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월14일 오늘의 역사
2021년 대우건설 이라크 알 포 방파제 토목구조물 대상 수상
대한토목학회가 주최한 올해의 토목구조물 공모전에서 ‘이라크 알 포(Al Faw) 방파제’가 대상으로 선정됐다 대한토목학회는 2003년부터 해마다 토목구조물 공모전을 열고 국내기업이 설계·시공한 토목구조물을 심사해 상을 수여한다.
이라크 남부 바스라(Basrah)주에 위치한 알포 방파제는 대우건설이 2014년 2월 공사를 시작해 2020년 9월 준공했다. 총 연장 15.5km 사석방파제 및 내부호안을 조성하는 8700억 원 규모의 사업이다. 이라크 정부는 53조 원을 투입해 2041년까지 알 포 신항을 세계적 항만으로 개발한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알 포 방파제는 이 계획의 1단계 사업 가운데 하나다.
2021년 독일 이틀간의 집중호우로 180명 사망
2016년 프랑스 휴양도시 니스에서 프랑스대혁명기념일(바스티유의 날) 축제군중 향해 트럭 돌진 84명 사망
2015년 광주 하계유니버시아드 폐막, 종합스포츠 사상 첫 국제대회 우승(금 47 은 32 동 29)
2015년 NASA의 명왕성 무인탐사선 뉴호라이즌스 호 발사(2006.1.19) 9년 6개월 만에 명왕성 최근접점(1만2,500km) 지나면서 사진 지구로 전송
2015년 루게릭병 투병… 이가림 시인 별세
그는 1966년부터 시인으로 활동하며 시집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등을 냈고, 인하대 불문과 교수를 지냈다. 정지용문학상과 편운문학상을 받았다. 2011년부터 투병 생활을 시작했다.
2009년 원로 국어학자 서정범 교수 별세
충북 음성 출신인 서 교수는 1957년 경희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79년 경희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60년부터 경희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문리대학장을 지냈고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한국어원학회 초대 회장 등을 역임했다.
서 교수는 방언·은어·속어 등을 연구하고 일본어·만주어·몽골어·튀르크어·아이누어·유구어 등과 비교를 통해 우리말의 어원을 밝히려고 노력했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말의 뿌리》 《일본어의 원류와 한국어》 《국어어원사전》 등 저서 10여권을 펴냈다.
서 교수는 어원 연구를 통해 무속에까지 연구영역을 넓혔다. 3000여명의 무속인을 만나고 쓴 방대한 책 《한국 무속인 열전》(전 6권) 《한국의 샤머니즘》등을 출간했다. 그는 2000년 12월 8일 조선일보 기고에서 "1965년 할머니 무당을 만나 '말은 곧 신(神)이요, 신이 곧 말'이라는 관점을 얻게 됐다"며 "이는 내 학문 이력의 전환점이었다"고 회고했다.
1958년 〈자유문학〉을 통해 등단해 수필가로도 활동한 서 교수는 '병상기' '미리내' 등 많은 수필을 발표했고 한국문학상(1981년), 펜클럽문학상(1993년), 수필문학상(2000년)을 받았다
2009년 서울시 교육청 13개 고교를 자율형 사립고등학교로 지정
2007년 파키스탄서 차량폭탄테러 정부군 24명 사망 ‘랄 마스지드(붉은 사원)’ 무력진압 보복
2007년 북한 영변 원자로 가동 중단 통보, 국제원자력기구 감시검증단 방북
2005년 박지성, EPL 맨체스터유나이티드 입단식
네덜란드 프로축구 PSV 에인트호벤에서 활약했던 박지성(24)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명문 구단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하였다.
한국선수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한 것은 박지성이 처음으로, 2005년 6월 22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에인트호벤 간에 이적료 600만유로(약 73억6000만원)으로 이적계약이 확정되어, 박지성은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4년 계약에 합의했다. 7월 14일 공식 입단식이 열렸다.
2000년 4월 아시안컵 예선으로 A매치에 데뷔한 박지성은 일본 교토퍼플상가,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벤을 거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하게 되었다. 1878년에 철도노동자들의 성금을 모아 창단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2005년까지 프리미어리그 우승 15회, FA컵 우승 11회(통산 최다), 유럽 챔피언스리그 2회 우승을 올린 명문 구단이다
2004년 국정원, 국가기관 10곳 해킹 피해 발표… ‘국가 안보 위협사건’ 규정
2004년 7월 13일 국가정보원이 중국을 발신(혹은 경유)지로 하는 컴퓨터 해킹이 국가 핵심 기관과 민간 부문으로 대거 확산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발표, ‘국가 안보 위협사건’으로 규정했다.
국정원에 따르면 사건 발생일까지 해양경찰청 77대, 국회 69대, 원자력연구소 50대, 국방연구원 9대, 국방과학연구소·공군대학·해양수산부·중소기업청·통일교육원·천문연구원 각 1대 등 모두 10개 국가기관의 PC 211대가 해킹 프로그램 Peep 및 변종 Revacc에 해킹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의 경우는 개인 이메일 비밀번호(패스워드) 관리 소홀로 전·현직 국회의원, 국회 사무처 직원 등 122명의 ID가 도용당했다고 밝혔다. 또 기업체, 대학, 언론사 등 주요 민간 부문의 PC 67대가 해킹당했으며, 일부 언론사 기자들의 이메일 ID도 도용당했다. 국정원은 현재까지 확인된 PC가 도합 278대라고 밝혔다.
한편, 이번 해킹 사태 용의자 중 한 명이 중국인민해방군 소속 외국어 학원생인 것으로 밝혀져 중국 군(軍)의 개입 여부를 둘러싸고 적지않은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2003년 중국, 북한 신의주 특구 초대 행정장관 양빈에 사기 등의 혐의로 징역 18년 선고
북한 신의주 특구 초대 행정장관으로 임명된 뒤 지난해 10월 중국 당국에 전격 체포됐던 양빈(楊斌·40) 어우야(歐亞) 그룹 전 회장에게 14일 사기 등의 혐의로 징역 18년이 선고됐다. 양빈 회장은 지난달 선양(瀋陽) 중급인민법원에서 사흘간 재판을 받은 뒤 선고를 받았다. 이와 함께 양빈 회장의 선양(瀋陽) 화란촌 내 온실 등 고정자산이 10억위안에 달하고, 이 밖에 은행예금 등 고정자산을 합하면 모두 16억800만위안에 달하는데 사실상 사라진 것으로 밝혀졌다.
양빈은 미국 포브스 잡지에 의해 9억달러의 재산을 가진, 중국에서 두 번째가는 부자로 보도됐으나 그가 체포된 후 재산이 급속히 축소됐으며 그의 재산이 얼마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2002년 체세포 돼지복제(複製) 국내 첫 성공
우리나라 과학자들이 체세포 복제기술을 이용해서 돼지를 복제하는 데 성공했다. 조아제약과 경상대 농과대 축산과학부 김진회 교수팀은 “2002년 7월 14일 밤 11시 경상대 축산연구소에서 체세포 복제기술로 돼지 두 마리를 복제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서울대 수의학과 황우석 교수팀은 지난 1999년 2월 체세포 복제기술로 소 복제에 성공한 적이 있다. 체세포 복제기술을 이용한 돼지 복제는 영국·미국·일본 등에 이어 국내에서는 이번이 처음이다.
황 교수는 “소는 한 마리만 임신하는 단태(單胎)동물이고, 돼지는 평균 13마리씩 임신하는 다태(多胎)동물이므로, 소 복제보다 돼지 복제가 더 어렵다”며 “이번 연구결과는 우리나라의 복제기술을 한 단계 높였다”고 평가했다. 이번에 복제된 돼지는 모두 암퇘지. 당초 어미 돼지는 세 마리를 임신했으나, 한 마리가 유산됐다. 연구팀은 이들 복제돼지를 각각 ‘가돌이 1, 2호’로 명명했다.
2001년 미국 국가 미사일방어체계(MD) 실험 성공
2001년 7월 14일 밤 10시40분 캘리포니아 반덴버그 공군기지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 (ICBM)의 일종인 미니트맨 II가 발사됐다. 이로부터 21분34초 후 7725km 떨어진 마셜군도 과잘레인 산호섬에서는 120파운드의 요격체를 탑재한 대기권외 요격 미사일이 발사됐다. 8분여 후 초당 7.2km의 속도로 서로 비행하던 요격체와 모조탄두는 정확히 명중됐다.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국가미사일방어체계 실험이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태평양 225km 상공에서 요격체가 모조 탄두를 명중시킨 순간, 마셜군도 과잘레인 아톨에 자리잡은 미국의 미사일 통제 본부는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이번 실험의 성패와 상관없이 미사일 방어를 계속 추진하겠다고 밝혀온 부시 행정부는 떠들썩한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흐뭇해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워싱턴포스트 15일자 등 미국 언론들은 이번 실험이 부시 행정부에 큰 승리를 안겨주었다고 평가했지만, 안보문제를 다루는 한 과학자는 “이번 실험으로 실제 미사일 요격이 가능하다고 믿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전임 대통령인 클린턴 행정부에서는 1999년 10월 첫 실험만 성공했을 뿐, 이후 두 차례 실험에서는 연거푸 실패했었다.
2001년 동아일보 김병관 명예회장 부인 안경희씨 투신 자살
동아일보 김병관 명예회장의 부인 안경희(62)씨가 오후 6시40분쯤 서울 동작구 흑석동 현대아파트 13층에서 투신, 사망했다.
동아일보사는 “안 여사가 자녀들의 주식명의 신탁과 관련, 친구들과 인척들이 국세청 조사에 이어 검찰에도 소환되어 조사를 받는 데 대해 큰 심적부담을 느껴왔으며, 평소 ‘우리 때문에 괴롭힘을 당하는 친구·친지들에게 너무 죄송스럽다’고 말해왔다”고 밝혔다.
“안 여사가 언론사들에 대한 세무조사가 시작된 지난 2월 이후 신경쇠약 증세를 보여 왔으며, 지난달 말 국세청의 고발 조치 이후 증세가 급격히 악화됐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안씨가 최근 언론사 세무조사 등과 관련, 심리적 타격을 받고 자살한 것으로 잠정적 결론을 내렸다. 김 명예회장과의 사이에 2남1녀를 둔 안씨는 지난 94년부터 동아일보 일민문화재단의 이사를, 97년부터 일민미술관장을 맡아 활동해 왔다.
2000년 수학여행버스 경부고속도로에서 연쇄추돌해 고교생 등 18명 사망
1998년 조치훈 본인방 10연패 달성
조치훈 9단이 일본 바둑계 단일 타이틀 최장기 방어기록을 수립했다. 조9단은 1998년 7월 13~14일 양일간 일본 이바라기현 후쿠로다 온천서 벌어진 제53기 본인방전 도전 7번기 제6국서 도전자 왕리청 9단을 1백54수만에 백 불계로 제압, 종합전적 4승2패로 누르고 타이틀을 지켰다. 1989년 제44기때 본인방에 오른 조9단은 이로써 10기를 연속 제패, 이 부문 일본 신기록을 수립했다.
종전 단일 기전 최장기 보유 기록은 역시 본인방전에서 고(故) 다카가와 9단이 세웠던 9기 연패였다. 1962년 6세의 나이로 도일해 일본 최연소 입단(11세), 최연소 타이틀 획득(18년3개월), 최연소 9단(24세) 등 숱한 기록을 수립했던 조9단은 이번 쾌거로 또한번 일본 바둑 역사를 새로 쓰게 만들었다.
1998년 맥도널드 햄버거의 공동 창업자 딕 맥도널드 사망
딕 맥도널드는 1940년대 후반 캘리포니아주 샌 버나디노에서 형 모리스(“맥”)와 함께 가족의 성을 따 만든 상호의 햄버거 가게를 시작, 나중에 햄버거, 치즈버거, 프렌치 프라이 및 음료수 등을 셀프 서비스와 자동차를 타고 들어가 사먹을 수 있는 업체로 발전시켰다. 첫번째 맥도널드 버거를 만들어 낸 딕 맥도널드는 상표인 황금색 아치를 고안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 71년 사망한 “맥”과 함께 식당을 8개 더 늘리고 밀크쉐이크 제조기 세일즈맨인 레이 크록을 고용, 독점판매권(프랜차이즈)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이들 맥도널드 형제는 지난 61년 맥도널드 체제의 소유권을 크록에게 매각했으며 이를 인수한 크록은 맥도널드를 세계적인 패스트푸드 업체로 발전시켰다.
맥도널드는 현재 세계 111개국에 2만3천여개의 체인점을 두고있다.
1997년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신유고연방 대통령에 선임
1994년 박보희 세계일보 사장, 김일성 조문위해 평양 도착
1997년 북한주민이탈법 발효
1994년 통일안보정책조정회의 김정일 체제 안정 위해 북한 지원키로 결정.
1994년 서울 38.4℃ 기상관측 이래 최고기온
1993년 제2차 북한-미국 고위급회담
1993년 가야금병창 인간문화재 박귀희 여사 별세
1921년 경북 칠곡에서 태어난 박 여사는 보통학교 시절부터 국악 가락만 나오면 가던 걸음을 멈출 정도로 남다른 감수성을 지닌 소녀였다.
결국 박 여사는 보통학교 졸업 후 “국악을 하면 기생이 된다”는 아버지의 만류도 뿌리치고 당시 명창 이화중선이 이끄는 대동가극단에 들어갔다. 16세 때에는 서편제 소리의 박동실 선생, 동편제 소리의 류성준 선생 등 기라성 같은 스승의 문하에서 판소리 다섯마당을 익혔고, 강태홍 오태석 두 선생으로부터 가야금도 배웠다.
남다른 정진으로 그는 19세쯤부터는 국악계의 스타로 발돋움했다. 처음엔 가야금 병창보다는 판소리로 이름을 날렸다. 한양창극단에 들어간 이래 20여년 간 판소리에서 1급의 자리를 지켰고 뒤늦게 그의 숨은 가야금 솜씨도 인정받아 1969년 가야금 병창 인간문화재로 지정받았다. 소리와 가야금에 평생을 바친 국악계의 거목 박귀희 여사는 60여년의 국악인생을 통해 가야금병창의 맥을 이으며 우리소리와 가락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일깨워주었다.
1990년 소련공산당 정치국 모든 권력을 고르바초프 대통령에 이양
1990년 민자당, 방송관계법-국군조직법 개정안-광주보상법 등 26개 안건 기습통과
1989년 헌법재판소, 감호조치 위헌 결정
1989년 일본 이즈 반도에서 해저화산 폭발.
1989년 제15차 서방선진7개국 정상회담(G7) 열림(파리)
1987년 제4차 남북체육회담 개막(스위스 로잔)
1987년 김정렬 국무총리 서리 취임
1983년 미국 B1기 48대 생산
1981년 한국 여자농구, 최초로 존스컵국제여자농구대회서 우승
1979년 그리스 바티칸 수교
1977년 일본, 최초의 기상위성 히마와리(GMS) 발사
1965년 국회, 한일협정 비준동의안 발의로 여야간에 격돌 난투
1965년 미국 마리너4호 최초로 화성 근접촬영에 성공
1959년 스위스의 광대 그로크 사망
1958년 강원도 영월에서 우라늄광 발견
1958년 이라크 군사 쿠데타 왕정붕괴 공화정 수립
1958년 7월 14일 아침 이라크에서 청년장교단에 의한 군사쿠데타가 발발했다. 국왕 파이잘 2세와 황태자 부처, 사이드 수상 등이 살해됐고, 카셈 준장을 수상으로 하는 이라크공화국이 수립됐다.
쿠데타는 아랍민족주의에 공조, 요르단과 레바논에 군병력을 지원하는 왕정에 반대한데서 시작됐다. 군부는 요르단과 레바논의 내부반란 진압을 지원했던 파이잘 왕에 반대해 왔었다. 군부는 즉각 이집트 나세르 장군의 반서방, 범아랍 정책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유럽에 병력 수송기를 파견했고 영국의 맥밀란 수상은 군 일부에 경계령을 내렸다. 레바논 대통령 키밀 샤마운은 즉각 서방 강대국에 자국과 이라크와의 국경폐쇄를 요청했고 요르단의 후세인 왕도 도움을 요청했다.
이라크의 군사 쿠데타는 중동에 새로운 긴장상태를 낳았고, 미국과 소련을 새로운 대결양상으로 몰고 갔다.
1953년 미국-영국-프랑스 외상회의, 한국휴전후 중국 재침시 공동제재 합의
1950년 유엔사무총장 각국에 한국전 파병을 요청
1949년 볼리비아, 대한민국을 정식 승인
1949년 문서 기록상 국내 첫 사형집행
1949년 미국상원, 대한군사원조안 가결
1948년 남부지방 큰비(-7.16) 사망 337명 실종 848명
1939년 아르누보의 대표자·체코의 첫 화폐 디자인한 체코 화가 알폰스 무하 세상 떠남
1935년 모스크바에서 사회-공산-급진사회당의 80만 반파쇼 데모
1933년 독일에서 `신(新)정당 수립 금지법` 성립(나치스가 유일 합법 정당이 됨)
1933년 독일정부 `단종법(斷種法)` 공포
1929년 이후 대공황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던 독일정부가 1933년 7월 14일 일명 유태인 말살 정책인 `단종법(斷種法)`을 공포했다.
정식명칭이 `유전질환자 자손 방지를 위한 법률`인 이 단종법은 `신체ㆍ정신상의 악질 유전`이 예상되는 병을 정해, 이 병에 감염된 당사자가 신청하면 우생(優生ㆍ인종개량)재판소가 단종수술 결정을 내린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이 신청을 당사자 이외의 사람 즉, 해당자를 수용하고 있는 병원이나 형무소 감독관 등도 제출할 수 있다는 데 있었다.
이 단종법은 히틀러가 모든 인류의 악이라고 비난한 유태인에게 제일 먼저 적용됐다. 나치스는 유태인을 `극히 위험스런 외부의 적`으로 조작함으로써 독일인의 통일성을 강화하는 한편, 유태인을 무력ㆍ무능력한 자로 규정해 이들을 추방하거나 공장과 수용소에 보내 강제 노동에 종사케 했다. 이유인 즉 그들의 재산과 직업을 독일인이 차지하게 될 수 있다는 이익 계산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이 단종법 시행 후, 1년간에 걸쳐 독일에 제출된 단종신청은 남녀 약 반반씩 8만4525건이었고 이 가운데 5만6244건이 단종명령을 받았다. 일본에서도 1940년 3월 나치스의 단종법을 모방한 `국민우생법`을 만들지만, 실질적으로 제 기능을 수행하지는 못했다.
1929년 조선일보 문자보급운동 시작
조선일보가 `아는 것이 힘, 배워야 산다`는 표어를 내걸고 1929년 7월 14일부터 전국 규모의 `귀향남녀학생 문자보급운동`을 시작했다. 문자보급운동은 일제시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벌인 지속적이고도 조직적인 전국 규모의 문맹퇴치와 민중계몽운동이었다. 조선인구의 90%에 달하는 문맹을 타파하고 한글을 보급해 민족정신을 선양하려는 실천적인 항일운동이었다.
문자보급운동은 학생들이 방학기간중에 하므로 특별한 경비가 소요되지 않고 신문사에서 제공하는 교재를 사용해 자기 집이나 헛갓 등 장소에 구애받지 않아 다른 방법에 비해 효율성이 큰 사업이었다.
첫 해에는 귀향 학생 409명이 참가해 2,849명이 한글을 깨칠 수 있었고 두번째 해인 1930년에는 900여명의 학생이 참여해 1만여명이 문자를 해독하는 성과를 거뒀다. 조선일보는 16쪽의 `한글원본`을 배포해 문자해독을 도왔다. 1931년과 1934년에는 참여학생수가 각각 1,800여명과 5,078명으로 증가했다. 1935년과 1936년에는 조선총독부의 중지령으로 문자보급교재만 각각 10만부, 50만부를 배포해 문자보급운동을 유지시켰다.
1921년 사코-반제티 억울한 강도살인 범인으로 몰려 유죄판결
1918년 세계최초 실시간 디지털 컴퓨터인 훨랜드 컴퓨터 개발한 포레스터 출생
1912년 반파시즘 반전평화 반차별 반자본 인권 등 저항포크의 창시자 우디 거스리 태어남
1910년 ‘고전 발레의 아버지’라 불리는 프랑스 안무가 마리우스 프티파 세상 떠남
1910년 만화영화 `톰과 제리` 제작자 윌리엄 해너 출생
1907년 이준 열사 분사(憤死)
이준 열사가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참가, 일제의 조선 침탈과 을사조약의 부당성을 세계에 알리고자 서울을 출발한 것은 1907년 4월 22일이었다. 이상설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위종이 페테르부르크에서 합류해 6월 25일 목적지에 도착한 세 사람은 의장에게 고종의 친서와 신임장을 전하며 대회 참가를 요청했다.
그러나 러·일전쟁에서 패한 의장국 러시아는 면담조차 꺼렸고, 영·일동맹의 두 당사자인 일본과 영국은 훼방을 놓았다. 사무국이 조선 정부에 신임장을 조회하는 전보를 보냈지만 조선의 통신기관을 장악하고 있는 일본 통감부가 이에 응할 리 없었다. 세 특사는 할 수 없이 각국 대표에게 호소문을 보내고 신문을 통해 국제여론을 환기시키려 했다.
하지만 열강 대표들이 여전히 냉담한 반응을 보이자 이준 열사는 통분을 참지 못하고 분사(憤死)한다. 7월 14일이었다. 자결설·병사설·단식순절설 등 사인(死因)을 놓고 여러 설이 난무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정확한 사인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헤이그 밀사를 빌미로 5일 뒤에 고종을 강제퇴위시킨 일제는 분이 안 풀렸는지 궐석재판으로 세상을 떠난 이준 열사에게 종신징역을 선고했다. 헤이그에 묻혔던 시신은 1963년에 서울 수유리에 안장됐다.
1907년 아닐린 염료를 발견한 영국의 화학자 퍼킨 사망
1900년 제2회 파리올림픽 개막
1900년 7월 14일 프랑스 파리에서 제2회 올림픽이 개최됐다. 메인 스타디움도 없었고 개회식-폐회식도 없었다. 육상 경기장은 블로뉴 숲속, 버려진 경마장을 개조한 곳에서 열렸다. 잡초가 잔뜩 자라 발이 걸려 넘어지는 선수가 속출했다.
미국의 알빈 클렌츠레인은 60m 달리기, 110-200m 허들, 넓이뛰기 등 육상 4개 종목에서 우승한 파리 올림픽의 스타였다. 그러나 그의 손에 4개의 메달이 전달된 것은 폐막 2년 후의 일이었다. 20세기 최초 올림픽인 프랑스 파리 올림픽은 그렇게 어떤 상업주의도 어떤 정치적 의도도 끼어 들 틈 없이, 우정과 만남의 상징으로 열렸다. 여성이 처음 출전한 것이 파리 올림픽, 흑인이 처음 출전한 것이 4년 뒤인 세인트루이스 올림픽이었다.
1889년 제2인터내셔널(국제노동자협회) 창립
1876년 해체됐던 국제노동자협회(제1인터내셔널)가 1889년 7월 14일 파리에서 재건됐다. 이날 집회엔 20개국에서 391명의 사회주의 정당 및 노조 대표가 참석했다. 회의에서는 제1인터내셔널에서 채택한 `만국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구호가 여전히 유효한 구호임을 확인했고 1890년 5월 1일을 `메이데이(세계 노동자 해방투쟁의 날)`로 선포했다.
이 밖에도 노동자들은 노동조합 운동에만 그치지 않고 반드시 사회주의 정당을 창설해야 한다는 결의도 다졌다. 이날 대회는 1864년 런던에서 결성된 국제노동자협회와 구분하기 위해 제2인터내셔널로 불렸다.
1888년 박문국 폐쇄. 한성주보 폐간
1887년 자멘호프, 에스페란토어 창안
1862년 오스트리아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 태어남
1858년 여성운동가 에멀린 팽크허스트 출생
1855(조선 철종 6) 사이토 일본총독에게 폭탄 던진 독립운동가 강우규 열사 태어남
1826년 미국 3대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 사망
미국 독립운동의 영웅 토마스 제퍼슨이 1826년 7월 14일 사망했다. 미국 독립 후 3대 대통령으로 8년 간 재임하면서 민주주의 제도의 근간을 확립해 `미국 민주주의의 아버지`라 불린다.
1743년 4월 2일 버지니아 몬티셀로에서 식민지 대농장주의 아들로 태어나 윌리엄 앤드 메리 대학을 마치고 변호사가 됐다. 1769년 버지니아 식민지 의회 의원에 당선됐고 버지니아주 대표로 미국 독립운동의 산파역인 대륙의회에 참가했다. 1776년 미국 독립 후 고향으로 돌아가 버지니아 주의회 의원, 주지사를 역임하면서 봉건적인 장자 상속제를 폐지하는 등 미국을 근대국가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1785년 이후 중앙정치무대로 재진출해 초대 미 국무장관 등을 역임했다. 이어 1796년 부통령이 된 후 1800년 대통령이 됐다. 재임 중 언론-출판의 자유, 소수의견의 존중, 문관의 무관에 대한 우위원칙 등을 확립해 미국 민주주의의 토대를 닦았다.
1998년 미 과학전문지 `네이처` 11월호는 2백년 묵은 의혹, 제퍼슨이 흑인노예 샐리 헤밍스와의 사이에서 자식을 낳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1789년 바스티유 감옥 습격, 프랑스 대혁명 일어남(1794.7.28까지 5년간 진행)
1789년 프랑스, 수년 전부터 몰아닥친 지독한 흉작으로 크고 작은 폭동이 빈발하고 있을 때, 성직자·귀족·평민 세 신분층으로 구성된 3부회가 175년 만에 소집(5월 5일)되고, 평민과 자유주의 귀족들이 서로의 단결을 약속한 ‘테니스 코트 서약’(6월 20일)이 이뤄지면서 프랑스 전역에는 혁명의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3부회 최고 책임자가 파면됐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파리 시민들은 자위를 위해 성문을 굳게 닫고 가로에 바리케이드를 치며 경계에 들어갔다. 그리고 7월 14일에는 분노한 1000여명의 파리 시민들이 바스티유 감옥으로 몰려가 자신들을 겨누고 있는 대포를 철수시키고 무기를 내줄 것을 요구했다. 당시 감옥에는 죄수가 7명밖에 없었지만 다량의 무기가 보관돼 있었다. 그러나 무기는커녕 총탄세례가 쏟아져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자 흥분한 시민들은 감옥을 점령해버렸다.
1370년 영국과의 백년전쟁 중 요새로 지어졌으나 17세기부터 정치범 감옥으로 사용되면서 사람들에게는 전제정치의 상징물로 여겨졌던 바스티유였다.
1744(조선 영조 20) 강화 외성 개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