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띠해 2001년은 국내외 야구계에서 뱀이 껍질을 벗듯 환골탈태한 한 해였다.
프로 출범 20년을 맞은 한국 프로야구는 다사다난한 한 해를 보내며 중흥의 계기를 마련했고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활동 중인 선수들은 한국 야구사에 한 획을 그을 만한 족적을 남겼다.
야구계를 시끌벅적하게 수놓았던 이슈들을 중심으로 2001년 10대 뉴스를정리해본다.
1.‘코리안 특급’ 박찬호 텍사스맨되다. 지난 1994년 미국 메이저리그 LA 다저스에서 출발했던 박찬호가 데뷔 8년만에 프리 에이전트 자격을 얻고 팀을 이적, 지난 23일 텍사스 레인저스에 새 둥지를 틀었다. 5년 계약에 총 7,100만 달러의 몸값을 기록, 동양인 선수로는 최초로 1,000만 달러대 연봉을 받는 초특급 선수가 됐다.
2.김병현 동양인 최초로 월드시리즈 마운드 서다.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마무리 투수 김병현이 인상적인 활약으로 팀의 사상 첫 월드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비록 월드시리즈 4, 5차전에서 잇달아 홈런을 맞는 악몽을 겪기도 했지만 정규 시즌과 디비전 시리즈 및 챔피언십 시리즈서 소방수 구실을 톡톡히 해냈다. 동양 선수 최초의 월드시리즈 출전 및 챔피언 반지를 끼는 영광을 차지했다.
3.두산 기적의 한국시리즈 우승.
페넌트레이스 3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두산이 예상을 깨고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 6년만에 정상복귀에 성공했다. 반면 엄청난 투자로 정규시즌 1위에 올랐던 삼성은 한국시리즈서 또 무너져 올해도 챔피언의 한을 풀지 못했다. 김응룡 삼성 감독의 불패신화도 끝.
4.기아 창단과 이종범 복귀로 야구열기 고조.
시즌 중반 기아자동차가 전통의 해태 타이거즈를 인수, 야구판에 첫 발을 내딛었다. 기아타이거즈는 곧바로 일본에서 활동 중이던 간판타자 이종범을 복귀시켜 단숨에 인기 구단의 면모를 갖췄다. ‘이종범 효과’는 관중 증가로 이어지며 야구 열기를 북돋았다.
5.양준혁 FA 최고 몸값으로 컴백홈.
‘영원한 3할 타자’인양준혁이 9년을 채워 FA자격을 획득, LG를 떠나 친정팀 삼성에 27억2,000만 원이라는 FA사상 최고의 몸값을 받고 복귀했다. 반면 올해 나란히 18억원을 받았던 FA 홍현우(LG), 김기태 등 이전의 FA선수들은 몸값을 제대로 못해 실망을 안겨줬다.
6.성적에 웃고 우는 감독들의 수난.
성적 부진의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롯데 김명성 감독이 시즌 중반에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타계했는가 하면 LG의 젊은 수장이었던 이광은 감독도 중도하차했다. 와중에 김성근감독(LG) 우용득 감독(롯데)이 2군에서 올라와 지휘봉을 잡았다.
7.관중 증가로 프로야구 중흥 발판 마련.
지난 1995년 540만명을 정점으로 매년 감소하던 프로야구 관중이 모처럼 증가했다. 막판까지 이어진 4강티켓 다툼과 각 구단의 활발한 ‘관중님 모시기’ 마케팅 활동으로 작년보다 약 20%의 관중이 늘어났다. 300만명에 육박한 299만1,663명의 관중이 입장, 프로야구 열기가 되살아나고 있음을 확인한 한 해였다.
8.SK-삼성 사상 최대의 빅딜.
SK와 삼성이 스토브리그들어 한꺼번에 8명(6:2)의 선수를 맞바꾸는 사상 최대의 트레이드를 성사시켰다. SK는 삼성에 현금 11억원과 외국인 유격수 브리토, 좌완 오상민을 내주고 좌타 거포 김기태를 비롯해 정경배 이용훈 김상진 김동수 김태한 등 6명을 데려왔다.
9.선수협 마침내 공식 기구로 출범하다.
지난 2년간 겨울마다 구단과 대결했던 선수협의회가 1월 중순 구단으로부터 공식 기구로 인정받으며 닻을 올렸다. 10월초에는 용병 보유수 문제를 놓고 구단측과 격돌, 포스트 시즌 보이콧 선언과 철회등 한차례 파동을 겪기도 했다. 출범 직후 선수협 핵심멤버였던 마해영(롯데⇒삼성) 심정수(두산⇒현대)가 보복성 트레이드를 당하기도 했다.
10.드림팀의 첫번째 좌절.
지난 98년 방콕아시안게임때부터 구성돼 승승장구하던 드림팀이 4번째 출전 대회인 11월 대만 월드컵에서 쓴 맛을 봤다. 이 대회에 나갔던 드림팀IV는 간판 스타부재와 훈련 부족으로 4강 진출에 실패하며 6위에 그쳐 망신을 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