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강해71편: 모태에서 무덤까지 하나님을 찬송함
날짜: 2022년 2월 6일 주일 오전
본 시편은 기본적으로 ‘개인 슬픈 노래’지만, 시인이 자신의 불행에 대하여 단지 애통하지 않고, 자신의 고통스러운 인생을 되돌아보며‘넘치는 확신과 기쁨을 갖는 모습’을 독특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 시편 속에는 ‘간청, 신뢰, 소원, 묵상, 애통, 찬양의 서원' 등의 다양한 요소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시의 주된 주제는 소망입니다(14절). 이 시는 대칭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1절의 ‘나의 수치'와 2절의 ‘주의 의’가 24절에서 ‘주의 의’와 ‘원수의 수치’로 짝을 이루어 수미일치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 시는 3연으로 된 시입니다.
1. 현재의 어려움과 모태에서부터의 신앙과 찬송(1-8절)
2. 노년기의 어려움과 주님의 의를 찬송함(9-16절)
3. 노년의 힘과 생명의 근원을 찬송함(17-24절)
1. 현재의 어려움과 모태에서부터의 신앙과 찬송(1-8절)
제 1연(1-8절)에서 시인은 먼저 하나님께서 그를 ‘신속하게’ 구원해 주실 것을 요청합니다(1-3절). 1-3절에서는 ‘반석, 요새, 피난처'되신 하나님을 소개합니다. 4-6절에서는 원수에 대해 애통한 후, 시인은‘모태에서부터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가졌음을 고백합니다. 7-8절에서는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소개되며, 그들에게도 시인이 ‘이상한 존재’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제 1연은 ‘하나님’, ‘원수’, ‘주위 사람’이라는 삼중구조로 형성되었습니다.
제 1연 私譯
1 여호와 주님, 주님께 내가 피하오니
나로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소서.
2 주님의 의로우심으로 나를 건지시고, 구해주소서.
내게 귀를 기울여 주시고, 구원해 주소서.
3 내가 언제나 찾아가서 피할 반석이 되어 주소서.
나를 구원하라 명령하셨으니
주님은 나의 반석과 요새이나이다.
4 나의 하나님, 악인의 손에서 나를 구해 주소서.
악하고 잔인한 자의 손아귀에서 나를 구해 주소서.
5 이는 주님만 나의 소망이시고, 주님, 여호와 주님,
어릴 적부터 내가 신뢰한 분이시기 때문이나이다.
6 모태에서부터 나는 주님을 의지하였으니
주님께서 나를 모태에서부터 나오게 하셨나이다.
주님을 나는 항상 찬송하도다.
7 많은 사람에게 나는 표적같이 되었으나
주님께서는 나의 견고한 피난처가 되시나이다.
8 나의 입은 주님을 찬송함으로 가득 하고,
온종일 주님께 영광을 돌리나이다.
1-3절, 나의 반석, 나의 요새이신 주님
‘여호와 주님, 주님께 내가 피하오니 나로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소서’라고 했습니다. 특히 다윗이 그의 유일한 의지의 대상으로서 `여호와'를 강조하는 기도문입니다. 피할 것이 많지만 자신은 오직 여호와에게만 피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 피하므로 영원한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시인은 2절에서
2절,‘주님의 의로우심으로 나를 건지시고, 구해주소서. 내게 귀를 기울여 주시고, 구원해 주소서.’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무엇을 보고 구원해 달라고 하지 않고 주님의 의로우심으로 구원해 달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의는 무엇입니까? 하나님 자신이 언약하신 것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 언약은 옛날 출애굽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자기 백성을 곤경에서 구원하시겠다는 약속을 포함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시편에서 말하는 '의'는 단지 ‘바르다'는 의미를 넘어 ‘구원하시는 능력'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의‘는 대부분 하나님을 대적하는 원수들을 심판하고 하나님께 의지하는 자를 구원하는 능력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시편은 무고한 자나 병든 자나 버림받은 자가 시련을 당할 때 이런 ”하나님의 의“에 의지하여, 주님의 구원하시는 능력이 나타나기를 기다립니다.
그리고 여기서 “내게 귀를 기울여 주시고”는 신인동형적인 표현이지만, 하나님이 이렇게 귀를 기울이는 모습은 하나님과 인간의 둘 사이에 정상적인 인격적인 관계가 이루어짐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은’ 무관심과 적대적인 관계를 말해줍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하나님은 늘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선지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오직 내가 이것으로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어라 그리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너희는 나의 명한 모든 길로 행하라 그리하며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나 그들이 청종치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도 아니하고 자기의 악한 마음의 꾀와 강퍅한 대로 행하여 그 등을 내게로 향하고 그 얼굴을 향치 아니하였으며 너희 열조가 애굽 땅에서 나온 날로부터 오늘까지 내가 내종 선지자들을 부지런히 너희에게 보내었으나 너희가 나를 청종치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목을 굳게 하여 너희 열조보다 더 악을 행하였으니라”(렘 7: 23-26절)
하나님께 우리가 귀를 기울여 달라고 기도할 때에 항상 생각할 것은 과연 하나님앞에서 우리는 그분의 음성에 얼마나 귀를 기울여 듣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들으신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요구, 언약의 요구를 이루어주시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들으라고 요구하신 것도 어떻습니까? 우리더러 듣고 주님의 명한 길로 행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는 들어도 생각이 바꾸어지지 않고 주님을 순종하여 따르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 말씀을 듣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에게 내 말을 듣지 않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우상 숭배하는 죄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3절에서 간구하기를
3절, ‘내가 언제나 찾아가서 피할 반석이 되어 주소서. 나를 구원하라 명령하셨으니 주님은 나의 반석과 요새이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시인은 하나님이 귀를 기울여 들어주시기를 구하면서 하나님께서 자기가 숨을 수 있는 산성과 구원의 바위가 되어 달라고 했습니다. 다윗이 얼마나 여호와를 굳게 신뢰했는가는 그가 사용하는 단어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피할 바위, 혹은 반석과 산성이시라는 말로 그가 얼마나 여호와를 철저히 신뢰하고 있는가를 보여줍니다. 그렇다고 해도 다윗이 원수들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요새나 바위등 팔레스틴의 지형(地形) 지물(地物)이나 엔게디 굴과 같은 곳의 지형 지물과 블레셋 혹은 암몬을 이용하여 피하여 다녔습니다. 그러나 그는 몸은 비록 이러한 것들 뒤에 숨겼을지라도 그의 마음은 항상 여호와만을 바위와 산성처럼 굳게 의지 했던 것입니다. 시인은 혼자 힘으로 도저히 헤어날 수 없는 어려운 상황에 던져진 자신을 발견하면서 오히려 피난처 되신 하나님을 더욱더 부르며 도움을 간청합니다. 만약에 시인이 스스로 벗어날 수 있을 정도의 어려움이었다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시인은 감당할 수 없는 시험앞에서 그 어디에도 자신의 피난처가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였기에 내가 주께만 피한다고 하여 피난처로 삼습니다. 시인은 주님과 자신의 개인적이고 친밀한 관계를 ‘나의 반석'과 ‘나의 산성'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4-6절, 어머니 모태에서 나를 버리지 않으신 주님
1-3절에서 시인은 주님께 자신의 신뢰를 천명하고, 이제 구체적으로 그의 대적에 대해서 말합니다. 그의 목숨을 노리는 자는 ‘악인’,‘악한 자’,‘잔인'한 자로 묘사합니다. 시인은 이들의 손에서‘건짐 받을 수 있도록’ 주님께 간청합니다.
4절,‘나의 하나님, 악인의 손에서 나를 구해 주소서. 악하고 잔인한 자의 손아귀에서 나를 구해 주소서.’라고 했습니다.
시인은 악인의 손에서 자신을 구원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 악인은 악하고 잔인한 자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주님께만 구원해 달라고 요구한 이유가 무엇입니까?(5절)
5절, ‘이는 주님만 나의 소망이시고, 주님, 여호와 주님, 어릴 적부터 내가 신뢰한 분이시기 때문이나이다.’라고 했습니다.
6절, ‘모태에서부터 나는 주님을 의지하였으니 주님께서 나를 모태에서부터 나오게 하셨나이다. 주님을 나는 항상 찬송하도다.’라고 했습니다.
시인은 5절하-6절에서 시인은 위기 상황 속에서 자신의 뒤돌아‘유아기’와 같은 과거를 돌아보며 하나님이 자신에게 행한 행적을 보면서 위로와 확신을 갖습니다. 시인은 그의 ‘어린 시절’과‘모태에서의 시간’을 언급합니다. 이것은 시인의 주님과의 친밀한 관계는 하루아침에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모태에서부터 주님께 ‘붙드신 바 되었다.’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그를 돌보아 오셨다는 뜻입니다. 우리 자신이 전혀 알지도 못한 때부터 주님은 우리를 돌아보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시인은 주님께서 그를 위해 행하신 일에 근거하여 소망과 확신을 가집니다. 그럼에도 그 자신의 처지가
7-8절, 찬양의 서원
7절, ‘많은 사람에게 나는 표적(이상함)같이 되었으나 주님께서는 나의 견고한 피난처가 되시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어머니의 태에서부터 주님을 ‘의지한 시인'이 사람들에게 표적(이상함) 되었다고 했습니다. 주님을 의지했는데 20절에 보면 여러가지 고난 가운데 있었기에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왜 저렇게 주를 의지하고 산다는데 어려운 일만 겪는가? 저들은 개혁교회를 한다고 하더니 뭐 별 볼일 없네, 한 것입니다. 그러나 시인은 아무리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든지 말든지 관계없이 어떤 상황에 있든지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여 피난처를 삼았습니다. 그래서 8절에서 ‘나의 입은 주님을 찬송함으로 가득 하고, 온종일 주님께 영광을 돌리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고 비난을 할지라도 오히려 시인은 주님께 찬양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는 많은 고통과 부족과 연약이 있지만 그러나 그의 기도가 마치 응답이 된 것처럼, 장차 온 종일 주님께 영광을 돌리겠다고 소원합니다. 현재의 상황이 어떠하든지 간에 주님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은 절대 할 수 없습니다.
2. 노년기의 어려움과 주님의 의를 찬송함(9-16절)
제 2연(9-16절)은 내가‘늙더라도’로 시작하며(9절) 자신의 한계 상황을 다양한 관점에서 그리고 있습니다. 9-11절‘노약자’인 시인과‘그의 목숨을 노리는 원수'가 대조 됩니다. 원수들은‘하나님도 그를 버렸다’며‘사회적인 매장'을 시도합니다. 12-13절에서 원수들은 좀 더 구체적으로‘고소 자들'이며,‘음해하는 자들’로 나타납니다. 제 1연 중간에서‘주만이 나의 소망’이라고 고백한 시인은(5절), 여기에서 늙더라도‘나는 내 소망을 언제나 주님에게 두었다’고 새롭게 고백합니다(14절).
제 2연 私譯
9 노년의 때에 나를 내치지 마시고
내 힘이 다할 때에 나를 버리지 마소서.
10 이는 나의 원수들이 내게 대하여 말하고
나의 영혼을 노리는 자들이 함께 음모를 꾸밈이나이다.
11 그들이 말하기를, “하나님이 그를 버렸다.
그를 구해줄 자가 없으니 뒤쫓아서 잡아라” 하오니,
12 하나님, 나에게서 멀리 계시지 마소서.
나의 하나님, 속히 오셔서 나를 도와 주소서.
13 나를 고소하는 자들이 수치를 당하고 사라지게 하소서.
나를 모해(謀害)하려는 자들이 조롱과 치욕으로 뒤덮이게 하소서.
14 그러나 나는 언제나 주님만 고대하고
그 많은 찬송에 찬송을 더 하리이다.
15 나의 입은 주님의 의로우심을 말하고
온종일 주님의 구원을 말하니,
참으로 측량할 수 없나이다.
16 나는 주님의 크신 능력으로만 오리라.
주님, 여호와 주님, 나는 주님의 의로우심을,
오직 주님만을 찬송하리이다.
9-11절, 내가 늙어도 버리지 않으시는 주님
9절, ‘노년의 때에 나를 내치지 마시고 내 힘이 다할 때에 나를 버리지 마소서.’라고 했습니다. 시인은 노년의 위기를 주님 앞에 토로하고 있습니다. 그는 늙어가고 있으며, 병들어 쇠약해 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식이라도 노년의 때가 되면 부모를 무시하고 버립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원수들은 그의 생명을 노리고 있습니다.
10절, ‘이는 나의 원수들이 내게 대하여 말하고 나의 영혼을 노리는 자들이 함께 음모를 꾸밈이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 시인의 형편을 보고서 원수들의 음모의 말이 무엇입니까? 11절, ‘그들이 말하기를, “하나님이 그를 버렸다. 그를 구해줄 자가 없으니 뒤쫓아서 잡아라”고 했습니다. 10절에서 시인은 ‘나의 원수들이 나를 헐뜯는다’고 하였습니다. 어떻게 헐뜯느냐 하면‘그들은 하나님이 그를 버렸다'는 말을 퍼뜨리며 다닙니다. 압살롬도 다윗을 모함할 때 하나님이 저의 죄 때문에 저를 버리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가 달리실 때에 원수들이 하나님이 저를 버리셨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원수들은 죄인의 고난에 대해서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을 받는다고 해석했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간절히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12-13절)
12-13절, 목숨을 노리는 자들에 대한 저주 기원
12절, ‘하나님, 나에게서 멀리 계시지 마소서. 나의 하나님, 속히 오셔서 나를 도와 주소서.’
13절, ‘나를 고소하는 자들이 수치를 당하고 사라지게 하소서. 나를 모해(謀害)하려는 자들이 조롱과 치욕으로 뒤덮이게 하소서.’라고 했습니다.
시인의 원수인 대적자는 나를 ‘고발하는 자’입니다. 시인은 분명히 ‘무고한 고발’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들이‘수치를 당하게 해 달라'는 기도는 그들의 고발을 물리쳐 달라는 뜻입니다. 시인은 1절 하반절에서 ‘내가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해주십시오'라며 이 시편을 열었으며, 이제는 원수들이 오히려 ‘수치를 당하게 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다니엘을 모함했던 자들이 사자의 밥이 되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을 죽이려고 해서 발꿈치를 물었던 사단이 오히려 죄와 사망의 권세가 깨어지는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시인은 14-16절에서는 오히려 더욱더 주를 찬송합니다.
14-16절, 찬양의 서원
14절, ‘그러나 나는 언제나 주님만 고대하고 그 많은 찬송에 찬송을 더하리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나는 곧 기도를 하고 응답을 받았던지 아직도 받지 못하였든지 상관 없이 시인은 찬송에 찬송을 더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다짐은 앞절과 같은 저자 자신의 간구가 이미 응답될 것을 확신한 결과였습니다. 계속해서
15절, ‘나의 입은 주님의 의로우심을 말하고 온종일 주님의 구원을 말하니, 참으로 측량할 수 없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찬송하는 이유는 여기서 '주의 의'는 하나님이 당신의 자녀들을 보호하거나 '구원'하실 때에 그들을 향해 드러내시는 신실함을 뜻합니다. 시인은 자신이 뭐 대단해서 구원받은 것처럼 여기지 않습니다. 온 종일 주님의 의와 구원만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자신의 자랑이 끼어들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16절에서 ‘나는 주님의 크신 능력으로만 오리라. 주님, 여호와 주님, 나는 주님의 의로우심을, 오직 주님만을 찬송하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시인은 지금 어려운 중에 처했지만 원수의 위협만을 쳐다보고 있지 않고 주님을 찬양합니다. 인생의 노년기는 위기입니다. 하지만 그는 주님의 은혜를 믿고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해서 구원얻은 것도 아니고 무엇을 해서 주님의 은혜를 얻은 것도 아니고 오직 주님의 은혜로 얻은 것 뿐입니다. 사람은 자식이라도 부모가 늙으면 버립니다. 이스라엘도 그들을 구원으로 인도하기 위해서 이끌어온 모세를 죽이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르십니다. 남으로부터 노년 백발이 될때까지 우리를 안아주시고 구원하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주님은 우리를 끝까지 버리지 않는 분이십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야곱 집이여 이스라엘 집의 남은 모든 자여 나를 들을지어다 배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안겼고 태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품기운 너희여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안을 것이요 품을 것이요 구하여 내리라”(사 46:3-4). 했습니다.
3. 노년의 힘과 생명의 근원을 찬송함(17-24절)
마지막 연(17-24절)에서 시인은 자신의 ‘과거’(5-6절)와 ‘현재' (7, 10-11, 13절)를 아우르며, 미래 시대까지 내다보고 있습니다. 이 연은‘어릴 때부터 늙어서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한 현재’까지 주님이 그에게 선하신 분이었음을 고백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19-21절에서 시인은 주님의 구원이 하늘과 음부에 모두 미치고 있음을 찬양합니다. 22-24절 그는‘거문고와 수금을 타면서’ 주님을 찬양할 것을 서원합니다. 최종적으로 그는 흥겨워하고, 음해 자들은 ‘수치로 얼굴을 붉히게 될 것’을 바라봅니다.
제 3연 私譯
17 하나님, 어릴 적부터 나를 가르치셨으니
오늘까지 주님의 기이한 일을 전파하나이다.
18 하나님, 늙어 백발이 되어도 나를 버리지 마소서.
주님의 팔의 능력을 다음 세대에 전할 때까지,
주님의 크신 능력을 오고오는 모든 세대에 전할 때까지,
19 하나님, 주님의 의로우심은 하늘까지 이르렀고
주님께서 큰일을 행하셨으니
하나님, 누가 주님과 같으리이까?
20 우리로 많은 곤경과 불행을 겪게 하셨지만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이다.
땅 속 깊은 물에서 나를 다시 들어 올리시리이다.
21 주님께서 나를 더 크게 하시고
돌아오셔서 나를 위로하시리이다.
22 나는 수금으로 주님을 찬송하리이다.
나의 하나님, 주님의 진실하심을 찬양하리이다.
비파를 타며 주님을 노래하리이다.
이스라엘의 거룩한 주님!
23 주님께 노래할 때에 나의 입술이 기뻐하리니
주님께서 구원하신 내 영혼도 그러하나이다.
24 내 혀도 온 종일 주님의 의로우심을 읖조리니
나를 모해하려는 자들이
수치와 치욕을 당하기 때문이나이다.
17-18절, 요람에서 무덤까지 나를 가르치신 주님
17절, ‘하나님, 어릴 적부터 나를 가르치셨으니 오늘까지 주님의 기이한 일을 전파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시인은 어릴 때부터 주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사역자를 통해서 배우지만 그것은 사역자의 가르침이 아니라 주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가르치신 것입니다.
18절, ‘하나님, 늙어 백발이 되어도 나를 버리지 마소서. 주님의 팔의 능력을 다음 세대에 전할 때까지, 주님의 크신 능력을 오고오는 모든 세대에 전할 때까지,’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시인이 늙기까지 버리지 말아 달라고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구원하시는 팔의 능력을 후대에 전하기까지 그리하여달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말로만 전하는 것이 아니라, 저자가 죽는 순간까지도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입을 경우, 그것이 곧 의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보호받는 특별한 존재임을 중거하는 일이 된다는 것입니다.
19-21절 나를 죽음에서 건지시는 주님
19-21절에서 시인은 ‘높으신 주님과 땅속 깊은 곳에 던져진 자신’을 대비합니다. 이런 상태에 있으면서 주님을 찬양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간청하고 있습니다. 19절에서‘누가 주님과 같습니까’라는 수사 의문으로서, ‘그 어느 누구도 그 힘과 능력에 있어서 주님과 견줄 자가 없다’고 했습니다.
19절, ‘하나님, 주님의 의로우심은 하늘까지 이르렀고 주님께서 큰일을 행하셨으니 하나님, 누가 주님과 같으리이까?’라고 했습니다. 누가 하늘에 이르는 ‘의로우심’을 소유하였고 그래서 그 의로우심으로 '대사'를 행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그 어떤 장애물도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 극복되지 않을 것이 없음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20절에서 말하기를
20절, ‘우리로 많은 곤경과 불행을 겪게 하셨지만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이다. 땅 속 깊은 물에서 나를 다시 들어 올리시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시인은 많은 어려움을 일생을 통해서 겪지만 결국은 주님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땅속 깊은 곳과 아무리 어둠이 칠흑같을 지라도 그속에라도 나를 찾아오셔서 나를 들어올리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21절에서 말하기를
21절, ‘주님께서 나를 더 크게 하시고 돌아오셔서 나를 위로하시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시인의 모든 고난은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허락된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풀어주실 것이고 땅속 깊은 물에서 구원하여서 하늘에 올리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음부속에서 올려 하나님의 보좌 우편으로 올리우신 것입니다. 그것이 위로가 되며 그런 믿음이 있기에 마지막은 찬송하겠다는 것입니다.
22-24절, 찬양의 서원
22 나는 수금으로 주님을 찬송하리이다.
나의 하나님, 주님의 진실하심을 찬양하리이다.
비파를 타며 주님을 노래하리이다.
이스라엘의 거룩한 주님!
23 주님께 노래할 때에 나의 입술이 기뻐하리니
주님께서 구원하신 내 영혼도 그러하나이다.
24 내 혀도 온 종일 주님의 의로우심을 읖조리니(묵상하리니)
(그 이유는) 나를 모해하려는 자들이
수치와 치욕을 당하기 때문이나이다.
시인은 23절에서 의인이 기뻐할 것과 24절에서 악인이 수치를 당할 것이라는 대립적인 이중 운명을 대조함으로써, 시를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결국 ‘주님의 의로우심’이 드러날 것을 믿음으로 바라봅니다. 결국은 하나님은 심판 행위와 자기 백성의 징계 속에서 그리고 구원의 행위에서 자신의 의로우심과 거룩함을 입증하십니다.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는 심판과 구원의 행위로 더 높임을 받으십니다.
정리합니다.
이 시의 저자는 9절과 17절을 보아서 시인 노인입니다. 그는 그의 목숨을 위협하는 ‘원수들의 고발'과‘음해’를 당하고 있으며(13절), ‘죽음의 문턱’에 서 있습니다(20절).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고난을 몸소 느끼고 있으며, 11절에 보면 원수들은 한 목소리로 ‘하나님도 그를 버렸다'고 음해하며 돌아다닙니다. 시인은 생애 최고의 위기 앞에서 ‘어린 시절’부터 그의 ‘반석과 피난처'가 되신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시인은 비록‘늙어서 백발이 희끗희끗하게 되었고 몸의 건강은 상실했고, 마음도 약하게 되었지만’하나님께서는 그를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아무리 이웃들이 무엇이라고 모함하고 자신이 현재 어려움에 처했을지라도 시인은 하나님이 언약하신대로 과거에 베푸신 구원과 그리고 그 언약대로 생애가 마치는 순간까지도 구원하실 것을 확신하고 있기 때문에 주님께 찬양의 서원을 하고 있습니다. 찬송은 하나님의 의를 전파하는 것입니다.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가 찬송입니다. 그러므로 찬송은 자기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의지하고 자랑하려는 사람은 찬송을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노인의 어려움을 볼 수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 기력이 쇠하여지고 사회적인 영향력도 줄어들어서 격리되고, 경제적으로도 어렵고, 이런 약함을 이용한 세상이 무시하고 때를 따라서 공격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사람이 겪은 이런 노년의 어려움을 이기고 살 수 있습니다. 시인은 먼저 자기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인정했습니다. 우리를 모태에서부터 붙드신 분은 하나님이고(6절) 어려서부터 가르쳐 주신 분이십니다(17절). 그런데 20절에 말한 대로 자기의 어려움은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허락된 것을 인정합니다. 노년은 하나님의 길을 이해하도록 배우고 있었던 어렸을 때부터 가져온 오랜 기억(6,17), 하나님에 대한 소망(5절)은 신실한 노년의 사람들을 위한 더 활기찬 생명의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영원한 지혜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선물이라는 것을 압니다. “너희가 말한다. 늙은 자에게는 지혜가 있고, 오랜 세월에서 이해력이 나온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나님에게는 지혜와 능력이 있고 그에게는 사리분별력이 있다”(욥 12:12-13). 이와 같이 늙은 자에게는 하나님의 지혜가 있기 때문에 초라하게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젊은이들과 후손들에게 전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그들의 큰 사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