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마와 대한불교 조계종 선종 (禪宗)-
붓다가 한손으로 연꽃을 들어 올렸을 때 그것을 보고 수많은 대중스님중에서 미소를 지으신 분이 바로 마하가섭이었습니다. 부처님의 마음을 마하가섭은 이해하고 미소를 지었다고 하여 염화미소라고 하는데요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달하는 것은 이심전심이라 본성을 발견하고 깨달음을 얻는 것을 견성성불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바로 선종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볼수 있습니다.
선종은 경전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진정한 모습, 본래 부처의 모습을 깨치고자 하였습니다.
그로부터 천년이 지납니다. 그를 이어온 28번째 승려가 있었습니다. 그는 인도를 떠나 중국으로 갑니다. 그리고 중국식 불교인 선종이 뿌리내리게 됩니다.
온갖 진기한 일화들로 가득한 그는 바로 “달마”입니다.
달마는 인도의 승려입니다. “보리달마”라고 합니다. 보리는 깨달음, 달마는 진리의 법을 뜻합니다.
보통 달마를 이름처럼 부르죠 우리에게 달마로 잘 알려져 있으며 일본장식물이나 장난감에도 달마가 표현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달마에게는 다양한 일화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꾸며낸 이야기로 보이는 것이 많습니다. 실존인물인지 의심하는 시선도 있습니다. 생몰연대도 정확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수수께끼 같은 인물입니다.
이제 선종과 관련 달마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서기 5세기 인도에서 달마가 태어납니다. 향지국이라는 곳의 왕자였습니다. 그는 일찍이 반야다라라는 깨달은 자를 만나 출가를 결심합니다. 반야다라는 여성이었으며 달마의 스승입니다. 달마는 그녀에게서 40년동안 가르침을 받습니다.
천년전, 붓다의 제자 마하가섭을 시작으로 27번째 조사로 이어온 인물이 반야다라였으며 그뒤를 이어 달마가 28번째 조사가 됩니다.
어느날 반야다라는 달마에게 말합니다. 자신이 열반에 들고난 후 중국으로 떠나라고 말합니다. 얼마후 반야다라는 생을 마칩니다. 배를 타고서 중국땅에 도착한 달마는 양나라에 무제를 만나게 됩니다. 그때가 520년이었습니다.
<달마와 양무제>
당시 중국은 남북조시대였습니다. 왕조가 계속 바뀌고 전쟁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불교는 이전부터 중국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이때 양나라의 무제는 열렬한 불교신봉자였습니다. 왕이었음에도 불교에 너무나 심취한 나머지 몇 번이나 출가를 시도했고 그때마다 신하들이 매번 데려오곤 했지요
그 무렵 이름난 승려가 중국에 도착했다는 소식이 들려 왔습니다. 양무제는 서둘러 달마를 맞이했고 그리고 많은 신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달마에게 묻습니다. “ 짐은 수많은 절을 짓고 탑을 쌓으며 후원을 아끼지 않았죠” “내공덕이 얼마나 되겠소 ?”
이에 달마는 단호하게 답합니다.
“공덕이 없습니다”
양무제는 당황해 하며 다시 묻습니다.
“어째서 그런가 ?”
속세의 작은 과보일뿐 공덕이라 볼 수 없습니다.
양무제는 분노를 참아가며 또 다시 묻습니다.
“ 그렇다면 가장 성스런 진리는 무엇이오 ?”
“모든 것이 텅 비어 있으니 성스러운 것도 없습니다. ”
양무제는 마지막으로 묻습니다.
“그렇다면 그대는 누구인가?”
“ 모릅니다.”
양무제와 달마는 뜻이 맞지 않았습니다. 달마는 양나라를 떠납니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소림사입니다
<달마와 제자 혜가>
소림사에 도착한 달마는 동굴속에 들어가 벽을 마주보고 9년동안 수행에 들어갑니다. 수행도중 졸음이 쏟아져 눈이 감기면 잠이 오지 못하게 눈꺼풀를 뜯어 버릴 정도로 수행에 열중했습니다.
시간이 지나 어느 눈쌓인 겨울, 한 사람이 달마를 찾아옵니다. 그사람은 제자가 되기를 간청했습니다. 하지만 달마는 쉽사리 응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진심을 보이기 위해 자기 왼팔을 잘라 바칩니다. 달마는 그가 보통 인물이 아님을 알고 그를 제자로 받아줍니다. 그 이후 그 제자는 “혜가”라고 불리게 됩니다.
혜가는 달마에게 가르침을 받습니다.
어느날 걱정을 하나 털어놓게 됩니다. 마음이 편치 않으니 어찌하면 좋을지 물어 봅니다.
달마는 말했습니다.
“그마음이란 것을 내게 꺼내 보여라”
“아무리 찾아도 없습니다.”
잠시후 달마가 말했습니다.
“내가 방금 너의 마음을 편안케 하였다.‘
이말을 들은 혜가는 크게 깨닫습니다.
애초에 마음이란 것은 ‘망상’이며 실체가 없다는 것이죠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신기루 같은 것입니다. 혜가는 자신이 여지껏 허께비 같은 마음에 집착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달마의 제자는 여럿이 있었습니다.
어느날 제자들은 불러 모았습니다.
후계를 정하고 자신은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한것이지요
자제들은 각자 자신이 배운바를 유창하게 말했습니다.
달마는 흡족했지만 뭔가 부족함을 느낍니다. 그런데 혜가는 말이 없습니다. 침묵을 지킬 뿐입니다.
진리는 설명하는 것으로 충분치 않음을 나타낸 것으로 보입니다. 달마와 혜가는 서로 그뜻을 알았습니다.
마침내 후계는 혜가에게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발우와 가사가 전해집니다.
달마에게 가르침을 받았다는 징표인 셈입니다.
<사라진 달마>
달마를 시기하는자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달마가 전하는 사상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논쟁으로 달마를 견제 하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잘되지 않았고, 그래서 달마를 독살 하려고 계획합니다.
달마가 먹을 음식에 독을 섞어 넣습니다. 이사실을 달마 또한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제자 혜가를 불러 말합니다.
“너를 만나 내법을 다 전하니” 이로써 내 할 일은 다 끝났다. 그리고 달마는 독이든 음식을 먹고 앉은째로 눈을 감습니다. 그뒤로 3년이 흘렀습니다.
송운이라는 사신이 인도에서 중국으로 돌아오던 길었습니다. 파미르고원을 지나고 있는데 달마를 만납니다.
달마와 이야기를 나누고 송운은 중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송운은 달마가 이미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놀랍니다. 분명 살아 있었다며 달마가 묻혀 있는 무덤을 파보자고 했습니다.
무덤을 파보니 그안에 달마의 몸은 온데간데 없고 단지 짚신 한짝만이 남아 있었습니다.
달마는 어디로 떠난 것일가요?
달마 이야기는 대부분 후대인들이 부풀린 것으로 보입니다. 그만큼 당시 달마의 존재감이 대단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달마는 불교종파종 하나인 선종을 중국에 전파하였습니다. 그래서 중국 선종 1대 조사가 됩니다.
<禪(선)은 ?>
禪은 본성을 들여다 보는 마음공부입니다.
내안에 잠들어 있는 부처를 깨우는 것이 목표입니다. 경전이나 불상 등 외부적인 것을 넘어 “본질”을 말합니다. 이론보다는 체험을 통한 깨달음이죠. 본질 그마음을 깨닫게 되면 딱히 “마음”이라 할 것이 없는 ”무심“한 상태가 된다고 합니다. 말이나 글로는 이상태를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스승과 제자는 굳이 말로 뜻을 전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고 합니다. 말이나 글자에 얽메이지 말고 ”본질“인 마음에 다가 가라고 합니다. 마음을 깨우치기 위해 참선을 합니다.
참선을 깨우침을 목표로 한 명상의 한 갈래입니다. 고요한 집중에 이르는 상태이죠
달마가 9년동안 면벽수행을 한 이유입니다.
인도에서 시작한 禪사상은 중국에 전하면서 중국불교의 한 종파인 “선종”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이제 그가 어떤 생각을 가졌을지 다음기회에 살펴 보겠습니다.
<선불교의 법맥 >
선종의 흐름을 대충 나열해 보면 염화미소로
잘 알려진 부처님 10대제자중 한분인 마하가섭으로 시작으로
1000여년후
반야다라-달마조사(28대)-혜가-승찬-도신-홍인-혜능-증손자 지장스님-도의선사-염거(설악산 진전사)-체징(장흥 보림사)으로 선종의 법맥이 이어진 것으로 보임.
※ 달마는 중국선종에 1대 조사이고 혜능에 와서 선종이 남종선 등 뿌리를 내린다. 도의선사는 우리나라에 최초 선종을 도입한분으로 대한불교 조계종의 종조가 되신다.
※ 대한불교 종지는 불립문자, 교외법전 견성성불 전법도생
달마가 선종의 씨앗을 뿌려 싹을 티웠다면 혜능은 열매를 맺게 했습니다.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선불교는 민중의 접근이 용이해서 어려운 경전을 둘러싼 그들만의 경쟁이 아닌 누구나 깨달을 수 있다는 수행법은 충분히 매력적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