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의 눈물과 병어초무침.
이난영은 죽은 후 당대에 전설이 되었다.
올해 쉰 아홉이 된 나는 생전의 이난영을 본적이 없다.
찾아보니 이난영은 1965년에 작고했다.
1916년 생이니까 향년 48세이다.
불과 48년을 살고 그녀는 전설이 되었다.
내가 두살 때 작고한 이난영을 나는 살면서 아주 많이 보고 들었다.
그래서 그녀가 무척이나 오래 살아 나와 동시대를 산것으로 알고 있을 지경이다.
죽은 뒤에도 그녀는 사람들 가슴에 살아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죽은 이난영을 끊임없이 소환해낸 것이다.
죽어서도 잊혀지지 않은 자의 영혼은 평온할까?
그녀의 짧은 생애를 알고 난 이후 가끔은 안쓰럽기도 했다.
목포는 이난영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없는 태생적 한계를 가진 도시다.
남도의 항구 도시로서 분명 유구한 역사를 지닌 도시일 것이 분명하나,
목포에 관련된 것을 어느것 하나 제대로 아는 것이 없는 나로서는
이난영이 목포고 목포가 곧 이난영이다.
이난영이 없는 목포는 상상하기 어렵다.
그리하여 목포는 항구여야 하고,
눈물어린 사연을 지닌 '고단한 슬픔'이 도시 곳곳에 서려있는 항구여야만 했다.
내 의식속엔 그렇게 고착돼 있었다.
분명 이난영의 노래를 먼저 들은 까닭이다.
'목포의 눈물' 이라니!
그리하여 저 도시를 찾아 거리를 배회하면 저곳에 뿌리내리고 사는 원주민들의 고단하고 애잔함이
내 삶을 위무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그리움' 같은 것이 내재해 있었다.
그때부터 목포는 내 그리움이 되었다.
나에게 목포는 이난영을 벗겨내기 전에는 언제까지고 애잔함과 고단함의 도시다.
목포가 내 생에 상전벽해의 변신을 한다 하더라도 목포는 항구고 목포는 이난영일 뿐이다.
내겐 그렇다.
지나치다 너무 나무라지 마시라.
당신도 어느 한 도시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이 있지 아니하신가?
이런 '막연한 그리움' 하나 간직한 도시가 있음은 길 떠남을 좋아하는 이들에겐 축복이다.
고로 여행은 이런 막연한 그리움을 충족 시키기 위한 행복한 순례길이다.
그 순례길에서 자신의 터전에서 상처받고 주저앉은 고단함을 위로받고 새로운 희망을 안고 돌아오는 일.
그게 그리움을 간직한 여행이 주는 보너스이다.
그러나 그리움이 깊어 병이 될지라도 강원도 저 바닷가에서 나고 자란 내게 목포는 너무 멀었다.
근래 수원으로 터전을 옮겼으나 여전히 목포는 멀었다.
어쩌면 멀어서 더 그리움이 사무쳤는지 모르겠다.
그리움이란 이런 것이다.
그립다고 너무 자주 만나거나 찾아가면 그리움이 옅어져 상상은 퇴색하고 현실만 남아 실망이 커지는 법이다.
그리운 것은 가슴에 담아 둘 때
그 빛이 오래가는 것이다.
목포가 내겐 그렇다.....
수원에서 목포까지는 8백리 길이다.
결코 만만치 않은 거리다.
초겨울 신새벽 출발해 점심나절 도착한 목포.
앞으로는 삼학도를 두고
뒤로는 유달산이 자리하고 있는 구도심.
막연히 '유달동'이거나 '삼학동' 일것이리라 생각되는, 아직도 일본 색채가 짙게 남은 도시는 마치 한 세대 전을 보는 것 같다.
현대에 남아 있는 근대.
왜 목포가 '눈물'의 도시인가를 상징으로 보여준다.
근대에 박혀 있는 저 시대 민중들의 아픔은 이 글에선 애써 피하려 한다.
이미 많은 이들이 그 시대의 아픔을 표현했고 증명했음을 알고 있음이다.
그냥 거리를 걸어보면 안다.
이 속에 자리한 아픔이 얼마나 깊었을까를.
그 고난을 견뎌낸 앞선 세대의 삶에 새삼 경의를 표하게 된다.
한세대 전의 거리를 걸으니
이난영이 더 현실로 다가온다.
왜 이난영이 '목포의 눈물'이라 했는지 알게된다.
각설.
우선 요기를 해야 했다.
그리움 가득한 여행길, 첫 먹거리가 중요함은 당연한 일.
목포 옆 함평이 고향이고 목포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동행인이 추천한 꽃게탕집이 첫번째 식도락의 시작이었다.
목포에는 오미(五味)가 있다고 한다.
홍어, 갈치, 꽃게, 민어, 낙지.
바다에서 나는 이 다섯가지 생선이 목포를 대표하는 맛이라고 했다.
실상은 어디서나 먹을수 있는 음식이다.
그러나 제 고장에서 먹는 음식에는 그곳의 향기와 거기에 나그네의 여유로움까지 함께해 별미가 된다.
꽃게탕과 꽃게살 비빔밥으로 유명한 '장터식당' 도 그러했다.
그러나 기대에 살짝 못미치는 부족함이 있었다.
그리움이 깊어 병이 되어 찾아온 도시의 첫 끼니로서는 뭔가 조금 아쉬웠다.
우선 떡하니 밥상 중간에 서있는 향토술, '잎새주'를 비워야 했는데 안주로서 만족스럽지 못했다.
뭐가 더 없을까?
벽에 붙은 메뉴판을 훑어보니 병어초무침이 추천 요리로 붙어 있다.
"아주머니 병어 초무침 하나요!"
미리 얘기하자면 이 병어 초무침을 시키지 않았으면 목포 식도락은 '당나귀 귀빼고 뭐 뺀' 식의 밋밋한 여행이 될 뻔했다.
기대없이 주문한 병어초무침은 목포 식도락의 화룡점정이었다.
촌스러운 접시에 아무렇게나 담겨 나온 병어초무침은 첫 젓가락을 떠서 입안에 넣는 순간 "아하!" 하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세상에 이런 맛이 존재하는구나!
맛의 별천지였다.
병어의 부드러움 식감과 구수함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거기에 같이 버물린 야채속에 밴 식초와 양념의 조화가
먼 길 달려오느라 피곤한 온 몸에 녹아들어 아연 생기가 돎을 느낀다.
잎새주 한잔을 곁들이니
세상 부러울게 없다.
일배일배는 부일배라,
한잔 먹세 한잔 먹세,
어찌 한잔으로 끝날소냐,
꽃게탕 앞에서는 잘 비워지지 않던 술잔이
순식간에 한 병이 비워지고
또 한병이 올라왔다.
"아주머니 여기 병어초무침 하나 더요!"
미처 접시가 비워지기도 전에 하나를 더 주문하곤 서로 박장대소 한다
오케이!
목포 식도락 여행은 이것으로써 시작이자 끝이다, 라고 선언해버렸다.
실상 남도의 최고 별미 홍어의 독특함을 즐겨 수도권에서도 이미 여러번 먹었고 한때는 원정을 다니면서 먹기도 했었다.
그중 별미는 인천의 홍어 전문점이었다.
연안부두 부근의 재리시장 골목에서 우연이 만난 허름한 '목포집' 식당에서 먹은 홍어애탕의 맛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이른 봄,
춘래불사춘이라,
겨울인지 봄인지 모를 혼란스러운 계절,
차가운 비가 내리던 날,
동행인의 손에 이끌려 찾아든 그곳에서 처음으로 홍어애탕을 먹었다.
추위에 떨다 언 몸을 녹이려 소주 한잔 곁들여 먹은 홍어애탕의 그 독특한 맛.
순식간에 나는 홍어애탕 애호가가 되었다.
이후 홍어애탕 꽤나 먹었다.
홍어도 많이 삭아야 입에 맛을 만큼 애호가가 되어 왠만해선 맛있단 소리가 안나왔다.
그러나 호불호가 분명한 음식이라 모두가 함께 즐기기엔 조금 불편함이 있었다.
그런데 이 병어 초무침은 아니었다.
모두에게 만족도가 높았다.
이후 티브이에서 만화가 허영만 선생이 진행하는 '백반기행' 이라는 프로그램을 보니 전라도 음식은 원재료의 신선함에 더해 양념이 핵심이었다.
풍부한 지역 특산물로 양념법이 잘 발달해 음식의 맛이 깊다고 했다.
그랬다.
병어초무침은
깊었고 부드러웠고 새콤했고 달콤했다.
깊되 너무 깊지만은 않아 그 깊이를 알듯말듯 해서 고개를 끄덕이게 했고,
부드럽되 아주 부드럽지만은 않아 씹히는 식감이 그대로 입안을 감쌌고,
새콤하고 달콤하되 아주 시지도
아주 달지도 않아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이럴줄 알았으면 아예 처음부터 병어초무침으로 시작해 꽃게탕으로 입가심을 해야 했다.
주객이 전도된 느낌.
기대없이 주문한 음식이 주 메뉴를 넘어 버린 것이다.
두번째 접시까지 싹싹 비운 동반자
두 부부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식당을 나섰다.
맛난 음식에 술기운마저 살짝 돌아 목포가 더 아름답고 정겨워졌다.....
다시 각설.
이 여행 이후 나에겐
목포는 이난영의 노래에 더해 또 하나의 이미지가 더해졌다.
목포의 별미는 오미(五味)가 아니다.
목포 육미(六味)이다
홍어, 갈치, 꽃게, 민어, 낙지.
그리고 병어초무침이다.
이후 유달산을 오르고 유달산 케이블카를 타고, 바다를 가로지르는 천사다리를 건너 이름도 가물가물한 섬을 다녔다.
그러나 그 모든 풍광은 이난영의 노래 한곡조를 넘어서지 못했고 어떤 음식도 병어초무침을 능가하지 못했다.
민어 삼치회도 조기한정식도 그러했다.
이건 순전히 독특한 내 취향때문이다.~^^ㅎ
혜량하시라~~^
☆사진 설명
젤 위의 사진은 기대없이 시켰다 그 맛에 매료된 병어 초무침.
저 촌스러운 접시며 데코레이션에 조금은 실망했지만 그 맛은 아주 좋아서 지금도 입안에 침이 돈다.
이후 내 목포여행의 이유 중 하나는 저 병어초무침이 더해졌다.
거기에 잎새주 한잔이 주던 그 기쁨.
목포는 이제 병어초무침이다 ~^^ㅎ
아래 사진은 병어초무침에 부른 배를 삭히기 위해 유달산 아래 '유달산 로망스'라는 일본풍이 그대로 남은 카페에서.
적산가옥을 부분 수리해 만든 카페에 앉아 엘피판으로 이난영의 목포는 항구다 와, 목포의 눈물을 듣는 일은 시대를 거슬러 가슴 아픈 시절을 만나는 일이다.
목포는 과거와 현재가 이난영의 애잔한 음색처럼 곳곳에 뒤섞여 있는 도시였다.
첫댓글 주말,
할일없어 또 끄적여 봅니다.
병어초무침에 쐬주 한잔 하시는 주말 되세요~^ㅎ
맛깔스러운 글을 읽는 내내
입가에 침이 고이면서
입 맛만 다시게 되네요..쩝~쩝ㅋㅋ
유달산은 가본지 10여년 되는데요,
기억이 가물거립니다.
대구서 300km ...
병어회초무침, 유달산로망스 카페
한번 다녀 와야 겠습니다^^
같이 가실분~~~~~ 손!!
ㅎㅎ^^
온그린 님
클리프행어님이 우선 선착순 아닐런지요~^^ㅎ
@퍼팅박사
워낙 바뿌신분들이라서 ㅎㅎ
볼 치는 것 외에는
멀리 다녀 올려고 하실지 ~ ^^
허~!
이 아저씨 인생을 참 맛깔나게 사시네요.^^
이렇게 살면 맛깔나게 사는 건가요?ㅡㅎ
전 이런것도 좋지만 공 자주 치는 방장님이 부럽습니다~^^ㅎ
@퍼팅박사 아시는 바와 같이
미국에 살면 골프는 나가기 귀찮아서 안나가는 것이지요.^^
근데 요즘 이곳은 완전 코로나 지옥인데요?
그래도 부러우세요?
전 목포에 가서 맛난 병어 초무침 먹는게 훨씬 부럽습니다.^^
@gentle ㅎㅎ~
코로나는 빼고요~^^
코로나는 그나마 울 나라가 젤 안전하지 싶습니다.
특히 캘리포니아 쪽이 심하다던데 방장님 늘 건강잘 챙기시길 빕니다.
빨랑 이눔의 코씨가 사라져야 엘에이를 가던 태국을 가던 목포로가서 병어초무침을 먹던 할텐데.
그나마 요즘은 집콕입니다.
글 덕분에 ....ㅎㅎ
올해 목포 꼭 가봐야 겠네요.
전라도 가본적이 몇 10년 되었네요.
합해서 평생 3~4번도 안된다니...ㅠ
ㅎㅎ
우야튼 제 글로인해 목포 여행객 한명 늘어난거 맞쥬?ㅡㅎ
호남은 왠지 여행으로선 늘 설레이는 곳입니다.
멀리 고흥 순천 해남... 또 섬에도 가고픈 곳입니다
지극히 평범한 접시에 맛깔나게 버무린 푸짐한 병어초무침 침 꿀꺽입니다. 츄릅
병어는 거의 횟감입니다. 감자나 호박넣고 조림 해도 맛 베리굿이여요.
비린내가 나지않거든요.
언제 법성포 가시면 덕자찜도 드셔보시길.
어릴적 먹었던 병어맛 소환시켜주셔서 감사합니다.
고향 음식이 꼭꼭 숨어있던 슈슈맘 누님을 소환 했군여~^^ㅎ
우찌 지내시는데 이리 꼼짝도 안하신데요?
법성포 조기 한정식은 정형화되서 그냥 조기구나 했는데 덕자찜은 아직 못먹어 본 음식입니다.
기회되면 진산형이랑 스크린 한번하고 병어찜이나 초무침 한번 하시죠~^^ㅎ
@퍼팅박사 네~~좋아요.
스크린 한겜 하고 막걸리 푸짐하게 먹읍시다. ㅎ
언제든 날 잡으시요 ㅎ
날만 잡아요
강화에 가면 병어 맛집 있어요
팍 쏠테니
난 남쪽으로 여행가면 기본이 5끼
그래도 허기지니 ㅎ
강화는 밴댕이회무침 아닌가요?
강화 풍물시장 2층에 가면 단골집도 있는데~^^ㅎ
2년 전에 목포 여행을 한적이 있읍니다. 난생처음 남도여행을 했는데 참으로 정감이 느껴지는 도시였읍니다.
맛난 음식과 찰진 사투리, 은퇴하고나면 이런곳에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절로 들었읍니다.
참 좋은 동네~~~
님도 저처럼 호남에 막연한 그리움이 있었군요~^ㅎ
풍부한 먹거리와 넉넉한 인심.
이만한 여행지가 또 있을까 싶습니다.
긴 라운드 후 귀가하여
정독의 예를 갖추어 퍼박님의 글을 읽습니다
토박이의 유혹의 손길이 아니라
지나가는 길손의 탄식에 의해 여행의 충동을 느끼게 되는 법,
목포의 오미에 병어초무침을 기억해둡니다
올해 안에 이난영의 구성진 가락을 타고 세월을 거슬러 올라
목포 식도락 여행을 다녀와야겠습니다
여행후기 같은 잡문입니다.
요즘 주말에 할일이 없어 이런 짓(?)으로 시간을 죽이는 중입니다.
초겨울 다녀오고 저 병어초무침에 관련된 글을 꼭 한편 쓰고 싶어 여러번 시도했는데몇줄 못가 막히곤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저런 목포관련 자료들을 관심있게 챙겨보는 걸로 답답함을 달랬습니다.
그러다 지난 토요일 새벽 일찍 눈을 떠, 아무 기대없이 쓰기 시작한것이 한 너댓시간 걸려서야 겨우 요만한 글 한편을 완성했습니다~^ㅎ
그래도 부족하지만 이렇게라도 정리해두면 목포와 병어초무침에 얽힌 기억이 오래도록 남을것같아 다음에 다시 가더라도 그 느낌이 오롯이 살아나지 싶습니다.
병어초무침은 처음 먹어본 음식이라 더 새롭고 맛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거기에 이난영의 노래와 일제의 흔적이 짙게 남아있는 구도심의 근대적 풍경.
이런것들이 길손의 심금을 울려 글이 되어 나온게 아닌가 합니다.
앞으론 목포 오미가 아니라 육미입니다.
목포시에서 이 글을 보고 육미로 고쳐야 하는데~^^ㅋ
저는 1980년대 후반에 처음 목포를 가보았습니다.
유달산과 목포의 눈물 이 두가지가 제가 아는 전부였죠.
유달산은 어렵지 않게 올랐지만 삼학도는 실망스러웠습니다.
매립이 되어 있어 일단 섬 같지 않았고 폐선들이 늘러서 있어
을씬년 스러웠다고 해야 할까요?
서해안에 위치한 여러 항구들이 일제 강점기 번성했었으나
해방이 되고 내륙의 교통이 원할해 지면서 서울에서 먼 곳은 쇠퇴일로였었죠.
아무튼 저의 첫 방문은 실망스러웠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어가니
항상 궁금해 하는 우리의 근대역사들을 간접적으로나마 만난 수 있다는 기대감에
갈때 마다 시간 여행은 충분히 하고 옵니다.
다음에 가면 병어 초무침 꼭 먹어봐야겠네요.
목포나 군산이 우리의 아픈 역사를 아직도 간직한 도시이지요.
그래서 그 거리를 걷다보면 애잔함이 더 합니다.
그럼에도 목포는 사람을 불러들이는 묘한 매력이 있는거 같습니다.
아마도 그중 하나가 이난영이 아닌가 합니다.
숱하게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과 목포는 항구다를 들었지만 병어 초무침으로 남도의 맛에 취한뒤 적산가옥 카페에 앉아 엘피판으로 듣는 이난영의 노래는 완연히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여행에서 저런 느낌이 올때, 그 여행은 만족스럽습니다.
문제는 저런 감흥이 있는곳이 점점 사라지는게 아쉽습니다.
늦게 제글을 찾아보고 댓글 주심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