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nytimes.com/athletic/5496187/2024/05/17/jurgen-klopp-manager-liverpool-secrets/
by 제임스 피어스
위르겐 클롭 감독은 9년 가까이 지휘봉을 잡았고 7개의 메이저 트로피를 거머쥔 뒤 리버풀을 떠난다.
그는 구단 역사와 현시대의 잉글랜드 축구에서 가장 혁신적인 감독 중 한 명이었다.
그의 새 출발을 기념하기 위해, 디 애슬레틱은 축구계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 중 한 명의 완전한 일대기를 따라 작성된 시리즈 기사인 'The Real Jurgen Klopp'을 독자들에게 선보일 예정이다.
3부에서는 클롭의 신체적 외형(그리고 지난 몇 년 동안 어떻게 변화했는지), 그의 지휘 아래에서 드러났던 도상학(iconography), 그리고 클롭이 상업적으로 강력하게 부상한 사실을 통해 클롭의 브랜드를 살펴본다.
5부에서 제임스 피어스는 12명 이상의 리버풀 전·현직 선수, 스태프, 임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클롭 감독의 비결을 밝혀보았다.
펩 레인더스는 클롭이 리버풀에 기여한 규모를 어떻게 요약해야 할지 고민하며 시간을 보냈다.
클롭이 얼마나 이점을 가져다주었을까. 이 네덜란드 코치는 2015년 클롭이 처음 부임했을 때, 그를 맞이하기 위해 이곳에 있었고 그 이후로 코칭 스태프진에서 거의 모든 단계 거치며 그의 곁에 남았다.
레인더스는 디 애슬레틱에 이렇게 말한다. "지난 30년에서 40년 동안 위르겐과 같이 클럽을 바꾼 코치는 많지 않습니다. 아약스의 루이 반 할, 바르샤의 요한 크루이프, 바르샤의 펩 과르디올라, 밀라노의 아리고 사키. 그리고 저에겐 여기에서의 위르겐이죠."
"우리가 세상 어디를 가든, 심지어 우리가 다른 색의 유니폼을 입었더라도, 사람들은 그들이 본 것을 알아보고 '아, 이건 리버풀 풋볼 클럽이군'하고 말했을 것입니다. 감독으로서 그보다 더 큰 칭찬을 받을 수는 없겠죠."
클롭이 안필드에서 트렌트 알렉산더-아놀드와 앤디 로버트슨에게 미친 영향에 대해 같은 질문을 한다면, 그의 재임 기간과 영원히 연관될 역동적인 두 풀백들에 대해 비슷한 대답을 얻을 수 있다. 이것은 트로피들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으로 치부된다.
알렉산더-아놀드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쓴 이야기들과 우리 모두가 여행했던 것들을 보세요. 그는 우리 모두가 항상 꿈꿔왔던 방향으로 발전하도록 도왔습니다. 그는 우리를 절정으로 이끌었습니다."
로버트슨은 그의 옆에서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문을 통해 들어오는 순간부터, 저는 모든 사람들이 그에 대해 가지고 있는 믿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재미있는 놀이기구 같았죠. 항상 흥분된 감정이 있었습니다. 트로피에 관해서도 그는 꽤 장식된 진열장을 가지고 있겠지만, 이것은 그가 어떻게 클럽과 팬들을 다시 믿게 만들었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구단주인 펜웨이 스포츠 그룹(FSG)은 그에게 대단히 감사한 빚을 졌다. 리버풀의 의장인 톰 워너는 말한다. "그는 정말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경쟁심으로 구단을 열광시켰습니다. 지난 9년간 리버풀의 스토리 라인은 피로 쓰여졌고, 그를 만든 그의 삶의 철학엔 무언가가 있습니다. 여기 영국에서 태어나지도 않은 남자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우리 모두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스카우저가 되었습니다."
리버풀 역사상 어떤 감독도 이런 뜨거운 열기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클롭이 리버풀 호프 스트리트 호텔에 도착한 것은 2015년 10월 8일 목요일 오후 5시 30분 직후였다. 그가 타고 있던 메르세데스 V클래스가 외곽의 서포터들을 지나고 난 후, 그는 워너, 최고 경영자(CEO) 이안 에어, 에이전트 마크 코시케와 함께 3년 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6번 회의실로 향했다.
일주일 전, 클롭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를 떠난 지 5개월 만에 안식년을 단축하기로 결정했고, 뉴욕 로펌 시어먼 & 스털링의 사무실에서 리버풀 구단주들을 만나기 위해 뉴욕으로 날아갔다.
워너: "제 첫인상은 그가 사람들을 기분 좋게 만들기 위해 유머를 잘 쓴다는 것이었습니다. 분명히, 그 자리는 그에게 중요했지만, 그는 또한 뉴욕으로의 여행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작별 인사를 했을 땐 그의 삶에 묻은 위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첫 만남 이후, 우리는 서로를 향해 '그의 전술 전략을 잊자, 그는 이 클럽에 절대적으로 적합한 사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다른 코치들도 인터뷰했지만 클롭은 매우 카리스마가 넘쳤습니다. 그는 축구가 아니었다면 유수의 대기업에서 CEO가 될 수도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클롭 감독이 계약을 체결한 후, 호프 스트리트 호텔에서 클롭 감독과 저녁식사를 함께 하기 위해 초대된 이들 중에는 레인더스 1군 개발 코치, 존 악터버그 골키퍼 코치, 알렉스 잉글소프 아카데미 디렉터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악터버그: "대화가 막 흘러갔습니다. 10년 동안 알고 지낸 것 같았어요. '그래, 나는 이 남자를 위해 일하는 것을 즐길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잉글소프: "그가 스토크와의 18세 이하 팀 경기를 보러 아카데미에 온 다음날. 그가 우리가 하는 일에 진정한 관심이 있다는 것은 분명했습니다. 젊은 선수들의 육성에 전념하는 것에 대해 많은 감독들이 이야기하지만 그들 중 일부만이 실질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위르겐의 약속은 결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경로를 항상 명확하게 함으로써 우리의 작업을 더 쉽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식으로 한 다른 매니저는 떠올릴 수 없습니다."
안필드에서의 부임 기자 회견에서 클롭은 자신을 "평범한 사람"이라고 표현했고, 팬들에게 "의심하는 자에서 믿는 자로 변화하자"는 점을 촉구했다.
클롭은 말했다. "우리가 원한다면, 오늘은 매우 특별한 날이 될 수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그것을 위해 일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당신이 충분히 인내심이 있다면 말이죠. 제가 4년 뒤에도 이 자리에 앉아있다면, 제 생각에 그동안 우리는 우승을 해낼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다음 일자리는 스위스에 있을 수도 있겠네요."
리버풀은 8경기 승점 12점으로 프리미어리그 10위를 기록하고 있었다. 그들은 2006년 이후 단 한 번의 리그 컵 우승만을 거두었고 2013-14 시즌에 우승을 놓친 가슴 아픈 사건에 의해 브렌든 로저스의 재임 기간이 늘어나면서 지난 6시즌 중 단 한 시즌만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할 수 있었다.
클롭 감독은 선수단을 미디어룸에 모으기 이전에, 구단의 국가대표 선수들이 멜우드 트레이닝 베이스로 돌아오는 것을 기다렸다. 현장의 각 스태프들은 그에게 자신의 역할을 설명하고 묘사하도록 요청 받았다.
골키퍼 시몬 미뇰레: "그들은 모두 기차처럼 입장했습니다. 그리고 위르겐은 이렇게 말했죠. '이 사람들이 모두 누구인지 아나?' 다들 '스태프들이죠'라고 했어요. 그는 '아니다, 우리는 모두 한 가족이다. 리버풀 가족이지. 모든 사람이 모두의 이름을 알아야 한다. 이 사람들은 여러분의 퍼포먼스를 돕기 위해 여기에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위르겐의 요점은 모든 사람이 퍼즐의 일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그 뒤에 오는 모든 것의 분위기를 조성했습니다."
멜우드 게이트맨 케니 그라임스: "선수들의 태도가 우리에게 바뀐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전에는 가끔 선수들이 스태프들을 그냥 지나치곤 했지만, 그 후(클롭과의 만남) 그들은 훨씬 더 많이 우리와 소통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두가 더 행복해 보였고, 더 편안해 보였습니다. 위르겐에게서는 어떠한 분위기 조성과 거드름 피움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문화가 바뀌었습니다. 그는 우리가 리버풀 FC의 일원이라는 것을 훨씬 더 크게 느끼게 해 줬습니다."
수석 코치 피터 크라비츠와 젤리코 부바치를 데려온 클롭은 자신이 물려받은 스쿼드가 재능이 있다고 느꼈지만, 기대 수준과 압박감에 짓눌렸다. 그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중대한 비판은 오직 나의 것이다."
그는 선수들이 함께 식사하는 것에 대한 새로운 규칙을 도입했고, 멜우드는 놀러 오는 곳이 아니라 일하는 곳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의 유전자와 같은 압박 전략에 적응하기 위해 훈련 일정이 더 집중되면서 휴식 시간은 줄어들었다.
그는 선수들에게 연설하면서 보드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T – TERRIBLE(무시무시한)
E – ENTHUSIASTIC(열정적인)
A – AMBITIOUS(야망이 넘치는)
M – MENTALLY-STRONG MACHINES(강한 정신력의 기계)
미뇰레: "90분 동안 우리와 맞붙은 후 상대가 느낄 감정이 '끔찍해야 한다'라고 말한 것을 기억합니다. 그는 우리가 어떻게 남들보다 더 열심히 뛰고, 더 앞서가는 팀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토트넘과의 첫 경기에서 0-0 무승부를 기록했을 때, 결정적인 장면은 교체된 후 녹초가 된 아담 랄라나가 그의 품에 안기는 것이었다.
레인더스: "그 경기 직전에 했던 그의 팀 토크가 너무 좋았습니다. 그는 토트넘의 자신감이 작은 꽃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일어서서 바닥에 발을 구르기 시작했었죠! 그것은 그의 팀이 꽃에게 해주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저는 '이 사람과 같이 일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악터버그: "그가 가진 개성의 힘은 주변의 분위기를 빠르게 변화시켰습니다. 제가 일찍부터 좋아했던 것은 위르겐이 자신이 물려받은 선수들의 기준에 대해 이야기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적 시장이 닫혀있고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부임 이후 어려움을 겪고 있던 선수들로부터 즉시 훨씬 더 많은 것을 얻어냈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공정한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다시 돌아오지 못할 거라면 앞으로 뛰어 나가지도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내가 패배에 책임이 있고, 너희들은 승리에 책임이 있다'라고 말했죠. 그는 누구에게도 나쁘게 굴지 않으면서, 단지 요구를 했을 뿐이지만, 그를 위해 일하는 것은 매우 보람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우리가 우리의 일을 계속해내는 것을 믿었고 사람들은 그를 위해 싸울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수비수 마틴 스크르텔: "그가 선수들, 우리에게 말하는 방식, 그가 우리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방식에는 어떤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위르겐, 그는 진짜입니다. 그는 단지 게임을 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는 우리 뒤에서 말하지 않았죠. 그래서 선수들이 그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공격수 다니엘 스터리지: "훈련장에서 그의 목소리는 무엇보다 명확히 들렸습니다. 그가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은 모든 사람들에게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선수들이 이 남자를 위해 벽돌담을 뚫고 달려갈 것이라고 생각하게 하는 것은 어렵지만, 그는 그렇게 했습니다."
"모든 톱급 감독들은 두려움과 존경의 선에서 아슬아슬하게 서있습니다. 선수들이 보스를 존중할 필요가 있는 것이지만, 보스가 선수들의 존중을 명령할 필요도 있죠. 빅클럽에선 그 상황을 조절해야 하는데, 그는 그렇게 했습니다."
클롭이 사고방식을 바꿔야 했던 것은 경기장 안에서 만의 일이 아니었다. 재임 후 한 달 뒤, 리버풀이 홈에서 크리스탈 팰리스에게 2-1로 패하자 팬들은 일찍 경기장을 떠났고, 그는 "꽤나 외로움"을 느꼈다고 선언했다.
악터버그: "그는 서포터들이 팀을 완전하게 지지하고 있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그들은 진짜 믿지는 않고 있었죠. 그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이는 즉, 한 배에 탄 모든 사람들을 그가 어떻게 필요로 하는지에 대한 얘기였죠."
"점진적으로, 안필드는 훨씬 더 긍정적으로 바뀌어갔습니다. 디보크 오리기가 웨스트 브롬을 상대로 극장 동점골을 넣은 후, 위르겐의 지시로 선수들이 콥 스탠드 앞에서 함께 손을 잡고 셀레브레이션을 펼친 것을 비평가들은 지적했지만, 그들은 요점을 놓쳤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모두가 힘을 모으면 가능한 일입니다'라는 게 그의 말이었습니다. 그것이 발현된 첫 번째 중대한 예시는 (유로파 리그에서) 도르트문트와의 결전이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어떻게 안필드의 힘을 이용했는지가 강조된 사건이었죠."
리버풀은 유로파 리그 8강 2차전에서 25분을 남기고 합계 4-2로 뒤지고 있었지만, 필리페 쿠티뉴, 마마두 사코, 데얀 로브렌의 골로 클롭의 친정팀을 놀라게 했다.
레인더스: "리더의 성격이 팀의 성격이 된다고 믿습니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왜 하고 있는지를 정말로 알고 있는 열정으로 가득 찬 남자를 우리는 얻었습니다. 그는 무엇이 효과가 있는지를 식별할 경험이 있었고 새로운 축구 아이디어를 얻어냈습니다. 사람들은 발전을 보기 시작했고, 클롭 주위의 사람들은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어요."
2015년 12월, 선수들은 왓포드에게 3-0으로 패배한 후 크리스마스 파티가 취소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그들은 감독으로부터 "우리가 무엇을 함께 했든,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잘했다. 그 말은 오늘 밤에 우리가 파티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이후 리버풀 인근의 골프 리조트이자 스파 단지인 폼비 홀에서 새벽 1시까지 아무도 나갈 수 없었다.
시즌이 끝날 무렵, 리버풀은 맨체스터 시티와의 리그컵(승부차기)과 우나이 에메리의 세비야와의 유로파 리그 경기에서 석패하며 메이저 대회 결승전에서 두 차례 고배를 마셨다.
바젤 노보텔에서 열린 경기 후 파티에서 사기를 북돋우기로 결심한 클롭은 마이크를 잡고 "두 시간 전, 여러분 모두 s***을 느꼈다. 하지만 지금은 여러분 모두가 기분이 좋아지기를 바란다. 이것은 우리에게 단지 시작일 뿐이다. 앞으로 우리는 더 많은 결승전을 치를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그는 "We Are Liverpool"을 열창했다.
악터버그: "위르겐은 팀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단호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때때로 이기는 법을 배우려면 져봐야 한다고 말했죠."
미드필더 루카스 레이바: "그랬죠. 우리는 두 결승전에서 졌지만 그곳까지 가는 것은 진정한 발전의 신호였습니다. 위르겐은 특별한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그것을 볼 수 있었고, 냄새를 맡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항상 패배에서 긍정적인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의 맨-매니지먼트는 제가 경험한 것들 중 최고였습니다."
조금씩 클롭 감독은 자신의 이미지대로 선수단을 꾸리기 시작했다.
마르코 그루이치는 클롭 시대의 첫 번째 영입이었다. 2016년 1월, 레드 스타 베오그라드에서 510만 파운드(650만 달러)에 영입된 그 젊은 미드필더는 여름에 리버풀로 넘어오기 전까지 남은 시즌 동안 세르비아에 임대로 머물렀다. 그는 클럽에서 단지 16경기에 출전했을 뿐이었지만, 그조차도 클롭의 철학에 의해 형성된 일이었다.
그루이치: "그렇게 큰 클럽으로 가는 일이 저에게 너무 일찍 찾아온 것일지도 모르지만, 저는 위르겐으로부터 너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가장 어려운 것은 강한 압박이었습니다. 전력 질주와 방향 전환이 너무 심했죠. 그것은 팀에서 가장 유명한 요소가 되었어요. 그리고 그게 가장 큰 무기가 됐지만 훈련장에서 너무 많은 시간이 그것을 맞추는 데에 소요되었습니다."
"부바치는 기술 훈련의 많은 부분을 담당하고 있었고, 그가 저와 같은 언어를 구사한다는 점은 저에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위르겐 또한 정말 좋은 코치였고 동시에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농담으로 모든 사람들을 웃게 만들었고, 식당의 여사님들이든 장비 관리실의 스태프들이든 항상 모든 사람들을 위해 시간을 가졌습니다."
사디오 마네, 조르지니오 바이날둠, 조엘 마팁, 로리스 카리우스가 2016년 여름에 선수단으로 새로 합류했고, 클롭은 바이에른 뮌헨의 안드레아스 콘마이어 피트니스 총괄과 영양사 모나 네머를 영입해 백 룸 스태프를 늘렸다.
무질서가 용납되지 않을 것임을 그는 분명히 했다. 사코는 캘리포니아로 가는 팀 비행기와 팀 식사에 지각한 후, 치료 세션에 참석하지 못한 채 프리시즌 미국 투어에서 제외되어 불명예스럽게 귀국했다. 클롭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에겐 규칙이 있습니다. 누군가가 그것을 존중하지 않거나, 누군가가 나에게 그것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준다면, 나는 반응해야 합니다."
그 프랑스 수비수는 UEFA 약물 검사에서 적발되어 그 직전 시즌의 말미에 출전이 제한되었다. 그 후 그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클롭은 구단 몰래 체중 감량 보충제를 복용한 것에 화가 났다. 후에 사코는 크리스탈 팰리스로 이적하였다. 처음에는 1월 임대로 떠난 것이었지만, 그 후 그는 다시는 리버풀에서 뛰지 못했다.
호펜하임에서 이적한 뒤 로저스 감독 체제에서 고전하던 호베르투 피르미누가 중앙 공격수로 포지션을 변경한 이후, 마네가 자유롭게 득점행진을 펼치면서 리버풀은 2016-17 시즌의 마지막 날 미들즈브러를 꺾고 챔피언스 리그에 복귀했다. 10년간 구단에서 뛰었던 루카스의 고별 무대였다.
루카스: "계약 기간이 1년 더 남았었지만 팀이 발전하고 있었고, 출전 경기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고, 라치오로부터 좋은 제안을 받았습니다. 떠나기 힘들었지만, 위르겐이 모든 것을 처리해 준 것에 정말 감사했습니다. 우리는 솔직한 대화를 나눴고 그것이 저와 구단을 위해 최선이라는 데 동의했습니다."
젊은 인재 양성이 클롭 시대의 주제임은 증명되었다. 알렉산더-아놀드는 2016-17 시즌에 18세의 나이로 데뷔를 해냈고, 아카데미 출신의 그는 곧 1순위 라이트백으로 자리매김했다.
알렉산더-아놀드: "특히나 이렇게 거대한 클럽에서 어린 나이부터 뛰게 되는 선수라면, 많은 것을 겪게 됩니다. 요구, 압박, 기대 같은 것들이죠. 위르겐이 정말 많이 도와줬습니다. 그는 저에게 팔을 둘렀고 압박을 지워줬습니다. 그는 제 감정을 관리하는 것에 대해 저에게 조언해 줬습니다. 그는 호된 꾸지람이 필요할 때와 약간의 사랑이 필요할 때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제가 젊은 선수에서 이 팀의 리더가 되는 것을 도와주셨습니다. 저는 그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습니다."
빈틈없는 영입으로 추진력은 유지되었다. 2017년 여름, 모하메드 살라가 4,390만 파운드에 로마로부터 이적해 왔다. 클롭 감독은 처음에 바이어 레버쿠젠의 율리안 브란트를 원했지만, 스포팅 디렉터 마이클 에드워즈는 첼시가 이전에 쳐냈던 이 이집트 공격수가 최선의 선택이라고 확신했다.
선수들과 계약해 온 일은 클롭의 증명을 어필하는 것이다. 로버트슨은 헐 시티와 함께 강등된 후 1,000만 파운드의 가격으로 살라와 같은 기간에 합류했다. 바이날둠도 뉴캐슬 유나이티드에서 넘어오는 같은 운명을 겪었다.
로버트슨: "이런 큰 클럽이 동떨어져있는 선수와 계약하는 일은 매우 드문 일입니다. 제가 위르겐을 처음 만났던 건 멜우드에서였습니다. 그는 아시아에서 선수단과 함께 막 비행기를 타고 돌아왔었습니다. 그는 걸어와서 저를 안아주고 클럽에 온 저를 환영했습니다. 선수로서 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제가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어떻게 경기를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지 등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저는 그의 말을 하나하나 믿었습니다."
"당시 클럽은 이제 막 챔피언스 리그에 복귀했고 그것은 여행의 첫 단계처럼 느껴졌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에 대해 얼마나 많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클럽 전체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밖에서 봤을 때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었죠. 그중 일부는 좋은 캐릭터들과 계약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메세지를 라커룸 안에서 전달할 수 있는 그와 같은 눈을 가진 사람은 어디에나 있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살라, 마네, 피르미누는 2017-18 시즌 동안 91골을 넣었다. PFA 올해의 선수와 FWA 올해의 축구 선수로 선정된 살라는 모든 대회에서 44골을 득점했고, 리그 38경기 동안 32득점을 올리 새로운 최고 득점 기록을 작성했다.
2018년 1월 , 쿠티뉴가 뒤늦게 자신의 소망을 이뤄 1억 4,200만 파운드에 바르셀로나로 팔리자 리버풀의 항해가 탈선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클롭 감독은 이러한 우려를 나누지 않았다. 그는 팀 동료들이 창의적인 플레이를 기대하기 위해 쿠티뉴를 너무 자주 쳐다보았고, 그가 사라지면 상대방이 팀을 더 예측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느꼈다.
그가 옳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쿠티뉴의 이적은 사우스햄튼에서 버질 반 다이크를 데려오는 변혁적인 영입에 7,500만 파운드의 이적료가 사용되는 것을 도왔다.
레인더스: "우리는 버질이 공간과 롱 패스를 다루는 방식에 힘입어 더 공격적으로 높은 라인을 형성하는 플레이를 할 수 있었습니다."
반 다이크를 앞세운 리버풀은 키이우에서 열린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모든 기대를 뛰어넘었다. 레알 마드리드와의 경기를 앞두고 클롭 감독은 상의를 들어 올려 자신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브랜드 속옷을 입고 있다는 사실을 밝힘으로써, 팀 회의의 긴장을 풀려고 했다.
바이날둠: "모두가 웃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정말로 긴장을 깨트렸죠. 보통 그런 상황에서는 모두가 진지하고 집중력을 가집니다. 하지만 그는 편안했습니다. 그는 선수들에게 아버지 같은 존재이고 저에게 정말 특별한 사람입니다. 그는 정말로 선수의 복지에 관심이 있었고, 축구를 떠나 우리를 알고 싶어 했습니다."
지네딘 지단의 팀에게 3-1로 패한 뒤, 리버풀 라커룸에는 눈물이 흘렀다. 카리우스는 마드리드에게 엄청난 실책으로 두 골을 내준 뒤 머리를 맞댄 채로 자리에 앉았다. 살라는 어깨 부상으로 경기장에서 쓰러져 떠나야만 했다.
알렉산더-아놀드: "팀 토크 측면에서 저에게 가장 컸던 것은, 위르겐이 키이우에서의 경기 후에 우리에게 줬던 메세지였습니다. 그는 '이번 패배가 우리를 정의하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는 다 같이 이곳으로 돌아올 것이다. 여기는 우리의 운명에서 지나가는 지점이다.'라고 말해줬죠."
클롭은 오전 6시가 넘어서야 마침내 폼비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왔다. 크라비츠, 독일의 펑크 록 밴드 디 토텐 호센의 리드 싱어 캄피노, 유명한 독일 TV 연예인 요하네스 B 케르너 등 오랜 친구들과 함께 맥주가 흘러넘쳤고 그는 밤새 노래를 불렀다.
We saw the European Cup,(우리는 유러피언 컵을 보았고)
Madrid had all the f***ing luck,(마드리드가 망할 운을 다 가져갔네)
We swear we’ll keep on being cool,(우리는 계속 더 냉정해질 것을 약속해)
We’ll bring it back to Liverpool!(우리는 그걸 리버풀로 가져올 거야)
전형적인 클롭이었다. 파멸과 어둠도 없고 자기 연민도 없었다. 이적 시장 계획은 이미 잘 진행되고 있었다. 나비 케이타는 RB 라이프치히로부터 5,275만 파운드에 이적되었고, 키이우에서의 패배 이틀 만에 모나코가 보유했던 미드필더 파비뉴가 4,000만 파운드에 이적을 완료했다.
감독에게 큰 딜레마는 골키퍼진 상황과 정신이 혼미해진 카리우스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였다. 그의 자비로운 성격은 그에게 이적의 문을 열어주는 것보다 그를 품에 안고 리버풀에서 그의 커리어를 회복시키는 것을 선택했다.
결승전 4일 후, 클롭은 독일의 전설 프란츠 베켄바워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는 카리우스가 결승전에서 그의 첫 번째 치명적인 실수 직전에 마드리드의 세르히오 라모스로부터 머리에 가격을 당했을 가능성을 경고했다.
미국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던 카리우스는 보스턴에 있는 전문의를 만나기 위해 길을 떠났다. 뇌 스캔 결과 카리우스는 '시각-공간 기능 장애'를 가지고 있었으며, 이는 물체가 어디에 있는지 판단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후 라모스를 "잔인한 레슬링 선수"로 언급하며 클롭은 이렇게 주장했다. "세상의 나머지 사람들이 이에 관해 무슨 얘기를 만들고 있는지, 저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핑계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설명으로 사용합니다."
공개적으로 클롭은 카리우스의 새 출발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다음 프리시즌부터 '골키퍼 자리'에서는 신경전이 벌어졌다. 그의 자신감은 산산조각이 났다.
리버풀은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이 열리기 훨씬 전부터 대체 작업을 해왔다. 클롭은 미뇰레와 카리우스, 둘 중 어느 쪽에도 완전한 믿음을 갖지 못했고, 이로 인해 두 '수문장' 사이에는 불확실성과 긴장이 일부 형성되었다.
악터버그: "위르겐과 우리 모두가 대처하기에는 정말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우리는 키이우에서의 경기 이후 첫 번째 친선경기에서 체스터와 경기를 했습니다. 몸풀기 도중 로리스를 향해 공을 찼는데 로리스의 손과 다리를 맞고 공은 그대로 골대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그것을 촬영해서 SNS에서 그 장면이 입소문을 탔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트랜미어와 경기를 했는데 그가 공을 놓쳤고 상대편은 득점을 했습니다."
"저는 (로마와 리버풀 골키퍼였던) 알렉산더 도니가 브라질의 인테르나시오날에서 알리송에 대해 이야기해 준 이후로 그의 발전을 예의주시하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가 유럽 연합의 여권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것인데, 이는 그가 2016년 로마에 갔을 때, 우리는 그와 계약할 수 없었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2016년 8월) 미국에서 열린 프리시즌 친선경기에서 알리와 경기를 했을 때, 저는 위르겐에게 '저 녀석이 제가 말했던 그 녀석이에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가 하는 모든 경기를 계속 봤고 보고서를 작성했습니다. 저는 그에 대해 모든 영입 담당자들과 이야기했습니다."
"2018년 1월에 알리의 에이전트와 미팅이 있었는데, 저는 우리가 얼마나 그를 높게 평가했는지를 말했습니다. 그 해 여름, 클럽은 리옹에서 미드필더 나빌 페키르를 영입할 예정이었지만, 그는 무릎이 좋지 않아 올 수 없었습니다(6,200만 파운드의 이적료가 합의되었음에도).
"만약 페키르 계약이 성사되었다면, 우리가 알리송과 계약할 돈이 있었겠습니까? 상황은 확실히 좋아졌습니다. 보스에게 저는 알리를 사야 한다고 말했죠. 우리는 7월 중순에 티보 쿠르투아가 (마드리드에 합류하기 위해) 첼시를 떠난다는 것을 알았고 첼시도 대체자를 필요로 했기 때문에 빨리 움직여야 했습니다."
당초 로마가 9천만 파운드를 제시한 가운데, 에드워즈는 알리송을 두고 협상을 벌여 6천 5백만 파운드에 합의를 이끌어냈다. 그것은 직소 퍼즐의 마지막 조각이었다.
안필드에서의 첫 시즌에서, 그는 리그에서 가장 많은 클린시트(21개)를 기록해 프리미어 리그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고 UEFA와 FIFA가 선정하는 올해의 골키퍼를 수상했다. 클롭은 퀸즈 라디오 가가의 곡에 맞춰 "알리송 베케르"를 외치며 멜우드 주변을 돌아다녔다.
백 룸 스태프들 사이에서도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 레인더스는 2018년 1월, 네덜란드 NEC 네이메헌의 감독직을 맡기 위해 리버풀을 떠났지만, 클롭 감독이 수석 코치직을 제안하자 불과 4개월 만에 복귀했다. 해당 자리의 공석은 다른 스태프들과의 관계가 경색되면서 점점 멀어져 가던 부바치가 팀을 떠난 이후 발생했다.
레인더스: "위르겐은 모든 훈련 과정에 대한 책임을 저에게 주었고 그것은 저에게 매우 중요했습니다. 단순히 이전 클럽이기 때문에 돌아오지는 않았습니다. 이 일은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계속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훈련을 계획하고, 훈련을 전달하고, 전술적이고 전략적인 계획을 찾는 것 말이죠. 우리는 서로 도전했습니다."
"저는 그를 9년 동안 알고 지냈고, 그는 여전히 매일 저를 놀라게 합니다. 저는 매 경기 전날에 위르겐의 사무실에서 있던 회의를 항상 좋아했습니다. 거기서 누가 선발로 나서고 어떻게 게임을 만들 것인지, 어떻게 압박할 것인지, 선수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것인지를 결정합니다. 우리가 팀과 이야기하기 전에 머릿속에 모든 것이 명확해집니다."
클롭 감독은 리버풀의 청사진에 미묘한 변화를 주었다.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는 경기에 대한 관리와 통제력을 더 필요로 합니다. 모두가 우리의 강도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때때로 우리가 악마처럼 내달릴 때면, 저는 '자, 이제 제발 몸을 식히자'라고 말해야 하죠."
2018-19 시즌 이전에는 세트피스에서 리버풀의 생산량을 높이는 것을 우선시하기도 했다. 레인더스와 크라비츠는 선수단이 정돈될 수 있도록 세트피스 루틴을 고안하는 임무를 맡았다. 시즌이 끝날 때까지 리버풀은 29골로 프리미어 리그 세트피스 득점 1위를 차지했다.
혁신가 클롭은 항상 한계를 넘어선 이익을 추구했다. 그해 여름, 그는 독일 신문에서 스로인 전문 코치 토마스 그론마크의 작업에 대해 읽은 후, 그를 코치진에 영입했다.
그론마크: "위르겐을 만나기 전에는 답답했었죠. 저는 소유를 포기하지 않고 스로인으로 기회를 만드는 방법에 대한 모든 지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이를 듣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롱 스로인만을 원했죠. 이 모든 것을 처음으로 고려해 준 클럽은 리버풀이었습니다. 그것은 위르겐이 리버풀에서 만들어낸 정신력과 문화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줍니다."
2019년 5월 7일로 넘어가서, 리버풀은 바르셀로나와의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 2차전에 돌입하고 있었다. 이미 1차전에서 3-0으로 패하며 빈손으로 시즌을 마치지 않기 위해선 기적이 필요했다.
전날 밤, 리그 타이틀 라이벌 맨체스터 시티는 빈센트 콤파니의 파일드라이버(* 레슬링 기술)에 힘입어 레스터 시티를 꺾고, 자신들이 운명의 주인공임을 알렸다. 바르샤와의 경기에서 살라는 뇌진탕으로 결장해야 했고 피르미누는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로버트슨: "바르셀로나전의 아침은 저에게 정말 기억에 남습니다. 타이틀 경쟁을 거의 끝내는 콤파니의 득점에 대해 그는 말했었죠. '그래, 어젯밤에 있었던 일에 대해 말하고 싶은 사람이 있나? 없군. 그래 가보자고.'라고요."
"그러고 나서 호텔에서 열린 팀 회의에서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불가능하지만, 너희들이기 때문에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만들어진 믿음. 감지할 수 있을 겁니다. 안필드에 빨리 도착하고 싶어 기다릴 수 없었죠. 그 경기에서의 라커룸은 제가 들어가 본 라커룸 중에 가장 시끄러웠습니다."
악터버그: "그는 소년들에게 '눈을 감고 지금까지 한 게임 중 최고의 게임을 상상하라. 언젠가 손자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써보자.'라고 말했죠. 그 말은 완벽했습니다. 안필드에서 본 가장 멋진 밤이었습니다."
알렉산더-아놀드가 재빨리 처리한 코너킥이 바르셀로나의 안일함을 잡아챘고, 오리기가 리버풀의 4번째 골을 쓸어 담았을 때, 이미 3-0으로 뒤져있던 경기 전의 상황은 말끔히 사라졌다.
알렉산더-아놀드: "그날 밤은 위르겐이 만들어낸 것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우리에게 심어준 정신은 우리가 어떤 위치에 있든, 누구와 맞서든, 우리는 그저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믿는 것이었죠. 그런 일이 정말 많이 있었습니다. 그 모든 반격과, 모든 마지막 승자들을 보세요."
워너: "저는 보스턴에서 존 헨리와 함께 경기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기억에 영원히 새겨질 것입니다. 네 번째 골은 그냥 미쳤죠."
"위르겐이 만들어낸 일체감은 분명했습니다. 저는 어느 날 훈련에 참관할 수 있는 특권을 누렸었는데, 당시 위르겐은 모든 사람들이 원을 그리게 한 후 사디오 마네의 생일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사디오에게 모국어로 '생일 축하해'를 부르도록 한 뒤 버질에게 고개를 돌려 '네덜란드어로도 부르는 게 어때?'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모 살라를 향해서 '사디오에게 아랍어로도 노래를 불러주는 게 어떨까?'라고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웃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게 '하루를 시작하는 정말 멋진 방법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해당 시즌 리버풀은 클럽 최다 승점 97점을 달성하고 리그 경기에서 단 한 번만 졌지만, 시티가 승점 1점 차로 앞서 마무리하면서 마지막 날 리버풀을 제쳤고 프리미어 리그 우승을 가져갔다. 그러나 클롭은 이렇게 그들의 선수들을 안심시켰다. "그것은 우리가 우승할 수 있는 첫 번째 기회였을 뿐이다. 우리의 마지막이 아니다."
마드리드에서 열리는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까지 3주간의 공백은 이상적이지 않았기에, 마벨라에 차려진 리버풀의 훈련 캠프에서 벤피카의 B팀과 친선 경기가 마련되었다.
감독으로서 결승전 6연패를 끝내기 위해 노력 중이던 클롭은, 되려 너무 긴장이 풀려서 결승전 당일 오후 호텔 방에서 2시간 동안 낮잠을 잤다.
로버트슨: "경기 전날 밤 경기장에서, 그는 우리 모두를 원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는 '이곳이 내일 밤 우리가 챔피언스 리그 우승팀이 되는 곳'이라고 말했죠. 그 말이 목 뒤의 털들을 곤두서게 만들었습니다. '그래, 이거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키이우에서 있었던 그 해의 비통함으로부터, '우리를 그 경기에 다시 데려가고, 우리의 일을 해내고 그 트로피를 손에 넣자'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살라의 경기 초반 페널티킥과 오리기의 날카로운 마무리로 클럽의 통산 6번째 유러피언 컵 우승을 확정 지은 후, 클롭은 "Let;s talk about SIX, baby."라고 외쳤다. 클롭은 덧붙였다. "탱크에 연료도 채우지 않고 싸우는 이런 팀을 본 적이 있나요? 선수들이 저 때문에 고생했습니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우승할 자격이 있어요."
마드리드의 유로스타즈 호텔에 있는 클럽의 프라이빗 파티 내 축하 행사는 새벽까지 계속되었다. 클롭과 캄피노를 포함한 친구들이 1년 전 그들이 부른 노래에 대해 즉흥적인 후속곡을 녹음하기 위해 옆방으로 향하는 상징적인 사건이 이어졌다.
We’re sending greetings from Madrid,(마드리드에서 인사를 보낸다)
Tonight we made it number six,(오늘 밤 우리는 여섯 번째를 만들었네)
We brought it back to Liverpool,(리버풀로 다시 이것을 가져왔네)
Because we promised we would do.(우리가 그럴 거라고 약속했으니까)
약 750,000명의 사람들이 그들의 트로피 퍼레이드를 보기 위해 리버풀 시내로 나왔다. 클롭이 말했다. "만약 그날의 모든 감정, 모든 흥분, 모든 사랑을 공중에 띄워 병에 담을 수 있다면, 세상은 더 나은 곳이 될 것입니다."
주장 조던 헨더슨과 부주장 제임스 밀너가 자리를 지키면서 팀의 기준이 미끄러질 위험은 전혀 없었다. 2019-20 시즌은 무자비하고 거침없는 일관성을 보인 시즌 중 하나였다. 타이틀 경쟁은 없었다. 그저 단독 질주뿐이었다. 클롭의 부하들은 첫 승점 81점의 기회 중 79점을 가져갔고, 그 과정에서 유럽 슈퍼컵과 클럽 월드컵을 들어 올렸다. 모두가 제 역할을 했지만, 풀백들은 측면 지역에서 보이는 팀 퀄리티에 큰 영향을 미쳤다.
로버트슨: "경기 방식은 강렬했지만, 감독님이 우리가 경기하기를 원하셨던 방식은 창조적인 측면에서 트렌트와 저에게 적합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만든 성공의 큰 부분이었고, 측면 지역에 우리는 과부하를 걸었습니다. 저와 지니, 사디오, 우리 셋은 왼쪽에, 그리고 트렌트, 헨도, 모는 오른쪽에 더 자주 과부하를 일으키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또한 강력한 수비진의 일부가 되어야 했습니다. 위르겐이 처음 들어왔을 때, 리버풀은 노리치전에서 했던 것처럼 5-4로 이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타이틀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클린 시트를 유지할 수 있어야 했죠."
"그의 철학에는 우리가 공을 잃었을 때, 그것을 되찾기 위해 빠르게 반응하는 것과 같은 많은 요소들이 있습니다. 이는 더 깊게 내려앉는 낮은 블록의 팀들에게 특히 중요합니다. 그들 중 하나가 자기 위치를 벗어난다면, 그 때문에 공간이 열리는 것입니다. 액셀러레이터를 풀로 밟는 거죠. 우리는 매 경기마다 100%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다른 팀들만큼 통제되지는 않았지만, 상대가 우리를 상대로 경기를 했을 때 그들은 우리보다 더 뛰어야만, 우리보다 더 공을 열망해야만 우리보다 더 많은 기회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레인더스: "선수들이 영감을 받고, 발전하고 있다고 느낀다면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같은 그룹에서 오래 일을 할수록 더 잘 차려입어야 합니다. 결혼생활을 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인 것처럼요! 항상 영감을 줄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성공한 이유는 우리 선수들이 믿을 수 없는 성격과 잠재력, 태도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위르겐과 스태프, 선수들이 함께 훈련장에서 항상 같은 형태의 작업을 하면서 안정감을 만들어 냈습니다.
"최고의 경기에서, 큰 차이를 만든 것은 우리의 역 압박이었습니다.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리지 않고 말입니다. 감정이 고조되면 선수들은 전술 계획을 잊어버립니다. 차이를 만드는 것은 훈련과 반복입니다."
2019년 여름, 클롭은 스포츠 퍼포먼스 심리학자 리 리차드슨을 영입했다. 그는 또한 거대한 파도들을 대상으로 서핑을 하는 독일의 서퍼 세바스티안 슈투트너를 초청하여 선수들에게 스트레스 관리와 호흡 기술에 대해 강연하도록 했다.
리차드슨: "위르겐은 제가 본 사람들 중 최고의 의사소통가입니다. 리버풀의 수석 심리학자는 여러모로 위르겐이라 봐야죠. 그는 그가 하는 모든 일, 그가 하는 모든 팀 토크, 그가 내리는 모든 결정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인물입니다. 실제 심리학자의 역할은 감독이 항상 대처할 수 없는 다양한 것들에 대해 지원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죠."
2020년 3월, 리버풀이 30년간의 리그 타이틀 가뭄을 끝내기 직전인 가운데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시즌이 중단됐다. 선수들은 멜우드의 식당에 모였고, 클롭 감독은 말했다. "일단 축구에 대해 걱정하지 마라. 너희는 잉글랜드 최고의 팀이고 그중 가장 가치 있는 챔피언이다."
2020년 6월 25일, 맨체스터 시티가 첼시에 패한 뒤 뒤늦게 우승이 확정됐다. 리버풀은 7경기를 남기고 시티에 23점 차로 앞섰다.
알렉산더-아놀드: "우리는 우승이 확정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위르겐은 바베큐를 위해 모두를 모았습니다. 비록 우리가 전 세계적인 팬데믹 가운데 폼비 홀에 앉아 프리미어 리그 챔피언이 되는 것을 꿈꾸면서 자라지는 않지만요! 우리는 우승을 낚아채는 순간에 가득 찬 안필드, 그곳에서 팬들과 함께 축하하는 것에 대해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래도 우리에게 특별한 것이었습니다. 워낙 지배적인 시즌이었으니까요. 우리는 모든 팀을 날려버렸습니다. 그 시즌을 돌이켜보면, 과연 그 어떤 팀이 우리가 가졌던 정신력으로 우리를 이길 수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매우 다양한 방법으로 게임을 이겼습니다."
클롭 감독은 선수들과 포옹하며 눈물을 흘렸다. 리버풀이 안필드에서 첼시를 꺾고 프리미어 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날 밤, 선수단의 가장자리에 있는 이들마저 중요한 존재로 느끼게 하는 그의 재주가 돋보였다. 그는 네 번째 골키퍼를 향해 이렇게 외쳤다. "잉글랜드 챔피언, 유럽 챔피언, 세계 챔피언, 앤디 로너건. 이 대단한 녀석!"
선수들은 클럽에서 단 한 번도 출전하지 않은 그의 이름을 연호하며 화답했다.
리버풀은 울브스의 디오고 조타와 바이에른 뮌헨의 티아고가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하락세를 탔다. 관중들의 정서적 에너지로부터 고무되는 팀에게 팬데믹 기간 동안 비공개로 경기가 진행되는 것은 지치면서도 영혼이 없는 힘든 일이었다.
클롭은 또한 어머니 엘리자베스를 떠나보냈고, 출국 제한 때문에 장례식을 위해 독일로 갈 수도 없는 개인적인 고뇌를 겪어야 했다. 경기장에서 리버풀은 반 다이크, 조 고메즈, 마팁이 모두 시즌 아웃 부상을 당한 뒤 센터백진의 대위기를 겪었다. 수비진에 헨더슨과 파비뉴가 가담해 경기를 소화한 것은 반대로 중원을 약화시켜 효과를 보지 못했다. 클롭은 신인 넷 필립스와 리스 윌리엄스를 기용하며 탑 4의 희망을 되찾는 데 도움을 주었다.
필립스 : "저는 많은 자부심을 가지고 그 시기를 돌아봅니다. 그 기억은 제 얼굴에 미소를 가져다주죠. 저는 그 시즌 전에 리버풀에서 단 한 번밖에 뛰지 않았습니다. 커티스 존스가 훌륭한 결승골을 기록했던 1년 전 에버튼과의 FA컵이었죠. 위르겐이 저에 대해 믿음과 신뢰를 주는 것은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는 항상 안심시켜 주었어요.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저에 대해 매우 크게 칭찬했습니다. 그는 제가 거기에 있을 자격이 있다고 느끼게 했습니다."
"제가 1군 팀의 축구를 접하기 전엔, 저는 항상 팀 안에 큰 개성과 자아가 있을 것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문득 생각해 보니 1군 라커룸의 그 누구도 자신이 어느 누구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레인더스: "우리는 서로 긍정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했습니다. 제가 부정적이 되는 순간 위르겐은 긍정적이 되었죠. 반대로 그가 부정적이었을 때, 저는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했습니다. 이게 우리 관계를 묘사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그 마음가짐은 항상 '우리가 무엇을 가지고 있지?'였습니다. '우리가 가지지 못한 것이 뭐지?'가 아니라요."
로버트슨: "힘든 시기에도 아무도 감독님을 의심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항상 감독님께서 탈출구를 찾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그의 에너지가 그렇게 높지 않은 날도 있었고, 결과가 좋지 않은 날도 있었고, 우리가 그를 끌어올려드려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만약 시즌이 시작되는 시점에서, 우리가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하기 위해서 넷과 리스에게 의지할 것이라고 누군가 말했다면 많은 사람들이 그 사람을 믿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위르겐은 방법을 찾았습니다. 우리가 직면한 모든 문제들이 지나간 이후에, 그것은 엄청난 성취로 느껴졌습니다."
리버풀은 마지막 승점 30점 중 26점을 따내며 2020-21 시즌 3위를 차지했다. 극장의 하이라이트는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과의 경기에서 연장 막판에 터진 알리송의 헤딩 결승골이었다. 그는 클럽의 129년 역사에서 결승골을 넣은 최초의 골키퍼가 되었다.
악터버그: "저는 알리가 상대 박스 안에서 골칫거리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제가 그것을 기대했던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그 승리를 너무 간절히 바라고 있었기 때문에 벤치에선 많은 열정이 있었습니다. 우리 이야기에서 알리의 역할은 매우 큽니다. 그가 나폴리를 상대로 뒤늦게 결정적인 세이브 (2018년 12월, 챔피언스 리그 조별리그에서 아르카디우스 밀리크의 슈팅을 막아낸)를 만들지 못했더라면 마드리드행, 유러피언 컵, 슈퍼컵, 클럽월드컵도 없었을 것입니다.
"위르겐은 알리가 이렇게 잘할 줄 알았다면 두 배의 이적료를 냈을 거라고 농담을 했습니다. 퀴빈 켈러허와 함께 우리는 클럽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진을 만들었습니다."
클롭의 "멘탈리티 몬스터"들은 숨 가쁜 2021-22 시즌을 시작했다. 두 국내 컵에서 모두 첼시와 만나 웸블리에서 격돌하였고, 리버풀은 데드볼 상황에서 선수들을 돕기 위해 클롭이 도입한 독일의 신경과학 장비 Neuro11의 "믿을 수 없는 영향"에 찬사를 보내며 승부차기로 우승을 따냈다. 리버풀은 두 번의 승부차기에서 총 18번의 킥을 찼고, 그중 17번을 성공시켰다.
쿼드러플을 위한 행진이 속도를 냈지만 리버풀은 가장 큰 두 대회의 트로피를 놓쳤다. 다시 한번 타이틀 레이스는 마지막 날로 넘어갔다. 시티가 2-0에서 3-2로 역전승을 거두면서 아스톤 빌라를 3-2로 물리치고 승점 1점 차의 우승을 확실히 따냈다.
악터버그: "위르겐은 맨시티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없습니다. 그의 태도는 '우리는 그들과 한 시즌에 두 번 경기하는데 왜 그들을 걱정합니까?'였죠. 그들이 하는 일에 영향을 미칠 수 없었어요. 우리는 시티가 훨씬 더 많은 자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우리는 그 해에 우승에 거의 근접했습니다."
리버풀이 비야레알을 꺾고 클롭 감독 체제 하 통산 3번째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 오른 날, 그날 경기 후 클롭은 임대로 떠난 필립스가 본머스의 1부 리그 승격을 도왔다며 축하를 전했다.
필립스: "휴대폰이 위르겐의 메시지로 윙윙거렸습니다. 그는 저와 리스에게 지난 시즌 챔피언스 리그 진출에 기여한 부분에 대해 감사를 표했습니다. 그 당시에도 그가 우리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사실은 그에 대한 많은 것을 말해줍니다."
스타드 드 프랑스 외곽에서 일어난 혼돈은 파리에서 열린 경기에 흠을 만들었다. 경기장에서 리버풀은 레알 마드리드 골키퍼 쿠르투아와 비니시우스 주니오르의 골로 좌절을 맛봤다.
워너: "우리는 패배 후 파리에서 위르겐과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 밤에 스스로 더 나은 팀이라고 느꼈기 때문에 너무 실망스러웠죠. 그 시합을 10번 다시 하면 아마 8번 이겼을 거예요. 하지만 위르겐은 미래에 대해 상당히 낙관적이었습니다. 그는 우리 중 누구보다 훨씬 더 쾌활했습니다."
"그는 독특한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축구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지 않은 것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라는 유명한 그의 어록이 있죠. 위르겐은 최상의 축구가 사람들에게 진정한 강장제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승리를 높이 평가하지만 패배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그는 패배 후에 당신의 고통을 위로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분명히 표현합니다. 그는 그 균형을 잡습니다. 팀, 직원, 서포터즈, 도시와의 관계에서 그것은 입증되었습니다. 그는 항상 더 큰 부분을 파악하고 있습니다."
훌륭한 팀을 구축했던 클롭은 또 다른 팀을 구성하기 시작했다. 최전방은 루이스 디아스, 다윈 누녜스, 코디 각포의 영입으로 진화했다. 그러나 그는 그의 충성스러운 선수들이 63경기를 치른 이전 시즌으로부터 에너지를 빼앗겨 신체적으로 지쳤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2022-23 시즌은 고령화된 미드필더진이 반복적으로 혹사됨에 따라 심각한 부상이 겹치면서 암울하게 진행됐다. 리버풀이 공을 소유했을 때, 알렉산더-아놀드를 중앙으로 이동시키는 전술적인 변칙은 늦은 반전을 만들어냈지만, 4위 안으로 시즌을 마감하지 못하게 되면서 그러한 변화도 소용이 없어졌다.
헨더슨과 파비뉴는 밀너, 케이타, 피르미누, 알렉스 옥슬레이드-체임벌린이 자유계약선수(FA)로 떠난 뒤 사우디아라비아 재력가들에게 이끌렸다. 중원 리빌딩으로 알렉시스 맥 알리스터, 도미닉 소보슬라이, 엔도 와타루, 라이언 흐라벤베르흐가 영입됐다.
레인더스: "위르겐과 저는 지난여름 미래에 대해 좋은 이야기들을 나눴습니다. 우리는 '그래, 1년 더 하자, 어떻게 되는지 보자'라고 했습니다. 저는 프리시즌을 시작할 때 모든 남자들에게 '부정적으로 나오는 첫 번째 사람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선수들과의 리셋이 필요했고 그것은 잘 해결되었습니다. 위르겐과 제가 그 대화를 나눈 것은 10월 말이나 11월 정도였을 것입니다."
"우리 둘 다 시즌이 끝날 때 가는 것이 옳은 일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위르겐은 결심을 굳혔고 저는 지금이 나만의 길을 만들기에 적절한 때라고 확신했습니다. 우리는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하고, 그다음 감독이 정말로 돌볼 수 있는 수준의 팀을 남기며 클럽을 떠나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옳은 일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2월 웸블리에서 열린 첼시와의 카라바오컵에서 반 다이크의 연장전 헤딩골로 팀이 영광을 안았을 때, 클롭 감독은 "내가 우승한 것들 중 가장 특별한 트로피"라고 해당 우승을 표현했다. 당시 그는 부상 위기로 씨름을 벌이다가 유소년들을 기용하기로 결정했다. 하비 엘리엇, 코너 브래들리, 자렐 콴사, 바비 클락, 제임스 맥코넬, 제이든 단스가 모두 제 역할을 해냈다.
클롭의 팀에 어떤 사람들이 있었을까?
1 미쉘 허드슨, 마사지사
2 모토노리 와타나베, 마사지사/스포츠치료사
3 폴 스몰, 마사지사
4 제임스 프렌치, 상대팀 분석관
5 조나단 파워, 팀닥터
6 리 노브스, 물리치료 총괄
7 모나 네머, 수석 영양사
8 크리스 모건, 물리치료사
9 위르겐 클롭, 감독
10 레이 호건, 1군 운영 관리자
11 존 악터버그, 골키퍼 코치
12 빅토르 마투스, 엘리트 개발 코치
13 안드레아스 콘마이어, 피트니스 및 컨디셔닝 총괄
14 조엘 보너, 경기 분석관
15 잭 로빈슨, 보조 골키퍼 코치
16 코널 머터 박사, 1군 피트니스 코치
17 루이스 돕슨, 수석 1군 운영관
18 로나 버틀러, 보조 영양사
19 코너 스튜어트, 서비스 관리자
20 펩 레인더스, 수석 코치
21 다니엘 스피어릿, 경기 및 선수 개발 분석관
잉글소프 : "위르겐은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믿고 어린 선수들을 안심시킵니다. 저라도 그를 위해 뛰고 싶었을 것입니다. 당신이 어떤 재능을 가지고 있든지 간에, 그는 당신에게서 최고의 것을 얻어낼 것입니다. 이건 마법 같은 역량입니다. 그는 지속적으로 어린 선수들에게 경기할 수 있는 무대를 제공해 왔고, 그들의 경력이 앞으로 나아가기 가장 좋은 시기에 그렇게 해왔습니다. 신중하게 생각하면서 그것을 해냈죠. 그는 사람들이 이 클럽을 이끌어온 역대 가장 위대한 감독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높은 자리에 앉게 될 것입니다."
지난 1월 말 클롭 감독이 자리에서 물러나 축구를 쉬겠다는 결심을 공개적으로 밝힌 뒤, 리버풀이 감동의 물결을 타면서 완벽한 이별을 맞이할 것처럼 보였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지속할 수 없었고 더 많은 명예를 위한 그들의 도전은 시들해지고 말았다.
하지만 그의 지위는 여전히 훼손되지 않고 있다. 타고 떠날 것이 얼마나 많고, 그가 남긴 유산이 또 얼마나 많은지를 알기에, 그와 여정을 함께한 많은 사람들이 일요일 안필드에서 그것을 기념할 것이다.
알렉산더-아놀드: "선수로서 우리에게 어려운 전환이 될 것입니다. 감정적입니다. 작별 인사를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절대 이별할 준비가 되지 않을 거예요. 그에게 정말로 할 수 있는 말은 '감사합니다'뿐입니다. 제가 이룬 모든 것은 그와 그가 저에게 준 기회에 달려 있던 것이었습니다. 축구를 마치게 될 때, 우리가 함께한 세월을 가장 재미있었고 최고였으며 가장 중요했던 시간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악터버그: "위르겐이 부임했을 때 리버풀이 어디에 있었는지, 그리고 그들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보세요. 트로피뿐만 아니라 새로 생긴 훈련장과 안필드 재개발도 살펴보시죠. 그는 모든 것을 우승했고 우리의 모든 꿈을 이루었습니다. 그는 유럽 축구가 본 최고의 팀 중 하나를 만들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었습니다."
워너: "트로피 그 이상의 것입니다. 아카데미 출신의 예상을 뛰어넘은 젊은 선수들이 몇 명인지를 보세요. 위르겐은 매우 이타적인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그에 대해 갖는 사랑의 일부는 그가 클럽을 정말로 이해하고 클럽이 서포터들과 유대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가 다른 프리미어 리그 팀을 지휘할 거라는 생각은 터무니없습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심장에 LFC 문신을 새겼습니다."
로버트슨: "그가 없었다면, 제가 축구에서 이룬 것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는 우리에게 인생 최고의 시간을 주었습니다. 제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 그는 저를 가장 먼저 축하해 줬고 제 아내가 괜찮은지 확인해 준 사람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것들은 우리가 잊지 못하는 종류의 것들입니다. 제가 이곳에 있었던 7년 동안, 제 인생에서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는 경기장 안팎에서 핵심적인 지원자였습니다. 늙어서 머리가 하얘졌을 때 돌아본다면, '그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거야'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레인더스: "잊을 수 없는(Unforgettable)"이란 단어를 써야겠네요. 클럽에 오래 머물면서 많은 메이저 트로피를 정복할 수 있었다는 건 정말 축복받은 것 같습니다. 위르겐 클롭과 함께 일하게 되어 정말 영광이었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일에 참여할 수 있었다니 말이죠."
디 애슬레틱 - The Real Jurgen Klopp 시리즈
The Real Jurgen Klopp, part.1 - '검은 숲에서 온 평범한 남자'
The Real Jurgen Klopp, part. 2 - '화약통'
The Real Jurgen Klopp, part. 3 - '원-맨 브랜드'
The Real Jurgen Klopp, part. 4 - '리버풀의 챔피언'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
클롭의 시대를 볼 수 있어서 정말 행운이고 영광이었습니다 YNWA
번역 감사드립니다. 다시 한번 코끝이 찡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