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시장에 새로운 가치를 하이라이트하다
스포츠 브랜드 전문가, 이준권 하이라이트브랜즈 대표(의류환경학 95)
패션은 늘 새로움과 맞닿아있다. 변화하는 사회, 라이프스타일, 트렌드 등 우리를 둘러싼 많은 환경 속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 매 시즌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매번 새롭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동경하면서도 선뜻 도전하기 어려운 분야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히려 그 변화 속에서 새로운 통찰과 가치를 창출해 낼 수 있어 즐겁다는 이준권 동문. 빠르게 변화하는 패션 시장에 대한 통찰력으로 창업 3년 만에 매출 2천 억 원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우며 패션업계에서 집중 조명을 받고 있다.
남들이 도전하지 않는 일
이준권 동문이 의류환경학과에 입학하던 30년 전, 당시 패션 전공자는 대부분 여성이었다. 남성들이 선호하는 분야도 아니었다. 하지만 남들이 안 하는 일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소신 있게 의류환경학과에 입학했다.
“부모님은 제가 공과대학에 가길 원하셨지만 사실 저는 좀 다른 진로를 찾고 싶었어요. 옷은 누구나 다 입잖아요. 자연스럽게 패션 쪽에 관심이 있었죠. 요즘처럼 패션에 관한 정보를 접할 일도 많지 않았던 시기였는데, 지인으로부터 연세에 이런 과가 있다는 소개를 듣고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패션 관련 전공이라 하면 대개 디자이너를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그는 이 선택에서도 남들과 달랐다. 경영학을 부전공으로 했을 정도로 패션 사업 분야가 더 흥미로웠다. 특히 학회에서 선배들을 초청해 듣는 현장 경험담이 큰 영감을 주었다. 그래서인지 전공 과목 중에서도 유독 유통이나 섬유 관련 기초 지식들에 재미를 붙였고, 그 시절 배운 지식과 경험 덕분에 현재의 사업에도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관심있는 일에는 호기심도 많고 추진력도 남다른 이준권 동문은 대학 시절 다양하고 재미있는 경험들로 바쁘게 보냈는데, 일찌감치 직접 의류 판매를 해보기도 했다.
“축제 때 티셔츠를 만들어 팔면서 옷 장사가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됐죠. (웃음) 1학년 때는 한두 달 정도 동대문에서 유행하던 아이템들을 떼다가 방문 판매를 하기도 했어요. 그런 경험들을 통해 사람들이 어떤 아이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시장을 좀 이해할 수도 있었고요.”
패션 회사의 커리어는 위기를 극복하는 값진 자산으로
이준권 동문은 졸업 후 당시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대표 패션 기업에 입사했다. 이랜드 캐주얼 사업부서를 거쳐 푸마, 뉴발란스, 데상트 등의 스포츠 패션 분야에서 오랜 기간 상품기획 경력을 쌓았다. 평소 스포츠를 좋아했던 그는 자연스레 스포츠 패션에 관심이 많았다. 대학 시절부터 꿈꿨던, 언젠가 스포츠 패션 회사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그의 바람이 이뤄진 것이기도 했다. 스포츠 브랜드를 거치기 전 이랜드 캐주얼 사업부에서의 고된 경험은 더욱 값진 자산이 되었다.
“처음 입사하면 신입사원들에게 희망하는 부서를 묻거든요. 저는 어느 부서로 가든 다 배울 게 있다고 생각해서 힘든 부서도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가겠다고 했어요. 캐주얼 사업부로 발령이 났는데 당시 캐주얼 사업부에서 한 브랜드의 상황이 그리 좋지 않았어요. 판매가 잘 안되는 매장 철수도 해봤죠. 입사하고 1년 반 정도는 엄청 고생을 했죠.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 경험이 제 인생의 변곡점이자 큰 자산이 됐어요. 그때 고생했던 일들을 생각하면 웬만큼 힘든 일이 있어도 그렇게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거든요. 또 브랜드라는 게 흥망성쇠가 있거든요. 많은 투자를 하고 열심히 준비해도 다 잘되지 않아요. 저 역시 야심차게 준비했던 첫 브랜드가 잘되지 않았어요. 투자했지만 손해를 보고 접은 사업도 있고요. 당시의 경험 덕분에 그런 위기가 올 때마다 침착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어요. 오늘 어려운 일을 겪더라도 인생에서 마이너스는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었죠.”
누구보다 먼저 준비한 패션업계의 변화
그렇게 약 20년을 일하면서 그는 세상이 엄청나게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체감했다. 패션시장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변화 속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아나서기로 했다. 오랜 경력이 주는 안정감보다는 새로움을 계속 추구해 나가는 설렘이 더 컸다. 모바일 혁명이 그 중심에 있었다.
“회사에서 출장도 많이 다니고 해외에서 사람들도 많이 만나면서, 제가 창업하기 5~6년 전부터 세상이 변화해 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대부분 무언가 변화할 때 기회가 생기잖아요. 그래서 본격적인 변화에 앞서 뭔가를 하고 싶었어요. 옷을 모바일 기기로 구매하는 비즈니스 구조가 커지기 시작한 게 10년 정도밖에 안 돼요. 기존 유통방식은 완전히 다 바뀔 것이라는 걸 발 빠르게 감지하고 스터디를 시작했어요. 패션회사에 다니면서 일해 본 경력을 이 변화와 접목하면 다시 새로운 무언가를 이뤄낼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의 예측과 한 발 빠른 준비는 들어맞았다. 게다가 팬데믹으로 인한 온라인 쇼핑의 가속화는 그에게 절묘한 기회가 됐다. 패션업계에서의 가장 큰 변화는 유통 환경의 변화였다. 이전에는 큰 기업이 투자해 옷을 만들고 오프라인 매장에 공급해 판매하는 방식으로 운영돼 유통 비용이 높았다. 하지만 온라인에서는 시장이 제한적이지 않은 데다 누구나 창업자가 될 수 있었다.
“본인의 능력과 의지만 있으면 사업을 할 수 있는 거예요. 아이디어만 있으면 온라인으로 팔면 되니까요. 디자인이라는 것도 과거와 다른 방식으로 변했어요. 제가 학교 다닐 때는 손으로 그림을 그리거나 했지만 요즘은 인공지능으로도 그런 창조적인 작업이 가능하잖아요. 초기 투자 비용이 확 줄었어요. 대학생도 창업이 가능하게 된 시대, 기존 패션 산업의 룰이 다 바뀌게 된 거죠.”
누구보다 일찍 패션 시장의 변화를 감지했던 이준권 대표는 그렇게 자신만의 사업을 시작했다. 2019년, 그가 현재 수장으로 있는 하이라이트브랜즈가 탄생했다.
숨겨진 보석과 같은 브랜드를 발굴해 성장시키는 가치
패션 분야를 떠올리면 크리에이티브한 브랜드를 만드는 화려한 삶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그러나 창업 후 이준권 동문의 전략은 좀 달랐다. 새로운 브랜드 론칭에 중심을 두기보다는 업종을 넘어 패션과 접목할 수 있고 성장 가능성이 높은 기존 브랜드를 발굴하고, 판권을 국내로 들여와 패션 라인을 전개하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수립했다. 하이라이트브랜즈의 브랜드인 ‘코닥어패럴’과 ‘말본골프', ‘디아도라’가 대표적이다. 이런 전략은 패션 시장에 대한 그의 통찰력에서 비롯되었다.
“사실 새로운 브랜드는 하루에 하나씩이라도 만들 수 있죠. 그런데 브랜드라는 게 생명력을 불어넣기 매우 힘들거든요. 아무리 우리가 좋은 브랜드라고 말해도 소비자들이 그렇게 느껴야 해요. 또 크리에이티브한 생각도 만들어내기 어렵죠. 코닥처럼 해외에서 가지고 오는 브랜드는 초기 투자비용이 덜 들기도 하고요. 브랜드가 어느 정도 알려져 있으면 마케팅비 등을 낮출 수 있고 들여오는 브랜드의 인지도가 있으면 심리적으로 더 관심이 가기도 하고요. 사실 코닥은 너무 따듯한 브랜드 이미지를 가지고 있잖아요. 이런 이미지를 잘 풀어낼 수 있는 방법이 많을 것 같아서 잘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죠.”
이런 비즈니스 전략에 힘입어 2020년 론칭한 코닥어패럴은 단기간 내 큰 인기를 끌었다 처음에는 아날로그 필름카메라를 대표하는 코닥의 브랜드 이미지에 대해 회사 내부에서도 호불호가 갈렸다. 그러나 그는 40~50대에게는 필름카메라가 주는 향수를, 코닥 브랜드를 잘 모르는 10~20대에게는 새로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주목받지 않는 브랜드로 과연 되겠느냐는 말들도 있었어요. 그런데 솔직히 이제 막 창업하는데 누가 널리 알려진 브랜드를 주겠어요. 숨겨진 보석을 발견해서 키워내는 것이 우리의 역량이라고 생각했죠. 저희 회사 이름이 하이라이트브랜즈인 것도 그런 이유에서예요. 보석처럼 잠재력 있는 브랜드를 찾아내고, 좋은 브랜드로 성장시키는 게 바로 우리의 능력이자 가치있는 일이라고 여겼죠. 코닥어패럴은 그런 점에서 우리 스스로도 뿌듯하고 재미있고 의미가 큰 브랜드예요. 그런 브랜드들을 찾아냈고, 찾고 있습니다.”
발랄하고 따듯한 이미지의 브랜드, 코닥어패럴(사진: 하이라이트브랜즈 제공)
편안한 복장으로 골프를 즐기는 문화를 선보인 말본골프(사진: 하이라이트브랜즈 제공)
그는 코닥어패럴을 시작으로 말본골프, 디아도라 등의 브랜드를 연속해 히트시켰다. 특히 말본골프는 시장의 새로운 축, 골프웨어 문화를 만들었다고 자부하는 브랜드다.
“한국만큼 차려입고 골프를 치는 나라가 거의 없어요. 대개 일상웨어를 입고 골프를 쳐요. 아무래도 한국에서는 골프가 비즈니스의 툴이 되다 보니까 골프웨어 시장이 많이 발달되어 있기도 하죠. 전 세계 골프웨어 시장에서 한국이 40~50퍼센트 정도를 차지해요. 그런 시장에서 말본골프는 좀 편하고 자유롭게 골프웨어를 입는 문화를 만들었어요. 처음에는 무슨 골프웨어가 이렇게 헐렁하냐고, 낯설어하는 분들의 컴플레인도 들어야 했지만요. (웃음) 단순히 돈을 벌었다거나 유명 브랜드를 유치했다는 점보다는 편안하게 골프를 ‘즐기는’ 새로운 문화를 선도하고 정착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죠.”
창업 3년 만에 그가 이끄는 하이라이트브랜즈는 매출 2천 억 원을 달성하는 성과를 기록했고, 최근 제51회 상공의 날 기념식에서 산업포장을 수상하는 기쁨을 얻었다. 2024년 하반기 론칭을 준비하고 있는 브랜드도 있다. 여러 번의 콘택트와 설득 끝에 들여오는 글로벌 라이프스타일 캠핑브랜드 디오디어패럴이다.
K-패션 산업을 키우기 위한 해외시장 진출과 신진 디자이너 발굴
이준권 동문은 가치 있는 브랜드를 발굴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지만 젊은 디자이너들의 신진 브랜드에 대한 투자와 육성, 창업자들을 위한 노하우 공유에도 기꺼이 나서고 있다.
“하이라이트브랜즈는 키르시나 비바스튜디오 등 젊은 디자이너의 브랜드에 투자해 그들이 창의력과 아이디어를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도 전개하고 있어요. 키르시 같은 브랜드는 일본시장에서 큰 호응을 얻고 있어요 연세 후배들도 그렇고 젊은 창업자들이 많잖아요. 최대한 시간을 내서 그 친구들을 만나고 제가 겪었던 시행착오 같은 것도 얘기해 주고 궁금한 점들은 언제든지 답변해 주기도 해요. 그게 요즘 가장 큰 보람이죠. 6월에는 홍대 앞에 저희 브랜드를 모은 플래그십 스토어를 오픈하는데, 외국인들이 관광을 많이 오는 곳이잖아요. 좋은 브랜드이지만 선보일 기회를 갖지 못했던 젊은 창업가들의 브랜드를 모아 1층에 쇼룸을 구성할 예정이에요. 그들에게 기회를 만들어 주고 싶고, K-패션의 성장과 확장을 통한 선순환으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그가 지원하고자 하는 신진 브랜드 육성은 단순히 사회적 기여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패션 업계의 발전, 나아가 스스로의 성장과도 맞닿아 있다. 젊은 창업자들과 교류함으로써 그들로부터 영감을 받기도 하고, 또 좋은 아이디어에 투자해 선순환이 이뤄진다면 우리나라 브랜드도 글로벌 패션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신진 브랜드 지원과 별개로 하이라이트브랜드의 해외 진출도 가시화되고 있다. 선명한 컬러와 따뜻한 이미지로 중국인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코닥어패럴을 시작으로 K-패션을 널리 알리고 있다.
이준권 동문에게 패션은 ’가치를 창조하는 일’이다. 그래서 가장 재미있고, 잘 맞고, 의미가 있다. 언제나 변화를 예민하게 감지하고 남들보다 한 발 앞서 미래를 준비해야 하기에 늘 일이 많고 때론 힘들기도 하지만, 패션 브랜드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 내는 일은 대단히 매력적인 일이다.
“같은 옷이라도 어떤 건 몇 만 원이고, 어떤 건 몇 백만 원이죠. 그게 바로 브랜드의 가치예요. 그런 가치를 창조해 낸다는 건 재밌고 매력적인 일이에요.”
세상에 없었던 브랜드가 만들어지고, 당대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과 문화를 변화시키며, 새로운 시장을 형성해 가치를 만들어내는 패션 산업은 어쩌면 항상 블루오션인지도 모른다. 오랜 경험에서 비롯된 패션업계에 대한 통찰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며 한걸음씩 K-패션의 크기를 확장하고 있는 이준권 동문의 다음 발걸음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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