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녹의소녀 위소보는 말했다. "저는 그들이 언쟁을 벌이고 있는 것을 보고 다가가 보았습니다. 도대 체 무엇 때문에 언쟁을 벌였는지 모르겠습니다. 정제, 자네가 이야기를 하게." "네." 정제는 몸을 돌리고 말했다. "방장과 수좌사숙에게 품하는 바입니다. 제자 네 사람은 정자에서 손님 을 맞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두 여시주가 절안으로 들어와 예불을 하겠다고 하길래 제자들은 완곡한 말로, 본사의 지금까지 지켜온 규칙 에 의하면 여시주를 접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나이가 좀 듬직한 여시주가 말했습니다. '소문에 들으니 소림사는 자칭 무학의 정종이라 하며 72가지 절예는 하 나같이 당대 무적이라고 하기에 우리들은 구경삼아 왔어요. 도대체 어 떻게 무서운지 봐야겠어요.' 제자는 말했어요. '폐사에선 결코 감히 스스로 무공이 당대 무적이라고 칭하지 못한답니 다. 천하각문각파의 무공은 각기 장점이 있습니다. 소림파에서 어찌 그 런 망발을 하겠습니까?'" 회총방장은 말했다. "그 말은 그럴 듯하다. 매우 잘한 말 같구나." "그 여시주는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소림파는 그저 헛되이 명성만 떨치고 있을 뿐이고 하잘 것 없는 권각법은 겨우 가소로울 정도밖에 되지 않는단 말이에요' 제자는 말했습니다. '실례이지만 두 분 시주는 어느 문파에 속하는지요. 어떤 무림 선배의 고제자입니까'" 회총은 말했다. "그렇다. 두 젊은 여인이 본사에 와 일을 일으키는 것은 본파의 무공을 업수이 여기는 것이니만큼 반드시 내력이 있을 것이다. 마땅히 그녀들 의 문파내력을 물어야 했다." 그 여시주는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그대는 우리들의 문파내력을 알고 싶은가요? 그것은 참 쉬워요. 한 번 보면 알 수 있어요.' 별안간 제자와 정청 사제의 따귀를 갈겼으나 그녀의 손 씀씀이가 너무 빨라 제자들은 사전에 방비할 수 없었습니다. 정청사제가 말했습니다. '두 분은 어째서 함부로 사람을 치는 것이오.' 그 여시주는 웃었습니다. '그대들에게 우리 문파 내력을 알리기 위해선 손으로 쓰는 무공을 보여 주면 될 것이 아니에요?' 거기까지 말할 때 회명 사숙조께서 오셨습니다." 징식은 물었다. "그 여시주가 손을 써서 너를 때리고자 할 때 사용하던 수법은 어떤 것 이냐?" 정제와 정청등은 모두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제자들은 똑똑히 보지 못했습니다." 징식은 나머지 두 승려에게 물었다. "너희들은 얻어맞지 않았으니 그 여시주의 수법과 신법을 보았겠지?" "그저 철썩철썩 하는 소리만 듣고 두 분 사형이 얻어맞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그 여시주들은 마치 손을 쓰거나 옮기지도 않은 듯 몸도 꿈쩍거리지 않았습니다." 징식은 방장 쪽을 바라보며 그의 계시를 기다렸다. 회총은 잠시 생각해 보더니 집사승에게 말했다. "달마원과 반야당(般若堂)의 두 분 수좌를 모셔오도록 해라." 얼마 후 두 분 수좌가 차례로 도달했다. 달마원의 수좌는 징심이었다. 바로 오대산으로 응원을 갔던 십팔나한의 우두머리였다. 반야당의 수좌는 징관(澄觀)선사로서 80세 되는 노승이 었다. 두 승려는 방장에게 인사를 했다. 회총은 말했다. "두 분 여시주가 본사에 와서 시비를 걸었는데 어떤 문파인지 모르고 있네. 두 분은 박학하고 견문이 넓으니 함께 자세히 연구해 주시기 바 라네." 그리고 그는 즉시 경과를 이야기했다. 징심은 말했다. "네 명의 사질들이 그녀가 손을 쓰는 것을 못 보았는데도 두 사람은 얼 굴에 각기 따귀를 맞았습니다. 이와 같은 무공은 본파 천엽수(千葉手) 가운데도 있으며 무당파의 회풍장(廻風掌)에도 있으며 곤륜파의 낙안권 (落雁拳), 공동파의 비봉수(飛鳳手)등에도 이와 같은 수법이 있습니 다." 회총은 말했다. "그저 이장을 쓰는 것으로 보아선 그녀들의 무공문파를 알 수는 없군. 그런데 자세는 또 어떻게 하다가 그들과 손을 쓰게 되었는가?" 위소보는 말했다. "남의소녀는 먼저 네명...... 네 명 화상의 팔목을 비틀었습니다." 회총은 네 승려들이 손목과 팔뼈가 부러진 원인을 물었다. 네 승려는 손짓 발짓을 해가며 연출해 보였다. 징심은 물끄러미 한참동안 바라보 더니 차례로 자세히 그 소녀들의 수법을 물었다. 최후로 위소보에게 물었다. "사숙께 여쭤 봅니다. 그 소저는 어떻게 사숙의 두 팔을 비틀어서 분질 렀습니까?" 위소보는 말했다. "이 어르신께서는 뒷덜미를 그 아름다운 소저에게 더럭 움켜잡히게 되 었소. 그리하여 전신이 욱신거리고 맥이 빠지더구려. 그녀는 바로 이곳 을 잡았소." 그러면서 그는 뒷덜미를 가리켰다. 징심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대추혈(大椎穴)로서 가장 중요한 요혈입니다." 위소보는 말했다. "나는 손을 뒤로 돌려 그녀의 팔을 밀어내려고 했소. 그런데 바로 그때 그녀의 주먹에 등심을 얻어맞게 되었고 그만 죽을 것 같은 아픔을 느끼 게 되었소. 일이 다급해진 나머지 손을 허위적거리게 되었는데 그녀의 가슴팍을 한 번 움켜잡게 되었소. 그소녀는 그만 다급해져서 나의 팔목 을 비틀어 놓고 나를 땅바닥에 내던지더니 마구 칼을 휘두르며 내려찍 었소. 빌어먹을! 사람을 죽이는데 밑천이 들지 않는다고 그녀는 오로지 한마음 한뜻으로 친남편을 모살하여 젊은 과부가 될 작정이었나 봅니 다." 뭇승려들은 그가 입으로 터무니없는 말들을 마구 지껄이게 되자 서로들 얼굴만 쳐다보았다. 징심은 그의 등뒤로 돌아가 손을 뻗쳐서 시늉을 해 보이자 그의 등심 승복자락에 세 가닥의 칼자국이 나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물었다. "그녀는 그대에게 세 번이나 칼질을 했군요. 사숙의 상처는 어떻습니 까?" 위소보는 의기양양해져서 말했다. "나는 보의가 있어 몸을 보호해 주기 때문에 상처는 입지 않았소. 이 세 번의 칼질은 다행히 나의 중대가리를 내려치지 않았소. 그 누이는 칼로 나를 쳤으나 죽지 않은 것을 보고 아마 혼비백산한 모양으로 이 어르신의 무공이 깊이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라고 여긴 나머지 자기의 목을 자르려고 했소. 기실 나의 무공으로 말하면 형편없는 것이 아니 오? 그녀와 같이 화용월태를 지닌 소녀를 이 어르신은 결코 괴롭힐 생 각이 없었는데......" 회총은 그가 계속 터무니없는 말들을 많이 지껄이게 될까봐 불쑥 입을 열었다. "사제, 그만하게. 되었네." 뭇승려들은 그제서야 모든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 소녀가 자결을 하려고 한 것은 가슴팍을 붙잡히게 되어 지극히 커다란 모욕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위소보는 당시 생사가 위기에 놓여 있었다. 그의 옷자락에 난 세 가닥 칼자국만 보더라도 알 수 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다급한 김 에 손을 뒤로 돌려 마구 허우적거리게 되었으니 적의 몸 어느 부위를 건드렸다고 해도 무슨 잘못이 있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그의 무공이 형편없이 낮기 때문에 사람에게 사로잡히게 되었을 때 죽어라고 발버둥 을 치게 될 것은 뻔한 노릇이니 그런 순간에 어찌 어떤 규칙을 지키라 고 할수 있겠는가? 징식은 대뜸 안색이 차분해지더니 입을 열었다. "사숙, 처음 그 여시주가 말끝마다 사숙이 규칙을 지키지 않았다고 욕 을 하길래 사숙께선 진짜 계율을 어기고 남의 부녀를 희롱하여 상대방 에게 죄를 짓게 된 것이라고 생각했소이다. 그러고보니 싸우게 되었을 때 자기도 모르게 저지른 과실이고, 계율을 어겼다고 할 수는 없군요. 사숙께선 이리 앉으십시오." 그는 친히 의자를 가져와 회총의 아래쪽에 놓았다. 그 뜻은 계율을 어 기지 않았으니 계율원에서는 당신을 상관할 수 없다, 그리고 당신은 절 안에서 어른이니 마땅히 당신에겐 존경을 표해야 될것이 아니겠는가 하 는 것이었다. 위소보는 히죽 웃으며 앉았다. 징식은 그의 태도가 경박하고 말하는 것도 무례하기 짝이 없는 것을 보 고 참을 수 없다는 듯 다시 입을 열었다. "사숙께서는 색계를 범하지 않았다고 해도 여시주를 대하게 되었을 때 마땅히 정중한 행동과 근엄한 얼굴을 해야만 소림 고승의 풍모를 실추 시키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위소보는 웃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회총이 막 뭐라고 권고의 말을 하려고 할 때 반야당의 수좌 징관이 갑 자기 입을 열었다. "문파가 없소이다." 징심은 의아해 물었다. "사형은 그 두분 여시주에게 문파가 없다는 것이오?" "훔쳐서 배운 무공이며, 그녀들 두 사람의 분근착골수 가운데는 무당, 곤륜, 점창, 공동 사파의 수법이 포함되어 있소. 그리고 사숙의 등에 한 세 번의 칼질은 이미 청성 그리고 산서성의 육합도(山西六合刀)의 삼문도법(三門刀法)이 포함되어 있소." 위소보는 크게 의아한 마음이 들어 입을 열었다. "어! 그녀들의 그와 같은 초식을 보고 그대는 모두 내력을 알수 있단 말이오?" 위소보는 징관이 8살 때 소림사에 출가하여 70여년 동안 무학에만 몰두 하여 한 번도 절문 밖으로 나간 적이 없을 뿐 아니라 무학의 전적(典 籍)을 모두 읽어 아는 바가 지극히 높다는 사실을 알턱이 없었다. 소림 사 달마원은 본래 전적으로 소림파의 무공을 연마하는 곳이었고 반야당 은 전적으로 천하 각문각파의 무공을 연구하는 곳이었다. 그러니까 반 야당의 수십 명의 고승들은 하나같이 한 파 또는 여러 파의 무공에 정 통하고 있었다. 소림사의 뭇승려들은 수나라 말기에 이세민(李世民)을 도와 왕세충(王 世充)을 평정한 적이 있었다. 그때 이미 위세를 천하에 떨칠 수 있었으 며 천여 년 동안 그 명성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은 상태였다. 여기에는 물론 소림파의 무공이 박대하고 정묘하여 깊이가 있다는 것도 원인이 있었지만 반야당에서 다른 문파의 무공을 착실히 연구했다는 것도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였다. 다른 문파의 무공을 통달한 이후, 첫째로 장점 을 키우고 단점을 보완하여 소림파의 무공이 부족함을 구할 수 있었고, 둘째로는 다른 문파의 고수들과 겨루게 된다면 먼저 상대방의 내력을 알게 되었으니 자연히 크게 우위를 차지하게 되는 셈이었다. 그리고 소 림사의 제자들은 강호에서 경험을 쌓아 절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는 방 장과 자기의 사부에게 인사를 한 이후 계율원으로 가서 자기 자신은 어 떤 죄를 짓지 않았음을 보고해야 했다. 그리고 나서 반야당으로 가서 자기가 경험한 바와 들은 바를 보고해야 했다. 다른 문파의 무공 가운 데 일초일식이라도 취해야 할 무공이 있다면 반야당에서는 기록을 했 다. 이와 같이 수천 년간 쌓이고 쌓이게 되자 천하각파 무공은 손바닥 들여다보듯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 설사 절안에 재지가 탁월하고 걸출 한 인재가 없다 해도 뭇 영웅들의 영도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징관은 그저 무학에만 몰두하여 세상일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다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사람됨이 약간 멍청한 데가 있었다. 그렇지만 각 문각파의 무공에 대해서는 정묘하게 분별할 줄 알았다. 선비들은 글을 많이 읽고 난 이후 너무나 많은 양을 자기 것으로 소화하지 못하게 되 면 그저 책벌레라는 뜻으로 불리우는 때가 있다. 그런데 이 징관선사는 그야말로 무공을 익히다가 무공벌레가 된 셈이었다. 그는 한평생 동문 과 대련을 한 외에 한 번도 외부 사람과 일초반식을 싸워 본 적이 없었 다. 하지만 무학에 관하여 아는 바는 지극히 넓어 소림사의 뭇승려들을 그를 당금세상의 제일인자로 간주하고 있었다. 징식은 말했다. "원래 두 분 여시주께 아무런 문파가 없다니 이 일은 해결하기 쉽게 되 었소. 그저 그 소저만 치료하여 그녀들을 내보낸다면 아무런 후한이 없 을 것입니다." 징식은 말했다. "그녀들 두 여시주가 서로 사자매라고 칭하는 것을 보면 사부가 있는 것 같은데요." "설혹 사부가 있다 해도 명문대파의 고명한 인물은 아닐 것이외다." 징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회총방장은 말했다. "두 분 여시주가 나이가 젊어 일을 벌이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일어 난 시비라고 할 수 있으며 이번 싸움에 있어 우리 쪽은 별로 잘못이 없 다고 하겠네. 그렇지만 역시 예의는 잃지 말아야지. 두 분 여시주를 반 드시 잘 접대하도록 하게. 자, 이제 헤어지지." 그리고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징심은 미소했다. "처음에 저는 무림에서 어느 분의 고수가 나와 두 명의 소녀에게 가르 친 후 일부러 본파를 욕되게 하려고 보낸 것이 아닌가 걱정했습니다. 소림사는 명성을 천 년이나 누리고 있는데 우리들 손에 와서 곤두박질 치게 해서는 안 되겠지요." 뭇승려들은 미소를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위소보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내가 볼 때 소림파의 무공은 명성은 대단하나 기실에 있어서는 그저 그렇다고 보여지는구려." 회총은 문을 나서려고 하다가 그 말을 듣고 아연해져 고개를 돌렸다. 위소보는 말했다. "정제, 정청, 자네들은 몇 년동안 무공을 배웠는가?" 정제는 14년을 배웠다고 했고 정청은 12년을 배웠다고 했다. 그러나 모 두 스스로 자질이 낮아 진보가 없어 부끄럽기 짝이 없다고도 했다. 회총방장은 입을 열었다. "우리들이 배우는 것은 도를 깨닫고 해탈하자는 데 뜻이 있는 것이지 무공의 고하는 가장 뒤로 치는 일이라네." 위소보는 고개를 흔들었다. "제가 보기에 여기에는 큰 병폐가 있는 것 같습니다. 두 계집애로 말하 면 나이가 스물을 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동쪽에서 일초를 훔치고 서쪽에서 일식을 배워 각문각파의 잡탕쯤되는 무공을 섞어 10여 년 무 공을 쌓은 소림사의 승려로 하여금 당황하여 도망치도록 만들고, 오줌 을 싸면서 전혀 반항 한 번 해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죽어도 몸을 묻 힐 곳이 없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볼 때 무당파나 곤륜파의 반식은 우 리 소림파의 정통무공보다 훨씬 무섭다고 봐야겠죠." 회총, 징식, 징심 등의 승려들은 매우 겸연쩍어졌다. 위소보의 그 같은 말이 비록 귀에 거슬렸으나 일시에 변명이나 반박할 수 없어 생각했다. (정제 등 네 사람의 무공은 형편없다. 어찌 소림파의 정통무공이라 할 수 있겠는가?) 징관은 이때 고개를 끄덕였다. "사숙의 말씀에 일리가 있습니다." 징식은 의아하여 물었다. "어찌 일리가 있다고 말씀하시오?" "상대방의 잡탕무공이 우리 정통무공을 대패시켰으니 이 가운데는 아무 래도 석연찮은 점이 있네." 회총은 말했다. "각자의 자질과 천분이 다른 것. 정제 등은 원래 무공을 장점으로 삼고 있는 것이 아니잖는가? 그들은 손님들을 접대하는데 바쁘다네. 그거야 말로 불법을 크게 펼치는데 커다란 공덕을 쌓는 일이지. 정제, 정청, 정본(淨本), 정원(淨源)너희들 네 사람은 지객이라는 직책을 그만 맡고 이후는 좀더 무공을 연마하도록 해라." 정제 등 네 명의 승려는 허리를 굽혔다. 뭇 승려들은 계율원의 나섰다. 위소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징관은 눈 살을 찌푸리고 잠시 생각해 보더니 그 역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회총과 징심은 서로 한 번 쳐다보았다. 그리고 하나같이 속으로 생각했 다. (이 늙은이와 저 젊은이는 모두 멍청한 데가 있으니 아랑곳 할 바 없 다.) 그리고는 자기의 선방으로 되돌아갔다. 징관은 마당에 있는 공손수(公孫手)라는 나무에서 나뭇잎이 천천히 떨 어지는 것을 보고 한참 동안 넋을 잃고 있더니 입을 열었다. "사숙, 나는 그 여시주를 한 번 만나봐야겠소이다." 위소보는 크게 기뻐했다. "그것 참 잘되었구려! 나도 가겠소!" 두 사람은 동원선방에 이르렀다. 그러자 녹의소녀의 병을 간호하던 노 승이 마중나왔다. 위소보는 물었다. "그녀는 죽지 않았소?" "칼의 상처가 깊지 않아 상관이 없습니다. 죽지는 않을 것입니다." 위소보는 기뻐서 말했다. "정말 잘되었습니다. 정말 잘되었습니다." 그리고 선방으로 들어갔다. 그러고 보니 녹의소녀는 침대 위에 비스듬히 누워 있었는데 두눈을 꼭 감고 있었고 안색은 창백하여 투명할 정도였다. 목을 하얀 베로 감아 놓고 있었다. 오른손은 이불자락 밖으로 나와 있었는데 다섯 손가락은 가늘고 길었으며 부드러웠다. 그야말로 백옥으로 깎아 만든 것 같았다. 손등 위에는 손가락이 끝나는 곳에 다섯 개의 조그맣고 둥근 보조개와 같은 것이 살짝 패여 있었다. 위소보는 속으로 크게 마음이 설레이는 것을 느꼈다. 아름답기 그지 없는 조그만 손을 만지고 싶어 입을 열었 다. "그녀에게 맥박이 아직 있는지 모르겠구나." 그리고 손을 뻗쳐 일부러 그녀의 맥을 잡는 척 하려고 했다. 그 남의 소녀는 바로 침대 끝에 서 있었는데 그가 들어오자 이미 울화 가 치밀었던 터라 앙칼지게 호통을 쳤다. "나의 누이 몸에 손대지 말아요!" 여전히 그가 손을 움츠리지 않자 왼손을 뻗쳐 그의 손을 잡으려 들었 다. 징관은 중지로 그녀의 왼손 손바닥 옆에 있는 양곡혈(陽谷穴)을 튕 기며 말했다. "그대의 이 일초는 산서성 학( )집안의 금나수이군." 남의소녀는 손을 움츠리며 팔굽을 내밀었다. 징관은 손가락을 뻗쳐 그 녀의 팔굽 밑에 있는 소해혈(小海穴)을 튕기려고 했다. 그 소녀는 오른손을 뒤로 돌려 냅다 치려고 했다. 징관은 다시 중지를 퉁겨 그녀가 초식을 거두고 한걸음 물러서게 만들었다. 그 소녀는 놀람 과 분노에 얽혀 두 개의 주먹을 질풍처럼 내뻗었다. 삽시간에 7,8권을 격출했다. 징관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을 7,8이나 퉁겼다. 그 소녀는 아이쿠 아이쿠 소리쳤다. 오른팔 청냉연(淸冷淵)이 중지에 튕겨 지게 되자 손과 팔을 꼼짝할 수 없었다. "죽일 화상!" 징관은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나는 살아 있소. 만약 죽었다면 어찌 손가락으로 그대를 퉁겼겠소?" 그 소녀는 그의 무공이 무서운 것을 보자 두려움을 느꼈으나 입으로는 지지 않으려고 욕을 했다. "오늘은 살았지만 내일은 죽게 될 거예요." 징관은 어리둥절해져 물었다. "여시주가 어떻게 아시오? 설마 그대에게 선견지명이 있다는 말이오?" 그 여시주는 살며시 코웃음쳤다. "흥! 소림사의 화상들은 그저 입만 번지르르하더라!" 그녀는 징관이 자기에게 농담을 하는줄 알았다. 그러나 실제로 그 노화 상은 무공은 비록 고강하나 세상일에 있어선 전혀 모르고 있다는 사실 을 모르고 있었다. 그는 한평생 절에서 나가 본 적이 없었다. 거기다가 절 안의 승려들은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계율을 엄히 지키고 있었기 때 문에 그 누구도 그에게 거짓말 한다미 한 적이 없었다. 따라서 그는 천 하에서 결코 거짓말하는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그 소녀가 소림사의 화상들은 입만 번지르르하다고 말을 하자 속으로 생각했다. (오늘 잿밥 가운데는 참기름을 너무 많이 섞었던가?) 그는 옷소매자락을 들어서 입술가를 훔쳤다. 기름때가 묻지 않는 것을 보고 혓바닥을 내밀어 한 번 쓱 입술을 훑어 보았으나 여전히 매끄러운 것을 느낄 수 없었다. 정희 의아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남의소녀가 나직이 호통을 쳤다. "나가요! 우리 사매를 깨우지 말아요!" 징관은 말했다. "그러죠. 그러죠...... 사숙, 우리 나갑시다." 위소보는 멍하니 침대 위의 소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미 혼이 떠나간 상태여서 대답은 했으나 걸음은 옮겨지지 않았다. 남의 소녀는 천천히 그의 등 뒤로 돌아가 갑자기 손을 뻗쳐 맹렬히 밀었다. 위소보는 아이 쿠 하는 소리와 더불어 그녀에게 밀려 곧장 방 밖으로 날아갔다. 그리 고 쿵 하니 세차게 땅바닥에 떨어졌다. 그는 연신 아이쿠 아이쿠 하면 서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했다. 징관은 말했다. "그 일초는 강하일하(江河日下)이군! 본래 노산(勞山)파의 장법이지. 그런데 여시주는 제대로 펼치지를 못하는군." 그리고 입을 중얼중얼 하면서 방을 나와 위소보를 부축하며 말했다. "사숙, 그녀가 그 일장을 밀어올 때 열 세가지의 응수하는 방법이 있소 이다. 만약 그녀와 싸우기 싫다면 6가지 피하는 방법이 있는데 어떤 한 가지라도 사용할 수가 있지요. 만약 반격하려고 한다면, 손목 구부리 기, 팔굽 들어올리기, 손가락 퉁기기, 역으로 혈도짚기, 팔잡기, 비스 듬히 막기, 거꾸로 차기 등 7가지 방법이 있는데 매 한가지마다 모두 상대방의 일격을 해소시킬 수 있소이다." 위소보는 나가떨어지는 바람에 등과 팔이 아파왔다. 그렇지 않아도 성 이 나 있던 참이라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이제 말해서 무슨 소용이 있소?" 징관은 말했다. "네, 사숙의 가르침이 옳습니다. 모두 이 사질의 잘못입니다. 만약 사 전에 이야기했다면 사숙은 피하기만 했더라도 이렇게 쓰러지지는 않았 을 것입니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두 소녀는 흉악하기 이를데 없다. 이후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그녀들 이 대뜸 주먹으로 치고 발로 차 온다면 정말 감당하기 어렵겠다. 이 노 화상들은 두 계집의 무공에 대해서 똑똑히 알고 있는 것 같구나. 그리 고 손가락을 이렇게 퉁기자마자 그녀는 이쪽으로 다가와 사람들을 못살 게 굴지 못했다. 내가 저 계집애를 마누라로 삼게 된다면 반드시 노화 상을 달래서 나를 보호하도록 해야겠구나.) 그는 다시 생각했다. (노화상은 이렇게 늙었다. 얼마나 오래 살지 모를 일이다. 만약 내일이 라도 죽게 된다면 야단날 일이 아닌가?) 그리하여 그는 말했다. "그대가 조금전 손가락으로 퉁기자 그 계집애는 꼼짝하지 못했는데 그 것은 무슨 무공이오?" "그것은 일지선(一 禪)이라는 재간입니다. 사숙은 모르십니까?" 위소보는 말했다. "나는 모르오. 그러니 그대가 나에게 가르쳐 주시오." 징관은 말했다. "사숙께서 명하시니 물론 명을 받들어야지요. 이 일지선의 무공은 배우 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혈도를 정확히 겨냥하기만 하고 손가락의 힘이 상대방의 혈도를 되찌를 수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위소보는 크게 기뻐서 말했다. "그것 참 잘 되었소. 빨리 나에게 가르쳐 주시오." 그는 속으로 이 무공을 익히게 되면 손가락을 이렇게 몇 번 튕기기만 한다면 녹의소녀는 꼼짝하지 못할 것이고 그때 그녀를 자기 마누라로 삼는 것쯤은 수월한 일이 아니겠는가 생각했다. 그리고 배우기 어렵지 않다는 말은 더욱더 귀가 솔깃한 한마디이기도 했다. 그는 천하의 무공 가운데 이토록 묘한 것은 없으리라 생각하고 삽시간에 싱글벙글 웃으며 온몸이 근질근질해졌다. 징관은 말했다. "사숙께서 역근경 내공을 제 몇 층까지 연마했는지 모르겠군요. 사숙께 선 한 번 일지를 퉁겨서 시험해 보십시오." 위소보는 말했다. "어떻게 퉁기는 것이오?" 징관은 손가락을 구부리더니 툭 하고 튕겼다. 그러자 찍 하는 소리와 함께 세찬 기운이 격사되어 나가 곧장 한 잎의 낙엽이 두둥실 떨어졌 다. 위소보는 웃었다. "그것 참 재미있군!" 그리고 그의 흉내를 내어서 오른손의 엄지손가락으로 중지를 눌렀다가 퉁겨냈다. 그런데 이번에는 물론 아무런 기척도 없었고 먼지 하나 이는 것을 볼 수 없었다. "원래 사숙은 역근경의 내공을 익히지 않았구려. 이 내공을 익히기 위 해서는 먼저 반야장을 연마해야 한답니다. 나중에 사숙과 반야장을 대 련해 보지요. 사숙의 장력이 얼마나 심오한가를 본 이후 다시 역근경을 전수하도록 하지요." "반야장도 나는 모른다오." "그것은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는 염화금나수(염花擒拿手)로 대련을 하 지요." "무엇이 염화금나수요? 들어본 바도 없고." 징관은 얼굴에 난처한 빛을 띄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다시 더 얕은 것으로 시험해 보도록 하지요. 금강 신장(金剛神掌)을 시험해 본후, 그것도 모릅니까? 그렇다면 바라밀수 (바羅密手)부터 시험해 보기로 하지요. 그것도 모른다구요? 그렇다면 산화장(散花掌)으로 시험해 보기로 하지요. 그렇군. 사숙의 나이가 아 직 젊어서 그와 같은 장법을 배우지 못한 모양이군요. 위타장(韋陀掌) 은 어때요? 복호권(伏虎拳)? 나한권(羅漢拳)? 소림장권(小林掌拳)?" 징관은 줄곧 권법을 주워섬겼으나 위소보는 그저 고개만 가로저을 뿐이 었다. 징관은 위소보가 기초 권법도 모르는 걸 보고 말했다. "우리 소림파의 무공은 순서에 따라 점진적으로 익히게 되어 있습니다. 입문한 이후에는 먼저 장권을 익히고 그리고 후에는 다시 나한권을 익 히게 되죠. 그런 연후에야 복호권을 배운 다음, 내외공에 있어서 상당 한 기초를 쌓게 되었을 때 위타장을 배운답니다. 만약 위타장을 배우기 싫다면 대자대비천수식(大慈大悲千手式)을 배워도 되지요......" 위소보는 입술을 달싹이며 다음과 같이 말하려고 했다. (그 대자대비천수식은 나도 알고 있소.) 하지만 그는 그 말을 내뱉지 않았다. 해로공이 가르친 그 대자대비천수 식은 대부분 가짜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안다는 말을 할 수 없 었던 것이다. 징관은 계속해서 말했다. "위타장을 배우든 대자대비천수식을 배우든간에 총명하고 부지런한 사 람은 칠팔 년 정도면 됩니다. 만약 이해력이 높다면 곧이어 산화장을 배우게 되지요. 산화장을 배우게 된다면 무림의 다른 문파의 제자들은 거의 적수가 되지 못한답니다. 다시 바라밀수를 배울 수 있을지는 각자 의 성격이 바라밀수를 가까이 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렸지요. 정제와 정청, 그 몇 명의 사질들으 모두 복호권을 연마하는 데 적합치 않기 때 문에 진도가 매우 느리지요. 어쩌면 다시 십년이 지나야 정청은 위타장 을 연마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제는 무공을 배우는 데 몰두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볼 때 역시 전문적으로 금강경이나 읽고 참선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더군요." 위소보는 찬기운을 들이마셔야 했다. "그대는 일지선이 배우기 어렵지 않다고 했으면서 소림장권부터 연마해 야 된다고 하지 않았소? 그와 같이 한 가지씩 권법과 장법을 익혀 나가 서 일지선을 연마하기까지는 몇 년이나 걸리게 되오?" 징관은 말했다. "이것은 반야당의 전적(典籍)가운데 기록이 있습니다. 오대(五代)이후, 후진(後晋)때에 본사에서는 한 분의 법혜선사(法慧禪師)라는 분이 계셨 는데 타고날 때부터 지혜를 타고 났다는 것입니다. 입사한 지 36년만에 일지선을 연성했지요. 그야말로 진전이 신속하여 그 전에 그토록 진전 을 보인 사람이 없었고 그 후에도 없었답니다. 아마도 그는 전생에 반 드시 무학대종사였으며 많은 무공을 전생에서 가져온 것 같습니다. 그 다음은 남송(南宋)건염(建炎)간에 영흥(靈興)선사라는 분이 계셨는데 그 분 역시 39년이라는 세월을 들여 일지선을 연마하셨답니다. 모두 하 늘이 내리신 총명한 분이시고 백 년에 한 번 얻기도 힘든 기재들이라 다른 사람들은 탄복하고 있답니다. 선배님들에 대해서 후세 사람들은 그저 그리워하고 상상할 뿐이지요." 위소보는 말했다. "그대는 무공을 익히기 시작해서 일지선을 연성할 때까지 몇 년이라는 시간이 걸리게 되었소?" "사질은 11살 때부터 소림장권을 익히게 되었지요. 어찌 되었든 재수가 지극히 좋아 은사인 회지(晦智)선사 좌하에 들어가게 되어 동문 사형제 들보다 좀더 빨리 배웠지요." 위소보는 말했다. "그대가 11살때부터 연마해서 53세에 어느정도 터득했다면 모두 함쳐 42년만에야 연성한 셈이 아니오?" 징관은 의기양양해져 말했다. "42년만에 일지선을 연마한 것은 본파 천여 년 이래 내가 세 번째에 해 당되는 셈이죠." 그리고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나의 내력은 수위가 평평해서 만약 지력을 두고 논한다면 아마 도 서열은 70위 이하가 될 것입니다." 거기까지 말한 그는 약간 의기소침해지는 표정을 지었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대의 서열이 세 번째이든 70번째이든 간에 나는 전생에 연마를 하지 못했고 또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어떤 무공을 가지고 나오지도 못한 바 이니 42년이란 세월에 걸쳐 그 일지선을 연마하게 된다면 나의 그 계집 애는 모두 오륙 십 세의 할망구가 될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내가 미 쳤다고?) 그는 말했다. "상대방 소저는 일이 년 연마한 것에 불과한데 그대는 사오십년 걸려서 연마하여 간신히 그녀를 이겼으니 실로 형편없는 노릇이군." 징관 역시 그점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줄곧 속으로 헤아려 보고 있었다. 그러다 그 말을 듣고 말했다. "그렇지요. 그렇지요. 우리 소림파의 무공이 그토록 상대방에 비해서 훨씬 떨어진다는 것은 실로...... 실로......좋지 못한 일이죠." "뭐가 좋지 못한 일이야? 정말 큰일날 일이지! 우리 소림에선 이번에야 말로 무림의 소귀나 발귀를 잡지 못하게 되었소. 그대는 반야당의 수좌 인데도 방법을 강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수천수만의 전대 소림파의 고 승들을 대할 수 있겠소? 그대가 죽은 후 무슨 선사입네 무슨 법사입네 하는 칭호를 받을 수 있다고 보시오? 나의 사형 혜지선사 등 모든 사람 들이 그대를 꾸짖을 뿐 아니라 그대가 밥 먹고 똥만 쌀 줄 알았지 아무 것도 해내지 못했으며 또 방법을 강구해 소림파의 위명을 보전하지 못 했다고 하면 그것은 부끄러워 죽을 노릇이 아니겠소?" 징관은 주름진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매우 황송하다는 듯 말했다. "사숙의 가르침이 옳습니다. 사질은 돌아가 반야당의 무공전적을 조사 해 보겠습니다. 그리하여 무슨 방법을 써서 속성할 수 있는지 알아 보 도록 하겠습니다." 위소보는 기뻐서 말했다. "그렇소. 그대가 만약 조사해내지 못한다면 우리 소림파는 무림의 일에 다시 끼여들 필요가 없어지오. 차라리 두 분의 소저를 모시고 와 그 큰 소저를 방장으로 세우고 어린 소저를 반야당의 수좌로 모셔야 될 것이 오. 그녀들 두 사람이 무공을 전수하게 된다면 우리 멍청하고 바보스러 운 무공보다 훨씬 뛰어날 것이 아니겠소?" 징관은 어리둥절해져서는 물었다. "그녀들 두 분 여시주가 어찌 본사의 방장과 수좌가 된단 말입니까?" 위소보는 말했다. "그러니까 그대가 무공을 속성시키는 방법을 생각해 내지 못한다면 큰 탈이 아니겠소? 방과(<=이거 무슨 소린지 모르겠죠? 근데 책에 그냥 그 렇게 써 있네요. ^^; -빼낀이 주) 그대 자신이 체면을 잃게 되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고 소림파는 이후부터 무림에서 발을 딛을 땅마저 잃게 될 것이오. 그렇게 되면 본사의 수천 명이나 되는 화상들은 모두 다 그 두 소녀를 사부님으로 모셔야 할 것이오. 그리고 모두들 십여 년이라는 세월에 걸쳐 소림파의 무공을 배워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할 것 이 아니겠소? 그 소저는 그저 일 년이나 반 년동안 배웠는데 우지끈 뚝! 우지끈 뚝! 우지끈 뚝! 하면서 소림사 화상들의 손과 발을 모조리 분질러 버렸소. 모두들 손발을 보전하는 것이 중요하니 차라리 소저들 을 불러서 반야당의 수좌로 삼는 것이 낫지 않겠느냔 말이오." 이와 같은 말에 징관은 그만 이마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리는 것을 금할 수 없었고 두 손을 마구 부들부들 떨며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네 네, 두 분 소저를 모시고 본사의 방장과 수좌가 되게 한다는 것은 아...... 그것이야말로 정말 창피한 노릇입니다." "그렇고 말고요. 그때 우리는 소림파라고 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면 무슨파라고 하지요?" "아예 소녀파(小女波)라고 부르는 편이 나을 것이오. 소림사를 소녀파 로 고쳐 부르게 되는 것이지. 그러니까 산문에 걸려 있는 편액을 내려 서 림 자를 지워버리고 계집 녀 자로 바꾸어 써넣는 다는 말이오. 글자 한자 고치는 일이니 그것이야 수월한 노릇이 아니겠소?" 징관은 안색이 흙빛이 되어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안 됩니다. 안 됩니다. 내가...... 내가 가서 방법을 꼭 강구해 보도 록 하지요. 사숙, 사질이 모시지 못함을 양해하십시오." 그리고 합장하더니 몸을 돌렸다. 위소보는 말했다. "잠깐! 이 일은 반드시 비밀을 지켜야 하오. 만약 절 안의 사람들 가운 데 누가 알게 된다면 결코 좋은 일이 생기기 않을 것이오." "그것은 어째서인가요?" "모두들 그대를 믿지 못하게 될 테지만 그대가 그 방법을 강구해 낼지 도 모르는 일 아니오? 거기다 그 두 소저가 아직도 절안에서 상처를 치 료하고 있으니 모두들 크게 놀란 나머지 간이 떨려 우르르 달려가 그 소녀들에게 큰절을 하고 사부로 모시게 된다면 우리의 이 절, 커다란 소림파는 그때부터 없어지는 것이 아니겠소?" "사숙의 가르침이 옳습니다. 이 일은 본파의 흥망성쇠와 관계되는 일이 니 절대 말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는 속으로 매우 고맙게 생각했다. 이 나이어린 사숙이 먼 앞길을 크 게 내다볼 줄 알고 또한 선배고 사숙이라 역시 다른 데가 있다고 생각 했다. 위소보는 그가 총총히 달려가는데 소맷자락마저 벌벌 떨리는 것을 보 고, 그가 놀람과 두려움에 휩싸여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노화상이 늙은 목숨을 걸고 방법을 강구하게 된다면 어느 정도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그가 남과 상의만 하지 않는다면 저 우둔한 화상은 내 가 자기를 속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것이다.) 그는 침대 위에 누워 쉬고 있는 나이 어린 소녀의 꽃과 같은 얼굴을 생 각해 보았다. 그러자 마음이 설레이기 시작했다. 그는 급히 방안으로 들어가 그녀를 바라보고 싶어 몇 걸음 다가갔다. 그런데 휘장 안에 갑 자기 남색 치마가 흔들거리는 것이 보였다. 그 남의소녀가 손 씀씀이가 악랄하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더군다나 그의 곁에 징관이 있어 보호를 하지 못하는 이 마당에 혼자 안으로 뛰어들어 갔다가는 크게 고통을 당 하게 될 것 같았다. 그는 한숨을 내쉬고 자기의 방으로 돌아와 휴식을 취했다. 이튿날 이른 아침이었다. 그는 동원선방으로 가 살펴보았다. 병을 치료하던 노승이 말했다. "사숙께선 일찍 일어나셨군요." "여시주의 상처는 좀 나았습니까?" "그 여시주는 야밤에 깨어나 자기가 본사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는 반드시 떠나겠다고 하며 무례한 말을 마구 했습니다. 사질이 좋은 말로 권했지만 그녀는 결코 소...... 소...... 승의 절간에서 죽지 않 겠다고 했습니다." 위소보는 그가 우물쭈물하는 것을 보고 소녀가 자기를 소음적이라고 했 든지 아니면 소악승이라고 했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소?" "사질은 그녀에게 날이 밝은 후 떠나라고 다시 권했지만 그 여시주는 발버둥치며 몸을 일으켰지요. 그녀의 사저가 그녀를 부축해서 나갔습니 다. 사질은 감히 막을 수 없었지요. 어찌 되었든 그 여시주의 상처는 생명엔 지장이 없고 해서 그녀들이 가도록 내버려 두었답니다. 이미 이 일은 방장께 보고를 했습니다." 위소보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정말 재미 없는 일이라고 생각되었 다. (이 소저가 떠나갔다면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 그녀는 이름도 성도 남 기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아낸담!) 그는 이 노승이 일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고 탓하며 몇 마디의 원망을 했다. (그 두 계집애는 얼굴이 아주 예뻐 여느 사람과는 크게 틀리다. 그리고 손을 쓸 때는 각문각파의 무공을 다 지니고 있었으니 언젠가는 알아내 게 될 것이다.) 그는 반야당으로 걸어갔다. 징관은 땅바닥에 앉아 있었다. 그의 주위에는 수백 권이나 되는 얇은 책자들이 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자신은 두 손으로 머리를 싸매고 생 각에 잠겨 있었다. 두 눈은 충혈되어 있었는데 하룻밤을 꼬박 새운 것 같았다. 그의 모양을 보건대 아직도 좋은 방법을 생각해 내지 못한 것 이 분명했다. 그는 위소보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멍하니 쳐다보더니 마 치 모르는 사람을 대하는 듯했다. 놀랍게도 그는 한마음 한뜻으로 애써 생각하느라고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면서도 느낄 수 없는 모양이었 다. 위소보는 그의 표정이 고뇌에 싸여 있는 것을 보고 몇 마디 위로의 말 을 하려고 했다. 그리고 두 소녀가 이미 떠났다는 사실을 말하고 지금 급히 서둘 것은 없다고 말하려다 급히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가 열심히 생각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방법을 강구해 낼 수 있겠는 가? 내가 얘기를 하면 이 노화상은 게으름을 피우게 될 것이다.) 어느덧 한 달 남짓이 흘러갔다. 위소보는 종종 반야당으로 가보곤 했 다. 징관은 비쩍 말랐고 안색은 더욱 초췌해져 있었다. 그리고 말도 하 지 않는 것이 마치 중병에 걸린 사람처럼 멍청해졌다. 때로는 일어나 주먹으로 치고 발로 차 보곤 했다. 그러나 곧 고개를 흔들며 주저앉았 다. 위소보는 이 노화상이 매우 우둔하여 한달 이상을 애써 생각해 보 았지만 여전히 아무런 방법도 강구하지 못했다고만 생각하고 그 자신은 소림파의 무공 가운데 어느 한가지라도 기틀을 튼튼히 다져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기실 소림파의 무공은 어느 것이나 차라리 길게 늘였으면 늘였지 빨리 연성되는 것을 바래서는 안 되는 무공이라 할 수 있었다. 초조히 속성을 강구한다는 것은 바로 소림파 무공의 금기라고 할 수 있었다. 징관은 천하무학에 대해서 거의 모르는 바가 없을 정도 였다. 그가 소림파의 금기 조항을 깨뜨리고 달리 속성법을 창안하는 것 이야말로 그가 한평생 배운것과는 전혀 부합되지 않는 일이었다. 날씨는 점점 따뜻해졌다. 위소보는 절에서 이미 수개월을 보냈다. 이렇 게 나날을 보내는 동안 매일같이 그는 수십 번씩 그 녹의소녀를 생각했 다. 어느 날 그는 너무나 답답해서 은자를 지니고 서쪽으로 소실산을 내려 왔다. 그리고 한 고을로 갔다. 이곳은 담두포(潭頭鋪)라는 곳이었다. 그는 옷가게에 들러서 한 벌의 옷과 수건, 그리고 신발과 양말을 샀다. 그리고 곧 밖의 산동굴로 들어가 바꿔입었다. 그리고 승포자락과 승혜 를 보따리에 넣고는 어깨에 짊어지고 개울물에 자기의 모습을 비춰 보 았다. 마치 부자집 자제 같았다. 그는 고을로 되돌아가서 한 주루에서 닭고기와 오리구이, 그리고 물고기를 시켜서는 배불리 먹고 속으로 생 각했다. (이번에는 도박장에 가서 한바탕 노름을 해야겠다.) 그는 도박장이 반드시 좁은 골목에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거리를 가로 질러 조그만 골목으로 들어서서는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그는 골목길 안으로 들어설 때마다 노름을 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나 귀 를 기울였다. 그런데 일곱 번째 골목길에 들어섰을 때 끝내 그 누가 부 르짖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천구왕(天九王)이다. 다 먹었다!" 이 한마디가 귀에 들어오자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흐뭇해지며 기 분이 좋아졌다. 소림사에서 때때로 듣는 나무아미타불이라는 소리와 비 교해 볼 때 실로 극락세계와 십팔층 지옥의 차이를 느꼈던 것이다. 그는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서 손을 뻗쳐 문을 열었다. 한 명의 40여세 쯤 되어 보이는 사내가 모자를 삐뚤게 쓰고 걸아나와 곁눈질을 하며 물 었다. "무엇하는 사람이오?" 위소보는 품속에서 은자를 한덩이 꺼내 손에 들고 위로 던졌다 받았다 하며 웃었다. "손이 근질거려 몇 냥의 은자를 잃고 싶어 왔소." "이곳은 도박장이 아니고 당자(堂子)이외다. 소형제, 그대가 소저들과 놀고 싶다면 몇 년 더 있다 오시오." 위소보는 이미 오랫동안 노름을 하지 않아 도박에 굶주려 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는 천구왕이다, 다 먹었다 하는 소리를 들은 이후 하늘이 무 너지더라도 노름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심정이 었다. 더군다나 기녀원이 라면 바로 옛집으로 되돌아온 셈이니 어찌 떠나갈 수가 있는가? 그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대는 나를 위해 몇 사람 불러모아 주시오. 오늘 한판 벌여야겠소. 그리고 오늘밤 이 도련님께서는 가장 비싼 술과 음식을 시켜 먹도록 하 지." 그는 두 냥이나 되는 은자를 그의 손에 쥐어 주며 웃었다. "이것으로 용돈이나 하시오." |
첫댓글 잼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