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nytimes.com/athletic/5479982/2024/05/13/jurgen-klopp-liverpool-origins/
by 올리버 케이
위르겐 클롭 감독은 9년 가까이 지휘봉을 잡았고 7개의 메이저 트로피를 거머쥔 뒤 리버풀을 떠난다.
그는 구단 역사와 현시대의 잉글랜드 축구에서 가장 혁신적인 감독 중 한 명이었다.
그의 새 출발을 기념하기 위해, 디 애슬레틱은 축구계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 중 한 명의 완전한 일대기를 따라 작성된 시리즈 기사인 'The Real Jurgen Klopp'을 독자들에게 선보일 예정이다.
1부에서, 올리버 케이는 클롭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을 돌아보기 위해 독일로 여행을 떠났고, 그를 가장 잘 아는 사람들로부터 지역과 지역 사회가 그를 어떻게 형성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글라텐(Glatten)으로 가는 길은 검은 숲, 구불구불한 언덕, 향기로운 초원, 깊은 호수, 쏟아지는 폭포, 나무들이 울창하게 우거진 매혹적인 세계로 당신을 안내한다.
느긋한 마을과 초콜릿 상자같은 집들이 들어선 무성한 초록빛 계곡도 잠시, 그 다음엔 눈 덮인 산봉우리들 사이에 도착한다. 늦봄임에도 이곳은 동화 속의 겨울 나라 같은 느낌이 든다.
결국, 하얀 눈이 파란 하늘과 초록빛으로 다시 한 번 바뀐 뒤, 길을 따라 내려가면 교회, 학교, 정육점, 베이커리가 각각의 모서리를 만들고 그 중심으로 모여 만들어진 마을인 글라텐이 나온다.
여기 독일 남서부의 한적한 구석 마을에서 클롭은 본인이 회상하길 "완전히 목가적이었던" 어린 시절을 보냈다. 긴 여름날들 동안 그는 숲을 탐험하고, 강에서 수영하고, 축구와 테니스를 했다. 겨울에는 아버지가 그를 데리고 주변의 산에서 스키를 타곤 했다.
지난 8년 반 동안 가장 행복한 집이 되어준 리버풀을 맡았던 그의 시간에도 해가 저물자, 디 애슬레틱은 위르겐 노베르트 클롭의 모든 것이 시작된 곳으로 찾아왔다.
그는 19살에 대학을 졸업한 후, "2주 동안 휴가를 내서 고향에 돌아갔고, 고향을 다시 떠났고,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습니다"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하지만 글라텐은 그를 떠난 적이 없다. 이곳은 지금 모습의 그를 만든 것들 중 일부이다. 그의 세대에서 가장 위대한 축구 감독 중 한 명은 자칭 "검은 숲에서 온 평범한 남자(normal guy)"인 것이다.
수요일 저녁, SV 글라텐의 경기가 있었다. SG 할반겐과의 지역 더비지만, 독일 축구 9부 리그인 크라이슬러 A의 흑림 지대에서는 매 경기가 지역 더비이다.
맥주가 흐르고 소시지가 요리되고 공기 중에는 웃음꽃이 피어난다. 현지인 중에 그와 함께 자란 사람이 있는지, 그들이 여전히 그와 연락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은 만장일치의 답변을 받았다. "잉고(Ingo)와 얘기하세요."
그 잉고 라스는 말한다. "저는 우리가 태어났을 때부터 위르겐을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유치원에 함께 다녔고, 여기 글라텐에서 학교를 다녔고, 돈슈테튼과 프로이덴슈타트에서도 같이 학교를 다녔죠. 매일 방과후에 우리는 여기로 축구를 하러 왔습니다. 우리는 매우 좋은 친구였고 그는 또한 내 동생 하트무트와도 매우 가까웠어요."
클롭은 어떤 사람이었는지 묻자 그는 덧붙였다. "그는 항상 친절한 사람이었습니다. 키가 컸기 때문에 항상 가운데에 있었고, 금발이었죠. 항상 농담하고, 항상 웃는 얼굴이었고. 현재에도 '하하하하!'하고 크게 웃고 있는 모습에서 이 사실을 아실 겁니다. 그는 언제나 좋은 조크를 던지는 사람이죠."
잠깐 멈춘 후 그는 말했다. "이것은 흑림 지대에서 온 사람들의 전형적인 특징은 아닙니다. 아마 그의 아버지로부터 더 많은 것을 받은 것 같아요."
잉고의 아버지 울리히 라스도 이에 동의했다. "위르겐의 어머니 엘리자베스는 글라텐 출신이고 그녀는 매우 조용했습니다. 그의 아버지 노베르트는 마인츠 근처 라인란트팔츠 지역의 더 북쪽 출신이었고요. 노베르트는 매우 카리스마가 넘치고 웅변이 뛰어났습니다. 위르겐은 노베르트와 비슷하지만, 그의 어머니의 어떤 것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노베르트는 출장 판매원이었다. 그는 말로 휘어잡는 재능이 있었다. 그는 또한 클롭의 누나인 이졸데 라이히와 그의 스포츠 열정을 함께 나눌 아들을 간절히 원했다.
클롭은 아버지가 어떻게 그를 산 정상으로 데리고 가서 스키를 타고 내려갔는지를 묘사한 바 있다. 아버지가 그를 거기에 두고 내려오면 아버지를 따라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울리히와 잉고는 노베르트가 어린 위르겐을 테니스 코트로 데려갔던 것도 설명했다. "그리고 위르겐은 결코 이길 수 없었죠."라고 울리히는 웃으며 말했다. 노베르트는 터치라인에서 그의 아들이 SV 글라텐의 주니어 팀에서 뛰는 것을 보면서, 아들이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는 매우 엄격했어요."라고 울리히는 덧붙였다.
클롭은 2018년 빅 이슈 노스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아버지는 인내심이 아주 많은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에, 제가 그가 원하는 만큼 잘하지 못했을 때는 상당히 불편한 감정이었죠. 그는 타고난 코치였습니다. 훈련 교관보다도 더 힘든 수준으로요."
클롭은 자신의 아버지를 사랑하고 우상으로 삼았다.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방식, 테니스 코트에서 스테판 에드베리의 백핸드를 재현하던 모습들을 말이다. 그러나 그는 10대 시절 캐주얼한 옷을 입고 머리를 길게 기르고 면도를 거부하는 등 특정한 방식으로 그에게 반항하기도 했다.
그는 또한 아버지처럼 강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었다. 잉고가 이를 설명했다. "타고난 리더? 음, 그는 항상 캐릭터가 있었고 모든 사람들이 그에 대해 알고 있었죠. 그들은 그를 만나면, '아, 클롭이니까'라고 말하곤 했어요. 하지만 그는 특별히 리더는 아니었습니다. 어린 나이에는 아니었죠."
"리더십은 그가 (TuS) 에르겐징겐의 유소년 팀에 있던 17세, 18세 즈음에 나왔습니다. 그곳에서 그의 코치였던 월터 바우어는 항상 북부 흑림 지대에서 최고의 선수들을 스카우트해왔던, 이 지역에선 유명한 유소년 코치였습니다. 그는 위르겐을 주장으로 만들었죠. 그때부터 그는 리더가 되었습니다."
그가 인정했듯이, 클롭은 저니맨 축구선수였다. 기억에 남을만한 그의 말들 중 하나와 같이 그는 "1부 리거의 마인드"를 가졌지만 "4부 리거의 발"을 가지고 있었다. 마인츠와 함께 독일 축구 2부 리그에서 오랜 선수 생활을 즐기게 된 것은 물질적인 것을 넘어선 마인드의 승리였다.
그는 33세였고, 2001년 2월에 마인츠가 그를 감독으로 임명했을 때에도 여전히 선수로 등록되어 있었다. 강등과의 힘겨운 싸움에 직면해 있었던 상황에서, 그는 하루아침에 그들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그 "1부 리거의 마인드"는 매니지먼트에 훨씬 더 적합해 보였다.
클롭의 오랜 에이전트인 마크 코시케는 그를 두고 "최고의 감독으로서 축구를 이해할 필요가 있기에 그것을 이해한" 사람이지만, "진정한 능력은 사람들을 다루는 것에 있는" 사람으로 묘사했다.
코시케는 2019년에 독일 웹사이트 스폭스에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그것을 위해 신이 주신 재능이 있습니다. 그의 웅변, 말하는 방식, 수사학. 적절한 타이밍에 올바른 펀치 라인을 던지는 법은 배울 수 있는게 아닙니다."
마인츠에서 클롭과 함께 일했고, 그 후 2006년 월드컵 기간 동안 독일 텔레비전 방송국 ZDF에서 일한 얀 도흘링은 그를 비슷한 용어로 묘사한다.
도흘링의 설명이다. "만약 여러분이 여러분의 아이디어를 사람들에게 설명하고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싶다면, 그들에게 좋은 감정을 주는 것이 중요하겠죠. 그는 매우 재미있고 매우 영리합니다. 유머를 사용해서 사람들을 기분 좋게 만들고 자신의 일을 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방식을 사용하죠."
"독일어로 이런 단어가 있습니다. 'Menschenfanger'. 이건 매우 긍정적인 의미로써 '사람 잡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위르겐이 그렇죠. 그가 자신의 성격을 사용하는 방식, 소통하는 방식, 유머를 사용하여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사람들이 그들 자신에 대해 좋게 느끼도록 하는 방식. 저는 그것을 사회적 지능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도르트문트에서 오래 재직 중인 최고 경영자 한스-요아힘 바츠케는 클롭을 묘사하기 위해 같은 단어를 사용했다. 마인츠의 임원 크리스티안 하이델도 라파엘 호니그스테인이 쓴 책 'Bring the Noise'에서 그에 대해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보루시아 묀헨라트바흐와 미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골키퍼 코치 파비안 오테도 최근 스카이 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번리 시절 잠깐 그를 만났을 때 클롭 감독에게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며 같은 말을 했다.
클롭은 선수로서 자신의 제한된 재능에서 최대치를 뽑아냈다고 느낀다. 감독으로서 그의 일은 훨씬 더 재능 있는 선수들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마음과 정신을 얻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사람들을 여정으로 데려간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는 마인츠(역사상 처음으로 1부 리그 승격을 이끈), 도르트문트(2번의 분데스리가 우승과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 진출한), 리버풀(14년만의 챔피언스 리그 우승과 30년만의 잉글랜드 리그 우승을 만든)에서 그랬던 것이다.
리버풀에서 6년을 보낸 알렉스 옥슬레이드-체임벌린은 그를 "모든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모든 노력과 믿음을 얻을 수 있는 방식이 놀랍다"라며 묘사한다. 그는 또한 강렬함이 부족할 때 나오는 "공포스러움"을 언급했다. 훈련 중이든, 중요한 경기에서의 안필드 잔디 위에서든, 그것은 클롭을 분노하게 만든다. 그리고 아무도 그걸 원하지 않는다.
현대 경기에서 강철의 주먹과 벨벳의 장갑은 보기 드문 조합이다. 선수들은 특정 경기에서의 노력이 그들에게 따뜻한 포옹을 가져다 주는지 아니면 시들어가는 눈총을 가져다 주는지를 알아내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들은 그를 기쁘게 하고, 그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그들 스스로 필사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러한 부분은 다소간 그의 아버지와의 그의 관계처럼 들리기도 한다. 클롭은 여러 면에서 그의 아버지보다 더 부드럽고 따뜻해 보이지만, 다른 방식으로 발현되는 같은 특징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그는 그의 아버지의 방법론을 두고 "한 일에 대해 칭찬보다 비판을 하는 것에 훨씬 더 중점을 두는 방식이었죠. 하지만 그건 그 세대 방식이었으니까요."라고 말한 바 있다.
클롭은 감독과 코치로서 도약하며 그의 삶이 소명을 이루는 것을 보지 못한 채, 그의 아버지가 2000년에 돌아가셨다는 것이 큰 아쉬움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제가 감독일을 시작한 후에 제 삶이 어떻게 되었는지 그가 봤다면, 저는 아버지께서 꽤 행복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졸데 라이히는 글라텐의 이웃 마을 중 한 곳에서 미용사로 일하고 있다. 디 애슬레틱이 예고 없이 그녀의 집 현관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았을 때 기자회견에서 보여지는 매우 클롭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그녀의 이목구비는 다시 부드러워졌고 그녀는 그 생각에 따뜻함으로 가득차 보였다.
그녀는 그녀의 남동생이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특성에 대해 울리히와 잉고가 어떤 것을 말했는지 듣고 싶어했다. 그녀는 웃으며 특히 아버지 쪽의 얘기를 더 듣고싶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그것은 독일어로 잘 섞인 것을 의미하는 'eine gute Mischung'일 것이다. 그녀는 다음날 오후에 다시 찾아 온다면, 남편인 커트와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기에 더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24시간 후, 커트는 문을 열며 사과를 전했다. 그들은 위르겐과 이야기를 나눴고 그는 그들이 그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을 선호한다고 했다. 그들은 미안하다고 했고 위르겐도 그렇다고 전했다. 개인적인 사유는 없지만, 커트가 말하길 그의 처남은 사생활을 지키는 사람이라고 한다.
여러모로 클롭은 정반대로 보인다. 싱긋거리고, 웃고, 주먹을 날리는 외향적인 사람이며, 카리스마가 넘치고, 자신감이 넘치고, 평범함을 상회하고, 감정에 솔직하고, 어릴 적 친구인 잉고의 표현대로 "항상 가운데에"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스포트라이트의 눈부심을 반드시 그가 즐기는 것은 아니다. 그는 축구 경기와 그것이 사람들에게 의미하는 바를 좋아하지만, 그는 경기장 밖에 있는 일상극을 놓치지는 않을 것이다. "축구 밖의 다채로운 세상… 저는 그것의 일부가 아니고, 저는 거기에 없죠. 전 이런 상황이 즐겁지는 않습니다. 제가 물러나는 날, 저는 축구를 밖의 세계 중 어떤 것도 절대 놓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그는 2016년 데일리 메일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세계 스포츠에서 가장 주목받는 자리 중 하나에서 일하며 자신을 전면에 내세우고 일터의 중심을 지키는 사람 치고, 그는 아마도 놀랍게도 사적인 사람일 것이다.
그가 처음 리버풀에 부임했을 때, 폼비에 있는 그의 집 근처 프레쉬필드 펍의 퀴즈 이벤트의 밤에 그가 즉흥적으로 나타났다는 이야기가 꽤나 들려왔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보고된 목격담은 더 적었다.
그와 그의 아내 울라는 해안 사구와 인접한 소나무 숲을 통해 폼비 해변으로 가서 반려견과 함께 긴 산책을 즐긴다. 그러나 자칭 "보통 사람(Nomal One)"이라고 해도 현대 시대에 그가 평범한 삶을 살고 정상적인 일을 하는 것은 더 어려워졌다.
그 카리스마와 그가 가진 자성. 그 능력들은 방을 밝히고, 사람들에게 활력을 불어넣는다. 리버풀에 합류할 때 알려진 그의 유명한 어록인 "의심하는 자들을 믿는 자들로"를 실현하면서 말이다. 이것들은 엘리트 스포츠에서 일하는 모든 코치에게 필수적인 특성으로 간주될 수도 있지만, 이러한 능력들이 모두 반드시 표준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클롭은 완전히 다른 산업에 있더라도 뛰어날 것임이 상상될 수 있는 희귀종이다.
"네, 물론이죠." 잉고 라스가 말한다. "대기업에서, 세계적으로 큰 기업에서도 그는 관리자가 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학교에서 성적이 아주 좋진 못했지만, 매우 지적이고, 사람들과 일하는 정말 좋은 방법을 가지고 있고, 적절한 단어로 말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가 다른 일을 하내는 것도 상상할 수 있을거에요. 글쎄요, 정치는 아닐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그의 말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쩌면 평행 우주 속에서 클롭이 중도 좌파, 친 유럽, 친 이민 정책으로 선거운동을 하는 독일의 많은 군소 정당들 중 하나로 소속되어 카리스마 있고, TV 방송에서 활약하는 지도자가 되는 것을 상상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포퓰리즘이 아니라, 정말로 인기 있는 정치인 말이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밝히는 것을 주저한 적이 없다. 그는 2016년 영국이 유럽연합 탈퇴를 투표했을 때 "전혀 말이 안 된다"며 당혹감을 드러냈다. 그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와 영국의 보리스 존슨이 선거에서 성공하자 이를 "세계에 정말 나쁜 징조"라고 불렀다. 그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백신 접종 반대 운동가들을 비난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물론 왼쪽에 있다"고 표현하면서 "내 인생에서 결코 하지 않을 일이 있다면 그것은 우파를 위한 투표"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클롭은 2019년 FIFA 베스트 어워드에서 올해의 감독으로 선정되었을 때, 수상 연설을 통해 커먼 골(Common Goal) 자선 단체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다. 그리고 수입의 일부를 80개 이상의 국가에서 시행되는 100개 이상의 자선 프로젝트에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커먼 골의 창립 멤버 중 한 명인 벤 밀러가 말한다. "팀 스포츠의 개인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우리 모두는 이 시상식에 참석했습니다.그리고 그곳에서 우리는 최고의 감독으로 뽑힌 한 남자가 이 상황을 이용하여 축구 경기장에서 무언가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뿐만 아니라, 인류를 돕기 위해 팀으로서 협력하는 것에 관한 완전히 다른 메시지를 보내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클롭이 여전히 커먼 골과 협력하고 있는지에 관해 밀러는 "매우 그렇습니다"고 말한다. "그는 전 세계의 풋볼 포 굿(Football for Good) 조직을 계속 지원하고 있으며, 불우한 지역 사회에서 젊은이들과 협력하고 평등을 지향하고, 교육 및 고용을 포용하며, 기후에 관한 행동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밀러는 그 남자를 경외하며 말한다. "그는 친구입니다."라며 그는 웃었다.
클롭이 서포터들 및 대중들과 교류한 이야기는 셀 수 없이 많다. 작년에, 크롬멜린 증후군이라고 불리는 희귀 질환을 가지고 태어난 아일랜드 모나한 카운티의 12살 리버풀 팬인 다이어 고먼의 비디오가 입소문을 탔다. 경기를 위해 안필드를 방문하고 싶다는 꿈을 이룬 그가 경기 전 'You'll Never Walk Alone'을 부르며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이 포착된 것이다. 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 슬로건이 주는 메세지의 진실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후 다이어는 클롭과 그의 선수들을 만나기 위해 리버풀의 훈련장으로 초대되었다. 클롭과 만나는 장면은 강렬하고 감동적이었다. 첫 순간부터("하하하하! 다이어! 드디어! 만나서 반가워요, 친구") 리버풀의 감독은 미소를 멈추지 않고 소년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끼게 해주었다.
클롭이 감독으로서 보여주는 자질의 범위, 카리스마, 커뮤니케이션 기술, 리더십, 감성적인 지능, 그리고 물론 축구에 대한 감각까지를 고려하면 할수록, 클롭이 전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는 어떻게든 평범함을 간직하고 있다.
그의 에이전트 코시케는 이것이 클롭이 어필하는 근본적인 부분이라고 말한다. 그는 스폭스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위르겐은 완전히 평범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분노에 찬 작금의 미디어 세계에서 매우 평범하지 않은 것입니다"
클롭은 진정성이 있다. 우리는 그가 승리를 축하하며 억제할 수 없는 기쁨을 보여주는 부분에서 그것을 볼 수 있다. 우리는 또한 지고 있거나 패배한 후에 그를 소모시킬 수도 있는 자유롭지 못한 고통과 분노에서 그것을 보기도 한다. 더 나은 경우이거나, 물론 더 나쁜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클롭에게 필터는 없다.
그가 수년간 경기 관계자들에게 말을 걸고 소리를 지르는 모습을 봐왔다면, 심판진들이 그를 그리워할 것 같지는 않다. 영국뿐만 아니라 독일에서도 그의 터치라인 행동 중 일부는 극도로 교훈적인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그의 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기자라면 가장 무해한 질문을 했음에도 그가 격분하는 상황을 누구나 겪어봤을 것이다. 가끔 그의 반응은 불쾌한 것에 가까웠다. 때때로 그들은 그래서 넘어가곤 했다.
그는 성공한 감독 중에서 고압적이고 적대적인 성향을 가진 유일한 감독인 것은 아니다. 때로는 짧은 퓨즈와 독설을 뱉는 혀가 최상위 레벨의 경기를 관리하기 위한 전제 조건인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물론 예를 들어, 카를로 안첼로티처럼 차분하고 절제된 사람들은 예외다.
클롭 감독은 2017년 첼시와의 경기에서 대기심 닐 스와브릭에게 소리를 질러 비난을 받은 후 이렇게 말했다. "감독도 여전히 인간이며 우리 모두는 부분적으로 미약한 구석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축구가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그건 통하지 않죠."
전술과 팀 선발, 그리고 전체적인 관리에 관한 주제와 달리, 이런 것들이 자주 끌어 올려지는 법이다. 그러나 그는 심판들과 언론 전문가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몇년 전 클롭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저는 누가 저를 판단하는지에 대해 관심이 없습니다. 하느님은 어느 날 나를 심판하시며, 그것이 내가 관심 있는 유일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저에 대해 말하는 것처럼 저는 관심이 적을 수 없습니다."
종교는 그가 가끔 언급하는 주제다. 글라텐에서 자란 그는 아버지의 가톨릭보다 어머니와 할머니의 개신교 신앙을 따르라는 권유를 받았지만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2018년 데일리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혼자 돌아가는 길을 찾았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2000년 아버지의 죽음에 부분적으로 반응했다. 그것은 그가 "나의 모든 것을 의미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던 그의 어머니가 2021년 세상을 떠난 뒤의 버팀목이었다.
"기독교인이 되는 것은 저에게 몇 가지 규칙을 줍니다. 개신교 신자가 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몇 개의 문을 열어 두는 거죠. 분명히 그렇게 교리적인 것은 아닙니다."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는 자신의 신념에 대해 복음적이지는 않지만, 그는 교인들을 그가 그랬던 것 처럼 자신의 길을 찾은 사람들로 본다.
클롭은 축구의 로망이다. 일부 감독들과는 달리, 그는 자신이 몇 개의 트로피를 땄는지(도르트문트에서 5개, 커뮤니티 실드를 포함하여 리버풀에서 8개) 말할 수 없었다. 그는 그 동안 아깝게 놓친 많은 것들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하겠지만, 무엇보다도, 그는 그와 그의 선수들이 서로를 위해 그리고 그들의 서포터들을 위해 만들어낸 기억들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그는 2019년 플레이어스 트리뷴 기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사람들이 항상 이해하지 못하는 축구에 대한 한 가지 사실입니다. 결과는 잊어버립니다. 다 섞이게 됩니다. 하지만 그 소년들과 내 인생의 그 시간들과 그 작은 이야기들은... 나는 그들을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가 선수로 11년간, 마인츠에서 감독으로 7년간, 도르트문트에서 7년간, 리버풀에서 8년 반 동안 프로 축구에서 쌓은 모든 인연은 영원한 사랑이었다. 깊거나 열정적이거나 강렬한 것이 거의 없고, 관계가 일반적으로 덧없는 현대 축구에서는 매우 드문 일이다.
그가 마인츠와 도르트문트에서 떠났던 것은 매우 감정적인 사건이었고, 많은 이들의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이번 시즌이 그들이 원하는 곳에서 끝나지 않더라도, 잊지 못할 모험과 경험을 선사한 아름답고 신나는 여행의 끝이라는 것에 대한 진정한 슬픔으로 가득 찰 장대한 행사가 열릴 일요일 안필드에서도 이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의 말대로 결과와 이야기뿐만이 아니라 감정과 기억도 남는 것이다.
리버풀은 네덜란드 클럽 페예노르트로부터 그의 영입이 확정되면, 아르네 슬롯 아래에서 더 많은 것들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클롭은 휴식이 필요하며 앞으로 12개월 동안은 일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2015년에 받은 리버풀의 제안은 거부하기에 너무 좋았기에 도르트문트 이후의 안식기를 짧게 끝냈고, 아내와 많은 것을 약속했다.
그렇다면 그는 리버풀을 떠나 무엇을 할 것일까? "아마도 그는 잠시 멈출 것입니다."라고 잉고는 말한다. 그가 덧붙였다. "그는 1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편안하게 지낼 것입니다. 저는 그의 아내 울라가 춤과 요리를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고 신문에서 읽었습니다. 물론 위르겐이 이런 일들을 해야 한다면 아마 차라리 그냥 일하는 것을 선호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긴 했지만요."
장기적인 휴식을 가져야 될 때라는 신호다. 그가 도르트문트를 떠난 뒤 가진 4개월 반을 제외하고는, 그가 10대 때 마인츠에서 뛰기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장기적인 휴식기가 될 것임이 자명하다. 그와 가까운 사람들은 그가 일련의 휴가를 가질 것을 기대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국적으로 보낼 수도 있고, 어떤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그는 테니스와 빠델을 많이 칠 것이고, 우리가 결과에 감정적인 투자를 할때 오는 어떤 불안감 없이 축구도 많이 볼 것이라고 예상한다.
축구 감독의 인생에는 이상한 점이 있다. 리버풀은 지난 8년 반 동안 그의 집이었다. 그 전에는 도르트문트가 7년 동안 집이었다. 3개 구단에서 오랜 기간 몸담았던 사람도 뿌리를 내리고 살기는 힘들 수 있다.
독일의 언론 보도에 따르면 그와 울라는 마인츠에서 멀지 않은 스파 타운 비스바덴 근처에 집을 짓고 있다고 한다. 그들은 몇 주 동안에 걸쳐 한 차례 스페인 마요르카 섬에서 휴가를 보낼 것이고, 그곳에서 또 다른 집을 지을 예정이다.
글라텐은 그의 10대 이후로 그의 집이었던 적이 없다. 그는 지난 10년, 그 이상 동안 몇 번 밖에 고향에 돌아오지 않았다.
그가 2011년 도르트문트를 분데스리가 우승으로 이끈 후, 대중의 요구에 의해 어떤 일이 일어났다. 무대 위 수많은 인파 앞에서 질의응답 시간이 있었던 것이다. 그는 낯익은 얼굴을 골라 이름을 언급하며 그들에게 특별함을 느끼게 했다. 'Menschenfanger'답게.
하지만 클롭에게 최고의 순간들은 카메라에서 멀리 떨어져서 나왔다. 그의 어머니와 누나 그리고 "목가적인" 어린 시절로부터 영구적인 연결고리를 형성한 잉고와 하트무트 라스같은 친구들, 그리고 그들의 아버지이자 첫 번째 코치인 울리히와 함께 한 시간들이 바로 그것이다.
울리히 라스는 그것을 기억할 때 자랑스러워 보인인다. 그는 자신의 75번째 생일에 클롭과 영상 통화를 했던 놀라움을 떠올리며 거의 눈물을 흘렸다. 그가 그 오랜 세월 동안 지도했던 소년은 그를 결코 잊지 않았다.
그리고 그 또한 위르겐 노베르트 클롭을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마음과 정신을 얻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인생에서 최고의 시간을 선사하는 "검은 숲에서 온 평범한 남자"인 그를 말이다.
클롭의 안필드 타임라인
2015년 10월 8일
클롭 감독은 3년 계약으로 선임되어 리버풀 역사상 가장 높은 연봉을 받는 감독이 되었다.
2016년 2월 28일
리버풀, 리그컵 결승서 맨체스터 시티에 승부차기 3-1로 패배.
2016년 5월 18일
유로파 리그에서 세비야를 만나 또 다시 결승전 패배를 기록.
2018년 5월 26일
2007년 이후 리버풀이 첫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올랐지만 레알 마드리드에게 3-1로 패했다.
2019년 5월 12일
리버풀이 승점 97점으로 리그를 마감하지만 맨체스터 시티에 의해 우승 놓치다.
2019년 6월 1일
클롭이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토트넘을 2-0으로 꺾고 구단에 첫 트로피를 안겼다.
2019년 12월 21일
리버풀이 FIFA 클럽 월드컵에서 우승하며, 4개월 전에 획득한 UEFA 슈퍼컵에 이어 트로피를 추가했다.
2020년 3월 13일
코로나19 발생으로 잉글랜드의 시즌이 중단되다. 경기는 3개월 후에 비공개로 재개되었다.
2020년 6월 25일
리버풀이 1990년 이후 처음으로 리그 챔피언에 올랐다.
2022년 2월 27일
리버풀, 첼시를 꺾고 리그컵 우승.
2022년 4월 29일
클롭은 2026년까지 계약을 연장하는 새로운 계약을 맺었다고 발표했다.
2022년 5월 14일
클롭, 첼시를 승부차기로 물리치며 첫 FA컵 우승.
2022년 5월 28일
레알 마드리드가 파리에서 열린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1-0으로 승리하며 그들이 유럽에서 리버풀의 약점임을 다시 증명하다.
2024년1월26일
클롭 감독은 "에너지가 부족하다"며 시즌이 끝나면 리버풀을 떠날 것임을 발표했다.
2024년 2월 25일
리버풀이 첼시에 1-0으로 승리한 뒤 리그컵을 들어올렸고, 클롭 감독 체제에서 7번째 메이저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디 애슬레틱 - The Real Jurgen Klopp 시리즈
The Real Jurgen Klopp, part. 2 - '화약통'
The Real Jurgen Klopp, part. 3 - '원-맨 브랜드'
The Real Jurgen Klopp, part. 4 - '리버풀의 챔피언'
The Real Jurgen Klopp, part. 5 - '리버풀을 다시 믿게 만든 감독'
첫댓글 초중반부는 그냥 클롭 자서전 읽는 느낌이 강하네요. ㅋㅋ
번역 감사합니다!
많이 그리울
번역 감사합니다. 잘 읽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