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10년 3월 12일에 사철나무님께서 우리 민들레의영토에 올리신 자료다
사철나무님의 허락하에 이 글을 문화예술인 코너에 올리게 되었다.
사철나무님께선 수녀님의 가장 가까운 지근거리에서 수녀님의 문학세계를 얘기하시고
수녀님의 정신의 깊이까지도 심도있게 다루신 자료들이 많았다.
특히 민들레의영토 30주년에 이해인의 문학 재조명은 나를 얼마나 감동시켰는지 모른다.
법정스님과 이해인수녀님의 우정은 언론에도 너무 크게 드러나 있어서 굳이 어떤 수식어가 필요치 않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여기저기 자료 검색해서 요점만 적는 것도 두 분에 대한 예의가 아니란 판단이 들어서
나름대로 심사숙고했다.
2010년 3월 12일
2022년 3월 12일
참 많은 시간이 흘렀다.
법정스님을 기리면서,,,
*불일암에서 수녀님과 법정스님*
<법정스님 원적>
2010년 3월 12일
문을 바르고 남은 짜투리 창호지에 꽃삽책을 받으시고 수녀님께 보내오신 편지 이다 .중간의 다구그림은 더러그리시던 소재이다. 천구백 구십사년 십일월 십구일 서울양재동 소인이 찍혀있다. 구름수녀님앞 법정 합장....
나의기억으로 1982년 부산카톨릭 센타에서 초청강연이 있었는데 흰수도복의수녀님께서 여러수녀님들과 함께 앉자 계셨다. 얼마나 사람이 많이왔던지 좌석사이복도는 물론 벽면쪽에도 빽빽히 서고 연단의 뒷쪽에도 스님께서 앉으라하셨다.그래도 입장을 못해 문을 열어놓고 밖에서 들었다. 조용필이도 아닌데하시며 말씀을 하시며 적는것보다 듣는것이 중하다고도 하셨다 행장을 통하여 보면 1932년 시월 해남에서 출생하시어 속명은 박 재철이시다 .목포에서 성장하여 1954년 전남대학교 상과대학 재학중 민족동란의휴전후 피페한 전후시대에 오대산으로 출가를 결심하고 귀경하여 눈이 많이와 못가시고 한살아래의 당시 일초라는 법명의승려였던 고은시인에의해 인연이 도래하여 안국동 선학원에 계시던 효봉 대종사 스님의 문하에 인도되어 통영 미래사로 출가하여 1956년 지리산 쌍계사에서 효봉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수지하였으니 전진한, 황산덕,박완일,고은 과 구산, 태우, 일각같은 큰스님들과 사형제 항렬이시다.. 1959년 통도사에서 자운스님을 전계화상으로 비구계를 수지하여 비로서 수행승이 되셨다.그해봄 해인사 강원에서 명봉스님을 강주 로 대교과를 이수하신후 통도사 운허스님과 함께 불교사전을 편찬 동국 역경원의 역경편찬부장을 지내시며 경전번역에 주력하셨다. 1972년 영혼의모음을 출간하셨고 이듬해 불교신문 주필이 되시며 씨알의소리 편집위원으로 암울한 유신시절 함석헌, 장준하등과 함께 민주수호 국민협의회에서 유신철페와 개헌운동을 하셨으니 당시로는 더문 현실 정치에 참여한 불교계의 수행자 이셨고 1975년 인혁당사건을 보시고 현실정치와 수행자간의 깊은고민을 하시다 본사인 송광사로 돌아와 불일암을 지어시고 독살림수행을 하셨다..이듬해 무소유를 출간 지금180쇄에 달한다 1984년 송광사 수련원장을 지내시다 1987년 보조사상 연구원장이 되신후 1992년 강원도 오대산 자락 화전민이 살던집에서 독살림 수행을 하시기 시작하셨으며 1994년 맑고 향기롭게 모임의회주가 되시어 환경과 생명사랑의 운동을 하셨다 1997년 성북동 대원각을 시주받어 길상사를 창건하셨다. 김수환추기경께서 개산법회에서 축하의강론을 남겨셨고 유명한 카톨릭 신자인 조각가 최종태교수가 불심이깊으신 어머님을 위하여 관음상을 조각하였다. 2003년 두 회주의자리를 내려놓으셨다. 2010년 불기 이천오백오십사년 음력 정월 스무엿새 단하루도 유하시지 않으셨던 길상사에서 원적에 들어 입적후 하루를 머무시고 본사인 송광사에서 다비를 모시기 위하여 운구하셨다. 조계종 대종사 법계를 품수하시고 3월 13일 다비를 모심 유지는 관과 수의를 마련하지말며 입은 승복으로 강원도 수행처앞 좌선을 하시던 느륵바위에 남아 있는 장작으로 다비하며 재는 철쭉나무아래 묻을것 일체의 부의와 조화는 받지말것이며 사리를 수습하려하지말며 일체의 장례절차와 불탑및 부도를 세우지 말것이며 저작역시 지금부터 금할것 남은것이 있다면 맑고 향기로운 사회운동에 보태며 머리위의 책들은 신문을 배달하여 준고마운이에게 전할것 ....참으로 최후로 생각할것을 생각하려하는 최후로 책임질것을 책임지려하는 수행자의 근본인 무소유의실천이다. 스님께서는 부처님의 마음이라는 참선을 통한 도인이시라기보다 부처님의 말씀에의한 소유의욕심을 경계하며 우주의대진리로볼때 물질의욕망이 영성을 피폐해버리는 경계의 실천으로 이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공동체인 인류의 현실에 대한 한전형의 실천과 진실한 사랑으로 우리모두의 관계인 이사회에 대하여 진정한 시대정신을 자각하고 구현하신 수행자 이셨다. 세수칠십구세는 평생 존경해마지않던 은법사 효봉스님과 같은 년수이며 부처님의 세수와도 거의일치한다. 사족이겠지만 년치가 같으신 큰수녀님의근황을 자주궁금해하셨고 일주일전 에는 수녀님의 근황에도 궁금해 하셨다한다. 속가의 조카뻘인 보성 대원사의 현장스님은 대사형 구산스님의 시자로 절집안 촌수로도 조카에 해당한다. 시자를 받지 않으시다 부처님께서 아난존자의 시봉을 받으신 쉰다섯을 넘기신후받으신 시자는 덕조, 덕인,덕문,덕현, 덕운스님들 이시다. 대종사 법정스님께서 당신의 법어 처럼 지옥으로가 버림받은 영혼들을 구제하심을 축원 드린다. 後 學 大 信 居士 梵 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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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난 벗
법정스님을 바라보면서
수녀님께선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궁금하고
궁금하다
수녀님의 그 깊은 마음을
내 어찌 알리요만~~
뒷모습에서 너무나 긴 여운이 느껴진다
길상사에 기증하신 보물들
스님의 다른 필체를 본다.
정겹다
<부산 동구 초량동 31의3
성분도병원>
우표 지인이 20원이 찍혔다
정다운 도반의 편지 주고 받음이
시간이 이렇게 많이 지났는데도
전율이 온다
두 분의 글씨체도 닮았다
첫댓글 법정스님을 알게 된건 "샘터"이고 그후 여러 책들을 사 보았습니다
며칠 전에 "좋은 말씀"을 샀는데 고고하게 사신 분이라 속세에 찌든 내 마음을 씻을려고 ㅎ
그저 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