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 팔대기문(八大奇門) - 03
사공운은 자신에게 무슨 일인가가 일어난 것 같은데, 그게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약 반 시진 정도를 앉아서 자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
가? 고민하던 사공의 귓가에 전음이 들려왔다.
"오른쪽 숲으로 와주세요."
이제 십이삼세나 되었을 법한 소년의 목소리. 낯익은 목소리였다.
사공운은 이 갑작스런 전음에 놀라지 않았다.
독편복의 공격을 받을 때 도움을 받았었기에, 언제이고 자신에게 다
시 한번은 연락이 있으리라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다.
"잠시만 갔다 오겠네."
동료들이 그를 보자 그냥 웃으면서 숲으로 사라졌다.
"이쪽으로요."
목소리의 인도대로 숲 안으로 들어가자 거대한 나무 아래에 한 명의
소년이 웃으면서 서 있었다. 이제 겨우 12, 3세가 되었을까? 무척 귀여
워 보이는 소년이었다.
소년은 맑고 신기한 눈으로 사공운을 보고 있었는데, 무척 반가와 하
는 눈치였다.
"하하 역시 언제나 멋지군요."
"나를 아느냐?"
"당연히 잘 알고 있죠."
"어떻게 아느냐?"
"그게 그렇게 중요한 것인가요?"
사공운은 소년을 보았다.
소년도 사공운을 보고 있었다.
참으로 귀여운 얼굴이었다.
"네가 나를 도와 줬느냐?"
"물론이죠. 내가 아니면 누가 그랬겠어요. 그런데 정말 저를 몰라보
시겠어요."
사공운은 눈을 깜박이며 소년을 보았다.
"아아, 됐어요. 전 사부님이 전해 주라는 물건과 말만 전해주면 되
요."
"사부님이라고?"
사공운의 물음에 소년은 못 들은 척, 나무 뒤에서 보퉁이 하나와 검
한 자루를 꺼내 왔다.
사공운은 어안이 벙벙한 채로 소년을 보았다.
"이건 모두 사형 것이니, 부담 같지 마세요."
사공운이 조금 당혹한 표정으로 소년을 보았다.
"사형, 내가 네 사형이란 말이냐?"
"하하, 유지학 사부님의 새로운 제자라고 생각하세요."
"사부님이."
사공운의 눈이 커졌다. 갈수록 생각의 밤은 깊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소년은 쉽게 자신의 궁금증을 풀어줄 것 같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그에
겐 소년과 많은 이야기를 할 시간이 없었다.
'그래 차츰 알게 되겠지.'
사공운은 편하게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모든 것이 순조로
웠다.
사공운은 소년이 준 검을 들어 보았다.
자신이 지닌 청강검과 비교해서 무게나 크기가 거의 같았다.
검을 뽑아 보니 검은색의 검신이 나타났다. 그 검신은 신기하게도 빛
을 흡수하는 능력이 있는 듯, 태양 빛에 비추어도 눈부심이 없었으며
빛 자체가 전혀 반사되지 않았다. 날은 예리하여 보검임을 알 수 있었
다.
"혹시 하단전에 굉장한 고통이 있지 않았던가요."
"네가 그것을 어떻게 아느냐?"
"하하 제가 모르는 것이 있나요. 험."
소년은 자신에 대해서 더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무척 재미
있다는 표정이었다.
"넌 나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는데, 난, 네 이름조차 모르는구나?"
"제 이름은 저절로 아시게 될 걸요. 그리고 그 검에 대해서도 저절로
알게 되실 거구요."
사공운은 홀린 기분이었다. 그러나 유지학 사부님이 시킨 일이라면
반드시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궁금한 것들은 다 참아 나가기로
했다.
"그리고 이것은 지금 바로 드세요. 그 동안 사부님이 노심초사해서
만든 약이에요."
사공운은 소년이 내민 단약 한 알을 보았다.
"하하 설마 이게 무슨 영약이니 뭐 그런 거라 생각하지 마세요. 그렇
다면 내가 벌써 먹었죠, 이건 사형의 고통을 앞당기는 역할만 해주는
약이에요. 꼭 기억하셔야 해요. 앞으로 두 번의 고통이 더 찾아 올 거
예요. 우선 중단전이 한번, 그리고 상단전 여기가 한번."
소년은 말하며 자신의 인중 근처, 머리를 가리켰다.
"상단전이 풀리면 모든 비밀과 의문도 풀릴 거예요. 원래 3년에 걸쳐
중단전 상단전이 풀리는 게 원칙이지만, 이 약은 그것을 아주 빨리 앞
당겨, 최소 이삼일 안에 두 번의 고통이 찾아 올 거예요. 그리고 중단
전이나 상 단전에 고통이 몰려오면, 일각 동안은 움직이거나 말을 하면
안 되요. 자칫하면 주화입마하거나 큰 내상을 입을 수 있어요."
소년은 아주 빠르게 말하면서도 또렷하게 설명을 하고 있었다.
사공운은 그저 듣기만 하였지만, 궁금함은 점점 더 커졌다.
"위험한 시기에, 고통이 오면 상당히 난감 할 거예요. 하지만 지금으
로선 어쩔 수 없어요. 어차피 지금의 사형 무공으로는, 봉성까지 가기
전에 죽을 수 있으니, 빨리 무공을 회복하시기 바래요."
"무공 회복?"
소년은 장난스럽게 웃었다.
"다 저절로 알게 될 거예요. 너무 서두르지 마세요. 나도 시간이 없
으니. 곧 가야해요. 우선 제가 준 보퉁이는 모두 사형의 물건들과 그
동안 사부님이 준비해온 몇 가지 물건들이 들어 있어요. 그 물건들의
용도 또한 사형이 곧 다 아실 수 있을 거예요."
사공운은 무엇에 홀린 듯 소년의 얼굴만 보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급하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거예요."
소년은 자신의 품에서 또 하나의 작은 보퉁이를 꺼내어 들었다.
단엽은 커다란 나무 위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수 십 명의 인물들이 상엄하게 경계를 서고 있었다.
단엽은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고 시간을 기다렸다. 그리고 인시가 되
면서 사방 숲으로 경계에 들어갔던 인물들이 교체되었다.
'아직 더 기다리자.'
단엽은 한동안 더 기다림을 가졌다. 살수에게 기다림은 선택이 아니
라 필수였다.
새벽녘은 잠을 자지 않는 사람들에게 가장 피곤할 때였다.
묘시에서 약 2각이 모자라는 때, 단엽은 품에서 작은 대나무 통 하나
를 꺼냈다. 지금은 이른 봄.
차가운 대기가 대지에 가라앉아 있었다. 그는 대나무 뚜껑을 열고,
삼매진화를 일으켰다. 그러자 대나무 통 안에서 무형에 가까운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연기는 차가운 바람을 타고 흘러 용부의 청룡당 인물들이 자고 있는
곳으로 흘러 내렸다.
'삼리무형몽혼연(三里無形夢魂煙)이며 일각 안에 모두 깊은 잠에 빠
지리라.'
그의 사부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물건이었다. 미리 해약을 먹은 단엽
은 일각을 기다렸다 움직이기 시작했다.
숲으로 흩어져 들어간 호위대의 인물들은 손수 처리해야 함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비록 삼리무형몽혼연(三里無形夢魂煙)이 삼리에 걸쳐
효력이 미치지만, 청룡당의 호위무사들 중, 삼리를 벗어나 경계를 스는
자가 둘이나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다시 일각이 지나 용부의 청룡당이 호위하는 마차에 다가선 단엽은
영몽환을 꺼내어 들고 마차의 문을 열었다.
단엽은 잠시동안 숨을 멈추고 호흡을 조절했다.
단엽은 마차의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중년의 여자 둘과, 시녀 둘 그리고 궁장 차림의 소녀가 한 명 있었
다.
소녀의 얼굴에 시선이 멈춘, 단엽은 가볍게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그녀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무슨 경국지색이니, 서시니, 달기니 할 정
도는 아니었지만, 어둠을 뚫고 사물을 볼 수 있는 유령안에 들어온 그
녀의 피부는 함박눈처럼 희고 햇솜처럼 부드러워 보였다.
아직 어려 보이지만, 그녀의 가슴은 힘차게 하늘로 솟아 있었고, 그
녀의 숨결은 나뭇잎처럼 싱싱했다. 앞으로 몇 년 후면 과히 천하절색이
라 부르기에 조금도 모자라지 않았다.
'시간이 많은 것은 아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스스로를 꾸짖은 단엽은 영몽환(靈夢丸)을 으깨어 입어 넣고 씹은
다음, 그녀의 입을 벌렸다.
단엽은 심호흡을 했다. 아무리 아니라고 하지만 그는 23세의 청춘이
었다.
살수이기 전에 남자임은 그의 하체가 먼저 말을 해주고 있었다.
'이게 무슨 추태냐?'
단엽은 가볍게 유령신공을 끌어 올려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힘이
들어간 하체에 힘을 뺐다. 조금씩 피의 흐름이 늦어지고, 체온이 낮아
진다.
"후우~~"
입에 으깨진 영몽환을 문체, 마음을 가다듬은 단엽은 소녀에게 다가
섰다.
단엽은 당당하게 눈을 뜨고 자신의 입술을 소녀의 입술에 가져갔다.
'나는 지금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단엽의 시선은 소녀의 얼굴에서 비켜나 있었음은, 본인 스스
로도 모르고 있었다.
두 개의 입술이 겹쳐지는 순간, 단엽의 손이 부르르 울렸다. 잔 바람
에 진저리를 치는 나뭇잎처럼.
부드럽고 달콤한 기분과 향긋한 냄새가 단엽의 숨통을 조이는 기분
이었다.
물 서너 모금 마실 시간 동안 단엽은 움직이지 못했다. 마치 그의
온 힘이 다 빠져나간 듯, 손 끝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입술을 떼고 나서야 정신이 번쩍 든다.
갑자기 사방을 둘러본다. 다행히 자신을 보는 눈은 없었다.
갑자기 큰 안도감과 아쉬움이 그의 등을 쓸고 지나갔다.
'단엽, 그러고도 네가 살수냐?'
스스로를 책망하고 보니, 부끄러움에 얼굴이 붉어졌다. 밤은 그의 마
음을 헤아려 그림자로 가려 주었다.
그는 단단하게 마음을 먹고, 용설아의 목을 짚어 혈을 눌렀다. 순간
단엽의 입에서 전해진 영몽환이 꾸루룩 소리와 함께 그녀의 배속으로
흘러 들었다.
으깨지 않고, 영몽환을 그냥 먹이면, 목에 걸릴 수도 있다. 그래서 그
는 입으로 으깨어 소녀가 쉽게 먹을 수 있게 한 것이다.
'영몽환은 그냥 입에 넣어 주고, 목에 혈을 누르면 저절로 넘어간다.'
사부가 한 말이었지만, 이미 그의 기억 속에 없었다.
이제부터 배교의 심령 제압술로 그녀를 혼을 지배해야만 했다. 단엽
은 그녀를 안고 일어섰다. 그의 유령신법은 먼지 하나 일으키지 않고
숲으로 사라졌다. 이제 조용한 곳으로 들어가 심령술을 펼쳐야 했다.
시간이 걸리는 일이므로 안전한 곳을 확보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한 동안 앞으로 달리던 단엽은 누군가가 자신의 뒤를 쫓고 있음을
눈치챘다.
더욱 속도를 내어 뿌리치려 했던 그의 신형이 우뚝 섰다.
어느 틈인가?
그의 앞에는 검은 복면의 사내 한 명이 서 있었다. 나타난 사람은
두 눈과 두 손을 빼고는 완벽하게 검은 천으로 자신을 가리고 있었다.
야밤에 복면을 하고 나타난 자라면 좋은 뜻을 가지지 않았음이다.
그의 가슴엔 3이라는 숫자가 조금 더 짙은 검은 색으로 새겨져 있었
다. 그 숫자는 제법 커서 알아보기에 어렵지 않았다.
'검은 옷에 저렇게 큰 더 검은 숫자라니, 정말 촌티 나는 복장이군.'
답엽은 보기에도 어색해 보이는 그 숫자를 보며, 그의 무공도 그 옷
차림과 같기를 빌었다.
그러고 보니 단엽도 검은 두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검은 옷을 입은
차림이었다.
"대담하구나? 용부의 소공녀를 납치하려 하다니."
"당신도 나와 옷차림이 비슷하군."
결국 너도 용설아를 납치하려 한 것 아니냐는 비웃음이었다.
목소리가 생각보다 어린것을 느꼈음인가? 말을 한 상대는 무척 놀라
는 눈치였다.
"어리군."
"그렇소, 그런데 무슨 일로 나의 앞을 막은 것이요?"
"우린 그 여자가 필요하다."
단엽의 뒤에서 들린 소리였다.
단엽은 이미 그의 존재를 알고 있었기에 놀라지 않았다.
상대는 그들만의 신호로 3이라는 숫자가 있는 남자에게 자신을 막으
라 했을 터였다.
뒤에 나타난 사람은 얼마 전부터 자신의 뒤를 쫓아온 자였다.
"이 여자는 나의 물건이요."
"자네도 강탈했으니 우리도 강탈하겠네, 그럼 불만 없겠지?"
"자신 있으면. 근데 당신들은 누구요."
"알 것 없네? 자넨 그냥 죽어주면 돼."
"마치 내가 꼭 죽을 것처럼 말하는 군."
단엽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당연하지, 사령6호, 지금은 때가 때이니 만큼 협공하세."
단엽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상대는 협공이란 말 자체를 별로 달가
와 하지 않는 인물 같았다. 그것은 그 만큼 무공에 자신이 있다는 뜻이
기도 했다. 한데 지금은 협공하자고 한다. 이는 반드시 용설아를 빼앗
겠다는 의지이고, 실수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했다.
'위험하다.'
단엽은 상대가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 더군다나 자신의 실
력을 과신하지 않고 협공하겠다고 선포했다. 그들은 자신의 정체조차
묻지 않았다. 반드시 죽이겠다는 뜻이리라.
"난 이만 가겠소."
단엽이 돌연 몸을 돌렸다.
"그렇게는 안 돼지."
앞에 있는 사령3호가 자신의 허리에서 검를 꺼내어 들고 단엽에게
달려들었다. 마치 뱀의 혀처럼 꿈틀거리며 그의 검은 단엽의 머리를 겨
냥하고 비스듬히 베어 왔다. 아니 베어가다가 갑자기 멈추고 뒤로 두어
걸음 물러섰다.
단엽의 검이 환상처럼 그의 면전에 나타나 찔러 왔던 것이다. 어떤
파공음도 없었고, 어떤 기수식을 취한 것 같지도 않았는데, 상대의 검
은 자신의 코앞에 와 있었다.
3호가 놀라지 않으면 이상한 일이었다.
보통 무공의 구결에 보면 후공선참(後攻先斬)이란 말이 있다. 나중에
공격하여 먼저 상대를 밴다는 말로, 쾌의 도리를 이야기한 말이다. 그
말뜻은 동작을 작게 하여 나중에 공격하더라도 상대보다 빠를 수 있는
방법을 찾으라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특히
고수끼리의 대결에선 어불성설이었다.
그렇지만 지금 단엽의 공격이야말로 그 말에 꼭 맞는 말이었다.
"너... 넌 누구냐?"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덤볐다니, 그거야 너의 실수지."
"유령마제의 검법이다."
단엽이 채 말을 끝내기도 전에 또 하나의 그림자가 내려섰다. 그의
가슴엔 7이라는 숫자가 새겨져 있었다.
유령마제라는 말이 떨어지자 3호는 상당히 놀란 것 같았다.
100년에 한 명 나올지 말지라는 무공의 천재들, 6명이 한 시대에 태
어난 적이 있었다.
강호인들을 그들을 우내 육존이라고 부르며 존경했었다. 그들은 상호
경쟁하고 상호 협력하며 자신들의 명성을 쌓아 갔었는데, 그들 중 한
명이 유령마제였다. 특히 마교와의 전쟁에서 보여준 유령마제의 살수
능력은 이미 정평이 나 있었다.
자객지왕이요. 살왕이라고 했던가?
단지 강호인들이 모르는 것이 있었다면, 유령마제가 배교의 후예였다
는 점이었다.
용부의 습격으로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유령마제는 끝까지 배교의
환술을 사용하지 않았다. 아니 그 환술을 이용해서 살아 날 수 있었다
면 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살아 날 방법이 없음을 알자 자신이 배
교의 후예임을 끝까지 속였다. 그것은 자신의 제자에 대한 배려였다.
조금 안타까운 일이라면, 그의 제자는 무공과 환술에 대한 능력보다
는 기진과 약 제조술 등에 더욱 능했다는 점이었다.
"넌 혹시 사혼유령검(死魂幽靈劒)이 아니냐?"
7호는 추궁하듯이 물었다.
"내가 대답할 이유가 없겠지?"
"네 놈이 설혹... ..."
7호는 채 말을 끝내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시야에 갑작스럽게 다가
오는 단엽의 그림자를 보고 헛바람을 일으켰다.
'빠르다'
우선 가장 먼저 생각난 단어였다. 그러나 그는 피할 수가 없었다. 만
약 자신이 뒤로 물러서거나 피한다면, 상대가 도망가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얍"하는 소리와 함께 7호의 허리에서 빠져 나온 도가 단엽의 유령
신검을 향해 쳐 나갔다. 그의 도는 언뜻 보기에도 중도(重刀)라 서로
무기가 충돌하면 단엽이 손해일 것 같았다. 그러나 단엽은 전혀 개의치
않고 충돌해 나갔다.
두 개의 도가 막 충돌하려는 손간, 단엽의 손이 기이한 각도로 움직
이며, 그의 유령검은 상대의 도를 흘려보내고, 더욱 빠른 속도로 찔러
들어갔다.
그 모습은 마치 뱀이 공격해오는 매의 부리를 피해 목덜미를 물어
가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는 구환유령검법(九 幽靈劒法)의 제5식인 유
령사(幽靈蛇)의 초식이었다.
기겁을 한 7호가 몸을 틀어 피하는 순간, 단엽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흩어졌다가 약 1장 정도의 옆에 나타났다.
새로 나타난 복면인이, 협공을 해 온 것이다.
단엽의 옆구리에서 피가 조금씩 번져 나왔다.
"분광검법(分光劒法)"
단엽은 자신을 기습한 3호를 보며 어지간히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분광검법을 알아보았으니, 필히 죽여야겠다."
"당신은 점창의 누구지?"
물어 보나마나한 질문이었다. 신분을 말할 것 같으면 누가 복면을 했
겠는가? 대답대신 3호의 검이 두 개로 갈라지며 단엽의 양 가슴을 공
격해왔다. 그리고 7호 역시 자신의 중도를 휘두르며 공격해왔다. 어깨
에 용설아를 메고 있는 단엽은 그 두 사람의 공격을 막기엔 너무 힘들
어 보였다.
"퍽"하는 소리와 함께 7호의 도와 3호의 검이 단엽의 몸을 치고 지
나갔다. 생각보다 너무 쉽게 상대를 죽인 둘은 오히려 어리벙벙한 상태
로 죽은 답엽을 보고 있었다.
"빨리 쫓아."
뒤쪽에 있던 6호가 고함을 지르며 숲으로 몸을 날렸다. 그제 서야 둘
은 자신들이 교묘한 사술에 현혹 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분통을 터트렸
다.
뭐 사실은 배교의 기환술이었지만, 그들이 그것을 알 리가 없었다.
단엽은 지쳤다. 자신을 쫓는 세 사람은 집요했다. 개개인의 능력이
자신과 큰 차이가 안 나는 데다, 셋의 끈질김은 그를 지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단엽과 그들 셋은 교묘하게 용부를 따돌리며, 숨바꼭질을 하고 있었
다. 벌써 몇 시진 째였다.
만약 용설아만 없었다면 어떻게 해보겠지만, 그녀를 등에 업고 있는
그로서는 여러 가지 장애가 많았다. 무엇보다도 단엽을 초조하게 만드
는 것은 영몽환의 효능이 앞으로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효능이 사라지기 전에 배교의 심령술을 펼치지 않으면, 그녀는 영원
히 백치가 되고 말 터였다.
단엽은 자신에게 달려드는 검은 복장의 사내를 보았다. 검은 복면과
검은 경장, 그리고 검 한 자루, 가슴에 새겨진 3이란 숫자가 유난히 그
의 시선을 괴롭혔다. 그는 아직도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짐작할
수 있는 것은, 그가 바로 점창파의 인물이며, 최소 전대 장로급 이상의
고수라는 것뿐이었다.
용부의 인물들에게 쫓긴다면 그나마 억울하지는 않겠지만, 세 명의
복면인은 분명 용부의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이 노리는 것은, 단엽이
아니라 바로 용설아였다.
용설아를 납치한 단엽은 오히려 그녀를 보호하는 입장이 되고 말았
다. 특히 복면인들의 무공은 단엽의 상상을 넘어서 있었다.
한 명, 한 명이 현 강호 10대 고수 중, 말석을 차지한 단엽에게 거의
필적한 무공들을 지니고 있었다. 특히 그들이 펼치는 무공이 복잡해서
한 명 외에는 그들의 정체를 알 기 힘들었다. 그 한 명도 대략 짐작할
수 있을 뿐이었다.
어깨에 메고 있는 용설아가 유난히 힘에 겨웠다.
"대단하다. 소문은 들었지만 그 나이에 천하 10대 고수에 들은 이유
를 알겠다."
단엽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넌 우리를 보았다는 이유만으로 죽어야 한다. 그러나 그녀만 넘겨주
면 우린 순순히 물러서겠다. 네가 우리를 본 사실만 깨끗이 잊어 준다
면."
단엽의 입가가 비틀려 올라갔다.
"난 머리가 좋은 편이요. 한번 본 것은 쉽게 잊지 못하니 당신들의
제의는 처음부터 잘못 되었소."
"넌 머리가 좋은 것이 아니라 멍청한 것이다. 살길을 버리다니."
"글쎄 올시다. 당신이 과연 그런 능력이 있는지 모르겠소?"
"두고 보면 알겠지? 넌 확실히 강적이다. 그것은 인정하마."
3호는 살기를 머금은 눈으로 단엽을 보며 자신의 검을 들어 올렸다.
이미 서너 군대에 큰 상처를 입고 있는 단엽은 심하게 지쳐 있는 상황
이었다.
단엽이 자신의 유령신검을 들어올릴 때, 그의 귓전에 사부의 전음이
들려왔다.
"공격하는 척하고 아래 계곡 쪽으로 와라."
단엽은 사부의 전음을 듣자 바로 공격을 감행하였다. 그의 유령신검
은 막 공격 자세를 취하고 있는 3호의 얼굴을 직선으로 찔러 갔다.
무음, 무형의 검기가 덮쳐 오자 상대는 기겁을 해서 허리를 숙여 피
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공격해오던 단엽의 몸이 앞으로 전진해 오는 것
이 아니라 뒤로 날아가는 것이 아닌가? 뒤로 날아가던 그의 몸은 어느
새 반 바퀴 몸을 틀었고, 앞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3호는 기가 막힌 눈빛이었다가, 짧은 회파람 소리를 내며 단엽을 뒤
쫓았다.
계곡 아래로 내려온 3호는 갑자기 사라진 단엽의 모습에 당황했다.
사방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평범한 계곡이 있을 뿐, 단엽의 흔적은 보이
지 않았다.
3호가 조금 더 전진하여 앞으로 걸어가려 할 때였다. 갑자기 허공에
서 검 하나가 나타나 3호를 공격하였다. 놀란 3호가 급하게 뒤로 물러
서는 순간 단엽이 앞으로 튀어나오며 검을 휘둘렀다. 이는 유령검법 중
후3식에 속한 유령섬쾌(幽靈 快)였다.
3호는 무엇인가 번쩍 하는 느낌에 몸을 땅으로 굴렸다. 그러나 어느
새 그의 팔 하나가 잘려 나갔고, 그의 마혈은 단엽에게 잡혀 있었다.
'무형검기'
사령3호는 몸을 덜덜 떨었다. 자신이 단엽에게 잡혔다는 사실보다도
무형검기에 놀란 것 같았다.
"후후, 어떻게 된 것인지 궁금하겠지. 저 계곡으로 보이는 곳은 유령
혼마진이지, 그리고 난 이때를 대비해 마지막 한 수를 감추어 놓고 있
었던 거고."
단엽은 툴툴거리며 웃었다.
사령3호는 기가 막힌 얼굴로 단엽을 보고 있었다. 너무 갑작스런 기
습에 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써 보지도 못하고 당한 셈이었다. 그제 서
야 상대가 강호 최고의 살수였음을 생각해 내었다. 살수가 기습을 하는
것은 당연했다.
'너무 방심했다.'
복면인은 후회했지만, 이미 부러진 검이었다.
단엽은 상대가 허탈해 하는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당신이 누구냐고 물으면 절대 대답하지 않겠지. 하지만 나에겐 방법
이 있지."
단엽이 웃으며 품안에서 새끼손가락 마디 만한 크기의 환약을 꺼내
었다. 3호는 불안한 시선으로 단엽을 보았다.
자신의 잘려진 팔이 심하게 아파 왔지만 그것은 참을 수 있었다. 그
러나 자신의 정체가 밝혀지면 그 것은 절대 안 되는 일이었다.
"이 환약은 영몽환이라고 하는 것이지, 이걸 먹게 되면 넌 싫어도 너
의 과거를 나에게 말해야 할 것이다."
단엽이 단약을 들고 3호의 복면을 잡아갔다. 유령혼마진 안에 그의
사부가 남겨놓은 물건 중, 영몽환이 하나 더 있었었다.
3호의 눈빛은 참혹하게 죽어갔다.
단엽이 복면을 벗기자 50대 장년인의 얼굴이 나타났다.
단엽은 입을 꽉 다물고 있는 장년인의 입을 강제로 벌렸다. 그리고
장년인의 입이 벌어진 순간, 단엽의 신형이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고,
그의 뒤에서 나타난 두 사람의 그림자가 단엽의 마혈을 제압하였다.
나타난 6호와 7호는 3호의 마혈을 풀어 주고 팔의 상처를 동여매어
주었다.
"괜찮소 3호."
"견딜만합니다. 두 분 고맙습니다."
3호는 이를 악물고 일어섰다. 세 사람은 무서운 눈초리로 단엽을 쏘
아보았다.
'너무 방심했다.'
단엽은 기가 막혔다. 설마 입안에 마지막 암수를 지니고 있으리란 생
각은 하지 못했다. 그 암수에 당하면서 꼼짝 못하고 붙잡히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그의 이마엔 작은 침 하나가 박혀 있었다.
단엽을 제압한 것은 새로 나타난 두 사람이 아니라, 3호의 입을 벌리
는 순간, 그 입안에서 날아온 침이었다.
마혈이 풀린 3호는 눈에 살기를 띠고 단엽에게 다가왔다.
첫댓글 잘읽었습니다
즐감 입니다...
잘 보이지 않아요
즐감~1
살수의실수
즐독!!!!!!!!!!!1
ㅈㄷㄱ~~~~~~~~```````````````
감사해요~~~^~
ㅈㄷㄳ
감사합니다.
잘읽었습니다
즐감
즐독 감사합니다^^^
감사...
즐독
잘읽었습니다
재미 있게 읽고 갑니다
항상 건강 하고 행복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