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라벌예술대학 연극영화과를 졸업했다. 1960년 미8군 쇼단체인 '메이크 인 후피 쇼'(Make in Whoopy Show)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1962년 가수로 데뷔했다. 1963년 최희준, 유주용, 박형준과 함께 국내 최초의 음악 동아리인 포클로버스를 결성해 활동했다. '종이배', '눈물을 감추고', '저녁 한때의 목장 풍경' 등을 히트시켰다.
1960년대 중반부터 동아방송의 첫 라디오 교통정보 프로그램인 '달려라 위키리' DJ를 맡았다. 1966년 밤하늘의 브루스, 1968년 폭풍의 사나이 등 영화에 출연해 절정의 인기를 구가했다.
1966년 제1회 MBC 10대 가수상에 뽑혔다. 1976년부터 TBC 쇼쇼쇼 MC를 맡았다. 1980년 11월 9일부터 5년간 KBS 전국노래자랑 초대 MC를 지냈다.
1992년 미국으로 건너가 교포방송 KATV에서 '굿 이브닝 코리안'을 진행했다. 2015년 2월 12일 미국 LA에서 지병으로 인해 향년 80세의 나이로 별세하였다.
위키리는 당시 인기가수였던 박형준, 유주용, 최희준과 함께 ‘포 클로버스’ 팀을 결성해 활동을 시작했는데 이 '포 클로버스(Four Clovers)'는 일종의 ‘따로 또 같이’ 그룹이었다. 말하자면 각자 솔로로 활동하면서 동시에 때에 따라 함께 무대에 올랐던 일종의 프로젝트 그룹.
위키리의 제안으로 조직된 이 프로젝트 그룹 ‘포 클로버스'는 개인 리사이틀, 또는 그룹 조인트 리사이틀 등으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모두 ‘미8군무대 출신’이자 ‘학사 출신’이라는 공통점을 지닌 이들 멤버들은 각종 대학축제 등에도 초대되는 등 절정의 인기를 구가했다.
신세계레코드사로부터 음반 제작 의뢰가 들어왔다. 이때 발표하는 첫 음반이 ‘포 클로버스 & 봉봉/저녁 한때 목장 풍경’이다.
포 클로버스와 봉봉 사중창단을 한 음반에 묶어서 앨범을 제작키로 하고 각자에게 맞는 노래를 작곡하기 시작했다.
작사는 전우가 맡았다. 위키리에게는 ‘저녁 한때 목장 풍경’과 ‘종이배’를, 최희준에게는 ‘그리운 별아’와 ‘향수’, 박형준에게는 ‘나 홀로 있어도’, 유주용에게는 ‘그대는 오시지 않네’, 그리고 봉봉 사충창단에게는 ‘까만 눈동자 그 아가씨’를 각각 취입시켰다.
말하자면 이 음반이 작곡가 김기웅의 첫 데뷔 작품집인 동시에 작사가 전우(본명 전승우), 가수 위키리(본명 이한필), 봉봉 남성사중창단이 한꺼번에 대중들 앞에 등장한 이들의 첫 데뷔음반이었다. 이 무렵 TBC 동양방송이 개국하면서 포클로버스의 노래가 자주 방송을 타기 시작했다. 그 중 ‘저녁 한때 목장 풍경’이 인기 차트 1위에 올랐다.
속칭 'KS마크(경기고-서울대 출신)'라 불리던 인텔리 작사가 전우 선생은 작곡가 김기웅씨와는 1936년생 동갑내기로 함께 콤비를 이뤄 ‘비둘기집’, ‘저 꽃 속에 찬란한 빛이’ 등 목가적이고 밝은 소리를 지향하는 새로운 음악을 선보였다. 앞서 거론했듯 이 둘의 첫 데뷔곡이 바로 ‘저녁 한때 목장 풍경’이다.
끝없는 벌판 멀리 지평선에
노을이 물들어오면
외로운 저 목동의 가슴속엔
아련한 그리움 솟네
뭉게구름 저편 산 너머론
기러기 떼 날으고
양떼를 몰고 오는 언덕길에
초생달 빛을 뿌리면
구슬픈 피리소리 노래되어
쓸쓸히 메아리치네
뭉게구름 저편 산 너머론
기러기 떼 날으고
양떼를 몰고 오는 언덕길에
초생달 빛을 뿌리면
구슬픈 피리소리 노래되어
쓸쓸히 메아리치네
첫댓글 춘수님...!
어릴적 형님들이 즐겨부르던 노래네요
고맙게 감상 잘햇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