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일신라시대의 이씨 성을 가진 인물(18)
* 아래에 소개하는 이씨는 확인된 경주 이씨가 아닙니다.
통일 신라 시대 때에는 본관을 쓰는 이씨가 없는 것으로 압니다.
이씨 성을 가진 역사인물로만 아시면 되겠습니다.
★ 이홍(利弘)
시대 통일신라
본관 미상(未詳)
성 미상(未詳)
성별 남
활동분야 문신/관료 / 관료 / 시중
?∼839(신무왕 1). 신라 희강왕 때의 시중. 관등은 아찬(阿飡)이었다.
836년(희강왕 1) 흥덕왕이 죽은 뒤 왕의 사촌동생 김균정(金均貞)과 사촌동생 김헌정(金憲貞)의 아들인
제륭(悌隆)이 왕위를 다투게 되었을 때, 이홍은 시중 김명(金明)· 배훤백(裵萱伯)과 함께 제륭을 받들어
균정 일파와 싸워 승리함으로써 제륭(희강왕)이 즉위하였다.
이 공으로 이홍은 837년 정월 상대등이 된 김명의 뒤를 이어 시중이 되었다.
그러나 838년 정월에 이홍은 상대등 김명을 도와 난을 일으켜 왕의 근신을 살해하니,
희강왕은 온전하지 못할 것을 염려하여 자결하였다.
이에 김명(민애왕)이 즉위하였다.
그 해(민애왕 1) 12월에 균정의 즉위를 지지하였던 김양(金陽)과 균정의 아들 우징(祐徵)이
청해진 대사(淸海鎭大使) 장보고(張保皐)의 군사를 빌려 공격하여왔다.
이에 민애왕은 김민주(金敏周)로 하여금 막게 하였으나 실패하였고,
839년 정월에는 달벌(達伐: 지금의 대구)에 도착한 적을 이찬(伊飡) 대흔(大昕), 대아찬 윤린(允璘)·
의훈(疑勛) 등으로 하여금 막게 하였으나 또한 실패하여 김양의 군대에게 민애왕이 시해되었다.
그리하여 김우징(신무왕)이 즉위하자, 시중인 이홍은 화를 두려워하여
처자를 버리고 산림으로 도망하였으나,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참고문헌]
三國史記
新羅下代의 執事省(李基白, 新羅政治社會史硏究, 一潮閣, 1974)
新羅下代의 王位繼承과 政治過程(李基東, 歷史學報 85,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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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의 이씨 성을 가진 인물(18)
이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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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1.16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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