처녀 직원이 과장석에 다가와 세무서 앞 다방에서 잠간 상담을 하고 싶다고 하였다. 지우는 개인적인 애로사항이 있나 보다하고 약속장소에 나갔다. 그녀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조사과의 유부남 지호가 자기와 정을 통해 임신을 시켜놓고서도 임신중절 수술 책임도 지지 않고 있어요.그 책임을 물어 공직에서 쫓아내 주십시오. "
지우는 일단 그녀를 달래면서 말했다.
"서장, 조사과장과 의논해서 적의 조치하겠으니 기다려주세요."
이튿날 조사과장을 지하 탁구장으로 불러 들은 사연을 전하고, 지호가 책임지도록 조치해달라고 하였다.
그 과장이 바로 그를 만나고 와서 말했다.
"걔 안방 차지하려고 수작 부리는 거야. 그동안 수술비를 두번이나 주었는데도 말이야!"
양 과장 간에 합의가 되지 않아 결국 서장에게 보고하니, 그가 단호하게 처리방안을 말했다.
"남자는 시외로 전출시키고, 여자는 사표 받아!"
그녀에게 그 방침을 전달하니, 반발했다.
"남녀를 차별해 처리하는 것은 수용 못합니다."
어쩔 수 없어 서장에게 이를 보고하니, 서장이 말했다.
"둘 다 세무서 징계위원회에 회부해! 그리고 그 여직원이 사직원을 제출해도 접수하지 말고, 나한테 보내!"
그 방침을 그녀에게 전달하니, 징계위원회 회의는 어떻게 진행하느냐고 묻는다.
"각 과장 위원들이 둘이 언제 어디서 만나서 무슨 일을 어떻게 해서 임신을 하게 되었는지를 조사하고, 누구에게 더 책임이 있는지도 따지겠지요. 그 창피함을 이길 수 있겠어요?"
그녀는 더 생각해보고 의견을 말씀 드리겠다고 했다. 이튿날 그녀가 사직원을 지우에게 제출했으나, 서장에게 직접 가서 말씀드리라고 하였다. 결국 그녀는 서장에게 사정 사정해서 사직원을 제출해 퇴직했다. 상대남은 시외 세무서로 전출했으나, 다음해 사직하고 검찰사무직 시험에 합격하여 검찰공무원으로 변신했다는 소문이 들렸다.
그리고 그 둘 일의 발단은, 지호가 세무서 숙직을 하는 날 밤에 그녀가 세무서 앞 자기 자취집에 저녁상을 차려 놓았으니 오라고 유혹한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알려졌다.
그런데 2년 후 지우가 이동한 다른 세무서에 그녀가 찾아와 초등학교 교사와 결혼한다고 하면서 축하해달라고 청첩장을 내밀었다. 지우는 그녀의 낯짝이 너무 두껍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내키지 않아서 그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4
지우는 지금도 전라북도 군에서의 수습행정관직 1년, 국세행정의 첫 보직인 세무서 총무과장직 2년씩의 행정루키 시절을 가끔 돌이켜 본다. 행정 첫걸음을 내디디면서 경험하는 것 모두가 신기하여 스폰지가 물을 빨아드리는 듯했던 그 시절의 일들이 어제 일처럼 눈에 선하다.
그는 끊임없이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를 좋아하고, 이를 즐기는 루키 인생이었다. 결혼 후 아내를 대하는 것, 자식을 낳아 안아보고 키우는 것, 친척과 친구와 관계를 유지하는 것,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사람들과 접하고 경험을 점차 넓혀 나가는 일상의 모든 것조차도 그에게는 늘 낯설고 초짜와 같은 심정으로 평생 도전하는 과제이었다.
이제 그는 일반인의 묘 비석에 '학생 ○○○의 묘'라는 일곱 글자만 새겨두는 관습에 대해서도 깊이 공감하게 되었다.
첫댓글
https://naver.me/5zlByjwH
https://naver.me/xyjCc72h
저도 이 용어가 생소한 분들을 위해 주를 달까도 했습니다만 번거로워 생략했는데
이렇게 자세한 자료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특히 국내에서는 미녀 슈퍼 루키 골퍼가
나타나면 팬들이 열광하죠.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회장님의 글을 읽으면서 저도 사회 초년생 시절을 되돌아보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어머님께서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되풀이하신 것은 아미타 부처님과 관세음보살에 귀의하신다는 염불을 하신 것입니다. 제 생각에는 종교를 가지는 첫 번째 이유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하는 과정이라고 믿습니다.
"촛자"라는 단어는 네이버 사전에 없더군요. "초짜"가 맞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직원 간 정사 사건"이라는 표현은 다소 어색하게 들립니다. 대신 "직원 간 불륜 사건"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유교적인 관습에 따라 묘비에 관직명을 올리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따라서 "학생부군신위"라는 표현은 관직에 오르지 못한 학생을 의미하며, 일반인들에게 사용되었습니다. 이러한 관습은 최근까지도 이어져, 공무원의 경우 회장님처럼 5급 사무관 이상의 직급을 가진 사람들은 묘비에 직급을 쓸 수 있었다고 합니다. 덕분에 나이든 6급 주사들은 묘비명 때문에 승진을 하려고 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민선생님, 단어.자구까지 자세히 지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루키 뜻으로 쓴 '촛자'가 사전에 없어 속어라 그런가 보다했는데,
'초짜'가 맞군요. 즉시ㅈ시정했습니다. ^^
묘 비석에 쓰는 '학생'은
벼슬 안한 보통사람의 망인에게 해당하는 것을
전제했습니다.
그리고 쌍방 또는 어느 일방이 배우자 있는 남녀 간의 성관계 사건을 이르는 단어는 '간통> 상간> 통정> 불륜> 외도 > 정사> 바람 사건'등 많은데, 직접적. 간접적.은유적. 중립적 표현, 가치적. 몰가치젹. 표현 중에서 선택의 문제인 듯 합니다.
저는 '외도사건', 즉 보다
완곡한 용어로 수정하겠습니다.
보완. 검토 기회 주셔서 넘 고맙습니다.
성관계 사건에 해당되는 다양한 용어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걸 몰랐습니다. 오늘 또 하나 배웠네요.
엔비디아 대표 잭슨 황 가죽재킷이 상징하는 수컷성이 강한 생 글 잘 읽었습니다.
소재가 논픽션이 아닌 픽션이기를 기대하며,
성인지감수성을 감안 균형잡힌 어휘 선택을 하시면 좋을듯 합니다.
학생 찬가
우리의 자유로운 시야를 가리고 있는 사회적 지위, 명성, 지식을 뽐내려는 마음, 선생의 위치에 있으려는 욕심 등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배움의 길로 들어설 수 있는 학생이 되는 것이다.
즉 학생은 자신의 무지를 깨닫고 지식의 그릇이 확대됨을 배우고, 내면에서 지적 호기심이 발동하여 빈 그릇을 채우려는 사람이 아닐까?
나이가 들면서 학생으로 사는 즐거움을 조금씩 깨달아 간다.
이제 말로 삶이 조금씩 익어가고 있다.
학생이야말로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자유로운 존재라 여겨지는 것은 저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나의 묘비명
푹 쉬고 있으니
깨우지 마시오
<글 학생 이을기의 묘>
나이가 들수록 배우고 싶은 것이 점점 많아지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내리신 학생의 정의를 읽고 나니 너무 공감이 갑니다. 감사합니다.
학생 찬가- 어디로든 나아갈 수 있는 가능태로서의 자유를 짚어내시니 이보다 더한 발견은 몇 없을듯 합니다.
지우가 무진군청 수습지를 떠나며 버스 창가에서 바라본 바위산의 이미지를
본문 끝에 추가했습니다.
남의 묘비명
1. 이외수
쓰는 이의 고통이
읽는 이의 행복이 될 때까지
2. 윤이상
處染常淨
진흙탕 속에서 피어나지만 결코 더러운 흙탕물이 묻지 않는 연꽃
3. 니코스 카잔자키스
I hope for nothing,
I fear nothing, I am free.
나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롭다.
4. 조지 버나드 쇼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내 우물쭈물하다 언젠가 이 꼴 날 줄 알았다.
5. 임마누엘 칸트
Two things fill the mind with ever new and increasing admiration and awe, the more often and steadily we reflect upon them: the starry heavens above me and the moral law within me.
놀라움과 두려움에 휩싸이게 하는 것
두가지는 밤하늘의 별과
내 마음속의 도덕률
6. 스탕달
He lived, He wrote, He loved.
그는 살면서 쓰고 사랑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