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nytimes.com/athletic/5397530/2024/05/10/pedro-marques-fsg-director-football-development/
by 스튜어트 재임스 & 잭 랭
"페드로는 축구 지식인입니다. 그는 게임 모델의 카테고리와 순간적인 장면을 심플한 집합으로써 구별해낼 수 있죠. 하지만 누군가 원한다면, 그는 갱도 밑으로 직접 들어가 아주 작은 디테일들도 골라낼 수 있습니다."
리버풀의 소유주가 멀티 클럽 모델 구축에 착수함에 따라, 주요한 전략 변화가 있었다. 그 일환으로 펜웨이 스포츠 그룹(FSG)의 풋볼 개발 디렉터에 임명된 페드로 마르케스에 대해 사이먼 윌슨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벤피카의 테크니컬 디렉터직에서 물러난 후, 6월 1일부터 마르케스는 FSG에서 자리를 잡아 리버풀에 처음으로 뿌리를 내리고 클럽의 문화에 몰입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권한은 머지사이드를 훨씬 상회하는 것이다.
FSG의 스포팅 디렉터가 되어 돌아온 줄리안 워드와 함께 마르케스는 FSG의 글로벌한 확장 계획의 중심 인물이 될 것이며, 그 이유는 이해하기 쉬운 것이다. 10년 전, 맨체스터 시티의 1군 퍼포먼스 분석관으로 있으면서 마르케스가 차별화된 시각을 통해 경기를 보는 창의적인 전술적 사상가로 명성을 얻었을 때, 윌슨은 비슷한 프로젝트를 염두에 두고 그에게 접근했었다.
맨체스터 시티를 중심으로 한 멀티 클럽 제국인 시티 풋볼 그룹(CFG)은 전 세계의 팀들을 인수하기 시작하고 있었고, 다른 국가들에 걸쳐 비전을 펼칠 수 있는 전문 지식을 가진 사람이 필요했다. 이것은 큰 사업이었고 큰 타이틀을 가져왔다.
CFG의 축구 서비스 디렉터였던 윌슨은 마르케스가 이상적인 후보가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우리는 맨체스터에서 축구의 청사진을 만드는 임무를 맡았었죠. 우리는 이 청사진을 호주로 가져가 멜버른에 이를 설치하는 방법을 안내했고, 뉴욕을 비롯한 다른 모든 클럽들이 인수되었을 때에도 동일하게 했습니다."라고 그는 설명한다.
"그게 페드로가 저와 함께 그 새로운 부문에 참여한 이유였고, 그는 축구 퍼포먼스에 관해 세계적인 선두주자였습니다."
"페드로는 분석적이면서도 코치 방법론과 경기 방식을 설명할 수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이 일에 정말 잘 맞았습니다. 페드로는 우리의 모델을 객관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었기에, 그것은 사람들이 따를 수 있는 모델이었습니다. 그는 또한 그것을 측정할 수 있는 퍼포먼스 분석 경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열정적인 축구 선수이자 테니스 선수였던 41세의 마르케스는, 2004년에 스포르팅 리스본 아카데미 코치로 합류하기 전에 브라질과 포르투갈에서 공부했고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잔디로 직접 나가는 것을 즐겼지만, 경기들과 선수들을 분석하는 일 또한 그에게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2008년, 마르케스는 스포르팅의 1군 팀으로 승진하여 일하게 되었고, 매우 성공적인 커리어를 보냈다. 그의 경력이 시작되면서 그는 너무 할 일이 많아 석사 학위도 보류해야만 했다. 말 그대로, 그는 선수들을 보기 위해 전 세계를 날아다녔다.
"저는 스카우트 팀을 구성했고, 4-5명의 젊은 청년들이 있었고, 페드로가 그들의 리더였습니다."라고 당시 스포츠 디렉터던 전 포르투갈 국가대표 페드로 바르보사는 본지에 그를 설명했다. "그때 그는 25살, 26살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도 그는 야망과 직업 윤리, 그리고 그가 가진 지식을 보여주었습니다."
"Pedro는 지적이고 의사소통이 잘 되며 공통의 목표를 가지고 사람들을 하나로 모을 수 있습니다. 저는 그가 어떻게 발전했는지 봐왔고 정말 만족합니다. 그는 이제 팀과 클럽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완전한 비전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는 리버풀에 환상적인 사람이 될 것입니다."
마르케스가 처음으로 잉글랜드 클럽에서 일하게 된 계기는, 그가 스포르팅을 방문한 맨체스터 시티의 스태프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게 되면서 였다. 그는 2010년에 1군 퍼포먼스 분석관으로서 에티하드로 이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게 되었다.
윌슨은 처음에 마르케스에게 약간의 설득력이 필요했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왜냐하면 시티는 당시 프리미어 리그에서 5위에 그쳤고, 지금의 팀이이 되기에는 멀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데이터를 동반하며 야망과 자원을 가지고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는 클럽에서 일하는 전망은 거절하기에는 너무 좋은 것이었다.
프로존(Prozone)이 당시 프리미어 리그 구단들에 기성 데이터 패키지를 제공하고 있었지만, 마르케스와 시티의 퍼포먼스 분석 총괄 개빈 플레이그는 자신들의 분야에서 경계를 허물며 좀 더 창의적이고 맞춤형으로 일하기를 원했다.
상대 분석관으로 일하면서 마르케스는 팀 행동, 선수들 간의 동기성, 공간 지배, 그리고 특히 패스 패턴을 분석하는 것에 매료되었다.
그의 눈에는 평균적인 선수들의 포지션이 불규칙적이고 신뢰할 수 없는 것으로 보였다. 그는 선수의 위치 선정과 패스 시퀀스를 더 자세하게 연구할 수 있는 원시 데이터에 접근하고 싶어했다. 그리고 그는 로베르토 만치니, 후에는 마누엘 펠레그리니 감독 아래에서 경기 전날 본인이 발표한 상대 분석을 재정의하고, 같은 주제를 중심으로 훈련 세션을 다듬어 나가길 원했다.
데이터를 얻고 그것을 해석하는 일은 별개의 일이었다. 그리고 특히 많은 코치와 선수들이 데이터 지표와 알고리즘에 대해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데이터의 가치를 입증하는 것 또한 완전히 다른 일이었다. 하지만 마르케스는 정보 과부하가 해로울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수 많은 데이터를 전달하는 방법과 연구 결과를 제시하고 분해하는 방법 모두에서 능숙함을 보였다.
"그것이 바로 그의 기술입니다. 그것을 단순화하는 일이죠."라고 전 퍼포먼스 분석관이었던 윌슨이 덧붙였다.
"하지만 당신이 능력 있는 사람과 함께 일하고 있고 동시에 당신이 원한다면, 페드로는 더 깊게 깊게 깊게 해낼 수 있습니다."
"그는 또한 엄청난 디자인 기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데이터를 끌어오고, 아주 선명한 비디오로 만들고, 그 비디오를 애니메이션화하고, 매우 보기 쉬운 슬라이드를 만들고, 정보를 매우 빠르게 제거할 수 있죠."
"분석이란 몇 가지 다른 기술들의 조합입니다. 축구에 대한 훌륭한 안목을 갖는 것도 그 한 부분이지만, 당신이 그것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하죠."
흥미롭게도, 마르케스는 스스로 너무 많이 설명하지 않기로 의식적인 결정을 내린 적이 있었다고 한다. 예를 들자면, 선수들에게 경기에 대한 다른 관점을 제공하고자 시티의 수비수들을 대상으로 유닛 분석 세션을 열어 넓은 카메라 각도로 녹화된 영상을 사용했을 때가 그랬다. 그는 선수들에게 열린 토론을 장려하고 싶었다.
선수들(이 시대는 빈센트 콤파니, 줄리온 레스콧, 파블로 사발레타, 가엘 클리시, 마이카 리하즈, 알렉산다르 콜라로프가 있던 시대였다.)이 알아채지 못한 전술적인 부분이 확인된다면, 마르케스는 비디오를 멈추고 물어봤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선수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세션에서, 수비수들이 직접 경기를 분석하고 디브리핑하는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훨씬 더 많다고 추론했다.
마르케스의 열정과 열의는 그를 다양한 부서들로부터 인기 있는 인물로 만들었다. 그의 사무실에서 시간을 보낸 사람은 누구나 그가 자신보다 축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는 축구 경기에 관해선 학생이 되는 사람이며, 박식하고, 다국어를 구사하며, 친화력이 뛰어났다. 이 모든 것들은 윌슨과 CFG의 글로벌 축구 담당 상무 이사인 브라이언 마우드에게 마르케스가 날카로운 전술적 마인드뿐만 아니라 감성적인 지능도 필요로 하는 역할에 완벽하다는 점을 확신시켰다. 그래서 결국 일부 스태프들은 CFG가 자신들의 클럽을 인수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영향에 대해 불안해할 수밖에 없었다.
"페드로는 매우 현실적입니다."라고 윌슨은 덧붙인다. "그는 비행기를 타고 어디든 갈 것이고 그는 바로 내려선 곧장 사람들과 함께 일할 사람입니다."
축구계에서 글로벌 입지를 구축하고자 하는 프로젝트의 설계 및 시작에 참여하는 것은 즐겁고 보람되었지만, 동시에 도전이기도 했다.
'아름다운 축구'에 대한 슬라이드를 시작으로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것은 쉬운 일에 속했다.
마르케스는 호주, 일본, 미국의 호텔에서 몇 달 동안 계속 거주하면서 방법론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전 세계의 다양한 팀들이 펼치는 게임을 관람하고, 모든 수준의 사람들을 연결하고 신뢰를 얻으며, 여러 시간대에 걸쳐 일해왔다. 세계 한쪽에서의 승리는 다른 곳에서의 패배로 균형이 잡혀나갔다.
마르케스가 2018년 벤피카로 이적할 때까지, CFG는 맨체스터 시티, 뉴욕 시티, 멜버른 시티, 요코하마 마리노스, 지로나, 클럽 아틀레티코 토르케(현재 몬테비데오 시티 토르케)에 관여했고 총 6개 클럽에 있어 완전 소유 혹은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다.
CFG의 중앙 집중식 구조는 효과가 있었고, 새롭게 인수를 할 때마다 만들어진 청사진을 구현하기는 더 쉬워졌다. 그러나 마르케스는 4년 만에 변화를 준비했고 그가 벤피카에 합류한 것은 의미가 있었다. 벤피카는 마르케스가 어린 아이가 있는 그의 가족과 함께, 그의 고향인 리스본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주었고, 또한 특정한 클럽에서 일상적인 선임 직책으로 근무하는 것도 가능하게 해주었다.
그가 떠난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 윌슨은 링크드인(LinkedIn)에 'MCFC/CFG에 있어 정말 중요한 챕터의 큰 부분'이 되었다며 마르케스를 언급했고 '백과사전 같은 축구 두뇌로 우리 모두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준' 것에 대해 그에게 감사하다는 글을 올렸다.
윌슨은 그 마지막 언급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미소를 지었다. "페드로는 아마 여러분들과 저에게 '그게 정말 중요한 일인가?'에 대해 며칠 동안이나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일 겁니다. 그러면 결국, 여러분들은 그것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 알게 될 거고요. 왜냐하면 그가 엄청나게 디테일한 것까지 집중적으로 짚어줄 것이거든요. 물론 그렇다고 그가 큰 그림을 살피지 못한다는 건 아닙니다."
"그것은 또한 분야의 범위이기도 합니다. 그는 여러분에게 어떤 분야의 스포츠 과학적인 측면, 퍼포먼스 분석적인 측면, 그리고 심리학적인 측면에 대해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는 매우 호기심이 많았고,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연결할 수 있도록 많은 정보를 받아들여 머릿속의 한 곳에 저장할 수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는 정말 똑똑한 사람이죠."
벤피카에서 마르케스는 유소년의 1군 월반을 포함해서 구단의 유소년 육성 프로그램을 이끌고 그것을 조정하는 역할을 맡았다. 본질적으로, 그는 테크니컬 디렉터 역할로서 유럽 최고의 인재 공장 중 하나의 열쇠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작년에 본지가 벤피카를 방문했을 때, 마르케스는 선수들을 계속 배출해내는 컨베이어 벨트 소리를 과시하진 않았다. 그것은 훨씬 더 개인적인 일이었다.
"우리는 15세 이하 리그에서 우승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이정표이며 중요한 것입니다."라고 마르케스는 말했다. "하지만 그 선수들이 1군 경기장에서 벤피카를 위해 뛰고, 독수리를 보며 그들의 꿈을 이루는 때, 그것이 바로 진정한 트로피입니다. 그보다 더 좋은 느낌은 없죠. 우리는 그것이 선수에게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매우 영향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마지막 말을 하며 마르케스는 소매를 걷어붙이고 미소를 지었다. "우리가 그것을 생각할 때, 그리고 우리가 (1군에 올라온) 소년들을 볼 때면 소름이 돋습니다."
벤피카에서 마르케스와 긴밀히 협력한 사람들은 그의 개방적인 접근법, 특히 그가 다른 부서 간의 좋은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역량을 CFG 시절의 산물로 보았다.
"팀의 리더십은 독재적이지도 않았고, '이렇게 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경우도 아니었습니다. 주요한 아이디어들은 있었지만 모든 코치는 자율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라고 벤피카에서 17년에 걸쳐 여러 연령대의 코치를 맡았던 필리페 코엘류는 말한다.
"페드로가 벤피카로와서 처음부터 우리의 게임에 큰 변화를 줬다고 생각했던 것은 수비적인 측면이었습니다. 이는 흥미로운 것이었죠. 왜냐하면 그가 시티에서 왔기 때문에, 모두는 아마도 그가 더 많은 포지션 플레이와 (공과 함께하는) 다른 모든 것들을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러나 벤피카의 코치들은 이미 그러한 종류의 접근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에 페드로는 수비적인 방법으로 우리에게 다른 생각을 하게 했죠."
흥미롭게도, 마르케스는 2019년 여름 벤피카에 있을 때 일찍이 리버풀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것은 자리를 제안하기보다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었다.
당시 리버풀의 임대 관리 및 풋볼 파트너십 매니저였던 워드는 이전에 맨체스터 시티에서 마르케스와 함께 일했던 동료였다. 때문에 워드는 그의 친구가 토트넘 핫스퍼와의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 앞서 연습 경기를 위해 팀과 함께 마르벨라로 와주는 호의를 그에게 베풀 수 있을지를 궁금해했다.
마르케스는 기꺼이 응했다. 그는 벤피카의 B팀을 4일간 스페인으로 데려갔고, 친선전에 앞서 리버풀의 백 룸 스태프들을 만나 스퍼스처럼 전술적으로 셋업하는 방법을 논의했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진행되었다. 리버풀은 2-0으로 이겼고, 다음 주 결승전에서 점수는 똑같이 반영되었다. 어린 벤피카 선수단은 셔츠와 추억을 가지고 떠났다.
5년 후, 마이클 에드워즈가 FSG의 새로운 풋볼 CEO로 부임했다. 그는 2022년에 워드에게 스포팅 디렉터직을 승계한 장본인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당시의 길었던 주말보다 더 긴 기간의 도움이 마르케스로부터 필요해졌다.
첫댓글 어마어마한 인텔리네요. ㄷㄷ
한가지 확실한건 임원진급은 엄청난 사람들이 모인건 맞는거 같아요. 그게 꼭 좋은 성적으로 귀결되는건 아니겠지만
업계에서 좋은 평가 받는다더니 다들 찬사가 장난 아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