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애환을 말아낸 국밥
송 성 옥
1 가좌지구 전쟁터 소식이 TV 화면을 통해 전해왔다. 병원이며 큰 건물에 폭탄이 떨어져 수많은 사상자가 생겼다. 이곳저곳에서 부상자들이 속출하고 울부짖은 아우성이 들리는 듯하다. 춥고 어두운 밤을 지새우는 난민들을 보면서 6.25 때 우리나라 실정을 느끼게 했다.
구호 단체에서 주는지는 모르겠으나 김이 나는 큰 통에서 누르스름한 멀건 죽을 한 국자씩 떠 주었다. 그것을 타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 속에서 남루하기 이를 대 없는 어린아이의 맨발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그의 손에 든 그릇에 살기 위한 절실한 눈망울이 어렸다.
2 문득 어머니가 들려주시던 꿀꿀이죽이 생각났다. 우리나라에 전쟁이 휩쓸고 간 뒤다. 미군들이 먹다 남긴 음식을 모아서 다시 “팍팍” 끓여서 만든 잡탕 죽이다. 운이 좋은 날은 닭다리, 햄 쏘시지, 조막만 한 고깃덩이도 하나씩 나오기도 했다. 영등포 시장 후미진 자리에 일명 꿀꿀이죽 장사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새까맣게 몰려들었다. 어머니도 그 죽으로 끼니를 해결하곤 했었다. 값은 일원 이원 했지만 돈이 없으면 그나마도 굶을 수밖에 없었다.
이후 형편이 좀 펴지면서 어머니가 처음 국밥을 사 먹었던 날. 눈물인지 콧물인지 땀범벅을 하며 정신없이 먹고 나오니, 햇살은 눈이 부시건만, 가슴 뭉클했던 순간을 말하는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혈혈단신 전쟁미망인이었던 어머니에 이별의 아픔이 어린 국밥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려 왔다.
3 남편과 함께 집 근처에 있는 국밥집을 갔다. 아주 오래된 돼지 국밥집이다. 그리움이 마음속을 스멀거리는 날 가끔 가는 단골집이다. 이른 점심시간인데도 어느새 줄이 큰 도로 앞까지 길다. 지나다니면서 보면 가게 두 칸이 늘 손님들로 붐볐다. 입소문도 있었겠지만, 모 가수가 다녀간 뒤로 더 많아졌다. 인터넷에 맛집으로 올렸다는 소문이다. 음식값이 치솟는 요즘 가격 대비 가성비가 좋은 점도 한몫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빨리빨리 문화의 하나라 볼 수 있는 국과 밥을 한 그릇에 담아 먹는 국밥. 지역마다 독특한 맛으로 전주 콩나물국밥이며 자갈치 이지매 국밥 등 여러 곳이 있지만, 우리 동래 국밥 맛도 빠지지 않는다.
4 이 집 국밥은 돼지머리와 내장, 잡뼈를 푹 삶은 국물에 밥을 말아내는 방식이다. 입에 쩍쩍 붙는 진한 국물 맛이 일품이고, 듬뿍 담긴 머리 고기도 쫄깃하며 입안에 번지는 육즙이 가득하다.
어려웠던 시절 늙수그레한 사람들이 국밥 한 그릇에 소주잔을 기울이며 삶의 허기를 채웠던 시절이 있었다면, 요즘은 햄버거를 좋아할 것 같고, 헨드폰 속에 빠져있는 젊은 사람들도 말없이 줄을 서 기다린다.
5 줄이 조금씩 줄어드는 것 같지만, 아직 내 순번은 멀었다. 순간 앞에 서 있는 남편 등에 어머니 모습이 그려졌다. 엊그제 같은데 며칠 전 십 주기가 지나갔다.
황망하게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맘을 잡지 못하던 어느 날 아들이 국밥을 먹으러 가자고 해 처음으로 이 집에 왔었다. 수더분한 사장님이 먼저보고 친절하게 맞아주며 “할머니는?”하고 물었다. 얼마 전에 돌아가셨다고 아들이 말하자. 손자가 할머니 모시고 오는 손님은 드물었다며, 은발 머리를 하고 손자를 바라보는 고운 모습이 유독 기억에 남았다고 했다.
자리에 앉고 보니 “엄마! 그 자리네.” 할머니랑 함께 먹었던 그 순간이 떠오르는 듯 목에 머가 걸린 소리로
“먹고 나도 또 생각난다.”며 한 그릇을 뚝딱 비우셨다고 했다.
내가 해야 할 일을 아들이 채워 준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고, 옛 생각하며 달게 드셨을 모습이 눈에 선해 죄송한 마음이 더 들었다.
줄이 차츰 줄어들었다. 곧 우리 차례다. 식탁을 치우는 주인아주머니는 많은 사람을 대해서 힘들 법도 하건만, 친절하게 앉으라 했다.
6 국밥을 받아 들고, 남편에게 그때 이야기를 다시 들려주었다. 생각에 잠기며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우리는 함께 누릴 수 없는 사무친 그리움이 책갈피 같은 시간 속을 공존하며 가슴 적시는 국밥을 먹었다.
아이가 태어나면 산모가 미역국을 먹고, 마지막 장례식장에서 내어놓는 음식이 육개장 국이다. 음식을 통해서 응어리졌던 마음을 녹여내는 것도, 음식을 나누는 것도 살아가는 긍정적인 수행의 하나가 되지 않을까.
7 가좌지구에 맨발 차림의 아이 손에 든 멀건 죽도, 영등포 시장 모퉁이에서 먹었던 꿀꿀이죽도 빈터의 씨앗처럼 싹을 틔우는 원동력이 되었다.
더 나은 내일은 그냥 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어린 아들을 등에 업고 혹독한 고독을 견디며 노점 장사로 허기진 배를 채워주었던 국밥은 어둠 속에서 빛이 나오듯 일어서게 하는 힘이자 보약 같았다.
8 우리들은 서양 요리가 즐비한 이 시대를 살고 있지만, 앞에 줄 섰던 젊은이들 맘속 외로움을 따듯하게 품어주는 것 또한 돼지국밥이 아닐까? 삶의 애환을 말아낸 국밥. 고향처럼 빛바랜 시간을 돌아보게 하고, 영혼을 데워주는 국밥은 우리 정서에서 잊을 수 없는 최고의 음식 중 하나다.
첫댓글 송 선생님, 수고 했어요.
열심히 공부할게요.
아직 읽지는 못했습니다. 공부해서 주말에 만나요~수고 하셨습니다.
생전의 어머니를 소환해 그 그리움을 돼지국밥으로 승화시키셨네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