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향 맑은 오솔길
함께 이야기할까요
윤 성 근 (skyun0058@hanmail.net)
2005 『현대수필』 수필 등단
2011 『에세이스트』 수필 평론 등단
여러분, 지금 행복하신가요?
항상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마음이 흡족할 때가 더 많다고
생각하시나요? 같은 상황을 두고도 누구는 만족해하고, 누구는
그렇지 않다고 여깁니다. 행복감이란 추상적이고 주관적인 개념이기
때문이지요. 웃는 얼굴과 찡그린 얼굴 사진을 함께 보여주면, 웃는
얼굴을 더 오래 기억한다고 합니다. 심리학 이론 중 하나인 ‘웃는
얼굴 우위성 효과(優位性 效果)’ 때문이랍니다. 하찮은 일에도
긍정적으로 대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옆에 있는 이도 덩달아
마음이 편해집니다. 그런데 그 웃는 얼굴의 주인공이 바로 나였으면
좋겠습니다. 바람일 터입니다만, 그게 그렇게 어렵기만 한 일은 아닐
것 같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도 모른 채 가지고 있는 본능이 있다고 합니다.
‘말하기 욕망’도 그중의 하나랍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남에게도 알리고 싶은 욕구를 일컫는 말이지요. 우리 설화에 <임금님
귀는 당나귀의 귀>가 있습니다. 신라 경문왕이 즉위하면서 이상하게
귀가 커지기 시작하여 당나귀 귀가 됩니다. 난처해진 왕실에서는
두건장이를 불러 임금님의 귀를 가릴 모자를 만들게 합니다.
그러면서 이 사실을 세상에 알리면 살아남지 못하리라는 경고도
함께합니다. 이 엄청난 사실을 아무에게도 발설하지 못하고 혼자
끙끙거리다가 결국 병까지 얻어 앓아눕게 된 두건장이, 혼자 대나무
숲에 들어가 “임금님 귀는 당나귀의 귀”라고 목이 쉬도록 외치고 난
뒤에야 건강을 되찾습니다.
(...)
비움과 채움
윤 진 철 (ds5pqh@gmail.com)
2017년 『에세이스트』등단
옷깃을 파고드는 억센 바람처럼 투박한 말이 뜨거웠다. 불에 덴 듯
화끈거리는 순간 놓아 버리고 말았다. 일순간이었다. 어떻게 하면 놓을
수 있을까. 갈등하며 일 년을 넘게 망설였다. 회사생활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승진에 대한 욕망이 있을 것이다. 직책이 변경된 나는 해가 가고
봄이 왔건만 아직 자신을 스스로 승진시키지 못하고 있다.
환경이 사람을 만들고 그 사람을 드러낸다고 했던가.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하지만 준비되지 않은 리더는 늘 쫓아가기 바쁘다.
그게 세상살이라 생각한다면 답은 간단히 해결될 것이다. 하지만 왜
사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날은 어스름한 막막함이 집 앞까지
따라오고 풀잎에 베인 손가락처럼 마음이 아리다.
칼바람이 부는 십이월이 다가오면 추운 날씨만큼이나 회사 분위기는
냉랭하다. 직장인이라면 받아야 할 평가 때문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팀별로 하위 고과가 배분되었다. 우리 부서도 예외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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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빛나는
조 현 숙 (hyunsookanna@gmail.com)
2021년 『한국산문』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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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세상에나. 세심한 친구 덕분에 이삿짐을 정리하며 버려질
뻔한 그 의자가 나에게로 온 것이었다. 친구 집에 놀러 가면 이끌리듯
그 흔들의자에 앉아 책을 읽었다. 책 읽는 맛도 근사했고 그 안에서
다디달게 스며드는 잠도 사랑했다. 나는 그 흔들의자를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어느 날엔가는 그곳에 앉아서 작가가 되는 꿈을
남몰래 품어 보기도 했다.
마호가니 원목 테두리에 움푹 파인 등받이는 마치 엄마의 자궁
속처럼 둥그렇고 아늑했다. 두 다리를 가슴께로 모아 앉으면 역시
웅크린 태아의 모양처럼 된다. 가느다란 나무가 부채모양으로
펼쳐진 등받이 부분의 작은 틈바구니에도 먼지 하나 끼지 않고
깨끗했다. 손이 덜 가는 부분조차 매끈함이 느껴지니 이 흔들의자는
주인의 사랑을 충분히 받은 물건임은 분명했다. 책을 보다가 잠이
오려 해도 푹신한 침대가 부럽지 않았다. 이렇게 좋은 물건이 내
집에 오다니 믿을 수 없이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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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위로
이 정 애 (jeongae0555@hanmail.net)
2018 『에세이스트』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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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는 민족저항 시인으로 1943년 일본군에 체포되어
형무소에서 복역하던 중 28세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조선어로
시를 쓰며 불온한 사상을 전파했다는 죄. 그가 수감된 곳은
한반도에서 가장 가까운 후쿠오카 형무소였다.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다 절명한 윤동주의 짧은 생애가 음악과 함께 영상으로
송출되어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작은 공간에 있는 것이라고는
허름한 의자 몇 개뿐. 그것도 사람이 앉을 수 없는 콘크리트 턱
아래에 놓인 작은 것들이었다. 영상이 돌아가는 동안 사람들은
영상이 바뀌듯 잠시 들어왔다가 나가는데 나는 영상이 끝나고도
한참을 서 있었다. 찬 기운이 몸속으로 파고드는데 왠지 속이
시원해지는 느낌이었다. 뜻밖의 위로였다. 내 안의 울분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폭풍 노동의 끝은 공갈빵 같았다. 봉긋하고 노르스름한
공갈빵은 먹음직스럽지만, 포크에 한 번 찍혀 무너진 모습은
처참하다. 텅 빈 것의 결과다. 밥심으로 견디기 위해 속을 단단히
채웠지만, 어느새 속은 어두운 동굴처럼 변해 있었고 더 깊은 곳에
와서야 그것을 벗어나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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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향 마실길
1993 흐름, 사라진 정원에 서다
유 세 진 (ayjtree@hanmail.net)
2012 『에세이스트』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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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리에 떠오르는 이전의 풍경들 속으로 천천히 들어가 본다.
보화각 들어가는 입구의 왼편 공간엔 우아한 공작새와 흰색 개의
우리, 화분들이 줄지어 있었다. 푸른 5월엔 모란 철쭉 등 여러 진귀한
꽃과 나무들이 눈부시게 피어났고, 만추의 10월엔 오색 단풍으로
물든 각종 식물들, 노랗게 물들어가는 키 큰 은행나무로 내겐 도심 속
비밀의 정원이었다. 미술품 전시를 본 후엔 정원 이곳저곳을 천천히
거닐며 오랫동안 머물곤 하였다. 마치 딴 세상에 온 듯한 착각 속에
빠져들었다. 아름다운 자연의 정원 속에서, 나는 일상의 스트레스가
사라지고 평정심이 되살아나는 힐링을 맛보곤 하였음을 고백한다.
이곳 분위기가 좋아 어떤 때에는 같은 전시회를 다시 찾은 적도 여러
번 있었지 않았던가!
조화롭게 잘 가꾼 정원에는 고려 시대 건축한 석탑과 석등, 고려
시대 석불이 적당하게 자리 잡고 오랜 세월과 역사를 말해주고
있었다. 한쪽엔 일제 식민지시대에 소중한 우리 문화유산을 꿋꿋이
수집하고 보존한 간송 전형필 조상이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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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황리단길
이 승 엽 (msy7272@naver.com)
2016 『에세이스트』 등단
경주 '황리단길'은 봉황로를 마주한 대릉원 주변의
내남사거리에서부터 남쪽으로 황남관 사거리까지 이어진 길을
일컫는다. 천마총이 자리한 대릉원과 담장을 마주하고 있지만,
이곳은 황남동 일대에서도 가장 낙후된 거리였다. 드문드문 길
양쪽을 점령하고 있던 점집과 작은 가게들이 사라지고 난 뒤 특색
있는 카페와 이색점포들이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지금은 껑충
뛰어오른 임대료 탓에 옛 점포들은 모두 다른 업종으로 바뀌었다.
‘황리단길’에 새로 생긴 상점에 들어가 창가에 앉아 대릉원을 바로
볼 수 있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높게 솟아있는 능을 바라보면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는
아늑한 분위기의 상점들이 많다. 계획적으로 조성된 곳이 아니기에
집집이 특색 있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좁은 도로라 인도와
차도의 구분이 없다는 점은 불편하지만, 30여 분 정도 걷다 보면
‘황리단길’의 시작과 끝을 모두 경험할 수 있다. 천마총이 자리한
대릉원은 물론 첨성대가 있는 경주역사문화지구와 가까워 건축물의
높이 제한이 법으로 규정되어 있어, 그 덕에 어딜 둘러봐도 높은
건물이 없어 시야가 시원스럽게 확 트여있다. 끝나는 지점에
‘황리단길’이 가장 잘 내려다보인다는 3층 건물인 카페 오하이가
유일할 정도다. 매년 4월 초면 보문호숫가에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절정이니 그 시기에 맞추어 한 번 찾아봄은 어떨까 싶다. 간 김에
기와지붕 사이로 넘어가는 불국사의 일몰과 동궁, 월지의 야경도
빠뜨려서는 안 될 것이다. 좋은 건 보고 또 봐도 항상 좋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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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교향곡 9번 3악장
이 호 승 (lhn898@naver.com)
2022 『에세이스트』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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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하고 여리게 시작하여 한 음 한 음, 마치 내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 토닥이며 위로하듯 다가오는 베토벤에 그만 눈물이 터져버린
것이다. 멈출 수 없었고 멈추고 싶지 않았고 그저 말초감각 끝의
끝 세포까지 온몸으로 느끼고만 싶었다. 이 곡을 완성했을 당시
1824년 베토벤은 이미 죽음을 앞두고 있을 만큼 건강이 안 좋았고
청각은 거의 들리지 않는 상태였다. 그런 그가 3악장 Adagio molto
cantabile에서 표현했던 그 음조의 흐름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인간의 한계란 여기까지인가? 역경을 거치고 지금까지 오면서
스스로 창조자임을 자부했었지만 결국은 神, 절대자 앞에 일개
나약한 인간일 수밖에 없음을 고백하고 있는 베토벤. 그리고 그
진리와도 같은 깨달음에 초연하여 관조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복기하며 3악장을 전개하고 있다는 느낌과 옆에 계신 장모님의
현재 상황까지 오버랩 되며 순간 수많은 복합적인 감정이 밀물처럼
밀려오면서 쏟아져 내린 눈물이 아니었던가 싶다. 3악장은 죽음을
앞둔 베토벤이 자기 자신과 神께 겸허하게 감사하며 음조 하나하나,
박자 하나하나, 템포 하나하나로 표현해낸 악장이었다. 3악장의
진면목이 그대로 느껴지며 내 영혼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리고
4악장에선 마치 그 모든 것을 초월한 듯한 베토벤이 내 앞에
거인처럼 우뚝 서서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외치고 있는
듯했다.
(...)