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꽃에 관한 시모음 5)
눈꽃 /정촌 김동기
하늘
뿌리에서
송이송이 오네요
눈꽃송이 사이마다
좋아서
머금어대던
한 아이의 하얀 미소가
그렇게도 부러웠는데
오늘 평화로운 그 모습
꽃을 봅니다
사랑이
서툴러서 사랑이란
말도 제대로 못하고
살아온 나지만
곱디고운 당신을 보는 순간
고백하고 싶어집니다
호호 불면 호호
날아갈 거 같은 당신
그러나 당신은
시린 바람에 더 화려하고
추위에도 아름다운
거치른 冬白의
雪花
나도 이제야
사랑의 지고지순 알 거 같습니다
혹여 눈물 속에
고요히 가신다 해도
다시 온다는 것을 믿기에
가난하게 살지라도
생각하면서
행복을 느낄 수
있어요
눈꽃 사랑 /김덕성
나는
그대에게만은
순백을 지닌 눈꽃이면 좋겠습니다
비록 예쁘지 아니해도
향기가 없어도
수수하고 맑게 투명하는
인간미가 잘잘 흐르는
진정한 그런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그대에게
나만은
솜처럼 포근포근한
눈꽃사랑으로
영원히 나누는
그런 멋진 나이고 싶습니다
눈꽃 /은파 오애숙
우연히 친구 집 방문했다
등산 갔는데 눈이 많이 내려
눈도 뭉쳐 보았다고 한다
일 주일에 두 번 간다고
함께 가자고 하는데 아쉽네
아직 할 일 산재 되어있어
집에 돌아와 아들에게
언제인가 등산 간다고 했지
가려면 가라 승락한다
이 아침 베란다에서 보는
잿빛 구름 속에서 피어나는
눈 오는 영상이 가슴 연다
눈처럼 하이얀 마음 이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이 될 까
눈꽃처럼 그리 살고 싶다
눈꽃 /명위식
애타게 기다려도 오시지 않더니
밤새 도둑처럼 오시었구려
내친 걸음 쉬이오시는 길
사흘이 멀다않고 오시는 임
나무가지 시린 눈꽃피고
회오리바람에 눈보라 날리며
자신의 존재 엄히 꾸짖으시더니
쾌청한 햇살 변덕에 돌아누우며
눈물짓는 당신이 애처롭구려
사랑하는 이를 애타게 그리워해도
만날 수 없더니
마음 열고 당신을 찾았을 때에는
이미 떠나 버린 후
아픈 마음으로 돌아서야 하는
사랑은
언제까지나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을
태백의 눈꽃은 /장윤우
저리도 시린데
空白한 백설의 골짜기로
굽이쳐 오르는 눈바람,
아니 희디흰 꽃보라-
文사백을 비롯한 낯선 일행을
부드럽게 껴안은
白頭대간이여,
오늘 우리가 酷寒을 무릅쓰며
오르고
또 오르는 뜻을 알았던가
天上天下 唯我獨尊인 정상길목에
천제대는 고히 始山祭를 올렸건만
갈 길 바쁜 우리 발목을 왜 잡는건지
천년 朱木群落을 헤집고 돌고 돌아온
그날들은 기여히
뇌리에 아로새겨 지워지질 않는구나
그대에게 띄우는 눈꽃 편지 /이채
세상에서 가장 하얀 날
창 밖에 내리는 눈꽃을 바라보면
내 마음에도 한 떨기 피어나는 사랑꽃
산에도 들에도 미소로 화답하는 기쁨이여!
뿌리 깊은 믿음 안에서
행복의 꽃잎으로 나의 뜰을 수놓는 그대
스스로 넓고 깊지 못하여 후회할 때
나의 허물을 눈처럼 덮어주고
스스로 비우지 못하여 무거울 때
위로의 눈빛으로 포근히 감싸주는 그대
끝없이 높아만 지려는
욕심의 포로, 욕망의 날갯짓이 부끄러워요
소리없이 내려도
가만가만 속삭이는 눈꽃이 전하는 말
마음을 비웠기에 가벼울 수 있다고
미움을 버렸기에 맑을 수 있다고
이렇듯 고와야 깊이깊이 스며들 수 있는가
얼면서 피어도 따뜻한 느낌의 하얀 빛이여!
내 마음 가장 하얀 날
문득 착해지고 싶은 날
꽃잎마다 피어나는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오늘은 하늘 천사가 되어
하얀 연필, 하얀 종이
하얀 마음 그대에게 눈꽃 편지를 쓰려네
피고 싶은 하얀 꽃 /김정호
엊그제 내린
철없는 겨울비
어제는 하얀 눈
인천 대공원 앙상한 가지에
눈물 맺힌 오늘
고향을 등지고
덜컹대는 버스 탔을 때
희망의 솜방망이 구름
서울 하늘에 떠 있었다
수시로 변하는 현실은
생이라는 단어에
+ - + - + - + - + -는 삶이
눈물로 매달릴 줄 알았을까
× ÷ × ÷ × ÷ × ÷ × ÷는 삶
부와 명예 모두가 관련이 없거늘
불어터진 보리수처럼
가지 끝 하얀 꿈은 피고 있다.
송이 송이 눈송이 /김태백
거센 눈보라 속에도
강인한 생명력으로
아름다운 미 연출하며
곱다 곱게 피어난
동백꽃 향기에
하늘에서는 송이 송이 눈송이가
선녀 구름 타고 내려오듯
청산에 아름다운 설경화 그림 그린다
발가벗은 고목에도
순백의 눈꽃
겨울 수채화 그림 그리고
송이 송이 눈송이 헐헐 내리는
천지연 폭포에도
아름다운 비경을 자랑하는
정방 폭포에도 눈송이
하늘 선녀 내려오듯
송이 송이 눈송이 예쁘게 내린다
눈꽃나라 /남낙현
텅빈
나무가지에 매달리듯
배꽃처럼 하얀 눈꽃이
살갑게 내린다
내리는 눈송이들이
나무가지에 앉아있는
고요를 부여잡고
저마다 꽃을 피운다
하늘을 온통
은빛으로 수놓인
눈꽃송이들이 휘
몰아치는 바람에
하얀 머리카락 휘날리듯
나풀나풀 거리며 떨어지자
쓸쓸함만 더해 간다
그 쓸쓸함을 따라
걸어가노라면
신비한 동화나라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눈꽃 가슴을 얻다 /박종영
오래 기다렸는데
이제야 포근하고 하얀 솜털 가슴
하나 얻었습니다
망각의 성에 갇혀 있다
하늘 문을 열고 내게로 온 것입니다.
미량의 속삭임으로
빈 나뭇가지에 둘러앉아
달빛이 훔쳐간 반쪽의 가슴을 채우느라
하얀 꽃으로 피었나 봅니다.
짙게 흩뿌리는 눈발 속에서
여린 눈꽃 가슴 하나 얻었습니다
솔솔 그리움이 녹아내립니다
눈꽃 사연 /온기은
밤하늘에
하얀 눈송이
하염없이 토해내고
나뭇가지에도
가로수 길섶에도
그리움이
송이송이 영글어
별빛처럼 반짝이네
하얀 얼음꽃
피어나는 밤
숲 속
나뭇가지마다
하얀 그리움 걸려있네
누구는
어떤 사연을
누구는
어떤 그리움을
눈꽃 속에 걸어두고
저리도
가슴 시려
고드름이 되어 버렸나
그리움이
송이송이 영글은
하얀 눈꽃 피어나는 밤에..
눈꽃 그녀 /임영준
능선을 따라 흐르는 눈꽃에 탄성을 질러대며
부지런히 따라오던 그녀가
갑자기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미끄러지다시피 돌아다보니
허방에 가슴까지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게 아닌가
고사목을 꺾어 발판을 만들고 배낭을 구명줄삼아
겨우겨우 끄집어내고 나니
둘 다 체면이고 뭐고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부둥켜안고 뒹굴면서 서로의 숨결까지 자연스레 익혀
애초에 저물기 전에 돌아 가리라던 마음을 바꿔
산장을 찾아 묵을 수밖에 없었다
만난 지 한 달도 채 안되어 무모하게
겨울 한라산을 따라 오른 그녀도
철없이 날뛰던 나도 정상은 아니었지만
새파란 대학생들이 마음 놓고 할 수 있는 것 중에
그보다 더 당당한 것도 없던 시절이었다
어찌되었던 이후 그녀는
산산이 흩어져도 절대 지워지지는 않았고
이국땅 어디에서도 언뜻언뜻
눈에 파묻힌 한라산 겨울산장이 무시로 떠오르고
해사하던 그 얼굴이 눈꽃마다 피어나
수십 번의 겨울을 달콤하게 반추할 수 있게 해주었다
눈꽃 유감 /임영준
탐스럽게 피어난 눈꽃이
실바람에 우수수 떨어진다.
욕심이 과하면 벌 받는 것
애착이 넘치면 추락하는 것
언젠가부터 아무 데서나
예사로 따먹던 눈꽃 속에
화려한 오염이 스며들었다
.
탈속을 알리는 개화를 보고
분명 부끄러운 자들이 있으리라
눈꽃 세상 /권현수
눈 오는 날에는
장우성의 동경산수화 속으로 들어가자
담묵으로 가늘게 뻗은 필선을 따라
고만고만한 나무들 이웃하고 서 있는
겨울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가자
젖은 화선지 품으로 번지는 먹물과 같이
生의 줄기를 타고 얼룩진 고통의 흔적들은
겹겹이 모란 송이를 한 눈이불로 덮어주고
점점이 날려 달빛조각처럼 어지러워진 마음은
무심필 결 따라 흐르는 붓끝에 모아
푸근한 설경 속으로 빠져 들어가자
천지가 드디어 제 스스로 빛나는
눈꽃 세상이 되었을 때
나는 굵은 갈필로 깊은 뿌리 하나 내려
너의 곁에 자리 하리라
화폭 아래쪽으로 낮은 포물선을 그리며
멧비둘기 한 마리 날아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