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침안개와 서리로 인해 강가가 멋지다.
틀어 박혀 일만 하는 나를 위해 남편이 강가 사진을 찍어다 보여 주었다.
물안개 피어 오르는 고향마을 샛강이 한 폭의 그림 같았다.
1년에 한번 딱 이맘때쯤 하는 특별한 외출
김장김치 배달을 가는 날이다.
이 행사는 벌써 13년째이다.
처음 우리가 귀촌을 하고 남의 배추를 팔아 주느라 김장까지 하게 되었고
친구 친척등이 연결이 되어 절임배추며 김치를 배달하게 된 것이다.
그 전에도 아버님께서 살아 계실적에 농사지은 것을 도시에
친구와 지인들에게 파느라고 가을이면 이 외출을 했었다.
30년 전만 해도 반포에 5층짜리 주공아파트가 많았었고
그 지인들을 연결 해 준 것이 셋째이모
남편은 그 때만 해도 힘이 넘쳐서 80키로짜리 쌀 한가마를 지고
5층 아파트를 오르내리며 배달을 했었고 그것이 지금도 연결되어
인터넷을 잘 안하는 이모의 지인들과 내 친구들 중 일부는 지금도
직접 배달을 하는 것이다.
올해는 하루 전날 출발을 했는데 김치를 담아서 가려니 서둘렀어도
어느새 집에서 떠나는데 해는 이미 뉘엿뉘엿이었다.
한밤중이어도 좋다고 꼭 날짜를 맞추어 배달을 해 달라는 이들이 있으니
어쩌겠는가 저녁도 못 먹고 제천을 거쳐 충주배달 다시 용인으로 판교로
분당으로 배달을 하고 나니 밤 열두시가 넘었다.
배가 고팠지만 어디 밥 먹을 시간도 안되었다.
중간에 이모가 주신 주점부리와 샘물이네님이 주신 빵이 있어 일단 허기는 면하고
밥도 못 먹으러 갈 이유가 있었다.
집에서 떠나며 홍대언니와 연결이 되었는데 어디서 잘 거냐고 물어서
그냥 발길 멈추는 곳에서 잘 거라고 했더니 괜시리 길에 돈 버리지 말고
언니네 친정에 와서 자라고 하였다.
마침 배달을 가야 하긴 하지만 그래도 새벽 한시에 가는 것은 너무 한 것 같아
사양을 할랬더니 언니는 홍대에서 명일동까지 세시간 넘게 와 가지고
기다리고 계셨다.
혹여 언니네 친정이 불편할까 보아 동생에게 부탁해서 근처에
오피스텔까지 얻어 놓았다.
우리집에서 새벽 1시면 나는 바쁠 적에 벌써 일어 날 시간인데
도시에는 아직도 사람 많고 자동차 많고 모두들 아무렇지도 않게 깨어 있는게
참 낯설게 느껴졌다.
언니와 언니의 동생은 깨어 있었다 하지만 주무셨던 언니의 친정엄마는
그 밤중에 깨어 나셔서 우리를 위해 저녁밥을 차려 주셨다.
달걀 후라이에 갈비탕까지
아이구 ! 죄송하고 황송해라 ~
오피스텔에 난방까지 넣어 놓았다는데도 남편은 그냥
어머님 댁에서 자자고 하였다.
어르신을 좋아하는 남편의 마음이 느껴졌다.
누구 보다도 홍대언니의 어머님이 좋아하셨다.
오랜만에 딸들도 와서 같이 자고 거실에는 손님도 있으니 말이다.
여전히 새벽에 일찍 일어 나는 나
어머님은 우리가 일어 났나 확인을 하고 까치발을 들고 다니시며
아침 준비를 해 주셨다.
나는 할 일이 없어서 가지고 다니는 가방을 꿰맸다.
벌써 오래전부터 가방 끈이 떨어지려 하는 것을 꿰맬 시간이 없어
미루고 미루었던 일이었다.
어머니의 반짓고리에 오래 된 실패가 정겨웠다.
또 다시 차려 주신 아침
시레기 국을 끓이시고 조기도 구어 주셨다.
어떤 진수성찬 보다 감사하고 마음 흐믓한 아침밥상이었다.
마치 돌아 가신 시어머니께서 차려 주신 것 같았다.
남편은 본래 아침을 잘 안 먹는데 어른이 권해 주시니
두 그릇이나 먹었다.
해마다 이맘때에 배달을 가면 이상하게 비가 왔다.
날짜를 달리 가는데도 불구하고 늘 그렇게 비가 오니
항상 비 준비를 해 오는데 이번에는 아침에 문을 여니 눈이 내렸다.
서울에는 첫눈이라고 했다.
우리에게도 첫눈이었다.
도시에는 아직 가을단풍이 남아 있는데
하얀 첫눈이 내려 아름다운 콜라보를 연출했다.
우리 트럭에도 한거석 눈이 덮혔다.
그래도 비 보다는 나은 첫눈 오는 날의 배달길 ~
어쩐지 따스하게 느껴지는 특별한 날이었다.
두루 두루 고향친구 친척들을 1년만에 만나고 정도 주고 받고 돌아 왔다.
친구가 수세미를 한 가방 떠 주어서 얻어 오고......
작년 이맘 때부터 시작한 가재골 다리 놓는 일은 이제 이만큼 진행이 되었다.
내년에는 완성이 될랑가?
그곳에 사는 사람이 아닌 들락날락 하는 입장에서는 어쩐지 아쉬움이 든다.
그래도 지난 여름에 폭우로 학교에 못 간 아이들이 울고 불고 학교 가고 싶다고
산을 넘어 가겠다고 하던 생각을 하며 내 아쉬움은 마음으로 접는다.
삶은 그런 것인가 보다 상대방의 입장 보다는 내 입장에서 생각하게 된다는 ~
주일 예배가 끝나고 오후에 성경쓰기를 하기로 했는데 마음이 바빴다,
사실은 이번이 남편과 내가 결혼한지 34년
햇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우리가 주일에 결혼을 했는데
생각 나는 거로는 이번이 처음 같았다.
그래서 전날 남편과 짧게나마 여행을 가자고 했더니 아무말도 안했다.
우리부부 사이에서는 대답을 안한다는 것은 두가지로 해석 할 수 있는데
한가지는 긍정 한가지는 맘에 안들 때 대답을 안한다.
맘에 안 드는 것은 아닌 표정이라 가는 것으로 알아 들었다.
그래도 이 바쁜데 무슨 여행이냐고 할까봐서 다른 일을 하나 잡았다.
일전부터 식초를 보내 달라는 분이 계셨는데 보낼 병이 없었다.
멀리 외국까지 가지고 가신다는데 유리병은 깨질까봐 그렇고
또 한두병도 아니고 10병이 넘으니 천상 새롭게 공장을 알아 보아야 할 판이었다.
이웃에 강마담님이 소개한 공장을 알아 보니 남양주시 진접에 공장이 있었다.
그래서 남양주나 양수리 어디쯤으로 여행지와 숙박을 알아 보았는데
기왕이면 아침을 주는 한옥민박이라면 더 좋겠다 싶어 일단 몇군데 알아만 보고
교회로 갔고 당연히 간다고 할 줄 알았는데 막상 가겠다고 교인들께 말하고 있었더니
남편이 바쁜데 태클을 걸고 나섰다.
서울쪽은 길이 밀려 주일에 나서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평일에 자기 혼자 공장을 갔다 오겠다는 것
정 가고 싶으면 버스 타고 나 혼자 갔다 오라고 했다.
이 때에 목사님을 비롯한 교인들이 이구동성 무슨 말이냐고
결혼기념일 여행을 무슨 혼자 가느냐고,
빨리 떠나면 차도 안 밀린다고,
설겆이도 하지 말고 빨리 가라고,
성경쓰기는 가서 아침에 하라고.
등떠밀듯이 보내 주셔서 오후예배도 안 드리고 남편은 대답을 했다.
남편은 정말로 가기 싫은지 밍그적 밍그적 뭔가 일을 하고 다니고
안 닦던 차도 닦느라 한 세월을 보냈다.
보다 못한 아들이 나와서 일년에 단 한번인데 엄마 마음을 맞추어 드리라고
가서 모자도 사고 싶다면 사게 놔 두시고 맛있는 것도 함께 드시고 하라고
조근 거리며 아빠와 이야기를 했다.
그리하여 네시가 다 된 시간에 길을 떠났는데 영월도 못가 차 바퀴가
바람이 빠진 것 같다고 카 센터에서 한나절~
충주 여주를 지나며 어느새 해가 서산너머로 꼴까닥
목적지인 양수리와 남양주 사이에 있는 한옥민박에 밤중에 도착을 했는데
여름만 하고 겨울에는 안한단다.
두번째 보아 둔 집을 갔더니 이번에는 전날 온 손님방을 치우지 않아서 안된다고 했다.
본래 나는 예약을 잘 하는 편인데 남편이 확실히 대답을 안하니
예약을 할 수도 없던 터~
몇집이나 헛탕을 쳤더니 이제는 남편이 제안을 했다.
그냥 볼일 볼 공장이 가까운 곳의 모텔에 가서 자자고
공장이 있는 남양주의 진접쪽으로 길을 달려 갔더니 잘 못 길을 달려서
서울시가 나왔다.
서울시에 들어 오더니 남편이 갑자기 활기가 났다.
주유소에 가서 주유를 하겠다는 것
기름을 넣는 남편은 눈을 반짝이며 좋아서 입까지 벌어졌다.
그 전날 김치 배달하러 서울에 갔다가 기름을 못 넣고 왔다고
오는 내동 아쉬워 했었다.
내가 보기에는 다 합쳐 봐야 2000원 정도 차이인데 남편이 체감하는 차이는
20만원은 되는 것 같다.
다행히 그 2000원 정도로 남편의 기분이 좋아졌다.
졸지에 온 서울시 태릉
시골에 살면서 새댁 때부터 태릉선수촌
갈비에 대해 많이 들어 보았다.
태릉갈비 ~
그래도 우리내외가 결혼기념일을 잘 챙기지는 않았지만
그 날에 거의 꼭 해 온것이 있었는데
비싼 쇠고기를 사 먹는 일이었다.
사실은 전 주에 올해 농사 지은 밭들의 주인들을 만나 밭도지를 드렸는데
그것이 여섯집 이었다.
그런데 한집만 빼고 약속이나 한 듯
10만원씩을 빼 주시며
<쇠고기나 사 잡수셔~>
하고 말씀 하셨다.
도지로 200여만원이 나갔는데 그 중 다섯집이 10만원씩을 빼 주셨으니
50만원어치의 쇠고기를 사 먹을 수 있다.
그것도 남편도 나도 망설임이나 어려움 없이 말이다.
그래서 그 돈으로 올해는 마음껏 쇠고기를 먹었다.
영월에도 쇠고기가 있고 또 맛있기도 하지만 영월에 잘 없는 것이
바로 이 기계로 뺀 가는면의 냉면이다.
지난 여름에 강릉에 가서 어떤 어머님이 사 주셨던 냉면을 너무나도 맛있게 먹어
늘 다시 한번 먹고 싶었는데 역시 서울이라 그런지 그런 냉면이 있었다.
남편이 인터넷으로 고른 모텔에 네비를 작동해서 찾아 들어 갔다.
한강변에 있는 모텔이었는데 6층에서 내려다 보이는 의외의 풍경에 마음을 빼았겼다,
산속에 사는 우리는 못 보는 풍경이었다.
교교히 흐르는 넓은 한강
그리고 건너편 어떤동네의 야경이 마치 밤하늘의 별들처럼 반짝였다.
일부러 불을 켜지 않고 한참을 풍경 감상을 했다.
일거리들이 밤에도 말똥거리고 눈을 뜨고 있는 우리집과는 달리
편안함과 멋진 야경이 있는 낯선 도시의 풍경이 이렇게 좋을 수 없었다.
반달이 되어 가는 새벽달의 풍경도 좋았다.
저 건너 마을은 어떤 곳일까?
나는 미지의 세계를 그리는 소년처럼 새벽 시간 내동 창가에 앉아
그 풍경들을 또 감상했다.
아침이 다가 오니 밖의 색이 좀 달라졌다.
한정기님이 보내 주신 신작 깡깡이를 읽었다.
어쩌면 이 책을 얼른 읽고 싶어 일을 피해 이 짧은 여행을 계획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나도 어린시절 주인공처럼 엄마가 일하는 뽕나무 밭에 하루에 두번
둘째 동생 젖을 먹이러 10리 길을 오르락 거렸었다.
젖먹이 동생만 챙기는 것이 아니라 바로 아래 아장거리며 걷는 첫째동생까지 데리고
여섯살 아이가 다니기에는 늘 버거웠던 길
그래도 한번도 어른들이 원망스럽지 않았고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구나 하고 살아 온 길
산골에 살던 나나 부둣가에 살던 깡깡이의 주인공이나
같은 시대 같은 삶을 살았구나 하며 마음 흐믓하게 이 시대를 맞고 있다.
책에 빠져 있다가 어느 순간 눈을 들었더니 그 새에 야경을 밝혀 주던
가로등들은 꺼지고 앞쪽 강가 나무들이 처음에는 수채화처럼 선명하지 못하다가
조금 시간이 지나니 유화처럼 선명한 모습들이 나타났다.
그 강건너 마을에 무엇이 있을까 궁금했던 조금 전 새벽까지의 궁금증은 안개가 걷히고
조금씩 나타났다.
바로 거대한 아파트 촌이었다.
잠시나마 그렸던 무지개 마을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실망하지 않았다.
그것이 우리의 현실이니까
나는 오늘도 현실의 삶에 충실하는 중이므로 ......
전날 못한 성경쓰기도 약속대로 써 내려 갔다.
올 봄 부터 온 교인들이 한 파트씩 맡아서 하고 있는데
늘 일이 많아 큰 진전이 없다.
나는 아직도 두권 째인데 남편은 세권째 권을 쓰고 있다.
몇년이 걸려야 다 쓸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함께 하는 것에 의미를 두고
열심히 하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와 있게 되지 않을까
여행을 왔으니 오랜만에 화장도 해 본다.
화장한지가 언젠지도 모르겠다.
카메라로 사진 찍는 소리가 나서 돌아 보니 남편이 내가 화장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고 있었다.
남편도 오랜만에 아침 늦게까지 잤다고 기분 좋은 미소를 보내 주었다.
모텔 강가에서 34주년 결혼기념일의 사진을 하나 남기고 ~
진접 공장에 가서 식초용기를 차로 하나 가득 사고 다시 길을 달려
양수리로 왔다.
정식여행도 아니고 아닌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이번에 꼭 가 보고 싶은 곳이 있었다.
바로 양수리에 있는 연잎 핫도그 집인데 비닐하우스 같은데서 하는데도 불구하고
주말에는 줄을 몇십미터는 서야 한다고 한다.
재미 있는 것은 이 댁이 태풍 쓰나미 때만 쉰다고 한다.
넓은 마당도 있어서 여행 온 기분도 충분했다.
이렇게 비닐하우스가 입구
연잎을 반죽에 넣어서 연핫도그이다.
기대했던 것 보다 맛도 좋고 가격도 좋았다.
하나에 3천원
아들 줄 것도 사고 오다가 여주 친구 줄 것도 샀다.
돌아 오는 길의 남편은 어제 떠날 때 보다 훨씬 기분이 좋았다.
고속도로를 달려 오면서 고속도로 길 옆에 사는 친구네 이름을 창문을 내려 불러도 보았다.
원주에 오니 눈이 가득 쌓여 있고 하늘이 너무나도 맑아 그냥 지나 올 수가 없었다.
남편이 차를 몰아 치악산 골짜기에 들어가 사진도 찍고 친구네 들려 차도 한잔 얻어 마시고 ......
여러가지 다른 볼 일도 보면서 엄마네 집이 있는 제천까지 오니 어느새 저녁 때
새로 이사한 엄마네 집 이곳저곳 소소한 집기들을 손 보아 드리고
나와 엄마는 그 새에 저녁을 지었다.
쇠고기 사 먹으라고 땅 주인들이 주신 돈이 아직도 많이 남아서
아버지와 엄마도 드시라고 좋은 안심 고기를 골라 사 가지고 왔더니
두 분 께서 너무나도 잘 드셨다.
젊은 날에는 아들이 먹는 것을 보는 것이 더 좋았는데
나이가 들수록 내가 먹는 것 보다 부모님을 사 드리거나 해 드려서
잘 드시는 것을 보면 마음 흐믓하다.
얼마나 더 드릴 수 있을까 언제나 아쉬우며 아까운 마음이 전혀 없다.
뜻하지 않은 일을 하면서 한 짧은 여행
오늘도 감사 하여라.
첫댓글 결혼기념여행 잘 다녀오셨어요.
그렇게라도 챙겨야 합니다.
모텔에서 여행의 기쁨을 즐기시고 핫도그도 사먹고
부모님까지 뵙고 온 여행!
김치택배여행도 힘들지만 재미난 추억이 되겠습니다.^^
그 바쁜 중에도 성경 쓰기 하는 금자씨가 대단합니다!
남편과 마음이 안 맞더라도 어떻게든 맞추어 가며 살아가는 지혜가 금자씨를 더 빛나게 합니다.
언제나 상황이 받쳐주지 않더라도 기운 잃지 마시고 웃으면서 털어 버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