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江寒 第17章
<17-2>
무동산(武东山)의 얼굴색이 참담하게 변했다.
"사망침(蛇芒针)은 저희 문중만의 독문암기(独门暗器)인데 표의소년(豹衣少年)이 어떻게 얻었단 말입니까?"
달관상인(达观上人)이 힘없이 웃으며 말했다.
"소주의 영매(令妹=누이) 무홍매(武红玫)의 손에서 빼앗은 것이오!"
무동산의 눈에서는 불꽃이 튀었고 이를 갈며 욕을 했다.
"한심한 계집애 같으니!"
달관상인이 손을 저었다.
"소주는 영매를 탓하지 마시오.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영매는 지금 표의소년의 수중에 떨어져 있소이다."
무동산이 얼굴색이 더욱 어두워졌다.
달관상인의 말이 이어졌다.
"노납(老衲)은 이미 칠십으로, 살 만큼 살았으니 더이상 미련은 없소만, 소주는 곧 눈앞에 화(祸)가 들이닥칠 거란 사실을 잊지 않도록 하시오. 그리고 내가 한 말이 믿어지지 않으면 신단 아래에 있는 시체를 살펴보시오. 그는 몸에 아홉 개의 사망침(蛇芒针)을 맞고 칠공(七孔)에서 피를 흘리며 참혹하게 죽었소이다."
무동산이 궁금한 듯 물었다.
"노선사께서는 그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달관상인의 눈동자는 이미 초점을 잃고 눈빛이 희미해지고 있었다.
"소주가...보면... 알 것이오!"
무동산이 왼손을 떼자 달관상인은 마지막 가쁜 숨을 몰아 쉬고 눈을 감았다.
무동산이 긴 탄식을 내뿜었다.
잠시 후 손에 들고 있던 야행화접(夜行火折)이 모두 타버리자 전각 안은 다시 칠흑 같은 어둠에 휩싸였다.
무동산은 조심스럽게 신단 아래로 다가가 시신의 생김새를 살펴보려 했는데, 비록 예리한 안력을 가지고 있는 그였지만 너무 컴컴해 얼굴을 알아볼 수 없었다.
그가 주머니에서 부싯돌을 꺼내 "탁! 탁!" 몇 번 내리치자 어둠 속에서 불꽃이 튀며 죽은 사람의 얼굴이 비춰졌고, 무동산은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 이 사람이!"
아까 대흥객잔(大兴客栈)에서 마주쳤던 태원(太原) 관부 소속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했던 금포노인 주양(周骧)이었다.
이는 의심할 여지 없는 차도살인(借刀杀人)의 독계가 아니겠는가?
무동산은 한겨울 찬 공기를 들이마신 듯 모골(毛骨)이 송연(悚然)해졌다.
갑자기 --
바람을 타고 음산한 냉소가 들려왔다.
"무동산, 똑똑히 봤느냐? 죄를 인정하고 순순히 포박을 받아라!"
말과 함께 네 줄기 인영이 마치 유령처럼 빠르게 후전(后殿)으로 들어오더니 금•토•수•화(金•木•水•火) 네 방향을 점했고, 도광이 번쩍이는 가운데 전각 안은 삽시간에 무시무시한 살기로 가득 차오르며 숨이 막혀왔다.
무동산은 사태의 심각성을 알았지만, 왜 이런 일이 자신에게 일어났는지 여전히 이해되지도 믿기지도 않았기에 두 눈에서 흉광을 번뜩이며 차갑게 소리쳤다.
"흥! 내가 왜 포박을 받아야 한단 말이냐?"
넷 중 얼굴이 수척한 사내가 음침하게 웃으며 호통을 쳤다.
"너는 관원을 살해했으면서 죄를 인정하지 않고 체포를 거부하니, 감히 왕법을 무시하는 것이냐?"
무동산이 격분하여 소리쳤다.
"모략이다! 내가 관원을 죽였다고? 저들은 모두 내가 죽인 게 아니다."
수척한 남자는 괴소를 흘리며,
"너는 저기 신단 아래 죽어 있는 사람이 누군지 알아볼 수 있겠지?"
라고 말하며 손에 든 물건을 바닥에 던지자 한 줄기 화광이 일며 전각 내부를 밝게 비추었다.
무동산은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진탕질쳤지만 담담한 척 대꾸했다.
"나는 알지 못하오!"
수척한 남자의 표정이 더욱 굳어졌다.
"우리들이 함께 대흥객잔으로 간 다음, 주양(周骧) 혼자 들어가 무 소주에게 빨리 그곳을 떠나라고 권했는데, 어떻게 모른다고 시치미를 뗄 수 있는가? 주양은 결국 무 소주의 독문 암기인 사망침(蛇芒针)에 맞아 죽지 않았는가? 영웅이라면 매사 광명정대하고 자신의 행동에 당당해야 하는데, 영존(令尊)의 이름이 더럽혀지는 것이 두렵지 않은가? 순순히 우리를 따라 태원(太原) 무서(抚署=巡抚府)로 가서 죄를 청하도록 하라!"
무동산은 도저히 자신의 결백을 증명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재빨리 오른손으로 어깨 뒤에 있던 장검을 빼 들었고, 싸늘한 검기와 한망(寒芒)이 허공에 뿌려지자 네 사람의 안색은 급변했다.
하지만 무동산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이 백홍검(白虹剑)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더니, 네 사람은 표정이 다소 풀리며 입가에 보일 듯 말 듯 냉소를 띠었다.
수척한 남자가 대갈일성했다.
"무동산, 싸우자는 거냐!"
"그렇다!"
무동산이 냉소를 터뜨렸다.
"싸우든 안 싸우든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을 텐데, 하물며 이 무동산은 남이 나를 일방적으로 재단하게 놔두는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하지만, 뭐냐?"
무동산이 눈에서 정기를 쏘아내며 목소리를 낮췄다.
"네 분의 진짜 의도를 알고 싶소."
수척한 남자가 크게 웃으며 대꾸하는데 어투가 돌연 부드러워졌다.
"방금 내가 분명히 말하지 않았는가?"
무동산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주양이 태원부 관원이 아니고 네 분 역시 관부에서 보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소."
수척한 남자가 안색이 변하여 소리쳤다.
"허튼소리!"
무동산이 하하 크게 웃으며 장검을 휘둘러 장홍관일(長虹貫日) 일 초로 수척한 사내의 인후(咽喉) 요혈을 찔러갔는데 그 빠르기가 진정 번갯불 같았다.
사람들의 안색이 변하더니 수중의 병기들이 저마다 춤을 추며 폭풍우가 몰아치듯 무동산의 요해중혈(要害重穴)을 겨냥했는데, 이들 네 사람은 달리 소개를 안 해도 모두 강호 최고 수위의 고수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합격(合击)의 호흡이 엄밀했고 수법의 배합은 절묘했다.
수척한 사내는 수중의 낭아추(狼牙锤) 한 쌍을 오악개정(五岳盖頂) 수법으로 기세등등하게 연신 휘몰아쳤는데, 웬만한 사람이라면 네 사람의 합격은커녕 그의 일격만도 막아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무동산의 신법은 기이할 정도로 빨라 팔을 떨치며 장검을 빠르게 휘두르자, 한 무리의 거센 파도와도 같이 검기가 격렬한 파동을 일으켜 그 기세가 산처럼 강렬했고 위력은 사람의 혼을 앗아갈 듯했다.
약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경과할 무렵, 무동산이 왼손을 버쩍 들어올리며 호통을 쳤다.
"받아랏!"
네 사람은 무동산이 아무 때고 사망침(蛇芒针)을 쏠 거라 여기고는, 치고받는 와중에도 늘 대비를 하고 있었고, 이 치명적인 암기는 막기가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무동산의 호통소리를 듣자마자 즉시 각자의 병기를 회수하여 몸을 가렸다.
뜻밖에도 무동산은 속임수를 쓴 것이었고 암기를 쏘는 대신 장검을 빠르게 휘두르자, 허공은 검신에서 쏟아져 나온 반짝이는 작은 별들로 가득 차 눈부신 광채가 사람들의 눈을 멀게 했고, 그 순간 무동산의 몸은 시위를 벗어난 화살처럼 공중으로 날아올라 지붕의 기와를 뚫고 나가 버렸다.
하지만 무동산의 몸이 막 사당 앞마당으로 낙하하는 순간, 그의 앞에 어느새 나타난 다섯 명의 신형이 횡으로 길을 가로막았다.
무동산은 그 정도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냉소를 터뜨리며, 그들이 몸을 채 바로 하기도 전에 벼락치듯 장검을 휘둘렀다.
두 차례의 비명소리가 이어지며 경장대한(劲装大汉) 두 사람이 막는 시늉도 하지 못한 채 왼팔이 잘려 나갔고, 선혈이 비 오듯 튀었다.
우레와 같은 분노의 호통소리를 뒤로 하고 무동산은 큰 학처럼 공중으로 날아올라 번개처럼 빠르게 도망쳤다.
사당 안에 있던 네 사람이 서둘러 밖으로 나왔을 때 무동산의 종적은 이미 묘연했다.
경악과 분노에 휩싸인 수척한 사내가 곧바로 길게 휘파람을 불었다.
맑은 휘파람소리는 바람을 따라 하늘로 올라가 구름에라도 닿을 듯 끝없이 퍼져갔다.
갑자기 교태로운 음성으로 꾸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쓸모없는 것들, 많은 사람들이 무동산 하나를 잡지 못하다니, 무슨 죄를 받아야 마땅하겠는가!"
수척한 사내 등은 그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얼굴이 흙빛이 되어 주위를 둘러봤다.
키 작은 나무 숲 사이에서 검은 옷에 복면을 하고 검을 등에 멘 소녀가 천천히 걸어 나왔는데, 백의경장(白衣劲装) 차림의 여비 한 쌍이 뒤를 따랐다.
검은 옷을 입은 복면소녀의 걸음걸이는 느린 듯했지만 실은 빨라, 눈 깜짝할 사이에 수척한 사내 일행의 앞으로 다가와 가볍게 냉소를 하더니 싸늘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나의 시비(侍婢) 둘이 이미 무동산을 쫓아갔는데, 따라잡을 수 있기를 바라지만, 그렇지 않으면 너희들은 한쪽 팔이 잘리는 중벌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수척한 사내 등은 암연(黯然)한 표정으로 일제히 몸을 굽혀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속하들은 마땅히 중죄를 받아야 합니다!"
복면소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이는 내 손이 맵고 무정해서가 아니라 문중의 법이 엄하기 때문이란 걸 알도록 해요."
이어서 사방을 둘러보며 물었다.
"무동산이 이끌고 왔던 수하들은 어디에 있지?"
수척한 사내가 몸을 굽혀 대답했다.
"모두 제압하고 수혈(睡穴)을 짚었습니다."
갑자기--
공중에서 흰 그림자가 날아 내려오며 두 명의 흰 옷을 입은 아름다운 시녀가 나타나더니, 흑의복면소녀에게 옷깃을 여미고 인사를 하며 말했다.
"저희들이 뒤쫓아갔지만 무동산의 신법이 귀신처럼 빨라, 그가 긴 풀이 우거진 산비탈 풀숲으로 뛰어들어는 것까지는 보았지만 그 후의 종적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흑의복면소녀는 발로 땅을 구르더니 깡마른 사내에게 고개를 돌렸다.
"장규(张奎), 너는 진덕삼(陈德三)을 데려와라."
장규는 대답과 함께 십여 장 밖으로 날아가 신형 하나를 잡아 일으키더니 오른발로 걷어차 오 척 거리를 날려 보냈다.
혈도가 차인 진덕삼은 막힌 혈도가 풀리며 눈을 떴다가 얼굴색이 변했고, 도망갈 길이 없음을 깨닫자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죽이든 베든 마음대로 하되 이 늙은이를 능욕할 생각이라면, 내 입에서 온갖 더러운 말이 튀어나오더라도 원망하지 마시오!"
복면을 한 흑의소녀가 호통을 쳤다.
"더러운 말을 내뱉기만 하면 이 아가씨가 네 놈의 살을 한 치씩 저미어 포를 떠,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하는 형벌을 받게 할 것이다!"
진덕삼이 절규했다.
"노부가 너와 무슨 원수가 졌길래 이러는 거냐!"
복면을 한 소녀가 코웃음을 쳤다.
"흥! 네깟 늙은이가 감히 이 아가씨와 무슨 원한 따위가 있을 수나 있겠느냐? 본 소저가 묻겠는데, 무동산이 어디로 갔는지 짐작되는 곳이 없느냐?"
진덕삼은 무 소주가 죽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무사히 도망쳤다는 것을 알게 되자, 마음속으로 몰래 기뻐하며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이 늙은이는 모르오!"
복면소녀가 코웃음을 쳤다.
"정말 모르는 거야, 아니면 모르는 척 하는 거야?"
진덕삼이 소리를 높였다.
"우리 소주는 늘 예측할 수 없는 심오한 행동을 하시니, 늙은이로서는 알 도리가 없소이다."
복면소녀가 다시 냉소를 치며,
"흥, 무동산이 무어 그리 대단하다고! 본 낭자는 네 말이 진실인지 확인할 방법이 있으니, 조금이라도 거짓이 있다면 내 손이 악랄하다고 원망하지 말거라!"
라고 말한 뒤 네 명의 시녀를 돌아봤다.
"너희들은 가서 무동산의 부하들을 한 명씩 심문해라! 무동산의 행방을 아는 자가 전혀 없을 리가 없어."
네 명의 시녀는 명령을 받고 달려갔고, 진덕삼은 마음이 불안한지 기색이 자주 변했다.
복면소녀가 갑자기 고개를 돌려 사당 옆 잎이 우거진 큰 나무를 바라보며 차갑게 소리쳤다.
"장규, 너희 네 사람은 나무 위에 숨어 있는 쥐새끼를 잡아와라!"
장규 등 네 사람이 곧장 거목을 향해 달려갔는데, 짙은 가지와 무성한 잎 사이로 한 줄기 그림자가 매처럼 빠르게 사당 뒤로 날아가는 것이 보이자 장규가 호통을 쳤다.
"쥐새끼 같은 놈, 게 섯거라!"
그 인영은 사당 뒤로 내려서자마자 곧바로 몸을 돌려세웠다.
그러자 관옥 같은 준미한 용모에 푸른 옷을 입은 청년이 등에 칼을 멘 채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가 입을 열었다.
"소생은 쥐새끼라 하는데, 네 분은 누구시오?"
장규가 순간 당황한 나머지 멍해져 대답을 하지 못하자, 다른 노인이 냉소를 날리며 대신 입을 열었다.
"존가는 어찌하여 우리를 비밀리에 엿보았소?"
청년이 하하! 낭랑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대명천지에 무슨 비밀이 있다 할 수 있고, 하물며 이곳은 황폐한 사당으로 그대들이 올 수 있는데 나라고 오지 못할 이유가 있소이까?"
노인이 안색이 변하며 호통을 쳤다.
"속히 이 쥐새끼를 잡아 아가씨께 복명합시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네 사람은 이미 공격을 시작했다.
그런데 청년의 출도(出刀)가 이 정도로 기이하고 빠를지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삭풍이 몰아치는 가운데 금빛 유성우가 쏟아져 내리더니 네 차례의 끙 하는 신음소리가 연이어 들리며, 장규 등 네 사람 비틀거리며 뒤걸음질 치고 있었는데, 얼굴색은 종이처럼 하얘졌으며 오른쪽 어깨가 축 늘어진 채 어깨뼈 부위의 옷에는 선홍색 피가 배어 나와 옷소매를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복면소녀가 몸을 날려 바람처럼 다가오더니 청년을 보고 깜짝 놀라 소리쳤다.
"알고 보니 당(唐) 공자이셨군요!"
청년은 일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니 곧바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소생이 당몽주(唐梦周)올시다만, 아가씨의 숨겨진 얼굴을 알아보지 못함을 용서하기 바랍니다."
복면을 쓴 소녀가 말했다.
"공자께서 저 같은 여인네를 아실 필요는 없지만, 부귀한 집안 출신으로 벼슬길에 오르셔야 할 분이 어찌하여 강호에 몸을 담으셨습니까?"
당몽주가 다시 미소를 지었다.
"저도 아가씨와 마찬가지로 제 몸이 제 마음대로 되지 않는군요."
말을 하며 그는 속으로 복면소녀의 내력을 추측해 보았다.
복면소녀는 잠시 침묵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공자께서는 강호상에서 무동산(武东山)과 동도(同道)의 길을 걷고 계십니까?"
당몽주가 고개를 저었다.
"나는 그와 전혀 관계가 없소이다(风马牛不相关)*⑴."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어 냉랭하게 물었다.
"아가씨 쪽은 왜 관부(官府)를 사칭하셨소이까?"
복면소녀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공자께서 잘못 아셨습니다. 주양(周骧)은 확실히 관부 사람이지만 진무(晋抚=太原抚署)의 호위(护卫)는 아닙니다. 공자께서도 알고 계셨을 겁니다. 그리고 제 추측이 맞다면 공자께선 지금 강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저보다도 더 많이 알고 계실 것입니다."
당몽주가 미소를 띠었다.
"소생은 강호에 발을 들여놓은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무림 사람들은 저를 같은 길을 가는 사람으로 여기지 않고, 비록 여러 가지 사건들을 목격하고 나름 역할을 하려 하지만, 아직은 남의 일에 감 놔라 배 놔라 할 처지가 못 되고 능력도 없소이다."
"호호, 그건 공자께서 겸손하신 거죠!"
복면소녀가 말을 이었다.
"공자께서는 이미 사당 안의 중과 도사들, 그리고 주양을 모두 제가 살해했다는 것을 알고 계시겠지만, 그들은 모두 죽을 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당몽주가 물었다.
"그들 모두 각자 주인을 위해 일하는 것이었을 텐데, 아가씨께서는 그들이 잘못했다고 생각하시오?"
복면소녀는 멍한 표정을 짓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공자님의 일방적인 생각이에요! 나중에 공자님께서는 제가 왜 차도살인(借刀杀人)의 계략으로 무동산이 혐의를 벗을 수 없게 했는지 알게 되실 거예요. 그리하지 않으면 강호에 또 한 번 변란(变乱)이 벌어질지도 모릅니다."
당몽주는 묵묵히 말이 없었다.
복면소녀가 갑자기 은방울 구르는 듯한 웃음소리를 내며 물었다.
"공자께서도 자전백홍(紫电白虹) 쌍검에 대한 소문을 분명히 들어보셨을 거라 생각하는데요?"
당몽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저도 소문은 들었소이다."
복면소녀가 말했다.
"저는 백춘언(柏春彦)이 직접 자전검을 탈취했고, 그의 딸 백월하(柏月霞)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고 생각해요."
당몽주는 순간 검미를 찌푸리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밝게 웃었다.
"아가씨의 추측은 일리가 있소이다. 다만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
"맞아요!"
얼굴을 가린 소녀가 냉소하며 말을 계속했다.
"백춘언을 찾더라도 지금 만나게 되면 우리 모두 자전검 아래의 원혼(冤魂)이 될 것이 뻔하죠. 한시라도 빨리 백홍검을 얻어야 그의 상대가 될 수 있어요. 그런데 백홍검은 비응방주(飞鹰帮主)가 얻었다고 무림에 널리 알려져 있으니......"
"그래서 아가씨는 무동산을 사로잡아 비응방주를 굴복시키려 한 것이군요."
당몽주는 희미하게 웃으며 일석이조(一石二鸟)의 계책이 이미 효과를 거두었음을 느끼며 속으로 흐뭇함을 금할 수 없었다.
복면소녀가 말했다.
"비응방주의 딸 무홍매(武红玫)가 이미 내 손에 있으니, 비응방주가 백홍검을 내놓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당몽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말대로라면 아가씨가 승산을 쥐고 있군요. 저는 그런 일에 참여하고 싶지 않고, 지금 먼 길을 가야 하니 이만 헤어지기로 합시다!"
그의 작별을 고하는 말이 떨어지자 묘령의 아리따운 네 시비가 동시에 몸을 날려 다가와 당몽주를 막아섰다.
하지만 그녀들은 그저 당몽주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하고 있었고, 당몽주는 그녀들을 향해 한 차례 미소를 던지더니 표연히 걸음을 옮겨 떠나갔다.
한 시비가 문득 물었다.
"아가씨, 그가 누구인가요?"
복면소녀가 한 차례 교소(娇笑)를 발하더니 입을 열어,
"부귀한 집안의 고아(高雅)하기 그지없는 분이지. 우리 같은 속인들은 감히 우러러볼 수도 없단다."
라고 한 뒤 잠시 침묵하였다.
잠시 후 그녀가 그 시비에게 물었다.
"너희들, 알아보았느냐?"
그 시녀가 대답했다.
"알아봤는데 여량(吕梁)으로 가는 것 같습니다."
복면소녀가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럼 여량으로 가자!"
(17-2 마침)
[註]
*⑴ 风马牛不相关
원래 '风马牛不相及'란 성어 같습니다.
'춘추전국시대 제(齐)나라와 초(楚)나라는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 잃어버린 말과 소가(또는 바람난 말과 소가 도망치더라도) 상대방의 경내에 이르지 못한다'라는 의미로, 어떤 사이가 전혀 상관이 없다는 뜻으로 쓰이는 듯합니다.
첫댓글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