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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친구 갑동은 왜 곤란할 때마다 나타나서 자신을 구해주는지, 어쩌면 인생은 각본이 있는 드라마가 아닌가 생각했다. 만주 때도 갑동의 등장으로 군 생활이 편해졌었다. 그런데 이번 건의 경우 자칫 잘못하면 낙준은 물론이지만 자신도 벗어나기 힘든 상황이 전개될 뻔했던 것 아닌가. 새삼 인연의 소중함을 느끼며 어릴 적 철없이 놀던 기억들이 소환되곤 했다.
정갑동과 경주는 남다른 인연에 얽혀 있었다. 경주 집안은 몰락한 가문이지만 아버지의 학식 덕분에 그럭저럭 고을에서 행세깨나 하고 살았다. 아버지의 3대 조부가 진주 군수를 지냈던 분이었다. 그래서인지 집안 내내 학문과 소양을 연마하는데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러다 동학농민혁명의 와중에 휩쓸려 신변의 위협을 느낀 할아버지는 식솔만 거느리고 진양을 떠나서 창녕에 정착하게 되었다. 창녕에는 대대로 선산이 있는 본가가 정착해 살아오던 땅이기도 했었다.
경주 할아버지는 이재에는 별 관심이 없고 다방면에 관심이 많은 한량이었다. 조상 때부터 내려온 어느 정도의 논밭이 있어서 서너 가구의 소작농을 거늘였고 덕분에 끼니 걱정은 잊고 산 중농 정도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과 교우하며 세상을 관조하길 즐겼던 할아버지는 그나마 있던 재산도 하나씩 까먹어 갔다. 식솔이 겨우 목구멍에 풀칠할 정도로 가세는 기울어가도 직접 농사 지을 생각조차 안 했다. 하지만 외아들 김문호에 대한 교육의 끈은 놓지 않았다.
경주 아버지 김문호는 할아버지 덕에 사서삼경을 통달하였을 뿐 아니라, 당시 조선 반도를 호시탐탐 노리던 일본 문물에도 관심이 많아 일본어뿐이 아니라 서양 문물과 제도 등에 박식한 인물이 되었다.
일제 침탈 이후 고을은 서구식 제도가 들어오기 시작하였고, 각종 행정, 사무업무들도 복잡해져 갔다. 인근 마을에서는 경조사 때 예식과 방문이 경주 아버지의 도움이 필요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복잡한 행정업무들도 아버지의 손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될 정도였다. 경주 아버지는 각종 행정업무와 서류를 대행하는 소위 법률사무소 업무를 하게 되었다.
아버지 김문호는 농사지을 때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수입도 많아져서 마을의 유지 대접받으며 살았다. 아버지 역시 할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아서인지 술과 사람을 좋아하는 한량이었다. 당시 돈푼깨나 있으면 첩을 들여놓는 풍조가 있었다. 경주의 아버지도 젊은 첩을 들여놓았다. 그 젊은 처자는 친구 갑동의 막내 고모였다.
경주의 친구 갑동의 아버지는 겨우 소작농을 벗어나 입에 풀칠할 정도로 살았다. 틈틈이 경주 아버지의 업무와 잔심부름을 도와 주면 약간의 보상을 받았다. 그런 연유인지 자신의 막내동생을 선뜻 친구에게 첩살이시켰다.
경주 아버지가 첩을 둔 때가 경주가 소학교 3학년 무렵이었다. 산으로 들로 철없이 뛰어놀던 경주와 갑동은 갑자기 묘한 관계가 되었다. 소위 사돈 관계가 되었는데 남들에게 자랑할만한 사돈 관계는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경주 어머니는 아들이 갑동과 어울리는 걸 싫어했다. 남들이 손가락질한다고 경주에게 주의를 줬지만 원래부터 사이좋은 친구관계가 부모의 부탁으로 깨질 리 만무였다. 어른들의 우려와는 반대로 갑동은 한술 더 떠서 경주와 자신이 특수관계라고 더 친밀감을 표했다.
“갱주야, 울 엄니가 그러는데 니와 내가 사촌보다 더 가까운 관계라 카더라. 사촌이 논 사면 배 아픈 법인데 우리는 사돈의 팔촌이라 배 아플 일이 없다 카더라.”
졸지에 거북한 사돈 관계가 형성된 까닭에 경주와 자신의 촌수를 한참 계산하던 갑동은 어이없는 논법을 내세워서 자신과 경주는 특별한 관계라고 주장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갑동은 경주를 좋아했다. 잘 생기고 유순할뿐더러 공부도 잘해서 선생님으로부터 사랑받던 경주와 친구가 되는 것은 자신도 비슷하게 대우받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어릴 때부터 경주는 갑동 뿐이 아니라 낙준에게도, 또 그 밖의 친구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다. 잘 생기고 모범생이며 집안도 그럭저럭 잘 나가는 경주를 시샘하던 친구가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경주는 자신을 내세우거나 남을 업신여기는 건방끼가 없어서, 인기에 비해서 질시가 크지 않았다.
무엇보다 경주는 정이 많아서 친구들에게 크고 작은 도움을 서슴없이 주곤 하였기에 그를 싫어할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 중 갑동은 경주를 가장 싸고도는 친구였다. 갑동이 진주고보에 진학한 것도 경주 때문이었다.
갑동의 부모는 갑동이 고등보통학교에 진학하는 걸 탐탁지 않아 했다. 소학교와는 달리 자식을 고등보통학교에 보내려면 월사금뿐만 아니라 기숙사비를 포함해서 적지 않은 돈을 지출해야 했다. 하지만 자신보다 형편이 좋지 못한 낙준까지 고등보통학교를 진학하는 마당에 갑동이 가만있을 리 없었다.
사흘 밤낯을 굶다시피 떼쓰는 바람에 부모도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경주의 아버지는 아들 친구가 진학하는 걸 알고 장학금 명목으로 적지 않은 돈을 희사까지 했다. 그렇게 고향 친구 세 사람은 같은 고보에 진학한 것이다.
고등보통학교에서 한몸처럼 어울려 다니던 고향 친구의 운명도 세월이 가면서 점점 갈려 나갔다. 가장 먼저 이탈한 친구는 낙준이었다.
낙준은 겨우 이 학년 일 학기를 마치고 집안의 변고로 인해 학교를 그만 두었다. 경주는 사범고등학교에 진학하였고, 갑동은 고보를 졸업하자마자 일본 군대에 자원입대하였다. 그때가 약관 18살 때였다.
경주는 빗속에서 친구를 기다리는 동안 어릴 적 추억을 곰씹고 있었다. 특히 갑동과의 인연은 만주에서도 이어지고 이렇게 뜻밖의 상황에서 다시 이어지니 이런 걸 숙명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지금 시점에서 세 친구의 입장이 정반대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한 친구는 좌익을 소탕하기 위해 혈안이 된 특무대 요원이요, 다른 한편은 불법으로 몰려 도주하기 바쁜 좌익 빨갱이 신세인 것이다. 자신이 친구로서 화해시킬 수 있는 입장이 아님을 알기에 괴롭고 불편한 심정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좌우익은 정면으로 충돌하였고, 미군정은 노골적으로 이승만 정권을 부추기는 형태였다. 곧 들어설 새 정부의 형태는 불을 보듯이 뻔한 상황 아닌가. 도대체 나라의 운명은 어떻게 흘러갈지, 또 우리의 운명은 어떻게 흘러갈지 예감할 수 없지만, 점점 남북관계는 골이 깊어지고 이미 통일은 물 건너가고 있다는 불길한 예감만 들 뿐이었다.
<계속>
첫댓글 외세에 이리저리 찢기는 힘 없는 나라..
세 친구의 운명에 감정이입 됩니다
애먼 민초들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참 답답한 세월이었다
물론 2022 현재도 제 몫만 챙기는 위정자들이 설치긴 하지만..
점점 드라마틱해지는 줄거리
아주 즐감하는 광팬입니다
고맙습니다 ^^
화이팅!!
승리자는 패배자의 기록을 말살하기 때문에 후세가 연구하는 역사는 승리자의 기록만 보게 된다..
그런데 승리자의 자기 합리적 기록속에서 패배자의 입장을 뜻하지 않게 내비치는 경우가 있고, 특이하게도 그것은 사라진 자들의 입장이 아주 정확하게 전해지게된다...
예를 들어서 그 시키들이 이렇게 주장했으나 사실은 그런 것이 아니고 이런 것이다...라는 식의 문장에서 패배자들의 흔적을 발견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의 발견의 행복으로 역사가들은 문서를 찾아헤메고 그런 단서의 발견은 인생의 발견이 된다.
로마에서 삼위일체를 정통으로 하는 니케아 종교회의 결론이 있었고 이에 반하는 것은 이단으로 탄압과 자료 말살. 그러나 정통쪽에서 이단은 이런 식으로 주장하더라고 하는 기록이 남아서 이단의 주장이 보존된 것도 그 예.
정판사 사건은 곧 이은 육이오 전란에서 혹은 먹고 살기 팍팍함의 분주함에서 아니면 혼란에서 모든 기록이 소실되고 마지막 판결문이 남아 있는데 그 판결에서 공산당측 주장이 보존되어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기록은 기자의 회고록인데 지리산 산청 출신으로 진주고보에 다닌 박갑동 기자.
다시 토론토...
서울 방문했던 시기가 소설속의 장마철과
오버랩되어 그동안 밀렸던 글읽는 재미가
더 실감납니다~
두 젊은이의 고문장면에선 영화 '박하사탕'이 선명히 떠오르고...
비록 한세대 뒤이지만 저역시 직 간접적으로 시대의 흐름의 공동 운명체로서 숨죽이고
이야기에 호흡을 함께하며...
많은 사연과 이념 갈등과 심리묘사속에 젊은 남녀들의 앞날이 어떻게 전개될지 함께 고민하며 글속에 빠져듭니다.
소설가 선생은 진주고보 세 친구를 언급하면서 갑동이가 등장하는 것은 우연이라기 보다 역사적 인물인 박갑동 기자를 어느 정도 빌려다 쓴 것 같다.
정판사는 일제시대 돈을 찍는 일본인 소유 인쇄소. 6층 건물이고 해방당시 가장 높은 빌딩이었다.
그 이후 경향신문사가 인수해서 오랫동안 경향신문 사옥이었다.
해방되고 일본총독이 모든 권한을 물려주고 간 팀들이 공교롭게 공산주의 계열이었고 해방 정국의 주류가 되고 그 당시 공산당은 합법적으로 활동할 수 있었다. 그들이 정판사 건물을 인수하고 각종 공산당 기구가 들어오는데 정판사는 인쇄소로서 역활을 한다.
2층에는 해방일보라는 신문사가 들어오고 그 소속 기자가 박갑동. 박헌영의 측근중의 측근.
북으로 올라갔다가 살아서 일본으로 탈출해서 일본으로 활동하고 그가 남긴 박헌영 전기와 회고록이 중요한 사료가 된다.
박갑동 모르고 해방정국 얘기하는 것은 운명, 전원, 영웅, 황제 협주곡 모르고 베이토벤 말하는 것과 같은 것.
같은 진주고보 나온 이병주는 그 인연으로 박갑동과 친할 수 있었고 박갑동의 회고록은 6권짜리 <산하>라는 소설이 되고 박갑동의 박헌영 전기는 3권짜리 <남로당>이 된다.
박갑동이 회고록 형식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때가 1972년 경부터.
곧 반공을 국시로하는 유신정권이 들어선 시기인데,
박갑동이 얼마나 진실된 글을 쓸 수 있었을까요?
저도 박갑동 글을 좀 읽어 봤는데,
너무 왜곡이 심해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대다수.
역사는 승리자의 기록이라는 말이 진실 아닌 현실.
소설은 현실에서 벌어진 사실을 동의하는 것보다,
다른 측면으로 딴지를 걸 특권이 있습니다,
박갑동의 심한 왜곡을 따라가기보다,
많은 사료를 크로스체크한 후
내나름대로의 편향성을 보이는 소설적 역사를 그리려 합니다.
좌파가 지하로 들어가게 된 시발점이 정판사위폐사건.
2000년대 들어 학계에서 이 사건이 얼마나 무모하고,
공작적이었나를 밝히는 학술적 논문들이 다수 나왔습니다.
나중 글에서 정판사 사건이 소설적 공간에서 자세히 다뤄짐.
열심히 죽비를 붙들고 있는 스피노자님 덕에
싹조차 틀 것 같지 않던 내 소설에 꽃봉우리가 움트는 것 같습니다.
@청하
@청하 박갑동은 제일동포인데 왜 박정희 눈치를 심하게 볼까?
잘 읽고 갑니다.감사합니다!
청하님 아빠께서 진주고보를 나오고 이병주 친구이다.
역사의 많은 사실을 다시 공부해서 소설을 이끌고 있지만
아빠께서 들려주신 많은 단편적 지식들이 해방정국을 관통하는 중요한 일차적 사료이고 그런 소중한 역사적 사실을 혼자서만
가지고 있는 것을 심히 아쉽고 아까워 열심히 소설을 풀어가고 있을 수도 있다. 내 추측임.
비밀이라는 것을 자각하는 순간 그 비밀을 지키기 어려운 것.
비밀을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비밀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비밀로 하는 것이다.
지리산 천왕봉을 가장 단거리로 올라가는 그래서 가장 활성화 된 코스는 중산리 코스. 그곳은 진주에서 가장 가까운 곳.
지리산 주변에서 가장 큰 도시가 진주. 천왕봉 자원 봉사 관리는 거의 진주 산악회에서 하고 있다고 보면 됨. 거의 자기네 산으로 애지중지하는데...
이런 인연이 또한 이병주의 8권짜리 <지리산>이 나오는 배경일 것이다.
지리산 천왕봉은 꼭 올라갈 일이다. 지리산 천왕봉을 다녀오면 세상이 달라져 보이고 그리고 세상 사람들은 천왕봉은 갔다온 사람과 아니간 사람으로 나뉘게된다. 쉬엄 쉬엄 올라가면 누구나 올라갈 수 있고 그곳을 다녀오면 못 갈 산이 오데 있는가?
늦기 전에 지리산 가봐야 할텐데요..
누구나 셤셤 오를 수 있다는 말씀에 고무되어 내친김에 노래 하나 들었습니다.
근데 이사람은 "행여 견딜만 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네요 ㅎㅎ
(이원규 시, 안치환 노래)
https://youtu.be/M29qkxFWYVY
PLAY
애증의 천왕봉
종주등반이란 무엇인가
깡초보가 비맞으며 실신한 첫 산행지..
@빙세기 영상도 아름답고 이원규의 시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을 읽고는 지리산을 안갈수 없겠는데요^^
안치환의 노래는 보너스 ㅎㅎ
@상처자국 우와, 대단한 체력과 경험과 추억을 보유하셨네요.
지금 코로나 시국에 대피소들이 문을 닫았다가 최근 다시 열었고요
문을 닫은 시절에는 무박 종주가 유행이었는데...그 속도가 대단했습니다.
화대종주라고 해서 화엄사에서 대원사까지 입니다. 젊은이들 18시간에 해내는 것 같았습니다. 48킬로.
평지 달리기는 듀크님이 증언하듯이 시간당 8킬로는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나이에서는 24시간은 걸어야할 듯. 할려면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안될까?
그렇네요..보통 산에서 2시간에 1킬로 정도 하니 버틸 수만 있다면 24시간 48킬로 해낼 수 있을 것 같네요.
@빙세기 달리면서 외우는 애송시입니다.
특히 힘든 공간에서 시를 외우면 시를 외우는 동안에 쉽게 언덕 넘어감을 느끼곤 합니다.
불만인 것은 이 곡이 노래방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지 잘 모르겠고...노래방가면 꼭 검색해보는데 찾는 노래가 없는 유일한 경우.
@Spinoza
@빙세기 와우~대단한 노래네요...
첨에는 최백호가 부르는줄....^
천왕봉,반야봉,섬진강 다 눈맞춤만
하고 지나갔는데...오지마라하니...
암튼 '반도의 봄'으로인해 많은 숨은사실을 알게되어 모르는 노래도 감상하고 글 읽는 재미도 배가되네요...
감사^^~
그때 시작된 좌우익 충돌의 역사는 깊고도 길군요.
두갈래도 아니고 세갈래로 나뉜 세친구의 운명은 또 어찌될지 ....
오늘도 감사하게 잘읽었습니다.
스피노자님의 부연설명은 많은 도움이 되고 또 다른 재미를 줍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제 글을 써서 칭찬 별로 못 받았는데
답글에서 이렇게 빛을 발하니, 저는 답글 체질 인가 합니다....
슈벨트 가곡 전문 피아노 반주자가 있었습니다.
그가 은퇴하면서 피셔 디스카우와 남긴 음반이 명반으로 남았습니다.
그 음반 속에서 그가 한 말...
"나는 내 피아노 소리가 너무 컸는가를 늘 걱정스럽게 검증한다."
저에게 그런 겸손함이 결여하여...나는 본문을 가지고서 답글로 축제의 마당을 펼치고자하고...그리고
미니님께서 그것을 간파하고 알아주시니...그에 막걸리 한 잔 하노라...음주 댓글입니다.
인생이란 각본이 있는 드라마일지 모른다는 말이 와닿습니다.
관계를 선연과 악연으로 구분하는 것은 인간의 분별심에서 나오는 결과론일 뿐, 모든 인연은 소중하고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는 생각도 드는 요즘입니다.
띄엄띄엄 읽어서 죄송한 마음이고
청하님의 역사적인 연구와 집필을 응원합니다.
남미대륙의 끝이 케이프 혼입니다.
마젤란이 맨 먼저 돌고 그 이후 여러 사람이 돌고 돌고 돌고...다윈도 돕니다.
남극 대륙 바로 위이고 이 지역은 지구에서 육지가 거의 없는 지역이고 그런 만큼 풍랑과 날씨가 엄청나게 험합니다. 그래서 "선원의 무덤"이라는 별명.
태평양이라는 이름도 마젤란이 붙였는데 이곳을 돌면서 너무 고생하고 갑자기 고요함을 맞이하니까 크고 평화로운 바다의 뜻으로 태평양이 됩니다.
그런 책을 이 여름에 읽고 있습니다...빙하가 나오고...빙하의 세기가 깍은 칠레 남쪽의 절벽의 극한 지역이 나옵니다.
빙수가 생각나는 여름, 빙하, 빙하의 세기에서...빙세기님이 생각나고...케이프 혼을 돌면서 빙하와 박치기 하지도 않은 분이 그런 닉을 맘데로 쓰면 마젤란 엉아가 화낼텐데...그런 생각도 합니다.
@Spinoza 케이프 혼은 언감생심, 전 제주 출신에 엘에이에서 30년을 산 추위에 약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빙세기는 빙하의 세기가 아니라 빙그레의 제주말일 뿐입니다 ㅎㅎ
대단하시네요. 저는 사전 찾아가며 영어책을 읽는 것보다 싸만코 먹으며 북극 동물의 세계 다큐나 볼 것 같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