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확신은 소통을 불가능하게 한다 / 이훈
좋아하는 것을 제대로 실천하겠다는 의지가 강박으로 무장되면, 사람에 대한 공감 능력을 잃는 자의식 과잉의 상태에 이르게 된다. 운동에 미치면, 운동을 어떤 경우에도 전도해도 되는 것으로 착각한다. 그래서 “요즘 심란해서 운동을 못한다”면서 신세를 한탄하는 이를 향해 운동을 안 해 심란한 거다, 투덜거릴 시간에 걷기라도 하라면서 타인‘만’의 복잡한 상황을 나약한 핑계로 찌그러트려 버린다. 건강한 음식을 먹겠다는 다짐을 지나치게 성스럽게 포장하는 사람은 식사 자리에서도 이런 거 먹으면 몸에 안 좋다는 추임새를 뱉어내기 바쁜데, 그때 발생하는 적막감을 본인만 느끼지 못한다. 그러니 누가 장염에 걸렸다고 하면 걱정은커녕 무엇을 먹었는지를 캐묻기 바쁘다. 그게 햄버거나 삼각 김밥이라면 정말 그런지와 상관없이 비난의 수위를 높이는데, 또 떳떳하다.
지나친 확신은 소통을 불가능하게 한다.(오찬호, <그런말 듣고자 한 말이 아니다>,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209050300075)
세상의 일을 선과 악의 두 영역으로 나누어 놓고 전자만을 배타적으로 강조하는 사람을 가까이하기는 어렵다. 당연하게 그런 사람은 쉽게 부러지기도 한다. 세상 자체가 그렇게 나누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정적인 것도 섞여 있는 현실을 전제하면서 이상을 얘기할 때라야만 그것을 실현하는 방법을 주위의 사람들과 같이 고민해 볼 수 있다. 대체로 큰 이상일수록 내 혼자만의 것은 아니고 다른 사람과 더불어 이루어 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이훈, <윤동주의 「서시」 꼼꼼하게 읽기>, https://cafe.daum.net/ihun/jIQm/101)
세상은 복잡하고 우리 인간은 유한하다. 그러므로 회의주의가 우리가 기댈 친구여야 한다. 우리 대통령처럼 무식한 사람이 다 아는 것처럼 굴면 참 딱하다(하기야 무식하면, 다시 말하면, 뭘 모르는지 모르므로 다 안다고 생각한다. 앎은 모른다는 것을 의식하는 데서 출발한다.). 시장에서 흔하게 파는 사과가 있는지조차도 모르면서 조언이랍시고 쌀값 문제를 놓고 이래라 저래라 하면 어이가 없어서 웃을 수밖에 없다. 기사를 직접 읽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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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8월 11일 민생현장 점검을 위해 한 대형마트를 방문한 자리에서 했던 발언이 뒤늦게 화제가 되고 있다. 이날 윤 대통령은 연두색 아오리사과를 가리키며 “이거는 뭐야? 이게 빨개지는 거예요?”라고 말했다. 쌀값 안정책을 얘기하며 “국수도 만들고, 빵도 좀 만들고”라고 말하기도 했다.
8월 17일 YTN 유튜브 채널 <돌발영상/뉴있저>는 윤 대통령이 서울 서초구 농협하나로마트를 방문했을 때 찍은 장면을 공개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과일 코너를 둘러보다 아오리사과를 가리키며 “이거는 뭐야?”라고 옆에 있던 마트 관계자에게 물었다. “이게 빨개지는 거예요?”라고도 했다. 마트 관계자는 “오래 놔두면 빨개지는데 빨개졌을 땐 이미 맛이 변해버린다”고 답했다. 윤 대통령은 생소한 듯이 “아오리사과…”라고 혼잣말로 되뇌었다.
쌀 코너를 둘러보면서는 “쌀 가공, 뭐 이런 식품들을 많이 좀 개발하고 판매가 돼야 쌀값이 좀 안정이 되지”라며 “국수도 만들고 빵도 좀 만들고”라고 말했다. 전남 영광군에서 생산된 쌀 포대를 보면서는 “아, 영광에서 나온”이라며 “이거는 뭐, 밥 지어가지고 고추장 보리굴비하고 먹으면 딱 (맛있겠네)”라는 말을 꺼냈다. 이 영상에 누리꾼들은 “아무한테나 반말한다” “서민들은 물가가 치솟아 걱정인데 대통령은 보리굴비 타령”이라는 등의 댓글을 남겼다.(https://h21.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244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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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라고 해서 다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모를 수 있다. 그러면 그런 분야는 주무 장관이나 담당자,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 쌀로 국수나 빵을 만든다고 내려가는 쌀값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은 대통령만 빼고 다 안다. 분노하는 농민의 심정을 또 기사에서 읽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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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농부가 상경한 그날, 서울역 앞에서는 농민 1만명이 쌀 나락을 길에 뿌리며 ‘정부가 하루빨리 상당량의 쌀을 시장에서 격리시켜 폭락하는 쌀값을 안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산지 쌀값은 20㎏당 4만2522원으로 전년 대비 24%나 하락했다. 9월부터 본격적으로 햅쌀이 수확되면 쌀값이 추가로 폭락할 가능성이 높다. 집회를 주최한 농민단체들은 “우리 농민들도 국민이다. 국가가 당연히 책임져야 할 국민의 한 사람이다. 생산비 폭등과 쌀값 폭락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는 농민들을 위해 이제는 정부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밥 한 공기 쌀값 300원 보장”이라고 적힌 팻말도 들었다.
쌀값 폭락 탓에 전북 김제에서 농부들이 트랙터로 논 일부를 갈아 엎었다는 신문 기사를 읽었다. 기사 속 사진에는 “쌀 그만두고 커피콩 심을란다”라고 적힌 현수막이 보였다. 식량인 밥 한 공기 쌀값은 300원도 안 되는데, 커피는 한잔에 4000원을 훌쩍 넘으니 부아도 나고 서운한 마음도 들어 적은 현수막일 터다. 하지만 농부들은 다 안다. 농정이 쌀을 지켜내지 않으면, 쌀이 무너지고 곧 사과도 무너지고, 언젠가는 수익성이 좋은 커피도 무너질 것이란 사실을. 농업을 홀대하는 나라에서는 어떤 농사도 유지될 수 없다.(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20901030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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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잘못을 아랫사람 탓으로 돌려서 사과할 줄 모르고, 세상일 다 아는 것처럼 혼자 떠드는 사람과 같이 일하려면 얼마나 힘이 들까! 모두 불쌍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