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크보 3대 미스터리 2008년 타격왕 이현곤 인터뷰

[케른]

<H3 class=posttitle>주목 받지 못한 타격 2관왕</H3>

스포츠2.0|기사입력 2008-01-02 18:00 |최종수정2008-01-02 20:50

KIA 내야수 이현곤은 올시즌 타율과 최다안타 1위에 오르며 2관왕을 차지했다. 크게 주목받거나 상을 받진 못했지만 이현곤에게 올시즌은 미래를 향한 값진 출발이다.(사진 김수홍)

KIA 내야수 이현곤은 2007시즌 타율과 최다안타 1위에 오르며 타격 2관왕을 차지했다. 정규시즌 전 경기에 출전해 거둔 성적이라 더욱 가치가 있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두산 다니엘 리오스(현 도쿄야쿠르트 스왈로즈)에 뒤져 시즌 최우수선수로 뽑히지 못했고 골든글러브 3루수 부문에서도 역시 두산 김동주(FA)에게 12표 차이로 밀려 수상에 실패했다. 게다가 팀이 꼴찌를 해 주목하는 이도 많지 않았다.

과연 이현곤은 국내 프로야구 사상 가장 사소한 타격 2관왕에 만족해야 하는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이현곤에게 올시즌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의 출발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11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컨벤션센터 오디토리엄에서 열린 2007 골든글러브 시상식. 시상식 장소와 시상식을 보기 위해 길게 줄을 선 야구팬이나 깔끔하게 양복을 차려 입은 선수들은 예년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야구위원회(KBO)가 배포한 시상식 진행 안내문을 받았을 때 뭔가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투수가 아니라 3루수 부문을 가장 늦게 시상하네.” 많은 이들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이유가 있었다. 3루수 부문의 경쟁이 가장 치열했기 때문이다. 타율 3할2푼2리(5위), 출루율 4할5푼7리(1위), 홈런 19개(8위), 타점 78개(6위)를 기록한 두산 김동주가 도루를 뺀 타격 전 부문에서 고루 상위권을 기록하고 팀을 한국시리즈까지 이끌었다면 KIA 이현곤은 정규시즌 전 경기에 출전해 타율 1위(0.338)와 최다안타 1위(156개)로 타격 2관왕을 차지했다는 강점이 있었다.

반면에 약점도 있었다. 김동주가 출루율을 빼고 개인기록 부문 1위가 없다면 이현곤은 팀의 중심타자로 홈런 2개, 타점 48개만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과연 누가 골든글러브를 수상할 것인가. “(김)동주 형이나 이범호, 정성훈 등 누가 돼도 이상할 게 없다.” 이현곤은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대형스크린에 득표수 눈금이 올라가기 시작하고. 드디어 두 선수의 눈금이 일치하는데. 이현곤은 눈을 감았다. 물이 차는 만조처럼 지난날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2002년 프로에 입단한 뒤 지난해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이현곤의 말대로 연세대를 졸업하고 KIA에 입단할 때만 해도 그는 ‘제2의 이종범’이라는 말을 들었다. 당시 그가 받은 계약금 3억 5천만 원은 KIA 신인 야수 가운데 최고액이었다. 그러나 잦은 타격폼 수정과 부상, 병역 파동, 질병, 입대 등으로 자신의 진가를 펼쳐 보이지 못한 채 5년 동안 만년 기대주에 머물렀다.

그러나 올시즌 이현곤은 바싹 마른 선인장이 물을 빨아들이듯 새로운 타격 이론과 스스로를 관리하는 법을 터득했다. 갑상선 저하증과 간질환에 시달리면서도 팬과 구단에 약속한 전 경기 출전 약속을 지켰다.

그가 거둔 타율과 최다안타 1위는 땀의 결실이었다. 이윽고 이현곤이 눈을 뜬 순간. “김동주”라는 사회자의 호명이 있었다.

“(김)동주 형이 저보다 훨씬 뛰어났습니다. 당연한 결과입니다.” 이현곤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패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모른다면 멋지게 승리하는 방법 또한 알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이현곤은 내일의 승리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는 성숙한 선수였다. “올시즌 누적된 피로나 잔부상을 치료하고 나면 바로 개인훈련에 들어갈 겁니다.”

12월 18일 광주구장에서 다시 만난 이현곤은 벌써 2008시즌을 준비하고 있었다.

요즘 어떻게 지내나.

시즌이 끝난 뒤 베이징올림픽 야구 아시아지역예선에 참가하고 12월에는 각종 시상식에 다니느라 바쁘게 지냈다. 요즘은 별다른 훈련 없이 병원에 다니고 있다.

병원에는 무슨 일로.

올시즌은 강행군이었다. 시즌 전 목표대로 126경기에 모두 출전했고 시즌이 끝날 때까지 최다안타와 타율 경쟁을 벌였다. 국가대표로 대만에도 다녀왔다. 코뼈와 발목, 발바닥 등 몸이 성한 데가 없다.

올시즌 반짝했다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선 몸을 보살피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정형외과, 이비인후과 등을 다니면서 치료를 받고 있다. 다음 주부터 모교인 광주일고에 나가 개인훈련을 할 예정이다.

타격론

올시즌 타율 1위와 최다안타 1위에 올랐다. 배경에는 변화된 타격폼이 있었다. 그 가운데 테이크백의 변화를 이야기하는 전문가들이 많은데.

지난해까지 테이크백을 할 때 약간 주춤하는 스타일이었다. 교과서적인 테이크백은 아니지만 내겐 타이밍을 맞추고 힘을 모으는 데 가장 적합한 폼이었다. 타격은 정석대로 테이크백을 하는 것만큼이나 배1팅 포인트를 찾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테이크백이 ‘망치타법’을 통해 어떻게 바뀌었나.

망치타법은 서정환 전 감독님이 기자분들한테 재미로 말씀하신 건데(웃음). 도움이 된 게 사실이다. 올시즌 초 전지훈련지에서 배1팅연습을 하고 있는데 하루는 서감독님이 망치를 들고 뭘 하시다가 갑자기 내게 망치를 건넸다.

그러면서 “이걸로 나무를 일직선 방향으로 쳐봐”라고 했다. 생각 없이 해봤는데 이게 웬걸. 일직선 방향은 고사하고 삐죽빼죽 벗어나기만 했다. 서감독님이 “그것 봐. 잘 안 되지” 하시면서 티배1팅 할 때마다 방망이를 한 번 멈췄다가 쭉 뻗는 식으로 연습을 해보라고 했다. 망치로 못을 때리듯이 레벨 스윙을 몸에 익혀야 정타를 때릴 수 있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타법이라기보다 기본기에 가깝다. 왜 이전에는 레벨 스윙을 하지 않았나.

지금은 체격이 많이 좋아졌지만 중학교 때는 무척 작고 힘이 없었다. 주변에서 동기동창 (최)희섭이와 실력은 둘째치고 체격만 놓고 비교할 때가 많았다. 사람들이 희섭이 체격을 보면 ‘와’ 하면서 놀라기 일쑤였다. 장타도 잘 쳤으니까.

그걸 보면서 얼마나 소외감을 느꼈는지 모른다(웃음). 난 작고 힘이 없다 보니 잘 맞혀도 공이 멀리 가지 않았다. 그때부터 어떻게 하면 공을 멀리 쳐 보낼 수 있을까 고민했다.

작은 체구의 타자들은 찍어치기를 많이 한다.

배트를 내려찍듯 스윙을 했다. 거기다 폴로스루 때 손목을 살짝 위로 올렸다. 연세대 다닐 때까지 줄곧 그런 타격 스타일을 지켰다. 배트에 힘을 싣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다만 정확도에서 기복이 심했다.

2002년 KIA에 입단했을 때 코칭스태프라면 그런 타격폼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텐데.

프로에 발을 딛자마자 처음으로 바꾼 게 뭔지 아나.

글쎄.

타격폼이다. 물론 나만 타격폼을 바꾸라는 지시를 받은 건 아니었다. 팀 내 선참들이나 현대로 이적한 (정)성훈이도 코칭스태프에게 ‘배트를 눕히라’는 똑같은 지시를 받았다.

그런데 아무리 해도 내겐 맞지 않는 폼이었다. 신인이 코칭스태프의 지시를 어기는 일은 쉽지 않다. 한번은 1군에서 연습을 하고 있는데 김성한 전 감독님이 직접 시범을 보여주시면서 재차 타격폼 수정을 강조했다. 그때 내가 “감독님. 죄송합니다만 그 폼은 제겐 안 맞는 것 같습니다”라고 했다. 그러니까 김감독님이 딱 한마디만 하셨다.

뭐라고 하던가.

“가.” 어딜 가라는 말인가 싶었는데 2군이었다(웃음). 그것 때문에 김감독님 눈 밖에 나기도 했지만 배짱이 있다고 귀여움도 받았다.

2군에서 타격폼을 바꿨나.

아니다. 폼보다는 배트 스피드를 높이는 데 주력했다. 김 전 감독이 타격폼을 바꾸라고 지시하신 것도 스윙 궤적을 짧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사실 좋다는 타격폼은 다 해봤지만 기본폼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 아마추어 시절의 타격폼이 그대로이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올시즌은 타격폼 수정도 수정이지만 자기폼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하는 게 옳을 것 같다. 물론 지금도 교과서적인 폼이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국내 지도자들은 개성보다는 통일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짙다.

어느 외국인 코치가 국내 타자들을 가리켜 “한국 타자들은 모두 폼이 예쁘다. 하지만 개성이 없어 그 폼이 그 폼이다. 한국 타자들의 슬럼프가 긴 이유도 자기만의 타격폼이 없어 한번 감을 잃어버리면 회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고 말한 기사가 생각난다.

맞는 말이다. 외다리타법이나 만세타법 등 자기만의 타격폼이 있는 장성호, 양준혁 선배를 보라. 슬럼프가 와도 좀처럼 오래가지 않는다.

정리하면 레벨 스윙의 중요성을 깨닫고 자신의 타격폼에 자신감을 가진 게 올시즌 타격 2관왕의 원동력이라는 뜻인데. 밀어치기도 있지 않나.

몇 가지 더 있다. 간혹 조범현 감독님과 코치분들이 “네 타격폼은 국내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든다”고 말한다. 이유가 있다. 몸쪽 공도 우중간으로 보낼 수 있고 밀어 칠 때도 어깨가 빠지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선수들은 그렇게 하려고 억지로 노력해도 잘 되지 않을 거다. 나만의 전매특허라고 하면 자만이겠지만 누구에게도 절대 뒤지지 않는다고 자신한다.

나라고 몸쪽 공을 당겨 쳐 왼쪽 펜스로 넘기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나. 마음먹고 치면 넘길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내가 봐도 ‘이현곤의 야구는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1~2개 좌측 펜스로 넘긴다고 좋아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밀어치기는 말이 쉽지 무척 어려운 타격기술이다.

힘이 없어 배트가 밀린 것도 많다(웃음). 의식적으로 중견수 중심으로 우측을 향해 치려고 노력한 게 맞다.

올시즌처럼 공이 잘 맞을 때 타자들이 흔히 “공이 수박만 해 보인다”고 하지 않나.

그럴 때도 있고 공이 배트 앞에서 멈춰 보일 때도 있다. 올시즌은 변화구를 칠 때 그런 적이 많았다. 변화구가 꺾일 때 그 각이 보일 때도 있었으니까.

무엇보다 스윙 궤적이 짧아진 게 주효했던 것으로 보인다.

내가 봐도 그렇다. 팔꿈치를 최대한 몸쪽으로 붙이고 가급적 스윙을 빨리 하기 위해 짧게 스윙한 게 좋은 결과를 낳은 것 같다. 그 덕분에 공을 최대한 몸 뒤에 두고 칠 수 있었다.

이현곤은 내년 시즌 KIA 타선과 젊은 선수들을 동시에 이끌어가려 한다. 낙천적인 성격의 이현곤은 그 일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다.(사진 김수홍)

그러나 올시즌 볼넷이 43개에 불과했다.

볼넷이 적은 타율 1위는 많지 않다. (장)성호 형도 그런다. “볼넷이 적으면서 타율 1, 2위를 다투는 거 보면 너도 참 대단하다”고. 올시즌 타격 노하우가 생겨서 그나마 좋아졌지 스스로 평가해도 선구안이 좋은 편은 아니다.

나름대로 공을 기다린다고는 하지만 공을 치고 나가는 걸 더 좋아한다. 그렇다고 초구부터 손을 대는 스타일은 아니다.

초구공략률이 지난해(36.8%)보다 올시즌(23.2%)에 확실히 낮아졌다.

누상에 주자가 있을 때는 의식적으로 초구를 거의 안 쳤다. 물론 상황에 따라 초구를 노리긴 하지만 결과가 늘 좋지 않았다. 게다가 볼카운트가 꽉 찼을 때 공이 더 잘 보이는 편이라 가급적 초구는 피했다.

장성호(15.7%)에 이어 팀 내 초구공략률이 2번째로 낮다. 타석에서 인내심은 아무리 칭찬해도 모자라지 않다.

사실 내가 (장)성호 형과 타격스타일이 비슷하다. 형에 비해 내가 더 교타자지만.

자신을 교타자라고 했는데 원래 교타자와 장타자는 단타와 홈런의 차이로 구분하는 게 아니다. 미국 야구칼럼니스트 피터 게몬스의 말대로 공을 배트에 맞히는 능력과 맞히지 않고서도 출루할 수 있는 인내심, 여기다 주루플레이까지 잘하는 게 교타자의 정의다. 그런 의미에서 올시즌 볼넷과 도루(4개)를 포함한 주루플레이를 종합해 본다면 교타자라고 보기 힘들다. 오히려 31개로 2루타 부문 2위에 오른 점을 주목하면 중거리 타자가 어울리는 것 같다.

올시즌을 평가한다면 중거리 타자라고 하는 게 맞는 말일 듯싶다. 질문에 있듯이 양준혁 선배(34개) 다음으로 2루타를 많이 쳤다. 아마추어 선수일 때는 중장거리 타자였고. 그때는 결정적인 순간에 한 방을 칠 수 있는 능력도 있었다. 프로에 와서 그걸 못했을 뿐이다.

스윙 궤적을 짧게 하면서 장타가 줄어들기도 했지만 그게 고타율이나 안정성엔 도움이 된 면도 있다.

4월 시즌이 시작되자마자 잘 쳤다. 그런데 5월 타율이 2할7푼2리로 주춤하면서 슬럼프에 빠졌다. 그때까지 홈런이 1개도 없었다. 그러다 6월부터 다시 잘 맞기 시작하면서 슬럼프에서 탈출했는데 계기가 6월 2일 사직구장 롯데전에서 친 홈런이었다. 이때부터 안타다 싶으면 거의 정타였다.

하지만 이건열 전 타격코치님이 “공을 끌어당겨 치려는 순간 네 타율은 반드시 떨어진다. 올시즌은 몸쪽 공도 우중간으로 친 4월처럼 보내자”고 했다. 지나고 나니까 코치님 조언대로 한 게 맞았던 것 같다.

올시즌 4, 8번 타순을 제외하고 전 타순에 등장했다. 특히 65경기를 3번 타순에서 뛰었다. 어느 타순이 가장 편한가.

솔직히 9번이 가장 편하다. 부담이 전혀 없으니까(웃음). 팀 사정으로 올시즌은 7월부터 3번에 고정됐다. 명문구단 KIA에서 3번을 친다는 건 대단한 영광이고 나 역시 늘 3번을 꿈꿔왔다. 하지만 내 능력을 고려할 때 3번은 아닌 것 같다.

야구계의 두 유령, 득점권 타율과 영양가

타순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하는 말인데 올시즌 당신을 두고 타율과 안타수에 비해 타점이 적다는 지적이 많았다. 일부 야구인들은 야구계의 두 유령인 ‘득점권 타율’과 ‘영양가 논란’을 깨워 당신에게 적용하기도 했다.

극단적으로 짧게 끊어 치다 보니까 1루 주자가 홈으로 들어온 경우가 4,5번밖에 없긴 하다. 찬스에서 타점을 못 올린 측면도 있었다. 하지만 누상에 주자가 없었던 적이 많았고 전반기 때는 있어도….

못 들어오는 경우가 많았다.

(기다렸다는 듯)6, 7번 타자로 나설 때 주자가 래리 서튼, (이)재주 형이면 내가 안타를 쳐도 2루에서 홈으로 들어오는 걸 기대하기 힘들었다. 아니 발이 느리니까 안 들어온다.

안타를 치고 뒤를 돌아보면 홈에 아무도 없고 3루에 멈춰 서 있곤 했다(웃음). 3루에 있던 김종윤 코치님이 안전 위주이기도 했고. 그래서 그때는 속으로 ‘그냥 안타만 열심히 치자’고 생각했다. 다행히 후반기에는 짧게 쳐도 주자들이 홈으로 들어오는 경우가 많았다.

후반기 타점이 많긴 하다.

4월부터 6월까지 타순이 일정치 않을 때 타점이 15개에 불과했지만 3번으로 주로 출전한 7월부터 10월까지는 33개나 됐다. 후반기 때처럼 꾸준히 3번을 쳤으면 타점도 많이 늘고 득점권 타율도 좋아졌을 것이다.

나도 기록을 유심히 살펴봤는데 확실히 3번일 때 타점이 많았다. 득점권 타율에 대한 오해는 없었으면 한다. 팀 내 득점권 타율이 2할8푼8리로 가장 좋다. 득점권에서 잘 치려고 하다가 폼이 엉킨 적이 많다.

정확히 어떻게 엉켰나.

주자가 없으면 어느 쪽으로 쳐야 할지 상황에 따라 정해서 칠 수가 있다. 그런데 주자가 있으면 타점을 올려야 하니까 부담감 때문인지 스윙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코치분들이 “넌 주자만 있으면 타격폼이 달라진다”고 한 것도 그 때문이다. 내가 봐도 그렇다.

타순 이야기를 더 해보자. 미 메이저리그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타격이 가장 좋은 타자가 배치돼야 할 타순은 2번이다.

공감한다. 3번을 동경해 왔고 좋아하지만 2번이 매우 중요한 타순인 것만은 분명하다. 어쩌면 내가 적임자일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번트나 히트앤드런을 잘할 수 있고 밀어치기도 있어 2번으로 출전해도 큰 문제가 없을 것 같다. 감이 좀 떨어지지만 꾸준히 훈련하면 부족한 주루플레이 능력도 향상될 거다.

올시즌 주루플레이를 보면서 아쉬울 때가 많았다. 일부에서는 몸을 사린다는 지적도 있었다.

부상을 우려해 몸이 사린 게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공감한다. 그렇잖아도 이번 겨울 가장 보완할 점으로 주루플레이를 꼽고 있다. 변명 같지만 올시즌 원활하게 주루플레이를 못한 이유가 있었다.

군 입대 뒤 1년간 공백기가 있었고 오른쪽 햄스트링 부상도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조금만 스피드를 내도 다리에 충격이 왔다.

무엇보다 광주구장 인조잔디가 문제였다. 한 베이스 더 가려고 뛰는 게 어려울 정도로 고통을 주는 잔디였다. 우리 팀 성적이 상위권 또는 중위권만 됐어도 그러진 않았을 텐데 초반부터 하위권이었다.

5월에 치고 올라가는가 싶었지만 또 내려앉았다. 그 때문에 누상에 나가면 리드를 많이 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다만 그 덕에 타격에만 집중한 긍정적인 측면도 있었다.

한편으로 당신의 2번 타순이 걱정도 된다. 국내 프로야구에서 2번은 쉬어가는 타자, 희생번트전문 타자로 인식되는 게 사실이니까. 지난해 SPORTS2.0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무사 1루일 때 희생번트는 강공보다 못한 결과가 나왔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무사 주자 2루라면 무조건 번트를 대는 게 득점 확률이 높다. 그러나 무사 1루는 런앤드히트를 비롯한 강공이 훨씬 낫다. 조범현 감독님 스타일이 어떤지 모르지만 2번 타자는 나보다 발이 빠른 타자를 쓰시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는 6, 7번에 배치하지 않을까.

과연 타율 1위 타자를 6, 7번에 배치할까.

올시즌 능력 이상으로 잘 하긴 했지만 9번 타자가 타율 1위가 될 수 있는 게 야구다. 타순은 신경 쓰지 않는다. (강한 어조로) 타순에서 자존심을 내세울 시간에 스윙 훈련을 1분이라도 더 하겠다.

올시즌 왼손투수를 상대로 타율 2할2푼9리에 그쳤다.

아무래도 공을 최대한 뒤에 두고 치다 보니까 오른손투수에 비해 왼손투수의 공은 배트에 맞는 면이 훨씬 적었다. 그래서 왼손투수 공은 스윙을 해도 빗맞거나 파울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후반기 때 이를 알고 왼손투수가 나오면 적절히 타격 자세에 변화를 줬고 기록도 나아졌다. 지난 시즌까지 왼손투수 공을 못 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감도 있었다. 그런데 재미난 건.

뭐가 재미난 건가.

선발 왼손투수한테는 못 치면서 중간계투로 나온 왼손투수에게는 잘 쳤다는 거다. 예를 들어 삼성전 때 선발로 왼손투수 브라이언 매존이 나왔는데 3타수 무안타에 그쳤다.

그런데 중간계투로 왼손 차우찬이 나오자마자 타구가 펜스를 맞히는 등 타격이 살아났다.

현대전 때도 선발 장원삼이 나왔을 때는 힘을 못 쓰다가 중간으로 노환수가 나오니까 펄펄 날았던 기억이 난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가 봐도 참 신기하다.

사이드암이나 언더핸드 투수에게는.

(자신감이 넘치는 목소리로)SK 정대현을 빼고는 지난해보다 잘 쳤다. 기록은 어떻게 나왔나.

타율 2할5푼으로 그저 그랬다.

….

리그 A급 투수를 상대로는 어땠을 것 같나.

(조심스럽게)두산 다니엘 리오스 공에는 자신이 있는데. 기록은 어떤가. (타율 2할8푼6리로 괜찮았다고 하자)다른 타자 평균치보다는 확실히 높을 거다. 슬라이더나 체인지업을 주로 던지는 투수에게는 강했다.

두산 매트 랜들의 공은 올시즌 확실하게 공략했다. 류현진을 상대로도 성적이 나쁘지 않았다. (이현곤의 랜들, 류현진 상대 타율 각각 4할6푼7리과 2할7푼3리였다.)

유격수보다는 3루수

포지션 이야기를 해보자.올시즌 유격수(13경기)보다 3루수(112경기)로 더 많이 출전했다. 스프링캠프 때는 유격수 위주로 훈련을 했는데.

스프링캠프 내내 유격수 훈련만 했다. 오전, 오후로 나눠 펑고를 몇백 개씩 받으며 피나는 훈련을 했다. 그런데 캠프가 진행되면 될수록 엄청난 피로감을 느꼈다. 체력적으로 받쳐주질 못했던 거다.

이현곤의 스윙은 임팩트 순간 양팔이 둔각에서 예각으로 바뀌는 등 테이크백을 포함한 모든 과정이 매우 안정돼 있다.(사진 이휘영)

거기다 (홍)세완이 형이 캠프 때 워낙 컨디션이 좋고 의욕적이었다. 그런 이유들로 원래 3루수를 보기로 했던 세완이 형이 시즌이 시작되면서 유격수로 돌아왔다.

어느 포지션이 편한가.

유격수에 타격이 좋다면 최고의 내야수다. 하지만 내 몸을 생각해서는 3루수가 나은 것 같다. 내년 시즌도 코칭스태프가 결정을 하겠지만 3루수를 볼 것으로 예상한다. 3루수와 유격수를 볼 때 타율 차이가 있었나?

3루수와 유격수 때 각각 3할4푼2리와 3할1푼2리였다.

(혼잣말로)차이가 있었구나.

유격수가 3할을 넘었으면 잘 친 거다.

확실히 3루수는 수비에 여유가 있어 다음 타석을 생각할 수 있지만 유격수는 타격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한다. 올시즌 실책(16개)이 많았던 것도 수비 때 잡생각을 많이 한 탓이 크다.

실책에서 잡생각이 차지하는 비중은 높지 않다. 오히려 스프링캠프 때 유격수 훈련이 이유라고 보는데. 3루수와 유격수는 수비방법에서 차이가 많다.

수비 잘하는 선수는 어느 포지션에 가도 티가 나지 않는다. 난 아니다. 지난해 시즌이 끝나고 마무리훈련 때부터 유격수 훈련을 받다 보니 그게 몸에 익었다.

그런데 막상 올시즌 들어 3루수를 맡게 되니까 문제가 생겼다. 유격수는 타구를 보면서 큰발로 움직이지 않나. 3루수는 잔발로 재빠르게 공이 오는 쪽으로 나가야 하고.

이런 건 훈련을 통해 익혀야 한다. 그런데 도통 3루수 훈련을 안 했으니 실수를 할 수밖에 없었다. 코칭스태프에서도 “훈련량이 부족했다”는 평가를 했다.

골든글러브 경쟁

골든글러브 투표에서 김동주를 찍은 기자들이 당신의 실책 수에 집중했던 게 사실이다.

나도 그 점이 아쉬웠다. 프로 데뷔 뒤 최고의 활약을 펼쳤는데 실책 수가 (김)동주 형(7개)에 비해 많아 ‘진작 신경 좀 쓸 걸’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수비에 집중했다면 상대적으로 타격이 나쁘지 않았을까.

12월 11일 골든글러브 시상식 때 예년과 달리 3루수 부문을 마지막에 발표했다.

시상식장에 들어가 안내문을 봤다. 늘 투수 부문이 마지막인데 이번에는 3루수라 ‘경쟁이 심하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욕심이 있었을 법도 하다.

신문과 방송에서 수상 확률이 반반이라는 말을 했다. 동주 형이나 이범호(한화), 정성훈(현대) 가운데 누가 수상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다들 열심히 뛰었으니까.

특히 동주 형이 나보다 훨씬 뛰어난 성적을 냈기 때문에 욕심은 없었다. 나야 내세울 거라고는 타율과 최다안타가 전부 아닌가. 팀 성적이 좋았던 것도 아니고.

대형화면에 김동주와 함께 전자투표 수가 올라가다가 멈췄다. 기분이 어땠나.

‘뽑히면 수상소감을 어떻게 말해야 하나’하는 고민을 살짝 했다(웃음).

결국 김동주가 골든글러브를 받았다.

확정되는 순간 마음이 편안했다. 바로 동주 형을 보면서 “축하드립니다”라고 말했다. 내가 반드시 받아야 하는 상을 놓쳤다면 모를까 스스로 납득을 한 결과였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았다. 내년엔 수비에도 신경을 쓰는 등 최선을 다해 꼭 수상하도록 하겠다.

실책은 줄여야 하지만 그 외 수비에는 특별히 신경 쓸 건 없다. 넓은 수비범위에 집중한다면 3루 수비는 꽤 훌륭하다.

(묘하게 웃으며)그런가. 일전에 데릭 지터(뉴욕 양키스)를 보고 훌륭한 유격수가 아니라고 말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수비범위가 좁기 때문이다.

골든글러브 대신 12월 12일 일구회로부터 의지의 선수상을 받았다.

처음에는 민망했다. 기량발전상이거나 한화 (정)민철이형처럼 멋지게 재기를 했다면 모를까 내가 받아도 되나 싶었다.

사회자가 수상 이유를 “몸도 좋지 않은 상태에서 열심히 노력해 타격 2관왕을 차지했다”고 설명하지 않았다면 계속 민망했을 것이다. 야구선배님들이 주시는 상이라 감사한 마음으로 받았다.

최다안타보다는 타율 1위에 의미를 둔다

올시즌 기록 가운데 전 구단 상대 타율 3할 이상이 눈에 뛴다.

실은 시즌 중반을 넘으면서 관리했던 게 전 구단 상대 타율 3할이었다. 기록을 보면서 자주 점검을 했다. SK가 가장 낮았을 거다. 고비는 현대와 LG였다. 후반기가 다 끝나 가는데 현대, LG 상대 타율이 2할9푼에 머물렀다.

고비를 어떻게 넘었나.

수원(9월 22일), 광주(9월 28일) 현대전에서 3안타와 2안타를 몰아쳤다. 광주(10월 3일) LG전에서도 3타수 3안타를 기록했고. 나름대로 타율관리를 하느라 고생 좀 했다.

정작 고비는 8월 19일 광주 SK전이었다.

아마 SK와의 시즌 마지막 경기였을 거다. 1회 김원형 선배가 던진 공에 오른쪽 팔꿈치를 맞았다. 피하면서 맞았기에 다행이지 제대로 맞았으면 예전 이종범 선배처럼 뼈가 부러졌을 거다.

이틀 뒤 광주 한화전에 아파도 꾹 참고 나갔다. 이전까지 전 경기 선발출전을 했는데 그 경기에서 시즌 처음으로 대타로 출전했다.

전 경기 출전을 잇고 싶은 마음이었나.

아니다. 그보다 최다안타 때문이었다.

최다안타라고 했나.

아파서 출전하지 않았다면 타율 관리에는 도움이 됐을 거다. 그때 한창 최다안타 경쟁을 벌이던 때라 출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타율 1위와 최다안타 1위 가운데 후자에 의미를 둔다고 했나.

생각이 바뀌었다. 얼마 전 “두 상 가운데 어느 상이 좋은가” 묻는 질문에 “타율 1위”라고 대답했다. 최다안타나 홈런은 나 혼자 개수만 늘리면 되지만 타율은 경쟁 타자들의 상황에 맞춰 관리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입술이 바짝 마르는 일이다.

10월 19일 시즌 마지막 경기인 한화전에 출전하며 타율 1위가 확정됐다.

당시 베이징올림픽 아시아지역예선에 출전할 대표팀이 성남 분당에 묵으면서 훈련을 하고 있었다. 주변에서 “한 경기를 뛰려고 광주까지 내려가느냐”고 만류하기도 했다. 거기다 한국시리즈도 끝나고 열린 경기가 아니었나.

어쨌든 출전을 했다.

시즌 초부터 팬들과 약속을 했다. 반드시 전 경기에 출전하겠다고. 그 약속을 지키려고 내려갔다.

그럼에도 타율 1위가 되기 위해 1타석만 나왔다는 비난이 있었다.

126경기에 출전해 521타석이나 들어섰다. 나머지 3타석에 나오지 않았다고 타격왕 자격이 없단 말인가. 내 의지가 코칭스태프에 의해 받아들여졌다면 남은 타석에도 나왔을 것이다.

타격 2관왕이 되기까지 전력분석원의 도움이 컸다고 들었다.

사실이다.

무슨 조언을 들었나.

특별히 조언을 들은 건 없다. 다만 나는 체력이 떨어지고 피곤하면 타격할 때 어깨가 빨리 열리는 버릇이 있다. 전력분석원 분들이 이런 걸 잡아준 적이 많았다.

경기가 끝나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복기를 한다던데.

야수는 타자의 특성에 맞는 위치를 확보해야 하며 누상에 주자들이 얼마나 있는지, 투수는 누구인지, 구장은 어떤 환경인지 파악해야 한다. 실책수에 집중하는 건 팀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이현곤은 좋은 3루수다.(사진 김수홍)

예전처럼 경기를 녹화할 필요가 없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가면 스포츠면에 ‘라이브센터’라는 것이 있다. 프로야구 전 경기 동영상이 올라와 있다. 그걸 보면서 지난 경기를 복기하고 연구했다.

주로 무엇을 연구했나.

타격 전 준비 자세다. 간혹 타석에서 산만한 경우가 있다. 투수와 상대해야 하는데 준비 자세가 흐트러지면 거기에 신경 쓰느라 타격을 망치곤 한다. 동영상을 통해 준비 자세를 빠짐없이 점검했다.

대주자로 나간 타격왕

베이징올림픽 아시아지역예선에 나갈 대표팀에 뽑혀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대주자로 출전해 팬들의 아쉬움이 컸다.

누구보다 아쉬움이 컸던 건 나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말해서 뭘 하겠나. 선수 기용은 감독의 고유권한이니만큼 선수가 불만을 느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선수 기용이 감독의 고유권한이듯 이의를 제기하는 것도 팬과 언론의 고유권한이다. 일본전에서 3-4로 뒤지던 8회말 2사 1,3루 찬스에서 이대형의 대타로 나올 줄 알았다. 그러나 대주자로 나갔다.

처음에는 (이)병규 형이 대타로 나가려고 했다. 이와세 히토키가 왼손투수지만 (박)경완이 형이 몸이 좋지 않은 상태였다. 결국 경완이 형이 나가긴 했다.

김경문 감독님이 보시기에 경험과 투수와의 수싸움에서 경완이 형이 나보다 낫다고 판단하신 것 같다. 감독님에게 믿음을 주지 못한 내 책임이 가장 크다.

지난해 도하아시아경기대회 때도 그렇고 한국야구의 국제경험 맹신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축구와 달리 A매치가 거의 없는 야구에서 국제경험을 말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당시 코칭스태프의 결정이 최선이었다고 믿는 마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다만 당일 선수들 컨디션에 따라 선수 기용을 한다면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게다가 국제대회는 오더를 경기 시작 30분전까지 제출하면 되니까 그만큼 지켜볼 시간이 많다.

오더하면 일본의 호시노 센이치 감독이 제기한 위장오더 문제가 떠오른다.

별게 아니었다. 규정상 아무 문제가 없었다.

왜 그랬다고 보는가.

일본이 의외로 긴장을 많이 했다. 우리를 지나치게 의식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일본의 실력은 어떻던가.

대주자로 한 번 나간 게 전부다. 뭘 알겠나(웃음). 다만 지켜본 바로는 확실히 일본과 우리는 수준 차가 난다. 주위에서 몇천 개의 고교팀이 있는 일본과 50여 개에 지나지 않는 고교팀의 한국을 비교할 수 있느냐고 하는데 내 생각은 양적인 측면보다 질적인 측면에 주목하는 게 나을 것 같다.

질적인 측면이라면.

기본적으로 훈련하는 자세부터가 다르다.

예를 든다면.

일본선수들은 배1팅연습을 할 때도 철저히 기본기 위주다. 한국선수들은 공을 팍팍 쳐서 펜스 뒤로 타구를 넘기면 ‘오늘 감이 좋다’고 여기지 않나. 그런데 일본선수들은 교과서적으로 공을 톡톡치면서 배1팅연습을 한다. 보는 내가 절로 짜증이 날 정도였다.

기본기 위주의 훈련은 실제 경기에서 빛을 발한다.

우리 선수들은 불리한 볼카운트에서 헛스윙을 하지만 일본선수들은 좋지 않은 공을 계속 커트한다.

대만야구는 어땠나.

대만은 미국 스타일이다. 선이 굵고 스윙도 크게 한다. 전반적으로 우리보다 수비나 타격에서 조금 떨어지는 인상이었다. 기본기의 차이가 아닐까 생각했다.

지나간 일이지만 컨택트 능력이 좋은 당신이 출전했다면 일본과 재미난 승부를 벌였을 거다.

동료 선수들도 그런 말을 했다. “네가 일본 투수들에게 강할 수도 있다”고. 일본 투수들은 워낙 제구가 뛰어나기 때문에 웬만해선 엉뚱한 쪽으로 공을 던지지 않는다. 난 제구가 들쑥날쑥한 투수들에게 오히려 약한 편이라 승부를 해봤으면 좋았을 것 같다.

아시아예선에서 선전하긴 했지만 몇몇 선수는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선수단 분위기가 굉장히 좋았다. 하고자 하는 의욕도 대단했다. 사실 국제대회에 출전하는 건 영광이기도 하지만 모험이다.

특히 체력적으로 무척 고되다. 더그아웃에서 지켜본 나도 숙소에 들어가면 굉장히 피곤했다. 야수들은 더했을 거다. 투수나 포수는 공을 주거니 받거니 하니까 모르겠지만 야수는 언제 공이 날아올지 몰라 긴장이 이어진다.

그래서 대개 경기가 끝나면 “정규시즌 7,8경기를 한꺼번에 뛴 것처럼 힘들다”는 말을 쏟아낸다. 게다가 잘하면 기본이고 못하면 망신인 게 국제대회의 속성이다. 대표선수들에겐 팬들의 격려가 금메달보다 더 소중하다.

고난을 딛고 일어서다

갑상선 질환 때문에 고생이 많다. 박명환(LG)처럼 갑상선 항진증인가.

나는 갑상선 저하증이다. (박)명환이 형은 나보다 증상이 심한 걸로 알고 있다. 그런데도 좋은 투구를 펼치니 대단한 선수다.

처음 발병한 건 2004년 겨울이었다. 어머니께서 갑상선암으로 수술을 했다. 아직 젊고 약을 꾸준히 복용해 큰 문제는 없다.

그래도 운동선수에게 갑상선 질환은 치명적이다. 간도 좋지 않은데.

지금은 간수치도 정상이다. 물론 다른 선수들보다 피로를 많이 느끼고 피로회복 속도도 늦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병에 지고 싶지는 않다. 평소 무슨 일이 있어도 7시간 이상 자는 등 관리에 신경 쓰고 있으니까 더 좋아지리라 믿는다.

갑상선이나 간 질환은 시력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시력은 나빠지지 않았는데 근시에다 난시 증상이 생겼다. 그러나 타격할 때나 일상생활에 불편하지는 않다. 야구는 동체시력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 문제에 특별히 신경을 쓰고 있다.

동체시력 관리는 좋은 얘기다. 프로야구 어느 팀의 경우 젊은 선수들이 인터넷 게임에 빠져 날이 새도록 하던데 체력은 별 문제가 없겠지만 동체시력에는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

각 팀마다 노는 문화가 달라서 그런 것 같다. KIA는 장기를 둔다. 라커룸에서 선참선수들은 장기에 푹 빠져 있다. 물론 어린 선수들은 PC방에서 놀기도 하지만 심한 정도는 아니다. 동체시력 보호를 위해서도 자기 몸은 자기가 잘 관리해야 한다. 그게 프로다.

오버 페이스, 인조잔디, 부상, 백업과 리더십 부재

올시즌 KIA는 꼴찌를 기록했다. 선수가 보는 원인을 듣고 싶다.

곡해해서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 먼저 지난해 4강에 들며 올시즌은 우승하자는 분위기가 생겼다. 그러다 보니 코칭스태프나 선수들 모두 스프링캠프 때 강훈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버 페이스를 한 게 문제였다. 이종범 선배도 캠프 때 무척 페이스가 좋았다. 요미우리 1.5군과의 경기에서 안타도 치고 도루도 하면서 재기를 알렸다. 홍세완 선배도 그렇고.

그러나 막상 시즌이 시작되니까 4, 5월까지는 좋았지만 6월부터 부상자가 속출하고 페이스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부상에는 광주구장의 인조잔디도 큰 몫을 차지했다.

인조잔디 문제는 정말 꼭 짚고 넘어가야 한다. 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선수들이 원정경기를 더 반길 정도다. 인조잔디가 워낙 딱딱해 과감한 베이스러닝이나 몸을 날리는 수비는 기대할 수 없다.

(홍)세완이 형이 가장 큰 피해자다. 잠실이나 문학구장 같았으면 세완이 형의 무릎 부상은 그렇게 심각하지 않았을 거다.

부상은 다른 문제로 이어졌다.

백업요원의 부재다. 점수 차가 많이 나는 경기는 주전과 비주전을 교체하며 체력을 보충한다. 백업요원이 풍부한 SK가 그렇게 했다. 하지만 KIA는 백업요원이 워낙 부족하고 주전과 기량 차이가 커 그걸 기대하기 어려웠다.

올시즌 2군에서 올라와 성공한 깜짝 스타를 우리 팀에서 본 적이 있나. 주전 선수들의 체력이 고갈된 것도 그런 이유가 크다.

리더십의 부재도 문제였다. 이종범, 김종국 등 30대 중반 이상의 선참선수들과 윤석민, 이용규 등 20대 초반 선수들을 아우를 수 있는 리더가 없었다는 평이다.

2002년 프로에 데뷔한 뒤 5년 동안 이현곤의 야구인생은 좌절과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타석에 들어서는 걸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가 가는 곳은 타석이 아니라 희망이었을지도 모른다.(사진 김수홍)

야수조에서는 장성호 선배가 꽤 열심히 노력을 했다. 어쩌면 나까지가 예전 해태 전통을 알고 분위기를 느끼는 선수일지 모른다. 내 밑 후배들은 그런 걸 잘 알지 못 한다.

그러다 보니 선참과 후배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있었을 것이다. 나라도 그 차이를 메우려고 힘 써야 했는데 나서서 뭘 하는 성격이 못 돼 그렇게 하지 못했다.

이번에 입단한 서재응이 그런 역할을 할 선수로 꼽히고 있다. 벌써부터 후배들을 잘 이끄는 것 같던데.

개인적으로 서재응 선배에게 기대를 하는 것도 그런 점이다. 서선배는 포용력이 있으면서 후배들의 실수와 무례를 그냥 넘어가는 성격이 아니다. 잘 하시리라 믿는다.

납회 때 장성호 선배도 “내가 중심이 돼 팀을 이끌겠다”고 말한 만큼 내년은 선수단의 결속력이 한층 강화될 거라고 본다.

내년 시즌 KIA를 우승 후보로 보는 전망이 많다. 최희섭의 활약이 최대변수다.

충분히 잘 해낼 거라고 믿는다. 올시즌 중반 (최)희섭이와 9년 만에 만났는데 그새 많이 변해 있었다. 역시 선진야구를 배우고 오더니 뭔가 달라도 달랐다.

어디가 달라졌던가.

고교 때 희섭이는 어떤 상황에서도 풀스윙을 했다. 처음 KIA에 입단했을 때 메이저리그 출신답게 풀스윙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자신의 몸 상태가 좋지 않고 한국프로야구에 빨리 적응하는 게 우선이라고 판단하니까 풀스윙을 과감히 버리고 짧게 끊어치기 시작했다.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그 타자라는 자부심이 있는 희섭이에게 그건 자존심이 상할 일이기도 했다. 오죽했으면 농담으로 동료들이 “어이, 똑딱이 타자”라고 부르거나 “비거리가 투수 앞이네요”하고 놀렸겠나. (웃음)

그런데도 개의치 않고 자신의 페이스를 묵묵히 지켜나가는 게 참 인상적이었다. 후반기에 좋은 활약을 펼친 만큼 내년 시즌에는 뭔가 큰일을 해낼 거다.

제2의 이종범에서 잃어버린 6년

야구에 입문한 건 언제였나.

1987년 송정동초등학교에 다닐 때다. 그때가 해태 전성기라 야구 인기가 높을 때였다. 아버지나 나나 운동을 좋아해 학교 야구부 감독님에게 야구를 해보라는 권유를 받았을 때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학교에서 말렸다.

학교에서 말리다니.

공부나 계속 하라고. 자랑 같아 말을 하지 않았지만 공부를 참 잘했다. 정말이다. 중학교 때까지 담임선생님이 쫓아다니면서 말렸다. 심지어는 운동 그만두지 않아 맞기까지 했다.

최희섭이 초등학교 동기동창이지 않나.

내가 투수 겸 1번을 맡았고 (최)희섭이가 4번을 쳤다. 같은 중학교로 진학하자고 약속했는데 주변에서 “너희 둘이 같은 학교에 가면 광주의 중학교 전력이 한 곳으로 집중돼 안 된다”고 해 서로 다른 학교로 진학했다.

투수를 계속하지 그랬나.

발육이 늦어 투수로는 적당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았다. 고교 때도 투수를 하려고 했는데 당시 감독님이 내야수 자질을 높게 평가해 뜻을 이루지 못했다.

모교가 광주일고다. 당시 광주일고는 드림팀이었다.

3학년에 서재응, 김상훈 선배가 있었고 2학년에는 김병현 선배가 버티고 있었다. 쟁쟁한 선배들이 많아 1학년생은 희섭이를 제외하고 주전으로 뛸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 멤버가 이제야 뭉쳤으니.

2002년 연세대를 졸업하고 KIA에 입단할 때 ‘제2의 이종범’이란 평을 들었다.

가장 존경하는 야구선배라 부담이 컸다. 그냥 내 이름만 불러주든가 가능성 있는 신인 정도로 평가해주길 바랐다.

이종범을 본 게 그때가 처음이었나.

이선배는 이전부터 알고 있었다. 중학교 때인가 어머니와 길을 가고 있는데 어느 분이 내게 관심을 보였다. 어머니가 “왜 그러세요”하고 물으니까 그 분이 “내 아들놈 어렸을 때와 똑같아서 그런다”고 했다.

어머니가 “아드님이 누구세요”라고 다시 물으시니까 그 분이 “지금 건국대 4학년인 이종범”이라고 대답했다. 아마추어 시절에도 굉장히 유명한 선수였지만 그때 난 어렸기 때문에 이종범이 누구인지 몰랐다.

그런데 알고 보니 중학교 야구부장님이 이선배 외삼촌이시기도 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이선배 집에 가 밥도 먹고 그랬다.

특별한 추억은 없나.

이건 이선배도 기억 못하실 거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데 이선배가 무슨 테이프를 주신 적이 있다. 그때가 이선배, 선동열 삼성 감독, 가수 양수경 씨가 공동으로 앨범을 냈을 때다. 이선배가 테이프를 주시면서 그랬다. (망설이다가)이거 말하면 안 되는데.

돈 주고 사라고 하던가.

(크게 웃으며)아니다. “너도 나처럼 야구 잘하면 이렇게 할 수 있다”고 했다.

한국프로야구 사상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뛰어난 타자로 꼽히는 이종범도 이제 나이가 들었다. 은퇴를 권유하는 이가 많다.

내가 봤을 때 이선배는 송진우 선배처럼 아직 스피드가 살아 있다. 어깨도 좋아 송구도 문제 없다. 모르시는 분들이 이선배가 “자기만 생각 한다”고 하시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팀을 위해 헌신을 많이 한다.

올시즌 중반 이선배가 후배 수비수가 몸이 좋지 않으니까 코칭스태프가 말하기 전에 먼저 대수비를 자청한 적이 있다. 올시즌 이선배가 3루수, 내가 유격수로 나간 적도 있고.

팬들이나 구단이 한 시즌에 190개씩 안타를 때리고 80개씩 도루를 하던 과거 이종범을 지금에 와서도 바라는 건 무리다. 베테랑은 베테랑이 할 역할이 있다고 본다.

KIA에 야수 최고 계약금(3억 5천만 원)을 받고 입단했지만 지난해까지 활약은 미미했다.

처음에는 나도 잘할 줄 알았다. 구단에서도 기대가 컸다. 그런데 코칭스태프에서는 내 장점보다는 단점을 지적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썼다. KIA 스타일이 약간 그렇다(웃음). 농담이다. 그때는 홍세완 선배, (정)성훈이가 잘 하고 있었고. 설상가상으로 2004년에는 발목염좌와 병역문제로 고생했다. 아시다시피 그 뒤로 2005년 입대해 활약할 시간이 거의 없었다.

정성훈과 당신을 비교하는 팬이 많다. 2003년 현대 박재홍의 트레이드 상대가 원래는 당신이었다. 결국 정성훈이 갔지만.

정성훈은 초, 중, 고 후배다. 무척 착한 친구다. 좀 4차원적인 구석이 있긴 하지만(웃음). 내가 KIA에 입단한 뒤 힘들어 할 때 옆에서 도와준 게 성훈이었다. 훌륭한 내야수다. 공수주 3박자에 파워까지 갖춘 선수로 나보다 훨씬 뛰어나다.

그 트레이드 때 당신이 현대로 갔다면 어땠을까.

당시 KIA에서 무척 힘들었기 때문에 현대에 가는 것도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현대가 지금이야 어렵지만 그때는 아니기도 했고. 하지만 KIA에 남은 까닭에 데뷔 6년 만에 알찬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고 본다.

팀은 꼴찌지만 팀에 대한 사랑과 열정만은 1등인 KIA팬들과의 인연도 이어갈 수 있고. 그런 면에서 나는 행운아라고 생각한다.

(뭔가 생각난 듯)저, 내년 연봉이 얼마면 적당할 것 같은가.

누구? 본인?

조만간 연봉 협상을 해야 한다.

얼마 정도 기대하나.

올해 연봉이 6천만 원이었다. (조심스럽게)1억 원은 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기록을 자주 보는가. 다른 선수들에 비해 기록에 밝다.

…. (기사가 나간 뒤 1억2천만 원에 연봉 재계약을 마침.)

그 정도면 100% 인상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내년 시즌은 꼭 골든글러브를 수상하기 바란다.

고맙다. 진심으로 받고 싶은 골든글러브는 따로 있다.

3루수 골든글러브 말고 다른 포지션에서 수상하고 싶다는 말인가.

(손사래를 치며)아니다. 그런 골든글러브는 나만을 위한 것이다. 내게 진정한 골든글러브는 동료들과 구단, 팬이 열심히 노력해 우승을 한 현장에서 내 손에 끼어 있는 글러브다. 땀과 먼지로 뒤덮인 글러브말이다. 그것처럼 아름답고 값진 골든글러브가 또 어디에 있겠는가.

SPORTS2.0 제 83호(발행일 12월 24일) 기사

광주=박동희 기자

[좋을텐데,,,]

아 스포츠2.0 다시 나왓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