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먹던 불량식품들을 셋트로 묶어 파는 사이트가 있더군..
호기심에 둘러봤다가 시간가는 줄 몰랐네..
예전에 모교사랑 사이트에서 우리 모임을 처음보고나서 느겼던..
마치 무슨 보물이라도 발견 한듯한 기분 까지는 아니었지만..
평소엔 거의 잊고 살지만..뭔가를 계기로 추억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입가에 나도 모를 미소를 짓게 만드는것 같아..
어릴적 학교갈땐 항상 친구집에 들려서 같이 가곤 했었지..
한살 터울인 우리 누나도 그랬고 나도 그랬고..
학교 가는길..비가 오는 날이면 아직 비포장이던 등교길엔 지렁이도 몇마리 꿈틀거리고 우린 운동화가 졌을까봐 삐죽 삐죽 나온 돌들을 밝고 그렇게 가다 보면 어느새 교문앞 까지 와있었다..
학교에선 실내화신고 밖에나가면 안됐었고..그러다 걸리면 엎드려 뻗쳐였다..
점심먹고 나면 학교안을 서성이는게 내 버릇이었다..
6학년 건물 1층 서무실 옆에 교무실이 있었고 그옆에는 생물실이 있었다..복도에는 유관순 누나 그림이 있었고 우리는 그 한쪽눈을 손바닥으로 가리면 귀신이 나온다는 전설을 믿고 두려움에 떨기도 하였다..
우리학교는 양궁을 잘했었나보다..언제였는지 그 복도 벽에 과녁 한가운데를 맞춘 화살과 또 그화살을 맞춘 화살이 우리의 신기함을 자아내곤 했었다..(지금 생각해도 신기하다..)
그 생물실에 들어가면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함께 온갖 크고 작은 병에 들어 있는 표본들이 괴기스런 분위기를 자아냈었다..
그래서 여자애들은 그 근처를 가기 싫어했었다..
그앞에는 큰 화장실이 하나 있었는데 거긴 남녀 공용이었다..
근데 남자 소변기 칸막이는 맨 왼쪽 2군데에만 있었다...
그때도 부끄러웠는지 꼭 그뒤에 줄섰다가 내 차례가 오면 눈치보면서 잽싸게 일을 끝냈던 기억도 난다..^^
가을엔 운동회도 했다..
100미터 달리기..스탠드 있는곳에서 1,2학년 교실 건물앞 모래판앞까지 대각선으로 선을 긋고 달리기를 했었다..예나 지금이나 달리기는 쥐약인 나에게 그때 기억은 악몽이다..그맘때면 거의 한달 전부터 여자애들은 분홍색에 하얀 술이 달린 부채를 들고 운동장에서 부채춤 연습을 했다..
남자애들은 기마전을 했었다.. 그땐 그게 재밌었던것 같다..
겨울엔 시커먼 난로에 종이와 장작과 조개탄으로 불을 지폈던게 기억에 남는다..교실 건물 뒤편에 우유 창고랑 나란이 있었던 땔깜 창고..
우유당번이랑 땔깜 당번은 남자애들끼리 두명씩 돌아가면서 했었던것 같다..우유를 다 나눠주고 우유를 담았던 프라스틱 판을 다시 창고에 갖다줄때면 계단에서 그걸 깔고 앉고서 썰매를 타곤 했다..
그러다 걸리면 죽음이었다..
난 국민학교다닐때 엄마가 한달에 용돈으로 1000원을 주셨다..
그나마 고학년이 되어서였고 그전엔 500원이었다..
학교앞 내리막길옆에는 문방구들이 정말 많았다..
그 문방구들 마다 온갖 불량식품들을 팔았지만 난 거의 사먹지는 않았던것 같다..굵은 빨대에 들어있는 주황색 달짝지근한 과자, 아폴로, 쫀득이, 어포, 뽑기, 아톰, 꾀돌이 등등...그땐 나온지 얼마 안되었던 빵빠레가 최고의 과자였다..가끔은 어떤 할아버지가 와서 유리상자안에 칼, 자동차, 별 등 온갖 모양과 크기에 노란색 투명한 설탕 과자를 팔기도 했다.. 50원을 내고 크고 두꺼운 종이위에 조그맡게 접힌 수많은 종이쪽지 중에서 하나를 뽑으면 대부분은 제일 쪼그만 녀석을 받을 수 있었다.. 제일 큰건 잉어였는데 한번도 그걸 뽑는 녀석은 본적이 없다..
지금이야 50원을 갖고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하지만...
그땐 50원이면 오락이 한판이었다..
학교가 끝나면 오락실 가는게 최대의 행복이었다..
가끔은 용돈이 떨어지면 엄마한테 받은 우유값을 몰래 삥땅하기도 했었다..^^
집에 올때도 그냥 오는 법이 없었다..가위바위보를 해서 꼴찌가 가방 전부, 둘째가 도시락 가방, 세째가 신발주머니를 들고 전봇대 몇개를 지나도록 들고 가는 경기도 했었다..
정말 그땐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몰랐다...
어느새 계절이 바뀌고 겨울방학이 끝나면 한학년이 올라가면서 새교실을 찾아서 여기저기 헤멨던 기억도 난다..
서먹서먹한 사이였던 같은반 녀석들이 어느새 또 새로운 친구들이 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