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심스럽지만, 나는 서베를린이 가짜 도시라고 생각한다.
미국 관광객들은 여름에 이곳에 들이닥쳐서 사회주의 세상을 엿보고, 또 그 여행을 이용해 미국에서 수입한 물건들을 서베를린에서 구매하는데, 가격은 뉴욕보다 싸다.
미국 최고의 호텔처럼 훌륭한 호텔, 즉 텔레비전과 전화가 있고 욕실을 갖춘 현대식 침실을 자랑하는 호텔이 하루 숙박비로 4마르크, 그러니까 1달러만 받는데 어떻게 유지되는지 설명할 방법이 없다.
교통 체증이 일어나는 곳에서 보는 자동차는 모두 최신 모델이다.
백화점 광고판과 선전물, 그리고 식당 메뉴는 영어로 적혀 있다.
이 서독 영토에는 다섯 개의 방송국이 있는데, 독일어는 한 마디도 들리지 않는다.
이런 모든 것을 알아야 하고, 또한 서베를린이 철의 장막 안에 틀어박힌 조그만 섬이며, 반경 500킬로미터 안에서는 무역관계를 맺은 곳이 없고, 중요한 산업 중심 도시도 아니며, 서양 세계와의 교역은 도시 중심에 있는 비행장에 이 분마다 뜨고 내리는 항공기의 리듬으로 이루어진다는 걸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러고 나면 서베를린이 자본주의 선전을 담당하는 거대한 기관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곳의 역동성은 경제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모든 면에서 환상적인 번영이라는 겉모습을 제공하고 동독을 당황하게 만들려는 계획적인 의도를 엿볼 수 있다.
동독은 그 광경을 폐쇄된 세계의 열쇠 구멍으로 바라보며 입을 다물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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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 거리는 노동자 1만 1000명의 거주지이다.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식당과 영화관, 나이트클럽과 극장이 있다.
그런데 이런 시설 하나하나가 무절제한 저속함을 보여 준다.
보라색 우단을 씌운 가구들과 가장자리가 황금색인 초록색 카펫이 있고, 무엇보다 화장실까지도 사방에 거울과 대리석으로 치장돼 있다.
황당할 정도로 싼 가격에 이 모든 것을 즐 길 수 있기에, 이 세상 어떤 지역의 노동자도 스탈린 거리에 사는 노동자보다 잘살지는 못한다.
그러나 그곳에 사는 1만 1000명의 노동자와 달리, 다락방에서 겹겹이 포개져 사는 많은 대중이 있다.
그들은 석상과 대리석, 우단과 거울에 쓴 돈이면 도시를 품격 있게 만들고도 남았을 거라고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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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동독에는 사회주의가 없다고 말한다.
여기에 존재하는 건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아니라 공산주의 그룹의 독재인데, 이 그룹은 국가의 특수한 상황을 염두에 두지 않고 소련의 경험을 글자 그대로 충실히 따르려고 애썼다.
히틀러는 훌륭한 공산주의자들을 제거했다.
살아남은 훌륭한 공산주의자들은 현재 정부의 실수를 제때 보았고, 결국 지배 그룹에게 제거당했다.
마르크스주의자 청년들은 현실이 공산주의 신념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확신하지만, 그걸 수정하는 위험은 감수하지 않는다.
노동자들은 잘살지만, 정치의식이 없다.
절대적으로 정부에게 경의를 표하지만, 정부가 프롤레타리아가 권력을 잡고 있다고 말하는데도 왜 고작 옷 한 벌 살 정도의 월급을 받으려고 죽도록 일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반면 수탈당하는 서독 노동자들은 그들보다 편하게 살고, 좋은 옷을 입으며, 파업권도 갖고 있다. 동독 민중은 미래의 세대들이 더 잘 살도록 짐을 떠맡으려 하지 않는다.
아무도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
봉제업은 경쟁이라는 자극제 없이 허수아비가 입는 끔찍한 옷만 생산한다.
주인이 없으니 해고할 사람도 없기에, 그리고 신발 없는 사회주의가 무엇인지 이해하지도 못하기에, 민중들에게 봉사해야 하는 책임자들은 팔짱을 끼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그런 동안 손님들은 기다리고, 일요일 오후 내내 줄을 서고서 겨우 레모네이드 한 잔을 마실 뿐인데도 개의치 않는다.
관공서부터 식당 조리실까지 관료주의라는 복잡한 문제가 있고, 그걸 풀 길은 인민 체제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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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끝을 잘 봐."
내가 봐야 할 건 바로 거기에 있었다.
발가락 부분이 해진 나일론 스타킹이었다.
나는, 체제의 문제를 찾기 위해 머리카락 한 올을 네 조각으로 나눌 정도로 세밀하게 들여다볼 수는 없다고 투덜댔다.
파리에는 수많은 남자와 여자가 신문을 덮고 보도에서 잠을 잔다.
심지어 겨울에도 그러지만, 혁명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프랑코는 그게 중요한 평가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세세한 걸 평가할 줄 알아야 해.
자기 운명에 신경 쓰는 여자에게 해진 스타킹은 국가적 재앙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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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샤바의 전반적인 인상은 매우 가난해 보인다는 것이었다.
동독과 헝가리보다 더 충격적이었다.
그러나 폴란드 사람들에겐 높이 살 점이 있다.
오랫동안 궁핍하게 생활하고 전쟁으로 괴멸되고 복구를 강요받고 정부 관리들의 실수로 숨통이 끊겼지만, 계속해서 고결하고 숭고하게 살아남으려고 노력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덕지덕지 기워졌지만, 찢어지거나 망가지지는 않았다.
설명하기 불가능할 정도로 가난하지만, 반항 정신으로 가난과 맞서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그건 적어도 동독에서는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낡은 옷과 닳은 신발 속에서 폴란드 사람들은 존경할 수밖에 없는 기품과 품위를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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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에트 연방에서는 기차가 이동용 호텔이라고 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곳 영토는 사람들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광대하기 때문이다.
초프에서 모스크바로 가는 여행은 무한하게 펼쳐진 밀밭과 우크라이나의 가난한 마을들을 지나지만, 48시간이 소요되는 그 노선은 가장 짧은 것 중 하나다.
태평양 해안에 있는 도시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매주 월요일에 특급 열차가 출발하여 일요일 밤에 모스크바에 도착한다.
운행 거리는 적도에서 남극 혹은 북극까지의 거리와 같다.
축치반도가 오전 5시면, 시베리아의 바이칼 호수는 자정이다.
한편 모스크바는 아직 전날 저녁 7시다.
이런 사실은 소비에트 연방이라는 드러누운 모양의 국가가 얼마나 거대한지 대략 짐작하게 해 준다.
그곳에서는 105개의 언어가 사용되고, 국민의 수는 2억 명이다.
무수히 많은 민족이 있는데, 어느 민족은 한 마을에만 살고, 다게스탄의 조그만 지역에는 20개가 넘는 민족이 있으며, 몇몇은 아직도 어디에 살고 있는지조차 모른다.
그리고 영토는 미국의 세 배로, 유럽의 반을 차지하고, 아시아의 3분의 1이며, 총면적은 2240만 제곱킬로미터에 달한다.
요컨대 세계의 6분의 1을 차지하는데, 거기에는 코카콜라 광고판이 단 한 개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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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나라에서 레제 드라마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국립 오페라 단은 볼쇼이 극장에서 「이고르 공」을 일주일 동안 하루에 세 번 공연했다.
그리고 공연마다 600명의 다른 배우들이 무대에 섰다.
그 어떤 소비에트 배우도 하루에 한 번 이상 공연할 수 없다.
어떤 장면에서는 공연자 전체가 참가할 뿐 아니라, 살아 있는 말 여섯 마리도 함께 등장한다.
네 시간 동안 계속되는 이 기념비적 공연은 소비에트 연방 밖에서는 무대에 올릴 수 없다.
무대 세트 운송에만 60량의 화물 열차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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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광고가 소비자들에게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지 설명하려고 했다.
그들은 많은 관심을 두고 내 말을 들었다.
그러더니 한 사람이 물었다.
“사람들이 어떤 제품이 더 나은지 아는데, 왜 다른 회사가 자기들 것이 더 낫다고 말하게 놔두는 겁니까?"
광고주는 광고할 권리가 있다고 설명하면서 나는 이렇게 덧붙였다.
"다른 셔츠를 계속 사는 사람도 있거든요."
"그게 더 낫지 않다는 사실을 아는데도 말인가요?"
"아마도 그럴 겁니다." 나는 인정했다.
그들은 한참 광고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들이 처음 알게 된 광고에 대해 지식을 검토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런데 그들은 갑자기 자리에 앉더니 배꼽을 잡고 웃었다.
나는 아직도 그 이유를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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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스탈린의 더 큰 잘못은 모든 것에 개입하려는 소망이었을 것이다.
심지어 그는 사생활의 가장 은밀하게 숨겨진 틈에도 개입하려고 했다.
나는 소비에트 연방에서 숨 쉬며 느낄 수 있는 촌놈의 젠체하는 분위기가 그런 것에 기인한다고 추측해 본다.
과도한 혁명 속에서 탄생한 자유연애는 과거의 전설이다.
객관적으로 볼 때, 소비에트의 도덕은 기독교 도덕과 매우 흡사해사람도 있었다.
나는 그것이 파란색이었다고 믿는다.
레닌은 첫 번째 무덤에 있었다.
진한 감색의 수수한 양복을 입고 있었다.
죽기 몇 년 전에 마비된 왼손은 옆구리 위에 놓여 있었다.
나는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치 밀랍으로 만든 모습 같았기 때문이다.
삼십 년이 지난 후 시랍화의 첫 번째 기미가 나타나고 있었다.
그러나 손은 아직도 마비된 듯 한 인상을 주었다. 신발은 보이지 않았다.
허리부터 몸은 양복과 같은 색깔이 감색 모직 덮개 아래로 모습을 감추면서 모양이나 크기도 드러내지 않았다.
스탈린의 시체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시체의 상체 부분만 보존하고 있다는 섬뜩한 추측을 피할 수가 없다.
자연광 아래에 있다면 충격적일 정도로 창백한 색깔일 것이다.
무덤을 비추는 붉은색 아래서도 초자연적일 정도로 창백하기 때문이다.
스탈린은 아무 죄책감도 없이 잠들어 있었다.
왼쪽에는 단순한 세 개의 막대 훈장을 달고 있고, 팔은 자연스럽게 뻗은 채로. 훈장에는 조그만 파란색 띠가 있고, 그래서 양복 상의와 혼동된다.
그리고 처음 볼 때는 그게 막대가 아니라 기장이나 배지라는 인상을 받는다.
나는 스탈린의 모습을 제대로 보려고 많은 애를 써야만 했다.
그래서 양복 재킷은 레닌의 양복처럼 진한 감색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완전히 하얗게 센 머리는 묘지의 불빛 때문에 붉게 보인다.
표정은 살아 있고 인간적이다.
냉소적인 쓴웃음은 그저 근육 수축이 아니라 감정을 반영하는 듯 보인다.
그 표정에는 약간의 비웃음이 서려 있었다.
겹살 턱을 제외하면 실제 인물과 일치하지 않았다. 곰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누워 있는 그는 차분한 지성의 소유자이며 착한 친구이고, 어느 정도 유머 감각을 지닌 사람이었다.
육체는 단단하지만 날렵하고, 부드러운 솜털이 나 있으며, 콧수염은 간신히 스탈린 것과 유사했다.
내가 가장 인상적으로 본 건 가녀린 손과 가늘고 투명한 손톱이다. 그건 여자 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