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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인 한 사람의 위력
민문자
시낭송 강사로 초청을 받아 여행하기는 처음 있는 일이다.
시사랑 노래사랑으로 인연을 맺은 임승천 시인과 함께 후배 한 사람을 데리고 며칠 전 예매해 둔 옥천행 무궁화호를 탔다. 부산행 KTX는 정차하지 않는 작은 도시라 부득이 무궁화호를 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두 시간밖에 안 걸리는데 오늘은 무슨 사고가 있었는지 40분 늦게 기차가 출발하여 영등포역에서 기다리는 수고를 했다. ‘이즈음도 이렇구나!’ 하면서 옛날 마냥 늦어지던 완행열차 기억이 떠올랐다.
옥천은 십 년 전에 꼭 한 번 가본 고장이다. 이번과 마찬가지로 그때도 정지용 문학제에 참가하느라 방송대 학생 신분으로 정지용 문학제 운영위원장이던 박태상 교수를 따라갔다. 조용한 소읍이던 고장이 고층 아파트와 빌딩들이 있는 도시로 많이 발전하는 모습이다.
오월의 싱그러운 녹음이 우리의 시야를 시원스레 넓혀주는 차창 밖 풍경을 감상하다 신시가지에 있는 옥천역에 내려서 우리 일행은 택시를 타고 구읍에 있는 정지용 생가와 문학관을 찾아갔다.
지용제는 매년 5월이면 정지용의 문학을 기리고 추모하며 그분의 시정신과 삶의 향기를 더욱 가까이하도록 해마다 열리는 축제이다. 존경하는 정지용 시인의 문학을 접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이곳에 가게 된 것이 우연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정지용 시인을 기리는 축제에 증조할아버지 문학 추모제에 참석한다는 마음이다.
십 년 전에 처음 여기 왔을 때 얼마나 감개무량했는지 방명록에 정지용 시인 → 박두진 시인 → 정공채 시인 → 민문자 라고 기록했던 기억이 난다. 나의 첫 번째 시 스승 고 정공채 시인은 박두진 시인의 제자로 천의무봉 시인이라고 극찬을 받은 분이다. 청록파 시인 중 한 분인 박두진 시인은 지용제 첫 번째 문학상을 수상하신 분으로 저의 스승의 스승이시니 시 족보를 따진다면 정지용 시인은 문림(文林)에서 저의 증조부가 되시는 셈이다. 십 년 전에 이런 일이 있을 줄 누가 알았을까?
정지용 시인은 시적 대상을 적확하게 시적 기법으로 표현 우리 모국어를 현대화시킨 최초의 모더니스트요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한국을 대표하는 우리 시대가 존경하는 현대시의 최고 별이시다.
정지용 시인의 생가에서 대중들과 그분의 시를 감상할 수 있어서 참으로 감개무량하다. 기교와 형식의 틀에 매이지 않고 자유스럽게 아름다운 그분의 시 감상도 하면서 기초적인 시낭송법을 이야기하기로 마음먹었다.
정지용과 옥천이란 단어는 우선 향수라는 가곡과 대중가요로 널리 알려져 고향의 이미지를 불러오고 실개천이 등장한다. 오늘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물레방아 있는 정지용 생가 앞의 실개천이 붉은색의 작은 우산이 빼곡히 들어차 있는 모습으로 다가왔다. 아마도 밤 풍경을 위한 설치 미술인가 보다.
올해로 제29회 지용제가 열리니 이제 정지용 문학제는 범국민적 국가적 행사로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행사 기간만 이용될 천막 타운이 새로 생긴 것 같다. 전국에서 몰려든 관광버스와 승용차들이 임시 주차장을 가득 메웠다.
해마다 5월 15일 정지용 시인의 생일을 전후해서 3일간 행사를 하는데 오늘이 이틀째 14일 토요일이라 전국에서 몰려든 문학제 참가단이나 일반 관광객으로 구읍 전체가 시끌벅적했다.
우리는 우선 생가와 문학관에 들려 우리를 초대한 팀과 상견례를 하고 안내받은 곳으로 가서 점심을 먹기로 하였다.
일반 주택가를 지나서 왁자한 행사장으로 올라갔다. 정지용 시인이 활동하던 1930년대를 생각하게 하는 다방 카페 프란스, 사진관과 옛 이발소도 보인다. 천연염색 체험, 전래민속놀이 체험, 티셔츠와 다포에 판화찍기, 예쁜 미술공예 체험 등 여러가지 체험장과 상설 공연장이 대로를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있다. 또한 각종 생필품 건강용품과 아이스크림 과자 떡 등을 파는 부스에서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자기고장의 특산품 명물을 소개하고 있다.
먹거리 식당가는 두 군데인데 이곳 향토음식으로 지용제를 위한 인력을 상대로 식권을 발급한 곳과 일반인이 현금으로 식사를 해야 하는 전국 명물 먹거리 식당들이 있었다. 우리는 식권으로 먹을 수 있어 옥천 명물 생선국수와 도리뱅뱅이를 주문했는데 이 지역 특산물답게 맛이 좋았다. 생선국수는 민물고기 삶은 뜨거운 어탕에 면을 넣은 것으로 얼큰하여 걱정하던 비린내도 없어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누구나 한두 번은 맛있게 먹을 만한 음식이다. 도리뱅뱅이는 검은 프라이팬에 금강의 민물 빙어를 갖은 양념하여 죽 돌려 담아 굽듯이 익혀 내놓았는데 잘게 저며놓은 마늘, 그 맛이 잘 어우러져 별미 중의 별미였다.
점심 후 시간에 맞추어 우리 차례의 강의를 위해서 생가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단체나 가족 단위로 이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어서 죽 몰려다니는 모습이다. 이 행사를 위해서 멀리 서울이나 다른 지역에서까지 지원팀이 와서 지용제를 위해 애쓰는 모습을 엿볼 수가 있었다. 옛날 여고 교복을 입은 여학생 차림으로 하는 오르간 연주와 하프 연주는 서울에서 지원 나온 분들의 열정으로 오가는 발길을 멈추고 자연스럽게 함께 노래 부르게 하기도 하였다. 그 음악 프로그램 끝에 우리의 시낭송 강좌를 진행하였다.
우리 일행은 맡은 일을 마치고 상설공연장과 휘황찬란한 야시장을 구경하였다. 지용제가 열리는 3일간은 큰 트랙터와 소달구지 타기 체험을 할 수 있었다. 마차형의 2대의 트랙터는 향토기업인 국제종합기계의 협조를 받아 정지용 생가와 시인의 시어로 가득한 구읍 간판의 거리를 운행하며 탑승객에게 고향의 멋을 보여준단다. 육영수 생가 입구에는 보기 드문 수령이 500년은 되었음 직한 느티나무가 보호수로 이 고을을 지키고 있는 듯 떡 버티고 있었다. 우리는 왕복 트랙터를 타고 육영수 생가를 방문하고 다시 행사본부가 있는 체험장으로 돌아와서 정지용 시인의 젊은 시절 음악다방을 재현해 놓은 듯한 카페프란스에서 차를 마시고 시낭송을 하였다. 우리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통해서 행사장 전체로 퍼져나갔을 것이다.
해거름에 거리의 먹거리 식당에서 식권으로 돼지족발을 주문해서 저녁으로 가름했다. 그리고 한적한 모텔로 안내되어 하룻밤 편안한 휴식을 취했다.
15일 아침은 올갱이 맛집으로 안내되어 아욱 넣은 올갱이국으로 하였다.
지용문학공원에는 정지용 시비를 비롯하여 서정주 이은방 윤동주 오장환 박두진 조지훈 박목월 김소월 김영랑 박용철 도종환 시인의 시비가 군데군데 세워져 있다.
문학공원 중앙에서는 학생 그림그리기대회와 청소년 캠프특강과 전국시낭송대회가 열린다. 마침 우리는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시낭송가들의 경연모습을 잠시 구경할 수가 있었다. 시낭송 심사위원은 이근배 시인, 공광규 시인, 서수옥 시낭송가였다. 숲이 우거진 쪽 공원 고개넘어로 가보니 교동호수가 정지용의 향수를 그대로 나타내주고 있었다. 참 아름다운 호수다.
시인이 젊은 날 읊은 시, 그 호수가 교동호수에 있는 것이다.
호수 / 정지용
얼굴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보고 싶은 마음
湖水만 하니
눈 감을 밖에
생가 옆 실개천은 우산으로 수놓은 붉은 등(燈)이 밤에는 고혹적인 불빛으로 흐르고 정지용 생가를 우측으로 돌아선 도롯가에는 <꽃피는 집>이라는 꽃집이 있는데 큰 도시에서도 볼 수 없는 아름다운 꽃나무와 화분 꽃바구니가 있어 몇 번을 그 집 앞을 오가며 주인과 대화를 나누었다. 일부러 대전에서 이사를 와서 시작한 꽃집이 연중 정지용 생가를 찾는 많은 사람 때문에 아주 잘 된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정지용 시인을 추모하고 우리 현대시의 기틀이 되어 많은 시인과 일반인들에게까지 큰 영향을 준 그의 문학을 길이 기리기 위해서 지용제 행사는 해마다 옥천군이 주최하고, 옥천문화원이 주관하며 지용회, 옥천청년회의소, 옥천문인협회 등이 세부행사를 맡아서 진행한다고 한다. 행사 기간 옥천을 찾아와서 쓰고 가는 수많은 외지인의 비용은 옥천경제를 윤택하게 하고 있음이 한눈에 느껴지는 것이다.
이렇듯 정지용 축제 기간뿐 아니라 박경리의 소설 “토지” 속의 지명 평사리가 하동 평야에 생겨나 그곳 주민을 먹여 살리듯 평상시도 많은 참배객이 있어 옥천의 문화 경제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정지용이라는 시인 한 사람의 배출로 옥천 주민들의 경제뿐 아니라 문화생활에도 긍정적인 힘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으니 이 아니 위대한가.
첫댓글 민문자 시인님 반갑습니다. 멋지십니다. 축하드립니다.
민 고문님 좋은 곳 다녀오셨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