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숙이 딸 시집보내느라 바쁘겠구나 딸들 보내고 나면 오히려 더 든든한 친구가 되 주더라 물론 시댁일에 신경쓰랴 신랑챙기랴 나랑같이 사는것 처럼 같이 시간을 많이 보내지는 못하지만 서로 더 깊이 이해하는 공감대가 형성되기도 하고 말이야 성인대 성인으로. 큰딸 시어머니가 그러시더라 요즘은 사위가 아들보다 더 가까운 세월이라고 딸 보낸다고 너무 서운해 하지 말라고..... 고마웠지 그리고 지금 사위들에게도 너무 고마운게 많고... 니달 시집가는거 너 장모되는거 모두 축하한다. 청첩장 받고 처음엔 그 인숙인가? 미심적었다. 늘 젊고? 밝은 네 모습이 떠올라서 말이야 ㅎㅎ
양숙이 등단도 축하하고.. 정말 대단하고 멋지네. 꽃게에서 묻어나는 우리 나이의 정서에 공감하며 인숙이나 양숙이나 우리 모두가 이제 그렇게 기다림의 시절에 들어섰나 생각했다
지난주에 적어두었던 글 이곳에 둔다 같은 마음을 가진 친구들이 있어 아이들을 보내고 기다리는 공백이 더 아름답겠지?.
가족사진
아들 졸업식에 즈음하여 가족사진을 찍기로 하였습니다. 모두 한자리에 모여 가장
좋은 옷을 꺼내 입고 머리 모양을 매만지고 시골의 작은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었습
니다. 사진을 찍는 그 몇 십분의 수고는 더러 곤혹스럽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하지
만 모두 한자리에 모이는 일과 그렇게 가장 좋은 모습으로 자신을 다듬어 가는 과정
은 무척 행복했습니다.
한동안 장롱 속에만 걸려있던 밝은 빛의 투피스를 꺼내 손질 하고 오랜 만에(둘째
딸 결혼식이후 근 2년만에) 넥타이를 고르는 남편의 와이셔츠를 다림질 하는 일로
집안엔 활기가 넘쳤습니다.
정말 오랜 만에 얼굴에 비비크림을 바르고 립스틱을 바르며 그동안 햇볕에 그을릴
대로 그을린 피부를 어루만지고 훌훌 털고 바람에 말리던 머리를 드라이하고 오래
빗질하여 스프레이로 고정하면서 바쁜 순간에 그 동안 낯설어진 '나'와도 잠시 만나
보았습니다.
아이들도 모두 정장을 갖추어 입으니 내가 낳은 아가들?이 어엿한 어른들이 되어
내 앞에 섭니다. 용문 집에 올 때면 늘 편한 옷차림으로 나타나서는 반바지에 티셔
츠 차림으로 있다가 가더니 아껴두었던 정장들을 가져와 입고 나서니 나는 아이들
모습에 눈이 멀어서 한순간에 기꺼이 팔불출이 되고 맙니다.
-얘 너 그 옷 정말 잘 어울린다 오오 정말 멋진데~
-아이구 우리 아들 모델 같네~
-김서방 오늘 헤어스타일 죽이는데~
-ㅎㅎ 우리 윤서방 새 신랑 같다
-아이구 유라야 너 딴사람 같다 매일 그렇게 하구 다님 애맨 놈들 가슴 타겠다 조심해라
-엄마 너무 심한 거 아냐? 자기 자식이라고 너무 띄우시는데~ ㅎㅎㅎ
다섯 살 손녀딸이 좋아하는 핑크 원피스를 입고 제 딴엔 발레를 한다고 하며온 집안
을 춤을 추며 돌아다니는 모습은 우리 모두의 마음인 것 같았습니다.
아이들 결혼식 때도 어찌나 완강히 거절하던지 양복 한 벌 새로 안하던 남편에게 새
로 양복을 사주었습니다. 딸아이에게 치수를 불러주고 진한 곤색 여름양복 한 벌
사오라 했더니 아빠꺼라고 아주 비싼 돈을 주고 양복 한벌을 들고 왔습니다.
-이거 결혼 삼십이주년 기념 선물이야 하니
-고마워 좋은 옷 사줘서 한다.
기껏 사온 옷 안입는다고 도로 가져가라고 할까봐 걱정했는데 순순히? 받아서 기쁘
게 입어주니 정말 고마운 건 나였습니다.
번듯이 새 양복을 입고 머리를 빗는 남편의 뒷모습에 하마트면 눈물을 흘릴 뻔 했습
니다. 거짓말처럼 건강해진 남편이 멋졌습니다.
여성동지?들이 방안에서 찍어 바르고 두드리고 하는 동안에 남성들은 벌써 마당에
서성거리며 무언의 압력으로 우리를 재촉하고 있었습니다
-여보 우선 카메라 가지고 마당에서 사진 좀 찍고 있어요 그래야 우리가 더 이쁘게 하지
-어 그래
대학 졸업하는 아들이 무슨 박사라도 된 것처럼 너무 요란을 떠는 건 아닌가 잠시
생각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나의 막내가 학생이 아닌 사회인이 되는 인생의 한 매듭
을 아무 의식없이 보내는 게 아무래도 너무 아쉬울 것 같아서 스스로에게 잘 한 거
야 일러 주었습니다
'빈 둥지 지키기'라는 말을 중년이 넘은 우리나이의 생의 과업이라고 쓰여 있는 책
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모두 장성해서 떠나가면 텅 빈 집을 두 부부가 지
키며 살아가는 일에 익숙해지는 시기라는 뜻이였습니다. 우울해 지기도 하고 몸이
아파지기도 하고 사회적으로도 뒷전으로 밀려나는 이 시기의 삶이 그다지 쉽지만
은 않다는 거겠지요. 그래도 기꺼이 빈 둥지를 그대로 지키는 이유는 가끔 떠났던
아이들이 돌아와 가슴 벅차게 가득 차는 그 순간이 행복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둥지에 둘이 남아 서로의 기다림을 안아주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 깊이
느끼는 그 이유 때문이겠지요.
오늘은 우리의 둥지가 가득차서 행복한 그 순간을 사진으로 남겨두려 합니다. 모두
자라서 성인이 되었지만 기다리는 ‘둥지’가 있어 더 행복한 사람으로 살았으면 좋겠
습니다. 사진을 찍고 나면 아껴두었던 좋은 와인을 꺼내서 아이들에게 한잔씩 따르
어 줘야겠습니다. 잘 자라주어 고맙다고 그리고 나와 남편의 아이들이 너희들이여
서 정말 행복하다고 너희들을 정말 사랑한다고 말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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