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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10일 오늘의 역사
2021년 캘리포니아주 데스밸리 국립공원의 기온이 54.4도 기록.
2020년 백선엽 장군 사망
군인·정치인·기업인. 1920년 평안남도 강서에서 태어나 1941년 만주군관학교를 졸업하고 만주군 소위로 임관하여, 1943년부터 간도특설대에서 근무하면서 반만항일항쟁에 나섰던 동북항일연군과 팔로군 토벌작전을 수행했다. 1945년 8월 일제가 항복을 선언했을 때는 만주군 헌병 중위였다. 무장해제 후 귀국하여 고당 조만식의 비서로 잠시 일하다가 월남하여 1945년 12월 군사영어학교 1기생으로 입학, 이듬해 2월 임관했다.
임관 후 제5연대 중대장, 대대장, 연대장을 거쳐 1947년에는 제3여단 참모장을 지냈고, 1948년 대령으로 승진한 뒤 1949년 제5사단장을 지냈다. 1950년 제1군단장을 지냈고, 휴전회담시 한국측 대표로 나가 휴전문서에 조인하기도 했다. 1952년 제2군단장을 거쳐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이 되었다. 1954년 군사령관, 1957년 다시 육군참모총장이 되었다. 1959년 합동참모의장을 지낸 후 1960년 대장으로 예편했다.
예편과 동시에 주중국 대사로 발령받았다. 1961년 주프랑스 대사 겸 네덜란드·벨기에 대사를 지냈고, 1962년 가봉·토고·세네갈·카메룬·차드·모리타니 주재대사를 겸임했다. 1965년 주캐나다 대사를 마지막으로 외교관직을 떠났으며, 1969~71년 교통부장관에 취임했다. 1971년 충주비료 사장에 취임하면서 재계에 진출했고, 곧 전국경제인연합회 이사, 호남비료 사장을 겸임하다가 한국종합화학의 사장이 되었다.
1979년 정계에서 은퇴했으며 1980년에는 한국종합화학의 사장직에서도 물러났다. 이후 한국후찌쯔 고문, 한국화학연구소 이사장, 국제상공회의소 국제위원장을 역임하고 강연 활동을 다녔다. 1999~2001년에는 노근리사건 대책단 자문위원회 위원장으로 위촉되었고, 2008년에는 대한민국 건국 6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고문으로 위촉되었다. 2013년 주한미군으로부터 미8군 명예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2020년 7월 10일 지병으로 타계했으며, 장지는 국립대전현충원으로 결정되었다.
2018년 태국 북부 치앙라이 주 탐루엉 동굴에 갇혔던 13명(소년 12명과 코치) 고립 17일 만에 전원구조
2016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유희남 할머니(88세) 나눔의 집에서 세상 떠남
2016년 일본 참의원선거에서 아베 신조 정부 압승 개헌선 확보
2015년 영화 ‘닥터 지바고’의 오마 샤리프 별세
1932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났다
1962년 개봉을 앞두고 제작중인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에서 용감한 아랍 부족 지도자 셰리프 알리 역(役)에 캐스팅되었다. 연출을 맡은 데이비드 린 감독은 배우의 '눈동자 색깔'로 캐스팅 되었다. 그는 이 작품에서 열연을 펼치며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그는 이어 3년 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동명 대하소설을 스크린에 옮긴 ‘닥터 지바고’에서 주연인 ‘유리 지바고’역을 맡았고, 영화가 세계적으로 히트하면서 월드스타로 자리매김했다.
한국담배인삼공사(현 KT&G)는 브랜드 사용 허가를 받고 1992년부터 ‘오마 샤리프’라는 담배를 출시하기도 했다.
오마 샤리프는 1960년대 이후에도 로맨틱 코미디·역사물 등 다양한 영화에 출연하면서 작품 활동을 이어갔지만, 이 두 편 외에는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역설적으로 두 편의 영화만으로 현대 영화사에 족적(足跡)을 뚜렷이 남긴 셈이다. 말년에 샤리프는 알츠하이머병을 앓았으며 최근에는 기억 상실 증세까지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 인천 송도에 국내 최고 높은 빌딩 동북아무역센터(68층 305m) 준공
2012년 ‘할리우드 대표 성격파 배우’ 어니스트 보그나인 별세
2012년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 불법자금 받은 혐의로 현직대통령의 형으로는 사상 처음 구속 수감
2011년 프랑스 발레계 이끈 안무가 롤랑 프티 별세
테일러 핵포드 감독의 영화 ‘백야’(1985)는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파사칼리아와 푸가’가 장엄하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미하일 바리시니코프가 추는 모던발레 ‘젊은이와 죽음’으로 시작한다. 이 춤을 만든 프랑스 안무가 롤랑 프티(Roland Petit)가 지난 7월 10일, 8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만년의 프티와 가장 많은 작업을 함께 한 파리 오페라 발레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사인은 백혈병이다.
롤랑 프티는 1945년 샹젤리제 발레단에 이어 롤랑 프티 파리발레단 등 유수의 발레단들을 직접 창단하며 2차 세계대전 후의 발레계를 이끌었다.
리얼리즘과 판타지를 결합한 ‘유랑극단’과 ‘청년과 죽음’ ‘카르멘’ ‘실낙원’ ‘투랑가리라’ 등의 작품을 내놨으며 발레영화 ‘백야’와 ‘블랙타이츠’ 등의 제작에 참여했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안장식
고(故) 노무현(盧武鉉) 전 대통령이 2009년 7월 10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사저 인근 묘역에 안장됐다.
안장식은 이날 낮 12시 추모객 등 2만여명(경찰 추산)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영구차가 사저 진입도로 앞에 도착하자 장남 건호씨가 노 전 대통령 유골을 가슴에 안고 영구차에서 내려 권양숙 여사 등 유족들과 함께 안장식장으로 들어섰다. 이어 고인에 대한 경례, 불교·개신교·천주교·원불교 등 4대 종단 종교의식, 헌화·분향 등이 이어졌다. 헌화·분향에는 유족과 각계 대표 등에 이어 대선 때 TV 찬조연설을 한 '자갈치 아지매' 이일순씨 등 시민대표 14명도 참여했다.
고인 일대기 등을 담은 추모 영상물 상영에 이어 건호씨가 유골이 모셔진 백자합을 석관에 안치하는 봉안식이 거행됐다. 유가족들이 석관에 모래를 넣는 허토에 이어 한명숙 장의위원장과 이병완 전례위원장이 '참여정부 5년의 기록 DVD' 등 부장품을 넣고 석관 덮개를 닫은 뒤 태극기로 석관을 덮었다.
조총 발사와 묵념으로 안장식이 끝나고 높이 40㎝, 가로세로 각 2m 크기의 자연석 형태 '아주 작은 비석'이 기중기로 묘역 위에 얹히면서 노 전 대통령은 영면(永眠)에 들어갔다.
이어 일반 추모객 참배가 시작됐다. 행렬은 한때 비석에서 1~2㎞가량 늘어설 정도였고, 한 번에 20~30명씩 묵념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에 앞서 이날 오전 9시 봉하마을 인근 봉화산 정토원에서는 유가족과 전 정부 인사, 주민 등 2000여명이 모인 가운데 49재 행사가 열렸다. 49재가 진행되는 동안 마을회관 앞 특설무대에서는 추모 문화제 '잘 가오, 그대'가 열렸다.
2008년 6자회담 수석대표자회의(-7.12)
2006년 체첸 독립운동 지도자 샤밀 바샤예프 트럭폭발로 숨짐
2005년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 제10차회의 전체회의(서울)
2003년 미국 항공우주국(NASA), ‘130억살 행성’ 발견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지구는 물론 태양이 생겨나기 수십억년 전에 생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우주 연구사상 가장 오래된 행성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NASA 연구팀이 허블 우주 망원경을 이용해 찾아낸 ‘130억살’의 이 행성은 지구에서 5600광년 떨어진 전갈자리의 M4 구상성단(球狀星團) 중심부에 위치해 있다. 이 행성은 인류가 지금까지 발견한 행성 중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다. 목성의 2.5배 크기인 이 행성의 발견은 행성들이 언제 생성됐고, 생명체가 언제 진화됐는지에 관한 연구에 기여할 전망이다.
M4 구상성단은 태양과 태양계 행성들이 생성되기 수십억년 전에 만들어진 성단으로, 과학자들은 이 성단이 140억년전 우주대폭발(빅뱅) 직후 생성된 제1세대 별로 보고 있다. 태양은 제3세대 별에 속한다.
학계에서는 1988년 이 행성이 속한 항성이 발견되면서, 행성의 존재 여부를 놓고 논란이 있어왔다. 행성이 생성되기에는 너무 오래된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NASA연구팀은 허블망원경으로 수집한 데이터를 분석, 최근 이 행성의 존재를 확인하고 그 크기를 측정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팀은 이 행성이 엄청난 자외선과 초신성(超新星)의 방열, 성단 주변의 별들이 사라지고 생기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엄청난 충격을 견디고 살아남았다고 말했다.
2001년 가수 탤런트 등 유명 연예인, MBC 출연 거부 선언
가수 김건모 신승훈 박진영 g.o.d.와 탤런트 구본승 김정은 등 유명 연예인 100여명은
2001년 7월 10일 기자회견을 갖고 "MBC가 `시사매거진 2580`의 `연예인 노예계약`
편파보도에 대해 사과할 때까지 무기한 출연거부한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는 조성모 유승준 엄정화 김현정 박지윤 디바 싸이 등 유명 가수 대부분이 참석했다.
이날의 기자회견장에는 가수, 탤런트, 개그맨 등 톱스타 100여명, 연예제작자협회 회원사 관계자 50여명, 신문·방송 보도진 100여명 외에도 여학생 팬 300여명까지 몰려들어 격앙된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이날 참석한 연예인들은 연예계 일부의 문제점을 마치 전체 문제인 양 표현한 MBC 보도의 편파성과 `노예 계약`이란 용어 사용을 집중 성토했다.
박진영은 "연예인 계약에 일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를 전체인 것처럼 왜곡한 것이 문제"라고 비판했다.
김건모는 "MBC가 `노예계약`이라는 말을 쓴 것 자체가 우리를 노예로 보고 있다는 말"이라며 "연예인들은 노예가 아니라 제작자와 동등한 관계다. MBC가 편파 보도를 사과할 때까지 무기한 출연을 하지 않겠다"고 해 동석한 동료 연예인들로부터 박수와 환호를 받았다.
이들의 출연거부로 MBC 연예-오락 프로그램들은 파행방송으로 진행됐다
1997년 영국 런던 영국박물관에 한국전시실 마련
1995년 미얀마 아웅산 수치 여사, 가택연금 해제
미얀마의 반체제 지도자 아웅산 수치 여사(50)가 6년 간의 가택연금 만료를 수일 앞둔 1995년 7월 10일 연금에서 풀려났다. 아웅산 수치 여사는 군사정부에 의해 지난 1989년 7월 20일 소요선동 혐의로 가택연금 됐었다.
1945년 양곤에서 독립영웅 아웅산 장군의 장녀로 태어나 15세 때 영국으로 건너가 옥스퍼드대학에서 정치학 등을 공부했다. 그녀는 1972년 영국 대학교수 마이클 아리스와 결혼해 두 아들을 두고 평범하게 살다가 1988년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문을 듣고 영국에서 급히 귀국했다. 이때부터 국민들의 반 독재 시위에 참가했고, 이어 1988년 9월에 민족민주연합(NLD)을 결성하여 민주화운동을 주도했다. 그러나 군사정변이 일어나면서 내란을 선동했다는 이유로 가택연금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쟁을 계속하여 1990년 5월 다당제 선거 실시의 성과를 거두었을 뿐만 아니라 총선거에서 NLD가 친군부세력인 민족통일당(NUP)을 물리치고 압승을 거두었다. 1991년에 미얀마 민주화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으며, 1995년 7월 가택연금 해제 이후 NLD의 사무총장으로 복귀해 정치활동을 재개했다
1994년 레오니트 쿠츠마, 우크라이나 대통령에 선임
경제문제를 앞세운 실용주의자인 레오니트 쿠츠마 전총리(55)가 우크라이나 신임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그는 우크라이나 북부 체르니히프의 한 농가에서 출생했다. 1960년 세계에서 가장 큰 미사일 공장인 우크라이나 남동부의 유즈마시 공장에서 근로자로 첫 사회에 진출했다. 여기서 그는 실용주의자로 능력을 발휘, 6년 간 책임자로 일하면서 1992년 10월 총리로 임명됐다. 쿠츠마는 권위를 가지고 총리직을 수행하며 장차관들과 솔직하게 대화를 나누는 등 보스기질을 발휘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1993년 김영삼 대통령-클린턴 미대통령 청와대정상회담.
1990년 한국-일본-홍콩간 해저 광케이블 개통
1990년 7월 10일 홍콩, 일본으로 이어지는 H-J-K 해저 광케이블이 착공 2년 5개월여 만에 시험가동을 거쳐 정식서비스에 들어갔다.
이로써 한국은 일본은 물론 미국과도 광통신을 통해 보다 고품질로 전화 데이터 영상서비스를 주고 받게 되었으며 국제통신이 위성통신과 함께 이원화됐다.
H-J-K 라인이 완공된 것은 5월 30일이었다. 4월 27일 관문국인 제주 성산포육양국이 전남 고흥으로 연결된 뒤 태평양쪽으로 7백1km 지점에서 홍콩과 일본을 가는 선과 연결됐다. 한국은 H-J-K 라인에 3천4백만달러(약2백40억원)의 공사비를 부담, 3천7백80회선을 확보했다.
1990년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에 재선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1990년 7월 10일 소련 공산당 대회에서 당 서기장직에 재선됐다. 28차 소련 공산당대회에 참석한 대의원들은 이날 실시된 소련 서기장 선출을 위한 비밀투표에서 찬성 3천4백11표, 반대 1천1백16표를 던져 고르바초프를 당 서기장에 재선출했다. 유일한 경쟁자로 입후보했던 시베리아 광산지역 공산당 출신의 테이무라즈 아발리아니는 찬성 5백1표, 반대 4천20표를 얻었다.
당 서기장 선출을 위해 비밀투표를 실시한 것은 소련 역사상 처음이었다. 당 서기장직은 일정한 임기가 정해지지 않았으나 이번 당대회에서는 종래 1년에 몇차례씩 소집되는 당 중앙위에서 당 서기장을 선출하던 당 규약을 변경, 전통적으로 4년이나 5년에 한번 소집되는 당대회에 의해 선출되도록 규정했다.
1986년 월북 소설가 박태원 사망
박태원은 1909년 서울에서 태어나 동경 법정대학에 다니면서 1930년 `신생` 10월호에 단편소설 `수염`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문단활동을 시작했다. 1931년 법정대 예과를 중퇴하고 귀국하여, 1933년 이태준, 정지용, 김기림 등과 `구인회`를 결성, 이후 작품활동에 몰두했다. 반계몽, 반계급주의문학의 입장에 서서 세태풍속을 착실하게 묘사한 `소설가 구보(仇甫)씨의 1일` `천변풍경` 등을 발표함으로써 작가로서의 위치를 굳혔다. 1945년 조선문학가동맹 중앙집행위원을 역임했고, 한국전쟁 중 월북해 평양문학대학 교수 등으로 재직하다 1956년 남로당 계열로 몰려 숙청당해 작품활동이 금지됐다. 1960년 복권후 `계명산천은 밝아오느냐`를 집필했고, 완전실명과 전신불수의 몸으로 동학혁명을 소재로 한 `갑오농민전쟁` 3부를 완간했다.
1930년대에 이상과 더불어 최고의 모던보이였고 순수문학을 지향했던 그가 월북했다는 것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있다. 월북전 그의 생애가 이념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등단 무렵 `성탄제` `사흘굶은 봄 달` 등을 통해 카페 여급이나 서울 변두리 지역의 민중들에게 연민과 동정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계급 이데올로기적 접근은 아니었다는 평가다.
1985년 그린피스 핵실험감시선 ‘무지개 전사’호, 뉴질랜드 오클랜드항서 폭발
1985년 7월 10일 오후 11시50분경 뉴질랜드의 오클랜드항에 정박중이던 국제환경보호단체 그린피스 소속 핵실험감시선 ‘무지개 전사’호가 기뢰 폭발로 침몰, 1명이 사망했다. 감시선은 무로아 환초에서 프랑스 핵실험 중단을 호소하기 위해 활동 중이었다.
뉴질랜드 정부와 프랑스 정부 조사에 의해 이 사건은 프랑스 정보기관 DGSE(대외치안총국)의 계획적인 폭발로 밝혀졌다.
미테랑 대통령의 지시로 시작된 수사초기에는 고위당국자가 이를 저지하려 한 은폐공작이 발각돼 프랑스 국방장관과 DGSE 최고책임자가 해임되기도 했다. 11월말 체포된 2명의 DGSE 공작원에게는 10년 금고형이 선고됐다. 그러나 이듬해 7월, 뉴질랜드 수상은 배상금으로 7백만달러를 받고 범인 2명을 프랑스에 인도해 양국 국민을 경악케 했다.
1977년 한국, 제23회 국제기능올림픽서 종합우승
1975년 이스라엘 시나이의 2개 유전을 이집트에 반환
1974년 남북적십자사, 1차 실무회담(판문점)
1974년 비상보통군법회의, 인혁당 피고인 21명 선고공판, 7명 사형선고
1973년 바하마, 영국으로부터 독립
1969년 대한민국문화예술상 창설
1968년 전방사단 CP요원 피습사건
전방사단 CP요원이 잠복근무지로 가던중 무장공비의 기습사격을 받고 교전하였으나 공비는 도주. 피해(부상 2명)
1967년 이효상 국회의장 피선
1967년 제7대 국회 개원
1967년 UN안보리, 콩고의 외인용병 금지 결의안 가결
1965년 알제리 혁명지도자 부메디엔 새정부 수상에 취임
1965년 고대생 10명 오대산 중턱서 조난사
1962년 김현철 내각수반 취임
1962년 최초 통신위성 텔스타1호 발사 미국-유럽 간 텔레비전 중계방송 성공
미국은 7월 10일 첫 통신위성 텔스타 발사에 성공하여 7월 23일 통신위성을 통한 TV중계를 하였다. 텔스타위성(Telstar衛星)은 미국 최초의 실용 통신위성으로 AT&T사(社)가 세계의 위성통신망을 실현하기 위해 지상 1,000∼5,000km, 적도에 45°의 기울기를 가지는 궤도 위에 1962년 7월 10일 발사하였다. 텔스타 1호는 미국과 유럽을 연결하는 텔레비전 중계를 처음으로 실현하였을 뿐 아니라, 텔스타 1호를 이용하여 다중전화․사진전송․고속도 데이터전송․컴퓨터 제어․기상도 전송 등도 시도하였으나, 4개월 후 핵폭발에 의한 방사능오염으로 고장이 나서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후 개량형 텔스타 2호가 1963년 5월 7일 발사되었다. 현재의 통신위성은 이런 종류의 이동형이 아닌 정지형이며, AT&T사(社)도 그후 통신위성사업에서 손을 떼었다.
1961년 능의선 개통
1956년 야당, 국회서 특혜융자를 폭로
1955년 제1회 세계 어머니대회 선언(스위스 로잔)
1954년 미국평화식량계획의 기초가 되는 미국공법 480호 의회 통과
1953년 한국휴전회담 재개
중단되었던 휴전회담이 다시 시작되었다. 한국전쟁을 끝내기 위한 휴전회담은 1951년 6월 23일 유엔 소련대표 말리크가 국제연합에서 제의하여 1953년 7월 8일 개성에서 휴전예비회담이 개최되어 7월 10일 휴전회담 본회의가 개성에서 시작되었으나, 성공하지 못하여 한 동안 중단되었다가 1953년 7월 10일 재개되었다. 마침내 7월 23일 판문점에서 휴전협정이 조인되었다.
1953년 소련 부수상 겸 내상 베리야 추방
1952년 신익희 국회의장 피선
1951년 개성에서 제1차 휴전 본회담 개최
1951년 7월 10일 개성에서 제1차 휴전회담 본회담이 시작됐다. 1년이상 끌어오던 한국전쟁이 휴전협상에 돌입한 것은 6월 27일 마리크 주 유엔 소련대사가 정전회담을 제의했기 때문이었다.
한국전에 참전한 16개국도 소련의 제의에 동의하자 이틀뒤인 6월 29일 트루먼 미국 대통령은 맥아더의 후임인 리지웨이 유엔군사령관에게 휴전교섭을 지시했다. 다음날인 30일 리지웨이는 공산군측에 원산 앞바다의 덴마크 군함에서 휴전협상을 시작하자고 제의하자 북한의 김일성과 중국의용군사령관 팽덕회는 7월 1일 회담장소를 개성으로 하자고 수정 제의했다.
이에따라 휴전예비회담이 7월 8일, 본회담이 이틀 후 10일부터 개성에서 열렸다. 이후 회담장소는 약 3개월 뒤인 10월 7일 안전상의 이유로 판문점으로 변경됐다. 이렇게 해서 한국전쟁 발발 1년15일 만에 휴전협상을 시작했으나 남한정부와 국민들의 휴전반대 데모 등 숱한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2년17일이 지난 1953년 7월 27일에 협정이 조인됐다.
1946년 해방후 최초의 전문-대학입시 실시
1943년 연합군 시시리섬에 상륙
1943년 미국의 천문학자 슐레징거 사망 - 사진술을 처음 사용하여 항성위치도의 제작과 별의 시차를 측정
1940년 프랑스. 제3공화정 폐지
1937년 사회주의 운동가 한위건 작고
1936년 인천에 소년형무소 설치됨
1931년 노르웨이, 그린랜드 합병 선언
1924년 시대일보 자진 휴간
일제강점기 한때 조선일보·동아일보와 함께 3대 민간지 대열에 끼었던 시대일보(時代日報)가 창간된 것은 1924년 3월 31일이었다. 최남선이 시사주간지 ‘동명(東明)’을 폐간하고 일간신문을 발행한 것이 시대일보였다.
사장 겸 주간은 최남선이, 정치부장과 사회부장은 안재홍과 염상섭이 맡았다. 1면에 정치기사가 아닌 사회기사를 싣고, ‘엉석바지’라는 미국 만화를 특약·연재해 차별화를 시도했지만 가중되는 자금난으로 경영권을 보천교(普天敎)로 넘겨야했다. 보천교는 증산교 계통의 종교단체였다. 사원들의 반발이 거셌다. 결국 보천교는 7월 10일 자진휴간을 선택했다.
한번 흔들리기 시작한 경영권은 좀처럼 안정되지 않았다. 1년도 안 돼 몇 차례 사장이 바뀐 끝에 1925년 홍명희를 사장으로 맞아들여 혁신호를 펴내는 등 재기를 시도했다. 그러나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결국 1926년 8월 중순쯤, 사원들의 전원 퇴사로 문을 닫았다.
1924 누르미 선수(핀란드) 제8회 파리올림픽 육상 1,500m와 5,000m 세계신기록
제7회 앤트워프올림픽 금메달 3 제8회 파리올림픽 금메달 5 제9회 암스테르담올림픽 10,000m 경주 우승으로 세 번의 올림픽에서 금메달 9개 획득
심장박동이 매우 느려(보통사람의 심장박동 1분에 72번, 누르미의 심장박동 40번으로 의학계에서 진단한 사람의 심장 박동 가운데 가장 느린 속도) 그를 진단한 의사는 청진기로 들리는 심장의 느린 박동에 자기 귀를 의심했다고 함
1919년 임시정부, 연통제 공포 시행
1919년 여자애국단 결성
1918년 소비에트 헌법 제정.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명문화 (제5회 전국러시아소비에트대회서)
1913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데스발레, 사상 최고기온 56.7도 기록
1910년 독일의 천문학자 갈레 사망 - 1846년 9월 23일에 해왕성을 처음으로 관측
1907년 마산노동야학 설립(한국 최초의 노동야학)
1905년 극작가 박진 출생
1900년 파리 지하철 개통
파리지하철 1호가 1900년 7월 10일 오후 1시 개통됐다. 인간이 기계의 도움을 받아 땅 속으로 이동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파리 서쪽 포트 마이요와 동쪽의 포트 드 반센누를 연결하는 이 1호선에는 중간에 16개의 정차역이 있으며 3량으로 구성된 전차는 기점으부터 종점까지 주행하는데 33분이 소요되었다. 오후 2시부터 전차는 일반인들에게 개방되었고 지하를 달리는 전차를 보려는 파리 시민들로 역마다 북새통을 이뤘다.
1884년 독일의 이집트학 학자 리챠드 레프시우스 사망
1871년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 출생
1830년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 피사로 출생
1781(조선 정조 5) 『국조보감』 편찬 착수
1641(조선 인조 19) 광해군 제주도에서 세상 떠남
1584년 스페인의 가톨릭교도 발타자르 제라르 네덜란드 독립운동 지도자 오렌지공 윌리엄 세계 최초로 권총으로 암살
1509년 프랑스 종교개혁자 칼뱅 출생
138년 제14대 로마제국 황제 하드리아누스 사망
제14대 로마제국 황제 하드리아누스가 138년 7월 10일 그가 지명한 후임 황제 안토니누스 피우스가 지켜보는 가운데 21년의 치세를 뒤로 하고 숨을 거뒀다. 하드리아누스는 이른바 로마의 "다섯 명의 어진 임금(五賢帝)" 가운데 한 사람으로, 로마 제국에 평화를 정착시킨 위대한 황제로 일컬어진다.
76년 1월 에스파냐의 이탈리카에서 태어나 117년 황제에 즉위한 하드리아누스는 재임중 ‘로마법 대전’을 간행해 로마사회에 새로운 규범을 정착시켰다. 뿐만 아니라 131년 유대교 반란을 강경 진압한 후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유대교 신자 모두를 예루살렘으로부터 추방해 20세기 중엽까지 계속된 유태인의 유랑생활을 시작케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는 전임 황제들이 완벽하게 구축해 놓은 사회간접자본을 기능적이고 효율적으로 작동시키기 위해 로마에만 머무르지 않고 제국 각지를 직접 방문해 현장을 확인한 후 정비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치세기간 21년 동안 그가 본국 이탈리아에 머물렀던 것은 7년간에 걸쳐 세 차례뿐. 나머지 14년 동안은 로마의 속주인 라인강 유역ㆍ브리타니아(영국)ㆍ에스파냐ㆍ아테네ㆍ북아프리카ㆍ이집트ㆍ시리아 등을 순행하면서 보냈다. 그는 제국 각지의 방위선을 돌아보며 제국의 안전보장체제를 정비하고 재구축했다. 이때의 속주 재정비는 후임 황제 안토니누스 피우스의 평화적인 치세를 가능케 해줬다.
138년 제15대 로마제국 황제 안토니누스 피우스 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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