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에게 맞는 재미
동창회 밴드를 통해 고교동기들의 사진과 활동들이 소개되고 있다. 친구들끼리 모여 당구도 치고 바둑을 두기도 하는 것 같다. 그게 끝나면 음식점에 모여 막걸리를 마시면서 옛시절 얘기를 하면서 노년을 보내는 즐거운 모습이다.
혼자 서민 아파트에서 무료하게 사는 노인을 봤다. 만날 친구도 없고 찾아갈 곳도 없다. 방에서 혼자 책을 들고 바둑판 위에 혼자 알을 놓아보지만 밋밋한 표정이다. 노인은 젊은날 사두었던 문학책을 들춰봐도 그 내용들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 것 같다.
젊어서부터의 노는 것에 대한 선행학습이 되어있지 않은 것 같다. 텔레비젼을 옆에 켜 놓아도 그 내용에 공감이 가지 않는다. 권태를 느끼며 하루하루 정물같이 살다가 병이 들어 마비가 된 채 죽어간다. 내가 사십대 말 한 드라마에서 보고 충격을 받은 장면이다. 그걸 보면서 아직 젊었을 때 늙어서 재미있게 살 방법을 미리 강구해 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평생을 시험이나 직업적 전문분야에 대해서는 준비를 해왔지만 노년의 무료함에 대한 대비는 소홀했던 것 같다. 아니 소홀했다기 보다는 잡기에 무능했다고 하는 편이 정확할 것 같다. 밤을 새워 고스톱을 배워도 실력이 조금도 늘지를 않았다.
남들이 내 패를 다 읽고 돈을 따갔다. 돈을 잃어도 무덤덤하다. 포커를 해 봤다. 내 표정만 봐도 뭘 가졌는지 다 알겠다고들 했다. 어쩌다 돈을 따도 기분이 그저그렇고 잃어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재미가 없었다. 골프도 마찬가지였다. 시도는 해 봤다. 다른 사람들의 공은 파란 하늘에 포물선을 그리면서 멋지게 날아가는데 내 공은 픽 앞으로 떨어져 제 맘대로 굴러갔다. 부끄러웠다.
남들이 바둑을 두는 모습을 보면 신선같아 보였다. 환갑이 넘어 뒤늦게 폼이라도 잡아보려고 시도했다. 두어줄 사람이 없어 콤퓨터 바둑으로 시작했다. 같은 십팔급인 상대방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이 병신아 너 돌대가리야? 호구에 돌을 갖다 놓는 게 어디 있어?’ 한 참 있다가 다시 글이 왔다. ‘엄마가 학원가래. 나중에 또 하자.’
손자 뻘 아이한테 욕만 쳐먹고 늙어서는 바둑이 안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잡기에 능해야 남들과 어울려 노년이 즐거울텐데 나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아무래도 나는 혼자 놀아야 할 것 같았다. 생각해 보니까 어려서부터 혼자 놀았다. 동네 만화방에 가서 종일 혼자 죽치고 있었다. 집에서도 구석방에 혼자 앉아 수수깡으로 비행기를 만들면서 시간가는 줄을 모르곤 했다. 중학교부터 동시 상영하는 삼류 영화관들을 혼자 순례하면서 영화들을 봤다. 나는 늙어서도 혼자 놀아야 할 운명 같았다.
나이 오십무렵 우연히 컴퓨터 놀이를 시작했다. 블로그를 만들어 글을 올려 보았다. 내게 글은 초등학교 시절 수수깡으로 모형비행기를 만드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라고 할까. 문장들을 정교하게 깍고 다듬어 글을 만들면 작은 성취감이 들었다. 어떤 내용을 글에 담을까가 블로그 놀이의 관심사다.
성경 속에서 사도 바울은 자신의 약점 외에는 어떤 것도 자랑하지 말라고 했다. 거기에 깊은 뜻이 있을 것 같았다. 자기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나의 지나간 삶에서 부끄럽고 못났던 것들이나 받은 상처들을 나는 얼마나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을까 궁금했다.
세상은 성공담보다는 진창에서 허우적대는 비참한 모습을 더 재미 있어 하는 것 같기도 하다. 더러 그런 글을 올리기도 했다. 내 작은 글을 진지하게 읽어주고 마음을 받아주는 독자들이 몇 명 생겼다. 그런 분들 앞에서 내 상처를 드러내면 마치 맑은 강물에 칼에 베인 손가락을 넣어 씻은 듯 치유되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런 블로그놀이가 벌써 이십년이 된 것 같다. 돈이 들지 않고 늙어서 혼자 놀 수 있는 괜찮은 놀이라는 생각이다. 노년의 또 다른 나의 놀이는 명상을 하면서 혼자 천천히 자유롭게 해변을 걷는 것이다. 산책을 하다가 백합조개껍질을 수집하는 노인을 봤다.
허름한 아파트에서 그걸 가져다 새도 만들고 나무도 만들고 그런 작품들을 만든다고 했다. 바닷가에 작은 집을 짓고 살면서 시를 쓰는 팔십대 노인을 만나 친구가 되기도 했다.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이 살아온 얘기를 듣는 재미도 괜찮다.
재미있게 살겠다고 마음먹으면 누구든 어디에서든 언제든 재미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 아라비아의 감옥에서 징역을 살았던 선배는 삼년간 그곳에서 바둑실력이 늘었다고 했다.
노숙자시설에 가보면 사람마다 자기의 놀이를 가지고 있었다. 지금 나이에 내가 가진 것만으로도 즐거움을 느끼는 일이 진짜 재미 아닐까. 자신에게 맞는 그런 재미를 찾는 것이 진정 나이답게 늙어가는 건 아닐까.
[출처] 자신에게 맞는 재미|작성자 소소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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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여지(餘地)
같은 말을 해도 너그럽게 잘 받아 들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음의 "여지"가있는 사람입니다.
여지(餘地)란, 내 안의 빈자리로 상대가 편히 들어올수 있는 공간 이기도 합니다. 여지가 있는 사람은 평온합니다. 함께 있으면 왠지 내 마음도 편해 집니다.
같은 이치로 내가 사람을 대함에 있어 부끄럼없이 최선을 다했음에도 상대가 나를 알아 주지 않아 마음이 힘들땐 아직 내 마음의 여지가 부족함은 없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오늘은 타인이 내 마음에 편하게 들어올 수 있도록 나의 여지를 늘리는데 힘 써 보세요.
여지(餘地) 남을‘여’, 땅‘지’ 약간 남는 공간이란 뜻입니다. 다툼이나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우선 참고 기다리는 것이 좋은 이유는, 후회가 남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자기 생각대로 살지 못합니다. 손쉽게 성질대로 살아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성질없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참느냐 참지 않느냐의 차이일 뿐이지요.
인내(忍耐), 그것은 아름다움입니다. 인내라는 것, 참는 다는 것은 사람으로서 최고의 배움입니다.
한번 인내하고 큰 숨 쉬고, 두번 인내하고 반성을 해보고 세번 인내한 후 결과를 보면 인내에 대한 답이 나와 있습니다.
세번 인내 하는 것, 그것이 배움의 최고봉이란 것을 깨닫게 될 것 입니다.
이 말씀 기억해 두십시오. 살다 보면 무릎칠 날이 반드시 있을 겁니다. 어려운 문제가 닥치면 일단은 인내하고 생각해 보는 것이 우선입니다
인내, 그 맛은 아름다움의 극치 입니다. 어려운 상황 화가 나는 일이 있다면 눈 한번 딱 감아 보세요. 인내하는것, 참는 것이 최선이란 것,
그것은 후회를 만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화가 나는 순간 앞뒤 없이 내 뱉는 말은, 독을 품어 상대에게 큰 상처를 남김과 동시에, 자신 마저도 해칩니다
다툼은 한 쪽이 참으면 일어나지 않습니다. 두손이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은 타인이 내 마음에 편하게 들어올 수 있도록 마음의 여유를 모두에게 높고 넓게 베푸는 여지가 있는 날 되시고,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넉넉한 마음으로 아름답게 소중한 인연 이어가는 즐겁고 행복한 날 되시기 바랍니다.....
= 모셔온 글...= < 메일 옮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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