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대구고등학교에 입학 했다.
고2 때도 학부모 호출을 받았다. 대구고등학교가 위치가 높았는데 아들이 민가에 돌을 던져서 민원이 들어 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들에게 '네가 그런 짓을 했냐?' 라고 물었습니다. 그런 적 없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나는 선생님께 아들이 한 일이 '아니라고' 한다. '무슨 근거로 우리 아들이 그랬다고 합니까?'
선생은 김00이 말했다 했습니다. 나는 삼자대면을 하자고 했죠!
아들이 김00에게 '네가 한 짓을 왜 나한테 덮어씌우냐?' 고하면서 평소에도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김00이 언덕 아래 민가에 작은 돌멩이를 던진다고 했습니다. 나는 한창 공부해야 할 학생이 양아치같이 행동 한다고 야단을 쳤습니다.
아들은 경일대학 산업공학과에 입학했습니다. 적성이 안 맞다고 하면서 2년 후 계명대학 인터넷공학과로 편입했습니다.
제 나이에 군에 입대해서 00사단에서 훈련받고 전경으로 편입해서 통영 00초소로 발령받았죠.
아내는 떡과 음식을 싸 들고 면회를 하러 갔었죠! 아들은 엄마를 보더니 대성통곡을 했다, 고 합니다.
해군함정 보초를 서면서…. 시간이 흘러 제대 후 복학해서 무사히 졸업했습니다.
이때부터 아들의 진로가 불투명했습니다. 나는 IT 기업에 취업하라고 했고 아내는 공무원 하라고 권했습니다.
대구 여건상 정보통신 회사가 별로 없기도 했습니다.
아들이 공무원 입시학원(노량진)에 등록하고 1.5평 고시원에 숙소를 정했습니다. 1년에 2번, 시험에 실패하고 한 번 더 도전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낙향 했습니다.
친구의 권유로 일어학원에 다니더니 일본 IT 기업에 1차 서류심사에 통과해서 일본행에 나셨죠. 대구에서 김해공항으로 이동해서 일본 나리타행 비행기를 태워주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짐이 혼자 들기도 어려울 만큼 무거웠습니다. 얼마 후 청천벽력 같은 일이 생겼습니다. 아들이 불법 입국자로 일본에서 추방을 당했습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요? 참 어처구니가 없는 일도 많군요!
아들은 노심초사했습니다.
얼마 후 아들이 싱글벙글 웃으면서 하는 말이 "아버지! 교수님 추천으로 여의도 정보통신 회사에 입사했어요!" 했습니다.
나는 반기면서 아들의 거처를 마련하려고 영등포 신길동 누님에게 부탁해서 그 주말 아들과 자취할 살림을 화물차에 싣고 신길동으로 가서 짐 정리를 해주고 아들이 출근할 여의도 회사도 탐색하고 대구로 내려왔습니다.
몇 달 후 영등포 누님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누님 : 동생인가?
나 : 네 - 누님!
누님 : 성옥이가 회사에 안 가고 집에 있는 것 같다!
나 : 네?
누님 : 연락 한번 해봐라!
나 : 알겠어요!
아들에게 전화해서 무슨 일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아들은 아무 말도 없이 한숨을 쉬었습니다.
아들아?
무슨 일이 있기는 한 거냐고 재차 물으니, 발령을 안 해주고 대기상태로 3개월을 견디고 있었다고 합니다. 교수 전화번호를 달라고 해서 통화를 했습니다.
교수 친구의 회사인데 두 사람이 동업하고 있고 동업자끼리 사이가 나빠져서 상대방이 고용한 우리 아들을 거부한 것입니다.
교수가 죄송하다고 사과합니다. 나는 당장 서울로 올라가서 아들과 짐을 화물차에 싣고 대구로 내려왔습니다.
아유!!
엄청나게 후회도 하면서 한편으론 화가 났습니다.
아들은 대구에서 선배 한 명과 컴퓨터학원에 다니면서 오라클 실무 자격증 공부를 했습니다. 단과반 수료 후 대구 정보통신 회사(검단동)에 취업했습니다.
그때 아들 나이가 31세, 결혼 중매회사에 신청했습니다.
순진하고 착하기만 아들은 여자 친구 한번 사권 적도 없고 남자 친구는 아직도 딱 3명, 동네 중학 동기입니다.ㄷ
중매회사의 선을 2~3번 봤고 지인의 소개도 2번 봤습니다.
그중에 후보는 지인 소개, 유치원 교사 한 명과 부모 학원에서 영어 강사인 아가씨, 중매회사 소개 도예과 나온 아가씨, 이렇게 3명인데….
아내는 유치원 교사를 밀고, 아들은 우유부단한 성격대로 아무 생각이 없는 듯, 그래도 남자라고, 영어 강사(미인)가 참 예쁘더라고 합니다.
아내는 부자고, 너무 잘생긴 영어 강사는 순해 빠진 아들하고 안 맞다는 주장이고, 아들은 유치원 교사는 너무 못생겼다고 합니다.
3명 다 아들이 괜찮다고 애프터를 신청했습니다.
지금의 며느리는 중매회사가 소개한 도예과 나온 아가씨입니다.
아들을 엄청나게 좋아해서 자주 찾아오더라고요. 사돈 내외는 중,고등 교사입니다.
아들은 한 가정을 이루려고 하니 책임감이 커졌는지 대구회사에서 포항회사(포스코 자회사)로 이직했습니다.
숙직실에서 생활했습니다.
나는 급히 포항에 삼성빌라 5층을 신혼집으로 사서 공동명의로 해 주었습니다.
혼사는 그 순서대로 순조롭게 진행되어 대구 웨딩캐슬에서 2010년 4월 24일에 결혼식을 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