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에서 쓴 편지, 안나푸르나에서 흘린 눈물

[기원섭]

히말라야에서 쓴 편지, 안나푸르나에서 흘린 눈물

서현아!

4년 전 이맘때의 일이다.

그때도 할아버지는 네팔 히말라야를 갔었다.

15일 일정의 안나푸르나 라운드 트레킹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 긴 여정에서 이 할아버지는 여러 번에 걸쳐 눈물을 흘려야 했었다.

절경에 감동해서도 그랬고, 절벽길이 무서워서도 그랬고, 먼 길을 걸어 다리가 아파서도 그랬고, 할머니가 싸 준 보따리가 고마워서도 그랬다.

그렇게 눈물 흘린 사연을 한 편 글로 써서 이 할아버지가 31년 9개월을 몸담고 있었던 검찰에서 함께 했던 검찰가족들이 펴내는 반년지인 ‘검찰동우’지 2014년 7월 통권 38호에 실었었다.

다음은 ‘안나푸르나에서 흘린 눈물’이라는 제목의 그때 그 글 전문이다.

해발 5,416m 초롱라 고개에 서다

“장엄하다!” 안나푸르나 라운드트레킹에 나를 끌어들인 내 친구 백파의 외침이었다.

아시아대륙을 북서에서 남동으로 2,500여km를 비스듬한 산호로 가로지른 히말라야산맥의 여러 산군 중 하나인 네팔 북부 안나푸르나산군을 한 바퀴 도는 15일 일정의 라운드트레킹에서 제일 높은 길목인 해발 5,416m의 초롱라 고개를 백파 그 친구가 나를 앞서 먼저 오른 것이었다. 그리고 그 고개에 우뚝 서서 안나푸르나 그 산군의 경이로운 풍경에 그렇게 감격해 하고 있었다.

이어서 20여m쯤 뒤쳐진 나를 향해 두 주먹을 불끈 움켜쥐어 보이면서 이렇게 외쳤다. “파이팅!” 백파의 그 한 마디 외침은 지칠 대로 지친 내게 한 모금 청량음료 같은 것이었다. 다시금 힘을 얻었다. 그러나 그것은 잠깐이었다. 두 다리의 근력이 받쳐주지 않는 그 힘은, 겉만 번드르르한 ‘생각의 사치’였을 뿐이었다.

몇 발자국을 떼지 못하고 곧바로 또 지쳤다. 오르면 오를수록 한 발걸음 내딛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그것도 성큼 크게 내딛는 걸음이 아니라, 겨우 발 하나 정도의 길이 밖에 안 되는 아주 짧은 발걸음이었음에도 그랬다. 두 다리가 천근만근의 무게였고, 숨도 턱 밑까지 차올라, 헉 헉 거친 숨을 내몰아야 했다.

내 옆에 바짝 붙어서 같이 걸어주는 포터 마일라가 자꾸만 고개를 돌려 내 행색을 살폈다. 그 눈길에 안쓰러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 백파를 비롯해서 다른 일행 여섯은 이미 그 고개에 다 올라섰는데, 나만 혼자 그렇게 뒤쳐진 것이었다.

“굳!” 외국인 트레커들의 눈에도 그런 내 모습이 참으로 안쓰럽게 비쳐졌던지, 그냥 지나가지를 않고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이며 그렇게 한 마디씩 말을 건네서 내 용기를 북돋워줬다.

초롱라 고개를 향해서 앞서 가는 대원들

이를 악물었다. 이빨이 으스러지겠다 싶을 정도의 오기 있는 악물음이었다. 더 이상 주위를 안쓰럽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서, 마치 엄마 젖 빨던 힘까지 짜내 듯, 갖은 용을 다 썼다. 그리고 끝내 나는 해냈다.

해발 6,482m의 야카와캉피크와 해발 6,484m의 초롱피크 사이를 동쪽에서 서쪽으로 넘어가는, 바로 그 초롱라 고개에 선 것이다. 안나푸르나 라운드트레킹에 나선지 열흘째 되던 날인 지난해 3월 29일 금요일 오후 2시쯤의 일이었다.

해발 8,091m의 안나푸르나 1봉을 비롯해서, 해발 7,937m의 안나푸르나 2봉, 해발 7,555m의 안나푸르나 3봉, 해발 7,525m의 안나푸르나 4봉, 해발 7,454m의 강가푸르나, 해발 7,134m의 틸리쵸피크, 해발 7,061m의 닐기리 북봉 등, 줄을 이은 고봉들이 이젠 지척인 듯 가깝게 그리고 낮게 보였다.

은빛 만년설을 두껍게 인 그 고봉들이 파란 창공을 뚫듯 높이 솟은 풍경이 참 시원했다. 봉우리마다 세찬 눈보라가 일고 있었고, 그렇게 인 눈보라는 곧장 더 높은 하늘로 치솟아 구름무더기가 되고 있었다. 어쩌면 그 구름들이 흐르고 흘러 내 어릴 때 고향땅 하늘에 걸쳐져, 한 마리 새며 조개며 해서 한 폭 그림을 그려보던 새털구름이고 조개구름이 아니었겠나 싶었다.

안나푸르나 봉우리에 몰아치는 눈보라

경이롭다 싶을 정도로 장관의 풍경이었다. 뭉클뭉클 가슴에 감동이 일고 있었다. 거기 서기까지의 그 힘든 여정을 잘 감당해준 내 몸 내 체력이 너무나 고마워서였다.

리더를 맡은 알피니스트 이상배 대장이 내게 축하의 말 한 마디를 건넸다.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감사드립니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기원섭’ 그 인간승리의 현장입니다.”

일흔의 나이로, 우리들 일행 중에 가장 연장자이신 전민수 사장님도 감동이 깊었던지 이렇게 한 마디를 남기셨다. “높게만 보이던 산이 어느덧 발아래 와있네요.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니, 비록 힘들기는 했지만, 정말 아름답습니다.” 노익장의 현장이 바로 거기에 있었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었다. 우린 모두 한 마음이 되어 우리 애국가를 목청껏 합창했다.

울컥 가슴에서 감격이 솟구쳐 올랐다. “흐흑!” 외마디 외침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그 외침은 곧바로 통곡으로 이어졌고, 끝내 줄줄 흐르는 뜨거운 눈물로 내 양 볼을 적시고야 말았다.

그렇게 초롱라 고개에서 흘린 그 눈물, 이번 안나푸르나 라운드트레킹에서 내가 흘린 눈물로 세 번째의 것이었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전날 밤을 묵은 해발 4,450m의 초롱페디 간이숙소인 로지를 나선 것은 새벽 3시쯤의 일이었다. 이틀 전부터 경험하고 있는 고산증으로 인해 자꾸만 처지는 발걸음을 감안, 포터 마일라를 동행해서 일행들보다 1시간 먼저 나선 것이었다.

  별빛이 초롱초롱한 안나푸르나의 밤하늘

별빛과 달빛이 만년설의 주위를 흐릿하게 비쳐주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헤드랜턴을 켜야만 했다. 가파른 고갯길에서 더듬거리다가 자칫 발을 헛디디기라도 한다면, 곧장 천 길 낭떠러지로 그냥 굴러 떨어지고 말 것이었기 때문이다. 북두칠성이니 삼태성이니 해서 그 밤하늘에 유독 찬란히 빛나는 별들을 올려다보고 싶기도 했지만, 곧 포기하고 말았다. 거의 90도 각도로 급격하게 꺾어지기를 끊임없이 반복하는 가파르고 구불구불한 고갯길이 내게 그럴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르면 오를수록 발걸음이 처졌다. 고산증의 일반적 증세인 어지러움과 메스꺼움은 그런대로 참아낼 수 있었지만, 차오르는 가쁜 숨은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다. 소위 ‘히말라야 스텝’이라고 해서 다섯 발자국 정도 떼면 걸음을 멈추고 다시 숨을 골라야 하는 느림보 걸음으로 걸어야했다. 그냥 발길을 돌리고 싶은 생각이 숱하게 들었다. 그래서 가다가 되돌아보고 또 되돌아봤다. 그러나 이날의 목표점인 초롱라 고개가 저만치 어슴푸레 보이는 상황에서 이젠 결코 물러설 수가 없었다.

두 해 전으로 거슬러, 내 고향땅 경북 문경까지 서울에서 반 천리 길을 온통 부르트고 피 터진 발로 닷새 만에 걷어갔을 때의 그 고통스러운 순간들을 떠올렸다. 그때의 인내심을 다시 한 번 더 발동시켰다. 이를 악물고 혼신을 다했다. 생각의 좌절과 극복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와 같은 생각의 교차 속에서도 내 무거운 발걸음은 계속됐다. 몰아치는 그 새벽의 혹한이 가뜩이나 더딘 내 발걸음을 더 더디게 했다. 영하 20에서 30도는 족히 되겠다 싶을 정도였다. 두꺼운 스키용 장갑을 끼고 있음에도 손가락이 오그라들고 두 켤레 양말을 겹쳐 신었음에도 등산화 속 발가락이 움츠려드는 강추위였다. 그 추위는 고도가 높아질수록 더 심해지고 있었다. 중간 중간에 잠깐이라도 멈추어 서서 장갑 낀 채로 손을 비비고 발가락을 꼼지락 꼼지락거려 덥혀야 했다. 그렇게 악전고투하면서 11시간을 올라, 드디어 꿈의 초롱라 고개에 오른 것이었다.

무모한 도전, 그리고 집념

내가 이번의 안나푸르나 라운드트레킹에 나서기로 작정한 것은 그때로부터 한 달 전쯤의 일이었다.

“조카가 이름 난 알피니스트인데 이번에 15일 일정으로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라운드트레킹을 기획하고 있어. 자네가 간다면 나도 함께 갈 생각이야. 어때? 같이 가 줄 거지.” 내 고향 또래 친구인 백파가 서초동 우리 사무소로 찾아와 그렇게 넌지시 나를 꼬드겼을 때, 일찌감치 손사래 쳐 거절했어야 했다. 그런데 그러지를 못했다. 나와의 동행을 바라는 내 절친한 친구의 그 말이, 매사에 쉽게 거절하지 못하는 내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이다. “트레킹이라고? 그게 뭐 별 거겠어? 한 번 가보지 뭐.” 앞뒤 재보지도 않고 순간적 호기를 주저앉히지 못해서 그렇게 만용을 부리고 말았다.

우리나라의 웬만큼 이름 있는 산들은 몽땅 섭렵했을 정도로 평소 등산이력이 화려한 백파와는 달리, 등산이력이 얕은 나로서는 너무나 무모한 도전이었다. 솔직히 마음속으로는 겁이 나고 조바심이 났다. 그저 평지를 걷는 것이라면 그런대로 버틸 수 있겠다 싶었으나, 90kg을 오르락내리락하는 거구에 불룩한 똥배를 안고 만년설이 쌓여 있다는 그 고지를 오른다는 것은 영 자신이 없었다.

공연히 그 트레킹에 나설 작정을 했다 싶었고, 괜히 주위에 두루 알렸나 싶었다. 혹 물러설 빌미라도 될까 싶어서, 내 이렇게 리더인 이 대장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나는 뱀을 무서워 해. 그리고 또 무서워하는 것이 절벽이야. 그런 길을 걸어야 할 것이라면 난 빠질 거야. 혹 뱀이 있거나, 절벽 길을 걸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그렇게 질문하면서도, 내 솔직한 마음속에서는 참 치사하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싫으면 싫다고 의사를 밝히면 그뿐인 것을, 그렇게 말을 돌려치기 하려니,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내 그 질문은 이 대장의 이 한 마디에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그 꼬리를 감추어야 했다. “환갑을 넘기신 분이 무슨 뱀이니 절벽 타령을 하세요. 없어요, 없어!”

이젠 쪽까지 팔리고 있었다. “좋아! 가면 될 거 아니야!” 도리어 그렇게 큰 소리 치는 것으로, 이번의 그 트레킹 일정은 확정되고 말았다. 남들 보기에 큰일을 했다 싶은, 나의 안나푸르나 라운드트레킹은, 그렇게 내심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나선 것이었다.

이왕 나섰으니 성공을 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가짐을 단단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무래도 두 다리의 근력을 좀 더 키워야했고, 불룩한 내 똥배도 좀 더 빼야했다. 그렇다고 해서 법무사로서의 일상 업무를 접을 수는 없었다. 틈나는 대로 길을 걷고 산을 오르고는 했다. 그래서 남은 한 달 사이에 청계산도 오르고, 아차산도 오르고, 남산도 오르고, 북한산 둘레길도 걷고, 내 고향땅 명산인 주흘산도 올랐다. 서초동에서 50여 리길인 상계동까지 걷기도 했다. 내 집념의 발현이었다.

결국 지난해 3월 20일 수요일 밤 9시 25분 인천국제공항에서 방콕 행 TG657편 비행기트랩을 오르면서, 15일 일정의 안나푸르나 라운드트레킹 그 길고 긴 여정이 시작된 것이었다.

  트레킹의 본격적 시작은 여기 참제에서부터

먼 만년설

언뜻 보기에 그것은 흰 구름이었다.

그런데 구름치고는 조금 각진 구석이 있다 싶어서 눈앞에 펼쳐진 그 풍경을 다시 한 번 자세히 봤다. 아니었다. 그것은 히말라야산맥의 그 높은 등성이를 덮은 만년설이었다. 너무나 먼 거리에 황사까지 겹치는 바람에, 흐려진 시야가 그런 착각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그 시원한 풍경에 그동안 막힌 가슴이 탁 트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트인 가슴에, 만년설의 그 반짝이는 빛깔처럼 은빛 찬연한 꿈이 담기기 시작했다. 그 만년설에 내 발자국의 흔적을 남기고야 말겠다는 꿈이었다. 그때까지의 내 느낌으로는 내 그 꿈을 이루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만 같았다.

바로 일정 3일째 되는 날인 3월 22일 오전 10시쯤 해서, 트레킹의 본격적 시작점인 해발 1,410m의 참제까지 가는 그 길목에서의 일이었다.

  내 생애 처음으로 마주한 히말라야 만년설

이날은 아침 7시쯤에 전날 묵었던 네팔 수도 카트만두 시내의 삼사라호텔을 나섰다. 거리로 따져서는 참제까지 220여km의 길이지만, 거친 도로사정으로 속력을 낼 수가 없어, 시간적으로는 거의 12시간은 족히 걸린다고 했다. 마침 출근시간이어서 거리에는 차와 사람으로 넘쳐났다. 그렇게 넘쳐난 차와 사람으로 인해 도로 상황은 이미 먼지와 매연으로 더럽혀져 있었고, 함부로 눌러대는 경적은 내 귓전을 찢겠다 싶을 정도로 소란스럽기 짝이 없었다.

가파르고 꼬불꼬불하기 짝이 없는 큰 고개 하나를 넘어서야 겨우 그 소란스러운 카트만두 시내를 벗어날 수 있었다. 카트만두시 자체가 해발 1,300여m에 자리 잡고 있었으니, 그 고개 정상은 어림잡아 해발 2,500여m는 족히 될 것 같았다. 그러나 그 고개를 넘어서도 도로 분위기가 소란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국경을 마주 댄 이웃나라 인도를 오가는 화물트럭들이 줄을 잇고 있었고, 고갯길을 힘들게 오르내리는 그 트럭들이 시커먼 매연을 마구 뿜어내고 있어서, 창문을 열어놓기가 무서울 정도였다. 숨이 탁탁 막히고 가슴 또한 답답했다. 두어 시간 걸려 고개를 겨우 넘었을 즈음이었다. 그때, 내 가슴을 탁 틔게 하는 먼 만년설이, 그렇게 내 시야에 잡혀들기 시작한 것이다.

히말라야 3대 트레킹

안나푸르나산군은 에베레스트산군과 랑탕밸리계곡과 함께 히말라야 3대 트레킹 지역의 하나다.

세계 최고봉인 해발 8,848m의 에베레스트 그 산기슭을 돌아 걷는 에베레스트 트레킹은 고전적 분위기라고 해서 클래식 트레킹이라고 하고, 랑탕의 깊은 계곡을 따라 걷는 랑탕밸리 트레킹은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이 너무나 경이롭다 해서 파노라마 트레킹이라고 하는 반면, 안나푸르나 트레킹은 흔히들 성역 트레킹이라고 한다. 풍요의 여신 안나푸르나가 그 산군에 깃들어 있다는 전설 때문이다.

100여m 정도로 두껍게 쌓인 안나푸르나 산군의 만년설

히말라야산맥은 인도 대륙과 티베트 고원 사이에 형성되어 있으며, 넓게는 히말라야산맥과 이어진 카라코람산맥과 힌두쿠시산맥 그리고 파미르고원의 여러 산맥을 포함해서 말하기도 한다.

‘히말라야’(Himalaya)라는 산맥의 이름은 고대 인도어인 산스크리트어로 눈을 뜻하는 ‘히마’(Hima)와 거처를 뜻하는 ‘알라야’(Alaya)의 합성어로, ‘눈의 거처’, 즉 ‘만년설의 집’이란 뜻이다.

히말라야산맥은 중국과 인도 사이의 교통을 가로막는 큰 장벽일 뿐만 아니라, 대기의 순환에 있어서도 장애가 되어, 겨울에는 북쪽의 찬 기류가 이 산맥을 넘지 못하고, 여름에는 남쪽의 따뜻한 무역풍이 북으로 올라가지 못해서 산맥의 북쪽 땅이 황량한 사막지대가 된 것이라고 한다.

히말라야산맥은 서쪽 파키스탄의 해발 8,126m 낭가파르바트산에서부터 동쪽 부탄의 해발 7,755m터 남차바르와산까지 중단되지 않고 연속되어 이어지는데, 눈 덮인 가파른 봉우리, 깊게 팬 계곡, 곡빙하, 풍부한 난대식물과 고산식물로 특징지어지는 그 히말라야산맥은 오늘날 세계 등산가들의 발길을 잡아끄는 가장 큰 도전장이 되고 있다.

이 지구상에서 해발 7천m가 넘는 산은 모두 히말라야에 모여 있으며, 8천m를 넘는 주봉우리가 14개, 7천m급 봉우리가 359개이며, 6천m급 봉우리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고 했다. 포터 마일라의 말에 의하면, 그런 봉우리는 그 이름조차 짓지 않아 그저 ‘No Name’이라고 한다고 했다. 그래서 히말라야산맥은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며, 혹한의 만년설로 북극과 남극에 이어 ‘제3의 극지(極地)’로도 일컬어진다.

히말라야산맥은 파키스탄, 인도, 중국, 미얀마, 아프가니스탄, 부탄, 네팔에 걸쳐 있으며, 인더스강, 갠지스강, 브라마푸트라강, 창강 등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히말라야산맥이 어떤 과정을 거쳐 형성됐는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대륙이동설에 따른 판구조론이 가장 정설로 되어 있다. 즉, 지금으로부터 1억 2천만 년 전에 남쪽의 인도 판이 서서히 북쪽으로 이동하다가, 5천만 년 전에 북쪽의 유라시아판과 부딪쳐 오랫동안 솟아오른 것이 히말라야산맥이며, 지금도 지각활동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증거로 구조지질학자들은 히말라야산맥의 지층이 동서 방향인데 반해 인도대륙 지층은 남쪽 방향이라는 것과, 바다생물 화석과 퇴적층이 히말라야산맥에서 발견되는 점을 들어, 지질 시대에는 이 지역이 바다였음을 설명하고 있다.

그렇게 융기한 히말라야산맥의 산군 중 하나가 바로 안나푸르나 1봉을 중심으로 한 안나푸르나산군이다. 안나푸르나는 산스크리트어로 ‘풍요의 여신’을 뜻하며, 동쪽으로는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가 우렁차다해서 소위 ‘분노의 강’이라고 불리는 마르샹디강을 사이에 두고 마나슬루와 마주하며, 서쪽으로는 시바신이 그 불타는 몸을 담아 태우는 바람에 물빛이 검어졌다는 칼리 간다키강을 사이에 두고 다울라기리와 마주한다.

안나푸르나 1봉은 악천후와 강설, 급작스럽게 쏟아지는 거대한 눈사태로 히말라야산맥에서 가장 위험한 고봉으로 꼽히며, 1950년 프랑스 원정대 모리스 헤르조그와 루이 라슈날이 처음 등반한 이래 숱한 등산가들이 그 봉우리를 오르다가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특히 이 산의 북서쪽 벽은 히말라야의 암벽 가운데 등정이 가장 어려운 코스로 꼽힌다. 그래서 산악인들 사이에는 안나푸르나 1봉을 두고 ‘히말라야의 공동묘지’라고 부르면서 두려워할 정도로 악명이 높은 봉우리라고 했다.

바로 그 악명 높은 봉우리를 중심으로 하는 안나푸르나산군을 걷는 트레킹에도 3개의 코스가 있다고 했다. 산군의 남쪽에서 올랐다가 다시 그 길로 내려오는 ABC트레킹과 푼힐트레킹, 그리고 산군의 동쪽에서 시작해서 북쪽을 돌아 서쪽으로 내려오는 라운드트레킹 그렇게 셋이라고 했다.

ABC트레킹은 안나푸르나 정상을 오르는 전문 등산가들을 위해 세워진 해발 4,130m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 오르는 트레킹이고, 푼힐트레킹은 장관의 히말라야 일출을 볼 수 있는 해발 3,210m의 전망대까지 오르는 트레킹으로서, 일주일이나 열흘 정도의 비교적 짧은 일정으로 다녀올 수 있어서 일반인들이 자주 찾는 트레킹 코스다.

특히 푼힐트레킹은 ‘로열트레킹’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네팔이 영국 식민지였던 시절에 영국의 귀족들이 그 무거운 목욕탕까지 포터에게 짐을 지워 올랐다고 해서, 그렇게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절벽 길

내가 나선 코스는 안나푸르나산군을 동에서 북을 거쳐 서로 빠지는 라운드트레킹 코스였다.

제대로 라운드트레킹을 하려면 트레킹 족들이 몰려드는 동쪽의 작은 도시인 베시사하르에서 출발해서 네팔 제 2의 도시인 서쪽의 포카라에 이르기까지 약 한 달 정도의 일정이어야 하지만, 우리들 일행은 차로 이동하는 거리를 더 늘려 그 절반인 15일로 일정을 줄여서 트레킹에 나선 것이었다.

“풍요의 여신이라는 이름처럼 히말라야 트레킹 코스의 여왕이라고 불릴 만 한 코스지요.” 이번 트레킹을 기획한 이 대장의 그 한 마디 말이, 결국 나로 하여금 그 험난한 길로 감히 들어서게 한 끝장 꼬드김이었다.

안나푸르나에서의 통곡

눈물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이번의 안나푸르나 라운드트레킹에서 숱하게 눈물을 흘렸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격심한 육체적 고통으로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치떠는 분노와 속상함으로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가슴을 울리는 깊은 감동과 회한으로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심지어 너무 우스워서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누군들 눈물을 흘리지 않겠는가마는, 어린 시절부터 우여곡절의 삶을 살아온 나로서는 그 회한으로 그동안 유독 눈물이 많았다. 그런 나를 보고 어떤 사람들은 늙어서 그렇다고들 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사람들로 인해 속상할 때가 참 많았다. 눈물과 함께 삶의 길을 깨우쳐 가는 나의 인간적 모습이 폄하되는 것이 서글퍼서였다.

눈물이라고 하면 늘 생각나는 두 편의 영화가 있다.

샘 우드 감독에 게리 쿠퍼와 잉그리드 버그만이 주연했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라는 1943년 미국 영화와, 머빈 르로이 감독에 로버트 테일러와 데보라 커가 주연했던 ‘쿼바디스’라는 1951년 미국 영화가 그것이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1937년 파시스트와 공화정부파로 갈라져 싸우던 스페인 내전에 참전한 미국 종군기자 로버트 죠단과 게릴라 소녀 마리아와의 지순한 사랑이 그 줄거리이고, ‘쿼바디스’는 로마 네로 황제가 기독교인들을 박해하던 시대의 이야기로 정복자인 로마군 호민관 마커스와 유대인 처녀 리지아와의 애증이 그 줄거리이다.

주인공들이 흘리는 눈물이 너무나 감동적인 것이어서,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그 두 편의 영화를 잊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마리아가 치명적 부상을 당한 죠단을 떠나지 않으려고 앙탈을 부리듯 울 때는 나도 철철 눈물을 흘리며 같이 울어야 했었고, 리지아가 종교적 갈등으로 마커스를 떠나보내면서 뜨거운 눈물로 두 볼을 적실 때는 나 또한 그렇게 두 볼을 적셔야 했었다. 특히 마리아 역을 맡은 잉그리드 버그만과 리지아 역을 맡은 데보라 커의 일품 연기가 나를 깊은 감동의 세계로 몰아갔었다.

그렇듯 나는 마음에 감동이 깊게 담길 때마다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곤 했다.

내가 이번의 그 트레킹에서 눈물을 흘린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숱하게 많았다. 감동의 순간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이야기다. 그 중에서도 철철 눈물을 흘려 통곡의 지경에 이른 것만도 손꼽아 일곱 번이나 됐다.

앉으면 다시 일어서기 힘들어 스틱에 의지해서 선 채로 쉬어야 하고

다음은 그 통곡의 기록이다.

첫 번째는 안나푸르나 그 웅장한 산세에 깊숙이 빠져들면서 내 시야에 잡혀드는 그 장엄한 풍경이 너무나 경이로워서 울었고, 두 번째는 초롱라 고개에 서기 하루 전 날, 그 고개 기슭인 초롱페디 로지에서의 일로 긴 여정과 고산증을 감당하기가 너무 힘들어서 울었고, 세 번째는 앞에서 미리 밝혔듯 바로 그 만년설의 초롱라 고개에 선 그 감격으로 울었고, 네 번째는 초롱라 고개를 넘어 하산 길에서 심한 다리 통증 때문에 아파서 울었고, 다섯 번째는 문득 아내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솟구쳐 울었고, 여섯 번째는 포카라 ‘사랑곳’이라는 산봉우리에서 히말라야 그 산군을 붉게 물들인 장엄한 일출 풍경에 감동해서 울었고, 마지막 일곱 번째는 귀국 하루를 앞두고 들른 카트만두 화장터를 둘러보면서 인생무상을 생각하며 울었다.

첫 번째 통곡은 일정 6일 째인 3월 25일 월요일에 터졌다.

문득 잠을 깼고 후딱 일어났다. 주위는 깜깜하고 조용했다. 딱딱한 나무 침상에서 간단하게 잠만 잘 수 있게끔 한 간이숙소에는 시계가 없었다. 게다가 깊은 오지로 핸드폰도 터지지 않아서 도무지 그 시간을 알 수가 없었다.

“내일부터 힘 좀 들 겁니다.” 전날 잠들기 전에 우리들 일행에게 전해 준, 이 대장의 그 말이 언뜻 생각나면서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날이 밝으려면 아직 한참을 더 있어야 될 것 같아, 잠을 더 자려고 침낭 속으로 다시 깊게 파고들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힘들 것이라는 이날의 일정이 걱정되어서 도무지 잠이 들지 않았다. 또다시 후딱 일어나고 말았다.

잠이 쉽게 들지 않을 때, 그렇게 후딱 일어나는 것은, 30여 년 전으로 거슬러, 내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수사관으로 근무하던 시절에 밤샘 수사를 밥 먹듯 하면서 내 삶에 익은 오랜 습관으로서, 그 습관은 내 생체리듬까지 바꿔놓고 말았다. 들지 않는 잠을 애써 자려고 하는 것은 아까운 시간을 낭비할 뿐이라는 내 삶의 철학도 한 몫 했다.

기왕에 일찍 일어났으니, 전날 밤에 풀어헤쳐놨던 카고백을 다시 싸고 배낭을 꾸리는 둥해서, 그날의 트레킹 준비를 일찌감치 끝내 놨다. 그래도 시간이 남기에, 미리 준비해 간 중국의 고전인 ‘삼국지’를 펼쳤다. 이번 트레킹 일정에서 1,000여 쪽에 이르는 요약본의 그 책 한 권을 독파할 작정을 했던 터였다.

“형님! 이제 일어나세요. 퍼뜩 아침 먹고 나섭시다.” 두어 시간쯤 지났을 즈음에, 아직 내가 잠에 깊이 빠져 있는 줄로 생각한 이 대장이 로지 문을 탕탕 두드리며 그렇게 나를 깨웠다.

이날은 차메에서 16.3km 거리인 해발 3,200m의 피상까지 가는 일정이었다. 이 대장이 미리 예고했듯 힘들 그 하루의 일정을 감당해내기 위해서는 가급적이면 몸이 가벼워야 한다는 생각에, 보리죽 한 그릇에 우유 한 잔으로 아침 식사를 때웠다.

오전 8시쯤에 동쪽 멀리 마나슬루의 은빛 풍경을 등에 업고 길을 나섰다. 깊은 계곡에 걸친 몇 개의 현수교를 이리 건너도 또 저리 건너고, 이젠 전기마저 끊어진 외딴 마을을 지나고, 아찔한 절벽 길을 끼고 돌아야 했다. 자칫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라도 하면 천 길 아래 계곡으로 곧장 떨어지고 말 것이어서, 발걸음 하나하나에도 주의를 다해야 했다.

  멀리 마나슬루의 시원한 풍경

해발 6,986m의 람중히말 봉우리를 몰아치는 눈보라 풍경은, 말 그대로 장관이었다. 그 봉우리에서 날려간 눈보라는, 그대로 한 조각구름이 되어 더 높은 하늘로 치솟고 있었다. 아찔하기는 했지만 산허리를 파낸 절벽 길도, 몇 구비를 타고내린 빙폭도 시원하고 멋진 풍경의 하나였다.

4시간쯤 걸어 어느 산허리를 막 돌아갈 때의 일이었다. 멀리 바위 산봉우리 하나가 보였다. 언뜻 느낌에 내 눈앞에서만 1,000여m이상 솟은 듯했다. 그때 내 선 자리의 해발이 3,000여m였으니, 그 산봉우리는 해발 4,000여m 이상 족히 될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 봉우리만 바위인줄 알았다. 아니었다. 산허리를 더 돌아, 그 산의 전체 풍경이 내 시야에 들어왔을 때, 나는 기절초풍할 정도로 놀라고 말았다. 산봉우리뿐만이 아니라, 그 아래 산허리도 그렇고 산기슭도 그렇고 온통이 바위였다.

그것도 한 덩어리의 바위였다. 그 거대한 바위에 찢어진 틈새가 없는 것이 그 증표였다. 더 놀라운 것은, 산 하나만이 그렇게 바위 한 덩어리인 것이 아니라, 그 옆으로도 계속 이어져 거대한 하나의 바위산맥을 이루고 있더라는 것이었다.

나로 하여금 첫 번째 통곡을 하게 했던 이름 없는 바위산

까마득한 그 옛날에 봉우리에서부터 산기슭까지 빙하가 흘러내렸던 듯, 활 모양으로 패인 골의 흔적이 뚜렷했다. 마치 거대한 한 개의 회색 빨래판 같았다. 정말 장엄하기 그지없었다.

신의 손길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생겨날 수 없을 것 같은, 그 신비한 풍경에 내 혼이 푹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풍경 앞에 선 나는 한낱 미물이 되고 있었다. 울컥 가슴이 미어지더니 왈칵 눈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안나푸르나 라운드트레킹에서의 내 첫 번째 통곡은 곧 거기 이름 없는 바위산맥 앞에서였다.

카고백을 싸고 푸는 것이 힘들어 울고

두 번째 통곡은 초롱라 고개를 지척에 둔 초롱페디라는 곳에서의 일이었다. ‘페디’라는 말은 풀어서 ‘기슭’이라는 뜻이라고 했는데, 해발 4,000m가 넘는 곳을 그렇게 기슭이라고 하고 있으니, 그 산군의 웅장함은 불문가지였다.

정말 힘들게 거기까지 왔다. 하루하루 갈 길이 멀어서 힘든 것이 아니었다. 하루에 걷는 거리가 보통 10km 내지 15km 정도였고, 많이 걸어봤자 20km를 넘지는 않았으니, 길이 멀어 힘든 것은 아니었다.

어둠이 깊은 이른 새벽에 잠을 깨서, 다시 잠들지 못하는 것 때문이 아니었다. 다시 잠이 들지 않으면 챙겨간 책을 꺼내 읽거나, 맏이가 챙겨준 게임기로 30여년 내 손에 익은 ‘갤러거’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때우면 그만이었다.

보리죽 한 그릇에 우유 한 잔이라든가, 삶은 감자 하나에 빈대떡 한 조각이라든가, 기껏해야 찐 양배추에 닭도리탕이 전부인 너무나 간소하고 맛없는 끼니로 인해 힘든 것도 아니었다. 어차피 이번 일정에서 몸무게를 확 줄일 작정을 한 터여서, 그렇게 간소한 식단은 내 바라던 바였다.

로지의 싸늘한 냉기로 힘든 것도 아니었고, 실내에 화장실이 없어 빈 콜라병에 소변을 볼 수밖에 없었던 그 불편함으로 힘든 것도 아니었다. 극한 상황에서의 일상은, 질곡 같았던 내 오랜 삶의 이력에서 이미 익은 것이었다.

오로지 내가 힘들어 한 것은, 깊은 계곡을 끼고 걷는 절벽 길에서의 고소공포와, 고도가 오르면서 산소가 부족해 오는 고산증이었다. 고소공포는 내 마음가짐의 문제로서 스스로 마음을 굳게 먹으면 그런대로 극복할 수 있었지만, 고산증만큼은 내 의지로 제어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현실적으로 감당해내기가 쉽지를 않았다.

해발 2,000여m를 넘어설 때부터 입이 바싹바싹 마르고 코딱지가 눌어붙는 증세가 나타났다. 그냥 두기에는 숨쉬기가 불편해서, 틈틈이 손가락으로 콧속을 후벼서 눌어붙은 그 코딱지를 뜯어내야 했다. 머리가 띵하게 무겁기도 하고, 속이 메슥거리기도 해서, 기분이 영 찝찝했다.

처음에는 건조한 그곳 날씨 탓이려니 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하루하루 고도가 올라가면서 점점 더 심해지는 것이, 고산증의 전형적 증상임이 분명했다. 맥도 빠지고 힘도 빠졌다. 오르막은 불구하고 평지에서도 걸음걸이를 빨리 할 수가 없었다. 몇 발자국 걷지 않았는데도 숨이 차 헐떡거려야 했고, 수시로 쉬면서 숨을 다시 골라야 했다. 그렇게 걷다 쉬다 하다 보니, 발걸음은 더뎌 질 수밖에 없었고, 힘들여 그날의 목적지에 도착하면, 맨 먼저 로지로 들어가 몸을 던지다시피 하면서 드러누워야 했다.

거기에 더 보태서 매일이다시피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또 하나 있었다. 바로 카고백과 배낭의 짐을 풀고 싸는 일이었다. 일정 초기에는 팔 힘과 손목 힘으로 그런대로 쉽게 짐을 풀고 쌌는데, 일정이 더하고 고도가 오르면서 그 일이 만만치 않았다. 구스다운 침낭 하나도, 침낭이 품은 공기를 빼내고 둘둘 말아 카고백에 제대로 담으려면, 몸으로 누르고 팔로 안고 손목으로 감는 등 온몸을 다 이용해서 그 부피를 최소화해야 했으니, 힘이 안 빠질 수가 없었다. 튀어나오려는 욕은 입속에 담아놓고, 흐르려는 눈물은 두 눈에 담아 놓는 것으로 그 순간들을 넘기곤 했다.

그러다가 결국은 터지고 말았다. 그동안 쌓인 눈물이 터진 것이다. 몇날 며칠 계속된 지치고 힘든 그 여정에, 우여곡절의 내 지나온 인생 여정까지 겹쳐 생각하다 보니, 내 가슴은 복받칠 수밖에 없었고, 그 복받친 가슴은 결국 나로 하여금 한바탕 눈물을 쏟게 하고야 말았다.

일정 9일째인 3월 28일 오후 4시쯤, 해발 4,450m의 ‘초롱 패디’ 로지에서의 일로, 이번 일정 두 번째의 내 통곡이었다.

안나푸르나에 남긴 내 발자국의 흔적

스스로 진정하고 또 진정했다. 그 끝에 아내에게 띄우는 영상 편지 한 통을 남겼다. 이렇게 썼다.

「여보, 고맙소. 나를 이렇게 멀리 떠날 수 있게 기회를 줘서 참 고맙소. 이렇게 먼 길 여행을 하려면, 비용도 비용이려니와 사무실 업무에도 문제가 많음이 분명한데, 그걸 혼자 다 감당해주겠다고 나서 준 것이 참 감사하오. 그리고 먼 길 여행에 불편하지 않게끔 그 비싼 장비까지 챙겨줘서 더 고맙소. 나와 함께 살아온 세월이 어언 30년을 후딱 넘겼는데, 그동안 감당하기 어려운 고비가 참 많았소. 잘 견뎌준 것이 또 고맙소. 이번 여행을 떠날 때, 당신이 내게 딱 한 마디로 신신당부 했듯이, 성질 좀 죽여서 돌아가겠소. 사랑해요. 여보,」

‘초롱라’ 고개 이쪽 기슭인 ‘초롱페디’에서의 밤은, 그렇게 아내에게 띄우는 영상편지와 함께 깊어갔다.

초롱라 고개를 넘어 묵티나트로 가는 길에 만난 풍경

네 번째 통곡은 초롱라 고개를 넘어서면서 곧바로 찾아왔다.

까마득했다. 처음에는 그리 먼 길이 아닌 줄 알았다. 초롱페디에서 출발해서 초롱라 고개 너머의 힌두교 성지 묵티나트에 이르는 이날 일정에서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은 모두 16.8km이었지만, 이번 트레킹에서 가장 큰 고비인 초롱라 고개는 이미 넘어섰기에, 나머지 남은 거리라고는 기껏해야 12km 내지 13km정도의 내리막길이었을 뿐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거리상으로는 별 것 아닌 것 같았지만, 현실은 그렇지를 않았다. 초롱라 고개에서 내려다 본 하산 길은, 나를 두렵게 하기에 충분했다. 가파른 내리막 경사가 굽이굽이 까마득하게 내리 뻗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나푸르나 라운드트레킹을 함에 있어, 대부분의 트레커들이 서쪽의 묵티나트에서 초롱라 고개를 넘지 않는 이유를 알만했다.

저 길을 어떻게 내려가야 할까, 더럭 겁부터 났다. 그렇게 겁이 난다고 해서, 누구 등에 업히거나 야크 등에 올라타는 등, 달리 선택의 여지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들 지친 상황에서 누군가 나서서 업어줄 사람도 없었고, 야크는 미리 예약이 되어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야크 등에 올라타고 그 길을 내려가다가 야크와 함께 절벽 아래로 굴러 떨어져 죽은 사람도 있다는 이 대장의 엄포도 있었다.

무조건 그 경사 길에 내 두 발을 들여놓아야 했다. 그렇게 첫 걸음을 막 내 딛는 그 순간, 전율 같은 통증이 내 왼쪽 정강이를 치고 지나갔다. 얼마나 아팠던지 그대로 고꾸라질 뻔했다. 내리막 경사 길이어서, 짓누르는 거구의 내 몸무게로 통증이 더 심해졌기 때문이었다.

이틀 전으로 거슬러, 통증이 시작된 그 초기에 이 대장이 챙겨준 진통제를 복용하기도 했었지만, 아무런 효험이 없었다. 그래서 그 이틀을 그저 꾹 꾹 참으며 살금살금 산을 올랐던 것이다. 그래도 그 길이 더 나았다.

앞으로 가야할 길은 도저히 살금살금 갈 수 있는 길이 아니었다. 지쳐서도 그렇고, 아파서도 그렇고, 두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는 길이었다. 그 가파른 급경사에서 하나하나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육중한 내 몸의 무게가 내 두 다리에 그대로 턱 턱 실리고 있었다. 그렇게 실리는 몸무게로 왼쪽 정강이 통증은 가면 갈수록 더욱 격해지고 있었다. 악 악 하는 신음소리가 저절로 튀어나왔다. 발걸음이 멈칫 멈칫할 수밖에 없었고, 가뜩이나 더딘 내 발걸음이 더욱 더뎌질 수밖에 없었다. 이미 우리 일행들은 한참을 먼저 앞서가고 있었다.

“형님요, 무조건 참으셔야 합니다. 정 힘드시면 제가 어깨동무라도 해드릴 테니, 힘을 내십시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앞서간 리더 이 대장이, 뒤쳐진 나를 기다리고 있다가, 그렇게 내게 위로의 말을 건네고 있었다.

“됐어! 어깨동무는 필요 없어! 어쨌든 나 혼자 해결해 볼 거야!” 아무리 힘들다고 하더라도, 우리들 일행 모두를 챙겨가야 하는 이 대장을 괴롭혀서는 안 될 일이었다. 나 스스로의 힘으로 일정을 끝마무리해야 한다는 오기도 있었다. 그래서 어깨동무라도 해주겠다는 이 대장의 도움을 그렇게 간단하게 거절하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아 악!” 결국은 그 외마디 비명과 함께 만년설 그 바닥에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내디딘 왼쪽 발이 삐끗하면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격한 통증이 순식간에 몰아닥쳤기 때문이었다. 나동그라지는 그 순간, 내 몸을 지탱해주던 스틱 손잡이가 하나는 내 턱을 치고 다른 하나는 내 가슴을 치면서 저만치 튕겨나갔다.

너무 아팠다. 숨쉬기조차 어려울 정도였다. 그렇게 아픈 것이 서러웠다. 그 서러운 생각은 곧 내 두 눈을 흥건한 눈물로 적셨다. 그리고 엉 엉 통곡으로까지 이어졌다. 그 통곡은 이번의 안나푸르나 라운드트레킹에서 내가 통곡한 그 네 번째의 것으로서, 감사와 감동 그리고 회한에서 비롯된 다른 통곡과는 달리, 유일하게 너무 아파서 통곡한 것이었다.

때마침 지나가는 독일인 부부가 내 그런 몰골을 안쓰럽게 생각했던지, 내게 진통제 한 봉지를 건네줬다. 잠시 뒤, 어느 정도나마 통증이 진정되고 숨을 돌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부부의 고마운 마음씀씀이 덕분이었다. 그 고마움에, 찔끔 눈물 한 방울이 이미 젖은 내 두 눈을 더 축축하게 적셨다.

내게 진통제를 건네준 독일인 부부

내 다섯 번째의 통곡은 바로 그곳 묵티나트에서의 일로, 일행들이 마을 어귀에 넓게 자리 잡은 사원을 둘러보러 간 사이에 터졌다.

겉으로는 아픈 다리 때문에 걷기가 힘들어서 사원 구경하러 가지 못하겠다고 했으나, 사실을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초롱라 고개를 넘은 바로 그 다음날의 아침이어서, 내가 이뤄낸 그 기쁜 소식을 맨 먼저 아내에게 전하고 싶은 것이 바로 그 다른 이유였다. 그렇게 만사 제쳐놓고 혼자 로지에 틀어박혀 아내에게 띄울 메시지 문안을 생각 속에서 미리 짚어보고 있는 중에 그 통곡이 터진 것이다.

처음에는 그 고개를 넘는 순간의 상황만을 간단하게 요약해서 전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내가 초롱라 고개를 넘었다는 것과, 일행들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1시간 먼저인 새벽 3시쯤에 초롱페디 로지를 나서서 헤드랜턴에 의지해서 고개를 올랐다는 것과, 포터 마일라와 쾌청한 날씨 덕을 봤다는 것으로 대충 메시지 내용에 대한 구상을 마쳤다.

거기까지였으면 내 그 통곡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 그 구상이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아내에게 감사하는 내 마음도 전하고 싶어졌다. 마음으로 물질로 남편인 나를 도운 아내의 헌신에 대해 고마워하는 내용을 더 보태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구상을 이어가고 있을 때였다. 어느 순간인가 두 눈시울이 뜨거워지는듯하더니 미처 주체할 틈도 없이 금방 울음이 터져버린 것이다. 그동안 험난하게 넘어온 숱한 고갯길들이 우여곡절이 심했던 내 삶의 길들 같았고, 그런 나와 함께 한 아내의 삶 또한 그러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몰아쳤기 때문이었다.

깊은 계곡 위로 걸쳐진 현수교

주위에 아무도 없는 터여서, 이 눈치 저 눈치 볼 것 없이, 또 엉 엉 목청껏 울어버리고 말았다. 더해서, 병이 깊은 장모님 생각도 났고, 사법시험을 접고 일본으로 취직해서 떠난 막내 생각도 났고, 불철주야 회사 일에만 전념인 맏이 생각에 맏며느리와 맏손녀의 앞날 생각까지 났다. 심지어 연로하신 아버님 병환으로 고초를 치르는 친구 생각까지 났다.

한참을 울다가 다시 마음을 다잡고는, 아내에게 띄우는 문자메시지를 이렇게 완성시켰다.

「이번 트레킹의 최고인 해발 5,416미터의 초롱라 고개를 넘었어요. 해발 4,450미터의 초롱페디에서 새벽 3시에 나섰어요. 원래 새벽 4시에 나서기로 한 것이었지만, 똥배인 나는 일행들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전날에 이어 1시간 먼저 나선 것이었지요. 그래서 까마득한 절벽 길을 헤드랜턴에 의지해서 올랐어요. 포터 마일라의 적극적인 도움과 쾌청한 날씨가 내게 큰 힘이 되었어요. 그러나 그보다 더 큰 힘은 곧 당신이었어요. 방금 이 메시지를 치면서 또 폭포수 같은 눈물이 흐르네요. 벌써 5번째인데, 당신이 마음으로 물질로 밀어준 그 덕이 아니었다면, 난 오늘의 이 감동과 깨우침의 순간에 설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 덕분으로 이번 트레킹에서 가장 높은 고개인 초롱라 고개를 넘은 거고요. 초롱라 고개를 일명 초롱패스라고도 해요. 패스라는 말은 곧 고개라는 뜻이에요. 해발 6,000여 미터가 넘는 초롱피크 옆을 넘어가는 고개인데, 오후 2시쯤 그 고개에 서는 순간에, 그렇게 엉엉 소리를 내서 울어야 했어요. 그 험난하게 넘은 고갯길이 내 인생이었고 당신 인생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몰아치니, 어찌 눈물이 나지 않겠느냔 말이오. 마침 어제 아침에는 중학교 동기동창인 김용균 친구까지 문자메시지를 보내서 내 걱정을 해줬기에, 월남 참전 등 죽을 고비를 숱하게 넘기며 살아온 그 친구의 삶도 생각나더란 말이오. 어디 그뿐이겠소. 병이 깊은 어머님에 대한 생각은 안 났겠으며, 우리 막내 생각은 안 났겠느냔 말이오. 우리 사랑하는 손녀의 앞날 생각에, 회사 일에만 매달리는 맏이에 그런 남편으로 가사에 시달릴 맏며느리에 맏손녀 생각까지도 했소. 생각 끝에 그 결말을 맺었소. 당신 말마따나, 매사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로 말이오. 그리고 넘어선 곳이 해발 3,800미터의 묵티나트예요. 그렇게 하루만에 1,000여 미터를 올랐다가, 다시 1,600여 미터를 내려온 것이지요. 오늘 메시지의 끝은 당신에게 가장 큰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것으로 할게요. 그동안 연일 날이 청명했다는 것은 신의 도움이었어요. 어제는 강풍과 함께 쏟아지는 우박이 내 뒤를 따라 오더니만, 밤사이에 폭설이 내렸어요. 그리고 입산통제가 되었다고 해요. 만약 초롱라 고개 정상에서 그런 악천후를 만났다면, 난 그 고개에서 얼어 죽고 말았을 거예요.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그리고 이렇게 마지막으로 한 통의 문자메시지를 더 보냈다. 「나, 축복받았어요. 끝!」

그런데, 아내는 내게 겨우 이런 한 줄 답을 보냈을 뿐이다. 「마지막까지 힘 내슈!」

  주먹만 한 돌덩이가 수시로 굴러 떨어지는 ‘LAND SLIDE AREA’

여섯 번째의 통곡은 막 떠오르기 시작하는 아침 태양이 히말라야산맥의 만년설을 붉게 물들이는 그 일출 풍경과 함께였다.

이날은 새벽 3시에 잠을 깼고, 서둘러 호텔을 나섰다. 그리고 아직 어두운 포카라 시내 길을 달렸다. 해발 1,592m의 사랑곳에서의 일출 장관을 보기 위해서였다. 이른 새벽 시간임에도 도로는 이미 붐비고 있었고, 사랑곳으로 오르는 고갯길에서는 정체 현상까지 빚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정체되는 길에서 누군가 통제하는 사람이 있어 통행료까지 거둬들이고 있었다.

“형님, 신경 끄세요. 네팔이란 나라가 바로 이런 곳입니다. 동네 사람들이 나와서 통행료를 받는 것인데요, 줘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No Problem'이라고 했잖습니까.” 툴툴 대는 내 분위기를 리더 이 대장이 금방 알아차리고, 그렇게 선수를 쳐서 내 입을 막고 있었다.

6시쯤 해서 사랑곳 정상에 올랐을 때에는, 그 좁은 봉우리가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차서, 발 비비고 들어갈 틈조차 없을 정도였다. 눈치 볼 것도 없었고, 혹 시비에 걸릴까 겁낼 필요도 없었다. 어렵게 그 봉우리에 올라 히말라야산맥을 물들이는 일출 풍경을 놓쳐서는 안 될 일이었고, 또 그 이른 시간에 그곳 봉우리에 온 사람이라면, 다 마찬가지 마음일 것이어서, 틈새를 비집고 드는 것을 그리 탓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용케도 그곳 봉우리 북쪽 모서리에 자리 하나 잡을 수 있었다. 히말라야산맥 뿐만이 아니라, 해가 뜨는 동쪽까지도 훤히 내다볼 수 있는 명당 자리였다.

히말라야 그 첩첩산중 너머 동녘의 일출 풍경

동녘하늘이 벌겋게 달아오르는가 싶었다. 첩첩산중 너머의 하늘이었다. 산이 깊어서인지 태양은 쉽게 솟아오르지를 못하고, 그 넓은 창공으로 붉은 햇살만 토해내고 있었다.

잠시 정적의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기념비적인 그 순간이 사람들 마음을 고요하게 했기 때문이다. 곧 이어 웅성거리는 소리가 일더니 한 순간에 ‘와!’하는 한 목소리 같은 함성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첩첩산중 너머의 동녘에 태양이 그 모습을 드러냈는가 싶어서, 그 동녘하늘로 시선을 보냈다. 아니었다. 아직도 편 부채처럼 붉은 햇살이 공중으로 뻗쳐오르고 있었을 뿐이었다. 촌음의 시간에 주변 분위기를 다시 한 번 살펴보고서야 알았다. 그 함성은 서쪽을 향해 터진 것이었다. 저 멀리 까마득한 곳에 황금빛으로 빛나는 봉우리가 있었다. 아침 햇살이 그 봉우리에 찾아든 것이었다. 바로 히말라야산맥에서 7번째 높은 해발 8,167미터의 다울라기리봉에 물들인 일출이었다. 붉다 못해 마치 금덩어리인양 빛나는 봉우리였다.

   

아침 햇살을 받아 빛나는 안나푸르나 산군, 맨 왼쪽이 다울라기리봉

뒤이어 안나푸르나산군의 봉우리들에 아침 햇살이 찾아들기 시작했다. 왼쪽 끝의 안나푸르나 1봉, 오른쪽 끝의 안나푸르나 2봉, 가운데 뒤쪽의 안나푸르나 3봉과 4봉, 그리고 그 봉우리가 물고기꼬리처럼 생긴 맨 앞쪽 해발 6,999m의 마차푸차레봉에 이르기까지 순차적으로 일출의 흔적을 남긴 뒤에, 드디어 동녘 첩첩산중 그 너머에서 그 하루를 밝히는 아침 태양이 붉디붉은 그 몸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딱 3분의 시간에 먼 만년설 위로 태양의 몸체 전부가 둥실 떠올랐다. 장관의 그 풍경은, 곧이어 내 가슴에 또 하나의 깊은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다가온 감동은, 다시금 울컥 위로 솟구쳐 가슴에 통곡의 씨앗을 심고 있었다. 이어서 목구멍으로 치솟는 그 울음, 내 굳이 참지 않았다. 아예 울어버리는 것이 시원하겠다 싶었다. 그래서 결국 그렇게 철철 눈물을 흘리며 통곡하고 만 것이었다. 그렇게 통곡하는 내 머리 위로, 행글라이더 한 대가 붕 붕 소음을 일으키며 가로질러 날아가고 있었다.

안나푸르나 라운드트레킹을 시작한지 열사흘 째가 되는 2013년 4월 1일 월요일 아침, 포카라 사랑곳에서의 일이었다.

   

네팔 제 2의 도시 포카라 사랑곳에서 바라본 안나푸르나의 아침 풍경

나는 유독 매일 매일의 일출에 특별한 의미를 두고는 한다.

수없는 세월을 두고 하루도 빠짐없이 뜨고 지는 태양이긴 하지만, 그 아침의 일출에 굳이 특별한 의미를 두는 것은, 아침태양이 동녘하늘을 붉게 물들이면서 떠오르는 그 장엄한 분위기에서, 마음을 새롭게 추스르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곧잘 아침태양을 꿈과 희망에 연결 짓고는 한다. 영국 런던의 템즈강 그 강변에서도 그랬고,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필란드 헬싱키로 가는 발틱해 크루즈 그 함상에서도 그랬고, 지중해 연안의 터키 남부 도시인 안탈랴 그 해변에서도 그랬고, 융프라우 자락인 스위스 인터라켄에서도 그랬고, 뉴질랜드 남섬의 캔터베리 대평원에서도 그랬다.

포카라 사랑곳에서 맞은 히말라야에서의 일출에서도 마찬가지로 내 꿈과 희망을 연결 지었다.

드디어 일곱 번째 통곡이 터졌다. 일정 열사흘 째인 4월 1일의 일로, 오후 5시쯤 해서 카트만두 빠슈빠띠나트 사원을 찾았을 때였다.

그 사원은 갠지스강 상류인 바그마띠강을 끼고 세워진 네팔 힌두교 최고 최대의 사원으로, 시바신을 섬기는 사원이라고 했다. 우리가 그 사원을 찾은 것은, 소위 ‘사두’라고 해서 그 사원 곳곳에 진을 치고 있는 힌두교 승려들을 만나보기 위함이었고, 강둑을 따라 줄을 이은 공개 화장터를 들러보기 위함이었다.

사두는 가족과 일터를 떠나 오로지 영적인 깨달음을 추구하는 힌두교 수행자들을 두고 하는 말인데, 진정한 수행자로 보이는 깔끔하고 품위 있는 분위기의 사두들도 있었지만, 풀어헤친 머리에 꼬질꼬질 때에 젖은 반라의 걸인 차림을 한 사두들도 있었다. 그 중 몇몇은 사두로서의 품위에 어울리지 않게 뜨리술이라는 작은 삼지창과 걸식용 사발을 들고 다니며 여행객들에게 구걸을 하기도 했다. 사진을 한 장 찍어도 몇 푼의 돈을 줘야 했다.

본인 몰래 어느 사두를 피사체로 해서 사진을 한 장 찍었다가, 이를 눈치 챈 그 사두가 졸졸 나를 따라다니며 손을 내밀며 돈을 달라는 바람에, 낯 뜨겁게 도망을 치는 해프닝도 있었다.

   

사두와 함께 한 리더 이상배 대장

내가 통곡을 한 곳은, 그 사원을 끼고 흐르는 바그마띠강 바로 그 강둑에서였다.

강둑을 따라 화장터가 줄을 이어 있었고, 그 화장터에서 천으로 감싼 시신들을 태우고 있었다. 여기저기 화장터에서 피어오른 검은 연기가, 바로 내 눈앞을 스쳐 하늘로 솟아오르고 있었고, 쿰쿰한 시체 타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울컥 토할 것 같은 냄새였지만, 굳이 피하거나 코를 막지는 않았다. 그냥 그대로 다 맡았다. 내 생전 처음의 일이었다. 내 생각의 세계가 그 참혹한 현장을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족들의 애통한 슬픔이 나를 통곡케 한 것이 아니었다. 그곳 화장터 구경을 하러나온 시민들이 강 건너에 줄지어 세워둔 오토바이의 행렬도, 그 구경꾼들의 무심한 시선도, 시신을 태운 그 재가 버려진 강에서 혹시라도 금이빨 하나 건질까 싶어서 그 더러운 물속을 뒤지는 어느 젊은이의 모습도, 마찬가지로 나를 통곡케 한 것이 아니었다.

언젠가 내 이 육신도 그렇게 태워질 것이란 생각이, 나로 하여금 하염없는 눈물을 그 자리에서 흩뿌리게 한 것이었다. 그 통곡, 내 이번 안나푸르나 라운드트레킹 일정에서의 마지막 통곡이었다.

바그마띠강 강변의 화장터 현장

작은 이야기꺼리들

사실 이번의 안나푸르나 라운드트레킹은 삶에 대한 내 의지를 스스로 챙겨보는 시금석 같은 기회이기도 했지만, 그 이외에도 내게 주위에 들려줄 참으로 많은 이야기꺼리들을 만들어 준 계기가 되기도 했다. 다음은 그 이야기꺼리들의 대강이다.

주인 없이 방치된 소와 개들이 길거리를 마구 돌아다니는 카트만두 시가지의 그 낯선 풍경도 그 중 하나이고, 부족끼리 피의 보복이 끊이지 않았던 네팔의 역사도 그 중 하나이고, 맨 손으로 뭉쳐서 먹는 ‘달밥’이라는 현지 음식도 그 중 하나이고,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이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시인 윤동주의 서시를 읊으면서 절벽 길을 걸은 사연도 그 중 하나이고, 우리 사무소 직원들에게 주인의식을 심어줄 생각에서 장문의 메시지 한 통씩을 띄워 보낸 것도 그 중 하나이고, ‘수필’이라는 피천득의 글에 인용된 덕수궁 청자연적의 꼬부라진 꽃잎 하나같은 파격의 마음으로 이번 트레킹에 나선 것도 그 중 하나이고, 달빛 별빛이 찬란한 밤하늘의 풍경을 바라보며 북두칠성 별자리에 담긴 어미 곰 칼리스토와 아기 곰 아르카스의 슬픈 전설을 연상한 것도 그 중 하나이고, 여신의 은빛 머리칼을 풀어헤친 것만 같은 안나푸르나 그 산군 봉우리 봉우리의 눈보라 풍경도 그 중 하나이고, 죽을 고비를 숱하게 넘겨가면서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를 비롯해서 해발 7,126m의 히말라야 히무룽 등 세계 곳곳의 고봉들을 정복한 리더 이 대장의 험난했던 그 삶의 이력도 그 중 하나이고, ‘LAND SLIDE AREA’라고 해서 푸석푸석 메마른 땅에 작은 돌들이 뒤섞여 가파른 경사면을 이루고 있는 지역을 지나가면서 굴러 떨어지는 주먹만 한 돌을 피해야했던 위기도 그 중 하나이고, 산골 깊숙한 곳에서 만난 고산족 어린이의 그 맑은 눈동자를 보면서 세상사에 찌든 내 삶의 이력을 돌이켜본 것도 그 중 하나이고, 여정의 곳곳에서 마주치는 목걸이니 반지니 팔찌니 해서 장신구들을 파는 노점을 들러 작은 것 하나라도 꼭 사준 것도 그 중 하나이고, 구스다운 침낭에 등산복에 속옷과 양말에 카라반 모자에 털모자에 두꺼운 스키용 장갑에 아이젠에 스틱에 고글까지 해서 장거리 고산지대 트레킹에 필요한 기본 장비와 칫솔 치약에 핫팩에 혈압약과 위장약에 1회용 반창고에 붕대에 비누에 소주에 라면에 고추장에 미숫가루까지 해서 상비약과 먹을 것을 챙겨준 주위의 도움도 그 중 하나이고, 미국인 영국인 독일인 프랑스인 오스트레일리아인 중국인 태국인 등, 트레킹 내내 만난 숱한 외국인들과의 만남도 그 중 하나이고, 그 중에서도 특히 프랑스인 부부에게 에디뜨 피아프의 샹송인 ‘Non, Je Ne Regrette Rien’을 청해 들은 사연도 그 중 하나이고, 메일 주소를 주고받은 몇몇에게 그들을 주인공으로 찍은 사진을 첨부해서 ‘Thanks, By You.’라는 제목의 메일을 띄운 것도 그 중 하나이고, 초롱페디 로지 문틀에 ‘대한민국 Korea 기원섭 2013. 3. 28.’라고 해서 내가 그곳에 발걸음 한 흔적을 남긴 것도 그 중 하나이고, 포터들이 ‘래싼삐리리’라는 그들의 민요를 부를 때 나도 그와 같은 분위기인 우리의 ‘아리랑’을 부르며 눈물에 젖은 것도 그 중 하나이고, 카트만두에서 베시사하르로 베시사하르에서 ‘참제’ ‘다네큐’ ‘차메’ ‘피상’ ‘마낭’ ‘야크카르카’ ‘초롱페디’를 거쳐 초롱라 고개를 넘고, 그 고개 넘어 묵티나트에서 ‘좀손’ ‘마르파’ ‘따또빠니’ ‘베니’를 거쳐 포카라에 이르고, 포카라에서 경비행기를 타고 다시 카트만두로 들어가는 전장 695.3km의 여정에서 군데군데 엮어 놓은 갖가지 인연도 그 중 하나이고, 힌두교 경전을 새겨놓은 ‘마니스톤’이라는 돌과 ‘마니월’이라는 원통과 ‘타르초’라는 깃발과 ‘스투파’라는 돌탑 등 네팔 현지주민들의 토속 신앙에 대한 이야기가 그 중 하나이고, 어느 로지 화장실에서 굳은 살 벗길 때 쓰는 조약돌을 비누인줄 알고 세수하려고 집어 들어 얼굴을 문지르다가 찰과상을 입은 해프닝이 그 중 하나이고, 만년설 풍경을 맨 눈으로 보고 싶어 고글을 벗었다가 ‘white out’이라고 해서 설맹현상에 빠질 번한 위험도 그 중 하나이고, 우리들 트레킹을 도와준 네팔 현지 법인인 아시아 트레킹의 ‘툭텐’ 부사장 집에 초대되어 저녁을 대접받은 이야기가 그 중 하나이고, 헌신적으로 나를 도운 포터 마일라의 인생역정에 대한 이야기가 그 중 하나이고, 낡은 목장갑에 허름한 운동화를 신고 만년설 위를 걸어야 하는 그에게 내가 이번 트레킹에서 쓴 스키용 장갑에 아이젠에 헤드랜턴 등 등산 장비를 물려준 것도 그 중 하나이고, 귀국을 앞둔 일정의 막바지에 카트만두 시내 어느 시장통을 들러 ‘가타’라고 하는 목도리 20장을 깎고 또 깎아 절반 값인 200불에 샀으나 그 역시 바가지였던 사연이 그 중 하나이고, 일정 마지막 날까지 아침 세수 때마다 코피를 줄줄 흘려야 했던 이야기가 그 중 하나이고, 일정 내내 수염을 깎지 않아 덥수룩해진 내 얼굴 모습과 떠날 때 94kg이었던 내 몸무게가 일정 끝에 이르러서는 3kg이 줄어들어 91kg이 된 신체적 변화도 그 중 하나이고, 일정 마지막 날에 새벽같이 멀리 인천국제공항까지 달려온 아내의 고마운 마중도 그 중 하나이다.

언뜻 별 것 아닌 아주 작은 사연으로 비쳐질 수도 있겠지만, 내게 있어서는 하나같이 가슴 깊이 감동을 담아준 것들로서, 오랫동안 잊지 못할 너무나 소중한 사연들이기만 하다.

에디뜨 피아프의 샹송 ‘Non, Je Ne Regrette Rien’를 부른 프랑스인 부부

       

네팔의 전통음식 ‘달밥’

   

등굣길의 카트만두 학생들

   

일정 내내 그 무거운 카고백을 짊어져 준 포터들, 왼쪽 끝이 나를 도운 마일라

   

고산증이 나타나기 시작한 마낭 외곽의 노점상 여인, 한국에서 돈을 벌어 차렸다고

집으로 가는 길

전기가 끊어진 깊은 오지에서 만난 소녀 하나는 내 가슴에 오랫동안 깊은 감동으로 담겨 있는 영화 한 편을 떠오르게 했다. 장예모 감독에 장쯔이가 주연했던 1999년 중국 영화 ‘집으로 가는 길’(The Road Home)이다.

내가 그 영화를 보게 된 것은 검찰 입사동기로 입사 초기부터 지금껏 늘 내게 멘토 같은 역할을 해온 오세완 법무사의 덕분으로,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내가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수사 2과장으로 근무할 때의 일이었다. “이 영화 한 번 볼만 해. 영화를 좋아하는 네가 봤으면 해서...” 그러면서 오 법무사가 내게 CD 한 장을 건네줬는데, 그 CD에 담겨 있는 영화가 바로 그 ‘집으로 가는 길’이라는 영화였다.

중국의 오지 마을 삼합둔으로 부임해온 총각선생님에게 한 눈에 반해버린 열여덟 나이의 시골처녀인 쟈오 디의 순박하고 애틋한 사랑이 그 줄거리였다. 마차를 타고 시골길을 달려오는 선생님을 먼발치에서 훔쳐보는 시골처녀의 짝사랑, 그것이 그 둘에게는 첫 만남의 인연이었다. 가을 추수철에 노랗게 물든 시골길을 달려가는 마차를 따라 먼발치 나무 뒤에 숨어 같이 뛰어가는 솜옷 차림의 시골처녀 모습은 마치 우리 엄마의 그 또래 시절을 보는 듯 했다.

두 갈래로 땋아 내린 검은 머리엔 시골처녀의 순박함이 묶여져 있는 듯했고, 선생님의 목소리라도 들으려고 집에서 가까운 새 우물을 마다하고 학교를 지나치게 되는 훨씬 멀리 떨어진 옛 우물에 물 길러가는 그 발길, 어린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의 말을 담벼락 뒤에 숨어 귀담아 듣는 그 경청, 어쩌다가 마주치는 선생님을 바라보는 그윽한 그 눈 빛, 잠시 도시로 떠나는 선생님이 허기지지 않도록 찐만두를 담은 사발을 들고 선생님이 타고 가는 마차를 뒤 쫒다가 미치지 못하고 넘어져 그 사발을 깨뜨리고 난 뒤 두 다리를 축 늘어뜨리고 한없이 울어버리는 그 애절함, 선생님으로부터 선물 받았던 빨간 머리핀을 잊어버렸다가 이를 되찾으려고 몇날며칠 온 동네를 헤매다가 담장 밑 흙속에 파묻혀가는 핀을 찾아들고 기쁨에 겨워 어쩔 줄 몰라 하는 그 환희, 도시로 떠난 선생님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비가 오나 눈이오나 폭설이 몰아치나 한결같이 선생님이 좋아하는 빨간색 솜옷 차림에 빨간 목도리를 한 채 한없이 기다리는 그 인내, 혹한이 몰아치고 철새가 모두 돌아갈 때까지 기다리다 지쳐 병들어 버린 그 초췌함, 이 모든 사랑의 지어감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특히 주연을 맡은 여배우 장쯔이의 천연덕스러운 연기가 일품이었다. 40년을 해로한 뒤 심장병으로 이승을 떠난 남편을 장사지내는 과정에서 상여를 멜 일꾼이 없다는 이유로 한사코 자동차로 운구하려는 아들에게 ‘내가 너 아버지를 얼마나 사랑했었는데... 그렇게 사랑한 아버지가 혼령이라도 집으로 되돌아오려면 발자국의 흔적이라도 남겨둬야 할 것 아니냐.’라면서 설득시키는 장면에서 나는 그동안 참고 참았던 눈물을 철철 흘리고야 말았다.

   

영화 ‘집으로 가는 길’에서 선생님을 기다리는 시골처녀 쟈오 디

이젠 전기도 끊어진 어느 오지 마을로 들어섰을 때의 일이었다. 멀리 길 오른쪽을 걸어오는 사람이 둘 있었다. 가까이 다가오면서 보니 그 둘은 이제 일곱 내지 여덟 살쯤 됐을성싶은 남자아이와 그보다 한두 살 더 어려보이는 여자아이였다. 느낌에 앞선 남자아이는 오빠이고 뒤따르는 여자아이는 여동생인 듯했고, 분위기로 봐서 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가는 길인 듯했다.

“나마스떼” 그렇게 네팔식 인사말을 하고 둘을 향해 다가오라는 손짓을 했다. 피곤할 때 먹으려고 배낭 속에 넣어놓은 초콜릿 몇 개를 전해줄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그 둘은 선뜻 내게 다가서지 않았다. 똥배의 내 풍모에 잔뜩 겁을 집어먹은 듯 경계의 눈초리를 늦추지 않고 있었다. 여자아이가 더 심해서 남자아이의 등 뒤로 살짝 숨기까지 했다. 참 순박한 모습이었다. 언뜻 그 여자아이의 얼굴에 영화 ‘집으로 가는 길’에서의 주인공인 쟈오 디의 순박한 얼굴이 오버랩 되고 있었다.

오빠의 등 뒤로 숨어가는 네팔 오지의 소녀

새로운 도전

나는 늘 새로운 도전에 나서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서유럽 여행을 필두로 해서 동유럽 북유럽 터키 뉴질랜드 미국 여행을 줄을 잇듯 한 것도, 벼랑 끝에 선 이해당사자들이 다투는 집행관의 현장 사연을 4년 동안 일기로 쓴 끝에 ‘집행관일기’라는 책으로 펴낸 것도, 뉴질랜드 남섬 카라와우 다리에서의 50m 번지점프도, 서울에서 내 고향 문경까지 반 천 리길을 걸어서 간 것도, 이번의 안나푸르나 라운드트레킹에 선뜻 나선 것도, 나로서는 모두 다 도전의 의미를 담은 것이었다.

내 그런 도전에 대해 주위의 부추김과 칭찬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무모하고 공연한 짓을 했다는 질타도 숱했다.

영국의 석학 아놀드 토인비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인간은 누구든 현실에 안주하려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어느 정도의 단계에 이르면 거기에 만족하고 그만 멈추려고 한다. 그런데 인간이 처한 운명은 자꾸만 변하기 때문에 그럴 수가 없다. 운명은 인간에게 다음 단계로 올라가라고 도전장을 던진다. 그 단계에 이르면 다른 도전이 와서 또 다음 단계로 올라가게 한다. 그렇게 죽는 순간까지 인간은 도전을 받고 살아간다.」

나 또한 같은 견해다. 내게 다가오는 매사가 나로서는 거역할 수 없는 사연들일 뿐이고, 그 사연들을 견뎌 극복해내는 것 자체가 도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도전과 함께 해온 내 지난 삶이 자랑스럽기만 한 지금 이 순간이다.

「살면서 가끔은 울어야 한다. 곪은 상처를 짜내듯, 힘겨운 세상 살아가면서, 가슴 한 가운데 북받치는 설움, 때론 맑은 눈물로 씻어내야 한다.」시인 고창영이 지은 ‘살면서 가끔은 울어야 한다’라는 한 편 시의 전문이다.

나도 그렇게 울고 설움을 씻어왔다. 이번 안나푸르나 라운드트레킹 일정에서도 참 많이 울었다. 그렇게 흘린 눈물과 함께 내 마음속에 새겨 담은 구절이 하나 있었다.

이 대장이 트레킹 도중에 틈틈이 대원들에게 들려준 세계적 알피니스트들의 활약상에 대한 이야기꺼리 중의 한 대목으로, 모리스 헤르조그가 세계 최초로 안나푸르나 1봉 등정에 성공한 후에 기자의 질문에 답을 하면서 던진 바로 이 한 마디 말이다.

「인생에는 넘어야할 또 다른 안나푸르나가 있다.」

힘들었지만, 정말 보람 있는 여정이었다.

[김용갑]

이젠 눈물 고만 흘리고 열심히 다녀오시게
흐뭇한 웃음을 흘리도록 준비를 하셔서 좋은 글 올려주시게

[청송/ 이명희]

한번도 아닌 두번째 도전하는 히말라야트래킹 잘 다녀오시고 여행기도 올려주시게나...
내일 출발하여 보름후에 돌아오시겠구랴...미리 축하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