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면
1963년 바다 건너와 고춧가루 넣어 재탄생
돈코쓰라면 인기 등에 업고 일본식 라면 가게 증가
'하카다분코' 줄서야 먹고 '우마이도' 반숙 달걀 유명
우리가 흔히 '라면'이라고 부르는 '유탕油湯라면'은
1958년 일본인 안도 모모후쿠가 처음 개발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개발 과정에 대해서는 얼마간의 이설이 있다.
당시는 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무상 원조 덕분에 밀가루는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문제는 면을 만든 후 보관 방법이었다.
쉽게, 오래 보관할 수 있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면 음식을 개발하는 것이 바로 포인트였다.
여러 번 실패를 했던 안도 모모후쿠가 일본식 튀김, '덴푸라'를 보면서
'라면의 원리'를 깨달았다는 '설'이 있다.
면에 기름이 들어가면서 물을 증발시킨다.
유탕면은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으나 한편으로는 쉽게 조리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2차 대전 무렵 중국 군인들의 휴대용 건면(乾麪)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쨌든 유탕라면은 개발되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즉석에서 간편하게 먹을 수 있다고 해서 'INSTANT NOODLE'이었고
닭고기를 수프에 사용했다고 해서 '치킨 누들'이었다.
라면은 1963년 한국으로 건너온다.
당시의 라면 봉지를 보면 "일본 최대 식품회사 명성식품주식회사와 기술제휴"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10원짜리 '치킨라면'은 곧 고춧가루를 넣고 한국식으로 재탄생한다. 오늘날 한국 라면의 시작이다.
1971년 일본에서 컵라면이 처음 등장한다.
물을 부어서 끓이면 바로 먹을 수 있는 라면도 번거로우니
뜨거운 물을 부어서 1∼2분만 있으면 먹을 수 있는 컵라면을 개발한 것이다.
결과는 대 실패. 인스턴트 라면을 좋아하던 일본인들도 컵라면은 생소했다.
개발 후, 많은 물량을 만들었으나 마케팅 실패로 컵라면은 그저 창고에 쌓여 가기만 했다.
대책이 없었다. 그러나 실마리는 엉뚱한 곳에서 풀린다.
1972년, '아사마 산장 점거사건'이 발생한다.
일본 연합적군파 5명이 나가노 현의 아사마 산장을 점거하고 산장 주인의 아내를 인질로 잡았다.
그리고 군경과 대치했다.
이 사건은 무려 10일 간이나 계속되었고 인질 대치 사건으로는 가장 긴 시간을 기록했다.
219 시간 동안의 대치 상황은 일본 전역으로 생방송되었다.
마침 컬러TV가 막 시작되던 시점이어서 점거사건은 일본 전역으로 생생하게 전해졌다.
이 생중계를 통해 산장 점거범들이 뭔가를 먹고 있는 것이 전국에 알려졌다. 바로 컵라면이었다.
개발은 완료되었으나 홍보 마케팅 부족으로 고전하던 컵라면은
엉뚱하게도 산장 점거사건을 통하여 전국적으로 알려졌고 대 히트를 쳤다.
사람들은 마케팅 요원들이 열심히 이야기하는 내용은 듣지 않아도
'산장 점거범들이 먹고 있는 음식'에 대해서는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창고에 쌓여 있던 컵라면은 날개 돋친 듯이 팔려 나갔다.
일설에는 대치범들이 먹었던 것이 아니라 현장의 군인들과 경찰들이 먹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컵라면 회사가 남아돌던 컵라면을 군경에 반값으로 제공했고
이것을 계기로 컵라면이 널리 알려졌다는 주장이다.
어쨌든 컵라면은 엉뚱하게도 '아사마 산장 인질사건'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컵라면 역시 곧이어 한국으로 건너왔다. 지금은 편의점의 주요한 품목 중 하나다.
문제는 '라면' 혹은 '라멘'이 무엇인가, 라는 점이다.
엉뚱한 소리지만 중국 혹은 일본식으로 보자면 우리나라의 대부분 면 음식은 모두 라멘 혹은 라면이다.
중국을 여행하다 보면 '拉麵(납면)'이라는 표기를 자주 볼 수 있다.
중국인들은 '라미엔'이라고 읽는다. 이 라미엔이 일본으로 건너가서 라면(ラ-メン)이 되었다.
중국사람들은 도삭면, 절삭면이든 수타면이든 기계면이든 모두 라미엔으로 표기한다.
즉, 국수 종류는 라미엔이라고 부른다. 이 국수가 일본으로 건너가서 라멘 혹은 라면이 되었다.
손으로 늘이는 라면을 일본인들은 특별히 '데노베 라면'이라고 부른다.
그럼, 우리가 흔히 라면이라고 부르는, 기름에 튀긴 면은 무엇인가?
일본인들의 표기를 따르면 간단하다. '인스턴트 라면'이다.
여기서 라면과 라멘, 인스턴트 라면, 유탕면과 일본식 라면의 차이점이 생긴다.
일본에서는 우리가 라면이라고 부르는 인스턴트 유탕면을 끓여주는 분식집은 찾기 힘들다.
라면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대부분 돈코츠라면, 시오라면, 소유라면, 미소라면 등이다.
차례대로 돼지 뼈 육수를 사용한 것, 소금으로 간한 것, 간장 라면, 된장라면이다.
이른바 생 라면들 중 특별히 돈코츠라면이 인기를 끌고 있고
한국에서도 돈코츠라면을 중심으로 일본식 생 라면을 파는 집들이 늘어나고 있다.
홍대 극동방송국 옆 골목에 가면 오전부터 오후 내내 줄을 서 있는 작은 식당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하카다분코'다. 초기에 한국에 일본 라면을 널리 알린 가게다.
돈코츠 라면을 주로 내놓는데 메뉴는 단 두 가지뿐이다. 인라면과 청라면이다.
청라면이 좀 더 맑고 인라면은 걸쭉한 편이다. 30분 이상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특이하게도 마늘을 직접 쥐어짜서 먹을 수 있는 작은 도구가 있다.
건대 앞의 '우마이도'는 엉뚱하게도 반숙 달걀로 유명해졌다.
라면도 수준급이지만 역시 라면과 더불어 내놓는 반숙달걀이 일품이다.
이태원 '라면81번옥'과 동부이촌동 '아지겐'은 비교적 오래된 가게들이다.
'라면81번옥'은 라면 전문점이고 '아지겐'은 일본 가정식과 이자카야를 합친 모델이다.
간단한 식사도 가능하고 술안주 등도 가능하다. 라면 전문점은 아니지만 수준급의 라면을 내놓는다.
글ㆍ사진=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