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치에 취하고 홍어에 취하다 [2007-03-22]
파도가 깎아 놓은 절벽과 바위에 감탄 … 숭어 돌아오는 4월초 개매기 축제 열려
우리나라 최서남단에 위치한 흑산도는 목포항에서만 92.7km나 떨어져 있는 다도해 대표 관광지 중 한 곳이다. 인구가 5000명에 불과하지만 낚시 동호인과 관광객 등이 매년 20만명 이상 꾸준히 찾고 있다. 주민 중에는 낚시하러 왔다가 후한 인심과 풍부한 낚시감에 반해 정착한 경우도 있다.
▲ 상라산 정상에서 본 흑산도 전경.12굽이 용고개와 예리항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 드라이브 하기 좋은 일주도로 섬에 들어서면 육지인지 섬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해발 300~400미터 높이의 산과 울창한 수목이 펼쳐져 있다. 최근 24km에 달하는 일주도로의 포장이 85%까지 진행되면서 드라이브 코스로도 훌륭하다. 180도 꺾어지는 12굽이 용고개는 어지간한 육지에서도 보기 드물 정도로 훌륭한 경관을 가지고 있다. 정상에 올라서면 ‘흑산도 아가씨’ 노래비가 세워져 있고 봉우리 꼭대기까지 동백꽃이 우거진 산책로가 이어져 있다. 일주도로 중간중간 비포장 된 부분은 운전자를 당황하게 하지만 마주치는 차들이 별로 없어 겁먹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뭍에서 차를 들여오는데 20만원이라는 거금이 필요하고 렌트카 업체도 없다는 게 아쉬운 점이다.
흑산도 하면 떠오르는 것이 바로 동백꽃이다. 동백꽃의 당분은 매우 높아 원주민들의 간식거리로 쓰이기도 한다. 관광객들이 동백꽃을 입에 머금고 있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최근에는 동백꽃을 시루떡에 넣는 경우도 있다. 감보다 단맛이 난다고 해서 인기가 높다. 흑산도 동백꽃 외에 무성한 원시림도 볼거리다.
◆ 지금이 홍어 절정기 빼놓을 수 없는 먹거리는 바로 홍어. 흑산도에는 모두 9척의 배가 최고 60마일 이상 바다로 나가 미끼를 쓰지 않는 ‘걸낙’ 방식으로 홍어를 낚아 온다. 걸낙은 홍어가 다니는 길목에 낚시를 설치해 최고 열흘 정도 기다려 잡는 방식이다. 낚시 시간이 많이 소요돼 항구에 도착하면 빨리 잡힌 홍어가 썩어 있는 경우도 있다.
봄이 올 때가 홍어의 절정기. 5~6월은 산란철 금어기이기 때문에 살이 많이 오른 지금이 가장 맛좋은 시기다. 운이 좋으면 예리항 수협 앞에서 홍어 경매를 구경할 수 있다. 아침 7시면 배들이 홍어를 경매장에 올려놓기 때문에 수백마리 홍어가 펼쳐지는 장관을 구경할 수 있다. 색깔이 불그스레하고 고깃결이 슬레이트 지붕처럼 층이 져 있거나 올록볼록한 것이 흑산도 홍어다. 8kg이 넘는 1등급품은 1마리에 40만원을 넘는다. 종종 12kg이 넘는 대어를 낚기도 한다. 지금은 뭍까지 2시간이면 나갈 수 있었지만 과거에는 돛단배로 1주일 이상 항해를 해야 육지에 홍어를 팔 수 있었다. 이 때문에 홍어가 발효음식으로 알려진 것. 흑산도에서 톡 쏘는 발효된 홍어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흑산도 주민들은 발효된 홍어보다 신선한 홍어를 더 즐긴다.
오는 4월에는 숭어가 흑산도로 몰려오는 시기. 흑산도는 내달 8일과 9일 양일간 배낭기미 해수욕장에서 개매기 축제를 연다. 개매기란 밀물때 몰려든 물고기를 썰물때 바다로 나가지 못하게 막아 잡는 전통적인 고기방식이다. 이 시기에는 흑산도로 숭어가 몰려들기 때문에 그물이나 낚시 없이 바다에 뛰어들어 손으로 물고기를 잡을 수 있다. 갈아입을 옷과 고기를 담을 그릇만 있다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
흑산도까지 왔다면 비금도도 빼먹지 말아야 한다. 비금도는 목포항에서 쾌속선으로 1시간 걸리는 위치에 있다. 이곳의 하누넘 해수욕장은 주변 산기슭에서 바라봤을 때 하트 모양을 하고 있어 연인들이 사랑을 고백하는 곳으로 유명하다.[글·사진 흑산도 = 오승완 기자]
비경으로 소문난 ‘흑산도’ 뭍을 향한 그리움… 손붙잡는 섬마을 [2007.03.22 ]
200년 전의 흑산도 모래미 마을에도 봄빛이 완연했다. 포구를 빠져나온 초로의 유배객이 모래미 돌담길을 휘적휘적 걷는다. 이끼 무성한 돌담에 둘러싸인 채전에서는 초록색 천궁이 나날이 키를 더하고 저 멀리 문암산 구실잣밤나무 군락은 푸르다 못해 검다. 바다 건너 다산초당의 아우는 잘 지내고 있을까. 복성재 초옥에서 붓을 든 유배객의 손이 가늘게 떨린다.
‘흑산(黑山)이라는 이름은 어둡고 처량하여 매우 두려운 느낌을 주었으므로 집안사람들은 편지를 쓸 때 항상 흑산을 자산(?山)이라 쓰곤 했다.’
다산 정약용의 형이자 천주교 신자라는 이유로 흑산도에 유배돼 15년 동안 살다 우이도에서 생을 마감한 손암 정약전(1758∼1816). 그는 흑산도의 어류 155종을 조사해 펴낸 우리나라 최초의 수산백과사전인 자산어보(?山魚譜) 서문에서 ‘나는 흑산이 무섭다’고 말했다.
사철 푸르다 못해 검게 보여 흑산도(黑山島)로 불리는 섬. 삶의 막바지에 이른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찾던 흑산도는 유배와 절망의 땅이었다. 전광용의 소설 ‘흑산도’나 이미자의 ‘흑산도 아가씨’ 같은 대중가요에서도 흑산도가 늘 서럽고 외로운 섬으로 그려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목포에서 서남쪽으로 100㎞ 가량 떨어진 전남 신안군의 흑산도는 옅은 해무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유배객을 둔 가족의 애끓는 마음처럼 산과 바다가 검게 보인다. 하지만 예리항에 첫발을 디디는 순간 흑산도는 검푸른 색으로, 다시 상라봉 동백나무 군락에 들어서면 온통 초록색으로 변한다.
바다에 제물로 바쳐진 20번째 처녀의 혼과 피리 부는 총각의 전설이 깃든 당산과 4∼5월에 바글바글 몰려오는 숭어 떼를 맨손으로도 잡을 수 있다는 배낭기미 해수욕장을 지나면 한국판 알카트라즈로 불리는 옥섬이 나타난다. 암흑가의 황제 알 카포네 등이 수감됨으로써 유명해진 샌프란시스코의 감옥섬처럼 옥섬은 조선시대 수군진이 설치되었을 때 죄수들의 감옥 역할을 했다.
섬 속의 섬인 옥섬은 읍동마을 앞 해변에서 150m 정도 떨어진 데다 수심도 3∼5m로 깊어 죄수들은 감히 탈출이라는 단어조차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은 방파제로 연결되었지만 옥섬에는 죄수들의 움집으로 사용되던 동굴과 취사바위,식량을 얻기 위해 낚시를 했던 거북머리바위 등이 남아 죄수들의 애환을 전해주고 있다.
‘남몰래 서러운 세월은 가고/물결은 천번 만번 밀려오는데/못 견디게 그리운 아득한 저 육지를/바라보다 검게 타버린/검게 타버린 흑산도 아가씨//한없이 외로운 달빛을 안고/흘러온 나그넨가 귀양살인가/애타도록 보고픈 머나먼 그 서울을/그리다가 검게 타버린/검게 타버린 흑산도 아가씨’
이미자의 ‘흑산도 아가씨’ 노래비가 있는 상라봉전망대는 예리항, 장도, 대둔도, 멍섬, 영산도, 홍도 등이 360도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곳으로 일출과 일몰의 명소. S자를 그리며 상라봉을 하산하는 열두 굽이 고갯길을 둘러싼 동백나무 군락이 햇빛에 젖어 반짝이는 모습이 마치 눈꽃처럼 눈부시다. 관광객들이 버튼을 누를 때마다 흘러나오는 이미자의 애잔한 목소리가 아니더라도 송이째 뚝뚝 떨어진 동백꽃과 연분홍 꽃망울을 활짝 터뜨린 진달래가 뭍을 향한 그리움을 대변하고 있다.
암동마을과 사리마을을 잇는 한다령(恨多嶺)은 흑산도 사람들의 한이 맺혔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 그 옛날 추수한 보리를 햇볕에 말리기 위해 오전에는 사리마을, 오후에는 암동마을로 보릿단을 짊어지고 험한 고갯길을 넘었다고 한다. 지금도 먼지가 풀풀 날리는 비포장 고갯마루에 서면 다홍색 지붕이 아름다운 마을과 바다가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흑산도로 귀양 온 정약전이 ‘복성재’라는 서당을 차리고 후학을 가르쳤던 사리마을이다.
옛날 이름이 모래미인 사리마을은 흑산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이곳 사람들은 ‘흑산도의 나폴리’로 부른다. 사리마을은 30∼40년 전 학생이 200여명에 이를 정도로 큰 마을이었으나 지금은 5명뿐일 정도로 한산하다. 60여 호에 이르는 집들도 상당수가 빈 집으로 한낮에는 사람 그림자조차 그리울 정도.
사촌서당으로 불리는 복성재는 마을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산중턱에 있다. 돌을 얼기설기 쌓아 만든 돌담길을 구불구불 오르면 지붕이 군데군데 부서진 퇴락한 초가에서 선비의 글 읽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정약전은 이곳에서 어민들의 도움을 받아 자산어보를 저술했다. 복성재 앞에는 가톨릭에 귀의했던 정약전을 기리는 듯 아담한 모습의 사리성당과 포탄 껍질로 만든 녹슨 종이 이채롭다.
모래미전망대는 돌담이 아름다운 사리마을과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그리고 칠형제 섬으로 불리는 7개의 크고 작은 섬과 정박 중인 십여 척의 어선이 만드는 그림 같은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 이곳에서 소사리,샛게 해수욕장을 지나면 면암 최익현의 유배지인 천촌마을이 나타난다.
마을 입구에는 최익현 유허비와 함께 선생이 직접 바위에 새겼다는 ‘箕封江山 洪武日月(기봉강산 홍무일월)’이란 글이 새겨져 있다. 우리나라가 이미 오랜 옛날부터 있었고 독립된 대한제국임을 강조한 글이다. 선생의 애국정신을 상징하듯 유허비 옆의 동백나무 고목은 피보다 붉은 꽃을 활짝 피운 채 흑산도의 봄을 노래하고 있다. [글·사진 박강섭 기자]
신안 ‘흑산도’ 홍어 아리랑 뱃길이 요즘 같지 않았던 시절, 섬은 ‘육지를 바라보다 검게 타버린’ 곳이었다. 요즘은 참 많이 변했다. 복잡한 일상에서 벗어나고픈 뭍사람들이 한없이 그리는 곳이 바로 섬. 특히 흑산도 등 1004개의 섬을 거느린 ‘천사의 섬’ 신안군은 도시인들에겐 신기루와 같은 곳이다. 파시를 이루던 시절, 항구의 개들도 돈을 물고 다녔고, 요즘처럼 보궐선거라도 치를 때면 일가붙이 3대가 말을 안 할 만큼 작은 대륙 흑산도와 소금처럼 하얗게 빛나는 비금·도초도
다도해 뱃길 여행의 진수 유달산을 뒤로하고 흑산도행 쾌속선이 미끄러지듯 목포항을 빠져나갔다. 목포에서 흑산도까지는 92.7㎞. 뱃길로는 230여리나 된다.5월이 지나야 겨울이 끝났다고 말할 정도로 일교차가 심하고 바람과 안개가 많은 곳. 쾌속선을 타고 나는 듯 달려도 2시간30분가량 걸린다. 그나마 배가 연중 120일 가까이 출항을 못할 만큼 변덕 심한 날씨는
체감상의 거리를 더욱 멀게 한다. 목포에서 비금·도초도까지는 그야말로 다도해 뱃길의 진수다. 하늘보다 파란 옥빛 바닷길에 늘어선 섬들이 다가서는가 하면 어느새 멀어져 간다. 섬 어귀를 돌아서면 조그만 수중여 위에 앉아있던 바다 가마우지들이 길동무 하자는 듯, 물수제비를 뜨며 날아 오른다. 도무지 지루할 틈이 없다.
잠시 비금·도초도에 들러 승객을 내려준 배가 드디어 큰바다로 나왔다. 물길이 험해지기 시작했다. 비금·도초도까지 포장도로를 달려왔다면, 흑산도까지 1시간 남짓한 바닷길은 마치 놀이공원의 ‘롤러 코스터’나 ‘바이킹’을 타는 듯했다. 홍도의 절경에 취해 웃다가
▲ 절벽과 나란히 달리는 바람다리. 비금도와 도초도를 형제섬으로 만든 서남문대교. 흑산도 주민들이 가장 신령시 하는 처녀당.(위에서부터)
사나운 흑산도 바닷길에 눈물 흘린다더니, 딱 그 모양이다. 흑산도에 다가서자 속도를 줄인 쾌속선이 길게 누운 S자 모양을 그리며 예리항 여객터미널로 들어섰다. 이미자의 노래 ‘흑산도 아가씨’가 흘러나왔다. 서울의 어느 오래된 다방에서 듣던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 어디선가 ‘머나먼 그 서울을 그리던’ 흑산도 아가씨가 뛰쳐나와 팔을 부여잡을 것만 같다.
관광객과 주민들을 내려놓은 쾌속선은 더 머무를 이유가 없다는 듯 지체없이 사라졌다. 뭍과 단절된다는 생각에 묘한 아쉬움이 남는다. 아마도 섬사람들은 오랫동안 이런 단절감을 느끼면서 살아왔을 게다.
처녀신과 피리부는 소년 서둘러 섬 일주에 나섰다. 해안선을 따라 유람선을 타고 구경할 수도 있지만, 섬마을의 속살을 보기 위해서는 육로여행이 제격. 섬 일주도로 포장률이 85%에 달해 별 어려움 없이 둘러볼 수 있다. 본섬을 비롯해 홍도, 가거도 등 유인도 11개와 무인도 89개 등 100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25개 마을에 5000명 가까운 주민이 사는 제법 큰 섬이다.
가장 먼저 닿은 곳은 바다에 제물로 던져졌던 처녀의 혼을 모신 진리(鎭里)의 처녀당. 귀신을 부른다는 초령목(招靈木)을 타고 앉아 있는 모습이다. 처녀의 단심(丹心)인 양 붉디붉은 동백꽃이 흩뿌려진 이곳엔 처녀신과 피리부는 소년의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고 있다.
어느 날 뭍에서 잘생긴 소년 하나가 옹기 장수들과 함께 섬을 찾았다. 소년이 사당 옆 소나무 위에 걸터앉아 피리를 불었더니, 아름다운 피리소리에 반한 처녀신이 옹기배가 떠나지 못하도록 바람과 파도를 일으켰단다. 소년을 놔두고 가야만 배가 뜰 수 있다는 무당의 말에 옹기 장수들은 소년을 마을로 심부름 보내고는 몰래 떠나버렸다. 결국 소년은 마냥 옹기배만 기다리다 굶어 죽었다는 얘기.
그래선가, 한서린 소년의 무덤에는 이상하게도 풀이 자라질 않는다. 가끔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이 소년이 추울까 하여 덮어준 솔잎만이 무덤 위에 수북하다. 큰 소나무 밑이라 그늘이 져서 풀이 자라지 못할 뿐인데도, 어쩐지 스산해지는 기분을 떨칠 수가 없다.
흑산도 최고의 절경 상라봉 죄인을 감금했던 옥섬과 흰 비단을 펼쳐놓은 듯한 배낭기미 해수욕장을 지나 상라산으로 오르는 12굽이 ‘용고개’와 마주했다. 일주도로 여행의 백미인 곳. 꽃보다 아름다운 잎이라던가. 상라산을 뒤덮은 100∼150년된 동백나무의 잎들이 햇빛을 받아 보석처럼 반짝였다.
사면이 뻥 뚫린 상라봉 전망대에서 굽어본 다도해의 모습이 장관이다. 흑산도 최고의 절경이라더니, 과연 명불허전.12굽이 도로와 함께 진리, 예리항이 한눈에 들어온다. 뒤편으로는 기다란 장도와 홍도가 줄을 섰다.‘흑산도 아가씨’ 노래비 주변 스피커에서 예의 낭랑한 가락이 울려퍼지자 물밀 듯 감흥이 몰려왔다.‘육지를 바라보다 검게 타버린’ 흑산도 아가씨들은 대부분 뭍을 향해 떠났지만, 비경만은 남아 이방인들을 반겨주는 듯하다.
▲ 예리항 홍어 경매 모습.
절경들과 나란히 달리는 일주도로 24㎞에 달하는 해안 일주도로는 곳곳에 아찔함을 숨겨 놓았다. 가파르고 꼬불꼬불한 도로를 달리다 보면 절벽 따라 길을 낸 480m짜리 ‘하늘다리’와도 만난다.
리아스식 해안의 절경을 오롯이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 일주도로의 가장 큰 장점. 어느 화가가 이처럼 아름다운 풍경화를 그려낼 수 있을까. 한반도 모양의 지도바위와 서산머리 칠형제 섬, 그리고 곤촌리, 심리 등 아름다운 해안마을들이 캔버스를 수놓는다.
문암약수 시원한 물로 목을 축이고 사리마을(모래미)로 들어섰다. 다산 정약용의 형 약전이 유배돼 15년을 머물렀던 곳. 문화재로 지정될 만큼 아름다운 돌담길이 인상적이다. 돌담길 끄트머리에는 정약전이 섬마을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쳤다는 복성재(復性齋)가 퇴락한 모습으로 서있다.
이 마을 이장이었던 박찬식(70)씨는 바닷가 마을 주변 해안에도 저마다 주인이 있다고 했다. 바닷가에 있는 지형지물을 경계로 마을과 마을간, 그리고 마을내 주민들간에 일정한 해산물 채취 구역이 정해져 있는 것. 이태원이 쓴 ‘현산어보를 찾아서´는 장다랭이 토지바위에서 대구밀인 둔벙까지’‘상낭기미 취개에서 짝지개까지’‘줄여목에서 이참봉 손 씻는 개까지’ 등으로 적고 있다. 순 우리말 표현이 정겹다.
섬을 통틀어 논이라곤 한뼘도 없는 까닭에 쌀 대신 인동초와 더덕, 천궁 등으로 농주(農酒)를 만들었다. 사리마을 부두민박(061-246-3587)에서는 마을마다 맛이 다르다는 흑산도 막걸리를 맛볼 수 있다.1ℓ 한통에 5000원. 거북손과 톳 등 인근에서 채취한 싱싱한 해산물 안주는 무료다.
# 홍탁에 취하고 흑산도 절경에 취하고 흑산도를 대표하는 해산물은 단연 홍어. 수놈의 경우 ‘같잖은 가오리’가 생식기는 두개인 데다 ‘암컷을 잡으면 수컷은 부록’이라고 할 만큼 연중 짝짓기를 해 ‘본초강목’에서는 ‘해음어(海淫魚)’라 일컫기도 했다.
모두 9척의 배가 20∼60마일 떨어진 동지나해 주변 어장에서 ‘걸낙’을 이용해 잡는다. 걸낙은 미끼를 쓰지 않는 낚시방법. 홍어가 다니는 길목에 4∼5일, 많게는 10일 정도 설치해 둔 다음, 오가는 홍어를 잡는 것이다.
시기적으로는 꽃이 필 무렵인 3월까지가 절정이다.5∼6월은 산란철 금어기. 여름철에 잡히는 놈은 ‘개홍어’라고 해서 맛이 현저하게 떨어지기 때문에 출어를 안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흑산 홍어가 맛이 좋은 이유는 산란을 위해 연평도로 올라가기 직전 잡히기 때문. 살이 찰지기도 하려니와 불그레한 고깃결이 슬레이트 지붕처럼 올록볼록하다. 다소 밋밋한 칠레산과 비교해 보면 단번에 알 수 있다. 무게를 기준으로 8㎏이 넘는 1등급 대홍어(40만∼50만원을 호가한다)부터 2㎏ 미만의 ‘폴랭이’까지 모두 7등급으로 나뉜다.‘1코 2날개 3꼬리’라 해서 몸의 각 부분마다 맛 등급을 정해 놓기도 했다. 내장은 물론, 뼈까지 연해 어디 하나 버릴 것이 없다. 이른 봄 보리싹과 함께 끓인 ‘홍어애(간 또는 내장) 국’은 애간장을 녹일 지경. 수컷은 대부분 5㎏ 미만으로, 몸무게도 적고 맛도 덜해 암컷에 비해 값이 훨씬 눅다.
요즘 흑산도엔 홍어가 풍년이다. 눈엣가시 같던 중국어선들이 해경의 지속적인 단속으로 눈에 띄게 줄어든 데다, 어부들의 자발적인 불법조업 규제로 홍어의 개체수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칠레산 가오리에 만족해야 했던 식도락가들에게 입맛 당기는 희소식이다.
코끝이 찡할 정도로 삭힌 홍어가 오늘날 대표적인 발효음식의 하나로 자리잡은 배경에는 흑산 어부들의 목숨을 담보로 한 체험이 숨겨져 있다. 돛단배로 뭍에 이르기 위해서는 1∼2주일이 걸리던 옛날, 잡은 생선을 내다 팔아야 하는 어부들에게 순풍만 있었던 것은 아닐 게다. 육지에 도착하는 날이 늦어지면 생선이 모두 썩게 마련. 끼니를 잇기 위해 상한 생선을 먹는 과정에서, 다른 생선과는 달리 홍어는 전혀 탈이 없었다. 오히려 암모니아처럼 톡 쏘는 냄새가 심해질수록 맛 또한 깊이를 더해 갔던 것. 나주 영산포에 이르러 삭힌 홍어를 먹는 ‘즐거운 고통’이 세인들을 ‘별스러운 중독성’에 빠뜨리면서 오늘에 이른 것으로 전해진다. 요즘은 현지에서 택배도 가능하다.18만∼45만원선. 흑산도수협 (061)275-5033.
# 하얗게 빛나는 비금도
큰 새가 날아가는 모습을 닮았다는 섬, 비금도(飛禽島)는 소금의 섬이자 바람의 섬. 여름이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생겨났다는 천일염전에서 희디 흰 소금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난다. 목포에서 54㎞, 쾌속선으로 1시간 거리에 위치해 있다.3900여명의 주민이 48㎢ 크기의 섬에서 올망졸망 살아간다.
선왕산과 함께 비금도를 대표하는 여행지는 하누넘 해수욕장. 아담한 하트모양을 하고 있어 연인에게 사랑을 고백하기 딱 좋은 곳이다.‘하누넘’은 ‘산 너머 그곳에 가면 하늘밖에 없다’는 뜻. 이처럼 비금도에는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작은 해변이 많으니, 시간이 된다면 나만의 해변을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도초도는 1996년 우아한 아치형의 서남문대교가 완공되면서 비금도와 형제섬이 됐다. 반달처럼 생긴 백사장이 3㎞ 가까이 이어진 시목해수욕장과 거무스름한 절벽이 이채로운 시목리 일대의 해안 절벽지대가 가볼 만한 곳. 오는 2020년엔 세계 최대 규모의 야생동물 사파리가 들어설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도초면사무소 (061)275-6696.
● 제1회 흑산도 개매기 체험축제 4월14일 배낭기미와 진리해수욕장 일대에서 열리는 숭어잡이 축제. 매년 이곳에는 한식을 전후로 맨손으로 잡을 만큼 숭어떼가 몰려든다. 각종 체험행사와 청정해산물 판매행사 등이 열린다. 신안군청(www.sinan.go.kr)문화관광과 (061)240-8356.
여행일정은 이렇게 1박2일의 일반적인 여행일정은 다음과 같다. 서울 용산역(KTX, 오전 8시30분)→목포역(오전 11시57분)→목포항(쾌속선, 1시)→흑산도(3시)→섬일주(택시 또는 버스)→목포항(쾌속선, 다음날 오전 9시50분)→홍도(10시20분)→홍도유람선(2시간)→홍도(쾌속선, 오후3시40분)→목포함(오후 6시10분)→목포역(오후 7시)→서울도착. 문의 신안군청 문화관광과 061-240-8356~7.
# 가는 길 목포에서 비금·도초도와 흑산도를 거쳐 홍도까지 가는 쾌속선이 오전 7시50분, 오후 1시 두차례 운항한다. 성수기엔 오후 2시에 출발하기도 한다. 비금·도초도까지 1만 4900원, 흑산도 2만 6700원, 홍도 3만 2600원. 동양고속 (061)243-2111∼4, 남해고속 (061)244-9915∼6.
흑산도에는 택시 9대와 관광버스 5대가 운행 중이다. 섬 일주 택시요금은 2시간 기준 6만원, 버스요금은 1인당 1만5000원. 동양택시 (061)246-5006,(011)9559-1429, 개인택시 (061)246-4110,(011)644-9776. 관광버스 (061)275-9744. 해상유람선은 오전 8시와 오후 1시,5시 세차례 운항.1인당 1만 5000원.(061)275-9115,(011)633-9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