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델은 천재 조각가에게는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었으면서도,
스스로는 스승이자 연인을 넘어서려는 예술창조의 강박관념에
시달리다 불운한 인생을 마친 여인이다.
정식적으로 미술학교 교육을 받지 못한 클로델이 로댕을 처음 만난 때는 19세이던 1883년. 로댕을 처음 만나기 2년 여전부터 자신의 작품활동을 시작한 그녀는 로댕의 작품 '지옥의 문'의 일부를 제작하면서 조각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했다. 또한 그녀는 로댕 조각의 근엄함과 남성성에 관능적 섬세함과 육감을 불어 넣어준 자양분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그녀 자신의 예술을 꽃 피우기에 로댕의 그늘은 너무 컸다.
특히 로댕은 그녀의 독창성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고 여기서 클로델의 비극은 싹트기
시작했다.
로댕이 자신의 예술을 인정하지 않고 부당하게 대했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던 그녀는 자신의 작업실을 망치로 부수고 심지어 로댕으로부터 작품 제작과 그리고 신체적,성적 학대를 받고 있다는 망상에 시달렸다.
실제는 로뎅이 그녀를 후원하고 도우려 했으나 카미유는 극구 반대하고 로뎅의 성의를 악의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로댕이 자신을 독살하려 한다는 편지를 쓴 것이 발단이 돼 그녀는 정신병원에 갇히게 되고 그 후 쓸쓸하게 세상을 등질 때까지 30년동안 정신병원을 벗어나지 못했다.
비록 클로델은 비참한 말년을 맞았지만 예술가에게 이성이 광기나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로뎅박물관에서~
아침 일찍 찾은 로뎅 박물관~
로뎅박물관을 처음으로 오랑쥬리,가르니에극장, 퐁피투,
그리고 오세로~ 하루종일 박물관을 찾아 다녔다.
아직 문을 열지 않은 시간, 가족으로 보이는 이 사람들과 제일
먼저 들어 갔다.
로뎅박물관은 정원으로 되어 있는 야외전시장과 사진에서 보이는 건물의 실내에는 로댕의 작품들과 그가 생전 수집한 회화작품들 그리고 까미유 글로델의 전시실이 있다.
까미유는 살아 생전 이루지 못한 스승 "로뎅"과의 사랑을 작품으로 영원히 그의 곁에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둘러 보았는데 서구 사회도 예전에는 남성위주의 사회에서 여자로서의 위상를 주목 받기에는 너무도 가혹한게 현실이었나 보다.
<젊은 여인의 초상>
로댕의 부인인 로즈의 젊은모습이라 한다.
카미유 클로델의 <중년>
남자는 로댕이며 옆에는 로댕의 부인인 로즈
(마귀처럼 표현함으로서 그녀를 향한 끌로델이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젊은 여성은 카미유 자신이다.
1899년에서 1913년에 걸쳐 만들어진 이 작품의 브론즈 상에서는 이미 남자는 완전히 노파의 수중에 들어가 있고,
젊은 여성은 웅크린 채 허공을 향해 양팔을 헛되이 뻗고 있는 것에 불과한데,
이러한 변화는 로댕과 까미유 관계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작품도 끌로드가 모델이 되어준 작품으로
다나이드는 그리스신화에서 나오는여인이며
남편을 죽인형벌로 평생을 물을 지어나르는댓가를 치루웠고
흘러넘치는 머리결과 물의 흐름을 조화롭게 잘 표현한 작품이다.
"다나이드"
이 곳에는 고호의 작품도 1점 걸려 있는데
이 그림은 고호가 파리의 몽마르뜨에 머물면서 작품활동을 할 당시
유일하게 그의 작품을 이해해주고 후원을 해 주었던 화랑주인 탕기아저씨초상화.
탕기가 죽은 후 로뎅박물관에서 이 작품을 사 들여 이 곳에 전시되어 있다.
르노와르
야외정원에는 로뎅의 유명한 작품인 "생각하는 사람'과 반대편에는 "지옥의 문"이 전시되어 있고
곳곳에 그의 훌륭한 작품들이 전시 되어 있다. 정원 너머 보이는 두개의 돔탑은 나폴레옹 묘지이다.
작업실에서의 로댕
로뎅의 작품들~
지옥의 문
지옥의 문(1880~1917)
로댕의 작품 중 최대 걸작이라 손꼽히고 있다.
본래 1880년 장식미술관 입구의 문으로 사용하기 위해 프랑스 정부가 로댕에게 의뢰한 것이다.
이 작품에는 모두 186명의 사람들이 뒤엉켜 있다.
.
맨 위에 세 망령이 있고, 생각하는 사람 아래 쪽에는 지옥의 벌을 받으며 몸부림치는 사람들을 표현했다.
조각에 있는 여인들의 모델은 카미유 클로델이며, 자세히 살펴보면 <생각하는 사람>과 <키스> 등을 찾아볼 수 있다
.^^
"세그림자"이라는 작품으로 지옥의 문 맨 위에도 같은 작품이 있다.
로댕박물관을 돌아보면서 그 방대한 작품의 수, 작품마다의 섬세한 묘사와 역동적인 표현 그리고 과감한 생략 등
과연 로댕은 천재였구나 하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카미유 끄로델의 그림자가 그의 등 뒤로 자꾸 오버랩되는 건
그녀를 향한 안타까움일까?
정신병원에서~까미유 끌로델 의 시
이제 나는 몸을 빼려 한다
사랑으로부터, 세상의 비웃음으로부터
사랑하는 폴, 일찌기 너를 따라 중국으로 가고 싶었지만
내겐 건너지지 않는 바다 하나 너무 깊었다
이제 혼자서 노를 저을 수 있겠다
로댕이란 바다를 건널 수 있겠다
폴, 나를 재촉하는 인어의 금빛 풀루트 소리 들리는가
저 황홀한 빛,
꿈 하나를 깨는 데 일생이 걸렸구나
지지 않는 햇살 같은 바다의 쪽빛 명성을 위해서
나는 죽어서도 더 불행해야 한다
로즈는 내 삶의 터전이오 그..녀..를..외..면..할.. 수..는..
로댕의 목소리는 나를 할퀴며 자라는 겁없는 손톱이었다
밤마다 깨어지며 덮치는 조각상들, 초인종은 울리지 않고
작업실 거미들은 탄성좋은 타액으로 나를 엮었다
그의 등을 향한 날들의 혼미한 정신
찢긴 팔다리 타고 올라 나의 뇌수를 뽑아내던 잔혹한 그리움의 대롱
맨발의 거리를 헤매도 바다는 끝내 내 발바닥 적셔주지 않았다
아, 일몰에 젖은 사람들의 눈빛이 나를 찢어발기고
구름처럼 바람처럼 폴 네가 맞은편에 서 있기도 했던가
배에 올라야 할 시간이다, 사랑하는 폴
파도 위 바람처럼 가벼워지는구나
너무 무거웠던 짐, 때가 되면 스스로 떠나지는 것을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다른 사랑, 이제서야
고모는 몽드베르그 정신병원에 있었다,
라고 말 할 조카들의 병아리 같은 입
훗날이 미한할 뿐이다 .~~~~~~~~~~~~~
프랑스 페렝 타르데누아에서 태어난 여류 조각가.
그녀와 로댕의 러브스토리는 미술계의 유명한 일화 중 하나다.
로댕과 맺은 내연의 관계로 오히려 더 유명한 조각가다.
그러나 그녀는 스스로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던 독립된 예술가였으며
로댕의 작품에 깊은 영감을 주었던 다재다능한 조각가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녀의 작품세계가 아직 온전하게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조각가의 길을 일찍이 선택한 선각한 젊은 카미유 클로델은
17세에 아카데미 콜라로시에서 조각가 수업을 받는다.
1885년 로댕과의 만남을 통해 그녀는 로댕의 작업실에서
모델과 조수로 활동을 시작하면서 예술적인 공감안에서 뜨거운 연인 사이로 발전하게 된다..
그녀는 이미 1888년에 발표한 <사쿤탈라>로 극찬을 받으며,
전도가 매우 유망한 조각가로서의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그러나 미술사에서는 로댕에게 예술적 영감을 주었던
그녀의 위상이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다.
물론 근대 조각의 거장이였던 로댕의 그림자에 가렸겠지만,
나중에는 로댕의 보이지 않는 온갖 방해로 인해 제대로 조각의 꿈을 펴 보지도 못하고 정신병 증세로 시달리다
말년에 정신병동(30여년 동안 정신병원에 갇힘)에서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가입기념으로 제가 아끼는 비운의 아티스트 "까미유"와 그녀의 불행했던 삶을 호소력 짙은 샹송 ne me quitte pas가 잘 어울리는듯 하여 접목 시켜 띄워봅니다. 영화의 몇몇 장면들과 함께~~
제가 파리에서 로뎅박물관에서 그녀의 작품들을 보았을때 로뎅을 너무도 사랑하고 집착한 나머지 애증으로 변해 정신착란으로 평생을 갇힌채 살아야 했던 그녀의 재능이 너무도 안타까웠고 그 시대에 태어났던 그녀가 아깝다는 생각을 하면서 옛날엔 서양이나 우리나라나 여자들이 자신의 재능을 발휘한다는것은 남자들의 그늘에 가려 무척 힘든 일이었어요.~~~
첫댓글 역시 사랑은 어려워.....요....^^^*
지식이 되는 글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