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곧게 쓸 줄 아는 사람이 가장 넉넉한 부자 / 정우 스님
배려하고 마음을 열면 상대도 변화
국가지도자부터 이런 마음 가져야
통도사에 있으며 지금처럼 마음이 기쁘고 즐겁고 환희로운 적도 드문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만나는 불자님들의 모습
또한 너무 맑고 밝고 깨끗하고 향기롭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 통도사 화엄산림 법회가 주는 공덕이 아닐까 합니다.
법회를 계기로 우리 모두 보현행자의 밝은 빛으로 거듭나기를 간절히 기원해 봅니다.
오늘은 부처님께서 타화자재천왕궁의 마니보배를 간직한 궁전에서
대중들과 함께 하실 때 금강장보살이 해탈월 보살의 청을 받아 설한
십지품(十地品) 가운데 ‘환희지’에 대해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어떤 할머니가 무거운 물건을 머리에 이고 걸어가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고 한 거사님이 차를 태워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 할머니는 너무 고맙다며 거듭 인사를 하고 차를 탔는데
이상하게도 손에 든 물건을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거사님이 손에 든 물건도 내려놓으시라고 했더니,
그 할머니께서 차를 얻어 타고 가는 것도 고마운 일인데
미안하게 어떻게 물건까지 차에 싣고 가겠느냐고 했다고 합니다.
자, 어떻습니까. 물론 세속의 시각으로 보면 참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도 ‘화엄경’의 세계에서는 보살의 모습입니다.
경전에서는 “보살은 복(福)과 지혜(智慧)와 도(道)를 얻어 이를 구족해도
중생을 이익 되게 하는 일을 그만두지 아니하며
일체 보살이 지혜로 피안에 이르러 번뇌가 일어나지 않는 자리에 들어가더라도
보살의 수행을 그만두지 아니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저는 큰 법회를 할 때면 떠오르는 생각이 있습니다.
절에 와서 10여년 쯤 지난 원주 시절 처음으로 법상에 올랐던 일입니다.
당시 25세에 불과했기 때문에 나름대로 준비를 많이 했지만
그리 훌륭한 법문은 아니었을 겁니다.
더구나 어른 스님들도 모두 나와서 법회에 참석하고 계셨기 때문에
더욱 힘든 법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지나온 시간들을 되돌아보면 모든 법회가 의미 있다는 생각입니다.
세 살 먹은 어린 아이에게도 배울 것이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사소한 법회라도 법문을 듣게 되면 항상 배움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눈여겨보면 스승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더구나 안목 있는 눈으로 보면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 또한 나를 경책하게 하는 스승입니다.
그래서 역행보살이라는 말도 있는 것입니다.
‘화엄경’은 이렇게 모든 이들이 스승이라고 일러주고 있습니다.
앞서 말한 할머니의 그 수순한 마음이 바로 보살의 마음입니다.
그리고 이런 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삶을, 그리고 마음을 닮아가려고 노력하는 것이 또한 수행입니다.
요즘 KTX를 타면 2시간, 정말로 잠시 잠깐이면 서울에서 통도사까지 올 수 있습니다.
참 편리한 세상이 됐습니다. 불과 몇 년 전을 생각하면 상전벽해(桑田碧海)라고 할 수 있지요.
요즘 과학자들은 우주와 또 다른 우주와의 부딪힘, 태양계 중심의 블랙홀,
우주의 생성과정을 이야기합니다. 어린이들이 비눗방울을 갖고 놀듯이
태양, 목성, 금성, 화성 등도 방울 점막으로 이뤄져 있는 우주와 같습니다.
이렇게 무진찰찰(無盡刹刹)로 중첩돼 있는 헤아릴 수 없는
비눗방울 같은 우주가 빅뱅처럼 툭 터져 폭발하기도 하지만
점점 그 안의 공기가 적어지면서 방울이 작아지는 것처럼 또한 작아집니다.
우리의 세상이 변하고 있는 것처럼 우주도 매 찰라 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진진찰찰(塵塵刹刹)로 이뤄져 있는 세계에서 정말 소중한 것은
우리 곁, 손 한 뼘 곁에 있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시를 한 수 적어왔습니다.
“나는 결국 나 혼자 사는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 들어와 있는 것들, 밥상에 올라와 있는 것들,
심지어 내가 마시는 물도 저 시냇물의 물 한 방울이고,
내가 마시는 이 공기도
만물이 밤새도록 내뿜는 산소 한 모금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내 몸을 살찌우는 곡식과 채소들이 저 들판에서 나온 것을
아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내 의식은 자연의 자양분을 얻었습니다.”
자, 어떻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인드라망처럼 무진찰찰로 이어져 있습니다.
‘화엄경’의 가르침은 간단히 정의하면 신해행증(信解行證)입니다.
바로 믿고 바로 알고 바른 도리를 증득해서 수행을 통해 내 것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신(十信), 십주(十住), 십행(十行)을 통해서 십회향(十廻向)을 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아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수행하고,
그리고 보살행을 통해 실천하면 누구나 무상의 깨달음을 증득할 수 있습니다.
천릿길도 한 걸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화엄경’의 가르침을 무소의 뿔처럼 실천해 나가다보면 어느새 해탈자리에 도착하게 됩니다.
‘화엄경’의 가르침을 따라 수행하고, 또 그렇게 보살행을 닦아나가면
결국 선근의 장양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십신(十信)에서는 올바른 믿음을 성취시키고
십주(十住)에서는 올바른 이해를 가르쳤고
십행(十行)에서는 올바른 실천, 즉 자리행입니다.
스스로에게 이익이 되는 닦음입니다.
그리고 십회향(十廻向)에서 이타행을 이룹니다.
그리고 십지(十地) 중에서 환희지(歡喜地)는 이론적으로 잘 알고 있겠지만
실천의 차원을 넘어 자기 것으로 완전히 증득해 나가는 길을 말합니다.
대중들은 제 얼굴이 일기예보라고 합니다. 오늘은 무지하게 좋습니다.
오늘만 좋은 것이 아닙니다.
불자들이 기도하는 모습과 스님들이 정진하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좋을 수 없습니다.
저는 날마다 오늘처럼 기분이 좋아서 환희지에 머물렀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물질의 풍요 속에서 넘치게 갖고 있으면서 타성에 젖어 있습니다.
우리는 부자가 맞습니다. 부자가 물질적인 부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치 있게 쓸 줄 아는 돈만이 자신의 돈입니다.
저는 올곧게 쓸 수 있는 돈이 진짜 자신의 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쓸 줄도 모르면서 너무 많이 가져버리면 타성에 젖어들게 됩니다.
우리 통도사에서 어렵고 힘든 주변과 이웃들을 위해 많은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해와 올해 통도사 본말사(本末寺)에서 돈을 모아서
지진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은 아이티의 구호를 위해 10만 달러를 보냈습니다.
우리 돈으로 1억 2천만 원입니다. 자랑하려는 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남을 돕는 일은 우리 모두 발심해서 해야 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사람의 삶을 돌아봐야 합니다.
한번은 북한에 홍수가 나서 엄청난 피해가 있다는 말에
본말사 여러 곳에 보시함을 마련해 둔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돈이 모이지 않았습니다. 북한 사람들의 복이겠지만 안타까웠습니다.
용서는 힘이 있는 자가 하는 것입니다. 자비심만이 용서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들을 변화시키려면 배려를 해야 합니다. 배려하고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들도 변할 것 아닙니까.
특히 이 나라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들이 이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복에 넘치게 풍요를 누리다 보니까
우리 모두 타성에 젖어 무기력해 진 것 아닌지 되돌아봐야 합니다.
영원할 것처럼 착각하고 살다가
어느 날 그것들이 부질없는 것을 알게 될 때 울고불고 난리를 치고
괴롭다고 몸부림치는데,
이것이 왜 생겼을까를 돌이켜 보면 무명(無明)의 얼굴인 것을 알게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인생을 여덟 가지 고통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고통에,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고통,
미운 사람과 만나는 고통, 구해도 얻어지지 않는 고통,
결국은 사라질 수밖에 없는 오온(五蘊)에 집착하는 고통을 벗어나는 길은
계정혜(戒定慧) 삼학을 통해 해탈과 열반의 길로 나아가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자, 이제 시를 한 편 들려 드리면서 법문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그 때는 몰랐다. 길을 걷는다는 것과 길을 낸다는 것이 얼마나 다른 일인가를.
사람들은 간혹 내게 묻는다. 이런 아름다운 곳에 사니까 정말 행복 하겠다고.
정말 보람 있겠다고. 얼추 맞는 말이다. 행복하고 보람 있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평화롭고 행복한 길을 내면서도
나는 종종 외로워하고 때론 절망한다. 사랑에 대한 갈증으로 고통스러워한다.”
이 법문은 2010년 화엄산림 대법회 가운데
12월 6일 영축총림 통도사 설법전에서 통도사
주지 정우 스님이 설한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정우 스님은
1968년 조계종 제15교구본사 통도사에서 홍법 스님을 은사로 사미계,
71년 통도사에서 월하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74년 해인사 승가대학 대교과를 졸업한 후 월정사에서 화엄학을 수학한 스님은
83년 조계종 총무원 교무국장, 조사국장에 이어 9, 10, 11, 12대 중앙종회 의원을 역임했다.
94년 총무원 총무부장과 개혁회의 상임의원을 맡은 후
98년 불교텔레비전 대표, 일산 포교당 여래사 주지,
통도사 서울포교당 구룡사 주지를 통해 도심 포교에 진력한 데
이어 현재 영축총림 통도사 주지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