附錄 : 벼슬에 제수(除授)된 기록
[註] : 同春선생은 일생동안 수 많은 관직에 제수(임금이 직접 벼슬에 임명하는 것)되었으나 거의 사양하고 조정에 나아가지 않았다. 대체 선생은 어떤 벼슬을 몇 번이나 받고, 몇 번이나 사양하였을까? 현대는 대체로 하나의 관직 만을 거치는데, 동춘선생은 같은 벼슬에 아주 여러 번 제수되었다. 사헌부의 대사헌은 무려 27회를 임명받았다. 그 밖에도 세자시강원 진선 6회, 찬선 8회, 사헌부 집의 8회, 의정부 우참찬 4회, 좌참찬 9회, 판서 4회(병조 1, 이조 3) 등의 벼슬에 제수되었다. 이는 日記와 年譜를 근거로 조사한 것이나, 혹 누락된 기록도 있을 수 있다. 여러분의 叱正을 기대한다. |
1625(20세);
夏中別試初試
여름, 별시 초시에 합격하다.
1630(25세);
三月除翊衛司洗馬不就
3월, 익위사 세마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다.
1632(27세);
冬 除內侍敎官不就
겨울, 내시 교관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다.
1633(28세);
五月 除童蒙敎官
5월, 동몽 교관에 제수되다.
1635(30세);
十月 除翊衛司侍直不就
10월, 익위사 시직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다.
1636(31세);
六月 除大君師傅 尋特授禮山縣監不赴
6월, 대군 사부에 제수되다. 얼마 뒤에 특명으로 예산 현감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다.
1639(34세);
九月 除刑曹佐郎不就
9월, 형조 좌랑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다.
1643(38세);
正月 除司憲府持平辭遞. 七月除漢城府判官不就
1월, 사헌부 지평에 제수되었으나 사체하다. 7월, 한성부 판관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다.
1644(39세);
十一月 除持平辭遞
11월, 지평에 제수되었으나 사체하다.
1645(40세);
四月 除持平上疏辭
4월, 지평에 제수되었으나 상소하여 사직하다.
1649(44세);
六月 授副司直, 除侍講院進善上疏待罪
6월, 부사직에 제수되다. 시강원 진선에 제수되었으나 상소하고 대죄하다.
八月 拜司憲府掌令上疏辭
8월, 사헌부 장령에 제수되었으나 상소하여 사직하다.
九月 陞司憲府執義 疏不入乃就職
9월, 사헌부 집의로 올려 제수되다. 사직소를 올렸으나 들이지 않자 나아가 직무를 보다.
十月 陞通政階授經筵參贊官尋改正
10월, 통정대부의 품계로 올려 경연참찬관에 제수하다. 뒤에 개정하다.
十一月 付護軍上疏乞退不許
11월, 호군에 부록되다. 상소하여 물러가기를 청하였으나 불허하다.
1650(45세);
正月 除進善上疏辭
1월, 진선에 제수되자 상소하여 사직하다.
七月 除進善上疏辭
7월, 진선에 제수되자 상소하여 사직하다.
1651(46세);
九月 除進善上疏辭不許
9월, 진선에 제수되자 상소하여 사직을 청하였으나 불허하다.
十二月 限滿遞
12월, 기한이 차서 체직되다.
1652(47세);
五月 除進善上狀遞
5월, 진선에 제수되었으나 소장을 올려 체직되다.
1653(48세);
正月 除執義上狀遞
1월, 집의에 제수되었으나 소장을 올려 체직되다.
四月 除執義上狀遞 自此至冬凡四除是職背旋遞
4월, 집의에 제수되었으나 소장을 올려 체직되다. 이때부터 겨울까지 네 차례 집의를 제수하였으나 소장을 올려 바로 체직되다.
十二月 除司䆃寺正旋遞
12월, 사도시 정에 제수되었으나 바로 체직되다.
1655(50세);
十月 除執義俄陞通政大夫承政院同副承旨上疏辭
10월, 집의에 제수되었다가 바로 통정대부 승정원 동부승지로 승직되다. 상소하여 사직하다.
1656(51세);
正月 除侍講院贊善上疏辭
1월, 시강원 찬선에 제수되었으나 상소하여 사직하다.
二月 除吏曹參議 仍兼贊善上疏辭
2월, 이조 참의에 제수되다. 찬선을 그대로 겸임하게 되자 상소하여 사직하다.
五月 再上疏辭贊善遞
5월, 재차 상소하여 사직하니 찬선으로 체직하다.
1657(52세);
四月 除吏曹參議 上疏辭遞
4월, 이조 참의에 제수되었으나 상소하여 벼슬을 내놓고 물러나다.
六月 特除贊善別諭召之仍令乘轎上來 上疏辭不許
6월, 특별히 찬선에 제수하고 별유로 부르면서 가마를 타고 올라오라고 명하다. 소를 올려 사양하였으나 불허하다.
八月 道拜吏曹參議都城外再上疏辭不許 特命拜贊善
8월, 상경 도중에 이조 참의에 제수되다. 도성 밖에 이르러 다시 상소하여 사직을 청하였으나 불허하다. 특명으로 찬선에 제수되다.
1658(53세);
十二月 特兼成均館祭主 上疏辭不許 拜大司憲上疏辭遞旋命仍任 拜大司憲先生以每辭爲不安乃出肅
12월, 특명으로 성균관 좨주를 겸직시키다. 소를 올려 사양하였으나 불허하다. 대사헌에 제수되자 소를 올려 사직을 청하여 체직되었으나 그대로 임명되다. 대사헌에 제수된 선생은 매번 사양하는 것이 불안하여 나아가서 숙배하다.
1659(54세);
三月 特旨陞拜資憲大夫兵曹判書上疏辭 再疏申辭不許三疏又不許 丙午拜命上賜酒饌 上疏乞免國子兼任
3월, 특명으로 자헌대부 병조 판서로 올려 제수되었으나 소를 올려 사양하다. 재차 상소하여 거듭 사양하였으나 불허하다. 세 번 째 상소도 불허하다. 병오일(15일) 왕명을 받아들이므로 (임금이) 주찬을 하사하다. 소를 올려 겸임하는 국자감을 해면해 주기를 청하다.
閏三月 授知中樞府事
윤3월, 지중추부사에 제수되다.
四月 拜大司憲上疏辭 拜議政府右參贊.
4월, 대사헌에 제수되었으나 소를 올려 사양하다. 의정부 우참찬에 제수되다.
[註];
五月甲子 上受鍼後有召命已而昇遐.
5월, 갑자일(4일)에 임금(孝宗)이 침을 맞은 뒤 소명이 있었으나 얼마 되지 않아 승하하다.
六月 拜大司憲上箚辭 仍陳保護聖體鞏固基命之道 差掌樂院提調 拜吏曹判書.
6월, 대사헌에 제수되어 차자를 올려 사양하다. 이어 성체를 보호하고 국명을 공고히 할 방도를 진달하다. 장악원 제조에 임명되다. 이조 판서에 제수되다.
七月 三上疏辭不許
7월, 세 차례 소를 올려 사직을 청하였으나 불허하다.
十二月 陞正憲階 上疏辭不許 用誌文諡冊書寫勞也
12월, 정헌대부의 품계로 승급되다. 소를 올려 사양하였으나 불허하다. 지문과 시책을 쓴 공로이다.
1660(55세);
三月 拜右參贊
3월, 우참찬에 제수되다.
六月 拜大司憲
6월, 대사헌에 제수되다.
十月 拜右參贊上疏辭
10월, 우참찬에 제수되었으나 소를 올려 사직하다.
十二月 拜吏曹判書 上疏辭優批許遞仍趣行
12월, 이조 판서에 제수되다. 소를 올려 사직을 청하여 관대한 비답으로 관직을 교체하고 곧 오라하다.
1661(56세);
正月 拜右參贊
1월, 우참찬에 제수되다.
二月 赴召
2월, 부르는 명을 받고 조정으로 나아가다.
八月 拜大司憲上疏辭
8월, 대사헌에 제수되었으나 소를 올려 사양하다.
九月 拜左參贊上疏辭不許
9월, 좌참찬에 제수되어 소를 올려 사양하였으나 불허하다.
十二月 拜大司憲
12월, 대사헌에 제수되다.
1662(57세);
二月 拜大司憲
2월, 대사헌에 제수되다.
七月 拜大司憲 上疏辭兼陳所懷
7월, 대사헌에 제수되다. 소를 올려 사양하고 겸하여 소회를 진달하다.
十一月 拜大司憲上狀遞
11월, 대사헌에 제수되었으나 글을 올려 체직되다.
1663(58세);
二月 拜大司憲
2월, 대사헌에 제수되다.
六月 拜大司憲旋遞
6월, 대사헌에 제수되었으나 곧 체직되다.
九月 拜大司憲上狀遞
9월, 대사헌에 제수되었으나 글을 올려 체직되다.
十一月 拜大司憲 上疏辭許之
11월, 대사헌에 제수되다. 소를 올려 사직을 윤허받다.
1664(59세);
二月 拜大司憲上狀遞
2월, 대사헌에 제수되어 글을 올려 체직되다.
七月 拜大司憲上狀遞
7월, 대사헌에 제수되어 글을 올려 체직되다.
十月 拜大司憲別諭召之 玉堂請也, 上疏辭兼論君德.
10월, 대사헌에 제수하고 별유를 내려 부르다. 홍문관이 청하였기 때문이다. 소를 올려 사양하고 겸하여 군덕을 논하다.
十二月 上狀遞
12월, 글을 올려 체직되다.
1665(60세);
四月 拜大司憲上疏辭 上幸溫泉遣史官宣批不許
4월, 대사헌에 제수되었으나 글을 올려 사양하다. 임금이 온천에 거둥하고 사관을 보내어 비답으로 불허하다.
五月 拜左參贊命擇給官舍上疏辭
5월, 좌참찬에 제수하고 관사를 골라 주라는 명을 소를 올려 사양하다.
六月 差元子輔養官 上疏辭不許
6월, 원자보양관으로 임명하다. 소를 올려 사양하였으나 불허하다.
九月 行元子相見禮
9월, 원자와 상견례를 행하다.
十月 丙辰留疏出城遣史官諭批. 拜大司憲上狀遞.
10월, 병진일(4일)에 소를 남기고 도성을 나왔으나 사관을 보내어 유지와 비답을 내리다. 대사헌에 제수되었으나 글을 올려 체직되다.
1666(61세);
正月 拜大司憲上狀遞
1월, 대사헌에 제수되었으나 글을 올려 체직되다.
四月 上幸溫宮再遣史官敦召 拜左參贊特遣承旨敦諭趣召 癸酉日詣行宮卽賜對
4월, 임금이 온천에 거둥하고 다시 사관을 보내어 부르다. 좌참찬에 제수하고 특별히 승지를 보내어 돈유를 내리고 속히 오라고 부르다. 계유일(23일)에 행궁에 이르러 즉시 사대하다.
十二月 除贊善上疏辭不許
12월, 찬선에 제수되어 소를 올려 사양하였으나 불허하다.
1667(62세);
四月 拜左參贊上疏辭
4월, 좌참찬에 제수되었으나 소를 올려 사양하다.
六月 拜大司憲上狀遞
6월, 대사헌에 제수되었으나 글을 올려 체직되다.
十一月 又拜大司憲旋遞
11월, 다시 대사헌에 제수되었다가 곧 체직되다.
十二月 除贊善
12월, 찬선에 제수되다.
1668(63세);
四月 拜大司憲上狀遞
4월, 대사헌에 제수되었으나 글을 올려 체직되다.
五月 除贊善
5월, 찬선에 제수되다.
八月 拜吏曹判書 上疏辭遣承旨傳諭不許
8월, 이조 판서에 제수되다. 소를 올려 사양하였으나 승지를 보내어 전유하고 불허하다.
十一月 拜左參贊 上箚辭不許
11월, 좌참찬에 제수되다. 차자를 올려 사양하였으나 불허하다.
十二月 特授世子贊善
12월, 특별히 세자 찬선에 제수되다.
1669(64세);
正月 丁酉還朝 差典醫監提調上箚辭 因請行世子冠禮於歲首
1월, 정유일(3일)에 조정으로 돌아오다. 전의감 제조에 제수되어 차자를 올려 사양하다. 세자의 관례를 새해의 첫머리에 거행하기를 청하다.
四月 回鑾後上疏乞骸
4월, 어가가 돌아온 뒤 소를 올려 그만두기를 청하다.
五月 上疏乞歸遣史官勉諭不許
5월, 소를 올려 돌아가기를 청하였으나 사관을 보내어 타이르고 불허하다.
八月 上疏申乞遞職遣史官諭批不許
8월, 소를 올려 거듭 체직을 청하였으나 사관을 보내어 비답을 내리고 불허하다.
十一月 上疏乞解職遣史官優批不許
11월, 상소하여 해직을 청하였으나 사관을 보내어 관대한 비답으로 불허하다.
1670(65세);
正月 拜大司憲上疏辭不許 又上狀遞
1월, 대사헌에 제수되어 소를 올려 사직을 청하였으나 불허하다. 다시 글을 올려 체직되다.
閏二月 拜左參贊遣史官趣召
윤2월, 좌참찬을 제수하고 사관을 보내어 속히 오라고 부르다.
三月 壬戌入京謝恩卽賜對 上曰冠禮已迫卿今上來事無欠缺幸不可言 先生辭謝仍辭本兼諸職 上 許遞繕工提調
3월, 임술일(5일)에 서울로 들어가 사은하자 즉시 사대하다. 임금이 이르기를 “세자의 관례가 임박하였는데 경이 올라와서 일에 흠결이 없게 되었으니 다행스러움을 이루 말할 수 없다.”고 말하여 선생이 사례하다. 이어 본직 및 겸직 등 여러 관직의 사직을 청하였으나 임금이 선공감 제조의 체직을 허락하였다.
四月 上疏乞退 到果川承旨追來傳諭 丁未還都城中上疏辭職不許
4월, 소를 올려 물러가기를 청하다. 과천에 도착하니 승지가 뒤쫓아 와서 유시를 전하다. 정미일(21일)에 도로 도성 안으로 들어와 소를 올려 사직을 청하였으나 불허하다.
八月 上狀辭職不許拜大司憲 上疏進言兼乞遞職優批不許 再上疏仍還鄕.
8월, 글을 올려 사직하였으나 불허하고 대사헌을 제수하다. 소를 올려 진언하고 겸하여 체직을 청하니 관대한 비답으로 불허하다. 거듭 글을 올리고 곧 고향으로 돌아오다.
十一月 拜左參贊上狀遞
11월, 좌참찬에 제수되었으나 글을 올려 체직되다.
1671(66세);
五月 除知中樞 上狀辭不許
5월, 지중추부사에 제수되다. 글을 올려 사양하였으나 불허하다.
六月 拜大司憲 上疏辭兼陳所懷 遣史官諭批許之
6월, 대사헌에 제수되다. 소를 올려 사직을 청하고 겸하여 소회를 진달하다. 사관을 보내어 비답을 내리고 윤허하다.
九月 拜左參贊上狀遞
9월, 좌참찬에 제수되어 글을 올려 체직되다.
十月 授知中樞上狀遞
10월, 지중추부사에 제수되어 글을 올려 체직되다.
1672(67세);
十一月 病革先生自四月有微恙輾轉沈重 而猶且接引後學講論不倦(中略) 又手書太極西銘中 ‘修吉悖凶 存順沒寧’ 八字此絶筆也
11월, 병환이 위중하였다. 선생은 4월부터 시작된 작은 병이 점점 위중해졌는데도 오히려 후학을 상대로 강론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중략) 또 태극도설과 서명 중의 ‘수길패흉 존순몰녕(修吉悖凶 存順沒寧)’ 여덟 자를 손수 썼는데 이것이 마지막 절필이다
十二月 壬寅太醫承命來視(中略) 癸卯辰時考終于懷德邨第之同春堂
12월, 임인일(1일)에 태의가 명을 받들고 와서 병을 살폈다.(중략) 계묘일(2일) 진시(아침 8시)에 회덕의 촌사 동춘당에서 고종명하다.[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